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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오늘부터 가정교사입니다
작가 : 어린비
작품등록일 : 2020.8.1

유치원 선생님 감은아.

그녀는 어느 사건으로 인해 선생님을 그만두게 되고, 백수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불행한 일은 왜 한꺼번에 일어나는 걸까.

취직도 안 되고, 집주인이 월세를 올린 덕에 집까지 잃게 된 그녀.

그렇게 하루하루 걱정 속에 살고 있는 그녀에게 내밀어진 구원의 손길.

"저희 조카의 가정교사가 되어주실래요?"

담임이었던 시왕의 보호자 서천이 그녀를 고용하고, 얼떨결에 은아는 시왕의 가정교사가 된다.

하지만 까칠한 애늙은이 시왕을 가르치는 일이란 쉽지 않은데…

거기다가 어쩐지 이들이 수상하다?!

과연 은아는 제대로 된 가정교사가 될 수 있을까?

 
10화. 돌이킬 수 없는(3)
작성일 : 20-08-04 02:08     조회 : 203     추천 : 0     분량 : 4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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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촌?”

 

 반면, 그의 말을 들은 시왕이 헛웃음을 지었다. 레이저 같은 시선이 서천의 얼굴을 뚫을 듯 했다. 서천은 애써 그의 눈을 모른 척하며 사람 좋게 웃어보였다.

 

 

 “교육에 대한 건 제가 선생님께 다 일임할게요. 그러니 그런 것에 눈치 보실 필요 없어요. 혼이 나면 분명 그 이유가 있겠죠, 뭐.”

 

 서천이 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 시왕의 옆에 서더니, 한 손을 그의 머리 위에 툭 얹었다.

 

 

 “시왕이, 너도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지. 우리 때문에 여기까지 와 주신 거잖아? 얼마나 감사해?”

 

 그를 바라보는 은아의 표정이 사르르 녹아들었다. 어쩐지 그의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도 같았다.

 

 

 ‘어쩜 저리 완벽할까…’

 

 자신을 존중해주는 그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왠지 코끝이 시큰해진 은아였다. 시왕은 입술을 꾸욱 다물곤, 그녀를 한 번 쳐다보더니 서천을 눈으로 흘겼다.

 

 

 “삼촌이나 많이 감사해하던가.”

 

 짜증 섞인 몸짓으로 그가 서천의 손을 홱 뿌리치더니 발을 쿵쿵 굴렀다. 이내 시왕은 2층 계단 너머로 자취를 감추었다.

 

 

 “저 녀석…”

 

 버르장머리 없는 태도에도 서천은 딱히 당황한 것 같진 않았다. 한참을 시왕이 사라진 자리에 눈을 두던 그는 천천히 은아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안 그래도 요새 많이 까칠해졌거든요. 벌써 사춘기가 온 건지…”

 

 서천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감상에 빠져있던 은아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아, 제가 너무 시왕이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했나 봐요. 원래는 저러지 않았던 아이인데…”

 

 흐려지는 말끝에 걱정이 붙었다. 서천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싱긋 미소 지었다.

 

 

 “선생님은 정말 좋은 분 같아요.”

 

 곱게 휜 그의 눈매가 은아의 심장을 더 빨리 뛰게 했다. 얼굴이 서서히 붉어지는 걸 느낀 은아가 일부러 시선을 허공으로 돌렸다. 저런 얼굴로 저런 말을 하면 어떡하자는 거야…!

 

 “그… 글쎄요. 전 한참 부족한 사람인걸요. 시왕이 삼촌 분이야 말로 좋은 분 같아요. 이렇게 파격적인 조건으로 일할 수 있게 해주시고… 또…”

 

 은아가 횡설수설하자 서천이 그녀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 갑자기 드리워진 그림자에 그녀의 몸이 들썩였다. 커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서천이 부드럽게 눈을 내리깔았다.

 

 

 이어 그의 손이 은아의 머리카락에 닿았다.

 

 

 “… 서천인데… 제 이름이요.”

 

 속삭이는 듯한 감미로운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저도 모르게 긴장한 은아의 어깨가 바싹 움츠러들었다. 순간적으로 코에 닿은 서천의 향기가 마음까지 떨리게 했다.

 

 

 “네…?”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저도 은아 씨 이름으로 부르고 싶거든요.”

 

 근사한 미소와 함께 서천이 다시 한 발자국 떨어졌다. 은아는 벌어진 입술로 아무 말도 못하고 어버버거렸다. 순간적으로 모든 사고가 정지된 것만 같았다. 스킨십이 뭐 저리 자연스러워…!

 

 “오는 길에 묻었나 봐요.”

 

 그의 손에는 나뭇잎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가 다가온 이유를 알자 은아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자신만 지나치게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 창피해진 터였다. 서천은 그런 그녀를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혹시 어디 아프신 건가요?”

 “아, 아뇨! 안 아파요!”

 

 은아가 헐레벌떡 양 손을 휘이 저었다. 저 혼자 벌렁거리는 심장을 잠재우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중이었다. 제발… 주책 좀 그만 떨자고, 감은아.

 

 

 서천은 후- 숨을 불어내었다.

 

 

 “시왕이가 좀 까칠하긴 해도 속은 여린 아이에요. 아무래도 엄마, 아빠랑 떨어져 있는 지라 오냐오냐 받아주다니 보니… 다 제 잘못이죠.”

 

 은아는 살며시 손을 내렸다. 서천은 시왕이 있을 2층을 향해 애틋한 시선을 던졌다.

 

 

 “아무래도 삼촌이 부모의 자리를 대신할 순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아요!”

 

 은아가 다급하게 큰소리를 내었다. 서천이 커진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자 은아 역시 본인의 소리에 놀랐는지 헉- 숨을 들이켰다. 무언가 울컥 차올라 막을 새도 없이 나온 소리였다.

 

 

 “아니, 제 말은… 이렇게 좋은 삼촌이 있어 다행이라고요. 분명 시왕이도 그 소중함을 알게 될 거예요.”

 

 은아가 수습을 하며 하하…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서천은 그녀를 응시하다가 눈썹을 들썩였다.

 

 

 “감사해요, 그렇게 말해줘서.”

 “사실인데요, 뭐…”

 

 은아가 겸연쩍게 손가락을 꼼질거리다가 아-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시왕이 부모님은 어디 계세요? 해외에 나가계신다고는 들었는데.”

 “아… 그쵸.”

 

 잠시 뜸을 들이던 서천이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 사실 시왕이는 부모님 얼굴도 모를 거예요. 아기일 때 저한테 맡겨진 거라… 솔직히 말하자면 부모님이 안 계신 거나 마찬가지에요. 시설에 맡기려고 한 걸 제가 데리고 온 거니까요.”

 “네?”

 

 그러니까 지금… 시왕이가 버려졌다는 거야? 거기까지 생각하자 순간적으로 분노가 차오른 은아가 무섭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서천이 흠칫 놀랄 정도였다.

 

 

 “하, 어떻게 그런…….”

 

 파르르 떨리는 입술이 좀처럼 말을 내뱉지 못했다. 솔직히 욕이 먼저 나갈 것 같아 참은 것도 있었다.

 

 

 그동안 시왕이가 보여줬던 불신에 찬 모습들이 눈앞을 지나갔다. 그래서… 그렇게 비뚤어졌던 걸까. 어린 것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으면 그랬을까 싶어 짠해졌다.

 

 

 “… 왜요? 도대체 뭐 때문에?”

 

 서천이 대답대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내 그가 차분히 입술을 뗐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최대한 시왕이에겐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해주셨으면 해서에요. 제 말 뜻… 아시겠죠?”

 

 걱정이 묻어나는 그의 부탁에 무슨 말을 하랴. 은아는 미어지는 가슴을 뒤로 하고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걱정 마세요. 시왕이 삼ㅊ…….”

 

 은아가 멈칫했다. 그도 그럴 게 서천이 기대에 찬 눈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아는 몰래 심호흡을 자게 한 다음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 걱정 마세요. 서천 씨.”

 

 서천이 그제야 만족한다는 표정이었다. 이어 그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아- 감탄사를 내뱉었다.

 

 

 “손은 괜찮으세요? 약이 효과가 있던가요?”

 

 은아도 그제야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말끔한 손등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굉장한 효과던데요? 완전 멀쩡해요.”

 “정말요?”

 

 그가 손을 뻗어 은아의 손을 잡고 들어올렸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은아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서천은 그런 그녀를 알지 못하는지 손을 휘휘 돌리며 둘러보았다.

 

 

 “와… 다행이다.”

 

 안도하듯 서천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이내 예쁘게 휘었다. 크윽… 은아가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어쩌면 남자가 저리 아름다울 수 있는 걸까 싶었다. 유치원 선생님들이 그동안 서천의 얼굴 한 번이라도 보려고 목을 맸던 이유를 드디어 알 것 같았다.

 

 

 미소 한 방으로 마치 탄산수를 들이킨 것처럼 이리 가슴이 시원해지 오죽하랴.

 

 

 ‘이 남자… 진짜 위험하다.’

 

 은아는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이 남자는 자신의 고용주이자 제자의 학부모라는 사실을.

 

 

 * * *

 

 불이 꺼진 방안은 캄캄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달빛만이 부옇게 방 안을 비출 뿐이었다.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있던 시왕이 별안간 매트리스를 주먹을 내려쳤다. 그 덕에 투웅- 스프링 소리가 울렸다.

 

 

 “서천, 그 자식… 이 상황을 분명 즐기고 있는 게 틀림없어.”

 

 어금니를 부득 갈았다. 꽉 쥔 앙증맞은 손등 위로 핏줄이 도드라졌다. 그는 격한 숨을 후우- 내뱉더니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거기엔 서랍장 하나가 놓여있었다.

 

 

 이내 자리에서 상체를 들어 올린 그는 서랍장 하나를 열었다. 그러자 그 안 든 검정색 파일 하나가 보였다. 시왕은 그것을 꺼내 한동안 표지를 바라보았다.

 

 

 [生存者 甘恩娥(생존자 감은아)]

 

 정갈한 글씨체가 표지 상단을 차지했다.

 

 

 “… 꿈에도 모르겠지.”

 

 피식- 중얼거리는 그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건 스스로를 향한 씁쓸한 조소였다.

 

 

 이윽고 시왕은 파일을 천천히 펼쳐보았다. 맨 먼저 보인 건 신문 기사를 스크랩한 종이였다.

 

 

 [일가족 강도 살인… 외출한 딸만 살아남아.]

 

 그의 눈동자가 천천히 기사 내용을 읽어내려 갔다. 이제는 외울 정도로 눈에 익은 글자들이었다.

 

 

 [지난 0일, 서울 00동 주택에서 일가족이 살인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의자는 살인 전과를 가지고 있는 김모 씨(30)로 당일 현장 근처에서 체포되었다. 3대가 함께 살고 있던 피해자 일가족은 딸을 제외한 조부, 부모가 함께 있다가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일을 쥔 시왕은 손이 잘게 떨렸다. 그 모습이 여간 힘들어 보이는 게 아니었다.

 

 

 [피의자 김모 씨는 10년 전,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10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모범수로 선정되어 감형을 받아 3년 전에 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남겨진 피해자의 딸은…]

 

 홱-

 

 이어 그는 더 이상 기사를 읽어 내려갈 수 없는지 파일을 덮었다. 점차 숨이 거칠어지고 가슴이 가쁘게 오르내렸다. 시왕은 눈을 질끈 감았다. 파리해진 안색이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다.

 

 

 “… 아무래도… 이건 아니야.”

 

 읊조리는 목소리에 언뜻 두려움이 비쳤다. 질끈 감은 눈꺼풀 안으로 은아의 얼굴이 지나갔다. 정말… 꿈에도 모를 것이다. 자신이 어떤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인지.

 

 

 이렇게까지 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시왕이 파일에 얼굴을 묻었다.

 

 

 “… 서천, 걔는 왜 일을 크게 벌이는 거냐고.”

 

 악문 잇새로 원망스러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해결되지 않는 심란함에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졌다. 도무지 앞으로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지 막연해졌다.

 

 

 이어 눈을 들어 올린 시왕이 옆을 바라봤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둥근 보름달은 변함없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디선가 우우- 우는 새 소리도 들려왔다. 방안에는 눅진한 나무 향기가 스며들어있었다.

 

 

 창문 밖의 찬란한 빛살이 시왕에게 닿았다. 마치 그의 뺨을 어루만지는 듯 보드라운 달빛이었다.

 

 

 시왕은 심호흡을 크게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 그의 눈빛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 오늘은 옥토끼가 찾아오겠군.”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더니 시왕이 자리에서 살며시 일어났다. 열려진 서랍 안으로 다시 파일을 넣은 그는 서랍장 문을 닫고 단단히 잠갔다. 담담한 몸짓이었지만, 그 위를 짚은 손가락만큼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옥토끼가 찾아오면… 그나마… 좀 잘 수 있겠네.”

 

 말 사이사이에 한숨이 곁들어졌다. 이어 다시 창문으로 향하는 그의 눈빛이 새카만 밤하늘을 옮겨다 놓은 것처럼 막연해졌다. 빛이라곤 없는 아득함이었다.

 

 

 그 모습이 며칠 밤을 샌 사람처럼 못내 피곤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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