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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2_9
작성일 : 16-10-18 12:31     조회 : 427     추천 : 3     분량 : 5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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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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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그였지만 내가 말을 안 해줬으니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핑계를 대는 건 쉬웠고 거짓말은 더 쉬웠다. 그가 왜 이렇게 집에 늦게 들어왔느냐고 할 땐 학교에서 실기평가 연습을 했다고 했다. 가끔씩은 예쁜 필통과 필기구들에 관심을 보이며 어디서 났느냐고 하면 친구가 줬다 그러거나 주웠다고 했다. 선수를 치기도 했다. 집에 들어가면서부터 “학비 낼 때 됐는데.” 하면, 그는 지금이 몇 시 인지, 책꽂이에 책이 느는지 주는지 따위에 관심을 가질 틈이 없이, 다시 들고 있던 벼룩시장을 펄럭이며 공치는 날 돈 벌 부업거리를 찾았다.

 

 사거리에 있던 제법 큰 동네 마트였다. 전에도 초콜릿이나 작은 과자 따위를 훔친 적이 두세 번 있었던 곳이었다. 들어갈 때부터 직원들이 날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지만 도둑질하러 가게를 들어갈 때 늘 드는 기분이라 애써 무시했다.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초코바 하나를 주머니에 넣었고 밖으로 유유히 걸어나가다가 사장으로 보이는 한 아저씨한테 제지를 당했다. 언젠가는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일이었다. 어쩌면 마음 한 편으로는 일어나길 바랐는지도 몰랐다. 그래서인지 희한하게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항상 긴장돼있던 어깨도 축 처지고 편해졌다.

 

 사장은 머리가 조금 벗어져서 그렇지 얼굴은 사십이 채 안 되어 보였다. 몸이 다부지고 팔뚝이 그의 허벅지보다 훨씬 굵은 게 왕년에 운동 꽤나 했거나 사람 꽤나 치고 다녔을 법한 인상이었다. 그 팔로 한 대 맞으면 바로 나가떨어질 것 같아 겁이 났다. 교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신분을 숨길 수 없었다. “이런 짓을 하려면 이름표를 떼고 하던가.” 모범적으로 달려있는 내 이름표를 가리키며 사장이 말했다. 하마터면 ‘그러게요.’라고 대답할 뻔했다. “예쁘장하게 생긴 애가 왜 이런 짓을 해?” 내가 도둑질 못 할 정도로 예쁜 얼굴이 아닌데. 그리고 못생긴 사람만 도둑질하란 법 있나요? 소년원 가면 못생긴 애들만 있나요? 소년원에 있는 애들은 다 가난하겠지? 학교는 다니려나? 검정고시를 보나? 검정고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학원 다녀야 잘 보는 실기평가도 없고.

 

 몇 학년 몇 반인지 묻는 말에 꼬박꼬박 사실대로 대답해줬다. “집 전화번호가 뭐야?” “우리 집에 전화 없는데요.” 하자 사장이 거짓말인 줄 알고 인상을 찌푸린다. 그의 핸드폰 번호를 물어봤으면 순순히 대답했을 텐데 하필 집 전화번호를 물어봐서. “진짜예요. 이사할 때 아빠가 돈도 없고 전화 올 일도 없다면서 안 해가지고.” 쓸데없이 울음이 났다. 사장이 화를 조금 누그러트리고 억지로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아빠 뭐하시는데?” “트럭운전이요.” “엄마는?” “죽었어요.” 사장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반신반의하는 표정이다. “아빠가 싫다고 죽었어요. 작년에.”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엄마의 자살을 이야기한 순간이었다. 말하고 나서도 내가 한 말이 신기해 되뇌어봤다. 엄마는 아빠가 싫다고 죽었다. 유서에 그렇게 쓰인 건 아니었지만, 생활고나 가정불화는 다 그에서 비롯된 거니, 적어도 신문에 실린 기사대로라면 엄마는 아빠가 싫다고 죽은 게 맞는 것 같긴 했다.

 

 “진짜로?” 나도 진짜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신문에도 났으니까 확인해 봐요. “네.” 사장이 나를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애 보듯이 쳐다봤다. 동시에 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가 됐다. 사장은 교복이 잘 사는 동네 교복이라서 부모를 불러 500원의 5000배는 물어내라고 하려고 했는데 왜 하필 애미 없는 자식이냐며 짜증스런 욕을 섞어가며 한참이나 투덜댔다. 내가 “죄송합니다.” 했더니 “애미 없는 게 니 잘못이냐?” 하며 크게 화를 냈다. 내 잘못일 수도 있어요. 나만 아니었으면 엄만 그와 결혼을 서두르지 않았겠죠. 그래도 날 만들 짓을 한 건 엄마니까 엄마 잘못이 더 크긴 하네요.

 

 “배고파서 훔쳤냐?” 배가 고프긴 했지만 그 초코바 하나 못 먹으면 죽을 만큼 급한 건 아니었는데. 그냥 ‘네.’라고 해야 불쌍하게 여기고 경찰에 신고를 안 할까? 그래도 이상하게 거짓말이 안 나왔다. 고개를 푹 숙이며 “한 번도 못 먹어봐서 먹어보고 싶어서요.” 했더니 사장이 나를 초코바가 있던 진열대로 데려갔다. “다른 거 못 먹어 본 거 있냐?” 사실 내 주머니에 들어 있다가 사장에게 뺏긴 초코바가 내 인생의 첫 초코바가 될 예정이었다. 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있자 다시 묻는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라고.” 나한테로 한 걸음 성큼 걷는 사장의 기세에 눌려 뒷걸음질 치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사장이 기가 차단 듯이 고개를 내젓는다. 일어나서 교복 치마를 툭툭 털며 말했다. “여기 있는 거 하나도 못 먹어봐서······.”

 

 사장이 비닐봉지를 가져와서 초코바를 종류별로 담았다. 그때까지도 사장이 뭘 하려는 건지 확실히 이해가 안 됐다. 사장이 비닐봉지를 나에게 넘겼다. “이거 가져가서 먹고 담에 또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나한테 말해. 딴 데 가서 훔치다가 등신같이 걸리지 말고. 훔치는 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사장에게 머리를 꾸벅이며 나오면서, 나를 꾸짖는 머릿속 엄마 목소리 때문에 귀가 아팠다. “엄마 미안해. 나쁜 짓 해서 미안하고, 엄마 팔아먹어서 미안해. 이제 안 그럴게.” 집에 오는 길 내내 미친 사람처럼 울며 중얼거렸다. 사장이 준 초코바는 나보다 단 걸 더 좋아하지만, 나보다도 덜 먹어본 그에게 줬다. 학교에서 났다고, 난 단 거 먹으면 살만 찐다고 둘러대며. 이후로 그 슈퍼에 발을 디디는 일은 없었다. 어디서든 물건을 훔치는 일도 없었다.

 

 옥탑방에서 쫓겨난 우리는 여관 비슷한 곳으로 이사했다. 짐이라곤 이민 가방 하나가 다였으니 이사라기보단 잠자리를 옮기는 정도로 느껴졌다. 5층짜리 빌딩의 3층에 자리 잡고 있던 여관은 불법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건물을 지을 땐 벽 하나 없던 곳에 판자로 촘촘히 방을 나눈 티가 확 나는 곳이었다. 이름은 ‘모텔’이었지만 그와 내가 나란히 누우면 꽉 차는 방은 여인숙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했다. 여관주인은 그와 달방비를 협상하면서도 내내 그와 나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그가 “당장 아 델꾸 길에 나앉을 순 없잖습니꺼.” 하자 못 이기는 척 그의 손에 들린 달방비를 낚아챘다.

 

 “여긴 애들 있을 데가 못돼요. 쉬어가는 사람이 많아서.” 하던 여관주인의 말을 나는 그렇다 치고 그가 못 알아들은 건 문제가 있었다. 헥헥대다가 자지러지는 신음이 여과 없이 들릴 때, 난 안 들리는 척, 모르는 척 의뭉스럽게 굴 수밖에 없었다. 밤늦게까지, 새벽이 밝을 때까지 오른쪽 방, 왼쪽 방, 건너편 방에서 멈추지 않던 그 소리와 각종 감탄사는 낮에 학교에서도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지하철 보따리장수에게서 산 듯한 커다란 워크맨을 내밀었다. MP3플레이어가 이미 보급화 됐을 때인데, CD플레이어도 아니고 카세트플레이어라니. 시대를 역행하는 그의 소비행태에 화를 낼지 고마워할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요새 아들 이런 거 끼고 공부하던데 니도 이런 거 들으며 공부해라.” 하는 바람에 난 기가 막혀 콧바람을 내며 웃고 말았다. “이거 있으면 뭐해? 카세트테이프가 있어야 듣지.” 했더니 “카세뜨? 이거 라디오 아이가? 라디온 줄 알고 샀디만.” 한다. 난 포복절도했다. 난 그날부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열혈 라디오 청취자가 되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를 할 때 한두 마디 거들 수 있게 된 것도 이때였다. 집중해서 공부하는 날이 점점 더 줄어들었다는 뜻이었지만, 그는 자기가 저지른 짓의 심각성을 오늘날까지 모르고 있을 거다.

 

 여관에 자주 들락거리던 한 여자는 나와 화장실에서 자주 마주치자 처음엔 눈인사를 하더니 나중엔 아는 체를 하며 이름이 뭐냐, 여기 사느냐, 왜 여기 사느냐,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가 여관에 발을 붙이는 어떤 사람과도 말을 하지 말라고 못 박은 데다가 나부터도 여자와 말을 섞기 싫었지만, 코앞에 있는 사람을 무시할 수도 없어 한두 마디 대답을 해줬다. 여자의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는 없었다. 사실 여자의 얼굴을 바로 본다 한들 두텁게 발라져 여기저기 갈라지기까지 한 화장만 보이지 여자의 얼굴을 보는 건 불가능했지만, 그 두꺼운 화장을 보기가 힘들었다. 인조 속눈썹이며 입술 라인 바깥까지 칠해진 립스틱이 눈에 들어오면 여자 얼굴 대신 내 얼굴이라도 벅벅 긁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거북함이 들었다. 그렇다고 다른 데로 시선을 두자니 가슴이 푹 파진 쫄티에 짧은 치마를 입고 있는 여자의 몸뚱이 어디 한 군데라도 눈을 고정할만한 데가 없었다. 그래서 여자가 말을 시킬 땐 고개는 여자 쪽으로 돌려도 양 눈의 초점은 그녀 너머 벽에 고정했다.

 

 자기가 첫 낙태에 성공하지 않았으면 나만 한 애가 있을 거라 농담처럼 얘기했던 여자의 나이는 정확히 몰랐지만 살아볼 만큼 살아봤고 그 삶의 농도가 꽤나 높았다는 건 확실했다. 여자는 내가 그와 단둘이 사는 게 뻔히 보여서 불쌍히 여겼는지 가끔씩 1층 구멍가게 앞에서 만나면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따위를 사주곤 했고, 공짜음식을 거절 못 하는 난 그때마다 받아먹으면서도 여자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행여나 날 잡아가 사창가에 팔아먹기라도 할까 봐.

 

 오밤중에 목이 말라 여관 입구에 있는 정수기에서 물 한잔을 마시며 이 정수기 필터를 마지막으로 교체한 건 언젠가, 이 물을 얼마나 마시면 죽을 수 있는가, 따위를 생각하고 있는데 여자가 술 냄새, 토사물 냄새, 화장품 냄새가 섞인 역한 냄새를 풍기며 들어왔다. 코를 찡그리며 못 본 척하려는데 여자가 내 어깨를 잡았다. 에이즈라도 걸릴 것 같은 더러운 느낌에 당장 여자의 손을 떨쳐내고 싶었지만, 어떻게 하면 공손하고도 자연스럽게 여자의 손에서 빠져나갈까 고민만 했다. “배 안 고파?” 그가 오랜만에 장거리 일을 얻어 집에 안 들어올 예정이었다. 그가 남기고 간 삼천 원은 내일을 기약하며 고스란히 저금해 두었으니 배가 안 고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여자와 어딜 가는 건 꺼려졌다. 여자의 손에 힘이 빠진 틈을 타 자연스럽게 한걸음 뒤로 걸었다. 여자가 여관 앞 포장마차에 가자고 했다. 포장마차는 사방이 트인 곳인데 설마 뭔 일이 있으랴.

 

 내가 우동 한 그릇을 국물까지 싹 비울 동안 여자는 안주도 없이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여자는 기분이 좋다고 했다. 내가 좋은 일 있느냐고 물었더니 기분이 좀 더 좋아지면 말해준다면서 술 한 병을 더 시켰다. “엄마가 죽었어.” 혀가 꼽추가 된 여자의 말을 못 알아들은 건 아니었지만 불확실한 억양 때문에 내게 묻는 건지 자기 말을 하는 건지 몰라 “네?” 했다. 여자 나이 열여섯에 빚 때문에 여자를 팔다시피 한 여자의 엄마가 죽었다고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많지는 않지만 약간의 유산도 남겼단다. “썩을 년. 지 돈도 다 못 쓰고 뒈질 거면서 왜 날 팔아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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