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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폭군과의 산책
작가 : 호랑이손
작품등록일 : 2020.7.31

재계 1위 제국그룹 신입사원 소요진.
연수중이던 그녀에게 그룹의 유일한 황태자 조대환 총괄사장이 찾아온다.
"자넨 내 전생의 원수야. 소요진씨."
대환의 입에서 나온 뜻 밖의 한 마디.

그러나 그건 모두 사실이었다.

 
폭군과의 산책 02
작성일 : 20-08-01 16:19     조회 : 194     추천 : 0     분량 : 7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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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회랑을 걷는 내내 그의 머릿속에선 잡스런 계산이 맞물려 돌아갔다.

 

 “방울로 놈의 영혼을 불러오고, 거울로 가둘 것이다. 그런 다음 검을 찾아내 따끔하게 혼찌검 내줄 것이야. 어딜 감히...”

 

 환은 충신을 위한 초혼제 따윈 망각하고, 사적인 복수에 치를 떨어댔다.

 방울을 보관해 둔 내전에 들어설 무렵, 환은 문득 어두움을 느꼈다. 어느 때보다 무거운 침묵도 주위를 감쌌다.

 

 “천제께서 드십니다!”

 

 이렇듯 당연히 내전 전각이 떠나가라 떠들어야 할 내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침묵의 벽을 타넘은 카랑카랑한 구슬소리 한 줄이 다가왔다.

 

 ‘짤랑 짤랑 짤랑....’

 

 “!”

 

 환이 크게 놀랐다. 감히 천령을 깨우다니!

 당장 참해도 모자랄 일일 뿐 아니라, 너무도 위험한 일이었다.

 

 “어떤 놈이냐! 누가 방울을 꺼내들었어?”

 

 환이 달려가 내전 전각문을 걷어찼다.

 천손의 괴력에 문짝이 부러질 듯 쿵! 하며 뒤로 밀려났다.

 그 순간, 환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내전 마당 그득 널부러진 시체.

 혼령이 산 채 뽑힌 탓에 검은자위가 돌아가 있고, 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선 온갖 오물을 줄줄 흘리며 죽어 있던 것이다.

 천손이 아닌 자가 하늘의 신기를 만졌을 때 내리는 벌이다.

 

 “태자!”

 

 환은 황급히 아들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러곤 곧 바닥에 누운 아이 하나가 사지가 뒤틀린 채 방울 쥔 손으로 경련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의 경련하는 손에선 짤랑..짤랑 하는 소리가 계속해 이어졌다.

 

 “허!”

 

 환이 헛웃음 소리를 냈다.

 태자가 천손이 아니란 증거가 확실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리석었구나.”

 

 환이 탄식했다.

 당시로선 늦은 나이, 후손 없이 전전긍긍하던 황후가 결국 남몰래 사생아를 뱃속에 품곤, 자신의 아이로 속인 게다. 그 벌로서 하늘은 아마 그녀를 데려간 것일 테지.

 

 “황후, 감히 이것이...”

 

 동시에 천손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풍백의 말이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그럴 리 없다.”

 

 환이 아이 손에서 방울을 빼앗아 들었다.

 그러자 아이의 목숨이 온전히 끊어졌다.

 

 “내가 살아 있는 한, 하늘이 그럴 리 없어.”

 

 환은 죽은 아이의 얼굴을 보며 이를 깨물었다.

 

 “천제시여! 어디 계시옵나이까? 히익!”

 

 신하 하나가 환을 알현하러 왔다가 사방에 널리 시신을 보곤 사색이 됐다.

 

 “무슨 일인가?”

 

 “아..아뢰옵기 황공하옵니다만, 요령에 있던 부장 요추안타가 3만 군사와 함께 적에게 항복했다 하옵니다!”

 

 “뭐?”

 

 “나머지 군사는 마지막까지 저항하다 모두 전멸...”

 

 “그만하거라!”

 

 환이 손을 내저었다.

 

 항복이라니. 천하를 호령해도 모자랄 판에 대쥬신 제국 주력군의 항복이라니.

 환은 급박히 돌아가는 상황에 어이가 없었다.

 지난 천년, 쥬신에 복종을 맹세한 다수 부족 연합이란 게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 똑똑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알았다. 넌 즉시 대연맹장 회의를 소집한다 전하거라.”

 

 남은 부족이라도 뭉쳐서 다음 사태를 대비해야 했다.

 신하가 조아리며 내전을 빠져나갔다.

 

 “허어. 풍백...”

 

 환이 자기도 모르게 탄식하며 방울로 자기 허벅지를 쳤다.

 탁탁!

 구슬 부닥치는 소리에 짤랑거리는 소리가 섞여 들었다.

 

 “지금이라면 승천하실 수 있소. 왕검.”

 

 “!”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란 환이 돌아봤다.

 어느 새, 관복 차림의 풍백이 살아 있을 적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의 발밑에 길게 뻗어 있어야 할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뿐이다.

 

 “천손은 하늘의 계보라 지상에 시신을 남기지 않고 승천할 수 있소. 그러나 더 늦어지다간 비참한 종말이 그대를 찾아올 것이오. 어서 신시로 돌아가 신단수 앞에 승천의 념을 하늘에 올리시오. 노신의 마지막 충언이외다.”

 

 실수다.

 거울을 찾은 다음 불러냈어야 했는데. 지금은 놈을 가둘 수 없다.

 

 환이 인상을 부라렸다.

 

 “역적 귀신은 망언을 삼가고 물러가라!”

 

 환이 소리쳤다.

 그러나 그림자 없는 풍백, 도리도리 저을 뿐.

 

 “쯧쯧. 입으로만 천손. 천손. 사명인 재세이화 홍인인간은 멀리하고 권세만 탐하니...말년이 험할 것이외다. 왕검.”

 

 “집어치우라니깐! 이 놈!”

 

 환이 방울을 들어 풍백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러나 허공을 갈랐을 뿐, 환이 휘청거리던 몸뚱이를 바로 세웠을 땐 이미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죽어서까지 건방지구나. 이 늙은 역적 놈.”

 

 환이 분한 듯 뇌까렸다.

 

 *

 

 그날 밤, 풍백의 집에선 곡소리와 비명소리가 교차했다.

 가솔 누구하나 거울의 위치를 말하지 못한 채 모진 매질과 고문 속에 명을 달리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환은 대전에 마련된 연맹장 회의석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대쥬신 천국 68개 부족 모두가 시대의 흐름이 바뀐 것을 알곤 몸을 피한 것이다.

 

 “감히 짐의 소집을...”

 

 환이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한 때 천하를 재패할 듯 뻗어나갔던 제국의 마지막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텅 빈 회의장에서 환이 또 다시 잡다한 계산을 셈해나갔다.

 

 “검은 살아선 다다를 수 없는 곳에, 거울은 죽어서도 다다를 수 없는 곳에....”

 

 도대체 거기가 어딜까?

 환은 계속해 답을 구했으나, 밤이 새도록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

 

 두 달 후.

 쥬신국 수도 단야성은 황하서 발원한 부족과 환의 정벌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북방 부족 대군으로 가득 찼다.

 그들 모두 대쥬신 천국 지도자 환의 목을 원했다.

 처음 단야성을 포위했을 때, 환은 그를 따르는 무리와 함께 결사항전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포위가 길어지며 백성의 불만과 불안이 쌓이자, 급기야 일부 무리가 적과 내통, 성문을 열어주고야 말았다.

 

 “모두 죽여!”

 

 적은 약속과는 다르게 내통자들부터 척살했다.

 한밤중 기습이라 환의 근위 군사들은 별 힘도 못써보고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사방에서 방화와 약탈, 살육이 자행되고 그 초점은 점점 환을 향해 맞춰지고 있었다.

 

 “하늘님이시어! 천손이 이렇게 끝나는 건 너무 가혹하나이다.”

 

 성안 가장 높은 망루로 피신한 환이 하늘을 향해 방울을 흔들며 울부짖었다.

 마땅히 혼령이라면 방울 소리에 즉시 응답해야 한다.

 그러나 방울의 권능을 넘어선 위치의 그 분은 오직 침묵으로 답했다.

 

 “하늘님이시어! 제발!”

 

 그러자 침략자들 중 누군가 눈 좋고 귀 밝은 자가 환을 알아보았다.

 

 “쥬신의 왕이 저기 있다!”

 

 “저 자가 쥬신의 황제 환이다!”

 

 병사들은 삽시간에 환이 선 망루 아래 모여들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던 환은 그들 모두가 미친 개미떼 같다 생각했다.

 

 “훗! 이 몸이 하늘님만큼 거인이라면 모조리 짓밟아 죽였을 것을...”

 

 환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자 오히려 편안해졌다.

 

 쾅!

 

 망루 문이 열리며 도끼를 든 건장한 사내들이 쇄도했다.

 깃 장식이 달린 걸로 보아 이름난 장수쯤으로 보였다.

 마지막까지 환을 지키던 호위 장수가 앞을 가렸다.

 

 “천제시여! 빨리 피하소서!”

 

 “피해?”

 

 어디로 말인가? 환은 이 고지식한 장수의 넓은 등판을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자네나 피하시게. 호위대장.”

 

 이제 더 이상 아무 답이 없는 하늘의 방울을 놓았다.

 손잡이 달린 방울 묶음이 쩔그렁! 하며 성루 바닥에 기대어졌다.

 

 “아쉽게도 이제부턴 그대 같은 인간의 시대이니. 천손이 아니라.”

 

 환이 허리춤에서 칼을 빼어들었다.

 하늘의 힘을 빌릴 수 없다면, 이제 남은 건 하나 뿐.

 

 “저놈이다! 저놈이 쥬신의 왕이다! 잡아!”

 

 사내들이 쇄도했다.

 먼저 기왓장만한 도끼날이 환의 앞에 선 호위 장수 이마를 노렸다.

 장수는 그 중 하나를 베어 떨궜으나, 또 다른 쇳덩이 하나가 그의 어깻죽지를 파고들었다.

 

 “크윽, 이놈! 감히!”

 

 장수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도끼 주인의 목줄을 꿰뚫었다.

 사내는 목에 걸린 칼날을 부여 쥔 채 컥컥 부르르 떨었다.

 장수가 금방 잡은 사냥감을 노려보는 사이, 적의 사내들이 줄을 지어 올라왔다.

 

 푹! 푹!

 

 그들은 사정없이 호위대장의 몸뚱이에 창끝을 처박았다.

 잠시 후 장수의 몸이 기울었다.

 

 “쥬신의 왕! 내 형과 아비의 원수!”

 

 장수가 쓰러지자, 가장 앞에 선 털북숭이가 일갈했다.

 아마도 을미파소에 의해 토벌당한 북방 민족인가 보다.

 

 “네 놈의 목을 잘라, 제물...”

 

 쫙!

 

 피보라가 솟구쳤다.

 어느 새 왕가의 보검이 적장의 목을 긋고 지난 탓이다.

 환의 새하얀 용포가 순식간에 더럽혀졌다.

 쇄도하던 적들이 잠깐 주춤했다.

 

 “황명일세. 호위대장. 자네는 살아서 천손의 마지막 모습을 후대에 전해. 알겠는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칼을 쥔 채, 대쥬신 천국 마지막 왕검이자 최초의 황제 환이 말했다.

 

 “소...소신... 황공하옵게도...저, 저는 이제 여기...까지.. 부디..피하..”

 

 장수는 결국 마지막 말조차 마무리 짓지 못한 채 혼절해 넘어졌다.

 

 “죽어? 이런 불충이 있나? 짐이 살아남으라 분명 명했건만.”

 

 그런 부하를 본 환이 다시 한 번 피식 웃었다.

 

 “역시 인간의 몸이란 연약하단 말이지.”

 

 환이 검을 꼬나 쥐었다.

 환은 천손이다.

 애초에 아득히 인간을 뛰어넘는 육체와 하늘의 검법으로 어려서부터 단련된 몸.

 백 년도 못사는 인간들 따윈 감히 그의 백병전 상대가 되지 못했다.

 

 “불량한 씨앗들 같으니라고.”

 

 환의 비웃는 표정에 주변을 둘러싼 적들이 일순 긴장했다.

 그들 모두 북방 민족인 탓에 환과 같은 또 다른 천손 을미파소 장군의 용력을 잘 알던 터였다.

 

 “가만들 있거라. 천손의 손에 죽는 것도 그대들에겐 영광일 터이니.”

 

 번쩍!

 빛이 났다. 지상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쾌검!

 환을 포위하던 적군은 순식간에 머리와 몸통이 떨어져 나갔다. 잘 흔든 탄산처럼 핏물이 솟구쳤다.

 

 “으아악!”

 

 간혹 칼이 빗나가 목이 절반쯤 떨어진 자들이 마지막 삶의 흔적을 소리로 새기고 있었다.

 

 “그래. 싸우다 죽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휙!

 

 “커억!”

 반쯤 잘린 목을 쥔 채 비명 지르던 병사가 허리 째 잘려 나갔다. 환이 걸음을 옮겼다.

 

 *

 

 망루로 이어진 계단.

 

 하늘로 오르지 못한 환은 지상으로 나아갔다.

 그의 한발 한발 내딛는 걸음마다 죽음의 꽃이 빨갛게 피어올랐다.

 망루 입구부터 출구까지 계단 가득 메운 시신은 뚜껑 따진 깡통이 되어 아무렇게나 뒹굴었다.

 

 “재세이화, 홍익인간...모두 허튼소리. 인간은 결국 피를 봐야 착해진다. 그것이 본성이다.”

 

 온몸에 핏물을 뒤집어 쓴 환은 계속해 적의 인파를 스윽스윽 가르며 나아갔다. 흡사 잘 드는 가위로 팽팽한 비단폭을 가르는 느낌으로다가.

 

 *

 

 망루 밖, 광장.

 

 “화, 활이다! 활을 쏴라!”

 

 밖에서 대기하던 적장이 하얗게 질려 외쳤다.

 궁수들이 붉게 다가오는 환을 향해 촘촘히 화살을 날렸다.

 빗발치던 화살 중 열 몇 개인가가 환에게 접근했으나, 홱! 휘두르는 보검에 맞아 모조리 촉을 잃은 채 땅으로 처박혔다.

 

 “더! 더..더 쏴라! 죽여!”

 

 적장이 채근했다.

 그러자 환이 물었다.

 

 “너희 그거 아느냐?”

 

 촥!

 

 환은 답도 듣지 않은 채, 적장의 말과 몸통을 한꺼번에 토막 내버리고 말았다.

 차마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빠르기의 쾌검이었다.

 

 “천손은 지상에 시신을 남기지 않아.”

 

 문득 궁금해졌다. 적장은 조금 전 내말을 들었을까? 들었다면 굉장한 비밀을 들었다고 기뻐했을 텐데.

 환이 걸음을 옮겼다.

 사방에서 적들이 새까맣게 모여들었다.

 

 “적이 많아 좋구나. 하하.”

 

 *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환은 혼자요, 적은 수만에 이르렀다.

 적들은 이제 환을 축 삼아 커다란 동심원을 만들고 섰다.

 환이 조금씩 어깨를 들썩였다. 지친 탓이다.

 

 "왜들 그러고 있느냐?"

 

 핏물에 절었어도 그의 얼굴엔 비웃는 티가 역력했다.

 

 “멀지 않느냐? 좀 더 가까이들 와야지. 여기 와서 나를 찌르거라.”

 

 빽빽이 포위한 적들은 창칼만 겨누어 댈 뿐 누구하나 감히 나서지 못했다.

 

 “좋은 기회지 않느냐? 천손 몸에서 터럭하나만 취해도 능히 나라 하나쯤 얻을 수 있어.”

 

 환이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나아갔다.

 

 “그대들의 황제가 짠돌이만 아니라면 말이지.”

 

 “어..어...!”

 

 환이 비틀거리며 다가오자, 환의 경로에 버티던 병사들이 파랗게 질렸다.

 

 “오, 오지마..오지마.”

 

 번쩍!

 눈 깜짝 할 사이 동심원의 이빨이 어긋났다.

 좁게 잡아 예닐곱 머리통이 농익은 포도 알처럼 바닥에 떨궈졌다.

 잘 흔든 샴페인처럼 피보라가 뿜어져 나온 것은 덤이다.

 

 “으..으어.. 아..악귀..! 살려줘!”

 

 바닥에 시뻘건 실금을 남긴 채, 수천의 동심원이 후다닥 물러섰다.

 

 “흥! 선대 왕검께서 천년을 가르쳤건만 말버릇하곤. 살려주세요. 해야지. 살려줘가 아니라... 벌이다.”

 

 번쩍!

 십여 개의 굵은 포도송이가 또 다시 굴러 내렸다. 피와 내장, 잘린 목들의 레드카펫이 깔렸다.

 

 “너희가 점점 착해지고 있구나. 흡족한 일이야.”

 

 환이 잔인한 미소를 머금으며 레드카펫 위를 나아갔다.

 

 *

 

 

 "아군이 너무 많이 죽습니다! 장군!"

 

 결국 그런 환을 먼발치서 보던 적의 총대장이 새로운 명령을 전했다.

 

 “기름을 가져오라.”

 

 명은 즉시 이행됐다.

 

 *

 

 환을 사이에 둔 커다란 동심원이 열리며, 여기저기 갑자기 오! 오! 소리와 함께 불붙은 기름통 하나가 데구르르 굴러들었다. 발 디딜 힘조차 없어진 환이 반사적으로 통을 갈랐다. 안에 있던 기름이 펑! 하며 불길을 만들어냈다.

 

 “웃!”

 

 예상대로 환의 몸에 불길이 옮겨 붙었다.

 거듭거듭 불붙은 기름통들이 굴러와 환의 몸뚱이 이곳저곳을 건드려댔다.

 환이 순식간에 쳐냈으나, 끈적거리는 기름 탓에 그의 몸엔 불길이 늘러 붙었다.

 그 순간, 적장의 아이디어에 감탄하며 환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그래, 좋구나! 천손은 시신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 절대!”

 

 환은 온몸이 익어가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이죽거렸다. 계속해 기름들이 굴러왔다.

 더 이상 적군의 동심원 따윈 없었다.

 꽝! 꽝!

 기름통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연기가 꾸역꾸역 올라왔지만, 적군 병사 그 누구도 환의 비명을 듣지 못했다. 워낙 많은 양의 기름을 사용했기에, 환이 섰던 자리엔 아름드리 불기둥이 섰다.

 

 “지긋지긋한 놈. 이제 끝인가?”

 

 다가온 적의 총대장이 열기를 의식하며 찡그렸다.

 

 쐑!

 그 순간 불길을 뚫은 창 하나가 쭉 뻗어 나왔다.

 

 "허억!"

 

 기다란 창은 아슬아슬하게 총대장의 관자놀이를 스쳐, 뒤에 있던 부장 하나와 말대가리 하나를 정통으로 꿰차곤 멀리 아름드리 박달나무까지 날아가 꼽혔다.

 

 쿵!

 순식간에 두 생명이 박제된 채 사라졌다.

 

 “구..궁수!”

 

 당황한 대장이 말에서 뛰어내렸다. 동시에 머리를 감싸며 외쳤다.

 

 “궁수!”

 

 그때였다. 온몸에 불을 끼얹고 자글자글 익어가는 형상 하나가 비척거리며 걸어 나왔다.

 

 “끄아아악!”

 

 “헉! 아..악귀!”

 

 형상의 입에선 비로소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모두의 고막을 찢을 듯 크고 날카로운 소리였다.

 모두의 뇌리에 악귀라는 단어가 다시 한 번 각인됐다.

 

 “궁수는 뭘 하는 게야? 어서 쏘지 않고!”

 

 웅크린 채 악쓰는 대장의 말에 그제야 활 든 병사들이 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불붙은 사람 형상의 몸에서 고슴도치 가시 같은 것들 툭툭툭 돋아나기 시작했다.

 

 “쏴라! 계속! 계속 쏴! 계속!”

 

 총대장이 악을 썼다.

 형상은 총대장을 향해 두어 발짝 앞까지 걸어오더니 털썩 무너졌다.

 그러곤 힘겹게 하늘을 향해 돌아누웠다.

 

 “요...”

 

 형상에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모습이 여전히 너무 두려웠던 대장이다.

 금방이라도 일어나 자신에게 달려들 것 같았다. 그는 급기야 이성마저 잃고 말았다.

 

 “기..기름! 기름을 더! 더 부어라! 저 악귀의 흔적도 남기지 마!”

 

 대장의 말에 여기저기 병사들이 앞 다퉈 기름통을 굴려댔다.

 

 “요...결국...이게... 다...그 계집... 때문...”

 

 형상은 일어서는 대신 아주 가느다란 사람 목소리를 남겼을 뿐이다.

 그리고 잠시 후 형상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화살을 더 쏴! 기름을 더! 더 끼얹으라니깐! 이놈들 뭣들 하는 게야?”

 

 그럼에도 공포에 중독된 적들은 하염없이 기름과 화살을 날려댔다.

 이윽고 그들이 점령한 성의 한가운덴 불의 호수가 만들어졌다.

 기름으로 채워진 호수는 다음 날 밤까지 타올랐다.

 

 그 다음 날 새벽.

 불길이 사그라졌을 때, 환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뼈라도 남았을 법 했지만, 뼈조차 남지 않았다.

 하늘아래 단 하나의 나라만 남기려했던 천손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북방과 남방서 몰려든 적은 그 모습이 너무도 끔찍해 그날 일을 악착같이 지우려 했다.

 

 *

 

 “이런 이유로 자네는 내 전생의 원수야. 소요진씨.”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 제국 그룹 후계자 조대환 총괄 사장이 말했다.

 

 3천 년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작가의 말
 

 망한 금수저에서 또 금수저로.

 잘 풀리는 게 특기인 조대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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