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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나 혼자 목이 없다
작가 : 알레그로
작품등록일 : 2020.8.1

목 없는 기사로 되살아난 수도사 파울의 이야기.

 
4화
작성일 : 20-08-10 19:32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5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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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창날이 투구에 박히자 죽음을 확신했다. 창을 든 남자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투구가 벗겨지자 남자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의 당혹감을 마주하자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땅바닥에 쓰러졌다. 도리깨는 손아귀에서 벗어났고, 방패는 절반이 부서졌다. 힘의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이번엔 죽지 않았지만, 다음 공격은 머리가 아니라 심장을 향할 것이다.

 

  남자는 투구에서 창을 뽑아냈다. 자루에 묶인 도리깨를 풀어 다른 손에 쥐었다.

 

  나는 반쪽짜리 방패 하나만 남았고, 상대방은 양손에 무기를 들었다. 하나는 교단의 도리깨, 다른 하나는 전세계에 다섯 개뿐인 성유물 중 하나. 참담했다.

 

  “목 없는 사람은 처음 보는데.”

 

  내게 흥미가 생겼나 보다. 호기심으로 시간을 벌 수도 있겠다. 방패를 고쳐잡고 몸을 일으켰다.

 

  “내가 왜 목이 없는지 궁금해?”

 

  “마법이군. 저기 갑옷만 입은 겁쟁이가 한 짓인가?”

 

  남자가 호숫가 건너편을 가리켰다. 레몽은 갑옷 속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녀를 업신여기긴 했지만 이렇게 움츠러들 줄은 몰랐다.

 

  지금 다른 사람을 지킬 여유는 없었다. 내 목숨을 지키기에도 버거웠다. 차라리 죽기 전의 내가 그리웠다. 그때는 적어도 한 사람은 확실히 지킬 자신이 있었다.

 

  “저 사람과는 무관한 일이야. 정신 차리고 깨어나 보니 목이 허전했지. 그게 내가 아는 전부야.”

 

  남자가 창을 든 채로 깔깔 웃었다.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의 투창을 본 나로서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창을 던지는 속도가 화살을 쏘는 속도와 맞먹었다. 성유물의 힘이 아니더라도 실력이 출중한 장교임이 분명했다.

 

  악마 같은 무기가 사람 죽이는 전문가를 만났으니, 이보다 더 치명적인 궁합이 어디 있을까.

 

  “이 창이 나타난 뒤로 녹스본에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 자네도 이 창이 낳은 돌연변이인 게 분명해.”

 

  남자가 창끝으로 나를 가리켰다.

 

  “그 창으로 날 물리칠 생각인가. 재앙을 일으키는 무기로 재앙을 막겠다고?”

 

  “또 다른 재앙을 초래할 바에는, 그게 낫겠지. 적어도 상태 유지는 할 테니까.”

 

  “당신 녹스본 사람인 것 같은데, 지금 선택한 길이 반역인 것은 알고 있겠지.”

 

  남자가 창을 거두었다.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단어 선택이 잘못됐다. 내가 사용한 단어가 그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반역. 배신. 배교. 내게도 너무나 치명적인 단어였다.

 

  “목 없는 선지자 양반, 자네는 내가 원해서 이 창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나?”

 

  활시위가 당겨진 지도 몰랐다. 어느새 창은 허공을 날았고, 나는 방패 뒤에서 몸을 틀었다. 방패가 산산조각이 났다. 창날이 팔뚝을 스치며 지나갔다.

 

  피는 나오지 않았다. 파란 연기만 상처의 틈새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남자는 자취를 감췄다.

 

  무언가가 내 허리를 감쌌다. 도리깨의 사슬이 등 뒤에서 나타났다. 사슬이 칭칭 감기고 나자 갈고리가 허리에 박혔다.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었지만, 내게 어금니도 턱뼈도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목이 없어도 비명은 지르는군. 빨간 피 대신 푸른 연기라. 몸 안에 다른 것이 흐르는 걸 보니 죽여도 연민은 안 생기겠어.”

 

  허망한 죽음. 목 없는 나를 되살린 익명의 존재에게 면목이 없었다. 이십여 년 전엔 역병에서 벗어났고 이번엔 죽음에서 벗어났다. 행운이 찾아왔지만,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씻겨나갔던 안개가 다시 짙어진다. 눈앞으로 무언가 떨어져 내린다. 빗물이라고 생각했지만 틀렸다. 좀 더 차갑고 단단한 육각형. 눈의 결정.

 

  눈꽃이 땅에 닿는 순간, 거대한 얼음수정으로 타올랐다. 눈꽃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창을 든 남자의 팔다리에 수많은 얼음수정이 솟아났다.

 

  “이게 무슨...”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다. 남자는 창과 함께 차가운 불꽃 속에 얼어붙었다. 얼음 속에 성유물도 함께 전시되었다.

 

  호수의 물이 증발했다. 호숫가에 서 있던 레몽이 숨을 몰아쉬었다.

 

  어느 정도 수준의 마법사인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주문도 들리지 않았고, 마법진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한 거죠?”

 

  “시간을 벌었을 뿐이에요. 이 정도로 막을 수 있으면 성유물이 아니죠.”

 

  레몽이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힘을 많이 소진한 듯했다. 허리에서 갈고리를 빼냈다. 사슬에서 탈출해 레몽에게 다가갔다. 레몽은 지쳤는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숲속에서 병사들의 소리가 들렸다. 무기와 갑옷이 내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서 움직여야 했다.

 

  “저는 마법사라 함부로 못 죽여요. 저기 얼어붙은 창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성유물 다음 가는 표적이죠.”

 

  “좀 전의 마법을 보니, 한 대대의 병사들쯤은 아무것도 아닐 텐데.”

 

  “방금 마법은 제 능력이 아니에요. 조건이 좋아서 빌릴 수 있었던 힘이죠. 조금만 늦었어도 고드름이나 만들었을걸요.”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얼음수정이 깨지며 남자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파편들이 사방으로 퍼졌다. 소문대로 성유물은 마법이 먹히질 않았다.

 

  “마법사는 역시 마법사군.”

 

  얼음 속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남자의 상태가 썩 좋지만은 않았다. 성유물이 아니었으면 뼛속까지 얼어붙었을 것이다. 그걸 느꼈는지 그의 기세가 약간 사그라들었다.

 

  수색하는 제국군의 말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숲속으로 창을 던져 일순간 사라졌다. 얼음 파편 속에 도리깨가 남아 있었다.

 

  “포로로 살다 보면 요령이 생겨요. 내 목에 붙은 현상금을 이용해 협상하는 방법. 현상금이 붙을 목도 없는 그쪽이 훨씬 위험해요.”

 

  “내가 배은망덕한 놈은 아니야. 창을 되찾고 돌아올 거야.”

 

  “방금 보니까 처참하게 박살나던데.”

 

  레몽이 웃었다. 레몽은 나보다 강하다. 쉽게 죽지 않을 것이다. 핑계와 믿음의 치환. 나처럼 무능력한 자들의 특기였다.

 

  사제단은 이인 일조로 움직였다. 한 명은 성유물을 운반하는 키퍼, 다른 한 명은 키퍼를 지키는 가드. 나는 가드였다.

 

  목이 잘려 죽은 것을 보니, 나를 믿은 키퍼의 운명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목 없는 삶은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실수를 되풀이하려고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창을 빼앗고 레몽을 구한다. 반드시.

 

  찌그러진 투구를 뒤집어썼다. 한 번밖에 휘두르지 못하고 빼앗긴 도리깨를 집어 들었다. 그나마 남은 장비들은 패배의 증거물이었다.

 

  “또 봐요. 목이 없어서 언제든 초면일 테지만.”

 

  레몽의 꿋꿋한 농담. 나는 등을 돌렸다. 호수의 안개가 멀어졌다. 선명한 숲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뒤에서 병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레몽을 둘러싼 병사들의 갑옷이 절그럭거리는 소리.

 

  ●

 

  녹스본의 장교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가 원해서 이 창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나?’

 

  스스로 원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명령 혹은 어길 수 없는 의무라는 뜻이었다. 군대의 지휘관이니 왕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 하지만 왕이 함부로 성유물에 개입하는 일은 교단에서 미리 차단하도록 되어 있다.

 

  성유물을 운반하는 의무는 교회법에 따라 사제단의 키퍼에게만 주어진다. 키퍼는 성유물을 운반하기 위해 고된 내면 훈련을 받은 자들이다.

 

  키퍼가 죽으면 가드에게 소유권이 넘어간다. 만약 키퍼가 살아 있는데 가드가 함부로 성유물을 다루면, 교단이 엄벌로 다스린다.

 

  그만큼 철저히 통제하는 성유물의 소유권을 교단이 군대의 지휘관에게 허가했을 리는 만무했다.

 

  물론 교권의 입김이 닿지 않는다면, 성유물의 소유권 논쟁은 탁상공론이었다. 지금 당장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 바로 성유물의 소유자였다.

 

  물론 누가 주인이고 누가 하인인지는 그것을 들어본 사람만 알 것이다.

 

  탄틸루스의 창은 자신의 흔적을 많이 남기지만, 추적자에게 큰 의미는 없었다. 아무리 걷고 뛰어도, 아무리 빠른 말을 타고 달려도, 창이 날아가는 속도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소유자는 창의 위치로 언제든 이동할 수 있었다. 좀 전에 치른 전투에서 확인했다. 소유자에게 ‘창그림자’라는 별명이 달리는 이유를 뼈저리게 알았다.

 

  숲길이 끊어졌다. 창을 찾으려는 마음이 급하다 보니 앞길을 헤아리지 못했다. 녹스본의 늪지대를 건너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 했다. 그렇다고 늪지대를 피해 돌아가면 창의 행방을 놓칠 것이다.

 

  수면에 발을 담가보았다. 물 위를 뒤덮은 녹색 이끼들이 물결을 따라 흔들거렸다.

 

  “내가 돌아가자고 했지.”

 

  늪지대 건너편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하반신이 잠긴 두 명의 장정이 늪지대를 건너고 있었다. 길을 잘못 든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선두의 남자는 흙탕물로 얼룩진 갑옷을 입고 있었다. 뒤따르는 남자의 옷차림도 꼴이 아니었다.

 

  갑옷이 검집에서 칼을 빼 들었다. 칼날에 찌꺼기들이 걸려서 나왔다. 갑옷이 칼을 흔들며 찌꺼기를 털어 냈다.

 

  “누구냐? 이그리스? 녹스본?”

 

  “아니. 난 어느 쪽도 아니야. 그나저나 당신들 여기는 맨몸으로 건널만한 곳이 아닌데.”

 

  뒤따르는 남자가 속닥였다. 내가 들고 있는 무기를 가리켰다. 표정들이 심각해졌다. 그들은 지금 나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빨리 늪지대를 건너는 게 급선무였다.

 

  “그 무기 어디서 났지? 너 같은 날파리가 쓸만한 무기가 아니야.”

 

  “이 무기에 대해서 아나?”

 

  “사제단의 가드에게 걸맞은 성스러운 무기라고. 너 따위가 감히…….”

 

  갑옷을 입은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수면 아래에 무언가 있었다. 가라앉은 남자가 칼을 휘둘렀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허우적대는 남자의 팔과 괴수의 꼬리가 교차해서 보였다. 사방으로 튀는 물의 색이 점점 붉어졌다.

 

  뒤에 있던 남자는 질색한 얼굴로 굳어버렸다. 나는 도리깨를 휘둘러 갈고리를 늪지대에 던졌다.

 

  남자가 갈고리를 잡자마자 사슬을 끌어당겼다. 갈고리에 찔린 상처가 아려 왔지만 온 힘을 다해야 했다. 식사를 벌써 끝냈는지 수면이 잠잠해졌다.

 

  괴수의 등껍질이 물길을 갈랐다. 죽음이 임박하자 남자의 몸이 본능적으로 발악하기 시작했다. 온 힘을 다해 물장구를 쳤지만 속도가 붙진 않았다.

 

  뭍에 거의 도착했다. 갈고리를 끌어당기기 위해 체중을 더해야 했다. 등 뒤로 넘어지자, 남자가 허둥지둥 기어서 내 옆으로 쓰러졌다.

 

  악어가 입을 벌리며 나타났으나 다행히 뭍으로 올라오진 않았다. 아래턱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입가에 걸린 토막 난 팔은 여전히 칼을 들고 있었다.

 

  “안 돼. 가드가 죽었어.”

 

  숨을 몰아쉬었다.

 

  “당신 사제단인가?”

 

  “내가 죽으면 모든 게 끝이야.”

 

  “진정해. 진정하고 말해.”

 

  정신이 나간 듯 동공에 초점이 없었다. 뺨을 때려도 이끼와 구정물만 토해냈다. 사제라면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지금 수도원의 상황이 어떤지부터, 녹스본에 무슨 바람이 불고 있는지까지.

  일단 안심부터 시켜야 했다.

 

  “괜찮아. 이제 내가 가드니까.”

 

  키퍼는 며칠을 굶었는지 볼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살가죽이 싸고 있는 해골처럼 보였다. 그가 내 눈을 마주쳤다.

 

  “이제 우릴 지켜줄 곳은 없어.”

 

  최악의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교권과 왕권의 균형이 무너졌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성유물의 소유권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당신 어디에서 왔지?”

 

  제발 그곳만은 아니기를.

 

  남자의 대답은 브리즈 수도원이었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격주로 꾸준히 업로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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