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자유연재 > 판타지/SF
기억사형
작가 : 김광수
작품등록일 : 2020.8.4

사형수들의 기억을 지우고 사회로 보냄으로써 발생하는 이야기

 
기억사형(5)
작성일 : 20-08-04 16:01     조회 : 202     추천 : 0     분량 : 9990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아무 말 없이 옆에서 지켜보던 굴레 친구가 갑자기 찡그린 표정을 짓더니 굴레를 한 대 툭 치면서 말했다.

  “무슨 애들한테 그런 거 까지 말하고 그러냐? 거기 비상이라고 했나? 잘 들어 검은 띠 보고 수갑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 딱 봐도 어감이 안 좋지? 우리들 편의를 위해 만든 기계인데 그런 식으로 부르면 위에서 상당히 안 좋아 한단 말이야. 잘못하다가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고. 아무튼 수갑이라고 불러서 좋을 건 한 개도 없어. 딱 보니까 네가 사회생활을 별로 안 해본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이거 말고도 그런 부정적인 단어나 행동 같은 건 하지 마.”

  “네……. 알겠습니다.”

  “거 참 애한테 너무 겁주는 거 아니냐? 그런 말 한다고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말하네.”

  굴레의 친구는 굴레는 한 번 보고 뭔가 말 하려다가 관두었다.

  “그리고 제가 앞으로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할까요? 지금 하는 일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제가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잘 모르겠어요.”

  그 말을 듣던 굴레가 비상의 등을 한 대 치며 말했다.

  “카르페디엠 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어? 내가 몇 년 전 우연히 읽었던 책에 나온 내용이었는데 현재에 이 순간에 충실 하라는 뜻이지. 네가 매일 후회 없이 살아간다면 원하는 꿈이 생길 거고 언젠간 이루어 질 거다. 또 이 말은 눈앞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뜻도 있지.”

  비상은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뒤로도 비상은 굴레와 자주 만났으며, 마치 친구처럼 지냈다. 비상은 혼자였다면 평생 듣지 못했을 이야기들을 그에게서 많이 들었다.

 

  그 후 비상이 이곳에서 일한지 세 달이 지났다. 그는 얼마 전부터 조립하는 일들을 한다. 단순히 짐을 옮기는 부분보다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기계 다루는 방법을 빠르게 터득했다. 새롭게 일을 하는 곳에서 사용하는 기계의 장착하는 방법은 이전 것과 비슷한데, 기다란 기계 팔이 붙어 있어서 손으로 조종함으로써 조립을 할 수 있다. 건설현장에서 알게 된 사람들도 많이 생겼는데 굴레를 제외하고는 크게 정을 붙이진 않았다. 왜냐하면 조만간 건설현장을 그만 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비상은 새로운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대학교에 가는 꿈이 생긴 것이다. 빚은 다 갚았지만 대학교에 갈려면 자금이 필요할 것 같아서 아직 일을 하는 중이다.

  중등학교까지는 의무 교육이라서 무조건 다녀야 하지만 대학교는 원하는 사람들만 간다. 인구비율을 따졌을 때 대학교를 다니지 않은 사람하고 대학교를 다닌 사람하고의 비율이 4:1정도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국가의 무작위 사람들을 봤을 때 다섯 명중 한 명만이 대학교육을 배운 사람들이다. 대학교가 의무과정이 아니라서 등록금을 내야 하는 건 맞는데 국가에서 어느 정도 지원해준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이 대학교에 입학하는 비율이 낮은지 비상은 의문이 들었다. 여기서 자신이 알게 된 사람들 중에는 대학 졸업자가 없어서 대학에 관한 정보를 얻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정보 얻어 보기 위해 왜 대학교에 가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많은 사람들이 얼버무렸다. 사실 무례한 질문이기도 했다. 자신이 능력이 부족해서 못 간 것일 수도 있는데 그런 식으로 물어보면 대답하기 싫어할 만도 했다. 그나마 얻은 정보로는 대학교에 가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다는 사람도 있었고 공부는 자신과 맞지 않다는 사람도 있었다. 선택은 자유니까 그러려니 했다.

  비상은 오늘도 식사도 짧게 하고 바로 현장으로 투입했다. 새로 하는 일은 전에 했던 일 보다 몸이 덜 힘들어서 늦게까지 일을 할 수 있었다. 지하로 가서 미로처럼 복잡한 길을 만드는 것도 하고, 산을 관통하는 좁은 터널을 뚫는 것도 했다. 그가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아무래도 꿈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사람들의 눈에 생기가 없었던 이유는 아마 꿈이 없어서 일지도 몰랐다.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다보니 이제 숙달이 되어서 다른 생각 하면서도 몸은 알아서 일을 하고 있었다. 대학교에 가서 무얼 할지 어떤 것을 할지 생각하면 하루가 금방 갔다. 그 날도 평소처럼 일을 하고 있는데 주변이 어수선함을 느꼈다. 특히 감독관들이 평소와 다르게 뛰어다니는 것이 그 이상함을 더해주고 있다. 비상은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나서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던가 아니면 건설 하던 게 무너진 정도로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었다. 별 일 아니겠지 하고 계속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 식사를 하러 갔다. 비상이 구석에 앉아서 혼자 점심을 먹고 있는데 오랜만에 굴레가 와서 옆에 앉았다.

  “비상 오랜만이다.”

  “보름 만에 보네요. 어디 다른 데로 간 줄 알았어요.”

  이젠 서로 거리가 가까워져서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편하게 말을 했다.

  “야 그나저나 그 소식 들었지?”

  “어떤 소식이요?”

  평소 같았으면 굴레가 밥을 조금씩 먹으면서 천천히 이야기 할 텐데 앉자마자 흥분된 어조로 말을 시작하기에 중요한 일인가 싶어서 비상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아마 오전에 있었던 어수선한 분위기와 관련되어 있지 싶었다.

  “나 참 이럴 줄 알았다니깐 그럴 줄 알고 찾아왔지 잘 들어봐. 오늘 누가 오는지 알아?”

  “누구요?”

  비상은 말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침을 꼴깍 삼키며 집중했다.

  “바로 지도자님이 이곳에 오신다고 하더라고. 나도 이 소식 듣고 놀랐다니깐. 자세한 정보는 듣지 못했는데 아마 여기 시찰하러 오시는 것 같아.”

  “지도자님요?”

  비상은 영상으로만 봤던 지도자를 실제로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놀라서 동공이 커졌다.

  “그래 이 나라의 가장 높은 사람이 여기에 온다고! 지도자님이 오늘……. 그 언제 온 댔더라? 방금 들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 하여튼 몇 시간 뒤에 올 거야”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뭐 당연히 네가 할 건 없고 그냥 평소에 하던 것처럼 하면 돼 아마 네가 일하고 있는 근처는 먼지가 풀풀 나고 냄새도 나서 안 갈 것 같긴 한데 만약 그곳으로 가서 마주치게 되면 경례 똑바로 해 알겠지? 뭐 넌 똑똑하니까 잘 할 걸로 생각한다. 아니지 내가 직접 봐야겠다. 나한테 경례 한 번 해봐”

  비상은 지도자가 온다는 생각에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교도소 영상에서 배웠던 것을 떠올리며 손날을 세우고 눈썹에 붙였다.

  “딱 봐도 경례 한 번도 안 해본 티가 팍팍 나네.”

  높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실제로 경례를 해본 적도 없고 눈으로만 보고 배운 게 전부니까 어설플 수밖에 없었다.

  “티가 나요?”

  “당연하지 허리 꼿꼿이 세우고 눈에 힘주고 절도 있게 다시 해 봐”

  그렇게 몇 번 경례를 다시 했더니 이제 어설프지는 않게 되었다. 그러고 밥이 식기 전에 다시 앉아서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비상이 남들이 들을까 조심스럽게 주변을 힐끗 보다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굴레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지도자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뭐 그런 소리를 하고 있어 당연히 좋은 사람이지.”

  “지도자님의 성격이라던가. 그런 거는 어떤가요?”

  “나도 실제로 본 적은 없어서 본래 성격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는데 항상 국민들 생각밖에 안 하시는 분이지. 경례 똑바로 하라는 것도 지도자님이 지적 할까봐 그런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너를 안 좋게 볼까봐 하는 말이야.”

  “지도자님이 좋으신 분이라는 건 저도 알죠.”

  두 사람 모두 실제로 지도자를 본 적이 없고 서로가 지도자에 대해서 아는 점은 영상으로 본 것이 전부니까 지도자에 대한 생각은 같을 수밖에 없다.

  “하여튼 그냥 평소대로 하던 작업이나 하면 돼”

  “네…….”

  비상은 식사를 마치고 평소대로 작업하는 곳으로 가서 일을 했다. 세 시간쯤 지나자 저 멀리서 평소와 같지 않은 움직임들이 보인다. 높은 장소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사람들의 모습이 한 눈에 보였다. 비상은 엄지손가락으로 안경을 눌러서 멀리 있는 곳을 보았다. 저 멀리 점처럼 작게 보이는 자동차 여러 대가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그러다 멈추더니 사람들이 떼로 모여서 움직였다. 너무 멀어서 사람이라는 것만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비상이 너무 그곳만 심취해서 쳐다보다가 옆에 건설 자재들이 쌓인 것을 보고 급하게 다시 일을 시작했다. 굴레가 지도자는 비상이 일하는 쪽으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서 신경 쓰지 않고 하던 일이나 하기로 했다. 일에 한동안 집중하고 있는데 근처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다 갑자기 간부가 확성기에다가 크게 목소리를 내어서 비상은 깜짝 놀랐다.

  “지금 곧 지도자님이 이쪽으로 오시고 있다. 긴장하지 말고 평소처럼 일을 하도록 한다. 이상.”

  잠시 후 비상이 일하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변을 살피는 지도자를 보았다. 그는 말끔하게 정장을 입고 있었고 영상에서 본 것과 같이 나이는 어느 정도 있어 보였다. 그의 주변에는 검은 정장과 선글라스를 착용한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경호원처럼 보였다. 지도자의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은 손바닥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는 것을 보니 아마 여기 건설현장 책임자 정도 되지 싶다. 비상은 건물 조립을 하면서 철근 골격 사이로 그 사람들의 무리를 지켜보았다. 지도자가 두리번거리며 말을 하더니 주변 사람들이 마치 짠 듯이 다 같이 웃음을 지었다. 비상은 뭐라고 말하는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아마 정말 웃음이 나오는 말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지도자의 말에 따라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심각해지기도 했고 만족스런 표정을 짓기도 했다. 지도자는 이 주변을 걸으면서 계속 두리번거렸다. 비상도 어떠한 문제가 있나 싶어서 계속 지켜보았다. 그러다 비상이 지도자와 눈이 마주쳤다. 비상은 놀라서 재빨리 시선을 회피하고 하던 일을 계속 했다. 그는 조마조마했다.

  ‘눈 한 번 마주친 건데 문제 되진 않겠지? 그보다 나를 봤다는 보장도 없잖아? 우연히 주변을 본 곳에 내가 있었을 뿐이겠지?’

  비상은 자신이 안 보이도록 살짝 뒤로 빠져서 하던 일을 마저 했다. 1분이 지나고 다행히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아 비상은 안심하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어이 거기 23번 기계 착용하고 있는 사람”

  비상은 뒤에서 큰 소리로 부르는 소리에 뜨끔해서 철골을 놓칠 뻔 했다. 23번이면 분명히 비상이 오늘 장착하고 온 기계의 숫자와 일치했다. 이 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 비상은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저 부르셨습니까?”

  “지금 지도자님이 부르신다. 빨리 나를 따라오도록 한다.”

  “저를요? 무슨 일인가요?”

  비상은 살짝 발뺌을 해보았다.

  “무슨 일인지는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잔말 말고 따라오기나 해”

  비상은 이제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굴레 말대로 그냥 조용히 하던 일이나 하고 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괜히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쳐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에 한탄했다. 비상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마냥 간부의 뒤를 따랐다. 그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발뺌을 해야 할지 아니면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 중 이었다. 간부의 인솔에 따라 그는 지도자가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지도자의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고 그들의 표정은 비상이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듯한 심각한 표정이었다. 비상은 그냥 여기서 도망갈까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간부가 그를 지도자에게 데려다 주고 경례를 하고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비상도 배운 대로 경례를 했다.

  “자네 이름이 뭔가?”

  그것이 지도자의 첫 말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심각한 표정과는 달리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정감 있는 목소리였다.

  “비...비상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떨고 있는 것이 목소리로까지 전해졌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말하게나. 혼내려고 부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허허”

  지도자가 웃으니 주변 사람들도 따라서 웃었다. 그들도 비상이 실수해서 부른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안심이 되는 듯 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 비상은 반쯤 안심을 했다. 비상은 자신이 너무 과민반응 한 것 같았었다. 겨우 쳐다봤다고 처벌까지 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아직 완전히 긴장을 늦추진 않았다.

  옆에 비서로 보이는 남자가 네모난 기계를 몇 번 누르더니 지도자에게 보여주었다.

  “어디보자 나이는 32살이고 결혼은 아직 안 했고 중등학교 다닐 때 성적이 매우 좋았군.”

  “감사합니다.”

  비상이 문득 느낀 것은 지도자조차 비상이 기억사형 당한 것을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지도자 정도 되면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닌 듯 했다. 아니면 알 수 있는데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던가 알고 있는데 능청스럽게 모르는 척 하는 것 일수도 있다.

  “어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할 만한가?”

  지도자의 그 말을 한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비상에게 향했다. 감독관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만약 비상이 여기서 말을 잘못 했다가는 정말 큰일 날 것 같았다.

  “네.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일도 재미있고 돈도 많이 주고 필요한 건 다 있습니다.”

  비상이 이렇게 말 할 정도로 일이 좋지는 않았지만 상황상 왠지 이정도로 과장해서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비상은 그제야 지도자가 왜 자신을 불렀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아마 일꾼 중에 아무나 뽑아서 작업환경이 어떤지 파악 하려고 한 것 같았다. 사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다 지켜보고 있는데 과연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궁금했다.

  “뭐 다들 이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대답하지 허허허.”

  주변사람들도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지도자의 말은 마치 비상의 생각을 읽고 있는 듯한 대답이었다. 괜히 지도자가 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닙니다. 여기서 일을 하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전부 저에게 다 잘해줍니다.”

  비상은 자신의 생각이 읽혀진 것 같아서 괜히 더 과장하며 말했다.

  “알았네. 그런데 왜 자네는 중등학교에서 성적이 좋았는데 왜 대학교를 가지 않았나?”

  그 말을 듣고 비상은 누군가가 목을 죄는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모든 것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자신이 기억사형 당한 것을 설명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지도자의 질문이라도 기억사형자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위법인데다가 보는 눈이 많아서 앞으로 자신의 앞으로의 일에 악영향을 미칠까봐 사실대로 대답하기는 싫었다.

  비상은 생각해보았다. 만약 지도자가 비상이 기억사형 당한 것을 모른다면 자신이 굳이 먼저 그 사실을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만약 지도자가 비상이 기억사형 당한 것을 알지만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이라면 신변 보호를 위해 말하지 않은 것이니 그 배려를 무시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어떤 경우라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리고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넘기기로 했다.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개인적인 사유로 대학교를 가지 않았습니다.”

  지도자는 고개를 살짝 젖히고 비상의 눈을 바라보았다. 비상은 거짓말을 한 것이 들켰나 싶어서 가슴을 졸였다.

  “음 안타깝군. 나는 국민들이 자신이 원하면 대학교 갈 수 있도록 하려고 했는데 아직 제도적 측면에서 미흡한 점이 있는 것 같구나. 혹시 네가 원한다면 내가 대학교에 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싶구나.”

  비상은 그 말을 듣고 너무 얼떨떨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안 그래도 비상이 대학교에 갈 생각이었는데 지원해 준다니 정말 비상의 머리를 읽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대학교에 가는 것을 지원해준다면 지금 상황에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하지만 또 갈등이 되었다. 교도소에서 친 중등학교 시험은 바깥에서의 중등학교 시험과 비슷한 문제로 나오고 시험 성적도 사회에서의 성적에 맞게 백분위로 반영되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중등학교에서 친 건 아니다. 지도자를 속이면서까지 대학교에 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라는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일이다. 비상은 동공이 흔들렸다. 여러 고민을 해보았다. 만약 나중에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지도자가 알게 되었을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 고민을 해보았는데 법적으로 기억사형자인 것은 발설하면 안 돼서 그렇다고 변명하면 괜찮을 것 같긴 했다. 이렇게 인자한 분이 그런 것 때문에 처벌 내릴 것 같진 않았다. 방금도 몰래 쳐다봤다고 처벌을 내릴지도 모른다고 지레 겁먹지 않았던가? 그 순간 고민하던 비상에게 굴레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카르페디엠’ 눈앞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 그 말을 기억하고 흔들렸던 동공을 집중해서 초점을 맞춘 뒤 지도자에게 대답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성적도 좋고 하니 정부 직속 대학에 왔으면 한다. 아 참 얼마 전에 거기 시찰 갔더니 생명공학 분야에 인력이 부족한 것 같은데 네가 거기 들어가면 그들도 반겨줄 것 같구나.”

  국가 직속 대학이라고 하면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대학교이다. 사실 일반 대학교라기보다 국가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특수 목적으로 설립된 대학이다. 전국에서 머리 좋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학교를 갔고, 마음만 먹으면 졸업 후에 국가의 높은 직위에서 일을 할 수도 있다. 비상은 그 말을 듣고 기쁘긴 하지만 과연 교도소에서 급하게 배운 것만으로 국가 직속 대학에 적응 할 수 있을지 고민되긴 했다. 하지만 교도소에서처럼 정말 열심히 한다면 남들과 대등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무리 범죄를 저질러서 한 번의 삶을 박탈당했다고 하더라도 이번 삶에서까지 허접스럽게 살 이유는 없다. 어쩌면 다시없는 기회일 수도 있다. 비상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대답을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 허허 알았다.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그 말 잊지 않도록 하지”

  지도자는 그 말을 끝으로 떠났고 지도자의 비서로 보이는 사람 한 명이 비상에게 다가가서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건네주고 필요할 때 연락하라고 하고 그도 지도자를 따라서 자리를 떠났다. 비상은 지도자가 떠난 후에도 한참이나 꽁꽁 얼어붙은 듯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주위가 다시 한산해진 후에 안면이 있던 몇몇 사람이 다가와서 축하한다고 말을 건넸다. 비상과 안면이 없는 다른 사람들도 지도자가 직접 말을 건 것이 놀라운 사건이었는지 지나가면서 힐끗 쳐다보았다. 비상은 마음을 추스르고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처벅처벅 걸어갔다. 그 순간 뒤에서 굴레가 비상을 크게 부르며 달려왔다.

  “어이 비상 이야기 다 들었다. 네가 지도자님이랑 대화 한 것 내가 다 전해 들었지.”

  “벌써 들으셨어요? 소문 참 빠르네요.”

  “빠르다마다. 내가 여기에 아는 사람이 몇 명인데 그걸 모르겠어? 그것도 작은 일도 아니고 지도자님이 너에게 대학을 갈 수 있게 직접 지원해준다는 일인데.”

  “저도 지금 너무 얼떨떨해서 꿈인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아요.”

  굴레는 비상의 볼을 꼬집었다. 비상은 아파서 소리를 질렀다.

  “아프지? 이건 현실이야. 꿈이 아니라고! 내가 딱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남들과 다른 기운이 느껴지더라고 내가 너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지.”

  “근데 왜 수 많은 사람들 중에 저에게 이런 혜택을 주시는 걸까요?”

  “뭘 그런 걸 생각해 네가 공부도 잘했는데 이런 곳에서 썩고 있으니 안타까워서 그러셨겠지. 거 봐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했잖아. 뭐 비록 네가 일하는 곳으로 가지 않을 거라는 추측은 틀렸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게 좋은 거잖아? 하하하”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국가 직속 대학이라면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아는 사람 중에 다니게 될 사람을 볼 줄이야. 넌 이제 인생 핀 거야 인마.”

  비상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헤헤 감사합니다.”

  “나중에 성공했다고 나 잊지 말고 이놈아.”

  “굴레씨나 저 잊지 마세요.”

  이건 굴레가 기억력이 나빠져서 자신을 잊을까 비상이 진심으로 걱정 되서 한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굴레가 처음 본 것을 간간히 기억 못하긴 하지만 한 번 기억한 것은 어느 정도 오래 가는 편이다. 그래서 자신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잠깐의 웃음이 지나고 분위기는 다시 고요해졌다.

  “그래 흠……. 뭐 이제 여긴 떠날 거지?”

  “네……. 그래야겠죠?”

  “아쉽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주 볼 걸 그랬네. 하하”

  “저도 처음으로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는데 요새 일에 집중한다고 못 만나서 아쉽네요.”

  비상은 아쉬움을 남기고 숙소로 돌아갔다. 비상은 방에 누워서 바깥을 봤다. 지도자가 오지 않고 스스로 대학을 준비하다가 떨어졌으면 한참동안 저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미묘했다. 비상은 한참 후에 일어나서 내일 해가 뜨자마자 나갈 생각으로 주섬주섬 짐을 꾸리고 샤워를 하고 잠이 들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8 기억사형(18) 2020 / 8 / 4 215 0 10632   
17 기억사형(17) 2020 / 8 / 4 226 0 6554   
16 기억사형(16) 2020 / 8 / 4 205 0 8185   
15 기억사형(15) 2020 / 8 / 4 201 0 8992   
14 기억사형(14) 2020 / 8 / 4 215 0 10838   
13 기억사형(13) 2020 / 8 / 4 213 0 8353   
12 기억사형(12) 2020 / 8 / 4 214 0 9867   
11 기억사형(11) 2020 / 8 / 4 213 0 5510   
10 기억사형(10) 2020 / 8 / 4 206 0 8226   
9 기억사형(9) 2020 / 8 / 4 209 0 9427   
8 기억사형(8) 2020 / 8 / 4 216 0 8769   
7 기억사형(7) 2020 / 8 / 4 226 0 8505   
6 기억사형(6) 2020 / 8 / 4 195 0 8069   
5 기억사형(5) 2020 / 8 / 4 203 0 9990   
4 기억사형(4) 2020 / 8 / 4 227 0 10812   
3 기억사형(3) 2020 / 8 / 4 204 0 9351   
2 기억사형(2) 2020 / 8 / 4 219 0 10291   
1 기억사형(1) 2020 / 8 / 4 372 0 7555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인류멸망회의
김광수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