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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기억사형
작가 : 김광수
작품등록일 : 2020.8.4

사형수들의 기억을 지우고 사회로 보냄으로써 발생하는 이야기

 
기억사형(12)
작성일 : 20-08-04 16:10     조회 : 214     추천 : 0     분량 : 9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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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연구는 상당한 진척이 되었다. 조만간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도 할 계획이다. 연구원들은 비상 덕분에 연구가 잘 되고 있다며 하나같이 입을 모아 비상을 천재라고 불렀다. 비상도 천재라는 말은 과분하다고 하며, 자신의 노력을 보여준 것 같아서 기쁘다고만 하며 겸손하게 말했다. 예전의 기억사형자들에 대한 건망증 증세 치료법은 개량되어서 가까운 병원에서 간단하게 치료 할 수 있고, 또 정부에서 그 병의 치료비도 많이 지원해준다. 비상은 연구소에서의 활약 덕분에 돈도 많이 벌었다. 하지만 돈을 쓰진 않았다. 예전에 돈을 벌려고 고생했던 생각이 나서 돈을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고, 딱히 돈 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지금 살고 있는 기숙사에 정들기도 했고 사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이사를 가지 않고 그대로 살고 있어서 이사비용도 들지 않았다.

  비상은 오늘 휴가를 냈다. 연구원들에게는 일정량의 휴가를 주는데 그동안 바빠서 사용하지 않았었다. 요즘 휴가철이 돼서 다른 연구원들도 휴가를 많이 냈기도 하고, 몸이 너무 피곤해서 그는 일주일간 휴가를 냈다. 그는 학교 밖으로 나갈까 하다가 요새 운동을 하지 않아서 첫날에는 학교 호수에서 가볍게 달리기나 하기로 했다.

  비상은 편한 복장을 입고 호수에 도착해서 그 주변을 한 바퀴 뛰었다. 아침이라서 그런지 사람은 별로 없었다. 연구시설에서 일을 하게 되니 몸 쓰는 일이 없다보니 몸이 허약해지는 것 같았다. 처음 호수에서 운동 할 때는 한 바퀴는 거뜬하게 돌았는데 이젠 숨을 헐떡거린다. 비상은 지친 몸을 이끌고 호수 한편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고개를 숙이며 숨을 고르고 있는 와중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드리웠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비상은 그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올려서 누군지 확인을 해 보았다. 그는 바로 단심이었다. 그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비상은 제일 먼저 그녀의 양손에 반지가 끼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심란하지만 태연하게 말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제가 국가연구단지에 간 이후 너무 바빠서 연락을 못 하고 지냈네요.”

  단심은 비상이 앉은 벤치 옆에 앉았다.

  “저도 그 소식은 들었어요. 거기서 활약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활약까지는 아니고 열심히 하니까 결과가 나오는 것 같아요.”

  단심은 목소리를 나지막이 낮추고 말을 이었다.

  “지금 하고 계신일은 만족스러운가요?”

  “네, 당연히 만족하죠. 제가 원하던 걸 할 수 있고 적성도 맞고 흥미도 있어요.”

  “정말 그게 원하던 건가요?”

  비상은 그 말을 듣고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처음에는 안부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다시 묻는 것도 이상하고, 안부를 묻는 것 치고는 목소리가 어두웠다.

  “무슨 연구를 하는지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저는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며 성과도 내고 있어요.”

  단심은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살짝 보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보고 더욱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했다.

  “기억사형에 관한 연구요?”

  그 말을 듣자 비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국가연구단지의 사람도 아니면서 어떻게 자신이 하는 연구에 대해 알고 있는지 온갖 의문이 들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단심을 쳐다보았다. 비상도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했다.

  “어떻게 단심씨가 제가 그것에 관해 연구하는지 알고 있는 거죠?”

  “그 연구 그만해주셨으면 해요.”

  단심은 비상의 말에 대꾸는 하지 않고 자기 할 말을 했다. 그리고 비상은 단심이 그 연구라고 콕 집어서 말한 것으로 보아서 정확히 무슨 연구를 하는지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비상이 하고 있는 일은 국가기밀이기 때문에 자격이 없는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 자체가 사형까지 당하는 죄이다.

  “제가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계신가보네요. 그에 관해서는 못들은 걸로 해 드릴 텐데, 저의 연구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하고 있는데 왜 그만 두라는 거죠?”

  “그 연구가 정말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대답을 원하시는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은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전부 국가의 발전을 위한 것입니다.”

  비상은 약간 흥분한 채로 말을 했다. 목소리가 커져서 주변에 들릴 뻔하였다. 그 순간 누가 비상의 이름을 불렀다. 단심과 비상은 놀라서 동시에 움찔거렸다.

  “안녕하세요. 멀리서 봤을 때 비상씨 닮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맞네요. 비상씨도 휴가 내셨나보네요.”

  비상은 그의 얼굴을 보고 살짝 안심이 되었다. 그 사람은 연구실에서 같이 일 하고 있는 승화였다. 비상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아 반갑네요. 저도 휴가 내서 호수에서 운동 좀 하다가 잠시 쉬고 있었어요.”

  비상은 최대한 침착하게 말을 했다. 단심이 국가기밀을 알고 있는 사실을 남들이 알게 되면 사형에 처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단심은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럼 전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다음에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죠.”

  단심은 조용하게 말을 하고는 그 장소를 급하게 빠져나갔다. 비상도 승화와 간단한 안부만 주고받고는 자리를 떠서 기숙사로 돌아갔다. 기숙사로 돌아와서는 침대에 누워서 골똘히 생각했다. 일단 단심은 누구인가? 사실 그냥 조금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 일로 그녀는 뭔가 숨겨진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떻게 그녀는 비상이 하고 있는 연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는가? 그것은 국가연구단지에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알려줄 가능성도 있다. 그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최근에 알게 된 것 같았다. 어쨌든 그것이 알려지면 단심과 정보제공자 둘 다 사형이다. 아니면 단심이 보안 관련 일을 하기 때문에 스스로 해킹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왜 실험을 중단하라고 했을까? 단순히 비윤리적이라서 그런 것인가? 생각해보면 기억을 조작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먼저 범죄자들이 비윤리적 행위를 했기 때문에 그 정도 고통은 겪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범죄자들이 하는 범죄에 비하면 기억을 조작하는 것 정도는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단심이 우연히 비상의 연구를 알게 되었는데 그게 단순히 비윤리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사형당할 위험 처할 각오로 비상에게 말 할 이유가 있을까? 비상이 들었던 것을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비상은 한참이나 생각을 했지만 혼자서 생각을 해도 추측만 할 뿐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비상은 점심을 먹고 다시 학교 주변을 산책하면서도 단심과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단심을 신고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라도 비상이 오늘 있었던 일을 신고하지 않아서 생기는 불이익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렇게 하여도 이상하지 않지만 신고하는 것은 왠지 내키지 않았다.

  비상은 생각을 하다가 예전에 학교 연구실로 누가 있을까 싶어서 가보기로 하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람의 기척이 없었다. 비상이 예전에 있었던 자리는 깨끗하게 비워져있었다. 역시 휴가철이라서 아무도 없나 싶어서 나갈려던 찰나에 칸막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었던 방관이 불렀다.

  “어, 비상이니? 여기엔 무슨 일로 왔어?”

  “방관선배는 휴가 안 가셨나보네요. 저는 옛날생각이 나서 기분전환 삼아 와봤어요.”

  비상은 방관이 내심 반가웠다. 방관은 학교연구와 국가연구시설연구를 모두 하는데 요즘은 학교연구에만 신경을 쓴다고 자주 보지 못하였다.

  “나라도 연구실 지켜줘야 하니까.”

  비상은 뭔가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방관은 그 모습을 보고 먼저 말을 걸었다.

  “무슨 고민 있어?”

  비상은 그냥 가버릴까 하다가 방관이 그렇게 묻기에 대화를 해보기로 하였다.

  “국가연구시설 때문에요.”

  “잠시만 그 이야기는 옆에 회의실로 가서 하도록 하자.”

  아무래도 연구실은 갑자기 누가 들어올 수도 있거나 엿들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회의실로 가기로 했다. 방관과 비상은 연구실 근처에 있던 회의실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소파에 앉았다.

  “그래 표정을 보니까 좀 진지한 이야기 같은데 무슨 말을 하려고 했어?”

  비상은 목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했다.

  “제가 국가연구시설에서 하고 있는 연구가 무엇인지 알고 계시죠? 기억조작 프로젝트요.”

  “최근에 어디까지 연구가 됐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뭘 하는 건지는 알지. 예전에 내가 그 연구에 참가도 하려고 했어. 지금은 관뒀지만.”

  방관은 그 연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내용은 알고 있었다. 비상은 방관이 그 연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는 도움이 많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연구를 하는 것이 옳은가요? 아... 아니, 그러니까 그 연구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연구가 맞는 건가요?”

  방관은 깍지를 끼고 테이블에 손을 올려놓고 이야기 했다.

  “사실 말이야 국가에서 중요한 연구라니까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는 없는데 뭔가 찝찝한 구석이 있었어. 그 연구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

  “연구내용을 보면 별다른 이상한 점은 없잖아요. 그냥 일반적으로 국가연구단지에서 하던 연구와 비슷한데 지도자님이 좀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 정도 말고는요. 근데 생각해보니 그렇게 신경 쓰고 있던 실험이 왜 중단되었을까요?”

  그 말을 하자 분위기가 무거워졌고 방관은 혀로 입술을 다셨다. 짧은 정적이 끝나고 그는 뭔가 결심한 듯 말을 했다.

  “나도 직접 본 건 없지만 전해들은 것으로는 그 실험을 하던 도중에 핵심 연구원이 사망하는 일이 있어서 중단된 것으로 알아.”

  비상도 예전에 실험을 하다 죽었다는 연구원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 연구와 관련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 왠지 모를 공포감이 들었다.

  “혹시 무엇 때문에 죽은 줄 아시나요?”

  “오만 교수님이 사고사라고 말하시더라고. 더 구체적인 것은 몰라. 연구실에서 누가 죽은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니 다들 쉬쉬하면서 넘어갔지.”

  그들은 결론이 없는 대화를 끝냈다. 방관은 자신이 했던 말은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는 학교연구실로 돌아갔고 비상은 기숙사로 돌아갔다.

 

  며칠이 지났다. 비상은 학교 밖으로 나갈 계획도 취소하고 자신이 기억사형 당한 후 지금까지의 일을 되돌아보았다. 얼마 전만 해도 기억사형자이긴 해도 삶이 행복했는데 지금은 뭔가 불안함 속에 있다. 행복이라고 느꼈던 것이 누군가가 만들어낸 가짜행복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단심에게 그런 말을 듣지 않았으면 지금도 평소 하던 것처럼 살고 있었을 것이다. 단심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비상은 휴대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진실을 알고 불안정한 삶을 살 것인가? 진실을 모르고 현실에 안주하며 살 것인가?

  비상은 태생부터 연구원 기질이 있는 것 같았다. 궁금한 것은 반드시 알아야 했다. 비상은 단심에게 전화를 했다. 단심은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고 나갔다. 그들은 호수에서 만났다. 그리고 호수에서 관광용 보트를 빌려서 주변에 다른 보트가 없는 호수의 중앙까지 갔다. 단심은 그제야 말을 시작했다.

  “여기라면 아무도 우리 대화를 듣지 못할 것 같네요.”

  비상은 굳이 대화를 하러 여기까지 올 필요가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단심이 학교내부엔 감시카메라도 있고 이야기가 길어지면 감시자들이 들을지도 모른다고 말을 했다.

  “그럼 전에 하려던 이야기가 무엇인가요?”

  “그 연구는 계속 하실 생각이신가요?”

  단심은 비상의 질문에 답은 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밀어붙였다.

  “왜 하지 말라는지, 저를 설득할 타당한 이유가 있으면 그만 두겠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주변에는 잔잔한 물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단심은 무서운 눈빛으로 말을 했다.

  “그 연구는 말이죠……. 국가에 무조건 복종하는 인간병기를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비상은 너무 말도 안 되고 충격적인 내용이라서 믿을 수가 없었다.

  “제가 그 연구에 주축으로 일하고 있어요. 그런 저도 그 내용은 알 수 없었는데 어떻게 단심씨가 알고 있는 거죠? 아니 그보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있어요? 단순히 연구내용만 보고는 확대해석하는 것 같은데요.”

  “저도 그들에게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어요.”

  “그들이요? 그들이 누구죠?”

  “구체적으로 말해줄 순 없지만 이 나라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라고만 해두죠.”

  비상은 일이 이번 일이 점점 심각해져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럼 그들을 신뢰할 수 있나요?”

  “솔직히 그들을 신뢰하진 못해요. 하지만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면 지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요.”

  “왜 그들이 단심씨에게만 그런 정보를 알려준 거죠? 저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비상은 점점 억양이 올라갔다. 단심에게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흥분되었다. 단심은 다시 조근조금 이야기 했다.

  “혹시 반사회지수라는 것을 아세요? 국가기밀까지는 아니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어요. 사회에 반항하는 행동을 하면 그것이 개인정보에 기록돼요. 보통 그걸 기록 하는 사람은 국가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죠. 그러다 그 수치가 일정이상 넘어가게 되면 기억사형에 처하게 되죠. 그래서 이거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은 반사회적인 언행을 조심 하라고 하죠. 그리고 그것 때문에 권력을 쥔 사람들에게 함부로 못하는 거죠. 벌써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것이 느껴지죠? 계속해서 이야기 하자면 저의 가족들은 국가에 반항했다는 이유로 죽었어요. 그리고 저는 반항한 사람들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반사회지수가 상당히 올라갔죠. 그런데 누군가가 개개인의 사람들의 반사회지수 정보를 얻게 되었고 반사회지수가 높은 그 사람들에게 국가의 진실을 조심스럽게 알려 준거죠. 국민들을 통제하려고 만든 반사회지수가 정부에게 위협이 될 줄 몰랐겠죠. 저는 비교적 사회에서 높은 위치라서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하기 때문에 먼저 알려준 것 같아요.”

  비상은 머릿속으로 그동안의 수많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단심의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비상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단순히 연구를 그만둘 수는 있지만 임상실험단계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비상이 그만둔다고 실험이 중단될 것 같진 않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제가 연구를 그만 둘 생각은 있지만, 아마 별반 달라질 것 없을 것 같네요.”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요. 머지않아 이 나라에 큰 변화가 있을 거예요. 그 때 비상씨도 선택해야 될 거에요. 예전처럼 옳은 선택을 하길 바랄게요.”

  그 말을 끝으로 노로 보트를 저어서 지상으로 돌아갔다. 처음 보트를 타고 호수 중앙으로 갈 때는 데이트 하는 느낌도 약간 들었는데 돌아갈 때는 왠지 노가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비상은 지금까지 자신이 나쁜 선택은 한 적 없다고 믿었지만 지금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보다 왜 선택을 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비상은 기숙사 침대에 다시 누웠다. 예전의 딱딱한 방에 누웠을 때보다 훨씬 편안했다. 그는 예전에 막노동하면서 고생한 것만 생각하면 지금처럼만 계속 살고 싶을 뿐인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한탄했다. 차라리 단심이 가족들을 잃어서 충격에 빠진 나머지 정신이 이상해져서 그렇게 되었다고 믿고 싶을 정도였다.

  비상은 기숙사에서만 남은 휴가를 다 보냈다. 휴가가 끝나고 비상은 평소처럼 다시 국가연구단지에 갔다. 국가연구단지가 평소보다 다르게 보였다. 보이는 건 그대로인데 왠지 모를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다른 연구원들이 평소처럼 맞이해 주었다. 컴퓨터로 찾아보는 사람도 있었고, 기계가 잘 작동하는지 테스트 하는 사람도 있었고,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든 것이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비상은 그 모습을 보며 왠지 마음이 놓였다. 평소와 다른 것은 비상의 마음가짐뿐이었다.

  비상은 지금 하고 있는 연구의 자료를 확인해보았다. 역시 인간병기라던가 그런 이상한 정보는 기록되지 않았다. 역시 단심의 억측에 불과한가 싶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것에 관해 한 번 떠보고 싶었지만 괜히 수상한 말을 해서 이상한 눈으로 볼까봐 말은 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소극적이긴 했지만 연구를 계속 하기는 했다. 하지만 단심의 말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혹시 단심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알지도 모르니, 승화에게 살짝 물어보기로 하였다.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이라면 혹시나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승화씨 며칠 전에 호수에서 봤을 때 제 옆에 있던 여성분 있었죠?”

  승화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기억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 여성분이요? 아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오자마자 가버려서 잘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혹시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 있어요?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이면 한 번 쯤 들어볼 만 했을 텐데요.”

  승화는 고개를 약간 갸우뚱 거렸다.

  “당연히 저야 모르죠. 그리고 그렇게 유명할 정도로 아름다운지는 잘 모르겠던데…….”

  역시 그녀에 대해서 아는 건 없는 것 같았다. 비상은 승화의 여자 보는 눈이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넘겼다.

  며칠이 지나 임상실험 날이 되었다. 단심이 했던 말과는 다르게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비상이 근래 몸 상태가 안 좋다고 하며 연구를 대충 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단계가 지나버렸기 때문에 일정대로 실험은 진행되었다. 비상은 오만 교수와 실험실에 같이 들어가서 실험 하는 것을 자세히 보았다. 환자를 마취시키고, 뇌 스캐너로 환자의 머릿속을 파악하고, 마이크로 칩을 뇌혈관에 집어넣었다. 계속 실험을 진행하였다. 비상은 직접 수술을 집도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수상한 부분이 있는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계속 확인하였다. 하지만 별 다른 점은 없었다. 실험은 당초에 설계했던 대로 똑같이 진행되었다. 임상실험이 끝난 피실험자는 따로 방에 격리되었다. 비상은 그 환자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일단 연구원들은 그가 기억을 잃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 모습을 보니 처음 기억사형 당하고 눈을 떴던 비상의 첫날의 모습과 비슷했다. 그 피실험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연구원과 간단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그의 죄목은 살인이었다. 그의 부모님도 전과가 있었고 또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폭력적인 모습을 많이 보고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살인 이전에도 각종 폭력과 관계된 전과가 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분노조절 장애도 있다고 했다.

  드디어 지금 상황에 대한 설명이 끝난 듯 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면담을 시도했다. 비상은 말없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구경을 했다.

  “지금 기분이 어떻습니까?”

  “제가 살인을 했다는 점은 매우 죄송합니다. 죽었어도 마땅한데 이렇게 살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이후로도 그에게 말을 계속 했지만 반응은 이와 같았다. 실험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의 폭력적인 성격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연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심박수와 다른 정보를 보아도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성격은 예전과 다르게 온순해졌고 또 자신은 앞으로 죄짓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보통 기억사형을 당하더라도 기억은 잃을지언정 기본적인 성격은 조금 남아있기 마련인데 그는 예전의 모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비상은 실험이 잘 되었다는 것에 쓴 웃음을 지었다. 이것으로 오랫동안 준비했던 대형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난 것 같았다. 오만 교수는 모두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하면서 박수를 쳤다. 연구원들도 따라서 박수를 치고 환호를 했다.

  오만 교수는 비상을 따로 불러서 비상의 기여가 크다면서 조만간 있을 지도자와 식사를 할 때 같이 가도 되니 가자고 했다. 비상은 매우 기뻤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피실험자의 새로워진 모습을 보니 그동안 했던 나쁜 생각들은 모두 잊혀지는 느낌이었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그 피실험자와 같은 부류인 경우에는 그냥 기억사형만 당했다면 다시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지만 저렇게 온순해졌다면 아마 타인의 말을 잘 들으며 사회에 잘 순응할 수 있을 것이다. 비상은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타인의 말을 잘 듣고 사회에 순응한다? 좋게 말하면 그렇게 되지만 나쁘게 말하면 국가에 복종한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비상은 고개를 쌔게 가로 젓고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고 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말을 잘 듣는 사람일 뿐 인간병기는 될 수 없다. 그 정도의 복종하는 사람을 만들고 싶으면 군인을 더 모집하면 된다. 군인들도 국가에 충성하며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데 기억을 조작당한 사람과 차이점이 크게 없었다. 비상은 더 이상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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