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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입을 다문 아이들
작가 : 흰다람쥐
작품등록일 : 2020.7.31

경찰대를 졸업한 서희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각오로 강력계에 지원했다. 부모님은 형사가 되려는 그녀를 만류했지만, 그녀는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서희는 강력계로 전입을 오자마자 터진 살인사건을 맡게 되지만, 피해자는 얼굴이 난도질당한 채 죽어있고 동거녀의 속옷은 몽땅 사라져있다. 한편 피해자와 함께 살던 쌍둥이들은 현장에서 누군가를 보았다고 증언하는데…

 
3. 수상한 이웃
작성일 : 20-08-02 15:24     조회 : 223     추천 : 0     분량 : 8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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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수상한 이웃

 

 

  서희는 윤주원 변호사의 집을 나와 다시 사건현장으로 향했다. 주원은 변호사답게 아이들이 집으로 금방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는 괜찮다면 당분간 자신의 집에서 지내게 해주겠다고 제안했고, 서희는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물론 ‘아이들 본인과 그녀들의 엄마가 동의한다면’ 이라는 조건을 전제로 깔아두기는 했다. 그녀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유에는 첫째로 주원의 신원이 확실했으며 남자이기는 하나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아내가 함께 산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안전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어차피 아이들은 당분간 지내야 할 곳을 구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모텔이나 찜질방 따위를 전전긍긍하게 두는 것보다는 기왕이면 따뜻한 집에서 지내는 게 더 나을 터였다.

  사건현장에 도착했으나 기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몰려있던 주민들도 어느새 호기심을 잃고는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 뒤였다. 서희는 이 모습을 보며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기자들과 마주쳐봤자 좋을 게 없었다. 현장 입구에는 정복 경찰관 두 명이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는 정면을 응시한 채 나란히 서 있었다. 서희는 둘 중 상급자로 보이는 이에게 다가갔다. 오른쪽 가슴께에는 ‘김승욱’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계급은 경장이었다.

  “용산경찰서 형사과 구서희 경위입니다, 김승욱 경장님.”

  서희가 신분증을 보이며 말을 걸었다. 경장이라는 계급은 경위보다 두 계급이 낮았다. 하지만 그녀는 웬만해서는 자신보다 낮은 계급이라 할지라도 쉽사리 말을 놓지 않았다. 비록 계급은 낮을지언정 대부분이 그녀보다 나이가 많았고, 때문에 말을 놓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경위님?”

  김승욱 경장이 경례자세를 취한 뒤 팔을 내리고는 물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두 분이서 오늘 몇 시까지 근무하는 건가요?”

  “내일 네 시에 교대예정입니다.”

  “잘됐네요. 그럼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경장은 여전히 정면만을 응시한 채 대답했다. 형사들이 앞에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근무태도 자체에 군기가 바짝 들어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새벽 두 시 즈음에 김혜신이라는 이름의 여성 한 분이 이리로 올 겁니다. 그 분이 오시면 상황을 간단하게만 전달하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전해주세요.”

  서희는 주소지가 적힌 메모지 한 장을 뜯어 경장에게 건넸다. 메모지에는 형사들이 방금 예약해둔 모텔의 주소와 방의 호수가 적혀 있었다. 서희가 말을 이었다.

  “저희가 내일 오전 9시 즈음에 찾아갈 거니까 반드시 방에서 기다리고 계셔야 한다고 전해주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또 다른 건 없습니까?”

  경장이 메모지를 힐긋 내려다보고는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물었다.

  서희는 고민에 잠긴 듯 잠시 미간에 힘을 주더니 이윽고 대답했다.

  “혹시 애들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면 저희가 데리고 있다고 얘기해주세요. 여러분들은 아이들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 건지는 모르는 거고요.”

  “알겠습니다.”

  서희는 고맙다고 말한 뒤 경관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사건이 발생한 집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붉은색 벽돌로 된 일층짜리 주택으로 오랜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외관이었다. 사실 이 동네의 대부분이 다 이런 식이었다. 대부분의 집들이 붉은색 벽돌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아닌 집들을 찾기가 더욱 어려웠다. 외벽에 금이 간 집들도 있었고, 그나마 덧칠해둔 페인트가 벗겨져 더욱 흉측해 보이는 곳도 더러 있었다.

  서희는 사건현장을 한 바퀴 돌아 집의 뒤편에 나 있는 샛길을 살펴보았다. 현장의 안방에서 보았던 열린 미닫이창문 쪽으로 연결되는 작은 샛길이었다. 샛길을 사이에 두고서 사건현장 맞은편에는 또 다른 일층짜리 단독주택 하나가 들어서 있었다. 역시나 붉은색 벽돌로 세워진 비교적 오래된 집이었다.

  그녀가 안방에 들어섰을 때 커튼을 휙 걷었던 바로 그 집이었다.

  서희는 단독주택을 잠시 쳐다보고는 걸음을 옮겨 커튼이 쳐진 창문 앞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몸을 돌려 사건현장을 다시 돌아보니 현장과의 거리가 고작 몇 발자국 정도에 불과함을 알 수 있었다. 소동이 일어났다면 충분히 감지할 수 있을 만한 거리였다. 서희는 고개를 살짝 숙여 커튼 안쪽으로 인기척을 확인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불을 꺼둔 것인지 조금의 불빛도 새어나오지 않았고 아무런 인기척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김 경사가 샛길 바깥에 서서 그녀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거기서 뭐하고 계세요, 경위님?”

  “아까 전에 여기서 커튼이 쳐지는 걸 봤어요. 어쩌면 뭔가를 봤을지도 몰라요.”

  “확실합니까? 제가 보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요.”

  김 경사가 회의적인 어투로 말했다. 창문 어디에서도 불빛 같은 건 새어나오고 있지 않음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시간은 저녁 8시를 훌쩍 넘겼고, 따라서 안에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전등이 켜져 있어야 할 시각이었다.

  “네, 확실해요. 지금은 모르겠는데 아까 전까지만 하더라도 확실히 있었어요.”

  서희가 샛길을 빠져나오며 말했다.

  “설마 지금 당장 초인종을 눌러볼 생각은 아니겠죠?”

  “그럴 생각이었는데요.”

  김 경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멈춰 세웠다.

  “경위님. 우리는 내일 아침 일찍부터 수사를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경위님 말씀처럼 정말로 뭔가를 알고 있다면, 정복 근무조에서 탐문수사를 돌면서 다 알아낼 거예요.”

  “그치만.......”

  “경위님이 어떤 마음으로 그러시는지 저도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사건조서도 작성하지 못했어요. 저는 단지 첫날부터 밤을 새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김 경사는 단호했다. 서희는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돌려 단독주택을 힐끗 쳐다보았다. 찰나였지만 순간적으로 불빛이 꺼진 커튼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커튼이 살랑인 것 같았다.

  그녀가 알아들었다고 생각한 김 경사는 자신의 차를 세워둔 곳으로 걸어가기 위해 몸을 돌리는 중이었다. 그 순간 김 경사의 등을 향해 서희가 외쳤다.

  “잠깐만요, 김 경사님. 십 분만요. 십 분 안에 끝낼게요.”

  김 경사가 다시 몸을 돌려 서희를 바라보았다. 애써 감추고 있지만 내면에는 짜증이 가득한 것 같았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서 수사의 지휘권은 다름 아닌 서희가 가지고 있었다. 김 경사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십 분입니다. 그 이상은 안 돼요.”

  “고마워요.”

 

  서희는 현관 앞으로 다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연식이 오래되어 떼가 끼어있었지만 굳게 닫혀있는 문의 틈새로 초인종 소리가 분명하게 새어나왔다. 아무런 반응도 없자 서희는 다시금 초인종을 누른 후 기척을 듣기 위해 문 앞에 귀를 바짝 붙였다. 잠시 후 체중이 실린 묵직한 발걸음이 느껴지더니 이윽고 성대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어나왔다.

  “누구세요?”

  “경찰입니다. 선생님께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러는데 잠시만 시간을 내줄 수 있을까요?”

  침묵이 둘 사이를 채웠다. 서희의 시선이 등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김 경사에게로 향했다. 의미심장한 눈빛이 서로를 교차했다.

  김 경사가 문 너머에 서 있을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선생님? 옆집에서 일어난 사건과 관련해서 몇 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문을 열어주실 수 있을까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열어주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약간의 침묵이 이어지더니 곧이어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불 꺼진 집 안은 온통 어두웠고, 덕분에 문을 열어준 남자 역시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남자는 김 경사와 비슷한 신장이었지만 덩치가 더 컸다.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지 배는 볼록 튀어나와있었고, 입고 있는 티셔츠는 체구에 비해 작은 터라 배꼽 아래쪽이 훤칠하게 드러나 보였다. 배꼽 밑으로 덥수룩하게 자란 털이 바지 안쪽으로 이어져있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서희의 눈에 드디어 남자의 이목구비가 보였다. 다듬지 않은 턱수염이 아무렇게나 삐죽삐죽 솟아있었다. 장발의 머리카락은 얼굴을 반쯤 덮은 채 헝클어져있었고, 뺨에는 여드름 흉터가 가득했다. 솔직히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운 얼굴이었다.

  “경찰이라고 하셨죠? 신분증을 좀 볼 수 있을까요?”

  남자가 물었다.

  “물론이죠. 여깄습니다.”

  서희가 신분증을 꺼내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는 신분증을 쓱 쳐다보더니 이윽고 미덥잖은 표정으로 서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서희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인 뒤 남자에게서 신분증을 뺏어 주머니 속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녀가 남자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여기서 얘기하는 거 아니었어요?”

  “그래도 되지만, 솔직히 조금 추워서요. 아니면 저희가 들어가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요?”

  남자가 입을 다물고는 불편한 얼굴로 서희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서희는 벌써 그가 아니라 어둠 속에 감춰진 집 안 구석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중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까 전 커튼이 쳐진 곳으로 추정되는 방향에 푸른색 불빛 한 점이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녀가 남자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저기, 실례지만 성함이...”

  “김창수입니다.”

  “김창수 씨. 그럼 잠시만 실례할게요.”

  서희가 싱긋 웃으며 말하고는 처음부터 창수의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는 듯 그가 미처 반박을 제기하기도 전에 잽싸게 발을 뻗어 현관 안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덕분에 창수는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서희에게 밀려 엉겁결에 뒤로 물러나 형사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공간을 내주고야 말았다.

  그가 불만스런 얼굴로 무어라고 중얼거리고 있는데, 서희는 아랑곳하지 않고는 곧바로 전등 스위치부터 찾았다. 삽시간에 어둠을 몰아내며 불빛이 집 안에 내려앉았고, 그러자 창수는 눈이 부신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사선으로 틀었다.

  부엌 겸 거실 하나와 작은 방 하나가 딸려있는 집이었다. 텔레비전은 없었다. 소파도 없었고, 접이식 식탁만이 거실 한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벽면에는 2단으로 된 이동식 행거가 설치되어 있었고 아래위로 무채색 티셔츠와 후드티가 걸려있었다. 바닥에는 청바지 세 벌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신발을 벗은 서희는 곧장 거실 안으로 들어섰다. 김 경사가 뒤따라 들어오며 현관문을 닫자, 얼마 안 가 찐득하고 쾌쾌한 냄새가 코끝을 건드렸다.

  “실례지만 직업이 어떻게 되십니까?”

  서희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물었다.

  “대학생이에요. 뭐, 지금은 방학이라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요.”

  놀라운 대답이었다. 서희는 자신의 나이를 가늠하는 능력을 새로 점검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창수는 아무리 어리게 쳐줘도 이십대 후반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속마음을 간파했는지 창수가 불쾌하다는 듯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왜 다들 제가 대학생이라는 걸 알고 나면 항상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저는 단지.......”

  “됐습니다, 그냥 제가 좀 노안인 거겠죠. 궁금하신 게 많은 것 같던데 그냥 질문이나 마저 하시죠.”

  서희는 미안함을 표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오른쪽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오후 8시 38분이었다.

  “아르바이트는 매일 하시는 건가요?”

  “주말에는 안 합니다. 평일에만 해요.”

  “그럼 오늘도 일을 하고 오셨겠네요, 그렇죠?”

  “당연하죠. 오늘은 금요일이니까요.”

  “혹시 댁에는 몇 시에 귀가하셨습니까?”

  기억을 더듬듯 창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잠시 후 그가 대답했다.

  “아마도 여섯 시 정도였던 것 같아요.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네요.”

  “평소에도 그 시각에 돌아오나요?”

  “네. 뭐, 대충은...집에 돌아오고 나면 그 즈음 됐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아르바이트가 다섯 시 반이면 끝나니까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희는 창수가 일한다는 아르바이트 가게의 주소를 물어본 뒤에 자신의 수첩에 메모를 했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아이들보다도 늦게 귀가했다는 의미였다. 사건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방 안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서희는 눈을 힐끔 돌려 방 안을 잠시 쳐다보았다. 소리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일은 몇 시부터 시작하시나요?”

  서희가 물었다.

  “오전 열 시부터 시작이에요. 집에서는 보통 아홉 시 이십 분에 나가는 편입니다.”

  “그렇군요.”

  서희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겨 방이 더욱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섰다. 그녀가 눈동자를 굴려 방 안을 슬쩍 쳐다보자, 창수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했다. 서희는 창수를 떠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는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보며 물었다.

  “김창수 씨. 옆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계시죠?”

  순간적으로 창수의 동공이 가늘게 떨렸다.

  “아니요, 모르는데요.”

  “그러면 왜 아까 전에 저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커튼을 치셨죠? 설마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하시려는 건 아니겠죠.”

  창수는 입을 살짝 벌린 채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보나마나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하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서희는 창수의 등 뒤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는 주방 싱크대 앞에 서 있었다. 싱크대 구석에는 서로 다른 크기의 식칼 세 자루가 칼꽂이에 나란히 꽂혀있었다. 그러고 보니 남자 혼자 사는 것치고는 칼이 너무 많았다.

  서희는 그 순간 신문을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자리를 잡을 때부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형사들에게 지급되는 38구경 리볼버도, 테이저건도 아무것도 소지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김 경사는 어떤지 몰라도 딱히 좋은 상황이 아닌 건 분명했다.

  마침내 창수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그냥요. 그냥 그랬어요.”

  “그냥이라뇨? 그게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예요. 별다른 이유는 없었어요.”

  서희는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근거는 없었으나 어째서인지 진실을 말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창수는 서희의 눈을 피해 시선을 허공으로 던졌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그녀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나저나 컴퓨터를 하고 계셨나 봅니다.”

  “예?”

  창수가 그녀를 다시 쳐다보자, 서희는 손을 들어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공중에서 가리켰다.

  “이 소리 말이에요. 아무래도 컴퓨터가 돌아갈 때 들리는 소리 같아서요.”

  “아, 네, 뭐. 맞아요. 영화를 보고 있었어요.”

  창수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둔 방 안에서는 푸른색의 작은 불빛 한 점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빛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모니터에서 나오는 불빛치고는 작았다. 아마도 컴퓨터 본체에서 나오는 불빛인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모니터는 꺼져있다는 뜻이었다.

  서희는 모니터가 꺼진 이유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돌이켜보면 그가 현관문을 열어주었을 때부터 모니터는 이미 꺼져있었다. 커튼을 치고, 집 안의 모든 전등을 꺼둔 채 컴퓨터를 하고 있던 이십대의 남자. 누군가가 찾아오자 굳이 모니터를 꺼둔 채 현관문을 열어준 남자. 서희는 순간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제야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를 덮친 찐득하고 쾌쾌한 냄새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애써 불쾌함을 감춘 채 이야기를 서둘러 마무리를 짓기로 마음을 먹었다.

  “혹시 같이 사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까?”

  “아니요, 없어요. 저 혼자 삽니다. 그건 왜 물어보는 거죠?”

  “아,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 단지 혼자 사시는 것치고는 식기들이 제법 많아 보여서요.”

  창수가 뒤를 슬쩍 돌아보더니 곧바로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아, 이거요? 제가 요리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러셨군요.”

  서희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됐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히 도움이 된 듯싶네요.”

  “...끝난 건가요?”

  창수가 의외라는 얼굴로 물었다.

  “네. 끝났습니다. 여러모로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희는 그를 향해 고마움을 표시한 뒤 현관으로 걸어가 신발을 신었다. 방 안에서는 여전히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푸른색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 시원한 밤공기가 형사들을 둘러싸고 있던 쾌쾌한 냄새들을 몰아내며 집 안으로 스며들었다.

  현관을 반쯤 나선 서희는 문득 생각이 번뜩였는지 몸을 휙 돌렸다.

  “아, 저기 김창수 씨. 한 가지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평소에 옆집에서 무슨 소란 같은 건 없었나요?”

  “소란이요?”

  “네. 예를 들면 부부싸움이라든지, 뭐 그런 것들이요.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생각에 잠긴 듯 창수는 입술을 모았다.

  “아니요, 잘 모르겠는데요. 아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군요.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창수는 손을 뻗어 문고리를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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