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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나 혼자 목이 없다
작가 : 알레그로
작품등록일 : 2020.8.1

목 없는 기사로 되살아난 수도사 파울의 이야기.

 
5화
작성일 : 20-08-12 17:16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5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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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녹스본에 성창이 출현한 이후로 성유물 원정이 중단되었다. 살아 있는 순례자들은 녹스본으로 돌아왔고, 수도원 내의 사제들은 수도원을 빠져나와 성유물 수색에 동원되었다.

 

  사제단의 팔 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고 했다. 그가 수도원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한참 늦은 뒤였다.

 

  “수도원은 폐허가 되었어. 누군가는 그림자 기사단의 소행이라 하더라고. 죽음이 코앞이라 헛것을 봤다고 생각했지만, 두 눈에 비친 공포는 가짜가 아니었어.”

 

  그림자 기사단. 바다 건너 미신으로만 전해지는 존재였다. 그림자의 길이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자들. 그들은 빛이 만든 존재지만, 밤에만 움직일 수 있었다.

 

  “암브로스는 어떻게 됐지?”

 

  “시체는 못 봤어. 피신했을 거라 믿고 있지만, 포로로 잡혔을 수도 있지.”

 

  “쉘터 수도원은?”

 

  “이봐. 거긴 성 내부에 있는 수도원이야. 그곳이 무너졌다는 뜻은, 쉘터도 녹스본도 끝났다는 소리잖아. 불길한 소리는 하지 말라고.”

 

  누구의 소행일까. 아무리 쉘터 수도원이 브리즈 수도원과 성유물을 둘러싸고 오랜 세월 반목했다지만, 같은 교단에서 내전을 벌이는 일은 종래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가장 의심되는 쪽은 제국군이었다. 어디서 힘을 빌려 왔는지 모르겠으나, 배후를 숨기기 위해 미지의 병력만 거느리고 일을 도모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브리즈의 몰락은 쉘터 수도원에 좋은 소식이라는 거지.”

 

  암브로스는 어디로 갔을까. 그림자 기사단과 암브로스 사이에 아무런 연관이 없을까. 메이텔이 창을 되찾고도 수도원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메이텔은 암브로스를 믿지 못한 것이다. 사제단의 임무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은 것이다. 질서를 위한 일인지, 암브로스를 위한 일인지.

 

  이끼로 더럽혀진 도리깨. 녹스본에 재앙을 불러오는 근원은 미친 듯이 날뛰는 성유물이 아니다. 모든 사태가 성유물을 둘러싸고 벌어지지만, 성유물은 태풍의 눈이었다.

 

  성유물의 꽁무니를 쫓는다고 사태의 전말을 알 수는 없었다. 태풍의 눈을 따라가서는 폭풍전야의 연속이다. 태풍의 테두리로 방향을 꺾어야 한다.

 

  폴이 나를 밀쳤다.

 

  “이제 돌아갈 곳이 없으니 키퍼의 의무도 더는 유효하지 않겠지.”

 

  “사제단은 움직이는 작은 수도원이야. 당신이 죽지 않는 한, 의무는 계속돼.”

 

  폴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단호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내가 성유물을 소유한다고 치자. 얼마나 오랫동안 그것을 지킬 수 있을까? 반나절도 고맙지. 여기선 눈 한 번 깜빡였다가는 목이 달아나는데.”

 

  가드로 살아왔지만, 키퍼의 마음을 잘 알았다. 그들은 수도원에서 성유물을 다스리는 자라며 추앙받지만, 막상 외부로 나가면 대부분은 자신의 인내력을 시험해보기도 전에 죽어 나갔다.

 

  가까스로 성유물을 발견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유권을 잃는 조건은 죽음뿐이다. 성유물을 소유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폴은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망연자실하고 뜻을 잃은 키퍼와 동행할 수는 없었다. 소속감을 느낄 수 없다면, 동질감이라도 느껴야 했다.

 

  “수도원에 들어오기 전에는 어디 사람이었지?”

 

  “쉘터.”

 

  “쉘터 가문?”

 

  “그래, 내 신세도 웃기지. 음악가 집안이었어. 이명이 왔다고 수도원에 맡겨졌지. 귀만 멀쩡했어도 늪에서 허우적대며 살인 무기를 쫓을 일은 없었을 텐데.”

 

  쉘터 가문은 예상하지 못했다. 성의 대문이 보이는 곳에서 태어난 사람과 말을 섞어본 적이 없었다. 서쪽 엔드밀 출신인 나는 쉘터 가문과 말을 섞으려면 땅을 내려다봐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가족들이 알아보나?”

 

  “같은 핏줄이니 알아는 보겠지. 차라리 까맣게 잊어버리는 편이 나아. 알아봤어도 모르는 척하는 얼굴을 볼 바에는.”

 

  폴은 죽은 가드의 출신도 알려 주었다. 다일 가문. 내가 탈출한 공동묘지도 다일 가문의 영지였다. 다일의 영주는 대대로 녹스본의 묘지를 관리하고 묘지기를 양성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묘지는 수도원과 마을을 잇는 다리였고, 묘지기는 그 다리를 지키는 중개자였다. 묘지기 덕분에 수도원장은 마을의 신망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일 가문은 수도사를 적게 배출했지만, 그 어떤 가문보다 수도원과 접촉이 많은 가문이었다.

 

  벌써 다일 가문의 시체를 두 구나 봤다.

 

  폴은 드디어 내가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투구를 유심히 들여다보길래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당신, 원정에서 돌아온 사람인 듯한데. 키퍼는 어디서 죽었지?”

 

  “기억나지 않아. 내가 왜 죽었……아니 녹스본에 어떻게 돌아왔는지조차.”

 

  “키퍼를 못 지킨 가드를 믿어도 되나?”

 

  “적어도 악어 밥이 되진 않아.”

 

  폴은 아무래도 좋다는 얼굴이었다. 이미 키퍼로서의 소임을 내팽개쳤는지 홀가분해 보였다. 마치 가드의 죽음을 내심 바라기도 한 것처럼.

 

  “당신도 돌아올 곳이 없는 것 같으니, 같이 쉘터로 가는 게 어때? 아무리 정이 없어도 문전박대를 하진 않겠지.”

 

  폴의 말이 맞았다. 그 길밖에 없었다. 브리즈가 없다면 의지할 곳은 같은 교파인 쉘터 수도원과 왕이 있는 쉘터 성이었다.

 

  루크 쉘터의 손자가 어떤 성정을 지녔는지는 대면해봐야 알겠지만, 그의 조부보다 나쁘기는 힘들었다.

 

  “혹시 전령 좀 보낼 수 있나?”

 

  늪지대에 시체가 많은지, 뿌연 하늘에 까마귀 떼가 날아다녔다. 전령조로 길들인 까마귀도 이런 만찬을 지나치긴 힘들 것이다.

 

  폴이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날아와 폴의 어깨에 앉았다. 폴이 손가락만 한 종이와 펜촉을 꺼냈다.

 

  오랜만에 무언가를 적어 보았다. 손끝이 떨려 왔지만, 최대한 떨림을 줄이며 꾹꾹 눌러썼다.

 

  까마귀의 다리에 종이를 매달았다.

 

  “까마귀가 돌아갈 곳은 폐허라고.”

 

  “암브로스나 까마귀 관리인이 살아 있다면 답장이 돌아오겠지.”

 

  “살아 있는데 전령을 무시하면?”

 

  “무시하지 못할 말을 적었으니까 걱정하지마.”

 

  까마귀가 하늘을 선회했다.

 

  늪지대에서 멀어지고 싶었지만, 숲으로 들어가면 제국군을 마주칠 것이다. 늪지대는 아무도 함부로 접근하지 않았다.

 

  레몽은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차라리 제국군인 게 다행인지도 몰랐다. 녹스본 사람은 마법사에 별 관심이 없었고, 그들의 마법을 이용하고 싶은 욕심도 없었다. 이해관계가 없는 자는 오히려 죽이기 쉬웠다.

 

  엄밀히 따지면 흑마법사는 전 세계의 적이 아니었다. 제국의 적이었다. 하지만 제국의 적을 적으로 두지 않을 멍청한 나라는 없었다. 제국의 판단이 곧 대륙의 기준이니까.

 

  시간을 지체하면 레몽은 제국으로 후송될 것이다. 흑마법사에 대한 맹목적인 혐오로 얼룩진 제국인들. 그들에게 수모를 당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돼선 안 되었다.

 

  “바람구멍 난 투구. 너덜너덜해진 넝마. 성유물을 찾는 과정이 꽤나 험난했던 모양이야. 차라리 내가 행운아인 걸까.”

 

  폴은 뒤에서 걸으며 늪에 돌을 던졌다. 늪에 잠든 괴수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지만, 괜히 신경을 돋울 필요는 없었다.

 

  “그만하지. 우리가 땅에 발을 딛고 있다고 안전한 건 아니야.”

 

  “이전 가드는 너무 자신만만해서 탈이었는데, 지금 가드는 너무 조심조심해서 탈이군.”

 

  가드라고 키퍼의 말장난을 들어줄 의무는 없었다. 앞을 보고 걸었다. 늪에 떨어지는 돌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간격은 더 짧아졌고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폴의 양손은 비었지만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는 이어졌다. 늪지대에 솟아난 사이프러스 나무들. 나뭇가지에 무언가 매달려 있었다.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이었던 것.

 

  절단된 다리 끝으로 핏물인지 모를 무언가가 흘러내려 늪지대의 수면 위로 떨어졌다. 까마귀들이 시체 주위에 맴돌았다.

 

  나무 위에 올라탄 생명체는 까마귀뿐만이 아니었다. 체구가 작은 아이들이 보였다. 독침이나 작살을 들고 있었다.

 

  저들이 독침을 쏘지 않기를 바랐지만, 이미 내 팔뚝에 독침이 꽂혀 있었다. 뒤에 있던 폴은 이미 쓰러진 채로 무리에게 끌려가는 중이었다.

 

 •

 

  눈을 떴을 때 처음 본 것은 사이프러스 나무에 목이 매달린 시체들이었다. 어떤 시체는 오랜 시간 방치되었는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목에서 몸통이 떨어져 나갔다.

 

  늪으로 몸통이 떨어지기 직전, 수면 위로 무언가 솟구쳤다. 두 갈래로 갈라진 악어의 입이 나타나더니 다시 하나로 오므라들었다.

 

  속이 메스꺼웠다. 나는 지금 작은 나무배에 누워 있었다. 손발이 묶인 채로. 목이 허전했다.

 

  “이걸 찾나?”

 

  투구를 들고 있는 꼬마가 보였다. 아니 키가 작은 어른이었다. 길쭉한 붉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몸의 골격에서 어른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사냥감은 처음이야. 팀벅이 좋아하겠는데.”

 

  “혹시 당신들 '거머리'인가?”

 

  “목소리는 어디서 나오는 거지?”

 

  신에게 버림받은 자들. 역병 속에서 태어난 자들. 내가 수도원에 가지 않았다면, 이들의 식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늪지대를 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악어 떼와 독사들이 아니라, 거머리라고 불리는 이들이었다. 이들에게 붙잡힌 낙오자들은 험한 꼴을 면치 못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녹스본의 쓰라린 과거를 떠올리게 해주는 존재였다. 그들은 끊임없이 녹스본 사람을 사냥했다. 마치 그날을 잊지 말라는 이정표로서 사냥감을 나무에 걸어 두었다.

 

  늪지대에 깊숙이 다다르자 수상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로 대를 세우고, 넝쿨로 얽은 부실한 집이었다. 그 위로 무리가 보였다.

 

  이런 곳이 숨어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수상 마을을 통과하면서 무리의 시선을 느꼈다. 서로를 신기하게 여기고 있었다.

 

  통로의 끝자락에 무너진 신전의 잔해가 보였다. 깨진 돌과 기울어진 기둥.

 

  ‘지옥 같은 늪에서는 무슨 신을 믿나?’

 

  선창에 닿자 빨간 가면이 나를 끌어 올렸다. 주위를 살펴봐도 폴은 보이지 않았다. 폴의 행방을 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안면으로 날아오는 주먹이었다.

 

  정글색의 장막 안으로 들어가자 누군가 앉아 있었다. 그가 앉은 의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똬리를 풀더니 거대한 손잡이가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었다.

 

  아나콘다였다.

 

  “첫 손님이야?”

 

  아나콘다의 주인이 입을 열었다. 이 자가 팀벅인 모양이다.

 

  “투구를 벗겨 보니 이렇더라고.”

 

  “이름이 뭐지?”

 

  “파울이었어. 죽기 전까진. 되살아난 이후로 새 이름을 못 정했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자들이니, 나도 상식 밖으로 말했다. 아무도 비웃거나 당황해하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대화의 일부분으로 넘어갔다.

 

  “늪지대는 왜 지나갔지?”

 

  옆에서 폴이 나타났다. 재갈이 물린 채로 무릎을 꿇렸다.

 

  “쉘터로 가고 있었어.”

 

  “쉘터는 왜?”

 

  우리가 사제임을 말해선 안 되었다. 이곳을 살아서 나갈 생각은 어렵지만 적어도 시간은 벌어야 했다. 수도원 자제들이 맘에 들 리 없었다.

 

  “수도원이 무너졌어. 돌아갈 곳이 없어.”

 

  폴이 재갈을 뱉어내며 말했다. 숨을 몰아쉬었다. 팀벅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고귀한 사제들이셨군. 여기 목이 잘린 사람이 신이 있다는 증거인가.”

 

  손목에 묶인 밧줄을 더듬었다. 매듭이 점점 느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팀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나콘다의 거대한 머리를 들어 올려 폴의 면전에 들이밀었다. 아나콘다의 목구멍이 눈앞에서 꿈틀거렸다. 폴이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말이야. 우린 신이 없다는 증거들이야. 그 정도 증거는 한 입 거리라고.”

 

  밧줄의 매듭이 풀렸다. 빨간 가면의 독침을 빼앗아 아나콘다의 입안에 찔러넣었다. 아나콘다가 괴성을 지르며 머리를 흔들었다.

 

 

 

 

 

 

 

 

 

 

 

 

 

 

 

 

 

 

 

 

 

 

 

 
작가의 말
 

 부족한 글인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격일로 꾸준히 업로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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