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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네메시스
작가 : 쥐며느리
작품등록일 : 2020.6.29

수많은 별들 사이에 펼쳐진 무한한 공허는 언제나 우리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우둔한 우리는 그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쁜 것이 전혀 아니었다. 어리석음은 오히려 인류에겐 축복이나 마찬가지였다. 신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 아니 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살았던, 태초의 존재들이 우주의 밑바닥에 깔린 혼돈을 유영하고 다니는 광경은 미개한 종족에겐 한편의 지옥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몰라야만 했다. 무지한 것이 더 안전한 셈이었다. 허나 인간들은 날이 갈수록 지식을 갈구했고, 호기심이란 이름으로 세상을 덮은 어두운 장막을 나날이 거둬내고 있다. 이로써 인류는 자멸의 길로 한발짝 더 다가섰다.

 
1. 선지자
작성일 : 20-07-31 22:35     조회 : 334     추천 : 0     분량 : 7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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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수많은 별들 사이에 펼쳐진 무한한 공허는 언제나 우리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우둔한 우리는 그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쁜 것이 전혀 아니었다. 어리석음은 오히려 인류에겐 축복이나 마찬가지였다. 신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 아니 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살았던, 태초의 존재들이 우주의 밑바닥에 깔린 혼돈을 유영하고 다니는 광경은 미개한 종족에겐 한 편의 지옥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몰라야만 했다. 무지한 것이 더 안전한 셈이었다. 하나 인간들은 날이 갈수록 지식을 갈구했고, 호기심이란 이름으로 세상을 덮은 어두운 장막을 나날이 거둬내고 있다. 이로써 인류는 자멸의 길로 한 발짝 더 다가섰다.’

 

 승철은 코웃음을 쳤다. 누가 이런 허무맹랑한 걸 논문으로 낸 건지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는 콧잔등 위로 흘러내린 안경을 치켜세우며 한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이봐, 노아야. 내가 천문학교수로서 살아온 날도 벌써 4000일이 넘어가는데, 이런 터무니없는 걸 쓴 건 자네가 처음일세. 글을 쓰고 싶었으면 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과에 지원하지 그랬나?”

 승철을 비아냥거리며 자신 앞에 서있는 여학생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노아는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어이,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종철은 노아에게 되물었으나, 그녀는 대답 없이 종철의 책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기분이 언짢아진 그는 의자를 홱 돌리며 나가라는 손짓만 해댔다.

 “박 교수님은 겸손한 분인가요?”

 노아의 질문이 날아왔다. 그 말을 들은 승철은 그녀를 노려보았다.

 “뭐?”

 “교수님은 자기 자신이 겸손하다고 생각하냐고요?”

 그녀는 책장에 놓인 두꺼운 책들과 수많은 학위를 보며 매만지며 그에게 묻고 있었다. 그러자 승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 나랑 장난하냐? 교수가 우스워? 어!”

 승철은 바락 소리를 질렀다. 집중하지 않는 태도와 이상한 질문에 모멸감을 느낀 그는 결국, 분개해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노아는 책장에 쌓인 먼지를 손가락으로 한번 쓱 훑을 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에 기가 찬 승철은 말문이 막혔는지, 연신 혀를 차기만 했다. 그제 서야 노아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교수님, 제가 왜 천문학을 공부하게 된 건지 아시나요?”

 승철에게 다가오던 노아는 가느다랗고, 뽀얀 손가락으로 그의 책상에 놓인 지구본을 한번 빙글 돌렸다.

 “저는 천문학이라는 게, 인류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잘 알려주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칼 세이건이란 저명한 천문학자가 이런 말을 했죠.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함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라고요. 전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해요. 땅을 밟고 사는 자들이 무한한 어둠으로 도배된 하늘을 마주할수록 고개 숙여지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천문학을 그런 면이 재밌어요,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 말이에요.”

 승철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린 녀석이 자신 앞에 서서 당돌하게 구는 태도도 맘에 들지 않았지만, 싸늘한 미소에서 나오는 냉소적인 말들은 그의 기분을 더욱 떨어뜨렸다. 승철은 그녀가 자신의 권위를 깎아내린다고 생각한 나머지, 다른 학생들에게 으레 그랬듯,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트집을 잡으려 했다.

 “야, 서노아. 정신 좀 차려라, 어! 얼굴만 반반하면 다 되는 줄 아니? 그에 맞는 교양을 갖춰야지! 그리고 이게 뭐냐, 이게! 이런 엉터리 같은 글을 누가 좋아할 것 같아? 아주 삼류 소설가 납셨어? 어! 또 칼 세이건이 왜 나오냐? 말을 인용하고 싶으면 그 뜻을 제대로 알고...”

 “그쪽이라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결국 당신도 허울뿐이네요. 그럼 안녕히.”

 노아는 그의 말을 끊은 채, 긴 생머리를 살랑이며 뒤돌았다. 본격적으로 말하기도 전에 대화가 끊겨버리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승철은 자신의 행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저... 저 싸가지 없는 년이! 내가 누군지 알아! 나 박승철이야, 이 학계에서 그 유명한 박승철! 나한테 빌빌 기어도 모자랄 판에 감히 기어올라! 너 같은 년, 어디도 발 못 붙이게 만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야!”

 그가 뭐라고 말하건 말건, 전혀 개의치 않던 노아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노발대발하는 박교수를 뒤로한 채 사무실을 나섰다.

 ***

 승철이 노아를 처음 만난 건 4년 전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는 남학생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야, 이번에 신입생 중에 개쩌는 애 한 명 들어오더라.”

 “진짜? 누군데? 이뻐?”

 “엄청나! 난 살면서 그런 여자애는 처음 봤다니까! 그리고 오늘 신입생 환영회에 온데!”

 “아 그래? 나 오늘 신입생 환영회 꼭 간다!”

 흥분한 남학생들의 얘기에 흥미가 생긴 승철은 그들에게 친한 척하며 끼어들었다.

 “오늘 신입생 환영회가 있다고? 그럼 내가 빠질 순 없지! 그렇지? 장소하고 시간 좀 말해봐라. 대충 맞춰서 갈 테니까.”

 두 학생은 떨떠름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승철에게 환영회 장소를 알려 주었다.

 “호색한 노인네, 나이에 안 맞게 주책은. 처자식도 있으면서 여자애들한테 껄떡 거리기나하고, 그러다가 문제 터져봐야 정신 차리지.”

 “냅둬라. 그 유명한 박승철이잖냐. 아무리 문제 일으켜도, 덮는 건 한순간이더라. 쯧!”

 남학생들은 자리를 떠나며 승철에 대한 뒷소리를 주절거렸다. 승철은 그 얘기를 들었음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위치에 만족감을 느끼며 흡족해하고 있었다.

 해가 저물자 신입생 환영회를 즐기러 온 젊은이들이 약속장소에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청춘들의 싱그러움과 혈기 넘치는 에너지 속에 홀로 어울리지 못하던 승철은 칙칙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학생들은 그런 그가 불편했지만, 늘 그렇듯 승철은 그런 눈초리 따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왁자지껄한 학생들 사이에 정숙한 채, 고고한 학자인 척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눈은 바쁘게 움직이며 낮에 들은 그 신입생을 찾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저 애인가? 아니야. 이쁘긴 해도 그 녀석들이 말한 만큼은 아니야. 그럼 두 번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애? 아니야 몸매는 뛰어난데, 얼굴은 너무 평범해. 그럼 내 앞에 있는 애? 아니야, 아니야!’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듯이 미인 찾기에 열중하던 승철은 결국 소문의 신입생을 찾지 못했는지, 주변에 있는 학생들에게 짜증을 내며 술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그렇게 승철이 못된 심보를 꺼낼 때 갑작스레 주위가 고요해졌다.

 

 “또각. 또각.”

 

 플랫 슈즈의 굽 소리가 들려왔다. 가게 안의 남녀노소 모두가 그 소리 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많이 늦었네요.”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가 사람들의 고막을 울렸다. 보랏빛이 감도는 검은 생머리와 붉은 기가 도는 하얀 피부, 날카로운 눈매와 복숭아 빛의 입술, 그리고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우아한 자태까지, 무엇하나 빠짐없이 비범했던 그녀는 들어온 순간부터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이 묘한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 남은 빈자리에 그녀가 착석하자 3학년 남학생들이 늑대처럼 몰려들었다.

 “얘, 이름이 뭐니?”

 “집은 어디야?”

 “남자 친구는 있어?”

 그들은 어떻게든 구애해 보겠다는 짐승들처럼 그녀에게 달라붙었지만, 돌아오는 건 그녀의 오묘한 무표정뿐이었다. 그 상황이 못마땅하던 승철은 남학생들을 밀치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축하하네, 우리 학과에 들어온 것을! 난 연문대학교 천문학과를 이끄는 총책임자, ‘박승철’ 교수라고 하네. 자네 이름은 무엇인고?”

 승철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자, 그녀는 날이 선 눈빛으로 승철을 아래, 위로 흘겨보더니, 이내 미소 띤 얼굴로 그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노아예요, ‘서노아’. 만나서 반가워요, 교수님.”

 젊은 여자의 보드라운 감촉에 승철은 자신도 모르게 음흉한 웃음이 나오게 됐다. 주위의 학생들은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승철을 바라봤으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승철은 그저 자신 앞의 욕망을 채우는 데 만족했다. 음흉과 혐오의 사념이 뒤섞인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침착한 표정을 짓는 건, 노아 단 한 명뿐이었다.

 ***

 “개 같은 년! 반반하게 생겨서 좀 오냐오냐해줬더니, 감히 날 무시해!”

 술에 잔뜩 취한 승철은 비틀거리며 욕이 섞인 혼잣말을 뱉어댔다. 그것만으론 분이 안 풀렸는지, 길거리에 버려진 기물들을 발로 차며 화풀이까지 했다. 그 소리에 놀란 고양이들은 어둠 속으로 숨어들기 바빴다. 개중엔 승철을 약 올리듯이 그의 다리를 툭 치고 지나가는 녀석들도 있었다.

 “이 더러운 괭이 새끼들까지 날 놀려!”

 울화통이 터진 승철은 난동을 부리며 고양이들을 잡으려 했으나, 그럴수록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고양이들은 그의 성질을 더욱 돋울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 사투를 벌이다, 제풀에 지쳐버린 승철은 전봇대에 몸을 기댔다. 술기운 때문일까? 나이에 맞지 않는 난동을 부려서일까? 단전에서부터 기어 올라오던 울렁거림이 결국 목젖까지 닿고야 말았다.

 

 “우웨엑!”

 

 역한 냄새가 목에 걸리자 승철은 속에 있는 모든 걸 게워냈다. 그렇게 정신 못 차리고 허우적거리던 그에게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교... 수님... 박승철... 교수님...”

 뒤통수에서 자신의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자, 승철은 흐릿한 초점을 겨우겨우 맞추며 후방을 살폈다.

 “누구야, 이 늦은 시간에? 왜 찾고 난리야!”

 신경질을 내며 뒤를 돌아본 그였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밤거리의 새까만 어둠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자기가 잘못 들었나 싶었던 승철은 발걸음을 옮기려 했으나, 다시금 들려온 소리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교수님...! 케헥! 박... 승철... 교수님! 도와... 주세요!”

 자신의 귀에 꽂히는 기괴한 목소리에 승철은 술기운이 달아나고 말았다. 기도가 물에 잠겨 곧 익사할 사람이 내지르는 비명처럼, 물기를 가득 머금은 목소리는 그를 점점 공포감에 빠트리고 있었다. 승철은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지만, 자꾸 뒤를 보고 싶다는 이상한 호기심이 자라났다. 그의 의지와 다르게 시선은 멋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천히 고개를 돌리던 승철은 기어코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전과 달리 공기가 음습하게 변해 있었다. 위협을 감지한 길고양이들은 담벼락 위로 피신했고, 바람조차 불지 않는 거리는 침묵하고 있었다. 그 거리에 홀로 남아있는 건, 전봇대 옆에 선 승철뿐이었다.

 

 “철퍽!”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조용한 거리에 울려 퍼지는 이 소리는 사람의 발걸음이 아니었다.

 

 “철퍽! 철퍽!”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승철은 뒷걸음질 쳤으나, 높은 담벼락이 그를 막아서고 있었다. 이제 승철이 의지할 거라곤, 전봇대에 위태롭게 매달린 작은 전등의 희미한 불빛뿐이었다. 승철은 전봇대에 몸을 딱 붙였다. 담벼락 위의 고양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그가 어떻게 될지 흥미롭게 관망하고 있었다. 이내 승철에게 다가온 정체불명의 존재는 전등불 아래까지 침범해 들어왔다. 회갈색의 눅진한 진흙이 콘크리트 바닥을 뒤덮었다. 그 진흙 덩어리 안에서 사람과 비슷해 보이는 것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교수님... 제발... 제 말 좀... 들어... 게헥!”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가 진흙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승철이 자신을 부르던 소름 끼치는 소리의 진원지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승철은 아무런 말도, 어떤 움직임도 취하지 못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그저 눈만 끔뻑이고 있을 뿐이었다.

 “교... 수님... 구에엑! 그 애가... 절 이렇게... 케엑!”

 괴물체는 입으로 보이는 구멍에서 찐득한 회갈색의 진흙을 토해냈다. 한 무더기로 쏟아진 진흙은 삽시간에 바닥을 메웠고, 길거리는 순식간에 늪지대처럼 변해버렸다. 보글거리며 버려진 기물들을 삼키기 시작한 회갈색의 뻘은 역한 곰팡내를 풍기며 승철이 있는 쪽으로 스멀스멀 기어가기 시작했다.

 “아... 아아... 자색이...”

 괴물은 두 팔을 들고 한 발짝 한 발짝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제 서야 정신이 든 승철은 급히 주변을 살피며 도주 경로를 찾았으나, 이미 사방이 질퍽한 뻘판이 되어 발 디딜 곳조차 보이지 않았다. 달아날 수 없었다. 길거리를 점령한 개흙은 그의 다리까지 차올랐고, 괴물은 이제 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승철은 다리를 움직이려 안간힘을 썼지만, 질척한 땅이 그를 더욱 세게 붙잡았다. 괴물의 몸통에서 기어 나온 진흙으로 된 팔은 녹빛의 진액을 흘리며 그를 향해 뻗어 나가고 있었다. 담벼락 위 고양이들은 승철의 발버둥이 재밌기라도 한지, 그릉거리며 방관하고만 있었다.

 “살려주세요! 누구 없어요!”

 승철은 다급하게 소리 질렀으나, 공허한 메아리만이 다시 그에게 돌아왔다. 그렇게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던 승철의 바로 등 뒤로 습한 공기가 엄습에 왔다. 그의 숨이 가팔라졌다. 손은 떨려오고, 다리는 굳어버렸다. 불길한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친 것이다. 습한 공기 때문이었을까? 이내 목덜미가 축축해진 승철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역겨운 진흙을 떨구는 거대한 회갈색의 덩어리가 서서히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흙 속에 파묻힌 걸 보게 된 두 눈으로 마주하게 된 승철은 숨이 멎는 듯했다. 그 안에 있던 건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의 거대한 남자의 반쯤 녹아내린 얼굴이 있었다. 승철은 그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얼굴 주인의 이름을 불렀다.

 “형... 윤이?”

 그 순간이었다.

 “아아악! 온다! 자색의 왕이!”

 ***

 “으아아악!”

 승철은 팔을 앞으로 내저으며 몸부림쳤다. 그러자 무언가 그의 이마를 내려쳤다.

 

 “찰싹!”

 

 찰진 타격음과 함께 두개골을 울리는 충격에 깜짝 놀란 승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인간아, 잠이나 잘 것이지 왜 생쇼를 하고 난리야! 으휴! 아주 그냥 술 좀 곱게 처먹을 것이지! 시끄러워 죽겠네!”

 중년의 여성이 손바닥을 들고서 그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아직 비몽사몽 했던 그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주변을 살폈다. 아무렇게 어질러진 옷가지와 서류들, 고급스러운 소파와 가슴까지 올라온 두꺼운 이불, 그리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파란 새벽녘, 아무리 둘러봐도 이곳은 그의 집이었다. 그제 서야 악몽을 꾸던 자신을 아내가 깨웠다는 걸, 알게 된 승철은 다시 소파에 드러누웠다.

 “어휴, 자식이란 것은 노는데 정신 팔리지 않나, 남편은 술 처먹고 이 난리를 피우질 않나, 애새끼 건, 이 인간이 건 도움 되는 사람이 없네.”

 그의 아내, 미라는 승철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핀잔을 한바탕 늘어놓으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승철은 아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악몽을 꾼 탓에 몸이 뻐근했던 그는 다시 잠을 청하려 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의 잠을 깨우는 문자 한 통이 왔다. 승철은 짜증을 부리며 핸드폰을 열었다. 이름 없이 숫자만 화면에 덜렁 쓰인 것이 아무래도 그가 모르는 번호가 틀림없었다. 승철은 자신에게 온 메시지를 무시한 채 눈을 감았다. 이번엔 핸드폰이 벨소리를 울리며 전화를 받으라 재촉하기 시작했다. 한두 번은 무시했으나, 그래도 끈질기게 울려대는 핸드폰에 신경이 쓰이던 그는 결국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아니 누구야! 어떤 미친놈이 이 시간에...”

 “박승철 교수님이십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흘러나온 점잖은 남자의 목소리가 승철의 말을 자르며 얘기를 주도했다.

 “그래! 내가 박승철이다, 왜!”

 여전히 신경질이 난 승철은 남자에게 쏘아붙였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워낙 긴급한 일이라 부득이하게 지금 연락을 드렸습니다. 국방부에서 교수님의 자문이 필요하답니다. 지금 당장요. 집 앞에 차를 대기시켜 놨으니, 되도록 빨리 내려와 주십시오. 나머진 극비사항이니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죠.”

 “뭐... 뭐요?”

 승철이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정적뿐이었다. ‘긴급한 일’, ‘국방부’ 두 단어를 듣자마자 그는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어떤 일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승철은 일단 바닥에 널브러진 양복을 주워 들어 나갈 채비를 하려 했다. 그런데 그의 옷소매에서 거칠거칠한 감촉이 느껴졌다. 의아했던 승철이 그 부분을 확인한 순간.

 “헉!”

 그는 기겁하며 옷에서 손을 떼었다. 바닥에 떨어진 양복은 보란 듯이 옷소매를 가슴 쪽에 얹혔다. 승철은 머릿속으로 아니라 되뇌었지만, 그의 옷에 있는 흔적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의 옷소매에 묻어있던 건, 손바닥 모양으로 찍힌 채 말라붙어 있는 흙이었다.

 

 

 
작가의 말
 

 부족한 글을 봐주신 분들에게 언제나 감사합니다. 꾸준히 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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