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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오늘부터 가정교사입니다
작가 : 어린비
작품등록일 : 2020.8.1

유치원 선생님 감은아.

그녀는 어느 사건으로 인해 선생님을 그만두게 되고, 백수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불행한 일은 왜 한꺼번에 일어나는 걸까.

취직도 안 되고, 집주인이 월세를 올린 덕에 집까지 잃게 된 그녀.

그렇게 하루하루 걱정 속에 살고 있는 그녀에게 내밀어진 구원의 손길.

"저희 조카의 가정교사가 되어주실래요?"

담임이었던 시왕의 보호자 서천이 그녀를 고용하고, 얼떨결에 은아는 시왕의 가정교사가 된다.

하지만 까칠한 애늙은이 시왕을 가르치는 일이란 쉽지 않은데…

거기다가 어쩐지 이들이 수상하다?!

과연 은아는 제대로 된 가정교사가 될 수 있을까?

 
13화. 돌이킬 수 없는(6)
작성일 : 20-08-07 01:31     조회 : 206     추천 : 0     분량 : 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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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멍하니 있던 은아의 낯빛이 화르르 붉어졌다. 어쩐지 치부를 들킨 것 같아 창피해진 탓이었다.

 

 

 “서, 선생님 안 울었어…! 자다 일어나서 눈이 조금 부은 모양이네, 하하.”

 

 은아가 얼굴을 손으로 매만지며 은근슬쩍 시왕의 눈길을 피했다. 얘는 애가 왜 이렇게 눈치가 빨라…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눈이 운 것처럼 새빨갛다는 걸 모르는 그녀였다.

 

 

 “예, 뭐… 그럼 그런 걸로 해요.”

 

 시왕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맞은편 식탁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어 두 사람 사이에 질긴 침묵이 흘렀다. 은아는 호록- 차를 마시면서도 본인도 모르게 7살 애의 눈치를 보았다.

 

 

 으… 어색해… 얘는 뭐 애 같지 않아서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한참을 속으로 안절부절 못하던 은아는 겨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시왕이 넌 왜 나온 거야? 지금 자는 시간이잖아.”

 “아…”

 

 말없이 식탁 매트만 손으로 갉작거리던 그는 고개를 들었다.

 

 

 “뭐… 누가 잠을 못 자게해서요.”

 “어? 누가?”

 

 어리둥절한 표정의 은아가 눈을 깜빡거리자 시왕이 대답대신 팔꿈치로 삐딱한 고개를 괴었다.

 

 

 “있잖아요, 선생님.”

 “응?”

 

 은아가 찻잔을 입에 가져가다 말고 행동을 멈췄다. 시왕은 어딘지 한층 가라앉은 얼굴로 잠시 뜸을 들였다.

 

 

 “살면서 누군가를 지독하게 원망해본 적 있어요?”

 

 뭐…? 생각지도 않은 질문이었다. 은아는 멍하니 그의 눈을 마주했다. 방금 말한 질문이 진심이라는 듯, 그의 눈빛은 인생을 꽤 살아본 사람처럼 진지하기만 했다.

 

 

 “음…….”

 

 은아는 말을 길게 늘이며 시간을 벌었다. 시왕이 왜 저런 질문을 한 걸까… 골똘히 생각에 잠긴 그녀의 머릿속으로 서천이 말해준 시왕의 가정사가 생각났다.

 

 

 ‘지금 시왕이는 자신의 부모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기껏 속마음을 내비친 시왕의 물음에 어떻게 답을 해야 그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은아는 입술을 꾸욱 누르며 시왕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에게서 희미한 긴장감이 피어올랐다.

 

 

 “… 그럼, 당연히 있지.”

 

 그 순간, 은아의 머릿속에 악몽에서 보았던 살인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찰나와 같이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으나 애써 은아는 그 얼굴을 밀어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시왕은 그런 그녀를 끈덕지게 쳐다보았다.

 

 

 은아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한 후, 나긋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누구나 그런 사람 하나쯤은 있을 거야. 요점은 그거지. 그 원망에 내 자신이 망가지면 안 된다는 거.”

 

 시왕이 느릿하게 팔짱을 끼곤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그 원망이 날 집어 삼키지 못하도록 더 나은 것들로 나를 채워야 한다는 거야. 물론, 원망하지 말라는 게 아니야. 다만 그게 시왕이의 마음속에 아주 작은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거지.”

 “… 선생님은 그러고 있어요?”

 “나? 난…”

 

 은아는 말문이 막혀 섣불리 대답을 못했다. 나야 말로 그러고 있나? 곰곰이 생각을 하던 은아가 차분하게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러려고 노력 중이라고 해야 하나… 아마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러기를 바랄 테니까.”

 

 시왕의 눈빛이 점차 묘해졌다. 말하면서도 혹시나 자신의 마음이 와전될까 싶어 걱정했던 은아는 그것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다. 안도의 한숨이 잇새로 작게 새어 나왔다.

 

 

 이내 옅은 미소가 그녀의 입매에 잔잔하게 흘렀다.

 

 

 “그러니까 시왕아. 선생님은 정말로 시왕이가 누군가를 원망하느라 이 멋진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기를 바라.”

 “굳이… 선생님이 왜요?”

 

 시왕이가 눈썹을 들썩이며 의아함을 표출했다. 응? 저 말은 내가 왜 그런 걸 바라냐는 거야? 은아는 당연하다는 듯 살짝 웃음기 있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야 선생님이 시왕이를 사랑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니까.”

 

 시왕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커졌다. 아… 너무 주제를 넘었나? 은아가 웃는 낯 너머로 살짝 걱정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는지 시왕의 얼굴색이 살짝 붉게 달아올랐다.

 

 

 “… 시왕아?”

 “… 그… 그만 자러 갈게요.”

 

 시왕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후다닥 부엌을 나갔다. 저런 모습은 처음이라 은아는 얼떨떨해졌다. 그가 지나간 자리를 쳐다보며 그녀는 헛웃음을 지었다.

 

 

 “… 저런 모습을 보면 애가 맞는데… 참, 이상해.”

 

 은아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어 기지개를 켜며 입을 둥글게 벌리자 하품이 새어나왔다.

 

 

 “하암-”

 

 그가 타준 차의 영향인지 슬슬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그 악몽을 꾼 밤이면 그날 밤에 다시 잠드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떻게 해도 잘 수 없었는데…

 

 “진짜 신통하다니까.”

 

 엷은 찻물 위에 은아의 얼굴이 비쳤다. 서천 씨한테 무슨 차인지 물어봐야지… 그녀가 졸린 눈을 비비며 찻잔을 들었다. 오늘 밤의 자리끼로 써야겠다 싶었다.

 

 

 한편, 2층 시왕의 방문이 탁- 닫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그 옆의 모퉁이에서 서천이 슬쩍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쿡쿡- 웃음을 참으며 시왕의 방문을 한 번, 이제 막 부엌을 나오는 은아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

 

 

 “… 거 봐. 데리고 오길 잘했지.”

 

 낮게 퍼지는 속삭임 뒤로 만족에 젖은 서천의 얼굴이 보였다.

 

 

 * * *

 

 “흠냐…”

 

 이불에 폭 파묻힌 은아는 새벽의 악몽이 무색하게 아주 편안한 얼굴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 편안함을 넘어 거의 잠과 한 몸이 된 몰골이었다.

 

 

 고롱- 고로롱-

 

 숨을 쉴 때마다 코 고는 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그녀가 추울까 걱정한 서천이 난방을 따뜻하게 켜둔 탓에 방 안엔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렇게 한창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에 빠졌을 때…

 

 빠바바밤- 빠바바밤-

 

 그녀만의 공식 알람인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핸드폰에서 우렁차게 흘러나왔다. 사실 운명 교향곡이 흘러나온 건 지금 뿐만이 아니었다. 무려 1시간 전부터 그녀의 알람은 주기적으로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이러다가 핸드폰의 목이 쉬지 않을까 할 정도로 끈질기게 비장한 노래가 울렸지만, 은아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지 입맛만 다시며 눈을 뜰 줄 몰랐다.

 

 

 벌컥!

 

 긴장감이 고조되는 지점으로 들어선 노래와 함께, 순간 방문이 우악스럽게 열렸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발걸음이 은아가 누워있는 침대로 향했다.

 

 

 곧이어 그녀의 앞에 멈춰 선 발 치로 못마땅한 한숨이 떨어졌다.

 

 

 “하아… 진짜 내가 이런 것까지…”

 

 발걸음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시왕이었다. 그는 아직도 깨어날 생각이 없는 은아를 내려다보며 어금니를 지그시 악물었다. 눈자위가 퀭한 것이 잠들지 못한 지난밤이 눈에 선했다.

 

 

 시왕은 짜증서린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

 “… 흐응.”

 

 은아는 아무런 대답 없이 손을 자신의 볼로 올리더니 갉작거렸다. 아주 팔자 한 번 좋구나… 시왕이 한쪽 입 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렸다. 그의 입장에선 그녀의 모습이 여간 얄미운 게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서천이 부득부득 시왕이 은아를 깨우러가야 한다며 그를 떠밀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잠을 설쳐 피곤해죽겠는데 서천은 어쩐지 이런 상황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스승님이 간밤에 잠은 잘 주무셨는지, 직접 살피는 것도 제자 된 도리 아니겠습니까? 어서 진지를 잡수게 스승님을 모셔 오시지요.’

 

 조선시대의 선비 컨셉이라도 잡았는지 고고하게 내리깐 목소리로 시왕을 놀리던 서천이었다. 물론, 점차 살벌해지는 시왕의 표정을 보고 금방 그만두긴 했지만.

 

 

 ‘서천, 그 자식… 일부러 나를 곤란하게 만들려고 이 여자를 데려온 게 분명하다니까.’

 

 배경 음악처럼 흐르는 운명 교향곡과 함께 시왕은 그라데이션으로 점차 빡침이 올라왔다. 아니, 잘 수 있다 이거야… 하지만 식사는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먼저 계약서에 서명했잖아?

 

 그런데 지금 식사 준비는 개뿔,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까지 퍼질러 자고 있냐고…!

 

 “선생님!”

 

 시왕이 참다 참다 소리를 빼액 질렀다. 은아는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죄다 헝클어진 머리 아래로 뜰락 말락한 눈꺼풀이 잠에 취해있었다.

 

 

 “우웅…?”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지 은아가 입가를 손등으로 훔쳤다. 쯧- 혀를 차는 시왕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한심하다는 듯 노려보았다. 이윽고 어느 정도 눈을 뜬 은아가 눈매를 잔뜩 찡그리며 시왕을 향해 고개를 쑤욱 내밀었다.

 

 

 “시왕이…?”

 

 흠칫- 놀란 시왕은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갑자기 훅 다가온 은아의 무방비한 모습이 시야를 채우자 심장이 쿵 떨어졌다.

 

 

 ‘뭐… 뭐야?’

 

 영문을 알 수 없는 감정에 시왕은 가슴께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놀래라… 당황한 시왕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사이 한참을 눈가를 비비며 초점을 맞추던 은아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헉-”

 

 그와 동시에 진이 빠진 핸드폰의 알람이 뚝 끊겼다. 은아가 재빨리 핸드폰으로 손을 뻗어 시간을 확인하더니 떠억 벌어진 입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미쳤… 미쳤어!”

 

 은아가 황급히 침대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감은아, 진짜 넌… 울상인 얼굴로 하도 허둥거리는 덕에 스템까지 꼬여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탁-

 

 “조심 좀 해요, 선생님.”

 

 시왕이 그녀의 팔을 잡지 않았다면 분명 바닥으로 고꾸라져 험한 꼴을 보였을 것이다. 은아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헙- 다시 정신을 차렸다.

 

 

 “아, 아침밥은? 내가 하려고 알람까지 맞춰놨는데…”

 “삼촌이 이미 식탁에 다 차려놨어요.”

 

 건조하게 그 말을 남긴 시왕은 본인이 먼저 방문으로 걸어가더니 문을 열었다.

 

 

 “나와요. 밥 먹게.”

 

 그가 나가고 나자 은아는 서둘러 헝클어진 머리를 묶는 동시에 발을 옮겼다.

 

 

 “같이 가!”

 

 하지만 곧 걸음이 살짝 느려졌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방금 전의 일이 그녀를 의아하게 만든 탓이었다.

 

 

 ‘아니… 무슨 7살짜리가 저렇게 악력이 세…?’

 

 보통 꼬마아이라면 그 상황에서 자신을 잡았다 해도 같이 바닥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시왕이 그녀의 팔뚝을 잡아채자마자 은아는 제대로 발을 디딜 수 있었다.

 

 

 “… 무슨 약이라도 먹는 건가… 서천 씨가 보약 같은 거 해주나?”

 

 혼자 중얼거리며 은아는 팔뚝을 문질렀다. 팔뚝에 남아있는 여운이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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