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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입을 다문 아이들
작가 : 흰다람쥐
작품등록일 : 2020.7.31

경찰대를 졸업한 서희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각오로 강력계에 지원했다. 부모님은 형사가 되려는 그녀를 만류했지만, 그녀는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서희는 강력계로 전입을 오자마자 터진 살인사건을 맡게 되지만, 피해자는 얼굴이 난도질당한 채 죽어있고 동거녀의 속옷은 몽땅 사라져있다. 한편 피해자와 함께 살던 쌍둥이들은 현장에서 누군가를 보았다고 증언하는데…

 
7. 범행목적
작성일 : 20-08-11 14:42     조회 : 218     추천 : 0     분량 : 1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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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범행목적

 

 

  새하얀 눈들이 바닥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허공 위를 지나칠 때만 하더라도 한 점의 티도 없이 새하얗던 눈송이들은 이상하게도 사람의 발길이 닿는 도로 위에 떨어지고 나면 금방 더럽고 축축하게 변해버렸다. 오직 잔디밭이나 벌거벗은 나뭇가지 등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만이 깨끗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서희는 왼손을 뻗어 떨어지는 눈송이 하나를 손등 위에 얹었다. 맑고 새하얀 눈은 그녀의 체온을 견디지 못하고 금세 투명하게 녹아 그녀의 살결을 쓸듯이 지나쳐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서희는 이촌역 인근에 차를 세운 채 혼자서 동부이촌동의 한복판을 걸어가는 중이었다. 김 경사와는 교통과를 나온 직후 곧바로 헤어졌다. 살인사건의 수사는 2인 1조로 움직이는 게 기본원칙이었지만, 현장에서 직접 뛰어다니며 수사를 벌일 수 있는 형사는 고작해야 둘이 전부였다. 일일이 함께 움직이기에는 여러모로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둘이 따로 움직이며 조사를 벌이자고 먼저 제안한 쪽은 다름 아닌 김 경사였다. 그는 무작정 원칙대로만 움직이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서희도 그의 제안에 동의했다. 무엇보다도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혼자서 해결하고, 둘이 함께 움직여야 할 일이 생기면 그때 가서 합류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일 터였다.

  동부이촌동의 한복판을 두리번거리며, 서희는 스마트폰의 지도앱을 통해 혜신이 일한다는 가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녀가 일하는 초밥집은 대로변에 자리 잡은 수많은 상가 건물들 사이에 위치해있었다. 5층짜리 건물이었고, 초밥집은 2층에 있었다. 가게의 브레이크타임이 오후 3시부터라는 안내문을 보았기 때문에 서희는 삼십 분간 바깥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이윽고 삼십 분이 지나 오후 3시가 되자, 서희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대신 계단을 걸어 올라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죄송합니다만 손님, 저희가 지금부터 두 시간 동안 브레이크 타임이라서요.”

  계산대 뒤에서 숨을 돌리려던 여직원이 서희를 발견하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여직원은 갈색 바탕에 검갈색 칼라를 목에 두른 피케셔츠차림이었다. 혜신이 입고 있었던 유니폼과 똑같은 복장이었다. 오른쪽 가슴에는 ‘강혜원’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진 명찰을 착용하고 있었다. 혜원은 이십대 초반 정도로 보였으며 등허리까지 내려오는 흑발을 단정하게 묶은 모습이었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식사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사장님을 만나 뵈려고 온 거예요. 혹시 안에 계실까요?”

  “사장님을요? 계시긴 한데, 잠깐만요.”

  혜원은 계산대를 벗어나 곧장 주방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멈칫하고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저기, 실례지만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구서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름을 알려드려봤자 어차피 모르실 거예요. 그냥 경찰서에서 나왔다고 전해주세요.”

  경찰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혜원의 표정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지극히 평범한 반응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찰이 찾아오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두려움을 가장 먼저 느낀다. 죄를 지었든 안 지었든 경찰이 찾아왔다는 건 결코 좋은 이유에서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혜원이 주방 너머로 사라진 뒤 서희는 가게 내부를 조용히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초밥집들이 그렇듯 목재를 이용한 인테리어 방식이었다. 한쪽 벽면에 설치된 선반에는 히라가나인지 가타카나인지 모를 일본어가 적힌 사케가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었고, 테이블 별로 천장에는 풍등이 매달려 있었다. 여기저기에 숨겨진 검은색 알루미늄 깡통에서도 역시나 불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주방 안쪽에서 말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앞치마를 벗어재끼며 중년의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자를 쓰고 있었는지 잔뜩 눌린 앞머리가 이마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가게 유니폼이 아닌 청바지에 검은색 셔츠 차림이었다.

  “경찰서에서 나오셨다고요? 제가 사장인 최만식입니다.”

  그는 물기가 묻은 손을 아무렇게나 바지에 닦아내고는 그녀에게 내밀었다.

  “구서희 형사라고 합니다.”

  서희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형사라는 소개를 듣자, 만식은 불안한 얼굴로 서희를 빤히 바라보았다. 경찰은 누구에게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지만, 그중에서도 형사들이 가장 최악이었다.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냥 사장님께서 몇 가지 확인해주셨으면 싶은 게 있어서 찾아온 것뿐입니다.”

  서희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확인이요? 무얼 말이죠?”

  서희는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게 내부를 다시 한 번 눈으로 훑었다.

  “김혜신 씨가 누군지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저희 직원이에요. 그런데 오늘은 쉬는 날이라서 출근을 안 했어요.”

  서희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혜신의 얼굴이 찍힌 사진을 꺼내 만식에게 내밀었다. 불필요한 절차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일단 말씀하시는 김혜신 씨가 이 여성이 맞는지부터 확인해주시겠어요?”

  그는 건네받은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같은 사람입니다.”

  사진을 다시 돌려받으며, 서희는 가게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의 위치를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입구를 마주보고 있는 천장에 카메라 한 대가 매달려 있었고, 나머지 한 대는 홀 전체와 함께 주방의 일부를 비출 수 있는 각도에 설치되어 있었다. 주방 내부에도 카메라가 따로 설치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혹시 혜신 씨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만식이 놀란 음색으로 물었다.

  “아니요, 김혜신 씨 신변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그러면 대체 무엇 때문에?”

  서희는 만식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에게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는 것과 아니면 에둘러 표현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최선의 판단일지 확신이 서질 않아서였다. 그녀는 잠깐 동안 고민에 잠겼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혹시 박승현 씨가 누군지 알고 계십니까?”

  “알다마다요. 혜신 씨랑 같이 사는 남자잖아요. 몇 번인가 가게에 찾아온 적이 있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거죠?”

  “어제 저녁 박승현 씨가 댁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침묵이 둘 사이에 내려앉았다. 만식은 예상치 못한 소식에 입을 굳게 다물고는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그는 충격을 받은 듯 눈동자를 잠시 허공으로 굴렸다. 그러고는 그제서야 서희가 자신을 찾아온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깨달은 듯 그녀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살인사건인 거군요, 그것도 오늘 아침 뉴스에서 나온. 맞죠?”

  그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네, 맞습니다.”

  서희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고는 그가 어떠한 질문도 내뱉지 못하도록 곧바로 본론부터 꺼내들었다. 그녀는 만식이 무엇을 궁금해하든 일일이 상대해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혹시 어제 저녁 김혜신 씨가 정확히 몇 시쯤에 출근했는지 기억하십니까?”

  만식은 기억을 되짚듯 미간을 잠시 찡그리더니 대답했다.

  “글쎄요. 아마도 5시 50분에서 55분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요. 그래도 지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6시 전이었던 건 확실합니다.”

  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식의 말이 사실이라면 혜신은 이 사건의 범인이 결코 될 수 없었다. 신고가 접수된 시각이 5시 52분이었던 점을 고려했을 때 아이들이 집에 귀가한 시간은 빨라도 5시 40분을 넘겨서였을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집 안에서 들었던 소리가 만일 혜신의 인기척이었다면, 그녀는 대략 십 분 만에 가게에 도착했다는 뜻이 됐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중간에 커피숍에 들렀다는 주장을 배제하고서라도 사건현장에서 십 분 만에 이곳까지 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실례지만 CCTV영상을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서희가 손가락으로 가게 입구를 바라보고 있는 CCTV를 가리켰다.

  “물론이죠.”

  만식은 이렇게 대답한 뒤 계산대 뒤쪽에 나 있는 자그마한 방으로 향했다. 라는 글자가 새겨진 문패가 나무로 된 문 앞에 덩그러니 붙어있었다. 그는 문을 열고 서희를 안쪽으로 들인 후 자신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서희는 옆에 서서 그가 녹화된 영상을 찾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바탕화면에 직원의 출퇴근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파일이 하나 보였다.

  “이건 어떤 방식으로 관리가 되는 겁니까?”

  서희가 물었다.

  만식은 마우스를 움직이다가 동작을 멈추고는 이내 그녀가 가리킨 파일 위로 마우스 커서를 옮겼다.

  “이거 말입니까? 이건 출퇴근한 당사자가 직접 입력하는 겁니다.”

  “직접이요?”

  “네.”

  만식은 이 상태로는 설명해주기가 어렵다는 듯 출퇴근을 관리하는 파일을 클릭했다. 그러자 바탕화면 정중앙에 네모난 박스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모난 박스 위에는 직원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을 수 있는 두 개의 공란이 있었다.

  “여기에 본인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입력하면 엑셀파일에 해당시간대가 자동으로 기록됩니다. 그걸 통해서 직원이 언제 출근했고 언제 퇴근했는지를 모두 알 수 있죠.”

  “그러면 개인이 직접 엑셀파일을 열어서 내용을 수정할 수도 있나요?”

  “아니요. 그건 저만 할 수 있습니다. 파일에 비밀번호가 걸려있거든요.”

  “그렇군요.”

  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식은 네모난 박스를 닫은 후 곧바로 몇 번의 클릭 끝에 저장된 영상들을 찾아냈다. 모든 영상들은 날짜별로 분류되어 있었다. 사건당일날짜가 적힌 폴더를 클릭하자 영상파일 세 개가 나타났다. 홀에서 봤던 두 개의 카메라 이외에도 주방 안쪽에 하나가 더 설치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이게 말씀하셨던 카메라의 영상입니다.”

  만식이 세 개의 영상들 중 첫 번째 파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가 해당 파일을 클릭하자 계산대와 함께 출입문 중 윗부분이 살짝 잘린 화면이 모니터를 가득 채우며 나타났다. 화질이 좋지는 않았지만 화면 속에 나타나는 인물들을 알아보기에는 충분했다. 동영상 속 우측 상단에는 00:00:17에서 00:00:18로 숫자들이 바뀌고 있었다. 녹화 당시의 시간대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동영상의 시간대를 뒤로 쭉 넘기더니 이윽고 어느 한 지점에서 스페이스바를 눌러 화면을 정지시켰다. 베이지색 롱패딩을 입고 있는 어떤 여자가 출입문을 열고는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중이었다.

  “여깄네요. 혜신 씨가 출근하는 장면입니다.”

  17:52:43이었다. 서희는 화면을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았음에도 영상 속 주인공이 혜신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카메라의 정면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혜신은 결백했다. 그리고 이로써 그녀의 속옷이 몽땅 사라졌다는 사실 또한 저절로 입증된 셈이었다.

  “혹시 더 필요하신 게 있나요?”

  만식이 물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눈을 힐끔 돌려 자신의 손목시계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서희는 자신이 그의 유일한 휴식시간을 빼앗고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 깨달았다. 그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속마음은 그 역시도 쉬고 싶었을 게 분명했다. 그녀가 말했다.

  “아니요, 더는 없습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희는 가게 밖으로 나왔다. 눈이 그친 하늘은 우중충하기만 했다. 길가에는 우산을 쓴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도로에는 차들이 내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소나타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맞은편 길가에 초록색 시내버스 한 대가 멈춰 섰다. 이윽고 버스가 다시 출발하자 그 자리에 조금 전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버스정류장이었다. 그 바로 앞에는 자그마한 개인 커피숍이 있었다. 간판을 올려다보니 혜신이 출근하기 직전에 들렀다는 커피숍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신호등의 불빛이 바뀌었다. 서희는 횡단보도를 건너가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을 향해 걸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혜신의 결백이 확실해진 이상 나머지 알리바이를 확인할 필요가 그녀에겐 전혀 없었다. 하지만 서희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녀는 어느새 커피숍의 문을 열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동그란 안경을 쓴 여자가 계산대 뒤에서 싱긋 웃었다. 기계적인 친절함이 섞인 작위적인 미소였다. 가게 안에는 테이블 세 개가 전부였다. 창가에 일렬로 배치된 개인좌석들까지 합해봤자 열두 명이 채 앉을 수 있을까 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고작 여섯 명이서 테이블 세 개를 몽땅 차지하고 있었다.

  서희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여자의 인사에 화답한 뒤 다시 고개를 들어 메뉴판을 올려다보았다.

  “따뜻한 라떼 한 잔이요.”

  그녀가 신용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사이즈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기본으로 주세요.”

  “매장에서 드시고 가시나요?”

  “네.”

  “준비되면 진동벨로 안내해드릴게요.”

  서희는 진동벨과 신용카드를 돌려받은 뒤 창가에 설치된 개인좌석으로 다가가 앉았다. 에스프레소 추출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계산대 안쪽에서 들려왔다. 그녀는 눈을 들어 CCTV가 설치된 위치를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계산대 제일 안쪽 구석에 카메라 한 대가 천장에 매달려있었다. 보나마나 혜신의 모습이 찍혀있을 것이라고 서희는 확신했다.

  음료가 나오길 기다리며 그녀는 사건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었다. 그녀가 경찰대에서 배운 범죄심리학에 따르면 모든 범죄에는 그 범행의 의도를 알 수 있는 퍼즐조각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고 말했다. 퍼즐조각들을 모아 그 그림을 유추하다보면, 작게는 범행의 동기와 목적에서부터 크게는 범인에 대한 윤곽까지도 파악할 수 있노라고 그녀를 가르친 범죄심리학과의 교수는 설명했다. 그 말인즉슨 같은 조건 속에서도 얼마나 빠르게 조각들을 찾아낼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적은 수의 조각만으로도 그 그림을 정확하게 유추할 수 있는지가 바로 그 사람의 실력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서희는 나름대로 대학교수들 사이에서도 범죄심리학에 관하여는 꽤나 소질이 있노라고 평가를 받았다. 비록 기초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눈썰미라든가 재치가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 매번 치명적인 단점으로 꼽히긴 했지만, 어쨌거나 적어도 조각들을 짜맞추는 능력과 추리력은 그러한 단점을 덮고도 남을 만큼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곤 했었다.

  하지만 서희는 지금 당장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사건 당일 정복 경찰관들이 현장 인근을 돌며 탐문수사를 벌였지만 얻은 소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서희는 범인의 성별조차 몰랐다. 그가 무엇을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몰랐고, 심지어는 그가 어떤 식으로 사건현장에 잠입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훼손된 피해자의 시체, 사라진 피해자의 핸드폰, 그리고 사라진 김혜신의 속옷. 이 세 가지가 나타내는 의미를 그녀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가 당장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곤 국과수로 보낸 흉기로 추정되는 식칼에서 범인을 잡을 만한 DNA나 지문이 검출되든지, 아니면 현장 인근에 설치된 CCTV영상에서 범인의 모습이 포착되든지 따위의 막연한 행운이 전부였다. 하지만 교통과의 이용균 경사는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헤어지기 직전 그녀에게 당부했었다. 사건이 발생한 동네 자체가 워낙 골목들이 얼기설기 복잡하게 엮여있는 곳인데다가 지도에도 없는 샛길들도 많아서 범인이 마음만 먹으면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고 빠져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건현장과 바로 이웃집이었던 김창수가 살던 집 사이에 난 좁다란 길만 하더라도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작은 샛길 중 하나였다. 서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진동벨이 울렸고, 픽업데스크 위에 머그잔 하나가 올라왔다. 서희는 픽업데스크 앞으로 걸어가 머그잔의 손잡이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맛있게 드세요.”

  여자는 서희가 내민 진동벨을 챙겨 원래 쌓아두던 곳에 다시 얹었다.

  “저기, 실례지만 사장님은 언제쯤 출근하세요?”

  서희가 물었다.

  여자는 하얀 행주를 들어 에스프레소 추출기 앞을 닦으려다가 동작을 멈추고 서희를 바라보았다.

  “제가 사장인데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아, 그게....... 다름이 아니라, 저쪽에 설치된 CCTV는 잘 작동하고 있는 건가 해서요.”

  서희가 눈을 들어 CCTV가 설치된 방향을 쳐다보았다.

  “네, 잘 작동해요.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

  “제가 좀 볼 수 있을까 해서요.”

  서희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신분증을 꺼내 여자에게 내밀었다. 그녀가 경찰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여자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서희를 다시 바라보았다.

  “혹시 무슨 일 때문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죄송하지만, 수사 중인 사항이라서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그래도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가게 영업에는 전혀 지장이 없도록 할게요.”

  여자는 고민에 잠긴 척 잠시 뜸을 들였다. 그녀는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정말인가요? 보시다시피 제가 혼자 일하고 있어서 시간을 많이 내드릴 수가 없어요.”

  “진심입니다. 어제 일자로 녹화된 CCTV영상만 보여주시면 됩니다.”

  여자는 다시금 입을 다물고는 대답을 잠시 망설였다. 그녀가 마침내 대답했다.

  “알겠어요.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요.”

  서희는 여자가 행주를 개수대 위에 올려둔 채 픽업데스크 뒤쪽에 나있는 탈의실 겸 사무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사무실 문을 열어두었기 때문에 여자가 컴퓨터 앞에 서서 녹화된 영상을 찾는 모습을 전부다 지켜볼 수 있었다. 서희는 여자가 왜 자신을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는지 사무실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알 것 같았다. 폭이 좁아 둘이 한꺼번에 들어가 있기에는 상당히 비좁아보였다. 이윽고 여자가 다시 밖으로 나오며 들어가서 직접 확인해보라고 서희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서희는 고개를 끄덕인 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컴퓨터 앞에는 플라스틱 간이 의자가 놓여있었다. 서희는 의자를 끌어 그 위에 앉은 뒤 모니터에 띄어진 녹화된 영상을 확인해보았다. 화면 우측 상단에는 사건 당일 날짜와 함께 ‘00:00:01’이라는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영상은 정지된 상태였다. 서희는 정지된 영상 속 시간을 돌려 오후 5시 40분 정도로 맞췄다. 동영상을 재생시키자 곧바로 화면 속에 김혜신으로 보이는 여자가 창가 쪽을 바라본 채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혜신인 듯싶었지만 뒤통수뿐이라서 확실하지는 않았다. 서희는 영상 속 시간을 10초 단위로 앞으로 돌리다가 이내 십 분을 과감히 당기고는 다시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혜신은 화면 속에 없었다. 서희는 기다렸다. 잠시 후 가게 문이 열리더니 베이지색 롱패딩을 걸친 누군가가 계산대 앞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김혜신이었다. 시간은 17:33:24였다. 크로스백을 어깨에 걸친 혜신은 메뉴판을 슬쩍 쳐다보더니 무언가를 주문하고서 창가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덕분에 다시 뒤통수만 보일 뿐이었다.

  서희는 동영상을 말없이 쳐다보며 혜신의 진술을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그녀는 서희가 조금 전에 보았던 버스정류장에 내렸을 것이다. 사건당일 혜신은 오후 5시가 조금 안돼서 출발해 이곳 정류장에 내렸고, 그러고는 바로 앞에 보이는 커피숍에 들어와 시간을 보내다가 늦지 않게 가게로 출근했다. 그녀의 진술에는 한 치의 거짓도 들어있지 않음에 분명했다.

  만식은 혜신이 보통 5시 55분쯤에 가게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는 건 평소 5시 25분쯤에 집을 비운다는 얘기였다. 사건당일은 박승현과 다툼이 있었고 그래서 평소보다 일찍 집을 비웠을 뿐이다. 원래대로라면 김혜신은 25분에 집을 비웠을 테고, 아마도 범인은 그 이후를 노렸을 것이다. 아이들이 귀가한 시각을 대략 45분 정도로 볼 때 범행에 소요된 시간은 단 20분이었다.

  20분.......

  서희는 그 순간 자신의 추리에 맹점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수없이 많은 예행연습을 했더라도 고작 20분 만에 박승현을 죽이고, 핸드폰을 훔치고,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정리한 뒤 김혜신의 속옷을 훔쳐 나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 모든 일들을 전부 수행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0분은 넘게 필요했다. 그렇다는 건 범인은 17시 25분 이후가 아니라 적어도 17시 10분에는 현장에 들어갔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17시 10분. 김혜신이 평소 집에 있어야했던 시각.

  어째서? 어째서 범인은 그 시간대에 현장에 침입할 생각을 했을까? 범인의 행적을 볼 때 이 사건은 분명 사전에 준비된 계획범죄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므로 김혜신이 평소 언제쯤 집을 비우는지 모르고 있었을 리도 없었다. 따라서 범인은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시간대에 현장에 침입하면 김혜신이 있을 걸 알고도 일을 벌인 것이다.

  서희는 눈을 번뜩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플라스틱 의자가 뒤로 고꾸라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서희는 순간 자신이 무엇을 간과하고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범인은 박승현만을 노리고 있던 게 아니다. 처음부터 김혜신까지 함께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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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가족사진 2020 / 8 / 4 225 0 2769   
4 3. 수상한 이웃 2020 / 8 / 2 223 0 8118   
3 2. 아이들의 진술 2020 / 8 / 1 243 0 7976   
2 1. 당연한 권리 2020 / 7 / 31 246 0 7438   
1 0. 프롤로그 2020 / 7 / 31 385 0 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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