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자유연재 > 판타지/SF
기억사형
작가 : 김광수
작품등록일 : 2020.8.4

사형수들의 기억을 지우고 사회로 보냄으로써 발생하는 이야기

 
기억사형(7)
작성일 : 20-08-04 16:03     조회 : 225     추천 : 0     분량 : 850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한참 지난 후에서야 비상은 눈을 떴다. 그가 창밖에 해가 막 뜨는 것을 보고서야 자신이 전날부터 아침인 지금까지 잠을 잤다는 것을 깨달았다. 휴일이 7일밖에 없기 때문에 이렇게 집에서 낭비할 수가 없었다. 학교 밖으로 나가서 간단히 여행이나 갈까 고민했는데 학교가 워낙 커서 안 가본 곳이 많기 때문에 일단 학교부터 구경하기로 했다.

  비상은 학교지도가 적힌 종이를 들고 기숙사에서 나왔다. 먼저 학교 내부에 있는 호수에 가보기로 했다. 비상은 그 쪽으로 갈 일이 없어서 호수가 있다고만 알았지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비상이 계속 걷다보니 건물의 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커다란 호수가 나왔다. 호수에는 인공섬도 있었고 배도 떠 있었다. 그 주변에는 공원도 조성되어 있었다. 다른 학생들도 시험이 끝났는지 많이 있었다. 비상은 호수가 보이는 빈 벤치에 앉아서 호수를 바라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비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어서 행복했다. 백화점 일이나 건설현장에서 일이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았었다. 비상은 경치를 바라보면서 한동안 편안히 쉬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여자가 그가 앉아 있던 벤치 앞으로 지나가서 한 칸 떨어진 옆의 벤치에 앉았다. 비상은 그 여자를 힐끗 보았다. 비상이 이때까지 본 여자 중에 가장 아름다웠다. 그 여자가 비상이 쳐다보고 있는 걸 의식했는지 비상 쪽으로 눈을 돌렸다. 비상은 놀라서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딴청을 피웠다. 그 여자는 일반 학생보다는 나이가 좀 있어 보여서 대학원생 일거라고 추측했다. 비상은 다가가서 말을 걸고 싶었지만 수줍은 성격상 그럴 수가 없었다. 비상과 나이가 비슷하게 보여서 잘만하면 친구처럼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학교에 와서는 바빠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비상은 어떻게 말을 걸 것인지 계속해서 생각했다.

  ‘날씨 좋죠? 라고 할까 아니지 뜬금없이 그런 말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거야 안녕하세요? 저는 비상입니다. 라고 할까? 그것도 수상한 사람으로 생각할 것 같은데. 호수에 자주 오시나 봐요? 라고 할까? 만약 말을 하면 그 다음엔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비상은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자신이 말을 했을 때 그녀의 예상되는 대답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을 때 고개를 돌려서 말을 걸어보려고 그 여자가 있는 곳을 보았는데 이미 그 여자는 떠나고 난 뒤였다. 비상은 실망스런 표정으로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기억사형을 당한 자신이 지금 이곳까지 온 것만으로 과분하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고 호수로 고개를 돌리고는 낙담했다.

  다음날 같은 시간에 비상은 그 호수로 가서 전날에 앉았던 벤치에 앉아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몇 시간이 지나도 그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같은 시간에 같은 벤치에 앉았다. 오늘도 그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소중한 시간인데 더 이상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이제 포기하자는 생각을 하고 벤치에서 벌떡 일어난 후에 배가 좀 출출해서 근처 작은 편의점으로 갔다. 음료수와 간식을 가득 사서 편의점의 문을 열려는데 누군가가 바깥에서 먼저 문을 열어서 비상은 넘어졌다. 비상의 안경이 벗겨지고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은 땅에 떨어졌다.

  “괜찮으세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비상은 크게 다친 건 아니라서 옷만 툭툭 털었다.

  “네, 괜찮아요.”

  “다행이네요. 사람 있는지 모르고 문을 쌔게 당겼네요. 죄송합니다.”

  비상은 물건들이 담긴 봉투를 줍고 안경을 주워서 엄지손가락으로 안경을 바로잡고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비상은 눈이 동그래졌다. 비상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호수에서 본 여자였기 때문이다. 비상의 착각일지 모르지만, 비상은 왠지 이것이 운명인 것 같았다. 비상은 그 여자도 눈이 동그래져 있는 것을 보았다. 비상은 별일도 아닌데 그녀가 그렇게까지 놀라는 것까지 귀여워보였다. 비상은 말을 걸어보려고 목을 가다듬고 있었는데 그 여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나이가 어떻게 되요?”

  보통 이름부터 묻는데 나이부터 묻기에 비상은 조금 당황했지만 태연하게 대답했다.

  “33살입니다. 그 쪽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31살입니다.”

  그 여자는 이제 좀 진정된 듯이 놀랐던 표정이 펴졌다. 그 이후 여자가 말을 걸지 않기에 비상이 다시 말을 걸었다.

  “저는 비상이라고 합니다. 그쪽은 이름이 무엇인가요?”

  “저는 단심이라고 해요.”

  “그렇군요. 저는 늦은 나이에 입학해서 얼마 전부터 생명공학부에 학부생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나이도 비슷한데 친구로 지낼까요?”

  비상은 말하고 나니까 자신이 두서없이 바로 본론을 말한 것 같아서 아차 했다.

  “생명공학부요? 거기 제가 아는 사람 있어요. 지금은 없긴 하지만……. 저는 IT학부에 정보 보안 쪽 관련 일을 하고 있어요. 학교에 궁금한 게 있으면 알려드릴게요.”

  비상은 조심스레 연락처를 물어보고 서로 교환을 했다. 그러고 용기를 내어서 시간 있으면 호수에 같이 가서 대화를 하자고 해서 두 사람이 같이 호수에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상은 기숙사로 돌아와서 베개를 껴안고 뒹굴 거렸다. 지금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행복했다.

  비상은 평소에 알림을 해서 일찍 일어나는데 오늘은 휴일이기 때문에 알림을 꺼놔서 늦게까지 잠들었다. 방 내부는 햇살이 비치고 고요했다. 그 순간 정적을 깨는 전화소리가 들려왔다. 비상은 꿈틀거리다가 눈을 비비고 손목 신분증을 확인했다. 전화 온 사람은 오만 교수였다. 비상은 벌떡 일어나서 침대위에서 무릎을 꿇었다. 전화가 끊길까봐 무선전화기가 있는 곳까지 가지 않고 급하게 손목 신분증으로 전화를 받았다. 손목 신분증으로 전화를 받는 건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휴일이라서 늦게까지 자고 있어서 전화를 늦게 받았습니다.”

  “쉴 땐 확실하게 쉬어야지. 그나저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네 오늘 내 연구실로 올 수 있겠나?”

  “네, 지금 바로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빨리 올 필요는 없고 1시간 뒤에 내 연구실에서 보자꾸나.”

  “네, 알겠습니다.”

  비상은 남은 시간을 보고 간단히 라면을 끓여먹고 깨끗하게 씻고 단정하게 입고 기숙사에서 나갔다. 비상은 교수님이 왜 부른 것일까 생각해보는데, 학기와 학기 사이에 상담한다고 해서 그거 때문에 전화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상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비상은 숨을 고르고 오만 교수실의 문을 똑똑 두드렸더니 안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오라는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교수님 연구실에는 양쪽에 책장이 둘러싸여있었고 거기엔 책들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정면에 교수님에 커다란 책상이 있었고 그 책상위엔 모니터가 3개 있었다. 교수님은 일어나서 앞에 있는 작은 테이블과 소파가 있는 곳으로 가서 앉더니 비상에게 손짓하며 앉으라고 했다. 비상은 오만 교수의 맞은편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오만 교수가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했다.

  “자네, 성적은 확인 해 보았나?”

  비상은 학기와 학기 사이에 성적이 나온다고 했었는데 깜박하고 확인 하지 못했었다.

  “아 참 깜박했습니다. 기숙사로 돌아가면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성적은 내가 알려주지. 자네는 모든 과목에서 1급을 받았더군. 자네도 알겠지만 1급은 상위 1%의 성적이지. 다른 과목에서 1급 받은 사람은 있어도 내 과목에서 1급을 받은 사람은 십 몇 년 만에 네가 처음이지. 왜 그 오랜 기간 동안 1급을 받은 사람이 없었던 줄 아나?”

  비상은 전 과목 1급이라는 말이 기뻤지만 교수님의 무거운 목소리에 침을 꼴깍 삼키며 말에 집중했다.

  “무엇 때문인가요?”

  “다른 학생들의 답이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지. 자네도 알겠지만 내가 옛날에 혁신적인 논문을 발표해서 25살의 나이로 교수에 임명되었지. 근데 교수가 되고 나서 연구 중에 막히는 것이 생겨서 학생들의 생각은 어떤가 싶어서 시험 마지막 문제에 그 막혔던 연구에 관해 간단하게 질문해 놓았지. 사실 뭐 크게 기대는 안 했지. 예상대로 당연히 모두 이상한 논리를 펼치거나 그럴 듯 하지만 근본적으로 오류가 났지. 나는 그 때 괜히 문제를 제출한 건가 생각이 들었는데 한 학생이 기막힌 아이디어로 그 문제의 답을 했어. 나는 그 아이디어를 보자마다 넋을 잃을 정도로 놀랐지.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실험 한 결과 막혔던 것이 해결 되었지.”

  비상은 교수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집중하였다.

  “하여튼 그 때 그 학생에게만 1급을 주었지. 그 후에도 매번 이와 같이 나의 연구 중에 나온 문제들을 시험에 냈는데 아무도 그럴듯하게 쓴 사람이 없어서 그동안 1급은 아무도 못 받았었지. 그런데 네가 그런 문제를 십 몇 년 만에 제대로 답변한 거야. 아직 실험은 하지 않았는데 시뮬레이터로 적용시키니 잘 작동하는 것 같더라고…….”

  비상은 그 말을 듣고 살짝 놀랐다. 생각나는 대로 썼기 때문에 당연히 맞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조금 과장하면 찍어서 맞힌 셈이었다.

  “생각나는 대로 막 썼는데 맞는 줄은 몰랐네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운도 실력이지.”

  “혹시 그 처음으로 문제 맞춘 사람이 방관 선배인가요?”

  오만 교수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비상을 쳐다보았다.

  “아니, 방관은 그 정도의 실력은 없어. 1급을 받은 그 사람은 우리 연구시설에서 잘못된 선택을 해서 몇 년 전에 죽었어.”

  갑자기 이곳의 분위기가 침울해진 것 같아서 비상은 괜히 질문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안타깝네요. 실험이 그렇게 위험한 줄 몰랐어요. 조심히 실험해야겠네요.”

  “실험이 위험하다기 보다 사상이 중요한 거지. 남들이 잘못 됐다는 것을 꿋꿋이 밀어 붙이더니 결국 그렇게 됐지. 좋은 인재였는데 안타깝지. 나와 대등하게 연구 하던 사람 중에 한 명이었는데.”

  비상은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분위기만 더 침울해 질 것 같아서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교수가 눈을 치켜뜨고 비상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잘 할 것이라고 믿네. 그 사람처럼 자만하게 되면 조직 전체가 붕괴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네, 알겠습니다.”

  “한 번 고생해 봤으니까 이번엔 잘할 거라고 믿는다.”

  비상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 고생이 설마 교도소에서 고생한 것을 말하는 건가 싶었다. 생각해보면 정부 직속 대학의 교수 정도라면 이런 저런 정보를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라도 이 사람은 머리가 좋기 때문에 눈치 채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고생이라니 제가 무얼 했는지 알고 계셨습니까?”

  비상은 한 손으로 테이블에 손을 올려놓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는 비상의 몰아붙이는 말에 살짝 놀란 것 같았다.

  “자네가 처음 연구실에 와서 방관하고 이야기할 때 건설현장에서 일을 했다고 말하지 않았나? 거기서 말한 고생이었는데 뭐 그렇게 놀라나.”

  비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과장해서 오히려 더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기억사형자인 것을 숨기고 사는 것도 지쳐서 진실을 말하고 싶을 정도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비상의 말은 너무 수상해보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넘길 필요가 있었다.

  “저는 교수님에게 저의 이야기들에 대해 따로 말해드리고 싶었는데 알고 계시기에 놀라서 그랬습니다.”

  “허허 참 재미있는 학생이군. 자네 이야기는 천천히 들어도 되니 열심히 공부나 하도록 하게. 자네라면 아마 훌륭한 연구원이 될 수 있을 걸세.”

  비상이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넘긴 것 같아서 안도했다. 그 후 비상과 오만 교수는 간단한 대화를 더 주고받은 후 상담을 끝냈다. 비상은 기숙사로 돌아갔다. 일단 자신이 성적이 우수한 것에 만족해서 기분이 들떴다. 그러다 곧 연구실에서 죽은 사람의 생각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뇌에 관해 실험하는데다가 국가수준에서 진행되는 실험이라서 좀 위험한 면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국가연구단지에 가서 일을 할지도 모르는데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스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오만 교수가 비상에게 그 사람처럼 자기 마음대로 하지 말고 하라는 대로 말만 잘 들으면 다칠 일이 없다고 해서 안심하긴 했다. 그리고 또 오만 교수가 성적도 우수하고 머리도 좋은 것 같아서 자신이 시키는 대로만 잘 따라오면 국가연구단지에 말해서 조만간 같이 연구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비상은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비상은 예전의 삶이 어떤지는 몰라도 지금의 삶이 훨씬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가족이 있었다면 한 번 만나보고 싶긴 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만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을 하니 뭔가 알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비상은 기숙사에서 휴대전화기를 켜서 전화번호부를 눌렀다가 끄면서 괜스레 만지작거렸다. 그 짓을 반복하다가 무언가 결심하고 학교 외부로 나가기 위해 출타 신청서를 제출했다. 어차피 손목신분증을 통해 물건을 결제를 하게 되면 위치추적이 되어서 어디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데 굳이 왜 번거롭게 이런 짓을 하나 싶지만 국가 입장에서 인적 자산은 중요하니까 학생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저녁까지 돌아온다는 출타신고를 내고 비상은 학교 내부에 있는 버스를 통하여 근처의 작은 마을까지 갔다. 거기서 기차를 타고 처음에 학교에 입학할 때 잠깐 보았던 대도시로 향했다. 학생이라 그런지 기차 값도 할인되었다. 예전엔 돈이 없어서 오래 머물러 있지 않았지만, 비상은 이번에 1등을 해서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에 오랜만에 자신을 위해 돈을 사용하기로 했다. 비상은 옛날과 달리 이 대도시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위축되지 않았다.

  비상은 휴대 전화기로 백화점을 검색했더니 여러 군데가 나왔고 그중에서 가장 가까운 백화점으로 갔다. 백화점의 높이가 30층은 되는 것 같았다. 비상이 전에 일하던 백화점보다 2배는 더 커보였다. 출입문에서 손목신분증으로 인증을 받고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백화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예전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부담스러워서 빠른 걸음으로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에스컬레이터는 건물 중앙에 있는데 올라가면서 건물 내부의 모습이 모두 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많은 물건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사방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 중 남성복을 파는 층으로 갔다. 옷이 하나같이 전부 멋있어보였다. 그 중 눈에 띄는 옷이 있는 매장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종업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인사를 하더니 어떤 물건을 찾는지 묻기에 비상은 일단 보고 정하겠다고 하고 옷을 둘러봤다. 옛날에는 종업원의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손님의 입장이니까 감회가 새로웠다. 이래서 성공해야 하구나 라는 생각이 감돌았다. 옷을 둘러보던 중 깔끔하고 단정해서 중요한 날에 입으면 좋아 보이는 옷이 있었다. 비상은 종업원을 힐끔 보고 옷을 만지작하면서 가격표를 확인해 보았다. 가격은 역시 상상이상으로 비쌌다. 이 가격이면 비상이 이번에 성적우수로 받은 장학금을 대부분을 사용해야한다. 그러면 채널 살 돈이 없어서 TV채널도 뉴스만 주구장창 나오는 채널만 봐야 할지도 모르고 간식으로 먹던 과자와 음료수도 줄여야 할 것이다. 비상은 다음에 보겠다고 하고 매장을 나와서 백화점 내부에 있는 분수대 앞의 벤치에 앉았다. 비상은 무선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한 번 쳐다보았다. 그러고 결심한 듯 다시 매장으로 들어가서 눈을 찔끔 감고 아까 고른 것을 달라고 했다. 손목신분증을 내밀면서 손이 덜덜 떨렸다. 종업원은 가차 없이 기계로 손목신분증을 찍었다. 손목신분증에는 해당 물품이 결제되었다면서 남은 잔액이 초라하게 표시되었다. 비상의 마음은 쓰라렸다. 그는 처음에 대도시의 다른 곳도 가고 싶었지만 가면 또 돈이 들 것 같아서 관두고 기차역으로 돌아갔다.

  비상은 옷이 든 종이가방을 양손으로 꼭 껴안고 기차를 타고 돌아갔다. 학교버스를 타고 기숙사로 복귀하자마자 옷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옷이 구겨질까 조심하며 옷걸이에 옷을 걸었다. 비상은 옷걸이에 걸려있는 그 옷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 아침 비상은 알람이 꺼져있었지만 저절로 눈이 떠졌다. 누가 훔쳐갈 것도 아닌데 일어나자마자 어제 산 옷이 잘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당연히 잘 있었다. 비상은 다시 무선전화기를 만지며 숨을 들이켰다. 전화버튼을 누르려다가 아직 아침이니까 안 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단심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오늘 점심 때 시간되시면 식사 같이 할 수 있을까요? 궁금한 것도 있고 더 듣고 싶은 것도 있어서요]

  비상은 전송버튼에 손가락을 올려서 주저하다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전송을 보냈다. 비상은 녹초가 된 듯 했다. 10분 동안 무선전화기만 바라보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약간 상심한 채로 아침 식사를 하러 학교식당에 갔다. 입맛이 없는지 평소 보다 음식을 조금만 덜었다. 무선전화기를 식탁위에 올려놓고 밥을 깨작깨작 먹었다. 그러다 무선전화기에 문자가 와서 진동이 울렸다. 비상은 지진이 온 것 마당 놀라서 무선전화기를 확인했다.

  [네, 오늘 시간 돼요. 어디서 볼까요?]

  비상은 입에 음식이 있는 것도 잊은 채 입도 움직이지 않고 문자를 보냈다. 답장을 보낸 후에는 남은 음식을 입에 꾸역꾸역 넣어서 마저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몸을 꼼꼼히 씻고 새로 산 옷을 입고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리고 방 안에 빙빙 돌아다니면서 문자를 계속 주고받았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8 기억사형(18) 2020 / 8 / 4 215 0 10632   
17 기억사형(17) 2020 / 8 / 4 226 0 6554   
16 기억사형(16) 2020 / 8 / 4 205 0 8185   
15 기억사형(15) 2020 / 8 / 4 201 0 8992   
14 기억사형(14) 2020 / 8 / 4 215 0 10838   
13 기억사형(13) 2020 / 8 / 4 213 0 8353   
12 기억사형(12) 2020 / 8 / 4 214 0 9867   
11 기억사형(11) 2020 / 8 / 4 213 0 5510   
10 기억사형(10) 2020 / 8 / 4 206 0 8226   
9 기억사형(9) 2020 / 8 / 4 209 0 9427   
8 기억사형(8) 2020 / 8 / 4 216 0 8769   
7 기억사형(7) 2020 / 8 / 4 226 0 8505   
6 기억사형(6) 2020 / 8 / 4 195 0 8069   
5 기억사형(5) 2020 / 8 / 4 202 0 9990   
4 기억사형(4) 2020 / 8 / 4 227 0 10812   
3 기억사형(3) 2020 / 8 / 4 204 0 9351   
2 기억사형(2) 2020 / 8 / 4 219 0 10291   
1 기억사형(1) 2020 / 8 / 4 372 0 7555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인류멸망회의
김광수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