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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기억사형
작가 : 김광수
작품등록일 : 2020.8.4

사형수들의 기억을 지우고 사회로 보냄으로써 발생하는 이야기

 
기억사형(2)
작성일 : 20-08-04 15:58     조회 : 219     추천 : 0     분량 : 10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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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한 달이란 건 식사가 나올 때마다 표시를 해놔서 알 수 있었다. 종이에 그동안 90끼를 먹었다고 적혀있었다. 그동안 그가 배운 수업의 내용은 다양했다. 지도자, 국사, 도덕, 윤리, 수리, 과학, 기술, 사회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성교육 같은 수업도 받았다. 이렇게 기초교육을 받았고 시험도 중간 중간 몇 번 쳤는데 기초교육이라서 그런지 문제가 쉬워서 모두 한 번에 통과했다. 시험을 모두 통과했더니 다시 새로운 영상의 번호가 적힌 것이 나왔다. 그것은 이제 기초교육을 통과한 자들이 듣는 심화교육이었다. 그는 심화교육을 들었다. 심화교육은 과목별로 수준을 나눠서 세분화 되었다. 7607137은 수리와 과학, 기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만점으로 상의 난이도로 수업을 듣게 되었다. 나머지는 만점을 받지는 못했지만 성적은 좋게 나와서 마찬가지로 상의 난이도로 배치되었다. 심화라고 했지만 그는 어려움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 그가 처음의 교도소인 것을 알고 느낀 충격은 이제 많이 사라졌다.

  다시 그렇게 세 달이 더 흘렀다. 7607137은 교도소 환경에 완전히 순응했다. 지금쯤 식사가 나올 때가 되었구나 라고 생각하면 곧 식사가 나왔다. 그가 공부를 하고 세끼 식사를 하고 샤워한 다음 잠에 들면 오늘 하루도 잘 넘겼구나 하며 은근히 만족감이 들기도 했다. 그가 다른 것은 적응했지만 가장 괴로운 것은 혼자 있는 것에 대한 적막감이었다.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경우는 특이사항이 있을 때 교도관한테 전화하는 경우밖에 없었다. 감옥에 온지 얼마 안 됐을 땐 몇 번 전화를 했었는데 무관심하게 마치 로봇처럼 대답해서 그 후론 한동안 전화를 하지 않았다가 머리가 아파서 한 번 전화했더니 두통약이 식사와 함께 나온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 까지 수감자들을 격리를 했어야 됐나? 라고 한탄도 하긴 했지만 사회로 나간 후에 일반인들과 같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만간 마지막 시험을 친다고 한다. 그동안 여러 번의 시험이 있었지만 시험을 잘 쳤었다. 만약 별일이 없다면 이번에도 한 번에 통과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간절하게 교도소에서 나가고 싶었지만 막상 출소한다고 생각 하니 바같 세상에서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감싸 안았다. 마치 자신이 세상 속에 벌거벗은 채로 내놓아 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머릿속이 뒤숭숭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휘저었다. 그러고는 책상으로 걸어가 책을 펴고 공부를 했다. 집중은 되지 않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따라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보며 생각에 잠기며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시험 당일이 되었다. 이번에도 강의를 다 듣고 나니까 시험을 칠 것인지 여부를 묻는 버튼이 화면에 떴다. 그는 그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화면에 선글라스를 낀 그 사내가 나왔다. 잊힐 만 할 때마다 나타나서 그의 모습을 상기시켜 주었다.

  “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벌써 엊그제 만난 것 같은데 벌써 마지막입니다. 만약 이 시험을 통과하게 되면 저를 다시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슬프지 않습니까? 하하하 농담입니다. 이것만 통과하게 되면 자유가 될 테니 아마 기쁘겠지요?”

  즐겁지 않은 농담을 했지만 곧 출소할 수 있다는 말에 잔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혹시나 떨어지면 출소일이 늦어질 것이라는 긴장감과 사회에 발을 내딛게 되는 불안감이 섞여있는 쓴웃음도 나왔다.

  “이 시험만 통과하시게 되면 여러분은 이제 일주일동안 사회로 나가기 위한 교육을 받게 됩니다. 마지막 시험이니만큼 난이도가 상당합니다. 이 시험을 포함해서 모든 시험을 한 번에 통과한사람이 1%도 안 되니 혹시 떨어지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다시 도전하셔서 꼭 통과하길 바랍니다.”

  그 말을 듣고 7607137은 살짝 놀랐다. 그 동안 문제가 쉬워서 일부러 쉽게 만든 줄 알고 착각했었다. 그는 내가 똑똑한 편인가? 라고 생각했지만 그동안 출소하기 위해 밥 먹고 잠을 자는 시간만 제외하고는 모든 시간을 열심히 공부한 것에만 투자한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니라 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가 열심히 했던 또 다른 이유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사방이 벽으로 막힌 이 공간이 교도소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어서 괴로웠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인생에서 목표가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목표로 인하여 삶의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목표를 성취한 후의 허탈감을 견디는 것은 더 중요하다. 그 허탈감을 버티고 새로운 삶의 목표를 정해야 한다.

  7607137 자신의 새로운 삶에 첫 번째 목표를 출소라고 잡았다. 그는 첫 번째 목표를 성취했다. 화면에 나온 문제들을 종이에다 풀어서 답을 눌렀다. 답을 제출하자마자 바로 합격이라고 통지되었다. 그리고 화면에 그의 죄목이 나왔다. 죄목은 국가반역죄였다. 예상치 못한 범죄였다. 살인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국가반역죄라 함은 상황에 따라 살인보다 더 큰 범죄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죄목을 이렇게 알려주는 이유는 아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 죄를 다시 짓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정확히 어떤 잘못을 했는지 궁금했지만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건 자신이 아니라 과거의 다른 사람이 죄를 지은 것으로 간주했다. 그는 죄를 지었지만 과거일 뿐이다. 그는 어떤 죄목이 나오든 이미 각오는 했었다. 그래서 이것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과연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까? 사형수가 기억이 지워졌다고 일반인들과 같이 살 수 있을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차라리 합격하지 말고 좀 더 있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두려움에 맞서지 않으면 영원히 두려워지는 법이다. 어차피 여기서 영원히 살 수 없다. 언젠간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 그래서 그는 강해지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화면엔 새로운 페이지가 뜬다. 그 버튼을 누르니 여러 가지 정보가 나왔다. 바깥세상에 대한 사진과 글들이 많이 나왔다.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실용적인 정보들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취직하려면 국가취업소에 가면 취직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말이 있었고 각 지역별로 어떤 도시들이 있는지도 나오고 가는 방법도 나왔다. 그는 그러한 정보들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이 모든 정보를 하루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렇게 일주일동안 시간을 주는 이유는 사회에 적응할 마음가짐을 충분히 하라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화면에 자신의 새로운 이름도 만들어 두라고 적혀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무엇을 할지 고민을 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그는 잠도 푹 못 잤고 출소할 날을 기다리며 침대에 걸쳐 앉아 있었다. 철커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그의 방을 열고 들어왔다. 7607137이 처음 여기서 일어났을 때 본 교도관이었다.

  “날 따라와라.”

  몇 달이 지났어도 전혀 변함없이 딱딱한 말투였다. 7607137은 조용히 그를 따라갔다. 수많은 방이 있는 복도를 지났다.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 그 방에는 다른 수감자들이 있을 것이다. 복도 끝에 있던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는 밝은 빛 때문에 너무 눈이 부셔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눈을 찡그렸다.

  “오랜만에 빛을 봐서 아마 눈이 좀 따가울 테다.”

  그에게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어떠한 사람이 말을 걸었다.

  “누...누구세요?”

  아직 낯선 사람에 대한 불안함이 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반갑다. 나는 여기 교도소에서 일하는 사람인 것만 알아두게.”

  그의 눈이 빛에 적응되자 눈을 찔끔 뜨고 다시 목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단정한 옷차림에 살이 좀 있어 보이는 사람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교도소에 있는 사람치곤 인자한 표정에 웃는 얼굴 때문에 왠지 마음이 안정되었다. 주변은 사무실 같이 화사했다. 창문도 있고 벽도 밝은 색깔이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네 성적이 예상대로 아주 우수하더군. 축하하네.”

  “예상대로요?”

  그는 7607137의 말을 듣고 눈을 한 번 굴리더니 다시 인자하게 표정을 지었다.

  “얼굴을 보니 공부를 잘하게 생겨서 한 말이라네”

  76071371의 얼굴을 다르게 바꿨다고 했는데 공부를 잘하게 생겼다는 말은 이상했다. 아님 그냥 형식적으로 한 말 일수도 있었다. 아니면 얼굴이 아니라 체구가 왜소한 것을 보고 공부밖에 못하게 생겼다고 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예상치 못한 질문에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대답한 것일 수도 있다. 7607137이 미심쩍음이 느꼈지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태연하게 넘겼다.

  “그러고 보니 제 얼굴을 아직까지 제대로 못 본 것 같은데 볼 수 있을까요? 면도하는 것도 힘들게 했어요.”

  “거 참 성미가 급하군. 허허, 자 여기 거울을 보게”

  그는 긴장한 채로 안경을 엄지손가락으로 바로잡고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사형수라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순하고 평범하게 생겼다. 왜 아까 그런 말을 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침팬지가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처음 보고 놀라는 것처럼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동안 말없이 쳐다보았다.

  “허허 네 얼굴인데 참 신기한가 보군. 보통 다들 놀라긴 하지. 그래, 너의 나이가 몇 살 쯤으로 보이지?”

  그는 거울을 다시 보며 잠시 고민을 하다가 대답했다.

  “30살 조금 넘은 걸로 보여요.”

  “구체적으로 말해주게나.”

  “구체적으로요? 음... 한 32살 정도요?”

  “그래 네 나이는 이제 32살이다.”

  그는 그 말을 하고 컴퓨터에 나이를 입력했다.

  “무슨 나이를 그렇게 정해요?”

  그는 자신의 나이를 보이는 대로 정한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럼 넌 너의 나이를 아는가? 우리도 너의 나이를 몰라. 그래서 이렇게 하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했다네.”

  “그럼 30살로 해주세요.”

  “허허 재미있는 사람이군. 하지만 32살이라고 벌써 기록했고 이 나라에서 나이로 차별받을 일 없으니 걱정 말게나.”

  7607137은 뭔가 한 방 맞은 느낌이었지만 상대적으로 아는 게 없어 반박할 수 없으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네가 시험을 잘 쳐서 학력시험 점수가 상당히 높게 나왔는데 원하면 이정도 점수면 대학시험을 치고 대학교에 진학할 수도 있지”

  “일단 사회에 적응부터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는 대학교라는 말에 솔깃했지만 아직 그럴 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리고 자네 이름은 무엇으로 할 생각인가?”

  “비상으로 하겠습니다.”

  “바로 대답하는 거 보니 오래 생각한 것 같군. 음 그거 좋은 이름이군. 높이 날아오른다는 뜻인가?”

  “네”

  “그렇구먼. 교도소에서 임시로 지었던 7607137이란 이름은 이제 잊어버리고 새로운 이름처럼 높이 날아서 우리 국가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

  “감사합니다.”

  비상은 감사함에 허리를 한 번 숙였다. 이름을 바꾸자 새롭게 태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그럼 이제 옷장에서 옷 한 벌을 고르게. 출소 선물로 국가에서 선물로 주는 거니 감사히 받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비상은 사형수에게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해주는 것에 대해 너무 고마워서 그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다. 비상은 옷장으로 갔다. 옷장이라고 했지만 크기가 거의 방 하나의 수준이었다. 그는 옷장으로 들어가서 옷들을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옷들이 있었다. 옷을 살펴보다가 눈에 띄는 옷을 발견했다. 그는 검은색 정장을 한 벌 골라서 옷을 갈아입고는 거울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니 비상이 출소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삶에서는 반드시 인간답게 살겠습니다.”

  비상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 나한테 감사할게 아니라 국가에게 하게나. 자네를 이렇게 해준 것은 지도자님 덕분이라네. 자네가 이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까지 기분이 좋구먼. 자, 여기 손목신분증인데 손목에 착용하게”

  그는 손목시계 같은 검은색 물건을 비상에게 주었다.

  “아 이게 그 영상으로 봤던 신분증인가요?”

  “그렇다네. 아마 자네가 영상으로 봤겠지만 그것이 신분증도 되고 전화도 되고 신용카드처럼 물건도 계산하고 돈도 거기로 들어온다네. 그러니 몸에 늘 착용하고 다니게.”

  그는 그 기계를 손목에 착용하였다. 그러고 보니 교도소에서 일하는 사람도 모두 다 손목신분증을 착용하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 자네는 일반인과 다름없어. 범죄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네. 우리만 제외하고는 말이지”

  굳이 말하지 않았어도 됐는데 자신들은 비상이 범죄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에 그는 약간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우리가 너의 비밀을 알아서 불안한 모양인데 걱정 말게나 우리가 자네의 비밀을 퍼트린다고 해서 우리한테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게다가 자네가 저질렀던 범죄 기록은 남아있지도 않아서 자네한테 범죄자라고 말해도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데 누가 믿겠는가?”

  그는 수많은 기억사형자와 대화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비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가 하는 말도 일리가 있어서 반박할게 없었다. 비상은 금방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밖으로 나가보도록 하게. 북쪽의 길을 따라 3시간 정도 걸어가면 큰 도시가 나올 텐데 아마 거기로 가면 될게다. 똑똑하니 나머지는 알아서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저 같은 범죄자에게도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상은 허리를 크게 접어 90도 인사를 하고 그 상태로 3초정도 유지한 뒤 허리를 펴고는 입을 닫은 채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주변에는 건물 하나 보이지 않았고 온통 나무와 산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과 신선한 산소가 그를 들뜨게 만들었다. 그의 걸음은 달에서 비행사들이 걷는 것과 같이 가벼웠다. 땅에는 북쪽을 따라 나 있는 길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비상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갔다. 걸어갈수록 길은 점점 넓어졌고 여러 갈래의 길이 생겼다. 하지만 이정표가 있어서 헷갈리지는 않았다.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교도소가 점처럼 보이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숲에서 벗어났는지 주변의 나무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자동차는 점점 많이 지나가고 건물도 하나 둘 씩 나타났다. 사람이 사는 지역으로 온 것 같았다. 걸어가는 사람들도 간간히 보이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비상을 의식하지 않았다. 비상도 괜히 수상한 짓을 해서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긴장을 풀었다. 비상은 자신 스스로 나는 일반인이라는 말을 되뇌며 정면을 보고 어색하지 않게 똑바로 걸었다. 그 때 누가 비상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누구지? 날 아는 사람인가? 그럴 리는 없을 텐데... 혹시 내가 교도소에서 나온 걸 본 사람인가? 주변에 아무도 없었는데 어떡하지?’

  비상은 일반인이 처음으로 말을 건 것에 대해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금 행사 중이라서 우리 식당으로 오시면 할인해 드립니다.”

  그 말을 듣고는 비상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지금 제가 바빠서요. 죄송합니다.”

  비상은 그 말을 하고는 죄를 지은 것 마냥 뒤도 안보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곧 방금 자신이 자연스럽지 않고 수상하게 행동 한 것에 대하여 민망해했다. 살짝 눈을 돌려 주변을 보았지만 이 세상에 자신이 없어져도 모를 만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고는 옷매무새를 고치고 허리를 쫙 펴고 걸었다.

  비상은 다리가 저릴 만큼 걷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니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고 언덕만큼 큰 건물들도 보였다. 도로는 넓었고 차량도 아까보다 많이 지나갔다. 비상은 시골사람이 처음 도시로 온 것 마냥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수상해 보일까봐 곧 관뒀다. 비상은 네거리에 도시의 약도가 그려진 이정표를 보고 국가취업소로 향했다.

  그 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취직을 못한 사람이라 그런지 표정들이 썩 좋지는 않았다. 비상은 대기하려면 네모난 기계에 손목신분증을 찍으라고 적혀있는 안내문을 보았다. 그 기계에 손목신분증을 넣으니 기계에서 삑 소리가 났고 거기서 신청되었으니 로비에서 대기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 말을 듣고 빈 의자에 가서 앉았다.

  비상은 국가에서 이렇게 취직까지 도와주니 너무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이상할 정도로 너무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국가에서 범죄를 일으킨 자신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취업양성소에 대기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대체로 어두운 것도 조금 이상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완벽에 다가갈 수는 있어도 완벽이란 건 없다. 어디에서든 범죄자는 발생할 수 있고 그 범죄자를 처리하는데 가장 완벽에 가까운 방법이 이 국가에서는 기억사형이라고 판단한 듯 했다. 기형사형을 해서 범죄자들을 다시 사회에 빨리 복귀시키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비상은 자신이 범죄자였기 때문에 완전히 중립적인 판단은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봐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상님 들어오세요.”

  안내데스크에 있던 안내원이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자신의 이름이 어색한데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해서 듣지 못하고 두 번째로 이름을 불러줬을 때서야 자신이 이름이 비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놀라서 크게 네 라고 대답하고 허겁지겁 달려갔다.

  “7번방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녀는 눈의 초점이 없었고 목소리는 기계보다 더 기계처럼 느껴졌다. 비상은 그 목소리에 괜히 불쾌했지만 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보면 지쳐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될 것 같기도 생각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것 중에 지쳐 보인다는 이 부분이 유일하게 기계스럽지 않은 부분이었다. 데스크 오른쪽에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긴 복도와 여러 방들이 있었다. 마치 교도소의 모습과 비슷했다. 그러고는 7이라고 적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방에는 테이블 앞에 비상보다 열 살쯤 많아 보이는 사람이 컴퓨터를 보여 앉아 있었다. 그는 안내원이 말하는 목소리보다는 인간적으로 차분하게 비상에게 말을 걸었다.

  “비상씨 여기 의자에 앉아주세요. 음... 비상이라 이름이 특이하네요.”

  비상은 그 말을 듣고는 이름을 괜히 이상하게 지은 것 같아서 조금 후회했다.

  “네, 헤헤 할아버지가 높이 날아가라는 뜻에서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비상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더 일반인 같아 보였길 바랐다. 하지만 그 상담원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성적이 매우 좋은데요? 왜 중등학교까지만 다녔죠?”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비상은 이곳이 그저 취직할 자리만 알려주는 줄 알았는데 이런 질문을 할지 몰랐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쳤던 시험들이 비상의 학교 성적이 된 것을 깨달았다. 교도소에서는 중등학교 수준까지만 배워서 학력에는 중등학교까지의 기록만 있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중등학교까지만 다녔습니다.”

  “아쉽군요. 대학교까지 다녔다면 좋은 직장을 구했을 텐데 중등학교 정도면 좋은 데는 다니긴 힘들죠. 중등학교에서 성적이 좋다한들 거기서 배운 걸로만은 쓸데가 없으니…….”

  뭐 당연한 결과였다. 중등학교만 나왔기 때문에 좋은 곳에 취직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 아니다. 사형당한 범죄자가 좋은 곳에 취직하는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비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괜히 좋은 곳에 취직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기도 했다.

  “이전에 다녔던 직장에 대한 기록은 없는데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정식으로 일은 한 적이 없고 개인적으로 공부를 했었고 집의 일을 거든다고 아마 공식적으로는 기록이 없을 겁니다.”

  비상에게 하는 질문들은 지극히 평범한 질문들 이지만 이런 것을 질문하다보면 비상이 기억사형자인지 눈치 채지 않을까? 라고 느꼈다. 특히 중등학교 성적이 좋은데 대학교를 가지 않았다는 점이나 30살이 넘었는데 직장이 없다는 사실을 보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법도 했다.

  두 가지 중에 하나일 것이다. 첫 번째는 비상이 기억사형자인걸 눈치 채지 못한 것이고 두 번째는 비상이 기억사형자인걸 눈치 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상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살짝 떠보기로 했다.

  “요즘에 세상 살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나이가 많은데도 취직 한 번 못해본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에 비하면 저는 젊은 편 아닌가요?”

  기억사형자가 아니라면 국가취업소까지 있는데 취직 못할 이유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집이 부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 질문의 대답이 “32살이라면 젊은 편이죠”라고 한다면 기억사형자인걸 아는데 모른 척 한 것이다. 왜냐하면 32살이면 누가 봐도 처음 취직하기엔 늦었지만 비상이 기억사형자인걸 안다면 비상이 다른 기억사형자들에 비해 때문에 젊은 편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답변을 할 것이다. 만약 “32살인데 취직 못 했으면 엄청 늦은 거예요.”라고 한다면 비상이 기억사형자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대략적인 추측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단서를 얻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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