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소야의 노래
작가 : 설중사우
작품등록일 : 2020.7.31

본디 연이 없는 두 남녀가 월하빙인(月下氷人)의 술주정으로 인연이 이어져 ‘꿈’에서 만나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

황제의 나라 북성(北星)이 간신들의 난립으로 망국의 길을 걸어가니,
나라를 지키어 번성시킨 열 명의 영웅들이 각자의 야심을 드러내었다.
사분오열된 땅 위에 군벌의 깃발이 꽂히고
설원에 치열하고도 잔인한 핏방울이 흩뿌려지던 시기,
소녀는 거칠게 휘몰아치는 내란의 화마를 뚫고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5회| 불가침의 경계(2)
작성일 : 20-08-04 14:05     조회 : 223     추천 : 0     분량 : 514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어쨌거나 고두섭이 기가 막히게 운이 좋은 인간임은 분명했다. 먼저 그 한없이 가볍고 실없는 목이 떨어져 나가지 않고 여적 멀쩡했으며, 최근에는 화화봉의 망대 보수에 참여한 공을 인정받아 목수로서 최고의 영광인 목공장 인명록에 이름 석 자를 올렸다. 또 그 덕분에 수비군 징집에 걸리고도 고된 훈련은커녕 망대에서 비둘기나 돌보고 있었다.

  “간만에 얼굴 본다고 밤새 떠들 테니, 편히 자긴 글렀네.”

  아정은 괜히 투덜거리며 입가에 희미한 웃음기를 띄웠다. 수다쟁이를 상대하는 일이 귀찮긴 해도 싫지는 않았다. 가끔은 세간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듣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빽빽한 화목 사이를 산책하듯 걷고부터 거의 거의 이각(二刻)이 지났을 즈음,

  ‘어?’

  그녀가 사람 인(人)자로 꺾인 한 화목 앞에 멈춰 섰다. 죽은 지 오래되었는지 흙 밖으로 드러난 뿌리가 까맣게 썩어있었다. 또 주변에 무릎 높이의 선녹색 수풀이 자라있었는데, 일부가 강풍에 넘어진 갈대처럼 쓰러져 있었다. 설마 하는 기대감에 손으로 수풀을 헤집어보니 축축하게 젖은 흙이 무언가가 밟고 지나간 듯 움푹 패여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산짐승의 흔적이 아니다. 실망 어린 눈길은 눈대중으로 족적의 주인을 가늠했다. 일단 형태는 사람이다. 한 자(尺)에서 손가락 한 마디 부족한 길이를 보면, 여인보다는 사내일 가능성이 컸다.

  ‘지나간 지 얼마 안 됐어.’

  그녀는 족적이 나아간 방향을 확인했다. 가파른 언덕길 너머에 화화봉 첫 번째 망대가 있었다.

  ‘뭐지, 이 찜찜한 기분.’

  그저 흰여우의 출몰 소식을 들은 사냥꾼이거나 순찰에 나선 병사가 망대로 복귀하는 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귓가엔 방씨와 젊은 짐꾼이 떠들던 대화가 기분 나쁘게 맴돌았다.

  “변란이니 뭐니 괜한 소리를 들어가지고….”

  수산은 산림의 대부분이 국성령에 속해있으나, 화화봉 동쪽 부근만큼은 매헌군(梅巘軍) 직속령의 경계에 걸쳐져 있다. 어찌 보면 참성 방어의 제일선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란에 휩싸인 남부와 중부와 달리 북부는 오랫동안 불가침의 평화를 유지해왔다. 더구나 매헌군은 지금껏 단 한 차례도, 혹은 실수로라도 수산의 지경(地境)을 넘어온 적이 없었다.

  “괜한 소리, 괜한 걱정.”

  아정은 부러 힘 있게 발을 옮겼다. 하지만 불안까지 떨쳐내지 못했는지, 수액을 묻힌 화살을 금방 빼내기 쉽게 허리띠에 끼우고 활을 어깨에서 내려 줌피를 감싸 쥐었다. 더불어 사냥꾼들이 다져놓은 산길을 외면하고 언덕바지의 큼지막한 바위들을 디딤돌 삼아 차례로 밟아 올라갔다.

  그러다 거의 마지막 바윗면에 오른발을 올린 순간, 아정의 귓가로 소름끼치는 경고성이 스쳤다. 멀리서 아주 빠르게 가까워지는, 마치 뱀의 소리처럼 바람을 사정없이 찢는 소리!

  ‘화살!’

  아정은 본능적으로 무릎을 꺾어 앞으로 고꾸라졌다. 간발의 차이로 날아온 화살이 그녀의 두상을 스쳐지나 화목에 깊게 틀어박혔다. 기둥이 흔들려 침엽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광경만 봐도, 저 활에 얼마나 과격한 힘이 실렸는지 짐작이 되었다.

  ‘망(亡)!’

  어쩐지 한 발로 끝날 거 같지 않았다. 아정은 재빨리 한 바퀴를 옆으로 굴러 튀듯이 몸을 일으켰다. 엄폐할 만한 나무를 찾으려니 언덕바지 중간의 거목이 눈에 걸렸다.

  그녀가 미끄러지듯 비탈을 사선 방향으로 내달리자 뒷덜미를 잡으려는 듯 두 발의 화살이 연속으로 날아들었다.

  퍽! 한 발은 바위를 내리쳐 튕겨나갔고, 퍽! 다른 한 발은 연약한 단풍나무에 박혀 들어갔다.

  그 사이 아정은 굵직한 거목을 축으로 한 바퀴 빙글 돌아나가며 허리춤의 화살을 빼내 시위에 걸었다. 거목의 기둥을 방패삼아 시야를 확보하고 화살이 날아온 방향과 거리를 잡았다. 더욱이 지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쏘아지는 화살은 그 세기가 더해졌다.

  그녀는 얕게 숨을 당겨 떨림을 죽이고 손가락의 힘을 풀었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시위가 물결치듯 튀었고 일순 화살이 쏘아졌다. 그녀가 날숨을 밀어내고 가벼이 눈꺼풀을 깜빡이는 찰나, 화살은 평평하고 빠른 바람이 되어 촘촘한 나뭇잎들 사이를 통과해 누군가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악!”

  아정은 그 비명을 듣기도 전에 통에서 검지와 중지로 화살의 깃 부분을 잡아 꺼내고 시위에 얹었다. 이어 눈을 감고 거목에 등을 붙인 뒤, 수액의 독이 피를 타고 들어가 심장이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대강 열로 잡고 셌다.

  ‘…아홉, 열.’

  다음 순간 몸을 낮추며 거목 앞으로 뛰어나갔다. 조금 힘이 빠진 화살이 기다렸다는 듯 사선으로 날아왔지만, 날랜 뜀박질은 손쉽게 화살을 피해 바위들을 넘었다. 그녀는 평지를 밟는 동시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다급히 호각(號角)을 불려하는 남자에게 내달려 가슴을 냅다 걷어찼다. 호각과 활을 멀찍이 차버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움직이지 마!”

  아정의 활촉이 정확히 남자의 심장을 겨냥했다. 그는 독으로 하얗게 질린 낯빛을 들어 그녀를 노려봤다. 그 매서운 눈초리에는 소방지처럼 군의 혹독한 훈련을 받아온 군병에게서 풍기는 노련함이나 살기, 위협에 굴하지 않는 오기 같은 기운이 실려 있었다.

  “당신 뭐야? 왜 지나가는 사람한테 화살을 쏴?”

  “실, 실수다. 사슴인 줄 알았어.”

  남자가 신음을 삼키고 양손바닥을 내보였다. 그리고 의뭉스레 변명을 했다.

  “아, 사냥꾼이시다?”

  “보다시피. 미안하게 됐어. 내가 눈이 안 좋아서….”

  “아저씨, 안타깝지만 내가 근방에서 자란 토박이거든. 화화봉에 드나드는 면면은 싹 다 꾀고 있다는 말이지.”

  “….”

  “나머진 어디 있어?”

  “나…머지라니?”

  “모르는 척 하기는.”

  남자의 모르쇠에 아정이 흙바닥을 뒹구는 호각을 향해 눈짓했다. 순간 그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글쎄.”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움직여 깃 부분을 뚝 꺾어 부러뜨리고 지체 없이 화살대를 잡아 화살을 뽑아냈다. 헤집어진 상처에서 흐른 피가 방울이 되어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통에 일그러진 입술이 달싹이며 씨익 송곳니를 드러냈다.

  “어디 있을까?”

  아정은 반사적인 눈길로 그의 오른손을 힐끗거렸다. 시뻘건 피로 흠뻑 젖은 손이 화살촉 밑동을 그러쥐고 팔꿈치를 뒤로 빼었다. 그 일련의 동작은 답답할 정도로 느렸지만, 그녀에겐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너무 가까워.’

  그녀는 곧바로 과거 소야의 조언을 뇌리에 되살렸다.

  -궁사에겐 거리가 생명이다.

  ‘즉변, 궁사는 거리를 잡히면 죽는다.’

  그녀는 급하지 않게 앞쪽으로 나가있던 왼발을 떼어 오른발 뒤쪽으로 물렸다. 자연스레 거리가 반보 이상 벌어졌다.

  “….”

  과연 기회를 노렸던 건지, 남자의 눈두덩과 입가가 불만스럽게 움찔거렸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눈을 떼지 않고 팽팽하게 대치를 이어갔다.

  “….”

  까악!

  까마귀 소리를 신호로 남자가 돌연 튕기듯 몸을 일으켜 화살대 끝을 내질렀다. 그녀는 상체를 뒤로 젖혀 명치를 노린 활촉을 가까스로 피하는데 성공했지만, 동시에 자세가 무너져 주저앉고 말았다.

  “억…!”

  순간 자잘한 핏방울들이 아정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남자의 신음에 턱을 들어 발밑을 확인했다. 사라진 화살이 정확히 그의 심장부를 관통해 있었다. 그녀는 반 박자 늦게 땀으로 번들거리는 제 손을 내려다봤다. 그제야 자신이 활시위를 놓쳤음을 깨달았다.

  남자는 간신히 손으로 땅을 짚어 버티다가 기우뚱 옆으로 쓰러졌고 한참을 발작하듯 몸을 떨었다. 그의 심장에서 쏟아진 핏물이 흙을 흥건히 적시고 후끈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살기로 그득한 두 눈은 끝까지 그녀를 노려보며 생기를 잃어갔고, 헐떡거리는 그의 숨소리도 점차 잦아들었다.

  “하-.”

  아정이 충격으로 거칠어진 날숨과 들숨을 번갈아 마시고 뱉어냈다. 활대를 쥔 왼손이 주체 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마찬가지로 덜덜거리는 오른손을 내려다보더니, 돌연 손바닥을 뺨으로 가져가 세게 내리쳤다.

  짝!

  한 번으로 안 되면 더 세게 쳤다.

  짝!

  정신이 번쩍 들 때까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또 쳤다.

  짜악!

  저 남잔 군병이다. 전쟁이란 사지에서 수없는 살인을 저질렀을 사람이다. 또 처음부터 널 죽이려 했다고, 방금 네가 죽이지 않았다면 그가 널 죽였을 거라고!

  “두아정, 정신 차려. 근처에 동료가 있어. 망대로 가야해.”

  아정은 눈을 질끈 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멈칫멈칫 남자를 향해 기어야 찬찬히 그 행색을 살폈다. 떨리는 손을 움직여 피로 물든 옷자락을 이리저리 들춰보기도 했다. 하지만 사냥꾼으로 위장했으니 하다못해 말린 고기나 포획 덫, 소도(小刀) 정도는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실상 중궁과 화살 열 대가 전부였다.

  ‘아, 호각은?’

  그녀는 멈칫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활과 함께 날린 호각이 저 멀리 흙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한 차례 흙을 털어내고 보니 어린 대나무를 손가락 세 마디 길이로 잘라 만든 작은 피리였다. 그녀는 이리저리 뒤집어보며 호각에 무슨 표식이 있을까 살폈는데, 역시나 입술이 닿는 부분 바로 밑에 새겨진 아주 작은 음각 전자(篆字) 하나가 눈에 띄었다. 분명 남자의 신분을 알아내는데 아주 중요한 단서일 진데, 하필 그녀가 배운 적이 없는 글자였다.

  ‘망대로 가자.’

  아정은 고심 끝에 결정을 했고, 이후의 행동은 처음부터 계획했던 사람처럼 대담하고 거침없었다.

  앞서 남자의 무거운 활과 화살을 챙겨 산길 옆의 낭떠러지를 확인했다. 높이도 그렇게 높지 않고 아래엔 우거진 수풀이 가득해 잠시간 시신을 숨겨놓기에 적당한 장소였다. 그녀는 시신의 양발을 잡아 낭떠러지로 끌고 간 뒤 아래로 밀어버리고, 흙을 뒤집어 혈흔을 없애는 동시에 주변의 발자국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지체 없이 망대를 향해 발길을 틀고 단숨에 언덕바지 정상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곧 한 화목 앞에서 잠시 발이 묶였다. 첫 발의 화살이 나무의 살을 드러낼 정도로 심재 깊숙이 틀어박혀 있었다. 그녀는 화살을 억지로 비틀어 빼내기 전에 앞서, 활대의 기울기와 깃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남자가 화살을 날린 위치를 추정했다.

  ‘내가 발자국을 발견하고 길을 틀어 비탈로 올라갈 때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갑자기 활을 쐈어.’

  아정은 바로 몸을 돌려 바위를 뛰어올랐다.

  ‘감시병들이 죄다 눈뜬장님도 아니고 굳이 소란을….’

  시야가 넓게 트인 언덕의 너머로 야트막한 평지와 화목의 군락이 펼쳐져 있었는데, 촘촘한 나무들 사이로 망대의 목조 기둥과 첨탑이 보였다.

  ‘일으켜도 상관이 없었나?’

  망대를 살피는 눈길에 얼핏 긴장이 서렸다. 고요하고 정적인 풍경은 다름이 없었으나, 스멀스멀 가슴에 번지는 불안을 없애려 활대를 단단히 고쳐 잡았다. 그러나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던 남자의 불길한 미소가 그녀를 비웃듯 눈앞을 어른거리 시작했다.

  “눈뜬장님….”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1 11회| 양자택일(兩者擇一) 2020 / 9 / 14 195 0 5504   
10 10회| 갈대밭 분투 2020 / 9 / 1 195 0 5655   
9 9회| 봉화의 불씨 2020 / 8 / 19 196 0 5615   
8 8회| 붉게 물든 서색(曙色) 2020 / 8 / 18 205 0 5606   
7 7회| 비를 맞은 생쥐 2020 / 8 / 15 207 0 6239   
6 6회| 봉화(烽火)를 피우다 2020 / 8 / 11 215 0 5564   
5 5회| 불가침의 경계(2) 2020 / 8 / 4 224 0 5143   
4 4회| 불가침의 경계(1) 2020 / 8 / 3 206 0 5377   
3 3회| 징조(徵兆) 2020 / 8 / 2 219 0 5163   
2 2회| 한여름 밤의 꿈 2020 / 7 / 31 221 0 6191   
1 1회| 월하빙인(月下氷人) 2020 / 7 / 31 385 0 654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