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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입을 다문 아이들
작가 : 흰다람쥐
작품등록일 : 2020.7.31

경찰대를 졸업한 서희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각오로 강력계에 지원했다. 부모님은 형사가 되려는 그녀를 만류했지만, 그녀는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서희는 강력계로 전입을 오자마자 터진 살인사건을 맡게 되지만, 피해자는 얼굴이 난도질당한 채 죽어있고 동거녀의 속옷은 몽땅 사라져있다. 한편 피해자와 함께 살던 쌍둥이들은 현장에서 누군가를 보았다고 증언하는데…

 
2. 아이들의 진술
작성일 : 20-08-01 16:36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7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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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이들의 진술

 

 

  사건현장으로부터 걸어서 오 분 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집이었다. 언덕길을 내려가다보면 세 갈래로 길이 나뉘는데, 그곳에서 왼쪽으로 돌아 두 블록만 더 걸어가면 나오는 황적색 외벽의 단독주택이었다. 은행나무인지 뭔지 모를 나무 한 그루가 벌거벗은 채 진입로에 세워져 있었고, 네 칸의 계단과 그 옆에 경사로가 현관으로 이어져있었다. 파견 나온 순경은 진입로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서희는 신분증을 꺼내 순경에게 보여준 뒤 초인종 앞으로 다가갔다.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긴장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경찰대에서 실습으로 신문을 맡아본 것 말고는 진짜 신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사람이 죽은 살인사건이었고, 그녀가 신문을 해야 할 대상은 열네 살짜리 어린 여자아이들이었다. 그녀는 호흡을 다시 한 번 가다듬은 뒤 초인종을 눌렀다. 오래 지나지 않아 철컥거리는 금속성의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스르륵 열렸다.

  현관문을 열어준 건 휠체어에 타고 있는 남자였다. 나이는 삼십대 중반 정도로 그녀보다 약 열 살이 많아 보였다.

  “용산경찰서에서 나온 구서희 형삽니다. 112신고를 접수 받고 나왔어요.”

  “윤주원이라고 합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형사님들. 자, 안으로 들어오시죠. 아이들은 거실에 있습니다.”

  현관문을 활짝 열어준 주원은 익숙한 솜씨로 휠체어를 돌려 거실로 향했다. 잠깐 보았을 뿐인데도 매력적인 사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화장을 하지 않았지만 눈썹은 진했고 속눈썹은 뚜렷했다. 코는 높지 않았지만 반듯했다. 단정하게 다듬어진 머리칼과 수염은 그가 평소에 얼마나 부지런한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건 그의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였다. 듣는 것만으로도 신뢰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는 드물다.

  주원을 뒤따라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한쪽 벽면에 큼지막하게 걸려있는 액자 하나가 서희의 눈에 들어왔다. 두 다리로 멀쩡하게 서 있는 주원과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드레스를 입은 채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었다.

  거실은 전반적으로 널찍했고 천장 또한 넓었다. 액자 반대편에는 커다란 궤종시계가 보였고 그 밑에는 원목으로 된 선반과 법률서적들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자신을 형사라고 소개했음에도 일말의 긴장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아무리 죄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형사들을 대면하면 긴장하기 마련이다. 주원의 뒤를 좇으며 서희가 물었다.

  “변호사신가 봐요?”

  주원이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힌 채 씩 웃어보였다.

  “직감이 상당하시네요, 형사님. 예, 맞습니다. 변호사로 일하고 있어요. 뭐, 지금은 잠시 휴업 중이지만 말입니다.”

  “아.......”

  서희는 말을 잇지 못하고 휠체어에 탄 주원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다는 듯 주원이 말했다.

  “이것 때문은 아닙니다. 그냥 맡고 싶은 의뢰가 없어서요.”

  “조건을 까다롭게 보시는 편인가 보죠?”

  “대신 맡은 일은 그만큼 잘 처리하기도 합니다.” 주원은 매력적인 얼굴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부디 형사님 사건을 변호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말이죠.”

  은근한 도발이었다. 서희는 이런 종류의 도발이라면 이미 지겹도록 대응을 해온 터였다. 경찰대에서는 이보다 더한 도발도 겪어봤고, 따라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서희는 싱긋 웃어보이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부디 저도 변호사님을 체포할 일은 없어야 할 텐데 말이에요.”

  주원은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해 잠시 당황한 듯하더니 이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서희는 그를 보며 변호사라는 작자들은 원래 다 이런 식일지 문득 궁금했다. 처음 보는 상대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도발을 날리고, 그 반응을 통해 상대의 기량을 가늠하는. 그녀는 자신이 몇 점이나 받았을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보나마나 만점일 것이다.

  “전해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건 말씀드린 게 전부입니다.” 주원이 말했다. “집에 있는 게 갑갑해서 잠깐 나갔다가 아이들을 만났고, 사정을 듣고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죠. 참고로 집 안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어요. 보시다시피, 저는 그 집 문턱을 넘어갈 수도 없거든요.”

  주원은 자신의 상태를 강조하듯 두 팔을 벌렸다.

  서희는 그의 다리를 힐긋 내려다보았다. 자세히 보니 한쪽 다리가 조금은 어색하게 놓여있었다.

  “교통사고였습니다. 그렇게 과속을 하지도 않았는데 차가 미끄러졌었죠.”

  그녀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주원이 아무렇지도 않은 투로 설명했다. 일이 생겨 강원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밤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날이 결혼기념일이었기 때문에 급한 마음에 규정 속도를 조금 넘겼을 뿐이었다. 그것이 사고로 이어질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때마침 이를 목격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왼쪽 다리 하나만 마비되고 살아날 수 있었다.

  “...좀만 더 늦게 발견됐었다면 아마도 죽었을 겁니다.”

  “아내 분께서 많이 놀라셨겠어요.”

  서희가 말했다.

  “말도 마세요. 눈을 뜨자마자 죽일 듯이 욕을 퍼붓는데, 그때 생각만 하면...어휴. 욕을 얼마나 해대던지 나중에는 남 부끄러워서 그냥 죽었어야 했나 싶었다니까요.”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주원의 입가에 실웃음이 걸렸다.

  서희는 거실 벽면에 걸려있는 액자를 다시금 슬쩍 쳐다보았다. 여자는 기품 있고 우아해 보였다. 그런 여자가 죽다 살아난 남편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댔다니. 좀처럼 상상이 안 됐다.

  “아무튼, 거실에서 편하게 얘기들 나누세요. 물어보실 게 없으면 저는 방에 들어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주원은 거실을 가로질러 방 안으로 사라졌다.

  서희는 멀어져가는 주원을 바라보며 더 이상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저런 다리로는 현장에 들어가기란 불가능했다. 현관의 문턱이 제법 높아 휠체어로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높이였다. 물론 멀쩡한 다리로 한 발 뛰기를 한다면야 가능은 할 것이다. 하지만 여러모로 사건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은 적어보였다. 그다지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될 듯했다. 김 경사도 그녀와 같은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그는 일찌감치 주원에게서 시선을 돌려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두 여자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같은 중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얼굴도 똑같이 생긴데다가 체형마저 똑같아 굳이 물어보지 않았음에도 쌍둥이임을 알 수 있었다. 여느 사춘기 여자아이들처럼 뺨에는 홍조를 띠었고, 다듬어지지 않은 중단발 머리카락은 어깨 너머에서 산발적으로 뻗쳐있었다. 거실 탁자 위에는 머그컵 두 잔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입술모양으로 코코아 자국이 묻은 걸로 보아 주원이 코코아를 타준 모양이었다.

  서희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앞으로 다가가 비어있는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그러고는 어색한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 용산경찰서에서 나온 구서희라고 해. 너희가 신고한 사건을 담당하기로 한 형사야.”

  “안녕하세요.”

  아이들은 우물쭈물거리며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무리 쌍둥이라지만 목소리마저 똑같은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서희는 아이들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했다. 둘의 차이점을 구별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뚜렷한 차이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 입고 있는 교복 왼쪽 가슴에 새겨져있는 명찰을 통해 아이들을 구분하기로 했다.

  “언니가 너희들한테 몇 가지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러는데, 혹시 대답해줄 수 있을까?”

  “네.”

  “고마워. 혹시 박승현 씨랑 너희랑은 관계가 어떻게 되니?”

  “삼촌이에요.”

  한 아이가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답했다. 왼쪽 가슴에는 ‘김지혜’라는 세 글자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이가 지혜의 팔을 툭 치며 나무라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김지연이었다.

  “그걸 물어보신 게 아니잖아. 그냥 같이 사는 사람이에요. 저희랑은 아무 관계도 없어요.”

  “가족이 아니라는 뜻이야?”

  “네.”

  지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이후로 서희는 아이들에 대해 몇 가지를 더 알아내었다. 우선 지혜와 지연은 같은 중학교의 일학년이고 같은 반이었다. 성 씨는 엄마 쪽을 따랐다고 말했다. 친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모른다고 말하는 걸로 보아 아마도 미혼모일 가능성이 컸다. 아이들은 피해자를 삼촌이라고 불렀고, 그냥 그렇게 부르라고 해서 그랬다고 한다. 아이들이 알기로 피해자의 직업은 택배기사였다.

  서희는 잠시 질문을 멈추고는 김 경사의 눈치를 살폈다. 수사단계에서 모든 질문이나 신문, 취조, 진술확보 따위는 보통 선배형사가 하기 마련이다. 계급 상으로만 놓고 보자면 서희가 상급자인 것은 맞았지만 경력으로 따지자면 김 경사가 한참이나 선배였다. 하지만 김 경사는 신문에 개입할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질문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집에 들어왔을 때, 뭐 특이한 점은 없었니?”

  “특이한 점이요?”

  “응. 예를 들면, 평소랑 달랐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야.”

  “삼촌 신발이 있었어요.”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연이 대답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금요일에는 원래 삼촌이 집에 없어요.”

  “항상?”

  “음...그랬던 것 같아요. 금요일이랑 토요일 저녁에는 거의 없었어요.”

  지연은 그렇지 않냐면서 지혜에게 동의를 구했고, 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희는 현장에서 보았던 현관 앞에 놓여있던 신발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잘 닦여진 검갈색 구두였다. 택배기사가 일을 할 때 신고 다닐 만한 신발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구두를 제외하곤 다른 신발은 한 켤레도 보이지 않았다. 굳이 신발장 안을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서희가 다시 물었다.

  “혹시 무슨 일로 나가는 건지는 알아?”

  “아니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몇 시에 나갔다가 언제 들어오는지는?”

  “금요일은 잘 모르겠고, 토요일에는 보통 다섯 시에 나갔던 것 같아요. 언제 들어오는지는 그때그때마다 다르고요.”

  “다음 날에 들어온 적도 있었니?”

  “네. 사실 그럴 때가 더 많았어요.”

  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말마다 박승현이 어디로 나가는 건지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그것도 거의 매주를. 직장과 관련된 일이라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꽤나 중요한 정보가 될 지도 모른다고 서희는 생각했다.

  “최근에 누가 박승현 씨를 찾아온 적이 있었니?”

  “아니요. 없었어요.”

  “누구랑 통화를 하다가 다툰 적은?”

  “모르겠는데요. 삼촌은 집에서 전화를 잘 안 해요. 전화가 올 때마다 항상 나가서 받거든요.”

  그렇구나, 라고 말하며 수첩에 메모를 하려다가 서희는 멈칫했다. 김 경사가 이미 메모를 하고 있었다. 서희는 아이들에게 익숙한 호칭을 사용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뒤 다시 물었다.

  “삼촌이 오늘 누구를 만난다고 한 적은 있니?”

  지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때 뭔가가 떠올랐는지 지혜가 불쑥 입을 열었다.

  “아, 저기, 사장님인가? 만난다고 했던 거 같아요.”

  “사장님?”

  “네. 그렇게 불렀었어요. 다음 주에 보자고 하는 걸 지난주에 들었으니까, 이번 주가 맞을 거예요.”

  “통화하는 걸 들은 거야?”

  “네, 맞아요. 그게, 그때 배가 고파서 부엌에서 몰래 우유를 꺼내 마시려다가.”

  지혜가 말을 멈추고는 우물쭈물거리며 옆에 있는 지연의 눈치를 잠시 살폈다.

  “몰래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그니까 그게.......”

  지혜가 말을 마치지 못하고 엉거주춤 고개를 푹 숙였다.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대체 왜. 서희의 머릿속에서 불현듯 의문 한 가지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몰래’라는 말에 주목했다. 자기 집에서 몰래 우유를 꺼내 마셔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누구를 피해 몰래 마셨던 것일까. 아마도 엄마나 피해자 중 한 명일 것이었다. 어쩌면 둘 모두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고작 우유 하나를 마음대로 꺼내 먹지 못하게 할 이유가 대체 뭐가 있을까.

  서희는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지연에게로 돌렸다. 이런 상황에서 눈치를 살핀다는 건 둘 중 하나였다. 상대가 모르길 바라거나, 아니면 같은 비밀을 공유하고 있거나. 하지만 전자라면 애초에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후자일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서희는 본론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고는 다시 지혜를 쳐다보았다. 괜히 말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 걸 지금 당장 억지로 끄집어낼 필요는 없었다.

  “사장님이랑 정확히 언제 만나자고 했는지는 기억나니?”

  “아니요, 그것까지는 못 들었어요.”

  지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밖에 또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나? 사소한 거라도 괜찮아. 아무거나 기억나는 대로 말해줄 수 있겠니?”

  기억을 더듬듯이 지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잘 나온 게 몇 개 있다고 했던 것 같아요. 저번 꺼보다 훨씬 괜찮을 거라고. 자세한 건 그때 가서 얘기하자고도 했어요.”

  “잘 나왔다는 게 뭔지는 모르고.”

  지혜가 대답대신 고개를 푹 숙였다.

  김 경사가 수첩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소리가 들렸다. 서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뭐가 잘 나왔다는 것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택배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집에 도착했을 때가 몇 시였는지 기억나?”

  “모르겠어요, 시계가 없어서.”

  지혜를 대신해서 이번에는 지연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대답했다.

  “학교는 몇 시에 끝났어?”

  “수업은 세시 반에 끝났어요. 근데 얘가 이번 주 주번이라서 청소 끝내고 네 시? 아마도 그 즈음에 나온 것 같아요.”

  아이들의 교복 마크 덕분에 학교가 어디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버스를 타고 이십 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여학교였다. 서희가 본청 교통과로 출근할 당시에 지나치던 곳이라 잘 알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실에 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오후 5시 52분이었다.

  “혹시 집에 오다가 따로 들른 곳이 있니?”

  서희가 물었다.

  “아니요, 없어요.”

  “그러면 다섯 시 전에는 집에 도착했겠구나.”

  “아니요. 그것보다는 훨씬 늦게 도착해요.”

  서희는 지연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슨 소린가 싶었다. 차가 아무리 막힌다고 해도 버스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버스전용차선 덕분이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듯 지연은 말을 이었다.

  “걸어오거든요. 집에 돌아올 때는 항상 걸어서 와요.”

  “걸어서 온다고? 그렇게나 먼 거리를?”

  “네. 돈이 없으니까요.”

  지연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 보니 크림색 교복셔츠의 목 부근에 누런색의 묵은 떼가 끼어 있었다. 교복을 물려 입어야만 생길 수 있는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었다. 양말은 지연과 지혜, 둘 다 신고 있지 않았다. 피해자를 발견했을 당시 피를 밟았고, 그래서 감식반에 의해 증거품으로 수집된 상태였다. 서희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는 새에 연민의 감정이 이는 걸 느꼈다. 깎지 않은 발톱에 떼가 끼어 있는 게 보였다.

  그때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고 있던 김 경사가 갑자기 목소리를 냈다.

  “혹시, 너희들이 걸어오는 걸 본 사람이 있을까?”

  서희는 순간 몸을 움찔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질문이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동시에 너무 과한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유독 어린 아이들에게 약한 구석이 있었다.

  김 경사를 잠시 바라보던 아이들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김 경사도 충분히 예상을 하고서 던진 질문일 터였다. 대신에 그는 아이들이 귀가할 때마다 다닌다는 길을 알아냈다. 매일 같이 걸어 다닌다면 알아보는 사람이 한두 명쯤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김 경사는 아이들의 설명을 토대로 길을 상세히 메모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라도 직접 조사해볼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다는 투로 지혜가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까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요.”

  “이상한 소리?”

  “네. 집에 들어왔을 때 큰방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던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서희가 눈을 번뜩이며 지혜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됐는데?”

  “저희는 당연히 삼촌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저희 방으로 곧장 들어가려고 했는데.”

  “거기에 삼촌이 쓰러져있었다 이거지.”

  “네.”

  서희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서 고개를 들었다. 옆을 돌아보니 김 경사의 눈도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건 누군가가 집안에 있었음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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