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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기억사형
작가 : 김광수
작품등록일 : 2020.8.4

사형수들의 기억을 지우고 사회로 보냄으로써 발생하는 이야기

 
기억사형(9)
작성일 : 20-08-04 16:05     조회 : 209     추천 : 0     분량 : 9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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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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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기가 끝나고 비상에게 다시 일주일간의 휴식이 찾아왔다. 비상은 늦게까지 잠을 자는데 손목신분증에서 문자가 왔다는 것을 보고 손을 뻗어 침대 옆 테이블에 올려져있는 휴대전화기로 문자를 확인했다.

  [귀하의 ‘기억의 용량을 늘리기 위한 실험’ 논문이 통과 되었습니다. 귀하는 생명공학부의 졸업요건이 충족되므로 생명공학부의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9월 29일에 있는 졸업식에 참석하시길 바랍니다.]

  비상은 그 문자를 보고 침대에 누운 채로 만세를 하듯 기지개를 폈다. 이불을 얼굴까지 덮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편안하게 눈을 감고는 다시 잠에 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누구보다 정말 열심히 했다. 그래서 이렇게 쉬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비상은 벌떡 일어나서 목을 돌리면서 스트레칭을 해주었다. 문자를 다시 확인한 후 꿈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비상은 산뜻한 마음으로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학교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이렇게 움직여줘야 조금이라도 건강해 질 것 같아서 일주일에 한 두 번은 공원으로 가서 간단한 운동을 하고 온다. 공원에는 분수대가 있고 나무들이 규칙적으로 심어져 있으며 꽃들도 있어서 마음까지 상쾌해진다. 비상은 근래 들어서야 비로소 이 사회의 한 무리가 된 것 같았다. 비상은 공원을 한 바퀴 돌며 여유로운 휴일을 보냈다.

  며칠 뒤 졸업식 당일이 되었다. 비상은 발표 때 입었던 옷을 입고 졸업식장으로 향했다. 졸업식은 전 학부 통합으로 진행되었다. 커다란 강당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과 별로 나누어 자리에 착석했는데 비상이 속한 생명공학부는 사람이 몇 명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졸업식이 1년에 4차례나 있기 때문에 참석 하는 사람이 얼마 없을 수밖에 없다. 주변을 보니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와서 졸업을 하는 사람에게 꽃다발을 전해주었다. 그는 빈손으로 그 모습을 구경했다. 가만히 구경하고 있는 비상에게 누군가 다가와서 어깨를 손바닥으로 쳤다.

  “비상 축하한다. 자 여기 꽃다발”

  그 사람은 바로 방관이었다. 방관은 자그마한 꽃다발을 준비해서 비상에게 주었다. 비상은 꽃다발은 두 손으로 받았다.

  “감사합니다. 꽃다발 못 받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받게 되네요.”

  비상은 감격스러워서 살짝 눈물이 흐를 뻔 했다.

  “가족들은 안 오셨어?”

  그 말을 듣고 눈물이 쏙 들어가고 뜨끔했다.

  “아 그게 바쁘다고 하셔서요. 집이 좀 멀기로 하고. 곧 찾아간다고는 말했어요.”

  “그래도 아들 졸업식은 와 줘야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여기에 다른 사람들도 왔어.”

  방관의 뒤로 수업 중에 자주 봤었던 얼굴들이 몇 명 나타났다.

  “비상 형 졸업 축하해요.”

  그들은 나름 수업하면서 알게 된 사이라 친하게 형이라고 불렀다.

  “고맙다. 너희들도 온 줄 몰랐네.”

  “덕분에 재이수 할 뻔했던 수업을 한 번에 이수했고 과제도 많이 도와주셨으니 당연히 와서 축하해주어야죠.”

  이렇게 졸업식에 찾아주는 사람이 많으니 헛살지는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 무대에서는 축하공연도 하고 대학 총장의 말도 간단히 진행되었다. 짧은 졸업식을 마칠 때쯤 오만 교수가 찾아와서 다 같이 식사나 하자고 했다. 부모님이 오셔서 따로 먹겠다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졸업식에 참석한 생명공학과 10명 남짓한 사람이 다 같이 식당에 가서 즐겁게 식사를 했다. 비상은 주로 식사를 혼자 해결했는데 다 같이 식사를 하니 화기애애하고 나름 좋았다. 식사를 마친 후 그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비상도 기숙사로 가려고 하는데 오만 교수가 비상을 붙잡으며 시간 되면 같이 대화나 하자고 해서 딱히 할 일도 없던 비상은 승낙했다.

  오만 교수는 연구실 근처에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비상도 뒤따라 들어갔다. 그러자 교수는 문을 잠그고 회의실을 한 바퀴 걸어 다니며 둘러보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소파에 앉았다. 비상에게도 맞은편에 앉으라고 했다. 평소와 다른 행동이 뭔가 중요한 말을 할 것 같아서 비상은 침을 꼴깍 삼키며 집중했다.

  “졸업하고 나니 기분은 어떤가?”

  “기쁘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기분도 들어요.”

  비상은 지금 복잡 미묘한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그래 졸업하면 다 그렇지. 졸업하면 보통 무얼 하는지 알지?”

  “네, 보통 국가 공직이나, 국가연구단지 같은 곳으로 가지 않아요?”

  비상은 옛날에 책자에서 봤던 내용을 기억해냈다.

  “그래 맞아. 넌 나와 같은 연구를 하기로 해서 아마 연구단지로 들어가게 되겠지.”

  “네, 맞습니다.”

  비상은 졸업하게 되면 바로 국가연구단지에서 같이 일을 하기로 약속 되어 있었다.

  “거기엔 국가기밀이 많아. 함부로 건드렸다간 큰일 나지. 너도 그곳에 들어가기 전에 서약서를 작성할게 될 거야. 그냥 동의한다고만 체크하면 돼. 동의하지 않으면 대학에 남아서 중요하지 않은 일만 계속 하게 되지.”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 나의 지도하에 시키는 걸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비상은 국가연구단지에서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굳은 의지가 담긴 목소리로 말을 했다.

  “허허 그렇다면 다행이네. 자네 혹시 내가 특히 어느 분야에서 연구 중인 줄 알고 있나?”

  “뇌 과학 분야에 연구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녀석 아무것도 모르구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국가기밀에 관련된 말이니 외부로 발설하면 안 돼. 어차피 곧 알게 될 일이라서 알려 주는 거지. 내가 하는 말 들을 준비는 됐나?”

  비상은 자세를 바로잡고 침착하게 대답을 했다.

  “네, 준비 됐습니다.”

  “내가 연구하는 분야는 바로 기억에 관한 분야지. 뇌에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이 어디인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연구하고 응용하는 분야라네.”

  비상은 긴장했던 것을 다시 풀었다. 그건 비상이 다 아는 내용이었다.

  “허허 자네 표정을 보아하니 국가기밀이라고 해놓고 별 이야기를 안 해서 실망한 표정인거 같구먼. 이게 국가기밀이었으면 말도 안 꺼냈지. 이걸 적용하는 분야가 어디인줄 아는가? 바로 기억사형이라네.”

  그 말을 듣고 비상은 돌이 된 듯 몸이 굳었다. 그동안 모든 사람들이 기억사형 자체를 언급하는 것을 회피했었다. 비상이야 그런 말 자체가 안 나오는 것이 좋았다. 괜히 그것에 관련된 말이 나오면 자신이 기억사형자인 것이 들키지 않을까 조마조마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을 하고 게다가 연구를 한다니 놀라는 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좀 놀라는 것 같구먼, 자네도 기억사형이 무엇인지 알지?”

  기억사형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모를 수 없었다.

  “네, 저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은 들었습니다.”

  “그럼 내가 기억사형을 만든 것은 당연히 모르겠네?”

  그 말을 듣고 비상은 다시 한 번 놀라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만들었다기보다 내가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논문을 전에 말했던 그 사람과 공동으로 완성하고 발표 한 뒤에 지도자님이 제도로 도입 한 거지. 지도자님은 여기 자주 시찰 오시고 나와도 많은 대화를 할 정도로 친분이 있지.” 비상이 놀라는 와중에 오만 교수는 은근슬쩍 인맥 과시도 했다.

  “그...그렇군요.”

  “생각보다 많이 놀란 것 같군. 하긴 그럴 수밖에 없지.”

  “오만 교수님께서 생각보다 훨씬 위대한 사람인 줄 몰라서 놀랐습니다.”

  비상은 칭찬받는 걸 좋아하는 오만 교수를 위해 과장되게 그런 말을 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놀라고 그러나. 내가 한 업적을 보면 앞으로 더 놀랄게다.”

  “와, 정말 기대되네요.”

  “자네 발표논문은 잘 보았네. 학부생 수준에서 그렇게 대단한 논문을 쓴 경우는 몇 없었지. 물론 내가 많이 도와주긴 했지만 말이야. 자네는 그게 어디 사용될지 잘 몰랐겠지만 기억사형과 관련되어 있다네. 자세한 이야기는 국가연구단지에 들어오게 되면 해주겠네.”

  “네...알겠습니다.”

  오만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비상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치고 문으로 향하다가 고개를 비상 쪽으로 살짝 돌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오늘 들었던 내용은 발설하지 말게. 국가보안법 위반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비상은 소파에 완전히 등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짧은 순간 많은 것들이 지나갔다. 자신이 연구하게 될 것이 뇌에 관한 것인 줄은 알았지만 기억사형에 관한 것인지는 몰랐다. 오만 교수가 기억사형을 만든 것도 몰랐고 기억사형제도가 도입된 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은 것도 몰랐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냥 지금처럼 제 할일을 계속해서 하면 되는 것이다. 비상은 입을 꼭 다문채로 기숙사로 돌아갔다.

 

  며칠 뒤 오만 교수가 다시 불렀다.

  “휴일엔 잘 쉬었는가? 자네는 이제 대학원생이기도 하면서 연구원이라네. 대학교에 있는 연구실에서는 책에 있는 내용을 배우고 국가연구시설에선 전에 내가 말한 걸 연구하면 된다네. 자 그럼 나를 따라오게.”

  오만 교수는 생명공학관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에 탑승했고 비상도 대각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자동차는 국가연구시설로 향했다.

  “자네, 연구시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는가?”

  “정확히는 모르지만 학교의 동쪽에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계속해서 달린 후에 학교의 벽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거기서 연구한 내용을 시설 밖으로 발설하지 말게. 학교로 돌아가서 그 연구를 해도 안 되네. 학교에서 하는 연구와 시설에서 하는 연구는 별개니까 말이지.”

  “네, 알겠습니다.”

  비상은 자신이 비밀이 점점 많아지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자동차는 학교 구석에 있는 벽으로 가더니 산과 인접해 있는 벽까지 왔다. 주변은 도로밖에 없고 무성한 풀들이 있었다. 도로의 끝엔 벽이 있었고 거기엔 터널이 있었다. 터널은 4차선 도로인 만큼 크기가 컸다. 그 터널은 보통 사람들이 출입하는 통로와 달라보였다. 터널 입구엔 차단봉이 자동차가 가는 길을 막고 있었다. 오만 교수가 창문을 열고 손목신분증을 옆에 있는 기계에 가까이 갔더니 차단봉이 열렸다. 그리고 자동차는 내리막길로 내려가더니 끝없이 기다란 지하 터널을 달렸다. 비상은 신기해서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여기에 처음 와봐서 신기한가 보네.”

  “학교에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어요.”

  “학부생은 모르는 게 정상인거야.”

  오만 교수는 뒷거울로 비상을 힐끔 보았다.

  “여기서 일 하게 되면 자네는 돈을 많이 벌게 될게야. 물론 성과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너 정도 실력이면 못해도 1년 이면 집 한 채 살 정도 벌겠지.”

  비상은 그 말을 듣고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이 받아서 입이 떡 벌어졌다. 그는 속으로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대화를 하던 와중 자동차는 터널의 끝에 도착했다. 붉은 빛이 자동차 위로 지나가더니 문이 위로 열렸다. 문이 열리자 햇빛이 비췄다. 차가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국가연구시설이 나타났다. 국가연구시설도 엄청난 높이의 벽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데 건물들은 생각했던 것 보다는 작았다. 대학교의 건물을 생각해서 그것과 비슷하거나 더 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낮은 건물들이 띄엄띄엄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풍경은 대학교의 모습과 비슷하게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오만 교수는 터널 바로 근처에 있는 건물로 다가가서 차를 주차하고 그 건물 안으로 비상을 데려갔다. 그 안에는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검은 옷과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오만 교수하고 대화를 몇 번 나누다가 비상에게 서약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서약서는 책상위의 눕혀져 있는 모니터에 나타났다. 그 서약서엔‘국가연구시설의 모든 정보는 외부로 유출시키지 않는다. 만약 이를 어길시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된다.’, ‘특별한 사유에 의해 국가연구시설의 연구원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다.’와 같은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비상은 서명을 하고 자신의 지문을 모니터 옆의 기계에다가 찍었다. 그리고 그에게 붉은 빛이 나는 곳을 쳐다보라고 해서 쳐다보았다. 아마 얼굴을 인식시키기 위한 것 같았다.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두드리다가 비상에게 손목신분증을 있는 손을 내밀라고 해서 내밀었더니 손목신분증에다 볼펜 모양의 기계로 툭 쳤다. 그러더니 인증이 다 되었으니 이제 가도 된다고 하였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비상은 차에 다시 타고 한참을 달렸다. 건물은 작지만 곳곳에 있었고 이곳의 넓이는 엄청 넓었다. 한참을 달린 후에 목적지에 도착한 듯, 그들은 차에서 내려서 2층으로 된 하얀 건물에 들어갔다. 이곳이 오만교수가 연구하는 시설로 보였다.

  “저는 국가연구단지라고 해서 건물들이 엄청 큰 줄 알았는데 건물들이 하나같이 다 작네요.”

  앞서가던 오만 교수가 허허 웃었다.

  “잠시 후에도 그런 말 나오나 보겠네.”

  비상은 의문을 품은채로 뒤따라갔다. 건물 입구에서 또 인증을 받았다. 비상은 주변을 둘러봤는데 기대했던 것 보단 별 게 없었다. 그들은 건물 안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고작 2층밖에 안 되는 건물에 왜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지원을 많이 받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비상은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자 놀랐다. 왜냐하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갔기 때문이다. 한참을 내려간 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거대한 연구단지가 눈에 보였다. 비상은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연구실은 끝이 안 보일정도로 무척이나 넓었고 수많은 기계장치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벽 끝에는 문이 여러 개 있었는데 그곳도 실험실로 보였다. 천장에는 기계팔로 되어 있는 것이 붙어있어서 실험보조를 하고 있었고 바닥에는 바퀴달린 정육면체처럼 생긴 로봇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유리로 된 칸막이가 여러 개 있었는데 그 곳에서도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흰 옷을 입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제각기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 오만 교수를 본 몇 명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오만 교수는 하던 일을 계속 하라고 지시하듯 연구원들에게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 비상을 힐끗 보았다.

  “어때? 자네가 상상한 것 이상이지?”

  비상은 아직도 신기함이 가시지 않은 듯이 고개를 계속해서 두리번거렸다.

  “네, 이정도 인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제가 마치 미래에 온 것 같아요.”

  비상은 이곳에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 흥분되었다.

  “보이는 모습뿐만 아니라 우리가 연구하는 것도 미래를 위한 연구들이지. 이 국가의 미래는 이 국가연구시설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하는 것도 과언이 아니지.”

  오만 교수는 매우 자부심이 있는 듯이 고개를 들고 계속해서 앞장서서 걸었다. 그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들을 가리키면서 비상에게 이것이 무슨 실험인지 간략하게 설명했다. 워낙 하고 있는 실험이 많아서 간략하게 설명했는데도 한참을 얘기하면서 걸었다. 계속 걷다가 오만 교수의 방으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 방의 벽에는 커다란 모니터 화면에 현재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켜져 있었고, 반대편 벽에는 창문이 있어서 문 바깥에 연구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였다. 물론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 비상은 오만 교수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자네도 알겠지만 내가 무척이나 바쁘다. 수업도 해야 하고 여기서 연구도 해야 하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야. 그래도 나정도 되니까 이렇게 한 거지.”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비상은 반쯤 의무적으로 대답을 했다.

  “예전엔 똑똑한 사람이 있어서 진행이 착착 됐는데 요샌 연구원들이 당최 뭘 하는 건지 성과를 낸 게 없어서 힘들어. 똑똑한 사람이 좀 들어와야 연구가 잘 진행 될 텐데……. 그래서 자네한테 기대를 많이 걸고 있네.”

  비상은 기대한다는 그 말에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다.

  “네, 제가 할 수 있는데 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연구원들은 방관처럼 학교에서 하는 연구와 여기서 연구를 같이 하는 사람도 있고 여기에서만 일하는 사람도 있지. 자네는 여기서 연구를 주로 했으면 하네. 아까 말했듯이 지금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아직 성과를 낸 게 없어서 자네가 여기에 전속 연구원으로 일 해주면 하네.”

  “그런데 학교에서 하는 연구와 여기서 하는 연구는 뭐가 다른가요?”

  “뭐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것과 공개되지 않는 것 정도의 차이라고 해두지. 자네도 연구 내용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을 갔을 텐데.”

  “정확하게 구분이 안 가서요.”

  “하나 예를 들어주지. 자네가 전에 졸업논문으로 발표한 것 있지? 그거 자네가 어디에 사용될 거라고 말했나?”

  비상은 손톱을 깨물고 기억을 했다.

  “알츠하이머 환자를 치료하는데 쓰인다고 했어요.”

  오만 교수는 눈썹을 살짝 들썩였다.

  “그래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알겠지. 그래 뭐 틀린 건 아니지 알츠하이머 환자 치료하는데도 쓰이는데도 사용할 거니까.”

  비상은 그 말에 의문을 품었다. 자신이 발표한 논문인데 자신도 모르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 모순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불안감을 가진 채로 물었다.

  “그럼 또 어디 사용되는 곳이 있나요?”

  오만 교수는 의자에 기댔던 허리를 살짝 굽히고는 무게를 잡으며 말했다.

  “최근 들어서 초기 기억사형자들에게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지. 그들 중 몇몇 사람들이 말이야 새로운 걸 가끔씩 기억을 못하더군. 방금 봤던 건데 아예 못 본 것처럼 행동하는 거지. 그래도 한 번 기억한 건 기억을 잃지 않더라고.”

  그 말을 듣자 비상은 굴레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오만 교수가 말하는 증세가 굴레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저도 건설현장에서 그런 사람 몇 명 봤습니다.”

  “다행히 우리가 선동한 덕분에 일반 사람들은 머리를 안 써서 생기는 그저 단순한 질병으로 생각하고 있지. 하지만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사람들이 기억사형자들에게 생긴 것이라고 눈치 챌 것이고, 국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더 심해지면 그들을 중심으로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지. 뭐 반란이 일어나봐야 아무것도 못하고 진압되겠지만 말이야.”

  비상은 오만 교수가 들릴 정도로 침을 꼴깍 삼켰다.

  “하여튼 말이야 이 증세가 1~2년 전부터 초기 기억사형자들로부터 확산되었단 말이지. 내가 임시방편으로 해결책은 만들었는데 완치는 안 되더라고, 또 내가 이 연구만 붙들고 하는 것도 아니라서 말이지. 이걸 푸는 아이디어를 좀 얻어 보려고 내 시험에 그 문제를 내봤지. 여기서 일을 하면 틀에 박힌 사고 때문에 진전이 안 되는 경우가 있거든. 그래서 혹시나 건질게 있을까 작은 기대를 했었는데 예상을 뒤엎고 엄청난 결과가 나왔지. 그게 자네 논문의 내용이야. 말이 좀 횡설수설했다만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 네 논문은 바로 기억사형자들의 기억력을 회복시키는 치료를 하는데 사용된다는 뜻이지.”

  비상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시험 문제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출제 했다는 것에 놀랐고, 자신이 논문을 작성하면서도 그렇게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서 한 번 더 놀랐다.

  “네 논문을 보니 참 신기하더군. 마치 기억사형의 원리를 아는 듯이 작성했더군.”

  비상은 기억사형자가 어떻게 되는지 교도소에서 무엇을 하는지 그 정도는 알아도 기억사형의 원리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아니오,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거짓말 한 것은 아니라서 떳떳하게 말했다.

  “그렇게 흥분하지 말게 학생이었던 자네가 그걸 안다고 말한 게 아니니까.”

  비상은 그 말을 듣고 오만 교수가 비상이 국가기밀에 관련해서 알고 있었을지 몰라서 떠 본거라고 생각했다. 비록 의도는 달랐지만 잘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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