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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아포칼립스
작가 : 글여행
작품등록일 : 2020.7.31

지구의 멸망은 내가 편집했다

 
이 구역의 미친놈 (1)
작성일 : 20-08-10 00:39     조회 : 279     추천 : 0     분량 : 5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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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구역의 미친놈 (1)

 

 자주 테이크아웃했던 횟집에서 파티를 모집했다. 저기 광어 맛있는데, 매운탕은 별로지만.

 

 [만렙발컨 : 탱커입니다. 3분 안에 갑니다.]

 [밥심 : 아, 한발 늦었네. 탱커가 파티원 찾습니다.]

 

 창고에서 나선 나는 비닐봉투에 먹을 걸 쓸어담았다. 시기가 이러니 아무나 믿을 수 없을 테고, 먹을 걸 나눠주면 아무래도 좀 낫겠지.

 타악.

 가기 전에 일단 콜라부터 마시고.

 꿀꺽꿀꺽.

 

 ****

 

 “안녕하세요. 만렙발컨입니다.”

 현실에서 닉을 말하려니 뻘쭘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횟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옅은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아, 누군가 했더니 단골 청년이네. 어서 와.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앞치마를 하고 의자에 앉아있던 횟집 사장이 일어났는데, 저 험상궂은 얼굴로 장사를 어떻게 했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평소에는 항상 웃으며 일해서 그렇게 안 보였나?

 “혹시나 해서 여기 먹을 거 좀 들고왔습니다.”

 내가 음식이 가득 담긴 편의점 봉투를 건네자.

 “하하, 잘됐네. 안 그래도 여긴 회밖이라 나중엔 마트라도 털어야 하나 싶었는데.”

 그제야 웃으며 봉투를 받아든다.

 힐끗 사장 뒤쪽에 앉아있는 여성을 보았는데, 이쪽은 보지도 않고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는 게 울고 있는 건지...

 ‘처음 보는데 누구지? 여기 알바는 남자였고.’

 사장이 내가 그녀를 보는 걸 눈치챘는지 나에게 소개했다.

 “아, 여긴 내 딸. 힐러지. 대단하지 않아? 힐 같은 걸 현실에서 쓸 수 있다니. 힐 스킬 보여줄테니 잠시 있어 봐.”

 사장은 딸을 불렀지만, 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가까이 다가가.

 쾅!

 식탁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아, 짜증 나게 계속 짜지 말고 빨리 스킬 써봐.”

 눈앞으로 떨어져 내린 두꺼운 손에 움찔거린 딸이 일어나며 웅얼거렸다. 고개는 여전히 돌린 채였다.

 화악!

 한순간 내 주변이 밝아졌다.

 성역의 빛이 반딧불이라면 이건 전구를 보는 듯 밝기가 약하다.

 깜박거린 것처럼 빛이 내 몸을 휩쓸고 사라지자, 횟집 사장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어때 확실하지? 그럼 자네도 스킬을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키 크기는 비슷했지만, 덩치 차이로 인해 사장에게서 위압감이 느껴졌다.

 “잠시만요.”

 강화 스킬을 쓰자 손에 쥐고 있는 배트에 빛이 감돌다 사라졌다.

 “강화 스킬입니다.”

 “다른 건 패시븐가? 그 정도면 그냥 딜러나 마찬가진데...”

 그가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자.

 “그럴 리가요.”

 피식 웃으며, 성역을 시전했다.

 그러자 내 몸 전체를 살짝 감싸는 옅은 빛이 생겨났다.

 성역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완벽한 형태를 보여줬다.

 “[육체 강화] 스킬입니다. 황금 스킬로 신체 능력과 각종 저항을 올려주죠.”

 미래 탱커들이 필수 조건으로 여기는 스킬 이름을 말했다. 보이는 형태는 비슷했으니 거짓말을 들킬 염려는 없었다.

 “오호, 그게 말로 듣던 황금 스킬인가?”

 내 말에 사장의 눈이 빛났다.

 “하하, 좋아, 좋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는데, 사냥을 가기 전에 회라도 먹고 가는 건 어때? 아직 저녁 안 먹었으면 말이야. 앞으로 회는 먹기도 힘들텐데 말이지.”

 그의 말대로였다. 앞으로는 정상적인 횟감은 한 점도 먹기 힘들겠지.

 당장 사냥을 가고 싶었지만, 채널창을 보니 역시나 힐러가 귀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힐러를 새로 찾기보다 그냥 빨리 회를 먹는 게 남는 장사인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참돔도 가능한가요?”

 평소에 잘 못 먹던 걸 주문하자,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금방 준비할 테니 방 안에 들어가 있게. 넌 상 차리고.”

 방으로 들어가 방석을 깔고 앉자 긴장이 풀렸다.

 배트를 어찌나 꽉 쥐고 있었는지 배트를 내려놓자 손에 쥐가 날 정도였다.

 ‘휴우, 앞으로는 이렇게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는 것도 사치겠지.’

 저녁에 혼자서 느긋하게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소설과 야구를 보는 게 낙이었는데.

 공룡 구단은 올해가 우승 찬스였는데, 결국 못하고 끝나버렸네.

 낙동강 라이벌 구단 팬인 친구를 평생 놀려먹을 수 있었는데 아쉽게 됐어.

 안타까움에 홀로 울분을 삼키고 있을 때, 발소리와 함께 딸이 방으로 올라와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혼자 가만히 있기 뻘쭘해서 자리에 수저를 놓고 회를 기다렸다.

 “자, 왔다.”

 잠시 후, 방에 들어온 사장이 횟감으로 가득 찬 그릇을 상에 놓으며.

 “너는 소주 두 병 좀 가져와.”

 옆에 앉은 딸에게 고갯짓했다.

 맞은편에 앉은 사장이 나에게 잔을 건네며 말했다.

 “한잔하는 건 괜찮겠지? 술이 당기네.”

 “예.”

 술을 그렇게 즐기진 않아서 내키진 않았지만, 잔을 받아 상에 내려놓았다.

 도미를 한 점 들어 초장에 찍어 입에 넣으니 쫄깃한 게 맛이 그만이다.

 경남 입맛이라 간장에 와사비 조합보단 초장과 쌈장이 딱이었다.

 한 점을 먹고 나니 소주를 가져온 딸이 소주를 상에 내려놓고 앉으려했는데.

 탁.

 손으로 바닥을 내려친 사장이 입을 열었다.

 “넌 오늘 주연인 탱커 청년 옆으로 가서 술을 따라.”

 순간 헛소리를 들었나 싶었지만.

 반복하며 손을 드는 사장의 모습을 보니 제대로 들은 게 맞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내 옆에 앉는 걸 보니 기분이 꿀꿀해졌다.

 “하하, 미녀가 술을 따르면 더 맛있지. 안 그래?”

 난 쓴웃음을 지으며 잔을 들어 딸이 따라주는 술을 받았다.

 “자, 건배하자.”

 짠.

 술을 원샷하곤 잔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소주가 평소보다 더 쓰게 느껴졌다.

 쓴맛을 지워내기 위해 도미를 입에 넣었지만, 아까 같은 맛이 나지 않고 퍽퍽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니 절로 젓가락질도 느려졌다.

 몇 점 더 먹다 젓가락을 내려놓으니 사장도 젓가락을 놓으며 나를 바라봤다.

 “음, 입맛이 없네요. 이만 사냥을 가는 게 어떨까요?”

 “술이 아쉬운데...”

 그 말과 함께 사장은 반 병 정도 남은 소주를 병째로 들이켰다.

 꿀꺽꿀꺽.

 “캬, 이렇게 좋은 걸 앞으론 잘 못 먹겠지.”

 사장이 불콰해진 얼굴로 나와 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자네, 내 딸이 별로 안 이뻐? 저 녀석이 숙맥이긴 하지만 그래도 얼굴은 주변에서 꽤 알아주는데 말이야. 애가 너무 뻣뻣해서 꼴리지 않나 보지?”

 “아, 그, 그게 아니라...”

 어이가 없는 물음에 처음으로 당황해버렸다.

 “큭, 그러면 그렇지. 그나저나 사냥 가기 전에 정해야 할 게 하나 있지 않나?”

 “그게 무엇이죠?”

 잠시 뜸을 드리던 사장이 입을 열었다.

 “흠흠... 카드가 잘 안 나오지? 그러니 분배 비율을 정해야 하지 않겠어?”

 “아, 그거야 인원 수대로 3 대 1로 하면 되겠죠.”

 당연한 거라 빠르게 답이 나왔다.

 “아니, 그건 아니지.”

 ‘아니, 뭐가 아니야?’

 속으론 당황했지만, 진정했다.

 “어떻게 하길 원하시나요?”

 “크흠, 내가 파티장이니 반을 갖고 자네는 남은 거에서 반을 가졌으면 하는데.”

 ‘뭐? 4분의 1만 가지라고?’

 어이가 없어서 배트를 쥐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건 안 되겠네요.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단호하게 말하자 사장도 당황했는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말렸다.

 “아니, 그렇게 성급하게 결정할 필욘 없지 않아? 그럼 이 조건은 어때?”

 내 손을 끌어 자리에 다시 앉힌 사장이 딸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 딸이 자네가 봤을 땐 어때? 이쁜가?”

 또 뭘 하려는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어려 보이는 게 애 같았지만, 청순한 게 객관적으론 이쁘긴 했다.

 근데 이런 상황에 이쁜 게 뭐가 필요한가. 생존에 도움 되는 게 더 중요하지.

 “예, 그렇네요.”

 최근 들어 초식남처럼 여성에게 성적인 관심이 사라진 지 오래라 퉁명스럽게 내뱉었는데.

 그 모습이 사장의 눈엔 불만족스럽게 다가왔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으음, 벗겨 보면 자네도 만족할 거야. 내가 말한 조건에 더해서 사냥을 마치고 오면 내 딸을 한 번 먹게 해주지.”

 사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게 뭔 개소리야?’라는 음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게 무슨?”

 내가 내켜 하지 않자, 사장이 빠르게 덧붙여 말했다.

 “하하, 자네도 만족할 거야. 애가 아직 전인미답이란 말이지. 보통 남자들은 경험해보지 못하는 거란 말이야.”

 상황이 이 지경이 된다고 해도 보통 이렇게 쉽게 사람이 망가지나?

 내가 가만히 있자 사장이 달아올랐는지 딸 옆에 가 옷 위로 그녀의 몸을 세게 움켜쥐었다.

 “아악!”

 “가만히 있어! 이게 어디서 앙탈을 부려? 자, 보게. 헐렁한 옷 때문에 안 보였지, 한 번 만져보면 자네도 만족할 거야. 한 번 하는데 카드 열 장 정도로 싸게 해주지. 어떤가? 안에다 싸도 문제없어.”

 아니, 그냥 원래도 쓰레기여서 이제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사냥도, 저 여성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겠지.

 “좋습니다. 빨리 사냥을 끝내고 오고 싶네요.”

 “그래, 이 몸을 보고도 꼴리지 않으면 사내가 아니지. 하하.”

 사장은 울고 있는 딸을 일으켜 세웠다.

 “먼저 나가 있겠습니다.”

 “그래, 옷을 갈아입고 가지.”

 

 툭. 툭.

 배트로 인도를 두드리며 기다리고 있자, 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빨간 명찰이 인상적인 해병대 복장이었다.

 사장은 양손에 길쭉한 사시미를 들고 있었는데, 광포화를 쓰지 않으면 날카로운 칼날에 손쉽게 목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 뒤로는 검정 티에 청바지를 입은 딸이 보였는데, 그녀는 양손에 기다란 대걸레의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저걸 휘두를 수나 있으려나? 제대로 맞으면 엉덩이가 멍들 정도로 아프긴 하지만.’

 160 초반 정도의 키에 나무 막대를 들고 있으니 오히려 막대에 매달린 것만 같았다.

 ‘뭐, 알아서 하겠지.’

 “그럼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의문을 지워낸 나는 자전거를 끌고 앞장섰다.

 목표 지점은 지금 한창 채널창에서 난리인 사거리 쪽이었다.

 사냥터로 향하는 길.

 3인칭으로 바꿔 채널창을 보며 걸으니 심심할 일이 없었다.

 

 [다리미인 : 귀염귀염한 천상여자도 들어왔어용. 우리 여장사랑 길드에 들어올 여장러와 딜탱 맡을 상남자들은 사거리 전 정비소 주차장으로 와여.]

 

 BL만큼 TS도 좋아하는 사람이 꽤 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이렇게 보니 충격이었다.

 예전에 게시판에서 그놈(?)의 섹시한 몸매에 낚인 남자들이 여럿 자신의 성정체성을 의심했지.

 

 [동네백수 : 우웩! 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

 [황금가면 : ㄴ 이번엔 미투. 좀비 잡을 파티원 더 모집중. 사펑 피시방으로 오셈.]

 [소잡는칼 : 고기팟에서 좀비 레이드하실 분 모집중. 인원제한 없음. 원하는 사람은 행신정육점으로. 현재 5명 대기중.]

 [필라강사 : GT헬스장 인원도 저희 운동 파티와 합쳤습니다. 운동 하나라도 하고 있는 게 있는 분은 휴먼 아파트 앞 햇살공원으로 오세요. 가장 강한 파티에서 함께하세요.]

 

 글들을 보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파티들을 모집하고 있는 장소가 머지않았다.

 사거리 앞에 있는 대형마트 근처는 좀비들이 장난 아니겠지.

 마감세일 시간에다 근처 술집에 있는 사람들은 다 마트로 향했을 테니.

 

 [솥뚜껑 고깃집]

 

 순간 눈에 띄는 가게가 보여 멈춰섰다.

 다시 1인칭시점으로 변경한 뒤에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 가게에서 필요한 게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어, 빨리 와. 보니 곧 다른 이들이 사냥을 시작할 것 같으니까.”

 

 가게는 붉이 밝혀져 있었지만, 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지럽혀져 있는 걸 보니까 좀비가 되기 전에 모두 도망친 듯했다.

 창고에 들어가 보니 음료와 술 박스들은 거의 비어있었다.

 주인과 손님들이 싹 쓸어간 것 같아, 구석에 자전거와 배낭을 숨겨두고 나왔다.

 좀비 떼에 들어가기에는 야구 배트 하나론 부족했다.

 주방으로 들어가 보니 세척이 되어 있는 솥뚜껑이 보였다.

 무쇠 솥뚜껑 정도면 현재 상황에서 방패로 쓰기에 가장 적절하겠지.

 오른팔 하나로 솥뚜껑을 들어보니 무게가 꽤나 나가 이걸 들고 휘두르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광포화가 없었으면 꿈도 못 꿨겠지.

 휭-휭-.

 거인의 광포화를 쓰자 말자 손쉽게 휘둘렀다.

 만족한 나는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향했다.

 “오, 솥뚜껑이라니. 안 무거워?”

 “가뿐하죠.”

 솥뚜껑을 휘둘러 보이자 사장이 만족했다.

 “대단하군. 앞으로 걱정 없겠어.”

 고개를 끄덕인 사장이 웅얼거리자 푸른빛이 양 사시미에 감돌다 사라졌는데, 절삭력을 올리는 1등급 스킬인 [날카롭게]였다.

 쉭-쉭-.

 쌍수 단검술을 잠시 선보였는데, 현란하고 재빨랐다. 광포화를 쓴 내 눈에는 동선이 완벽히 보였지만.

 “대단하시네요.”

 “우리 앞으로 오래 함께하자고.”

 빈말에 빈말로 대답하는 사장이었다.

 아, 혹시 모르겠네. 단물까지 빨아먹을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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