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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오늘부터 가정교사입니다
작가 : 어린비
작품등록일 : 2020.8.1

유치원 선생님 감은아.

그녀는 어느 사건으로 인해 선생님을 그만두게 되고, 백수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불행한 일은 왜 한꺼번에 일어나는 걸까.

취직도 안 되고, 집주인이 월세를 올린 덕에 집까지 잃게 된 그녀.

그렇게 하루하루 걱정 속에 살고 있는 그녀에게 내밀어진 구원의 손길.

"저희 조카의 가정교사가 되어주실래요?"

담임이었던 시왕의 보호자 서천이 그녀를 고용하고, 얼떨결에 은아는 시왕의 가정교사가 된다.

하지만 까칠한 애늙은이 시왕을 가르치는 일이란 쉽지 않은데…

거기다가 어쩐지 이들이 수상하다?!

과연 은아는 제대로 된 가정교사가 될 수 있을까?

 
8화. 돌이킬 수 없는(1)
작성일 : 20-08-04 02:07     조회 : 207     추천 : 0     분량 : 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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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직한 캐리어 2개가 은아의 양 손에 들려있었다. 어느새 송골송골 땀이 맺힌 이마에는 잔머리가 아무렇게나 엉겨 붙었다. 백팩까지 둘러멘 어깨는 뻐근해졌고, 언덕을 간신히 올라온 다리는 천근만근이었다.

 

 “어휴… 차 없으면 여기 진짜 못 다니겠다.”

 

 여차저차 대문 앞에 도착한 은아가 숨을 깊이 몰아쉬었다. 그마나 서천이 보내준 택시 덕에 근방까지는 편하게 올 수 있었다. 그 전에 미리 짐까지 보내 놓을 수 있도록 택배 기사님도 불러주었더랬다.

 

 세심한 배려에 감동한 은아는 더 이상 이 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접어두었다. 그 어디를 가도 이런 고용주는 못 만날 것 같았으니까.

 

 “다만… 내가 문제지… 잘 해야 하는데…”

 

 금세 걱정이 밀려오자 다시 낯빛에 긴장감이 어렸다. 은아는 천천히 눈을 위로 들었다. 대문 너머 2층짜리 목조 저택의 위용이 대단했다. 그야말로 현실성 없는 자태였다.

 

 뼛속까지 상쾌해지는 풀 냄새와 눅진한 나무 냄새가 코에 스며들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모험을 떠나는 탐험가처럼 선뜻 문을 열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계속 거기 멈춰 있을 건가?”

 

 바로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란 은아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캐리어 손잡이를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이어 은아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삼백안의 노파 하나가 구부정한 허리로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주름진 얼굴과 쪽진 백발이 보기에도 으스스한 분위기를 뿜어내었다.

 

 노파는 새색시나 입을 법한 고운 분홍빛의 치마와 옅은 노란색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묘한 괴리감을 주었다. 은아는 말하는 것도 잊고 그저 멍하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사막처럼 메마른 눈길이 은아의 얼굴 구석구석을 살폈다. 이내 이채가 떠오른 노파의 눈동자 아래로 입 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갔다.

 

 “자네… 사나운 팔자를 가졌구만.”

 

 지팡이에 얹어진 그녀의 손등엔 핏줄이 툭 불거져 있었다. 은아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네? 하고 다시 되물었다.

 

 “불행을 몰아서 썼어.”

 

 목을 긁는 낮은 목소리가 중성적으로 느껴졌다. 등골이 서늘해진 은아의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어쩐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입만 벙긋거렸다. 그녀의 기에 압도되어 버린 탓이었다.

 

 노파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손을 들었다. 거친 마디를 가진 손이 곧 은아의 손등 위에 올려졌다. 곧은 시선은 화살처럼 은아를 꿰뚫을 듯 했다. 자신이 아는 노인 중에 이리 정정하고 맑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이 있었던가… 은아는 그리 생각했다.

 

 “그나마 이제 끝자락이 보이는 구만…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소리야.”

 

 그 한 마디에 은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건 무슨 소리이지? 여기에 오면 안 된다는 소리인가? 어느새 노파의 말 하나하나 집중하게 된 은아였다.

 

 노파는 목조 저택을 힐끔 바라보더니 은아의 손등을 두어 번 두드렸다.

 

 “그래도… 구해줄 사람을 잘 찾아왔네. 아니… 어쩔 수 없이 이끌려온 것인가.”

 “그게… 무슨…….”

 

 은아가 더듬거리며 대답함과 동시에 누군가의 손이 그녀의 어깨를 잡고 조심스럽게 당겼다. 청량한 향기가 코를 은은하게 스쳤다. 은아는 이게 누구의 향기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길을 잃었나 했어요.”

 

 기본적으로 다정함이 탑재되어있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은아가 시선을 올리자 청아한 서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도 역시나 아름다운 미모였다. 처해있던 상황도 잠시 잊을 만큼.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어깨 위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거의 그에게 안겨있다시피 하게 된 은아는 슬슬 얼굴이 달아올랐다. 어… 그게… 급히 고개를 숙인 은아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킬까봐 조마조마했다.

 

 ‘미치겠네… 진정해, 좀.’

 

 서천은 그녀의 앞에 있는 노파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의 둥근 눈매가 서글서글하게 접혔다.

 

 “어르신도 참… 저한테 오시려면 뒷문으로 와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서천은 은근슬쩍 은아를 자신의 뒤로 보내더니 노파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노파는 그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닌지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그의 팔을 손으로 잡았다.

 

 “정문으로 오시면 제가 모른다니까요? 다음부턴 꼭 뒷문으로 오세요. 아셨죠?”

 

 손자처럼 친근하게 구는 서천이었다.

 

 “내가 말했잖아. 좀도둑처럼 뒷문으로 들락날락거리는 건 내 성미에 안 맞는다고.”

 

 툭툭거리는 말씨에 심술이 묻어나왔다. 그러면서도 서천의 움직임에 맞춰 천천히 발을 옮기는 노파였다. 서천은 그녀를 이끌고 뒷문으로 향했다.

 

 “캐리어는 그냥 두고 먼저 안으로 들어가세요. 제가 이따가 가져갈 테니까.”

 “네? 아, 네.”

 

 은아가 번쩍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노파와 함께 그녀를 지나치는가 싶던 서천은 슬쩍 그녀를 돌아보았다.

 

 “오느라 고생했어요. 은아 씨.”

 

 그 한 마디 후, 서천은 다시 앞을 바라보며 제 갈 길을 갔다. 은아는 눈을 깜빡이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의 이름이 이렇게 듣기 좋은 것이었던가… 이름 불리는 게 이리 설레는 일인 줄은 처음 알았다.

 

 ‘나 사실… 금사빠가 아닐까?’

 

 심각한 고민으로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지금껏 자신의 이상형은 우직한 머슴 스타일이었는데… 나이를 먹으니 점차 얼굴만 밝히는 주책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한편, 노파를 이끌고 저택 뒤쪽으로 향하던 서천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이상한 말 안 하셨죠?”

 

 분명 웃는 상이었으나, 아까와는 달리 어딘가 단호함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노파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귀찮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이미 은퇴한 마당에.”

 

 이어 그녀는 흘끔 서천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정인(情人)이야?”

 

 서천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한숨을 후우- 내쉬었다.

 

 “그런 거 아니니까 관심 갖지 마세요.”

 “아닌 게 아닐 텐데. 마음고생 꽤나 하겠어.”

 

 홀홀- 어딘지 음흉한 웃음소리가 먼저처럼 흩어졌다. 서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워낙 헛소리를 자주 하는 양반이니까.

 

 * * *

 

 서천이 캐리어를 두고 가라고 하기는 했지만… 어쩐지 그를 부려먹는 것만 같아 은아는 기어코 모든 짐을 들고 현관 앞에 섰다. 어째 팔이 웬만한 남자보다 다부져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헉… 헉…”

 

 마당이 어찌나 넓은지 숨이 찼다. 거기다가 바닥에 깔려있는 잔디와 돌길 때문에 은근히 힘이 더 들었다.

 

 결국 현관 앞에 서있는 은아의 몰골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벌써부터 진이 빠진 그녀는 간신히 앞으로 삐져나온 머리들을 추슬렀다. 첫 출근인 만큼, 깔끔하고 세련된 선생님다운 모습으로 맞이하고 싶었는데…

 

 ‘하긴… 유치원에서 그렇게 초췌한 모습을 많이 봤는데 새삼스럽지.’

 

 스스로를 향한 실소가 새어나왔다. 이내 그녀는 목을 가다듬었다. 분명 안에 시왕이가 있을 텐데… 어떻게 첫 인사를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담임이었던 아이와 한 집에서 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시왕아, 안녕…? 이건 아니지, 어색하게 그게 뭐야… 오랜만이야, 시왕아… 이것도 영 이상한데.”

 

 혼자 열심히 중얼거리던 은아는, 그냥 인사말 정하기는 포기하고 초인종 위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선뜻 누를 용기가 생기지 않아 한참을 그 위에 머물렀다.

 

 “…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긴장이 되는 거야.”

 

 이제는 진짜 갑갑해지겠다 싶을 때 쯤, 은아는 눈을 질끈 감고 버튼을 눌렀다. 띵- 동- 고전적인 초인종 소리가 스피커로 흘러나왔다. 이제 문이 열리면 시왕이가 앞에 있겠지… 그때 밝게 웃으면서 인사를…

 

 “문 열려있어요.”

 

 안에서 시왕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어… 어…?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전개에 은아가 눈을 끔뻑거렸다. 그래도 어느 정도 자신을 반갑게 맞아줄 줄 알았던 것이다.

 

 ‘유치원에서는 그렇게 나만 따라다니더니… 칫.’

 

  어째 섭섭해진 그녀는 입술을 비죽 내밀며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끼익-

 

 문이 열리자 안에서 은은한 약초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꼭 한약방에 온 것처럼 푸근하고도 정감이 가는 냄새였다. 저번에도 와봤지만 이렇게 햇빛이 짱짱한 낮에 오니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은아는 마치 처음 이곳에 오는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슬금슬금 안으로 발을 옮겼다. 드르륵거리는 캐리어 바퀴 소리가 고요함 가운데 유독 크게 들려왔다. 일단 캐리어는 현관에 두기로 한 후, 은아는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었다.

 

 한 발자국 나무 바닥으로 내딛자 시원한 기운이 발바닥에 스며들었다. 현관 복도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아늑한 분위기의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통유리 창으로 비치는 자연광이 바닥에 햇살을 흩뿌렸다.

 

 노곤 노곤한 빛은 진회색 소파에도 닿았다. 그 위엔 시왕이 반쯤 누워 책의 책장을 느릿하게 넘기고 있었다.

 

 사락- 사락- 기분 좋은 종이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은아는 시왕을 부르는 것도 잊고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을 감상하다가 곧 고개를 털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부러 사근사근하게 웃어 보이는 입매가 시원하게 올라갔다.

 

 “그동안 잘 지냈어, 시왕아?”

 

 이윽고 그녀는 백팩을 한쪽 구석에 내려놓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시왕은 책에 집중할 뿐 미동조차 없었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의 얼굴을 한 번, 읽고 있는 책 표지를 한 번 바라본 은아는 미소를 지어내었다.

 

 “와아, 우리 시왕이 어려운 책 읽네? 너무 멋있는 거 아냐?”

 

 은아가 무릎을 굽혀 그와 좀 더 거리를 좁혔다. 그러자 시왕이 그런 그녀를 흘깃거리더니 옆으로 슬금슬금 엉덩이를 옮겼다. 꼭 그녀를 피하는 것처럼.

 

 은아는 묘하게 기분이 나빠져 헛웃음이 나왔다.

 

 “시왕아…?”

 “…….”

 

 시왕은 대답대신 다시 미간을 좁히며 책에 집중했다. 뭐지… 이 반응은…? 은아는 빈정이 상했지만 애써 감정을 숨기며 다시 한 번 밝게 미소 지었다.

 

 “에이, 시왕아~ 시왕이는 선생님 안 보고 싶었어? 선생님은 시왕이 되게 보고 싶었는데?”

 

 그녀가 손을 들어 시왕의 고운 머리카락을 한 번 쓰다듬었을 때였다. 시왕이 갑자기 몸을 움찔하더니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홰액- 쳐냈다.

 

 그 덕에 벙 찐 은아가 입만 벙긋거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동그래진 눈에 충격이 얽혀들었다. 시왕 역시 자신의 행동에 살짝 당황한 듯 보였으나 곧 표정을 갈무리하고 무뚝뚝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제부터는 함부로 내 몸에 손대지 마요.”

 

 탁- 책을 덮는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들려왔다. 허…? 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점차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얘가 유치원에서는 군말 없이 말도 잘 듣더니… 이렇게 태세 전환한다고?’

 

 금방이라도 유치원에서처럼 단호하게 주의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시왕의 가정교사였고, 이곳에서 모든 숙식을 해결해야했다. 그러니 처음부터 사이가 틀어질 필요는 없지 않겠나.

 

 은아는 겨우 화를 억누르고 눈웃음을 지었다. 뭐, 이마 한쪽에서 핏줄이 빠직 올라오긴 했지만.

 

 “시왕아? 어른한테는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우리 멋있는 시왕이가 오늘따라 왜 그럴까.”

 

 애써 수습하는 은아를 보며 시왕이 코웃음을 쳤다.

 

 “선생님이야말로 먼저 머리를 만져도 되는 지 물어보셔야죠. 내 몸은 내 건데 주인 허락 없이 함부로 만지는 거야 말로 잘못 아닌가요?”

 

 전혀 기죽지 않고 말대꾸를 하는 시왕이었다. 갑자기 그렇게 논리적(?)으로 나오니 은아는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어버버거렸다. 하지만 시왕은 멈추지 않고 한술 더 떴다.

 

 “선생님이 그랬죠. 이런 걸 성희롱이라 한다고… 맞죠?”

 

 은아는 기가 차 헛웃음을 지었다. 오 마이 갓. 얘 원래 이런 캐릭터였니?

 

 어째 배신감마저 드는 은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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