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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기억사형
작가 : 김광수
작품등록일 : 2020.8.4

사형수들의 기억을 지우고 사회로 보냄으로써 발생하는 이야기

 
기억사형(8)
작성일 : 20-08-04 16:03     조회 : 216     추천 : 0     분량 : 8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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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는 약속된 식당으로 가서 단심과 만났다. 그 식당은 학교 내부건물에 있는데 높은 층에 위치해 있고 구내식당이 아니라서 무료가 아니었다. 학교의 다른 식당에 비해 고급스럽고 가격이 비싼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손님도 적었다. 비상은 가격을 보고는 덜컥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아 보이도록 태연하게 음식을 주문했다. 그러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보보안 쪽 일을 하신다고 하셨죠? 거기선 보통 무슨 일을 하나요?”

  비상은 긴장을 풀기 위한 질문을 했다.

  “보안에 관련된 건 다 하는데 보통 국가의 기밀을 보안하기 위한 작업을 많이 하죠.”

  “우와 그럼 국가기밀 같은 것도 많이 아시겠네요?”

  비상은 상대의 말에 호응해 줄려고 별 생각 없이 질문을 했다. 그러자 단심의 동공이 커지더니 비상은 한 번 쳐다봤다.

  “그런 말은 조심하세요.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들으면 비상씨가 국가기밀을 노리려고 일부러 접근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어요. 저는 비상씨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믿어서 대답은 해드릴게요. 저는 국가기밀 같은 것을 몰라요. 국가기밀을 열어보진 못하고 대부분 프로그램만 만들기 때문이에요. 국가기밀을 아는 사람이 누군지도 몰라요. 아마 저 국가연구단지의 사람들은 알겠죠.”

  단심은 그 말을 하면서 고개를 살짝 돌려 국가연구단지를 쳐다보았다. 너무 멀어서 보이지는 않지만 방향은 일치했다. 비상은 괜한 말을 했다는 듯 후회하고 있었다. 그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그러자 단심이 이어서 말을 했다.

  “국가기밀 같은 이야기는 그만 하는 게 좋겠어요.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이 국가기밀을 알려고 하면 그 자체로 사형에 처할 수도 있다는 건 아시죠?”

  단심은 그 말을 하면서 눈을 돌려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대화를 듣지 않는지 확인을 했다. 비상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면서도 궁금한 건 있었다. 그는 아까보다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사형이라 하면 기억사형 말하는 것인가요?”

  그 말을 듣자 단심의 동공이 다시 흔들렸다.

  “기억사형에 대해 대화하는 것도 별로 좋지 못한 것 같아요. 그것도 국가기밀 중에 하나거든요.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만 말하자면 인권을 위해 죽이지는 않고 기억을 지우고, 얼굴을 고쳐서 사회에 다시 내보낸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죠. 하지만 사실 그것도 모르는 일이에요. 실제로는 기억사형을 한 건지 죽이고 있는지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기억사형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단 말이에요.”

  단심은 흥분해서 그런지 말을 횡설수설 하였다. 하지만 비상은 기억사형자이기 때문에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단심의 말로 인해 단심은 확실히 기억사형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은 알았다.

  “제가 흥분해서 쓸데없는 말을 해버렸네요. 방금 말은 못들은 걸로 해주세요. 이런 말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 불이익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기억사형은 있을 거예요. 아마도요. 훌륭하신 지도자님께서 국민들을 위해 도입한 거잖아요. 누구라도 잘못을 해서 죗값으로 죽는 거 보다야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 하잖아요.”

  비상은 사실에 대해 간접적으로 알려주려고 했지만 말을 하고 나니 자신이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서 기억사형자인 것을 눈치 챌까 식은땀이 흘렀다.

  “훌륭하신... 지도자님. 그렇죠. 훌륭하시죠. 경제위기로 무너질 뻔했던 나라를 지금의 지도자님이 부흥으로 이끌었으니. 그 점은 인정할 만 해요. 경제위기 당시엔 제가 태어나기 전이었으니 얼마나 위기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비상은 점점 대화내용이 딱딱해지는 것 같아서 다른 주제로 가기 위해 말을 꺼냈다.

  “단심씨는 대학 온 지 10년 정도 지났는데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건가요?”

  “학교에서 계속 일 해야겠죠. 제가 배우는 일은 사회에 나가도 쑬 곳이 많지 않고 국가에서는 인적자원을 내보내는 걸 꺼려해서 지금처럼 여기서 일을 계속 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도 오래 일을 하고 또 성과도 내면 곧 높은 직급에 올라가겠죠.”

  “음... 저는 아마 높은 직급엔 못 올라가지 싶어요.”

  비상은 그 이유에 대해 궁금했다. 높은 직위에 올라갈 정도의 성과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그럴 의지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일 때문에? 이유가 뭐가 되었든 왜 그런지 물어보지 않는 것이 타당한 것 같았다. 그래서 격려라도 하기로 했다.

  “아니에요. 열심히만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옛날에는 원하지 않는 일을 했었지만 열심히 일을 한 결과 늦은 나이지만 국가 직속 학교에 왔고, 학교에 와서도 열심히 해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어요.”

  비상은 자신이 전 과목 1급을 받은 것까지 말하는 것은 너무 자기자랑 하는 것 같아서 그것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세상에는 노력해서 안 되는 것도 있어요.”

  비상은 단심이 너무 부정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대화의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아서 그런가 싶었다. 그러는 동안 음식이 나왔다. 그는 평소처럼 먹지 않고 조금씩 잘라서 맛을 음미하는 척 하면서 먹었다. 단심도 조용히 음식을 먹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정적을 깨기 위해 비상이 다시 말을 했다.

  “음식이 참 맛있네요.”

  “네, 정말 맛있네요. 오랫동안 다녔는데 학교 안에 이런 식당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학교 내에는 수십 개의 식당이 있다. 학교가 너무 넓어서 자신이 자주 다니는 길이 아니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를 수밖에 없다. 당연히 비상도 이런 식당이 있는지 몰랐지만 검색해서 하나하나 비교해보고 좋은 곳을 찾은 결과이다.

  “맛있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그 이후로 가벼운 주제로 넘어가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비상은 자신이 있었던 이야기들을 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다시 좋아진 것 같았다. 비상도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음료수가 나와서 같이 마시고 있는데 문득 단심의 양손에 끼고 있는 반지가 보였다.

  “반지 예쁘네요. 단심씨랑 잘 어울려요.”

  “그렇죠? 감사합니다. 이거 결혼반지에요. 동갑인 남편이 반지 보는 안목은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비상의 눈의 초점을 잃었고 온 몸이 텅 빈 듯한 느낌이 들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숨도 제대로 안 쉬어지는 것 같았다. 비상은 괜히 안경을 다시 엄지손가락으로 올려서 바로 잡았다. 단심이 비상의 모습을 보고 뭔가 생각을 하더니 뜬금없이 다른 말을 걸었다.

  “그런데 비상씨는 언제부터 생명공학과에 가고 싶었어요?”

  얼이 빠진 표정을 짓고 있던 비상은 고개를 빠르게 좌우로 흔들고 눈의 초점을 맞추고 침착하고 어색하지 않게 대답했다.

  “대학교 와서 결정했어요.”

  “보통 중등학교 때 결정하는데 늦게 결정하셨네요.”

  이 국가는 초등학교 7년을 하고 졸업 후 중등학교 3년을 기본적으로 한다 그 후 바로 사회에서 일을 할 생각이라면 중등학교 3년만 하고 그만둔다. 만약 기술을 배울 사람은 중등학교에서 3년을 배우고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그리고 대학교에 갈 사람은 중등학교에 남아서 어떤 대학, 학과를 갈까 탐색하며 대학이 원하는 조건이 될 때까지 계속 공부를 한다. 보통 그 기간은 3년 정도 걸린다. 요약하자면 중등학교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가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에 와서 과를 선택했다는 건 진로를 상당히 늦게 결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등학교 때는 음…….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비상은 아직 충격의 여파가 남아 있어서 대답을 얼버무렸다.

  “중등학교 때 이야기는 안 하시던데 이야기 할 건 없나 봐요?

  “네 뭐 중등학교 때는 하라는 대로 공부만 했으니. 별 일이 없었죠.”

  단심은 비상에게 자꾸 이것저것 캐물었다. 비상은 정신이 멍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대답을 했으나 다행히 이상하게 말을 한 건 없었다. 하지만 그 뒤로 비상은 말을 잘 이어나가지 못했다. 비상은 식사를 마치고 음료수까지 모두 마신 후 재미있었다고 하고 헤어지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는 새로 산 옷을 거실에 던져놓고 침대로 올라가서 엎드려서 눈을 감았다. 방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비상은 엎드려 있는 채로 누워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다음날이 되었다. 같은 자세로 오래 있었더니 몸이 뻐근해서 온 몸에 쥐가 난 것 같았다. 몸을 거꾸로 돌려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팔과 어깨를 휘저어서 뭉친 것을 풀어주었다. 푹 자고 일어났더니 마음은 한결 편해진 것 같았다. 침대에 걸쳐 앉아서 목도 한 번 돌려주었다. 그는 책장에 꽂혀있는 전공 책을 보았다. 거실에 떨어져있는 새로 산 옷을 손으로 털어내고 옷걸이에 걸고 옆에 편하게 입는 옷을 입고 아침을 먹은 후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 안에는 방관 선배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휴일인데 연구에 오시다니 열심히 하시네요.”

  “학부생이나 휴일이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휴일은 어디 있겠어?”

  방관은 비상보다 나이가 조금 많았었다. 그는 이제 비상에게 편하게 말을 했다. 그리고 방관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러는 너는 연구실에 왜 왔어?”

  비상은 사실 학교에 올 이유는 없었다. 왠지 연구실에 가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였다.

  “기숙사에만 있다 보니 기분 전환이나 할 겸 왔습니다.”

  “그래? 근데 난 오늘은 곧 밖으로 나갈 거야. 어제 밤늦게 작업하던 것 마저 끝내야 하기 때문에 잠깐 들렀어. 아무리 휴일이 없다지만 사람인데 쉴 땐 쉬어야지. 어디 보자. 이제 슬슬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방관은 손목 신분증을 틈틈이 보았다. 비상은 자기 자리에 앉아서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모니터를 보며 의미 없이 마우스로 이것저것 클릭해 보았다. 그러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작은 소리가 났다. 비상은 “누구세요?” 라고 말을 했다. 방관은 노크한 사람이 누군지 아는 듯 들어오라고 크게 말을 했다. 비상은 누구인가 싶어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 고개를 살짝 돌려서 누군지 쳐다보았다. 비상의 키의 절반 정도 되는 어린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아이는 아빠라고 외치고 방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 아이는 방관의 아들이었다.

  학교 내부에는 가족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숙사가 따로 있다. 비상은 그 기숙사는 사진으로만 보았었는데 그 내부는 비상이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3배는 넓어보였다. 그 외에 주거지로는 높은 직급에 있는, 예를 들면 교수라던가 그런 사람들을 위한 단독 건물 단지도 있다. 그 건물도 학교 내부에 있긴 한데 이곳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동차를 타고 출근한다. 아무튼 가정이 있는 사람은 가족들도 학교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그래, usb는 가져 왔어?”

  비상의 뒤에서 방관과 그의 아들의 대화가 들렸다.

  “응, 여기 이거 맞아요?”

  그 아이는 아직 5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비상도 가까이 다가가서 한 마디 꺼냈다.

  “방관 선배 아들인가 봐요? 무척 귀엽네요.”

  방관이 그의 아들보고 비상에게 “인사해야지” 라고 하자 그 아이는 수줍게 인사를 했다. 비상도 손바닥을 흔들고 인사를 했다.

  “아들이 여기까지 심부름을 해주는 걸 보면 무척 씩씩하네요.”

  “내 아들보다 심부름 더 많이 하는 애도 있었는데 이정도로 뭘.”

  방관은 말로는 그런 말을 했지만 자신의 아들을 칭찬하는 것이 내심 기쁜 표정이었다. 그리고 비상이 목소리를 낮추고 방관의 귀에다 살며시 말했다.

  “그런데 어린애 혼자 이렇게 돌아다니게 하면 위험하지 않나요?”

  “사실 좀 위험해. 그래서 전에 데려왔을 때 다른 데는 절대 들어가지 말고 여기만 오라고 교육시켰지. 그리고 위치 추적 장치도 붙여놔서 못 찾을 일은 없을 거야.”

  비상이 묻고 싶었던 건 혼자 다니면 넘어져서 다치거나 교통사고를 당한다거나 그런 뜻으로 물었는데 원하던 것과 다른 대답이었지만 어쨌든 교육했다고 하니 그러려니 했다. 방관은 usb를 컴퓨터에 연결하고 메일을 보냈고 작업을 끝내고 기지개를 폈다. 방관의 아들이 두리번거리며 이것저것 만지자 방관은 아들에게 오라고 하며 밖으로 나갔다. 비상은 그들이 나간 연구실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책을 읽었다. 곧 금방 집중이 되었다. 비상의 남은 휴일도 학기 중만큼은 아니지만 공부를 하며 보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비상은 이번 학기도 수업을 꽉꽉 채워 넣었다. 성적이 낮을 경우 그 과목을 이수하지 못한 것으로 나와서 재이수를 해야 하는데 그 비율이 상당히 높다. 그래서 일반적인 학생들도 졸업을 하기 위해 수업을 빼곡히 채워 넣는 편이다. 비상은 성적은 우수하기 때문에 재이수에 대한 건 생각할 필요는 없었지만 필수 과목을 모두 이수하고 빨리 졸업하기 위해 수업을 많이 신청했다. 수업 이수 다음으로 졸업요건이 논문인데 비상은 이번 학기부터 논문까지 작성하는 중이다. 논문은 자유롭게 작성해도 되는데 연구실에 소속되어 있으면 보통 연구실에서 주로 하는 주제로 작성하면 된다. 학부생이 쓰는 논문은 수준 높은 것은 기대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가치가 있어야 한다. 비상은 오만 교수에게 조언 받은 대로 전에 쳤던 시험의 마지막 문제에서 풀었던 자신의 답변을 응용해서 제출하기로 하였다.

  이번 학기는 이전 학기와 마찬가지로 별 다른 건 없었다. 수업과목이 바뀌어서 다른 걸 배운다는 점과 날씨가 쌀쌀해졌다는 점 밖에 없었다. 그는 아침에 눈을 뜨고 잠이 들 때까지 공부를 했다. 공부에 집중하면 다른 생각이 들지 않기도 하고, 힘들기는 하지만 노력한 만큼 결과가 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계속해서 열심히 했다. 창밖에는 구름이 지나갔다. 매일매일.

 

  1년이 지났다. 날씨는 다시 쌀쌀해졌다. 비상에게는 이제 아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 그 이유는 비상의 성적이 한 몫 했다. 그는 지금까지 모든 과목을 1급을 했다. 그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그 덕에 비상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몇몇 생겼다. 보통 그들은 수업 중에 이해하지 못한 것을 물어보거나 과제를 하다 막혀서 물어보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유로 다가왔든 비상은 그들에게 친절하게 알려줬었다. 물론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비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동안 1년 4학기를 쉬지 않고 수업을 모두 꽉꽉 채워 넣어서 첫 번째 졸업요건을 맞추었다. 곧 있을 논문발표만 성공적으로 끝나면 된다.

  비상이 초기에 아이디어만 냈던 것을 시뮬레이터로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임상시험단계에서 실패했었다. 그땐 지식이 부족해서 실험상 문제가 생긴 부분이 있었는데 연구를 더 해서 이번에 새로운 약물을 투입해서 그 부분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번 논문 발표 때 그 연구에 관해서 발표할 생각인데 오만 교수는 이정도 내용이라면 무조건 합격가능 하니까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하라고 했다.

  발표당일이 되었다. 비상은 긴장을 풀기 위해 여러 생각을 했다.

  ‘1년 반 만에 졸업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서 학교에서 매년 한 명 정도밖에 없다고 하니 이번에 실패하더라도 다음에 다시 하면 되니까 긴장 풀자’

  비상은 옷장을 열었다. 옷장 제일 구석에 있는 옷이 보였다. 1년 전에 백화점에서 산 옷이다. 그동안 입을 일이 없어서 옷에 먼지가 살짝 덮여 있었다. 비상은 그 옷을 꺼내서 먼지를 털어냈다. 의미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중요할 때 입는 옷이다. 비상은 그 옷을 입고 거울을 보았다. 역시 비싼 만큼 세련되어서 사람이 달라 보였지만 뭔지 모를 씁쓸함이 밀려오는 옷이었다.

  기숙사에 나와서 논문 발표장으로 향했다. 오만 교수가 비상에게 졸업만 하면 국가연구단지에 들어와서 자신이 하는 실험을 보조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돈을 많이 주겠다고 했다. 단심과는 그 식사 이후로 연락이 와도 바쁘다고 핑계를 대고 만난 적은 없었지만 논문발표는 어떻게 알았는지 격려하는 문자가 왔다. 걸어가면서 고맙다는 답장만 간략히 하고 논문발표장에 도착했다. 그 안에는 여러 교수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비상이 전에 구경삼아 다른 논문발표회 때 갔었는데 그 때 보다 사람이 2배 정도 많은 것 같았다.

  비상은 발표회장 귀퉁이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다른 사람의 발표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말실수를 하지 않을까, 많이 떨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다 비상의 이름이 불리자 그는 무대로 올라가서 준비한대로 발표를 했다. 무대 위에서 발표하니 생각보다 긴장이 들지 않고 말도 술술 나왔다.

  “…이와 같이 인간의 기억의 용량을 근본적으로 늘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억하는 곳의 길을 새로 만들 수는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구의 넓이는 한정되어 있지만 사람이 새로운 곳을 개척하여 생활할 수 있는 곳을 넓힐 수 있죠. 인류 초기에는 강의 주변에서 살았지만 현재 인류는 이젠 어디서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저는 초기에 뇌의 기억하는 곳의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두고 실험을 했지만 금방 그 길이 닫혔습니다. 그래서 이 약물을 이용하여…….”

  비상의 발표는 계속되었다. 그 발표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발표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오만 교수는 눈을 주변에 살짝 돌려보고는 입은 다문채로 크게 거만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처럼 실험이 성공했습니다. 저는 이 결과를 계속 연구하면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적용시켜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도 뇌손상을 입은 사람에게도 적용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이상으로 제 발표는 여기까지 입니다.”

  발표가 끝나자 사람들은 크게 박수를 쳤다. 비상은 오만 교수가 자신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비상은 말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이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도와주신 오만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말이 끝나자 오만 교수 옆에 있던 사람이 오만 교수에게 엄지손가락을 보였다. 오만 교수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이후 질문과 답변 시간이 있었다. 비상은 하나하나 대답을 했다. 자신의 발표가 완전히 끝나고 비상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자리로 가서 앉았다. 비상의 옆에 있던 안면이 있던 학부생도 비상에게 엄지손가락을 보였다. 비상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그는 몸에 힘이 풀려 의자에 몸을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이제 합격발표를 기다릴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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