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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오늘부터 가정교사입니다
작가 : 어린비
작품등록일 : 2020.8.1

유치원 선생님 감은아.

그녀는 어느 사건으로 인해 선생님을 그만두게 되고, 백수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불행한 일은 왜 한꺼번에 일어나는 걸까.

취직도 안 되고, 집주인이 월세를 올린 덕에 집까지 잃게 된 그녀.

그렇게 하루하루 걱정 속에 살고 있는 그녀에게 내밀어진 구원의 손길.

"저희 조카의 가정교사가 되어주실래요?"

담임이었던 시왕의 보호자 서천이 그녀를 고용하고, 얼떨결에 은아는 시왕의 가정교사가 된다.

하지만 까칠한 애늙은이 시왕을 가르치는 일이란 쉽지 않은데…

거기다가 어쩐지 이들이 수상하다?!

과연 은아는 제대로 된 가정교사가 될 수 있을까?

 
16화. 그들만의 세상(3)
작성일 : 20-08-09 23:47     조회 : 198     추천 : 0     분량 : 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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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아의 말에 여인의 눈이 은아를 곧장 향했다. 간드러지게 올라간 여인의 입 꼬리에 흥미가 엿보였다.

 

 

 “인간?”

 

 깨진 유리처럼 뾰족한 목소리였다. 그 덕에 은아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마주친 여인의 눈동자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게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은아의 눈을 옭아매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은아는 점차 등골에 식은땀이 고여 갔다.

 

 

 “인간이 왜 여기 있지?”

 

 화살촉 같은 말씨가 마치 은아의 귀를 긁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쩐지 귓속이 따끔거리고 속이 울렁거려 다리가 후들거렸다.

 

 

 휘익-

 

 때마침 앞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커다란 등이 어느새 은아의 몸을 가려주었다.

 

 

 ‘가… 가까워…!’

 

 최대한 은아에게 자신의 몸을 밀착한 서천 덕분에 은아는 심장이 쿵 떨어졌다. 서천만의 특유의 향기가 후각을 자극했다. 그래서 방금과는 다른 의미로 몸이 떨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뭐… 뭐야? 뭔데?’

 

 은아의 어지러운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지 서천은 눈앞에 있는 여인을 내려다보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가게 개점 시간이 되려면 한 시진(時辰)이나 남았습니다. 그 후에 찾아와주시면 정성껏 상담해드릴 터이니 후에 방문해드릴 것을 부탁드립니다.”

 

 나직한 목소리가 정중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차마 거스를 수 없는 위엄도 느껴졌다.

 

 

 “알고 있다. 허나 어쩌겠는가? 내가 급한걸.”

 

 여인의 말씨에 비소가 가득했다. 서천은 말없이 질긴 시선을 여인에게 던졌다.

 

 

 “네가 그리 용하다면서? 당장 내 상태를 봐주게. 지금 당장.”

 

 뭐, 저런 진상이 다 있어?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은아는 본인이 더 열이 받을 지경이었다. 뭐라도 한 마디 하려고 은아가 나서기 위해 움찔하자 서천이 더 단단히 그녀를 가렸다.

 

 

 “… 개점 시간은 한 시진 뒤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태연한 목소리가 여전했다. 그가 끄떡없자 여인은 이맛살을 구겼다. 곧 그녀의 주위로 고오오- 오한이 드는 오라가 차츰 일렁였다.

 

 

 “콧대 한 번 높구나.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피식- 여인의 서슬 퍼런 협박에 화답하듯 서천이 피식- 작게 웃음을 흘렸다.

 

 

 “이런… 이 지역에 온 지 얼마 안 되셨나 봅니다.”

 

 가늘게 휜 눈이 늘 그렇듯 상냥한 표정이었지만, 꼭 여인의 협박이 가소롭다는 투로 들렸다.

 

 

 “뭐라…?”

 

 역시 여인은 불쾌한지 그녀의 주변의 오라가 더욱 짙어졌다.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여인이 혀를 차자, 칠흑 같았던 눈동자도 점차 검붉은 빛깔로 물들었다. 거기다가 차츰 여인의 눈가에서 새어나오는 저것은…

 

 ‘피…?’

 

 흠칫- 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피 눈물 뿐만이 아니었다.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핏물이 여인의 손끝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하얀 소복이 갈수록 붉은 핏빛으로 번져갔다. 은아는 저도 모르게 헉- 숨을 들이켰다. 흔들리는 동공 너머로 끔찍한 기억 하나가 스물 스물 기어 나왔다.

 

 

 피로 얼룩진 바닥. 피를 뒤집어 쓴 얼굴. 끈적하게 따라붙는 피 비린내.

 

 

 ‘은… 아야… 도… 망… 가…’

 

 기억 너머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고장 난 테이프처럼 길게 늘어졌다.

 

 

 “우욱-”

 

 은아가 한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꼭 겨울의 칼바람을 쐬듯 숨 막히는 냉기가 밀려들어왔다. 떠올리기 싫은 그날의 감정이 그녀의 살갗을 에는 듯했다. 마치 눈앞의 여인이 그녀의 불행한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은아 씨? 괜찮아요?”

 

 서천이 급히 은아를 살폈다. 어깨를 쥔 그의 손바닥으로 바들거리는 은아의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서천의 낯에 당혹이 서렸다.

 

 

 이거 야단났군… 피눈물을 흘리는 여인의 작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은 융통성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은아를 여기서 빠져나가게 해야 하는데…

 

 ‘이 이상은 위험해.’

 

 서천이 어떻게든 수를 쓰기 위해 입을 벙긋거렸을 때였다.

 

 

 스윽- 누군가가 은아의 손을 맞잡았다. 작고 앙증맞은 손이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뜨거웠다.

 

 

 “선생님.”

 

 그녀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은아가 삐걱거리는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언제 온 건지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는 시왕이 보였다.

 

 

 “가요.”

 

 힘 있는 음성에 은아의 눈물고인 눈이 동그래졌다.

 

 

 “시… 왕아…?”

 

 퍼뜩 정신이 들었다.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손 안으로 시왕의 기운이 흘러들어온 것만 같았다. 그 따뜻한 기운은 피처럼 온 몸을 돌고 돌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래서 갑자기 모든 게 괜찮아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요, 선생님.”

 

 시왕이 다시 한 번 더 단호하게 말했다. 뭔가 화난 것 같은 말씨였으나 그녀를 향한 눈동자만큼은 걱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은아는 톡- 떨어지는 눈물을 감출 새도 없이 입을 꾸욱 다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요 7살짜리 꼬마 아이의 손이 이토록 듬직할 수가 없었다.

 

 

 시왕이 이내 여인을 흘끗 바라보더니 서천을 향해 매서운 시선을 쏘았다.

 

 

 “… 해결할 수 있지?”

 

 서천이 은근히 긴장한 낯빛으로 눈짓을 했다. 시왕은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다시 한 번 여인을 올려다봤다.

 

 

 “어이, 친구 없어? 주변에 좀 물어보고 다녀.”

 

 존재에 상관없이 일관적으로 시니컬한 그였다.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 더 분을 누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여인의 서릿발 같은 오라가 시왕에게로 화악 다가갔으나, 그것은 시왕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고 근처에서 뿌옇게 흩어졌다. 시왕의 앞에 방어막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너… 오늘부로 살기 팍팍해질 거다.”

 

 시왕이 쯧- 혀를 차더니 은아를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손을 이끌었다.

 

 

 “서점에 가기로 했잖아요. 이러다 늦겠어요.”

 “어…? 어…!”

 

 시왕의 종종 걸음에 맞춰 은아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이대로 보낼 것 같으냐?”

 

 여인이 화르르 노기를 뿜어내자 긴 머리카락이 공중에서 나풀거렸다. 이어 그녀의 손이 은아에게로 곧장 향했지만 채 은아의 몸에는 닿지 못했다.

 

 

 “… 꺼져.”

 

 탁- 시왕의 반대편 손이 재빨리 여인의 팔목을 잡았다. 맹수와 같은 살기가 시왕의 악문 잇새로 터져 나왔다. 어찌나 힘이 센지 힘을 준 여인의 손목이 부들거릴 정도였다. 그녀의 피가 시왕의 손목을 타고 흘렀다.

 

 

 툭- 툭-

 

 순간적인 침묵 속에 피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만 들려왔다.

 

 

 시왕은 분노에 치를 떠는 여인을 무심하게 쏘아본 뒤, 잡고 있던 손을 내팽개쳤다. 이윽고 빠른 걸음으로 은아와 출구 밖으로 빠져나가는 그였다.

 

 

 “이것들이…!”

 

 여인이 그들의 뒤를 따라가기 위해 움직이자 서천이 재빨리 그 앞을 막아섰다.

 

 

 “이만 물러가면 오늘의 무례함은 잊어드리겠습니다.”

 “뭐라?”

 

 여인이 상황파악도 못하고 쨍한 말씨를 내뱉자 서천의 표정이 순식간에 무서워졌다. 그동안 그에게서 볼 수 없었던 살벌한 기운이 눈매를 날카롭게 만들었다.

 

 

 “아니, 다시 말씀드리죠. 앞으로도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싶다면 이만 물러가셔야 할 겁니다.”

 

 서늘한 경고에 여인이 멈칫했다. 거역할 수 없는 확신이 대놓고 서려있었다.

 

 

 한편, 상점을 빠져나온 은아는 시왕에게 이끌려 거의 경보를 하다시피 걸었다.

 

 

 “시왕아…?”

 

 아까부터 시왕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집을 향해 걸어가는 데만 집중했다. 조그만 게 힘은 또 어찌나 센지 도무지 손도 뿌리칠 수 없었다.

 

 

 “최시왕!”

 

 그제야 시왕이 자리에서 우뚝 멈췄다. 이어 그는 한숨을 푸욱 내쉬더니 은아를 향해 몸을 홱 돌렸다.

 

 

 “선생님은 정말 대책이 없어요.”

 

 찌릿 노려보는 눈매가 야생 고양이처럼 매서웠다. 어? 혼이 난 은아는 어리둥절해졌다.

 

 

 “삼촌 가게에는 왜 따라갔어요? 무슨 가게인줄 알고?”

 “아니, 난… 서천 씨가 구경해도 괜찮다고…”

 “거기다 그렇게 이상한 여자를 보면 바로 도망쳐야죠, 괴롭히는 걸 굳이 다 당하고 있어요? 네?”

 

 은아의 대답은 들을 생각도 없는지 시왕이 와다다 쏘아붙였다. 은아는 자신이 그렇게까지 잘못했나 싶어 기가 죽었다.

 

 

 “이렇게 될 줄 내가 안 것도 아니고… 나한테 왜 그래…”

 

 은아가 시무룩하게 입술을 비죽이자 시왕은 더 잔소리를 하려다가 마지못해 삼켰다. 입술을 앙 다문 그는 이윽고 은아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대충 손짓을 했다.

 

 

 “잠깐 고개 좀 숙여 봐요.”

 “응?”

 

 은아가 영문을 몰라 하자 시왕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이 저었다. 은아는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순한 어린 양처럼 그를 향해 엉거주춤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시왕은 날카로운 눈으로 은아의 얼굴을 매우 꼼꼼히 살폈다. 그러곤 아직 그녀의 이마에 매달려 있는 식은땀을 손등으로 스윽- 훑어주었다. 뜻하지 않은 손길에 놀란 은아는 그대로 눈만 동그랗게 뜬 채 굳어버렸다.

 

 

 “… 앞으로는 도망가는 거예요, 알았죠?”

 “어…? 으, 응…”

 

 묘하게 바뀐 역할에 은아는 머쓱해져 손가락만 꼼질거렸다. 곧 시왕은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등을 홱 돌려 걸어갔다.

 

 

 그러나 앞을 향한 시왕의 미간이 잔뜩 찡그려져 있는 것을 은아는 알지 못했다. 그는 아까 은아에게 덤비는 여인을 막았던 손을 말아 쥐었다. 저릿한 고통이 그의 팔에 여운으로 남아있었다. 손등으로 튀어나온 힘줄이 울룩불룩 아우성쳤다.

 

 

 ‘젠장…’

 

 시왕이 속으로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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