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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기억사형
작가 : 김광수
작품등록일 : 2020.8.4

사형수들의 기억을 지우고 사회로 보냄으로써 발생하는 이야기

 
기억사형(18)
작성일 : 20-08-04 16:18     조회 : 215     추천 : 0     분량 : 1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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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을 끝으로 환류의 아들은 연구실에서 나갔다. 방관은 뒤늦게 생각이 나서 usb를 대신 받아주려고 그 아이를 찾으러 갔지만 이미 보이지 않아서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다. 환류의 아들은 화장실에 갔다가 아무도 없어서 회의실이라고 적힌 곳을 찾아서 들어갔다. 그는 창가 쪽을 향해 있는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는 누군가 소란스럽게 들어왔다. 환류의 아들은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아빠가 아닌 것을 보고는 다시 자리에 그대로 앉았다. 그의 모습이 작아서 소파에 가려져서 다른 곳에선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회의실의 문을 잠갔다.

  “이거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지도자님이 오신다고 환류에게 미리 전화 했는데 자리에 없다고 하네요. 다른 연구원이 환류가 돌아오면 바로 연락해준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오만 교수였고 다른 사람은 지도자였다. 두 사람은 입구 근처의 의자에 탁자를 두고선 마주 앉았다. 오만 교수는 환류의 부재에 약간 당황한 듯 했다.

  “조금 늦는 것 정도는 괜찮네. 그나저나 환류가 그 연구에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나?”

  오만 교수는 무릎위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그게 너무 반인륜적이라고 그랬습니다. 제가 괜히 인간병기라는 말까지 꺼내버려서 부정적으로 보인 것 같습니다.”

  지도자는 팔짱을 끼더니 말을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인데 말이지.”

  오만 교수는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더니 말했다.

  “네 맞습니다. 그 연구만 진행되면 이제 이 국가에 범죄는 아예 사라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기억사형만 해서는 범죄가 반복해서 발생했지만 기억조작 연구만 완성되면 이제 교양 없는 사람을 완벽한 인간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게다가 남쪽 국가와 계속 분쟁이 있는데 전쟁이 발발했을 때 사람들의 공포심을 없애서 인간병기로 쓸 수 있다는 건데, 환류는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반대하는 것 같습니다.”

  “환류 없이는 연구할 수는 없겠나?”

  “네, 아무래도 전에 말했듯이 기억에 관한 분야는 환류가 최고로 잘하기 때문에 그가 없으면 아마 연구가 진행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처음 기억을 지우는 연구에 크게 기여한 것도 바로 환류였지 않습니까?”

  “당연히 환류가 연구에 참여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반대할 줄 몰랐네.”

  “사실 옛날에 기억을 지우는 것을 사형 대신에 사용한다고 할 때도 약간 부정적이긴 했습니다.”

  “그건 몰랐네.”

  “제가 환류를 잘 설득 했어야 했는데 지도자님까지 오게 만들다니 이거 참 죄송합니다.”

  오만 교수는 허리를 굽실거렸다. 그러더니 오만 교수의 손목신분증에 환류의 전화가 왔다. 그는 언성을 높여서 말했다.

  “야. 내가 지도자님 오신다고 미리 말했잖아. 어디 간 거야? 지도자님 오셨으니 지금 당장 회의실로 와.”

  환류는 그 말을 듣고 당황해서 회의실로 달려갔다. 회의실 앞에는 경호원이 서 있어서 지도자가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환류는 회의실 앞에 도착해서 숨을 골랐다. 방음이 돼있어서 바깥에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전화를 해서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문이 열리고 환류가 안으로 들어간 후에 다시 문을 잠갔다.

  “죄송합니다. 손목신분증을 두고 가서 전화를 못 받았습니다.”

  그 때 회의실 소파에 가려져 있던 환류의 아들이 나와서 환류에게 달려갔다.

  “아빠, 이거 가져오라는 거 가져왔어.”

  그 순간 회의실에 환류의 아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시간이 멈춘 듯 움직이지 않았다. 환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당황해서 아들에게 말했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지도자는 고개를 괜히 다른 곳으로 쳐다보았다. 오만 교수는 입을 떨면서 환류의 아들에게 다가가서 양손으로 어깨를 잡고는 말했다.

  “너 여기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환류의 아들은 자기가 앉아 있던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저씨가 오기 전부터 저기 앉아 있었어요.”

  오만 교수는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그럼 왜 여기 있었던 거야?”

  “아빠가 여기에 올지 모른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오만 교수는 환류를 한 번 쳐다보았다. 환류는 처음 듣는 소리라서 양손을 펴고는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 그럼 내가 방금 여기서 무슨 말을 한지는 알고 있어?”

  환류의 아들은 손가락을 입에 물고는 기억하고는 말했다.

  “어... 인간병기, 남쪽 국가와 전쟁?”

  환류와 오만 교수는 놀란 채로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지도자는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무겁게 말했다.

  “이거 참 국가기밀을 알아버렸으니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겠구먼.”

  환류는 놀라서 말이 빨라졌다.

  “잠시 만요.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요? 흥분을 내려놓고 생각해보세요.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이라고요. 제가 주의를 주고 책임지고 입단속을 하겠습니다.”

  지도자는 눈을 끔뻑거리며 말했다.

  “어린이니까 위험한 거야. 어른은 자신이 국가기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있지만 어린이는 그걸 조절할 능력이 없지.”

  “아닙니다. 제가 잘 말해서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도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되네. 그래도 자네를 생각해서 방금 한 가지 생각난 게 있네.”

  환류는 침을 삼키며 말했다.

  “기억을 지우면 될 것 같네. 그것도 기억을 지우는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자네가 직접 하는 거지.”

  환류는 고개를 숙여서 한 번 휘젓고는 무릎을 꿇고는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아직 성장기라서 기억을 지우게 될 경우 뇌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발 이대로 넘어가주면 안 되겠습니까? 어차피 어린애라서 혹여나 말이 밖으로 빠져나가더라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지도자는 환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건 법률이라서 어쩔 수가 없네. 자네 아들이 그냥 사형당해서 죽는 것 보다 살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지도자님의 말씀이 바로 법이지 않습니까? 이번만 선처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몇 번을 부탁해도 바뀌는 건 없다네. 자네가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더 강경하게 갈 수 밖에 없다네.”

  지도자는 문을 열고 경호원들에게 환류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잘 주시하라고 했다. 환류는 체념한 듯 그의 아들과 손을 잡을 채 걸어갔다. 오만 교수는 국가연구단지의 연구실에 전화를 해서 모두 집으로 귀가하라고 전화를 했다. 환류의 아들은 아직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아빠, 지금 우리 어디 가는 거야?”

  “지금 아빠가 연구하는 곳 구경시켜줄게.”

  “아까 기억을 지운다는 게 뭐야?”

  “잠깐 잠이 들었다고 생각하면 돼. 자고 일어나면 아무 일도 없을 거고 평소와 똑같을 거야.”

  그들은 국가연구단지의 연구실에 도착하였다. 환류의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환류는 아들을 타일러서 의자에 앉게 했다. 그는 어느 때 보다도 집중하면서 실험을 진행하였다.

  “자 여기 화면 잘 봐.”

  그리고는 마취가스가 마스크를 통해 환류의 아들에게 주입되었다.

  “잠에서 깨면 같이 엄마하고 같이 놀러가자.”

  환류는 직접 기계를 조작하면서 이상이 있는지 점검하였다. 그의 이마엔 땀이 주렁주렁 맺혔다.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작업을 했다. 손이 계속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한참을 조작하다가 갑자기 뭔가 잘못 된 듯 거칠고 빠르게 호흡하였다. 기계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나고 이상한 오류 메시지가 발생했다. 심박수 측정기에는 더 이상 환류의 아들의 반응이 잡히지 않았다. 환류의 아들은 그렇게 영원한 잠에 들었다.

  환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기계를 계속 조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환류는 두 손으로 기계를 쾅쾅 내리쳤다. 그러고는 주먹을 꽉 쥔 채 주변을 보았다. 지도자의 무표정한 모습이 모였다. 환류는 달려가서 지도자의 멱살을 잡고는 소리쳤다.

  “내가 위험하다고 했잖아. 이거 어떻게 할 거야. 빨리 책임져 내 아들 살려내라고!”

  지도자 옆에 서있던 경호원들이 환류를 떼어내서 바닥으로 쳐냈다.

  “난 자네에게 기회를 준 건데 이렇게 된 건 어쩔 수 없지 않나.”

  지도자의 무책임한 말에 환류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눈알에 핏대가 서서 붉어졌다.

  “그게 이 국가의 지도자가 할 말이야?”

  “그럼 애초에 아들 간수를 잘 했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지 않은가? 난 규정대로 한 것 뿐 일세.”

  환류는 주먹을 쥐고 지도자에게 다가가자 경호원이 환류의 복부를 가격했다. 그는 바닥에 쓰러졌다. 환류의 의식은 희미해졌다. 지도자의 모습이 환류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지도자는 눈을 아래로 깔아서 환류를 한 번 보고는 오만 교수에게 말했다.

  “그 연구는 일단 보류하게. 환류가 그 연구에 참여하도록 설득하러 왔지만 더 이상 의미는 없을 것 같군.”

  오만 교수는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땀을 흘리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지도자는 다시 환류를 보며 말했다.

  “자네는 사형 당하기엔 참 아까운 인재라네. 하지만 지금 상태로 자네를 두었다가는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겠어.”

  환류는 한 손으로 배를 잡고는 숨을 껄떡이며 말했다.

  “그래서 나를 어떻게 하려고?”

  “자네가 국가에 기여한 바가 커서 죽이진 않을 거야. 다만 기억사형을 받아야겠어.”

  “그냥 차라리 죽이지 그래?”

  “혹시 뭐 살아만 있다면 자네가 국가에 다시 필요한 날이 올 수도 있으니까. 자네는 명석한 사람이니까 말이지. 오늘만 제외하면.”

  환류는 충격에 금이 간 안경을 엄지손가락으로 바로잡으며 지도자를 째려보았다.

  “기억사형 되더라도 널 영원히 증오 할 것이다.”

  “그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인가?”

  “너한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환류는 손가락에 착용한 반지를 보았다. 그러고는 오만 교수 쪽으로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착용한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냈다.

  “이거 아내한테 전해주고 다른 사람 찾아서 행복하게 살라고 말해줘.”

  환류의 결혼반지를 오만 교수에게 굴렸다. 굴러간 그 반지는 오만 교수의 신발에 부딪혀서 멈추었다.

 

  단심은 반지를 하나 빼내었다.

  “저도 처음에는 제 남편이 죽은 줄 알았어요. 하지만 죽지 않았어요.”

  비상은 그 말을 듣고 요동치던 심장이 잠시 멈추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단심은 빼낸 반지를 비상에게 건네주었다.

  “반지, 다시 가져가세요. 환류 아니 비상씨.”

  그 때 사령관이 사람들로 둘러싸인 중앙에 있는 단두대로 걸어갔다. 시민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가 이어졌다. 그 때문에 더 이상 비상과 단심의 목소리는 파묻혔다. 사령관은 마이크를 툭툭 치고는 연설을 시작했다.

  “국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전 1군 사령관이자 현 혁명군 최고 사령관입니다. 이제 사령관이란 말도 오늘이 마지막이 되겠지만요. 오늘부터 우리는 새롭게 시작할 것입니다. 그 동안 권력을 이용하여 국민들을 괴롭히던 사람들을 찾아내서 숙청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돈을 회수해서 국민들을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우선 여러분이 하실 일이 있습니다. 모두 손에 착용한 손목신분증을 풀어주십시오.”

  그 말을 듣고 많은 시민들이 손목신분증을 풀어 머리위로 들었다.

  “이 손목신분증은 지금까지 우리를 억압하던 수갑과 같았습니다. 우리의 대부분의 돈은 이 기계를 통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계에서의 돈은 모두 정부에서 관리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마치 정부의 돈을 잠시 빌려서 쓰는 것과 같이 느껴졌습니다. 실제로도 유일하게 정부에서만 대부업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또 노동자의 돈을 착취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손목신분증은 국민들을 감시하는 도구였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사용하는지 이 기계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억압하던 도구인 이 기계와 제도를 폐지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시민들은 손목 신분증을 하늘로 던져버렸다. 사령관은 앞으로의 계획을 계속 말했다. 사람들은 그가 말을 할 때마다 열광하였다. 한참을 말하더니 뒤에 사람들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군인 두 명이 옛 지도자를 단두대로 처벅처벅 끌고 갔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옛 지도자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멀어서 닿지는 않았지만 단두대를 향해 물건을 집어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옛 지도자는 사령관의 자리를 스쳐 지나갔다. 사령관은 고개를 살짝 돌려 조용하게 말을 했다.

  “내가 말한 대로만 연설하면 사후처리는 확실하게 해주지.”

  옛 지도자는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는 단두대로 끌려갔다. 그는 단두대에 엎드렸다. 옛날엔 생각 할 수도 없었던 옛 지도자의 최후의 모습이었다. 옛 지도자를 끌고 가던 사람이 마이크를 꺼내 옛 지도자가 말할 수 있도록 입 앞에 고정시키고는 돌아갔다. 사령관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옛 지도자가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사죄의 말을 한다고 합니다.”

  옛 지도자가 자신의 잘못을 공공연하게 말함으로써 사령관의 새로운 정권에 대한 반대세력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었다. 옛 지도자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의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국민들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습니다. 저의 무능력함에 국가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갔습니다. 국민들에게 돈을 착취하였고,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은 기억을 지운 후 다시 평생 노동일을 하였습니다. 고위 관리의 부패를 모른 척 했으며 서민들이 힘들어 하는 걸 알면서도 묵과했습니다.”

  사령관은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옛 지도자는 숨을 살짝 들이쉬고는 말을 시작했다.

  “이상 이것이 사령관이 저에게 말하길 원하던 것입니다.”

  그 예상치 못한 뒤의 말을 들은 사령관은 깜짝 놀랐다. 그러고는 단두대로 빠른 걸음으로 갔다. 옛 지도자는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저는 늘 국민과 국가를 위해 노력했으며 저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지도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으며 이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또, 여러분은 모를 겁니다. 그...”

  사령관은 발이 점점 빨라져서는 단두대로 뛰어가서 단두대를 조작하고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끊어.”

  그 순간 날카로운 날이 위에서 떨어졌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상이 있다. 이상과 이상이 충돌할 때는 피가 흐른다. 승자의 이상은 선이 되고, 패자의 이상은 악이 된다.

 

  에필로그 1-단심

 

  학교 호수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는 길에 누군가와 부딪혔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를 일으켜 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의 행동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안경을 엄지손가락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죽은 남편의 버릇이었다. 목소리도 남편과 비슷하고 덩치도 비슷했다. 나는 놀라움에 혹시나 싶어 그에게 나이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나이가 달랐다.

  이렇게 묻는 것은 남편의 죽음에 뭔가 찝찝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만 교수가 이 반지를 전해주면서 환류와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자세한 정황을 물었지만 그는 더 이상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연구실을 찾아가서 연구원들에게 물어봤는데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방관이라는 사람이 오만 교수가 어떤 실험을 하는 중에 남편이 죽어서 실험이 잠정 중단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만 전했다. 그리고 방관에게 그럼 아들이 죽은 이유를 물었더니 아들이 죽은 사실은 몰랐다고만 했다. 나중에 어떻게 된 일인지 오만 교수에게 갔지만 알 필요가 없다며 위협을 하고는 더 이상 말해주지 않았다. 그들의 말은 서로가 달랐고 앞뒤가 맞지 않았다. 당연히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지도자가 남편의 사망 당일 날 연구실을 지나갔다는 말을 들었다. 확신할 수 없지만 아마 그것과 관계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관계된 것이라면 나는 더 이상 어떻게 할 방법은 없다. 미치도록 슬프지만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편의점에서 만난 사람의 이름은 비상이었다. 며칠 뒤 비상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비싸 보이는 옷을 입고 고급 식당으로 갔다. 그가 남편과 비슷한 일을 한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대화를 하던 중에 비상이 자신의 어렸을 때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또 그의 말을 들어보니 남편이 없어진 시간대부터 이야기를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기억사형자의 나이도 국가에서 마음대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비상이 기억사형 당한 남편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니 모든 조각이 들어맞았다. 일단 기억사형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확신을 못해서 남편이 그냥 죽은 줄 알았지만 살아 있어서 기뻤다. 하지만 그는 나의 대한 모든 기억들이 사라졌다. 겉모습도 다르다. 그러고도 그가 남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그저 다른 사람에 불과했다. 그리고 비상이 남편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누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비상이 남편이라는 건 영원히 알 수 없다. 그래서 그와는 가끔씩 연락하는 친구정도의 사이에서만 지내기로 했다.

  기억사형에 사형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그것이 사형과 같다고 취급하는 것이다. 슬프지만 나의 남편이자 환류는 죽었다.

 

  에필로그2-지도자

 

  환류가 비상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건설현장에서 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연구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선 환류가 필요하다. 환류가 나의 생각을 이해해 줬으면 했었다. 이 모든 것은 국가를 위한 것이다. 국가를 위한 것은 곧 국민을 위한 것이다. 그 연구가 진행되어야 비용도 줄고 다른 나라와의 전쟁과 승산도 있다. 오랫동안 안정되었던 세계는 다시 흔들리고 있다. 지금 세계는 두 강대국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그 틈에서 비교적 작은 우리 국가가 살아남으려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 그 연구가 반인륜적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있어야 그 말도 통하는 것이다. 부모님이 국가를 이끌었던 세대에선 나처럼 지도자가 직접 설득을 하러 간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시대라면 환류의 가족들을 살해 협박을 하면서라도 연구를 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내가 너무 물러터진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환류가 일하는 그 군사기지로 출발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를 다시 대학에 보낼 수는 있다. 하지만 기억이 지워진 그가 다시 연구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일반 사람이라면 아마 그 가능성은 0일 것이다. 하지만 그라면 다를 수 있다. 그는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 그의 새로운 이름이 그걸 뜻하고 있는 것 같다. 오만 교수에게는 환류가 그 대학으로 간다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만은 똑똑한 사람이니까 말해주지 않아도 눈치 챌지도 모른다. 오만은 환류가 이번에는 제대로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말을 잘 해주었으면 한다.

  창밖으로 건설현장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가 비상이 일을 하고 있는 장소인가?”

  “네, 맞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말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말해 보거라.”

  “지도자님은 왜 시찰을 갈 때 미리 말하지 않고 당일 날 말씀하십니까?”

  비서가 당돌하게 그런 질문을 했다. 나와 사이가 많이 가까워지니 질문도 많이 하는 것 같다. 나는 늘 어디를 갈 때 그 직전에 말을 했다. 그것이 습관이 되었다. 나는 며칠 전에 미리 말하고 갈 수 있다. 즉흥적으로 갈 곳을 계획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미리 이야기 하고 가면 아랫사람들이 고생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러웠다.

  “그냥. 허허허.”

  나는 바깥에서 사람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 좋구먼.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 시간이 다가오기 전에 대비할 수밖에. 이제 더는 정보를 얻을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해야겠지.”

  비서는 그 말을 듣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잠입 정보원이 발각되어 살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평화의 끝이...”

 

  에필로그3-비상

 

  처형식이 끝난 후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 보았던 어두웠던 사람들의 표정은 점점 밝아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조금 더 자유로워졌고 여유로워졌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기 마련이다. 국가의 경제성장률은 줄어들었고 국고도 바닥이 났다.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옛 지도자와 지금 지도자를 하고 있는 1군 사령관은 목표는 같았다. 하지만 방법이 달랐다. 옛 지도자가 인간적으로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아니었을 뿐이다.

  이제 나는 다시 내 삶으로 돌아갔다. 다른 사람을 위해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한다. 기억을 지우는 것은 더 이상 범죄자들에게 사용하지 않는다. 치료목적으로 환자에게 사용한다. 그 마저도 대체제가 개발되면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1군 사령관이 혁명을 준비할 때, 환류의 죽음에 관련된 실제 있었던 사실을 단심에게 알려주었다. 단심은 그 이야기를 다시 나한테 들려주었을 때 크게 충격을 받았었다. 강요받아서 했지만 내 손으로 내 아들을 죽인 것과 다름없었다. 그 날은 한동안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 사건을 나에게 말해주는 것은 단심은 나를 예전의 나인 환류로 보지 않고 지금의 나인 비상으로 보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도 새로운 나로 볼 생각이다. 슬프지만 옛 사건은 잊을 생각이다. 어차피 기억나지도 않지만.

  그리고 나는 지금 결혼식장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신랑, 신부 입장.”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녀와 결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억사형자가 다시 예전에 동일한 아내와 결혼한다는 걸 국가에서 알았다면 매우 수상히 여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례자가 비상에게 말을 했다. 주례자는 굴레의 친구였다. 단정하게 입으니 그도 제법 멀쩡히 생겼다.

  “신랑 비상은 신부 단심을 평생 사랑할 것을 약속합니까?”

  “만약 제가 다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단심을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단심은 놀라서 고개를 휙 돌려 비상을 쳐다보고 그에게 말을 했다.

  “처음 결혼식 때 한 말과 똑같네요.”

  결혼식은 짧게 끝났다. 그리고 나와 아내는 바로 묘지로 갔다. 묘지에는 나와 나의 아들의 무덤이 있었다. 물론 나의 무덤 안에는 흙밖에 없을 것이다. 사고처럼 위장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리고 굴레와 승화의 무덤에도 갔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음 세상에서는 행복하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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