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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강철팔의 늑대 : 속성의 잔재
작가 : 질럿M늑대의칼바람
작품등록일 : 2020.8.3

원한과 원한이 물리고 복수와 복수가 물린다.
16년 전 몬스터대란 당시, 칼자르트는 오른 팔을 잃고 생체병기와 마족기사단을 궤멸시켰다.
하지만 작중 시점, 생체병기와 마족기사단이 원한을 품고 나타나 칼자르트를 노린다. 그역시 복수의 애환을 끊지 못하고 다시 복수 하고자 역추적에 나서는데...
끝나지 않은 질기고 질긴 악연과 원한.
그 끝을 향한 늑대의 일대기그린 다크 판타지.
<어떻게 너희 생체병기가 나타난 건지 묻지 않겠다. 다시 사냥해 주마! 크르르르르르...!!>

 
7화
작성일 : 20-08-12 23:21     조회 : 264     추천 : 1     분량 : 8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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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칼자르트를 본 카시네가 이마를 짚고 난색을 드러냈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중상이 더해져 은 중독증상이 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거참….”

 

  유독, 늑대인간과 뱀파이어는 은에 약했지만 그 원인은 아직 밝혀진 바 없었다. 단지 중독될 경우 빨리 해독하지 않으면 지독한 마비 증세에 시달려야 했다.

  더군다나 칼자르트를 노리고 있는 건 생체병기다.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놓인 것이다.

 

  “하아- 하아-.”

 

  칼자르트가 지친 듯 숨을 헐떡거렸다. 바람이 선선히 불자 거슬리는지 눈썹을 움찔거린다.

  마비 덕분에 격통은 줄었지만, 상태는 안 좋아지고 있었다.

 

  “지랄 맞군.”

 

  그의 감각이 점차 둔감해졌다. 강철팔로 상처를 긁어보지만 통증이 거의 느껴지질 않는다.

  강철팔을 빼고 전신 마비가 된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르자 칼자르트가 격해져 로웰리를 노려보았다. 내심 찢어 죽이고픈 맘이 가득 찼지만 상태는 맘과 같지 않았다.

 

  “생체병기년들은 어떻게 내가 여기 있단 것을 아는 거지?”

  “그건 나중에 찾고 지금 상태부터 신경 쓰는 게 어때?”

 

  카시네가 그를 한심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머리가 지근거리는지, 관자놀이를 누르며 한숨을 길게 내쉰다.

  무턱대고 싸우다 이 꼬락서니가 났으니 그녀로선 답답했다.

 

  “쳇.”

 

  이걸 아는지 칼자르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엘프 정령술사에게 가기로 했으니 그쪽에서 치료받는 게 낫겠네. 문제는 난 힘이 약해서 칼자르트 너 옮길 수도 없어.”

 

  카시네가 답이 없다는 듯, 바닥을 한쪽 발로 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머리가 쥐가 난 것인지 애꿎은 머리칼만 강하게 쓸어내렸다.

  칼자르트는 무안한 맘이 들었는지 괜히 헛기침하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봉인은?”

  “뭐?!”

  “봉인…말이야. 하르넨을 봉인했을 때 그거.”

 

  기세에 눌렸는지 그의 목소리는 끝으로 갈수록 작아졌다.

  카시네가 어이가 없었는지 칼자르트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조금이라도 건들었다간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다.

 

  “너….”

 

  그녀의 눈에서 번갯불이 찌릿찌릿 튀었다. 분위기가 싸해지자 식겁한 칼자르트에게 식은땀이 맺혔다.

 

  “그게 그러니깐….”

 

  그는 기세에 눌려 머릿속으로 어떻게든 눈앞에 있는 그녀를 진정시킬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젠장….’

 

  카시네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칼자르트와 얼굴을 맞대고 눈을 마주쳤다. 그는 그녀의 강렬한 시선을 최대한 피해 보지만 시야 안에 들어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험험…음….”

 

  침묵이 흐르자 칼자르트는 상기되어 볼에 홍조가 올라왔다. 어쩔 줄 몰라 헛기침만 연신 내뱉는다.

  카시네가 한쪽 입 꼬리를 올리고 눈에 줬던 힘을 풀었다. 여유를 되찾은 듯 작은 미소가 살포시 걸리고 눈웃음이 보였다.

 

  “그래도….”

 

  그녀는 요염하게 그의 볼살을 쓰다듬더니, 목을 끌어안아 귀에 입김을 불었다. 한결 부드럽게 속삭이며 간지럽혔다.

 

  “고마워 친구. 날 보호해줘서.”

  “어?! 어…그…그래.”

 

  칼자르트는 이런 상황이 익숙지 않은 탓인지 말을 더듬었다. 갑작스레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식은땀이 주륵주륵 흘러내린다.

  카시네의 하얀 볼살이 그의 얼굴과 맞닿았다. 살포시 부드럽게 문지르더니.

 

 

 -쪽!

 

  소리와 함께 볼에 따스한 입맞춤이 전달되었다.

  칼자르트는 홍조가 진해져 얼굴 전체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정수리에서 김이 뿜어져 넋이 완전히 나갔다.

  하얀 혼이 슬그머니 빠져나가려 하자 손으로 간신히 잡았다.

 

  “어으….”

 

  그는 신음을 내며 간신히 가출할 뻔한 정신을 되찾았다. 눈을 깜박이더니 그녀에게 부담스럽다는 투로 눈길을 보냈다.

 

  “감…감동은 여기까지 했음. 좋겠는데?”

  “그럴까?”

 

  카시네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장난기 묻은 웃음을 품었다.

  두 괴인은 쓰러진 로웰리에게 시선을 모았다. 머리카락에 얼굴이 가려졌지만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카시네가 가볍게 턱을 짚고 입술을 살짝 눌렀다. 로웰리를 꿰뚫을 듯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눈매가 가늘어져 안광이 발했다.

  카시네가 상대를 관찰할 때 하는 버릇이다.

  상대의 피 냄새와 생김새, 능력 등을 눈으로 보고 익혀서 파악하여, 최대한의 정보를 알아내는 그녀만의 방식이었다.

 

  “아까 하르넨이랑 애랑 같은 생체병기인데 뭔가 달라.”

  “그래?”

  “일단 피 냄새가 확실히 달라. 이건 확실히 살아있는 자의 피 냄새인 거 같아.”

 

  카시네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기울인다. 하지만 궁금증은 곧 풀렸다.

  로웰리에게 희미한 자색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것이다.

  칼자르트와 카시네의 눈이 살짝 커지고, 동시에 외쳤다.

 

  “이건?! 마경석?!”

 

  하지만 카시네는 살짝 찜찜한 기분이 들어 입을 굳게 다문다. 짐짓 뭔가를 생각하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얘 아무래도 살아있는 거 같은데?”

  “살아있다고?”

  “그래.”

  “그렇다는 건…?!”

 

  칼자르트의 얼굴이 굳어졌다.

 

  “맞아. 얘는 살아있는 상태에서 생체병기가 된 것 같아.”

  “전에 마경석 끼던 녀석들 중에 살아있던 녀석은 한 놈도 없었는데 뭔가 반대가 된 느낌이군.”

  “그러게?! 살아있는 애한테는 마경석이 있고 죽었다 다시 살아난 좀비 같은 애들한테는 마경석이 없다…뭔가 웃기네.”

 

  카시네는 과거 16년 전,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불타는 배경 속 신음, 그 위로 쌓은 시체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그 속에 생체병기가 일어섰다.

  그 생체병기가 움직이는 모습을 끝으로 기억이 흐려졌다.

 

  “그래도 대란 때랑 지금이랑 생각해보면 납득이 안가는 건 아냐. 그때 당시만 해도 죽은 사람들이 많았으니.”

  “어쨌건 살아있는 것들도 손댄다 이거는 확실하군. 쳐 죽일 녀석들. 크르르르르….”

  “그래도 공통점은 있어. 얘도 쓰러지기 전에 마경석의 기운이 드러나질 않았어. 하르넨이 쓰러지기 전까지 죽음의 기운이 드러나지 않은 거랑 똑같다고 볼 수 있는데 어떤 힘으로 한 것인지는 모르겠네. 마력이 딱히 특출 난 것도 아니고.”

  “그럼 생체병기 몇 놈 더 조져나야 되나?”

  “그 몸으로? 허….”

 

  카시네가 콧방귀 치며 칼자르트를 쳐다봤다.

 

  “쳇.”

  “확실한 건 장본인한테 듣는 거겠지만 저 상태로는 일어나기도 힘들겠어. 일단 차이점을 죽음의 기운 유무 정도만으로 알아둬야겠네. 예전처럼 죽은 애들이 마경석을 낄 수도 있으니.”

  “겉으로 구분할 방법은?”

  “글쎄. 지금은 딱히 없는 거 같은데? 외양이 인간하고 완벽히 똑같아서.”

  “추적이 쉽진 않겠군.”

  “피 냄새만 가지고는 사실 좀 벅차지.”

 

  떼 지은 검은 나비가 희멀건 점이 되어 태양광을 가렸다. 가루가 바람에 날려 띠 형태로 점차 퍼졌다.

  이상한 낌새가 골목을 엄습하자, 카시네는 주변을 경계했다. 칼자르트역시 긴장하며 주위를 훑어보았다.

  희미한 그림자가 바닥에 잡혔다. 그녀가 위를 쳐다보자 느꼈던 낌새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내리쬐는 빛 사이로 검은 덩어리 예닐곱 개가 상공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림자가 진하게 형태를 갖추고 덩어리가 바닥에 다다랐다.

 

 -쿠쿵!

 

  굉음을 터뜨리며 나타난 건, 다리가 여섯 개 달린 기계였다. 하나같이 기괴하게 꺾인 관절을 움직이며 하얀 얼굴에 박힌 붉은 안광을 번뜩인다.

  기계들은 카시네와 칼자르트를 에워싸며 위협하듯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기계를 앞세우고, 그사이 로웰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있었다. 냉기가 나와 주변의 공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백 청색의 짧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반쯤 감긴 눈으로 로웰리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병자처럼 하얗다 못해 창백했다.

 

  “가여운 로웰리…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가여운 것. 주제도 모르고 능력 밖의 일을 하려 하다니….”

 

  여자의 은청색 생머리에서 나온 빛가루가 몸을 감기다 사라진다. 발을 디딘 곳은 얼어붙고 쓰다듬은 머리칼은 서리가 맺혔다.

  그녀가 입김을 불자 로웰리가 서서히 얼어붙었다. 단 몇 초도 되지 않아 얼음이 몸 전체를 뒤덮었다.

  카시네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여자에게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사뭇 들자 경계를 높였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약하지. 약하면 낙오되고 결국은 죽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

 

  여자는 냉소적인 언조를 보이며 얼어붙은 로웰리를 한발로 지그시 밟아 문질렀다. 얼음표면에 금이 가자 그녀가 차가운 비웃음을 보냈다.

 

  “너 뭐 하는 거냐?”

 

  여자의 행동에 되레 칼자르트가 당황했다. 그녀는 칼자르트와 카시네는 안중에도 없는 듯, 반응이 없었다.

 

  “저년이!”

 

  무시당한 칼자르트가 격해져 아까보다 더욱 몸을 떨었다. 카시네도 굳은 표정으로 손목에 피를 흘려보냈다.

  골목길에 긴장감이 높아지자 기계가 한 발자국씩 움직였다.

  여자는 귀찮은 듯 시선을 흘리더니 가볍게 손짓했다.

 

  “죽여.”

 

  여자의 한 마디에 로봇이 다가와 카시네와 칼자르트를 압박했다.

  그때, 노란 참격이 치솟아 로봇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섬광 속에서 고철 덩어리가 되어 분산됐다.

  기계가 산산이 부서지자, 여자가 덤덤한 눈초리로 골목을 쳐다보았다.

 

  “옛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냄새가 나는군.”

 

  낮고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상당히 익숙한 목소리에 칼자르트의 눈썹이 움찔거린다.

  카시네가 뒤쪽을 보자 익숙한 모습에 눈이 살짝 커졌다.

  갑주처럼 생긴 황색의 비늘과 기다란 드래곤의 얼굴을 가진 수인, 드라고니언. 대지룡 트루먼 키드의 등장이었다.

  그는 손가락 위에 비둘기를 올려두더니, 하늘 높이 날려 보냈다.

 

  “어?!”

 

  카시네는 트루먼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는 16년 전 생체병기에 맞선 조력자이자 고룡이다. 그러나 그를 뜬금없이 골목에서 만난 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대지룡 트루먼?!”

 

  카시네가 놀랐는지 입술을 들썩이고 길게 숨을 내뱉었다.

 

  “하….”

  “오랜만이네. 뱀파이어 아가씨. 칼자르트에게 한 키스는 좋더군.”

  “아…그게…저도 모르게….”

 

  트루먼이 옅은 웃음을 짓자, 카시네가 홍조가 띄웠다. 살짝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여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느끼자 가슴에 손을 올려 진정시켰다.

 

  “트루먼?!”

 

  칼자르트가 소리 난 쪽으로 눈동자를 최대한 굴리지만 맘처럼 목이 움직이지 않았다.

  트루먼은 여자를 보더니 바로 상황을 간파했다.

 

  “생체병기인가?”

  “네.”

 

  카시네는 맘을 진정시키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동안, 하얀 냉기가 주변에 깔려 층을 쌓았다. 바닥에 서리가 서리고 골목길이 얼어붙었다.

  카시네가 이상한 느낌에 앞을 보자, 갑작스런 돌풍이 일었다. 뺨을 스치는 냉한 칼바람에 검붉은 머리칼이 흔들렸다.

  그녀는 입김이 흘리며 눈을 가늘게 떠, 서리 맺힌 옷자락과 여자를 보았다.

  얼음알갱이가 바람 따라 날리고 냉기가 뻗치자 칼자르트의 몸에 서리가 생겼다.

 

  “제길!”

 

  그는 이마에 핏줄이 터지기 직전까지 힘을 짜냈다. 온몸에 김이 올라오면서 몸이 살짝 움직였지만, 역부족이었다.

  트루먼이 등에 메고 있던 대전창 두 자루를 꺼내 들었다. 그는 창끝을 여자를 향해 겨누며 노려보았다.

 

  “엇?!”

 

  그때, 카시네의 짧은 비명이 터졌다.

  눈앞에서 빙벽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다. 그렇게 솟구친 빙벽은 칼자르트와 카시네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칼자르트를 데려갈 심산이었군!”

 

  트루먼이 몸을 틀어 대전창을 휘둘렀다.

  공기를 가르는 호선을 그어져 빛이 번뜩였다. 초승달형태 참격이 일어 빙벽을 향했다.

  참격은 맹렬한 기세로 빙벽과 부딪쳤다. ‘우지직’ 소리와 함께 벽에 틈이 생겼지만 뚫지는 못했다.

 

  “만년설의 빙벽. 크로마틱 산맥의 빙벽.”

 

  트루먼은 빙벽의 강한 방어에 무엇인지 바로 간파했다. 그가 벽에 손을 대자 냉기가 뭉실거리며 뿌려졌다.

  큐브 형태로 생성된 빙벽은 골목길을 틀어막고 여자와 칼자르트를 안에 가뒀다.

  카시네가 열을 내는 피를 뽑았지만 ‘만년설’ 이란 소리에 행동을 멈췄다. 약한 열로는 빙벽을 녹이기는커녕 흠집도 못 내기 때문이다. 그녀는 별수 없이 초조하게 빙벽을 훑어보았다.

  만년설의 빙벽은 빙룡 중에서도 고룡급 이상만이 소환할 수 있는 최대의 방어벽이었다. 그 강도는 미스릴과 능가할 정도로 단단하고 강한 열에도 쉽사리 녹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빙벽을 구성한 얼음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딱 한 곳뿐이다.

  혹한의 크로마틱 산맥.

  카시네는 빙벽을 부술 수단이 딱히 없자 트루먼을 쳐다보았다.

 

  “그럼 어쩌지요?”

 

  “이 빙벽은 부수기가 힘드네. 칼자르트에게 맡기는 수밖에.”

  “몸도 중상이고 은 중독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카시네는 불안감 어린 우려를 보였다. 칼자르트가 버티는 것도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던 탓이었다.

  그녀의 우려대로 빙벽 너머에서는 그대로 현실이 되고 있었다.

 

 -푸슉!

 

  얼음송곳이 여자의 팔과 일체화되어 칼자르트 어깨를 깊게 파고들었다. 그는 긴 입김을 내며 여자를 노려보았다.

  여자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와 얼굴을 맞댄다.

 

  “미물은 미물답게 죽는 것이 영광스러울 테지. 아니 그러한가?”

  “주접떨지 마라. 버러지 같은 년!”

  “약한 것은 강한 것을 떠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 미물은 그저 제물이 돼서 없어지는 게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의 축복이지.”

 

  칼자르트가 격한 나머지 여자에게 침을 뱉었다. 끈적한 액체가 그녀의 콧등에 매달리다 그 상태로 얼어붙었다.

  여자는 기분 나빴는지 얼굴을 쓰다듬고 몸을 일으켰다.

 

  “하찮은 것.”

 

  그녀가 얼음송곳을 휘두르자 살점이 찢겨 다량의 피가 빙벽에 튀었다.

  칼자르트가 힘없이 뒤로 넘어져 등에 냉기가 스며들었다. 그는 큰 대자로 뻗어 서서히 얼어붙었다.

 

 -또각, 또각.

 

  여자는 굽 소리를 내며 칼자르트에게 다가섰다. 그녀는 소름 끼치도록 냉소적인 무표정을 유지했다. 하르넨과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벌레 보듯 내리까는 여자의 눈초리에 경멸이 가득 차 있었다.

 

  “어차피 맞게 될 죽음이라는 운명.”

 

  그녀는 그의 배를 향해 발을 내리찍었다. 구멍 뚫린 부분에 굽이 박고 가차 없이 휘저었다.

  칼자르트는 입에서 혈토를 뱉었다.

 

  “크큭!!”

  “하지만 생명줄이 너무 질기구나. 역시 하찮은 미물이라도 살려는 본능은 어쩔 수 없는 건가?”

 

  그는 여자와 눈이 마주치더니 한쪽 입 꼬리가 올라갔다.

 

  “버러지 년. 니년 걱정이나 하지?”

 

  여자가 ‘아차’ 싶었는지 시선을 바꾸자, 얼어붙은 강철팔이 정강이를 강하게 붙잡았다. 악력이 강해지자 그녀는 강철팔을 얼음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그때, 강철팔에서 검은 기운이 물새 듯 흘러나와 오오라를 형성했다. 흑의 기운이 발한 것이다.

  주변의 냉기가 기운에 흡수되었고 얼음이 순식간에 녹아 없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여자가 미묘하게 놀란 눈치를 보였다.

 

  “하찮은 미물 따위 것이.”

 

  여자는 칼자르트에게 발길질을 하더니, 정강이를 얼음으로 바꿨다. 이내 강한 악력에 의해 얼음이 조각났지만 다시 원래대로 재생됐다.

 

  “그래 봐야 발악에 지나지 않아….”

 

  여자는 천천히 칼자르트 위에 올라탔다. 무릎이 배에 닿자 살얼음이 맺고, 차갑고도 여린 손길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녀가 닿는 곳마다 얼어붙자 그는 신음을 흘렸다.

 

  “크흐….”

 

  여자는 상체를 일으켜 요염한 허리라인을 보였다. 창백한 걸 빼면 상당히 매끈한 피부였다.

 

  “하지만 살짝 아쉬워.”

 

  그녀는 자세를 낮춰 칼자르트와 시선을 주고받았다. 얼굴을 코앞에 맞대면서 허연 입김을 모락모락 뿜는다.

  손길로 부드럽게 그의 얼굴을 쓰다듬더니, 귓가에 입을 가까이 댔다.

 

  “미물의 발악이 어디까지 인지 한번 보고 싶어졌어. 한번 처절하면서도 죽음에 쫓기는 하루살이처럼 말이야.”

  “크르르….”

 

  이를 악문 칼자르트를 보며 여자는 냉소를 품었다.

 

 -딱.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그녀 자신과 얼어붙었던 것들이 푸른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칼자르트는 완전히 뻗어서 하늘만 쳐다보았다. 찢긴 걸레짝이 된 몸에서 격통이 일어나 정신을 붙들고 있었다.

  갑자기 사라진 빙벽에 카시네가 벙 쪄있다 그를 보고 실소를 품었다.

 

  “흣…울프나이트 해먹기 좀 피곤하겠는데? 스토커가 여러 명 달라붙으니. 나도 인기 많은 비결 좀 알고 싶은데.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친구?”

  “시끄러. 좀 쉬고 싶다.”

  “오랜만이군. 칼자르트.”

 

  칼자르트가 시선을 옮기자 트루먼과 눈을 마주쳤다.

 

  “댁까지 온 걸 보면 무슨 일 있나 보지?”

  “문제가 좀 생기긴 했지만 여긴 지나가던 참이었지. 그런데 옛 추억을 떠올리는 익숙한 냄새가 나서 말이지.”

  “문제가 뭔데?”

  “철의 여인.”

 

  칼자르트는 머리 지끈거리는지 이마를 짚었다.

 

  “골치 아프군.”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하지.”

  “이왕 온 거 나 좀 옮겨주는 건 어때? 머리 좀 식히고 다시 생각하자고.”

  “그러는 게 좋겠군.”

 

  칼자르트가 로웰리가 널브러졌던 곳을 흘겨보자 언제 얼어붙었느냐는 듯 휑했다.

 

  “육시랄….”

 

  그는 여자를 생각하며 욕을 한 모금 뱉었다. 긴장이 풀리자 고통이 줄어들며 눈이 스르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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