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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나 혼자 목이 없다
작가 : 알레그로
작품등록일 : 2020.8.1

목 없는 기사로 되살아난 수도사 파울의 이야기.

 
1화
작성일 : 20-08-04 14:35     조회 : 244     추천 : 0     분량 : 5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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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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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이곳은 녹스본의 영지가 틀림없었다. 축축한 공기와 짙은 안개. 내 목을 벤 자가 양심은 있던 모양인지, 타국에 버리지 않고 고향 땅에 나를 묻은 것이다.

 

  녹스본의 땅은 매장하기 좋은 곳은 아니다. 인력으로 다져놓은 길이 아니면, 발이 움푹움푹 들어가는 진창이 대부분이니까.

 

  공동묘지 밖을 보았다. 언덕 너머로 녹스본의 성이 보이지 않았다. 북쪽에 사는 사람이라면, 달보다 높게 뜬 성의 첨탑을 올려다볼 수 있다.

 

  그믐달만 보이는 것을 보니 이곳은 남쪽이 틀림없었다.

 

  브리즈 수도원은 서쪽이다. 소금기가 도는 바다 안개를 따라가야 한다. 해안절벽을 발견하면 서쪽까지 가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내 몸을 내려보았다. 온몸이 백마처럼 창백했다. 혈기를 완전히 잃었다. 부패가 덜 되었지만 산 자의 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무언가 내 몸을 흘렀고, 호흡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심장의 박동도, 허파의 고동도 아니었다.

 

  몸도 몸이지만, 먼저 머리부터 가려야 했다. 무언가의 부재를 숨겨야 하는 내 처지가 우스웠다.

 

  빠져나온 흙더미 속에 수의가 있었다. 좋게 말해서 수의지, 해지고 낡은 넝마에 지나지 않았다. 넝마를 어깨에 두르고 주변을 살폈다.

 

  묘지 중앙에 오두막집이 보였다.

 

  집 안에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 아무리 상냥하게 대해도 목 없는 시체를 반겨줄 사람은 없었다.

 

  반겨준다 해도 다음이 문제였다.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퍼질 것이다. 소문은 수도원의 철문이든 왕국의 성벽이든 쉽게 뚫는다. 왕의 귀에 닿기까지 나흘이면 충분했다.

 

  문을 두드렸다. 세 번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외출 중인 듯했다. 문고리를 잡고 돌렸지만 끄떡없었다.

 

  손에서 파란 연기가 흘러나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힘. 아무리 돌려도 끄떡없던 문고리가 나무에서 열매를 따듯이 손쉽게 돌아갔다.

 

  목을 잃은 대신 능력이 생긴 것일까. 무슨 능력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다룰 줄 알아야 했다.

 

  건물 내부에 해부대가 놓여 있었다. 책상에는 각종 도구와 연장 들이 무질서하게 널브러졌다. 물건들을 헤집다가 짚으로 엮은 두건을 발견했다.

 

  교수형으로 죽은 사람의 것이었다. 나는 참수형으로 죽어서 다행이었다. 발버둥을 치며 서서히 죽어갈 바에야, 내가 죽었는지도 모르게 가는 것이 나았다.

 

  이제 목이 없으니 질식사로 죽을 일은 없었다. 목 없이 사는 장점이 하나 생겼다.

 

  그 옆에 철제 투구가 보였다. 각이 진 일체형 투구였다. 투구를 뒤집어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투구 안쪽에 익숙한 문양이 보였다.

 

  용을 품은 초승달.

 

  제국의 투구를 녹스본의 변방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투구를 뒤집어썼다.

  횡으로 뚫린 눈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이 정도면 내부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쿵.

 

  소리가 들렸다. 문의 맞은편이었다. 벽면에 검은 관이 보였다. 천천히 관 앞으로 다가갔다. 관은 쇠사슬로 칭칭 감겨 있었다. 좀 전에 분명.

 

  “도와주세요!”

 

  관 뚜껑이 덜거덕거렸다. 깜짝 놀라 투구가 반대로 돌아갔다. 투구를 고쳐 썼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살려주시면 보답할게요.”

 

  “왜 이 안에 갇혀 있죠?”

 

  관이 요동을 멈췄다. 여자의 말소리가 안에서 울렸다.

 

  “묘지기가 이 안에 절 가뒀어요.”

 

  “묘지기가 산 자를요? 죽은 자를 옮기기에도 바쁜 사람들인데.”

 

  관은 잠시 뜸을 들였다.

 

  “절 죽이려 해요. 이유는 몰라요.”

 

  “그 안에 얼마나 오래?”

 

  “그저께 저녁부터요.”

 

  관에 이틀을 갇힌 사람치고는 말투에 여유가 배어 있었다.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제발요. 묘지기가 돌아올 거예요.”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힘. 이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자물쇠를 그러쥐고 눈을 감았다.

 

  촤라락!

 

  관을 휘감고 있던 쇠사슬이 용솟음치더니 바닥에 떨어졌다. 좀 전까지도 살아 움직이던 생명체가 절명한 것처럼.

 

  관이 열렸다. 목소리의 주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나는 그를 부축했다. 오랜 시간 한 자세로 갇혀 있었는지 다리에 힘이 풀렸나 보다.

 

  “자물쇠를 어떻게 푼 거죠?”

 

  “그냥……열렸어요. 자물쇠가 녹슬었는지.”

 

  여자가 날 노려보았다. 한 갈래로 땋은 백발. 로브 대신 갑옷으로 중무장하고 있었지만, 새어 나오는 마나의 흐름을 막을 순 없었다.

 

  “당신, 마법사군요.”

 

  “제 이름은 아르누드 레몽. 당신은?”

 

  “파울 폰……그냥 파울입니다.”

 

  그녀의 어깨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레몽이 입기에 갑옷이 너무 컸다. 움직이는 것은 둘째 치고, 입고 있기도 힘들어 보였다.

 

  “마법사가 왜 갑옷을 걸치고 있죠.”

 

  “갑옷이 창칼은 잘 막으니까요. 그럼 당신은 왜 투구만 쓰고 있죠?”

 

  하마터면 투구를 벗을 뻔했다. 나만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은 무례하니까. 잊으면 안 된다. 내가 무엇이 없는지.

 

  “어릴 때 얼굴에 마맛자국이 남았어요. 그 시절엔 흔한 일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레몽이 시선을 돌렸다.

 

  “죄송해요. 그 세대시군요.”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레몽이 무슨 마법사냐고 묻지 않았다. 로브를 걸치지 않은 마법사는 드물었다. 표적이 되어 쫓기기에 마법사는 너무나도 강력한 존재니까.

 

  물론 전 세계를 적으로 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바로 흑마법사.

 

  레몽은 흑마법사가 분명했다.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는데. 죽고 나서 처음 만난 사람이 흑마법사라니.

 

  수도원 안에서는 아무도 마법사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어린 수도사가 뭣 모르고 질문하면 엄하게 단속했다. 호기심의 불씨에 찬물을 들이부었다.

 

  ‘마법은 비겁한 자들의 샛길이다.’

 

  마법은 곧 이단이었다. 수도원은 마법과 관련된 서적을 멀리했다. 서재에 한두 권쯤 숨어 있긴 했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페이지는 전부 찢겨나갔다.

 

  수도사는 모든 마법사를 멀리했지만, 그중에 흑마법사를 가장 두려워했다.

 

  그들은 죽음을 넘보았다.

 

  출입이 금지된 문턱을 넘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 흑마법사는 필요한 존재다. 내가 죽음에서 돌아온 이유를 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유도 필요하지만 돈도 필요했다. 레몽의 목에 현상금이 걸려 있을 것이다. 조건은 생포. 묘지기가 산 자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는 그거 하나였다.

 

  문밖에서 진흙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왔어요!”

 

  레몽은 내게서 떨어져 곡괭이를 집어 들었다. 자루를 쥔 레몽의 두 손이 덜덜 떨렸다.

 

  내가 생각했던 흑마법사는 두개골을 주렁주렁 달고 있거나, 검은 로브를 두르고 지팡이를 들고 있을 줄 알았다.

 

  무엇보다 공포와 두려움이 없다고 생각했다. 예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마법은 쓸 줄 모르나요?”

 

  “마법을 쓸 만큼 강한 상대는 아니니까요.”

 

  레몽의 갑옷이 덜거덕거렸다. 교단은 왜 그렇게 겁을 먹었을까. 워낙 신출귀몰하고 정보가 없는 자들이니 소문이 부풀려졌을 것이다.

 

  ‘어둠을 삼키는 자들’, ‘뼈의 그림자’, ‘고트 슬레이어’ 등등. 그들을 지칭하는 별명은 많았다. 전부 상상력의 소산에 지나지 않았다.

 

  “문밖의 사람을 죽일 건가요?”

 

  “저를 죽이려 했던 사람이에요.”

 

  “죽이려 했다면 진작 죽였겠죠.”

 

  레몽은 나를 노려보았다. 당장이라도 투구를 벗겨서 목을 그어버리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저 사람이 당신을 왜 죽이려 하는지 들어는 보죠.”

 

  레몽이 빠져나온 관을 돌아보았다. 쇠사슬을 들어 레몽에게 반대쪽을 내밀었다. 레몽은 마땅치 않아 했지만 곡괭이를 내려놓았다.

 

  레몽과 나는 문 옆에 앉아 대기했다. 묘지기가 들어오는 순간을 기다렸다. 사슬로 다리를 걸어 넘어뜨릴 것이다. 포박한 후에 심문하면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문고리가 천천히 돌아갔다.

 

  무언가 오고 있었다.

 

  사람이 아니다. 굉장히 이질적인.

 

  대기가 갈라지며 찢어지는 소리.

 

  퍽.

 

  나무문이 산산조각이 났다. 문을 부수고 들어온 것은 묘지기가 아니었다. 묘지기의 심장을 꿰뚫은 장창이었다. 묘지기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관 속에 박제되었다.

 

  창의 자루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나무 잔해에서 일어나 창 앞으로 다가갔다. 자루 끝으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설마...”

 

  문밖을 돌아보았다. 빗줄기만 쏟아져 내렸다. 창을 던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레몽은 충격에 일어나질 못했다.

 

  “엄청난 괴력이네요. 도대체 누가.”

 

  “누가 던진 게 아니에요. 스스로 온 거죠. 새로운 주인을 찾으러.”

 

  칠십 년 전에 녹스본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제1의 성유물, 탄틸루스의 창. 반세기가 넘도록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창을 회수하기 위해 젊은 수도사들이 원정을 떠났고, 아무도 모르게 비명횡사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토록 찾고 싶었던 물건이 눈앞에 꽂혀 있었다. 용의 꼬리뼈로 만들어졌다는 전설은 익히 들었지만, 겉보기엔 보병이 쓰는 평범한 창이었다.

 

  창은 쉬지 않고 요동쳤다. 관이 쪼개졌다.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집 전체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창끝으로 다가갔다. 내가 이것을 가지고 수도원으로 돌아갔을 때, 암브로스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했다. 어떤 감정들이 뒤섞여 그의 얼굴에 나타날지가.

 

  “만지지 마세요.”

 

  레몽이 소리쳤다.

 

  “당신이 그랬죠. 주인 없는 물건이라고. 만지는 순간 그걸 소유하게 될 거예요.”

 

  “이 창을 제멋대로 두면 수많은 사람의 심장이 꿰뚫릴 텐데요. 그것보다 나쁜 일이 있을까요?”

 

  “누가 저 창을 통제한다고 상황이 나아질까요? 치명적인 무기가 목적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요?”

 

  흑마법사가 목적을 말할 처지인가. 그들의 목적만큼 사악한 것이 없다고 익히 들어왔다. 그런 자가 수도사였던 내게 악함을 논하다니.

 

  수도사는 예부터 성유물을 지키고 다스리는 자들이었다. 죄악의 유혹이 귓가를 간질이더라도 굳건히 버텨낼 수 있도록 마음의 훈련을 받은 자들이었다. 내가 이것을 통제하지 못할 리가 없다.

 

  탄틸루스의 창을 손에 거머쥐려는 순간. 손목에 쇠사슬이 감겼다. 양팔과 양발이 묶였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레몽의 손짓 한 번에 내가 쇠사슬로 포박당했다. 나는 문밖으로 던져졌다. 공동묘지의 진흙 위로 미끄러졌다. 레몽이 문에서 걸어 나오자 묘지기의 오두막이 무너져 내렸다.

 

  탄틸루스의 창은 벽을 뚫고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숨을 몰아쉬었다. 이렇게 또 놓쳤다. 암브로스의 심장에 박아넣을 최적의 무기를.

 

  “다시 한번 물을게요.”

 

  절그럭거리는 갑옷 소리. 레몽이 쓰러진 내게 다가왔다. 레몽의 손이 내 머리 위로 향했다. 투구는 너무도 쉽게 벗겨졌다.

 

  레몽은 마지막 퍼즐을 맞추듯이, 자신의 머리에 투구를 뒤집어썼다. 전신갑옷.

 

  벌거벗은 기분이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싶었지만, 쇠사슬에 감겨 꼼짝할 수 없었다.

 

  “관의 봉인을 어떻게 푼 거죠?”

 

  레몽은 내 모습을 보고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설마.

 

  “내가 누군지 아는군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당신의 이름은 듀라한. 죽음의 영주에게 작위를 받은 목 없는 기사.”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격일로 꾸준히 업로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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