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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기억사형
작가 : 김광수
작품등록일 : 2020.8.4

사형수들의 기억을 지우고 사회로 보냄으로써 발생하는 이야기

 
기억사형(4)
작성일 : 20-08-04 16:00     조회 : 227     추천 : 0     분량 : 1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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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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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은 기차 안에서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기차는 도심을 벗어난 지 오래되었다. 초록빛이 물든 나무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기차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창밖이 검은색으로 뒤덮였다. 칠흑같이 어둡던 창밖은 이내 다시 밝아졌다. 비상은 갑자기 밝아진 창밖을 실눈을 뜨고 바라봤다. 비상은 바깥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큰 규모의 건설현장이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콘크리트와 철골이 눈앞에 보였다.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수많은 크레인과 불도저, 굴삭기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두운 회색빛이 그곳을 휘감았다.

  이 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내렸다. 그 사람들의 차림을 보아하니 대부분 이 건설현장에 투입될 인부들 같았다. 그는 건설현장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을 사이에 끼여 갔다. 기차역을 벗어나 건설현장에 가까이 가자 시멘트 냄새가 진동했고 땅엔 흙먼지가 풀풀 날렸으며 땅은 두두두둑 흔들렸고 위이이잉 거리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끊임없이 났다. 건설자재들은 산더미처럼 쌓였고 사람들은 개미처럼 끊임없이 움직였다. 비상은 벌써부터 힘들 것 같아서 지레 겁을 먹었다. 상담원이 백화점에서 일 하는 것이 만족할 만한 일이라고 말을 한 이유가 있었다.

  비상은 사람들을 따라 간이 건물 앞에 줄을 섰다. 여기는 면접이라는 게 없고 바로 투입된다고 한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비상이 간이 건물로 들어갔다. 안전모와 작업복을 착용하고 손목에 장착하는 기계 장치가 있는데 그것을 착용하라고 하기에 손목 신분증을 착용하고 있는 반대 손목에 착용했다. 그 장치에는 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비상은 그 장치를 이리저리 건드려 보았지만 숫자는 0에서 변하지 않았다. 무슨 장치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바쁜데 방해될까봐 묻진 않았다. 그러고 지시하는 곳을 따라가니 시멘트 포대가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멀리서 보면 자그마한 언덕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양이었다. 간부로 보이는 사람이 옆에 있는 지게를 장착하라고 했다. 지게는 건설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특수제작된 것으로 보였다. 일반 지게처럼 짐을 올리는 등 부분은 있는데 거기에 팔과 다리를 부착시킬 수 있는 골격 같은 것이 있었다. 얼핏 보면 쪼그려 앉아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비상은 옆에 다른 사람을 곁눈질 하며 어떻게 장착하는지 알아보았다. 방법은 간단했다. 의자에 앉듯이 지게에 앉으면 지게의 등 부분에 이어진 골격들의 길이가 조절되며 철로 된 띠가 튀어나와 비상의 팔과 다리를 묶었다. 마치 비상이 사람을 등에 업고 있는 느낌이었고 또 거기에 속박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멘트 포대를 들자 그런 불편한 생각은 사라졌다. 그 장치 덕분에 평소보다 힘이 절반밖에 들지 않아서 무거운 시멘트가 쉽게 들어 올려졌다. 들고 있는 물건의 무게가 발까지 연결되어 있는 골격을 통해 땅으로 분산시켜 주기 때문이었다. 또 움직일 때도 기계의 전력을 이용해서 자신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여서 짐을 쉽게 옮길 수 있었다.

  일은 예상 했던 만큼 매우 쉽다. 시멘트를 상대방 지게에 올려주고 자신도 상대방이 올려준 시멘트를 들쳐 메고 지정된 장소까지 옮기면 된다. 하지만 쉬운 것은 일하는 방법뿐이었다. 아무리 지게를 메었다한들 100kg 가까이 되는 걸 옮기는데 편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비상은 짐을 옮기다가 손목 장치에 0이라고 쓰인 것이 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한 일의 양 이었다. 그 장치는 비상이 시멘트를 들고 옮겨서야 숫자가 올라갔다. 여기서도 자신이 한 만큼 돈을 받는다. 비상은 뭔지 모를 소름이 돋았다. 일한 만큼 보수가 따르는 건 당연한 건데 이정도 까지 해야 되나 싶을 정도였다. 복잡한 생각이 들었지만 곧 등에 시멘트가 올라가자 모든 신경은 등에 집중되었고 힘들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비상은 건설 일을 하면서 자신이 기억사형 당하기 전에 몸을 쓰는 일을 하지 않았고 운동도 자주 하지 않았던 편인걸 추측했다. 왜냐하면 남들은 물건들을 쉽게 옮기는 데에 비해 비상은 상당히 힘겹게 옮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비상은 남들보다 같은 시간동안 더 적은 양의 짐을 옮겼다. 일을 처음 한 것을 감안 하더라도 차이가 심했다. 처음 교도소에서 눈을 떴을 때도 지금과 같이 체격이 약간 허약한 편이었다. 그 때는 자신이 허약한 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지만 여기서 건장한 남들과 비교하니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많은 것에 비해 자신의 몸은 별다른 흉터가 없었던 점이 그러한 추측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이런 여러 가지 짐작으로 자신의 예전 직업은 사무직과 같은 비활동적인 직업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멍하니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기억사형 당하기 전의 일은 잊으려고 했는데 자꾸 신경 쓰였다. 그 와중에 알아낸 것은 있었다. 여기서도 일한 만큼 보수가 따르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일을 하라고 재촉하라는 사람이 없었고 또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때 소수점 정도에서 미약하게 지속적으로 손목장치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비상은 엘리베이터 요금이 자동적으로 빠져나간 일을 겪었기 때문에 이 숫자가 왜 줄어드는지도 짐작은 갔다. 아마 자신이 장착하고 있는 지게 장치의 대여료 아니면 전력을 쓴 값 정도 일 것이다. 크게 줄어드는 건 아니라서 금전적 손해는 크지 않지만 왠지 가만히 있으면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몇 시간이 지나자 식사시간이라며 손목 장치에 알림이 왔다. 비상은 그 알림을 보자 드디어 쉴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숨을 돌렸다. 비처럼 흘러내린 땀이 바닥을 적시고 난 후에 거친 숨이 진정되었다. 그가 주변을 돌아보니 절반정도는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 알림을 못 봤나 싶었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식사시간이 꽤 긴 편인데 그 시간 사이에 식사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시간에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 비상은 사람들 따라서 식사장소에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들 표정은 말 걸기 힘들 정도로 하나같이 어둡고 힘들어 보였다.

  비상은 배식장소로 갔다. 따로 건물은 없고 비를 막을 수 있을 정도의 천막이 있고 그 아래에 식탁과 의자들이 사람들이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빼곡히 놓여 있었다. 비상은 어떤 음식이 나오는지 고개를 살펴보았다. 거친 현장과는 다르게 음식은 비교적 깔끔하고 맛있게 보여서 만족했다. 여러 가지 종류의 반찬들이 있고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 접시에 담아서 먹으면 되는 것이다. 비상은 줄을 서면서 음식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동안 저렴한 식당에서 맛없는 음식만 먹은데다가 오늘은 육체적으로도 고생을 해서 빨리 먹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각각의 반찬 밑에 작게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너무 허기져서 그런 것에 신경 쓰진 않았다. 그는 줄이 길어서 다시 와서 더 받아 가긴 힘들 것 같아서 한 번에 많이 담았다. 반찬도 종류별로 하나하나씩 다 담았다. 모든 음식들이 있던 테이블을 다 통과하자 음식이 접시에 흘러넘칠 정도가 되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식사를 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많이 받은 것 같았다. 비상은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좁은데서 먹기 싫어서 바람도 쐴 겸 땀도 식힐 겸 바깥으로 갔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높이 쌓여있는 건축자재 때문에 그림자가 생긴 있는 위치로 가서 앉았다. 이미 그 근처에서 식사 중인 사람들도 꽤 있었다.

  비상은 무릎에 식판을 올려놓고 밥을 한 입 떠먹으려고 하는 순간 손목 장치에 있는 숫자가 눈에 띄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숫자는 124.011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지금은 92.380으로 줄어 있었다. 비상은 그 순간 아차 싶었다. 왜 음식 값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을까 라는 것에 자신에게 화가 났다. 음식 밑에 숫자가 적혀 있던 것은 아마 무게 당 가격정도였을 것이고 사람들이 왜 자신만큼 음식을 많이 덜어간 사람이 없는지 이해가 되었다. 들었던 숟가락을 접시에 올려놓았다. 갑자기 밥맛이 떨어졌다. 그냥 짜증이 났다. 주변을 돌아보며 아무도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 원망스러웠다. 사실 식당에 이런 정보들이 작게 적혀 있었긴 했는데 그가 음식에 눈이 멀어서 못 봤던 것이긴 하다. 비상은 한 손으로 머리를 툭툭 몇 대 쳤다. 방금 다른 사람을 탓했는데 그것이 후회스러웠다. 교도소에서 그렇게 배웠고 자신도 그러기로 했었다. 눈을 크게 감았다가 뜨고 다시 수저를 들고 밥을 먹기 시작하려는데 낯선 사람이 웃으면서 굵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허허 녀석 여기 처음 왔나 보네.”

  비상은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나이는 자신보다 10살 정도 많아 보였고 피부가 검은 것을 보니 이런 일을 오래 한 것으로 추측했다.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경계해야 하지만 사적으로 말을 건 사람이 오랜만이라서 조금 감격스러웠다. 비상은 입을 열고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입 안에 음식이 가득 차서 고개만 천천히 끄덕 거렸다.

  “녀석 천천히 먹어. 식사시간은 기니까. 나도 처음 일을 했을 땐 잘 몰라서 음식을 가득 퍼서 먹다가 남아서 버렸지. 나도 모르게 일당의 3분의 1을 먹는 것에 썼다는 생각을 하니 화가 나더라고. 지금 널 보니 옛날 나를 보는 것 같네”

  비상은 말을 하기 위해 입안에 음식을 오물오물 씹어 먹으며 목구멍으로 넘겼다.

  “아 참 음식 남겨도 추가로 비용을 내야 하는 건 알지?”

  비상은 그 말을 듣고 놀라서 목구멍으로 들어갔던 음식이 나올 정도로 기침을 했다. 막상 다 받고 나니 음식이 너무 많이 받아서 다 못 먹을 것 같긴 했었기 때문이다. 비상은 주먹으로 가슴을 두 차례 치고 입에 있던 음식을 꼴깍 다 넘기고 인사말에 대답을 했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왔어요.”

  비상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어떻게 말을 이어 나가야 할지 몰라서 간단하게 대답했다.

  “생긴 것 보니까 이런 일 하게 생기지는 않았는데 어쩌다가 여기로 온 거야?”

  비상은 그 질문을 듣고 뜨끔했다. 사실대로 말해봐야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교도소에서 있던 일을 밖에 발설하면 처벌 받는다고 했기 때문에 말할 수도 없었다.

  “음……. 뭐 그냥 이것저것 하다가 돈을 별로 못 벌어서 여기로 왔어요.”

  말을 하고 나서도 실수 한 게 없나 조심스러웠다. 그러고는 다시 식판을 보며 조금씩 밥을 떠먹었다.

  “그렇군. 아 참 내 소개가 늦었네. 내 이름은 굴레라고 한다.”

  “굴레라……. 특이한 이름이네요. 굴레씨는 여기서 얼마나 일 했나요?”

  굴레는 이미 비상의 옆에 자리를 잡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여기 군사기지를 짓는 건설현장에서 일 한지는 얼마 안 되었어. 난 이전에도 지금처럼 거의 이런 막노동을 했지. 건설현장을 찾아 떠돌아다닌 지 10년 정도 된 것 같아. 다른 일도 해보려고 했는데 난 이게 제일 낫더라고.”

  “다른 일은 어떤 것을 해보았나요?”

  “내가 많이 배운 사람은 아니라서 잡일 밖에 안 했는데. 어디보자 식당에서 일을 해보기도 했고 마트에서 일 하기도 했고, 아 그래 배달일도 해봤지 근데 거기서는 일을 못하겠더라고”

  “무슨 일 있었나요?”

  “무슨 일이 있다기 보다 근무 환경이 좀 뭐라고 해야 하나. 사람들이 너무 경쟁적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렇더라고 옛날에 마트에 있었을 때 근무자 평가를 하는데 내가 손님한테 불친절하게 했다며 점수를 깎더라고. 그러고 배달할 때는 말이지…….”

  비상은 식사를 하며 조용히 그의 말을 계속 들었다. 그의 말은 상당히 공감이 되었다. 비상에게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보니 아마 정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성격상 경쟁적인 곳에서 일을 하는 건 맞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런 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겉으로는 동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적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사실상 친구나 동료라는 말은 허상에 불과했다. 그에 비하면 건설현장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백화점에서는 자신이 이번에 성과가 좋았다는 말을 동료들에게 굳이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의 실적이 줄었다는 뜻이고 주변에서 시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적어도 자신이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주변에 말해도 시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굴레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했다.

  “그러고 말이야 또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너무 길어지니 다음에 이야기 하도록 하지”

  비상은 사실 그 이야기들이 크게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수 있는 점은 좋았다. 또 그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하며 사회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비상은 대화를 하던 중 문득 주변을 보니 여기서는 사람들이 식사를 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웃는 경우가 많이 보였다. 일할 때는 다들 어두운 표정이었지만 식사시간만이라도 웃음 짓는 사람이 많이 있으니 보기 좋았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본 건 백화점에서 고객을 상대할 때 억지로 웃는 웃음뿐이었지만 여기선 자신을 위해 웃는 웃음이었다. 처음 일하는 곳이지만 이곳이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 그럼 난 슬슬 다시 일하러 가볼까 뭐 궁금한 게 있으면 또 물어봐 내가 아는 선에선 다 알려 줄 테니까. 그럼 다음에 또 보자.”

  “네 안녕히 가세요.”

  그는 식사를 상당히 빨리 하고는 가버렸다. 처음 봤지만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비상은 남은 음식들을 꾸역꾸역 다 목구멍으로 집어넣고 다시 일을 하러 갔다. 버리는 것도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음식을 남겼을 지도 몰랐는데 굴레가 알려주어서 그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식사를 하는 중에 한 가지 소소한 다행이었던 점은 식사시간에는 기계 사용료가 들지 않았다. 사용했던 지게 위치도 손목 장치에 표시되어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처음에 받을 때만 하더라도 0만 적힌 쓸모없는 장치인줄 알았는데 여러모로 유용했다. 남은 시간도 시멘트를 옮기는 일을 계속 했다. 이곳의 또 특이한 점은 야간에도 계속 일을 한다는 점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지만 말이다. 비상은 마음 같아서는 돈을 빨리 벌기위해 야간에도 일을 하고 싶었지만 처음 몸 쓰는 일을 해서 야간까지 일하기는 힘에 부칠 것 같아서 그냥 숙소로 가기로 했다. 그는 여기에 처음 올 때 보관함에 맡겼던 짐을 들고 숙소로 갔다. 보관함을 사용하는 것도 돈이 들어서 집에 보관하기 위해 가져갔다. 건설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니 주거단지가 나왔는데 숙소의 디자인이 예전에 살던 집과 구조가 흡사했다. 다만 건물 높이가 좀 낮았고, 벽면이 유리로 되었다. 건물 외부에 격자로 틈이 있는 걸로 보아 블록처럼 조립할 수 있는 건물인걸로 보인다. 아마 건설인부들을 위해 임시로 지은 건물 같았다.

  비상은 건물 복도를 걸어가다가 빈방이라고 적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손목 기계 장치를 사용하여 하루치를 결제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신분증으로 결제해도 되긴 한데 손목 장치로 결제 하는 것이 할인 된다고 했다. 낮에 굴레에게 숙소에 관해 물어보지 않았으면 한참 헤맸을지도 몰랐다. 방값이 저렴한 만큼 내부 시설도 좋지 못했다. 들어가니 아무것도 없는 방에 베개와 이불이 하나씩 있었다. 조그마한 화장실도 있었다. 한 쪽 벽면이 전부 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이 보인다는 점은 좋은데 바깥에서도 안이 보인다는 점은 반갑지 않았다. 비상은 집에서 들고 온 짐을 풀고 샤워를 한다. 옷을 다 벗고 샤워를 하는데 문득 보니 양 손목에 손목 신분증과 손목 장치가 있었다. 평소에 손목 신분증을 샤워할 때도 늘 착용하다보니 아무렇지 않게 손목 장치도 착용하고 샤워하고 있었다. 비상의 머리위로 물이 떨어진다. 비상은 양 손을 내밀어서 두 개의 장치를 보았다. 검은색 띠가 양 손목에 감겨 있는 모습을 보니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받은 손목장치의 이름이 궁금했다. 무슨 이상한 이름이었는데 정신없을 때 슬쩍 봐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서 이불을 덮었다. 피곤해서 그런지 눈을 감자마자 잠이 들었다.

  다음날 비상은 햇빛 때문에 눈을 떴다. 삭신이 쑤셔서 오래된 골동품처럼 몸이 삐걱거리는 것 같았다.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보니 이미 사람들은 하나 둘 씩 건설현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비상도 재빨리 어제 받았던 작업복을 추슬러 입고 바로 어제 일 하던 장소로 향했다. 다행히 아침 식사 시간이 끝나지 않았다. 허기만 가실 정도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다시 어제 했던 일을 반복했다. 시멘트를 들고 옮기고 다시 들고 옮겼다. 어제 했던 일의 피로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하려니 정말 죽을 맛 이었다. 일을 하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일하는 것도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았다. 건설 자재들을 조립하는 사람들도 있고 거대한 기계장치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시멘트 옮기기보다 간단한 일은 없는 것 같았다. 시멘트 옮기는 일이 가장 기초 단계의 일이고 보수도 적을 것이고, 다른 복잡한 작업을 하는 것이 보수도 더 높게 받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비상은 시멘트를 옮기면서 굴레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점심시간까지 일하다가 어제와 같은 시간대에 같은 위치로 가니 다른 사람들하고 이야기 하면서 밥을 먹는 굴레를 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또 뵙네요.”

  “아, 그래 반갑다. 근데 어디서 봤더라? 요새 내가 기억이 가물가물 해져서 말이야.”

  비상은 그 말을 듣고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혹시 닮은 사람인가 싶어서 자세히 봤는데 그건 아니었다. 한 번 만나서 짧은 시간동안 본 거라서 못 알아보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한 달 전도 아니고 바로 어제 본 걸 기억 못할 수가 있나 싶었다. 굴레 옆에 같이 대화 하고 있던 남자가 눈썹을 가운데로 모으더니 비상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지 입술을 움직였다. 비상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억날까 싶어서 굴레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저 기억 안 나세요? 어제 같이 점심식사 했잖아요.”

  “아, 그래그래 좀 기억날 것 같다. 어제 내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계속 했었던 건 알았는데 그게 너였구나.”

  굴레는 이제야 조금은 기억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기억하는 것이 중간까지 끊겨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능이 부족한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아니면 다른 사람이랑 있어서 비상을 모른 척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비상이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머뭇거리는 행동을 하자 굴레의 옆에 있던 사람이 굴레에게 말을 했다.

  “굴레, 저기서 감독관이 널 급하게 부르는 것 같은데?”

  그 말을 듣던 굴레는 깜짝 놀라서 비상에게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고 가리키는 곳에 총총 걸음으로 달려갔다. 비상은 이상한 상황에 그저 안경만 만지작거렸다.

  “어이, 거기 너.”

  “네, 저요?”

  비상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무도 없어서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시간 없으니까 짧게 말할게 저 굴레라는 친구 말이야 나와 같이 일한지 10년 정도 되었어. 아, 물론 10년 내내 같이 있었다는 건 아니고 이렇게 큰 공사 있을 때 연락해서 같이 작업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만난 시간은 그것보다는 적지.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 친구가 말이야 요새 들어 건망증이 심해진 것 같단 말이야. 단순 건망증보다 조금 심한 정도지 그래서 널 기억하지 못했던 거야.”

  짧게 말한다고 해놓고 할 말은 다 하는 사람이었다.

  “아, 그렇군요. 저는 제가 사람을 잘못 본 줄 알았어요.”

  “근데 문제가 뭐냐면 저런 사람들이 주변에 꽤 늘어나고 있단 말이지 전염병 같은 건가 의심을 해 봤지만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걸 보니 그건 아닌가 보더라고. 주변에서 들은 말이긴 한데, 아무래도 단순노동만 오래해서 머리가 녹슨 것이 아닐까 싶어. 나도 중등학교 졸업한 후 내내 이런 일만 했는데 저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말이야. 나도 머리를 어느 정도 써야…….”

  “야 이놈아 누가 불렀다는 거야? 아무도 안 불렀다고 하잖아?”

  굴레가 갑자기 소리쳐서 그는 깜짝 놀라서 말을 멈췄다.

  “그러냐? 내가 잘못 들었나 보네.”

  “너 때문에 내 밥 다 식겠다.”

  굴레는 다시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굴레가 비상을 쳐다보고 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고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비상은 그 자리에 앉아서 밥을 떠먹었다. 비상은 머리를 사용하지 않아서 나빠졌다는 것에 신경이 쓰였다. 교도소 교육에서 별의별 것은 다 배웠지만 “머리를 사용하지 않으면 나빠진다.”라는 것은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왠지 그 말이 사실인 것 같기도 했고 이런 일을 그만 해야 하나 고민도 되었다. 옆에서 굴레가 슬쩍 보더니 말을 했다.

  “이제 어제 봤었던 것 같다.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너도 내 나이 되면 이렇게 될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허허. 악담하는 건 아니야”

  “하하. 네, 이해하죠. 그것보다 어제 물어볼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해서 궁금한 게 생겼는데요. 제가 지금 건축자재 옮기는 것만 하고 있는데 다른 일도 할 수 있나요?”

  비상은 먹던 밥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가 하는 말에 집중했다.

  “네가 지금 시멘트 옮기는 일을 하고 있잖아? 그 일이 여기 오면 제일 처음 하는 일인데, 건설 쪽에 아무 경력 없이 오면 그 일부터 하게 돼있지. 무슨 적응 기간이라나? 뭐라나 아무튼 그거 한 달 정도 하다보면 다른 일을 신청 할 수 있는데 대체로 다른 일이 더 많이 벌긴 하지”

  “그럼 더 복잡한 일을 하더라도 덜 벌수도 있는 건가요?”

  “그거야 당연하지. 예를 들어 조립하는 일을 한다 치자 그 일을 정말 느리게 한다면 시간당 들어오는 돈은 적을 수밖에 없지. 짐 옮기는 것 보다 더 적게 들어올 수도 있어. 또 조립하는 건 실수라도 하게 되면 검은 띠에 적힌 숫자가 상당히 줄어들지”

  비상은 검정 띠라고 해서 그게 뭔가 싶어서 슬쩍 고개를 둘러 손목을 봤더니 여기 공사장에 처음 올 때 착용했던 장치를 말하는 걸 알았다.

  “여기 사람들은 이 기계를 검은 띠라고 부르나요?”

  “그거? 원래 정식 명칭이 무슨 통합 일 측정기 뭐 그랬던가? 그런 이름이 있는데 일하는 사람들은 간단하게 검은 띠라고 부르지. 간혹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긴 하지.”

  “무슨 이름이요?”

  “수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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