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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기억사형
작가 : 김광수
작품등록일 : 2020.8.4

사형수들의 기억을 지우고 사회로 보냄으로써 발생하는 이야기

 
기억사형(3)
작성일 : 20-08-04 15:58     조회 : 203     추천 : 0     분량 : 9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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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살기가 힘들다고요? 이렇게 살기 좋은 국가가 어디 있어요?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니 취직을 못했던 거예요.”

  비상은 의외에 대답에 당황했다. 그는 주요 질문 부분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이상한 부분에서 신경이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비상은 그가 지나치게 똑똑하거나 지나치게 멍청한 것으로 추측했다. 그래서 더 이상 이런 질문들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아니요 말이 그렇다는 말이죠.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 하지 않죠.”

  “그렇게 말하니 방금 한 말은 못들은 걸로 해드릴게요. 비상씨는 어떤 분야에 취직하길 원하시나요?”

  비상은 못들은 걸로 할 게요 라는 말이 왠지 신경에 거슬렸다. 왜 그 말을 선심 쓰듯이 굳이 못들은 걸로 해야 했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취직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는 특별하게 취직 하고 싶은 곳은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얘기 하다 보니 어차피 중등학교로 취직하는 곳은 단순노동밖에 없었다. 그래도 중등학교 성적이 좋게 나와서 그나마 백화점에서 판매원으로 일을 할 수 있다기에 그걸 선택했다. 그는 내일 지정해 준 백화점으로 가서 면접을 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비상은 국가취업소에서 나와 길을 걸으면서 상담원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아 심란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니 취직을 못한다라... 내가 그렇게 부정적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별 말을 하지 않았는데 상담원이 과민반응 한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생각이지 상담원의 말이 옳은 것일 수도 있다. 특히 비상 같이 기억사형 당한 사람들보다 이 사회에 오래 있었던 사람이 더 옳지 않겠는가?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억사형 당한 것이 아닐까? 기억은 지워져도 DNA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국가반역죄로 기억사형을 당한 비상의 반사회적인 성격은 변함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하고 나니 비상은 갑자기 사회에 적응할 자신이 사라졌다. 이대로 예전처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교도소에 다시 가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들기 시작했다. 만약 다시 큰 범죄를 저지른다면 기억사형이 아닌 그냥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 비상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토피아라...’

  교도소에서 이 국가는 유토피아라는 말을 들었었다. 비상은 자신이 유토피아에 살 자격이 있는 것인가 생각했다.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비상의 옆을 걸어 다닌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쁜 듯하고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함이 가득 찬 표정을 띠고 있는 사람은 비상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비상은 그 사람들에 속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다. 지금 비상은 이 사회의 불순물과 다름없었다.

  비상은 다시 생각했다. 야생의 동물들은 먹이를 못 먹어서 굶어 죽을지언정 스스로 삶을 포기 하지 않는다. 하물며 고등생물인 인간이 굶어 죽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교도소에서 나올 때 사회에 다시 적응하라며 국가에서 그렇게 지원해줘서 인간답게 살겠다고 말했던 걸 떠올리며 몸에 힘을 주고 걸었다. 그는 다시 마음을 잡고 다음 목적지를 향했다.

  비상의 다음 목적지는 바로 은행이었다. 이 국가에서 은행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 밖에 없다. 은행에서는 돈을 빌려주기도 하며 집을 빌려주기도 한다. 비상은 한 달 정도 쓸 수 있는 돈과 자신이 살 집을 빌렸다. 빌린 돈은 손목신분증에 전산으로 기록되었다. 당장 돈이 없어 저렴한 집을 빌렸기 때문에 도시와 좀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비상이 살 집은 8층에 위치했다. 고층일수록 경치가 좋아 비쌀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와는 반대로 고층일수록 가격이 더 저렴했다. 비상은 은행에서 나오면서 자신의 집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는 걷다가 커다란 마트가 눈에 띄어서 그곳에 들렀다. 그동안 교도소에서는 맛없는 음식만 먹어서 마트 안에 여러 음식들을 보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는 라면이나 과자 같이 식량 위주로 구매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사고 싶지만 가격이 꽤 나가서 더 사지는 못하고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만 산 뒤에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창밖의 모습들이 높은 건물에서 낮은 건물로 바뀌어가고 주변은 회색에서 녹색으로 바뀌었다. 버스를 타고 한참동안 가서야 집이 도착했다. 광활한 평야에 같은 크기와 모양의 건물이 띄엄띄엄 있었다. 10층 정도 되는 네모반듯한 건물에 한쪽 면은 유리로 되어있고 반대쪽 면은 물고기의 비늘처럼 태양광 패널이 박혀 있었다. 비상은 알려준 아파트의 건물의 입구로 갔다. 거기에 인식장치가 있기에 손목 신분증을 찍었더니 문이 열렸다. 비상의 집은 8층이었다. 8층을 가기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갔더니 고맙게도 엘리베이터에 있던 누군가가 나를 보고선 올라가지 않고 기다려줬다.

  “고맙습니다. 기다려주셔서.”

  “뭐 저도 고맙죠.”

  비상은 그 말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 기다려주고 자신한테 고맙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이번에 새로 이사 온 사람입니다.”

  비상은 사회에 적응할 생각으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네, 그래 보이네요.”

  처음의 말과는 다르게 그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옷도 어둡고 추레했다. 비상은 더 말을 걸까 했지만 그가 비상과 별로 대화하고 싶지 않아 보여서 관뒀다. 8층에 도착하니 일직선의 긴 복도가 있고 좌측으로는 집의 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오른쪽은 벽이었는데 벽 밖에는 태양광 패널이 있을 것이다. 건물 구조는 참 단순했다. 교도소를 디자인 한 사람이 이 집도 디자인 한 것 같았다. 비상은 배정받은 집인 805의 문고리를 손목신분증이 있는 손으로 잡았더니 문에서 삑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렸다. 비상이 하루 동안 돌아다니면서 이거 하나는 느꼈다. 다른 건 몰라도 손목 신분증만큼은 잃어버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지문인식 기능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주워도 사용할 수 없어서 악용의 여지는 낮지만 자신이 불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늘 착용하고 다니기로 했다.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은행에서 사진으로 보았던 집의 모습보다 실제 모습이 더 작은 것 같았다. 심지어 교도소에 있던 곳보다 조금 작은 편인 것 같았다. 그래도 싱크대, 화장실, 침대, 냉장고, 텔레비전 등 필요한 건 빼곡히 있었다. 인간이 혼자 살 수 있는 최소 크기의 집을 지으라고 하면 이 집이 될 것 같았다. 텔레비전은 교도소에 있는 모니터와 비슷하게 화면을 터치하여 설정을 조정할 수 있었다. 텔레비전에는 채널이 있어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볼 수 있고 손목 신분증과 연동하여 여러 정보를 얻을 수도 있었다.

  비상은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손목 신분증을 텔레비전 가까이 대어서 연동시킨 후 하루 동안 자신이 얼마를 썼는지 확인해 보았다. 별거 한 게 없는데 이곳저곳에서 조금씩 돈이 빠져나갔다. 심지어 방금 전에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전기세까지 나왔다. 그리고 그 부분을 눌러서 상세정보를 알아보니 어디에서 얼마큼 이용했는지도 나왔고 2명이서 타서 요금이 할인되었다고도 나왔다. 이제야 아까 엘리베이터 주고받은 대화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왜 고층의 집이 더 저렴한지도 알게 되었다. 아까 탄 버스도 이동거리만큼 요금이 차감되었다. 비상은 이걸 보며 어떻게 보면 현명한 것 같으면서도 또 어떻게 보면 과도하게 깐깐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상은 집에서 크게 할 것은 없지만 집안을 둘러보고 음식들을 간단하게 먹고 나니 해가 지기 시작했다. 그는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씻고 잘 준비를 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창문이 흐리게 바뀌더니 밖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통금시간이 된 듯했다. 구역마다 통금시간이 존재하는 곳이 있다고 배웠는데 이 구역도 포함인 것 같았다. 어차피 주변이 대부분이 산이라서 야간에 밖을 봐도 볼 게 없지만 이렇게 자동적으로 창문이 흐려지니 그는 괜히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집이야 돈을 벌게 되면 좋은 곳으로 이사 갈 수 있으니 잠시만 참기로 했다. 비상은 쓸데없는 것에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하며 잠을 잤다.

  다음날, 살짝 뜬 태양의 햇빛이 비상을 깨웠다. 국가취업소에서 알려준 백화점까지 거리가 좀 되기 때문에 허겁지겁 준비하고 일찍 나섰다. 버스 정류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표정이었고 옷도 허름했다. 정장을 입고 있는 비상이 제일 옷차림이 좋아 보였다. 비상은 자신은 기억사형자이기 때문에 이런 낙후된 곳에 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건데 이 사람들은 기억사형자도 아닌데 여기 사는 것 보면 사회에서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비상은 버스를 타고 그 백화점으로 갔다. 백화점에 다가갈수록 높은 건물들은 점점 많아졌다. 비상이 도착한 곳은 지금까지 실제로 본 곳 중에 가장 잘 사는 지역 같았다. 백화점은 비상이 생각보다 꽤 컸다. 그곳으로 들어가니 손목 신분증에서 돈이 차감되었다. 여긴 백화점에 입장하는 것만으로도 돈을 낸다. 괜히 면접 보러 왔다가 떨어지면 돈만 날리는 꼴이 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비상이 백화점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중앙 안내 데스크에 자신이 면접 보러 왔다고 하니 길을 알려주었다. 말해준 곳으로 갔더니 연락을 받았는지 자신이 면접관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비상에게 다가와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했다. 도착한 그곳엔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들이 다양하게 걸려있었다. 면접관은 비상에게 자신한테 물건을 팔아보라고 시켰다. 비상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지만 인사를 크게 하고 밝은 목소리로 면접관에게 찾는 옷이 있는지 물어보고 이 옷이 잘 어울리겠다고 말하면서 이런저런 수식어를 붙였더니 면접관은 무표정 한 채로 통과라고 말을 했다. 비상은 진짜 이것만 하고 이대로 합격인지 몰라서 당황했다.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이상하지만 않으면 합격시키는 것 같았다. 면접관은 앞으로 잘하고 못하고에 따라 결과가 다르니까 스스로 알아서 보고 배우며 내일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비상은 강물에 떠있는 종이배 마냥 백화점 안을 우왕좌왕했다. 그는 이곳에서의 자신의 모습이 어색했다. 멀뚱하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백화점에 오는 손님들의 옷차림을 보아하니 어느 정도 부유층에 속하는 모양이다. 하나같이 고급스러운 옷에 신경 쓴 머리에 보석이 박힌 반지를 착용하고 목에는 보석 박힌 목걸이를 착용한 사람도 많이 있었다. 여기 매장 직원들은 서비스업 정신이 투철한 것 같다. 그들은 손님이 오면 머리가 땅에 닿을 듯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그리고 손님에게 굽실굽실 한다. 어떻게 보면 손님과 판매원에 관계가 아니라 왕과 신하의 관계 같은 느낌이다. 하긴 여기서는 잘하고 못하고에 따라 실적이 다르니 저러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이곳에서 일은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비상은 지금은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니 자존심은 버리기로 했다. 애초에 자존심 따윈 없었을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다음날 비상은 백화점으로 출근했다. 매장 직원으로 등록 되었는지 백화점으로 들어갈 때 입장료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 보았던 판매원이 있던 자리에 비상이 투입 되었다. 그 판매원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짐작은 가서 묻지 않았다. 어제 볼 때 그 사람은 말을 더듬거리기도 하고 물건을 잘 팔지도 못했다. 비상은 그 사람이 아마 해고되었을 것이라고 추측을 했다. 어차피 일자리야 국가에서 새로 주니까 실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뭔가 모를 씁쓸함이 몰려왔다. 왜 인수인계를 하지 않고 스스로 배우라는 건지도 알 것 같았다. 다음날 자신이 해고되고 다음 자신의 자리에 취직할 사람을 위해 인수인계를 제대로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 정도면 크게 몸이 힘든 것도 아니고 잘만 한다면 급여도 좀 되기 때문에 비상도 그런 처지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 했다.

  그 후 비상은 매일매일 허리를 굽혔다. 머리를 조아리는 일도 매번 하니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에게 자존심 따윈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는 직원들끼리 서로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이 있다. 같은 백화점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자주 보기 때문에 친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서로 경쟁자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진정으로 친해지기는 어려웠다. 비상도 그 사람들에게 별로 정이 가지 않아서 업무상 관련된 일을 제외하면 딱히 대화를 하지 않았다.

  여기선 생각했던 것 보다 실적이 상당히 중요했다. 실적에 따라 급여도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화점 관리자의 은근한 차별도 느껴진다. 일을 잘 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주는 건 타당하긴 한데 그 정도가 지나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노력하는 만큼 얻는다.’이 말이 이 국가의 슬로건 중 하나인 만큼 이 나라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그 말을 다시 떠올리며 사회에 적응하자며 비상은 매일 허리를 굽혔다.

  한 달의 시간이 지나 비상의 급여가 들어왔다. 비상은 손목 신분증에 있는 잔액 칸에 숫자가 많이 올라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동안 고생했던 노력의 보답을 받는 것 같아서 울컥했다. 백화점 사무실에는 1등부터 꼴등까지의 급여가 적힌 화면이 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급여를 대조해보니 비상은 중간정도의 실적이었다. 그는 일을 처음 시작했는데 이정도면 만족했다. 거기에 적힌 것을 보니 상위권과 하위권의 급여 차가 3배 가까이 났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이정도의 급여 차이라면 다른 직업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비상은 자신이 버는 돈이 적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돈 쓸 곳이 많아서 잔액이 팍팍 줄어들었다. 매일 교통비는 물론이고 식비와 전기세 수도세까지 낸다. 심지어 TV도 보고 싶은 채널을 추가 하려면 채널마다 돈을 추가로 내야 했다. 무료로 볼 수 있는 채널은 국가에서 하는 뉴스방송 채널뿐이다. 뉴스에선 지도자의 성과라던가 국가의 중요한 일 같은 것을 보도했다. 오늘도 그런 뉴스들로 가득 채워졌다. 이번에 지도자가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도 있고, 새 사령관이 취임했는데 자수성가의 대표적인 사례라면서 지도자가 직접 칭찬하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연일 보도 되었다. 비상은 음악을 듣고 싶어서 음악 채널을 유료로 구입해서 보고 있다. 시간이 맞지 않아서 못 봤던 프로그램을 다시 보기 위해 돈을 내야 하는 건 이제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이런 사소하게 사용되는 돈이 크지는 않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다는 말처럼 한 달 동안 쓴 비용 모아보니까 액수가 꽤 되었다.

  돈이 가장 많이 나가는 부분은 음식하고 옷 부분이다. 아침하고 저녁은 집에서 때울 수 있지만 점심은 집까지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식당에서 해결한다. 식당마다 음식의 가격차가 큰데 비상은 백화점에서 좀 떨어져 있는 저렴한 식당밖에 가지 못한다. 비상이 가는 식당은 늘 사람이 북적인다. 여러모로 불편하지만 돈을 아껴야 되니 어쩔 수 없이 그곳까지 간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가서 바로 식사를 해결하고 오면 아슬아슬하게 점심시간이 끝난다. 돈이 드는 건 옷도 마찬가지이다. 고급 옷가게에 파는 옷들은 너무 비싸서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출소할 때 정장을 골랐던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그 때 정장을 골라서 그나마 정장을 더 살 돈은 아꼈기 때문이다. 옷은 갈아입어야 하고 백화점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저렴한 정장으로 딱 한 벌만 더 샀는데 돈이 꽤 나갔다. 아파트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왜 그런 옷들을 입고 다녔는지 이해 할 만 했다. 추레한 옷들은 저렴한 편인데 정장 같은 것은 비싸서 한 벌 더 살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비상은 자신의 백화점에 파는 정장도 비싸서 사지 못한다. 돈을 모아야 빚도 갚고 큰 집으로 이사도 갈 수 있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것 외엔 돈을 쓰지 않는다. 비상이 유일하게 누리는 사치는 음악채널에서 음악을 듣는 것뿐인데 그것도 그만 두어야 할 것 같았다.

  육체적으로는 크게 힘든 일은 없었다. 휴일은 한 달에 7일을 선택해서 쉴 수 있다. 하지만 쉬면 실적이 뒤처지게 되니 쉰 적은 없었다. 쉬지 못한다는 그 점이 조금 피로할 뿐이다. 다른 힘든 것은 손님들이 하나같이 비상을 아래로 보는 눈빛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이 모든 것을 참을 수 있었던 건 비상도 나중에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빚만이라도 갚으면 여유가 생길 것 같은데 매달 늘어가는 이자로 인해 생각보다 갚기가 힘들었다. 반복되는 일상, 변화 없는 하루. 비상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으로 변하고 있었다. 비상이 웃는 것은 백화점에서 손님이 올 때의 억지웃음밖에 없었다.

  한 달이 지나자 비상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처음으로 휴일을 냈다. 그러고는 국가취업소에 다시 찾아 갔다. 그리고 전에 봤던 상담원을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요? 그 정도면 충분히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로 보는 거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처음보다 불친절해 보였다.

  “뭔가 저랑 맞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이번엔 좀 더 힘들더라도 돈을 많이 버는 일을 하고 싶어요.”

  “다른 분들은 잘만 하시던데 비상씨는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네요.”

  비상은 그 말을 듣고 살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건 자신의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불현 듯 자신의 죄목이 떠올랐다. ‘국가반역죄’ 아마 기억사형 당하기 전에도 현재와 비슷한 삶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에 자신이 뭔가 문제를 일으켰고 교도소에 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비상은 분노를 추스르기로 했다. 이번에 또 잡혀가면 기억사형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한 말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맴돌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회는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자신같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좋지 않은 직업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자신이 부족한건 탓하지 않고 사회에 불만만 가지는 자신이 괴로웠다. 비상은 자신이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기억사형을 당했으니 다시 한 번 마음을 고치고 낮은 자세로 임하기로 했다.

  “네, 뭐 제가 쑥스러움이 많은지 사람들 상대하는 건 잘 못하겠네요. 그리고 이왕이면 돈을 좀 많이 주는 직업을 했으면 하는데…….”

  “급여는 많이 주는 곳이 있긴 한데 몸이 좀 힘들 텐데 괜찮겠어요?”

  “네, 괜찮습니다.”

  지금 좀 힘들어도 빚을 빨리 갚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 백화점에 전화해서 그만둔다고 했다. 비상은 전화걸 때 까지만 해도 갑작스럽게 일을 그만 둬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백화점에서 대수롭지 않게 알겠다고 대답해버려서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다음날부터 새롭게 일이 시작되니 오늘은 푹 쉬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아침이 밝았다. 정장대신 허름한 옷을 입었다. 그는 얼마 없는 자신의 물건들을 가방에 빼곡히 집어넣었다.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거기서 기차를 타고 먼 곳까지 출발했다. 국가취업소에서 듣기로는 군부대의 건설현장이라고 했다. 그곳에서의 급료는 이전에 일 했던 곳 보다 평균적으로 두 배 정도 많다고 했다. 빚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돈이 이래저래 나가서 빚을 많이 갚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열심히 한다면 금방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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