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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나 혼자 목이 없다
작가 : 알레그로
작품등록일 : 2020.8.1

목 없는 기사로 되살아난 수도사 파울의 이야기.

 
3화
작성일 : 20-08-08 17:14     조회 : 420     추천 : 0     분량 : 5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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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브리즈 수도원에서 수녀들을 양성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들이 성유물 원정에 파견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수도원의 운영 방침은 내가 예상한 수준보다 훨씬 철저하고 비밀스러웠다. 수도원에서 먹고 자라면서 단 한 번도 수녀를 본 적이 없었다니.

 

  레몽은 창이 박혀 있었던 벽난로 앞에서 몸을 데웠다.

 

  “창을 어디서 발견했죠?”

 

  “녹스본의 동쪽 경계, 탈라리아 협곡을 지나면 이르는 라굴리 사막입니다. 말 그대로 사막에서 바늘 찾기였죠.”

 

  나는 출정을 떠나 곧바로 북쪽 항구로 향했다. 원정길이 저마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왜 난 사막이 아니라 바다로 보내진 걸까. 사막길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어 바닷길로 우회한 것일까.

 

  교단에서는 지난 원정길의 정보를 바탕으로 가장 합리적인 경로를 도출한다. 두 명의 순례자는 자신들의 여정을 기록해 수도원에 매일 전령을 보내야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전령을 보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포로로 잡혔거나 순교했을 경우를 제외하고.

 

  다른 순례자를 만나야 풀리는 의문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죽었거나 어딘가에서 수도사의 소임을 저버리고 제2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순례자를 만난다 해도 그들이 자신의 배교를 털어놓을 리 없었다. 얼굴이 없는 나조차도 수도사였음을 숨기고 있었다.

 

  부끄러운 것이다.

 

  “창은 샤갈족이 갖고 있었어요. 미친 왕을 죽이고 빼앗은 것이죠.”

 

  샤갈족의 군대는 낙타를 탄 기수들로 이루어졌다. 낙타병은 사막에서 제국의 기마병보다 날렵하고 드셌다.

 

  “어떻게 샤걀족에게서 창을 탈취했습니까? 제국도 함부로 건들 수 없는 자들인데.”

 

  “메이텔 님은 동행자와 함께 포로로 잡혀 지내셨습니다. 창의 존재가 통합된 유목민들을 분열시킬 때까지 기다리셨죠.”

 

  “어렵게 얻어낸 성창을 가지고 왜 수도원으로 돌아가지 않은 거죠?”

 

  노파는 고개를 숙였다. 벽난로 안에 타오르고 있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메이텔 님은 깨달았어요. 사막을 샅샅이 뒤져 바늘을 찾는다고 해서, 우리가 바늘구멍을 지나갈 수는 없다는 진실을요.”

 

  원정길은 험난하다. 실재하는 위협이 가장 먼저 우리를 괴롭히지만, 정신적인 혼란은 우리를 안에서부터 곪아 먹는다. 지난한 발걸음 끝에 떠오르는 의구심. 한숨 섞인 체념들.

 

  마이텔의 체념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마이텔의 선택 하나로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제가 헛되게 죽었다. 이미 찾은 물건을 찾기 위해 소모되었다.

 

  “교단에 언질이라도 했어야죠. 존귀하신 마이텔 수녀님이 숨어 지내시느라, 수많은 사제가 헛된 희생을 치렀어요.”

 

  노파가 눈을 부릅떴다.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마이텔 님은 고결한 선택을 하신 거예요. 성유물이 교단에 돌아간다고 상황이 달라질까요? 교단을 분열하고 왕가를 무너뜨릴 겁니다. 재앙을 초래할 겁니다. 그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마이텔 님은 평생 성유물 파수꾼으로 살다 가신 거라고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는 타지에서 목이 잘려 죽었죠.”

 

  투구를 벗었다. 홧김에 한 선택이었다. 노파는 놀란 기색이지만, 더한 것도 봤다는 듯이 애써 마음을 추슬렀다. 꼬마가 레몽의 뒤로 숨었다.

 

  레몽이 코웃음을 쳤다.

 

  “재수 없는 반송장이라고 생각했는데, 고귀한 수도사셨군요.”

 

  레몽은 배신감이 뒤섞인 미소를 지었다. 수도사들이 흑마법사를 싫어하듯이, 흑마법사도 수도사를 싫어했다. 나는 하던 말을 이었다.

 

  “그래서 메이텔이 원했던 미래가 이건가요? 녹스본 사람들의 심장에 구멍을 내는 일?”

 

  “메이텔은 케릭을 가르쳤어요. 그를 성유물 파수꾼으로 키우기 위해서. 하지만 제국군은 케릭을 찾아 죽였죠. 바로 이 자리에서.”

 

  벗은 투구를 내려다보았다. 녹스본에 제국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레몽이 노파에게 다가갔다.

 

  “제국이 어떻게 알고 찾아왔죠? 케릭이 창을 사용했나요?”

 

  “케릭은 소유권을 양도받고 나서 단 한 번도 창에 손을 대지 않았어요. 게다가 메이텔의 가르침대로 마을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격리했죠.”

 

  이곳은 독립 수도원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남이 만든 규율을 지키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규율을 지킨다는 것은, 엄청난 자기 통제력이 필요했다.

 

  “제국군은 이미 알고 왔군요. 케릭이 창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제국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제국군이 녹스본에 상주하는 이유가 깨끗해 보이지는 않았다. 성유물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여야 한다.

 

  아무도 성유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사수하는 것.

 

  제국의 이유는 뭔가 다른 것이다.

 

  여기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었다. 제국이 어떤 목적을 품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칼과 방패를 챙겼다.

 

  “잠시 기다리세요.”

 

  노파가 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육중한 보관함을 질질 끌며 돌아왔다. 잠금쇠에 톨레멘 교단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검은 네잎클로버.

 

  안에 든 무기는 갈고리 도리깨였다. 빠르게 움직이는 성창을 제압하는 용도였다. 휘두르는 순간 갈고리가 창의 자루를 낚아채 사슬로 결박시킬 것이다. 탄틸루스의 창이 범선이라면, 이 도리깨는 범선을 멈추는 닻이었다.

 

  갈고리는 클로버의 잎사귀를 닮았다. 돋아난 네 개의 날이 반원을 그리며 꺾였다. 성창이 아무리 날뛰어도 갈고리에 잡히면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메이텔 님과 같은 사제시니 믿고 맡기겠습니다. 창을 되찾는 데 유용하실 겁니다.”

 

  교단에서 제작한 무기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껄끄러웠다. 하지만 성유물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라도 써먹어야 한다.

 

  메이텔도 나처럼 배교자이니 이 무기도 더는 톨레멘의 소유가 아니다. 배교자의 무기라고 해두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집 밖으로 나가자 풀지 못한 궁금증이 솟아났다.

 

  “메이텔과 동행했던 수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샤갈족의 쿠크리에 베였거나, 사막 한가운데에서 탈수로 죽었겠죠.”

 

  내게도 동행자가 있었다.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가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내가 최후를 맞았을 때 그가 옆에 있었는지.

 

 ●

 

  창이 지나간 흔적은 찾기가 쉬웠다. 바늘이 지나간 자리마다 피의 매듭이 지어져 있었다. 반파된 건물과 쓰러진 나무들만으로 추적은 수월했지만, 창은 훨씬 더 극적인 광경을 선사해주었다.

 

  뒤에서 레몽이 따라왔지만, 발걸음이 더뎌 중간중간 속도를 늦춰야 했다.

 

  “빨리 따라오지 그래.”

 

  “수도사였을 줄은 몰랐어요. 반송장이라 체취도 없고, 머리가 없어서 외양도 확인할 수 없었으니까요. 수도사들은 책장에 묵혀둔 책 냄새가 나거든요.”

 

  도리깨를 그러쥐었다. 갑옷이 얼마나 튼튼한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굳이 말해봤자 싫어할 테니까 비밀로 했던 거야. 다른 이유는 없어.”

 

  “내가 흑마법사란 걸 알았을 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나요? 수도사는 겉으로는 욕을 못 하지만, 속으로는 상상조차 못 할 욕을 지껄인다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흑마법사의 악명이 허풍이 아니었다. 치명적인 마법은 없다 해도, 혓바닥으로 사람의 기분을 처참하게 만드는 데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 그것만으로도 혐오의 이유는 충분했다.

 

  “아무 생각 안 했어. 그저 안타까웠을 뿐이지. 다른 신분으로 만났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이제 수녀의 무기까지 건네받았으니, 더할 나위 없는 전투 사제네요.”

 

  “난 배교한 몸이야. 더는 수도사가 아니라고. 마법사한테까지 미움받을 여유는 없어.”

 

  동이 터 오고 있었다. 숲길이 끝나고 초원이 나타났다. 야영지가 보였다. 펄럭이는 깃발들. 제국의 것이 대부분이지만, 틈틈이 녹스본 왕국의 깃발도 보였다.

 

  야영지의 가운데 천막에 빨간빛이 보였다. 불씨는 점점 커지더니 천막의 모서리를 갉아 먹기 시작했다.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나팔 소리가 울렸다.

 

  “부관이 도주했다. 잡아라!”

 

  “성유물이 탈주했다!”

 

  제국군 병사들이 야영지의 왼쪽으로 이동했다. 녹스본 중앙 지역은 습지가 많아 발이 묶인다. 숲길로 돌아가는 편이 빨랐다.

 

  나는 초원으로 빠져나오지 않고, 풀숲을 헤치며 서쪽으로 돌아 뛰었다.

 

  레몽은 이미 나에 대한 믿음을 버렸을 것이다. 그녀가 나를 따라오든, 따라오지 않든 개의치 않았다.

 

  멀찍이서 소리가 들렸다. 공기를 베는 소리. 수직으로 꽂히는 번개가 수평으로 기울면 이런 소리가 날까. 나무가 연달아 부서지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창의 빚어내는 소음이 끊겼다. 숲은 고요를 되찾았다. 숲의 그림자가 옅어지더니 공터가 나타났다.

 

  안개가 자욱했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안개의 농도가 짙었다. 발밑이 보이지 않았다. 가까운 곳에 호수나 개울이 있을 것이다.

 

  투구의 눈구멍까지 방패를 들어 올렸다. 도리깨를 쥐고 왼팔을 등 뒤로 젖혔다. 창이 방패에 꽂히는 순간, 도리깨를 휘둘러 포획할 것이다.

 

  실패하면 내가 창을 손에 쥘 것이다.

 

  메이텔과 나는 다르다. 케릭과 나는 다르다.

 

  나는 평생을 숨어 지내지 않아도 성창을 다스릴 수 있다. 성창을 손에 쥐도록 훈련받았다. 성창을 통제하기 위해 죽음이 나를 이곳에 보냈다.

 

  내가 선택한 삶은 아니지만,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선택받은 삶이다.

 

  첨벙.

 

  발바닥에 물이 닿았다. 어느새 호숫가의 귀퉁이에 이르렀다. 경계 태세를 무르고 자세를 낮췄다. 손으로 호수의 수면을 쓸었다.

 

  내 손이 일으킨 파문이 수면 위로 퍼져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파문은 다른 파문과 부딪혔다. 정체불명의 파문은 앞쪽에서 왔다. 호수의 건너편에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안개 때문에 흐릿했지만 분명했다.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물고기를 잡는 작살도, 절금뱅이의 지팡이도 아니었다.

 

  탄틸루스의 창이었다.

 

  투창 자세를 취한 실루엣이 향하는 방향은 내 쪽이 아니었다. 오른쪽 호숫가였다. 그곳에 다른 실루엣이 보였다. 물을 마시는 갑옷.

 

  실루엣의 손에서 창이 떨어져 나갔다.

 

  겹겹이 뭉친 구름안개가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성창의 전신이 드러났다. 꼿꼿이 뻗은 창대가 안개를 뚫었다. 사위를 밝혀 오는 여명처럼.

 

  '수도사 파울, 어느 쪽을 선택할 건가?'

 

  암브로스. 당신은 내게 원하지 않는 딜레마를 선사했다. 삶이 조금 선명해지려 하면, 또다시 안개를 드리워 주었지.

 

  이제 더는 내 선택에 후회할까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도리깨를 휘둘렀다. 사슬로 연결된 갈고리가 창을 향해 뻗어 나갔다. 갈고리가 창의 자루에 닿자 쇠사슬이 창대를 칭칭 감았다. 도리깨를 끌어당겼다.

 

  창은 레몽의 코앞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레몽은 겁에 질려 있었다. 불가항력 앞에 몸이 굳어 버린 피조물처럼. 나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갈고리를 당겨도 공중에 뜬 창은 미동도 없이 버티고 있었다.

 

  창날이 나를 향해 방향을 돌렸다. 운명의 시침이 나를 향하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창은 사슬에 칭칭 감긴 채로 내게 날아왔다. 내가 창을 속박한 것인지, 창이 나를 속박한 것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퍽!

 

  가까스로 방패를 들었다. 방패에 박힌 성창이 부르르 떨렸다. 도리깨는 이미 내 손을 떠나, 창 자루에 매달렸다.

  창 자루에 왼손을 뻗으려는 찰나. 누군가 손목을 낚아챘다. 순식간에 나타난 남자가 창 위에 걸터앉았다.

 

  새로운 소유자?

 

  “안녕. 그리고 잘가. 이 창은 내 거야.”

 

  남자는 녹스본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격일로 꾸준히 업로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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