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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폭군과의 산책
작가 : 호랑이손
작품등록일 : 2020.7.31

재계 1위 제국그룹 신입사원 소요진.
연수중이던 그녀에게 그룹의 유일한 황태자 조대환 총괄사장이 찾아온다.
"자넨 내 전생의 원수야. 소요진씨."
대환의 입에서 나온 뜻 밖의 한 마디.

그러나 그건 모두 사실이었다.

 
폭군과의 산책 01
작성일 : 20-07-31 20:38     조회 : 336     추천 : 0     분량 : 7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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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군과의 산책.

 Written by 호랑이 손

 ----

 <신 쥬신 대장군 파소 폐하께 아룁니다.

 

 선물로 보내주신 여인 ‘요’는 잘 받았습니다.

 이번 여인도 역시 전장서 보기 드문 미색이라 소신 이하 나머지 장병들도 크게 놀랐습니다.

 잘 보살피도록 하겠습니다.

 

 북벌이래 작은 전투, 큰 전투 계속이어졌으나, 다행히 폐하의 은덕에 힘입어 한 번도 패하는 일 없이 이곳 고원까지 당도하였습니다.

 이곳을 넘으면 곧 해가 지는 땅이라 하니, 서둘러 북벌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전투에서 나온 사상자보다, 풍토병이 걱정입니다.

 작은 부상에도 쉽게 곪고 썩는 자가 다수라 군의들의 노고가 심합니다.

 군의를 모아 위무하고자 하니, 여인 말고 적당한 위문품을 하사하시면 성은에 감복할 것입니다.

 늘 폐하의 강녕을 빌겠사옵니다.

 

 단기 1021년 5월 17일.

 쥬신 대장군 천손 을미파소 배상>

 

 *

 

 3천 년 전.

 민족의 발원지 백두산 신시.

 

 “듣거라. 하늘을 밝히는 태양이 하나이듯, 땅을 다스리는 임금도 하나다. 당연하다! 난 이제부터 이 당연한 일을 하겠다. 거역하는 자, 죽여라. 하늘의 뜻이다.”

 

 하늘에 제를 마친 환이 대장군 을미파소에게 사령을 상징하는 칼을 건네며, 그와 그의 대군에게 전한 칙령이었다.

 

 “천손 을미파소, 천제의 명 받들겠사옵니다.”

 

 그가 꿇자,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당시로선 들어 본적 없는 무려 10만에 이르는 군사들이 무릎 꿇는 소리였다.

 

 “출정하라.”

 

 환이 말했다.

 비껴 찬 왕실 보검, 눈부시게 새하얀 용포, 봉황의 깃과 신단수 잎사귀로 장식한 그의 관이 바람에 흔들렸다.

 

 *

 

 단야성.

 

 대쥬신(大主神) 제국 수도이자 천혜의 요새로서 왕검에서 천제로 등극한 환이 다스리는 곳이다.

 환은 왕검이란 직위를 버리고, 스스로 천제라 칭하며 제국의 길을 열기로 하였다.

 그러나 같은 천손이며 대대로 환의 가문에 종사한 노신 풍백은 단연코 반대하였다.

 

 “단군 대왕검께서 신단수 아래 엎드려 하늘에 고하고, 나라를 여신 뜻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란 하란 뜻이지, 결코 인간을 왕검의 발아래 꿇어앉히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명을 거두어 주시오!”

 

 노신의 목소린 나이와 다르게 기백이 쨍쨍했다.

 환은 코웃음 쳤다.

 

 “그런 숭고한 사명은 이미 선대 왕검들께서 천년도 넘게 해왔소.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지옥. 이는 불량한 씨앗이 가진 잡초 같은 기질과 오만함 때문이오. 선량한 짐의 백성을 위해 그들을 뿌리 뽑는 건 당연한 일. 이를 문제 삼지 마오. 풍백.”

 

 “천 년 전 환인 대왕검, 단군 대왕검과 함께 나라를 연 3사의 뜻을 누르지 마시오. 왕검!”

 

 “하하! 천년이나 사셨소? 그렇다면 풍백께선 앞으로 입궐 하지 마시오. 그런 노령으론 힘드실 겝니다. 국사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무리 왕검이라도, 3사와 협의 없이, 이러실 순 없습니다! 제국이라뇨? 명을 거두어 주시오! 왕검!”

 

 반사되어 돌아오는 격분에 환이 참다못해 자릴 일어섰다.

 

 “왕검이 아니라니깐! 거기 무사는 무얼 하는가? 어서 와 노신을 뫼시거라.”

 

 환의 명에 친위 무사들이 우악스레 풍백을 감쌌다.

 

 “왕검! 통촉하시오! 왕검!”

 

 이후에도 통촉하시오! 왕검! 라는 외침이 회랑을 울렸으나, 환은 기울이지 않았다.

 

 “노신은 아직도 모르오? 3사와 협의 따윌 거치지 않으려고, 내가 이 자리에 올랐소이다. 게다가 천년동안 이룬 게 고작 이 따위 세상이라니, 너무 한심하지 않소?”

 

 환은 끌려 나가는 노신을 보며 비웃었을 뿐이다.

 

 *

 

 천제 환의 등극 이래 10년이 흘렀다.

 환의 대군은 한 번도 패한 적 없이 뻗어나갔고, 제국이란 이름에 걸맞게 드넓은 국토를 소유했다.

 그리 된 큰 이유는 그가 직접 하늘의 칼 ‘천검’을 내린 불사의 장수 ‘을미파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을미파소.

 

 천손 후예인 이 홍염의 장군은 온화한 성품을 지녔으면서도, 전장에 나가기만 하면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싸움터와 점령지에서 그는 불알 달린 자들은 나이를 막론하고 모조리 죽여 없앴다.

 제국의 신영토에 불량한 씨앗은 말려 없애고, 새로운 씨앗을 파종하란 환의 명에 따른 것이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약탈과 겁탈은 당연했다.

 어쨌든 북방 부족은 을미파소가 온다는 소리만 들어도 내빼기 바빴다.

 

 한편 환은 그가 가져오는 승전보에 축배를 들며 궁녀 중 예쁜 애 하나를 골라 던져주곤 했다.

 

 “얘야. 짐에겐 을미파소 같은 장수가 많이 필요하단다. 가서 네가 만들어 오너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문은 3사에 버금가는 공신이 될 터이니.”

 

 3사라니.

 태고적부터 권신 풍백, 우사, 운사는 1인 지하 만인지상의 신분으로 그 피는 환의 것과 같은 천손이다.

 수 천 년 다스림 받는데 익숙한 평민들로선 하늘의 별 같은 신분상승인 셈이었다.

 

 “소녀, 제의 명 성심껏 받들겠나이다.”

 

 천손이자, 제국의 으뜸 환의 환송에 여인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을미파소가 있는 전장으로 떠났다.

 그러곤 얼마 후, 대장군 파소로부터 잘 받았노란 편지가 도착했다.

 잘 보살피겠노란 추신도 덧붙었다.

 

 “짐을 위해 많이 낳게나. 그게 충신이야.”

 

 환이 답장했다.

 

 *

 

 그러나 정복 전쟁 10년이 지나도록 을미파소에겐 후사 소식이 없었다.

 환은 사연이 궁금해 몰래 염탐꾼을 보냈다. 실상은 금방 전해졌다.

 

 “천제시여! 을미파소 장군을 당장 파직 하소서! 장군은 제께서 보낸 여인들을 합방도 않은 채, 모조리 군의로 만들었고, 그 일의 고단함에 더러 자결한 이도 있다 하옵니다. 이는 후사를 생산하라는 제의 칙령을 어긴 처사이니, 합당한 벌을 내리심이 가한줄 아옵니다.”

 

 염탐꾼의 보고를 함께 받던 신하 하나가 목소릴 높여댔다.

 

 “그런가요? 어쩌면 을미파소 장군은 여자보다 남자가 좋은 모양이구려.”

 

 환은 그저 껄껄 웃어 넘겼다.

 그러면서도 돌아오면 따끔하게 한 마디 해줘야겠노라 다짐했다.

 지금의 쥬신에서 천손의 씨앗, 그것도 사내아이라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재산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을미파소가 죽었단 소식이 들려왔다.

 암살이었다.

 북방을 정리하고, 대군을 모아 황하 넘어 중원을 치려던 찰나였다.

 

 *

 

 자객은 다름 아닌 환이 보낸 궁녀였다.

 환으로선 이름도 기억 못하는 ‘요’라는 궁녀가 몰래 을미파소의 잔에 독을 타고, 쓰러진 틈을 노려 목에 칼을 꼽고는 도망친 것이다.

 궁에 있었다면 한 낱 노리개로나 쓰였을 여인의 손에 제국의 큰 별이 진 셈이었다.

 

 “요? 요라는 아이가 누구냐? 대체 왜?”

 

 환이 덜덜 떨며 물었다.

 

 자세한 사연을 들으니, 요는 전장에 보내진 3년 동안, 을미파소와의 하룻밤은커녕 아침부터 밤까지 환자의 터진 살을 꿰매고, 고름을 짜고, 똥오줌 닦아내는 일만 매달렸다 한다.

 당연히 신물 났을 터였다.

 어느 날 그녀는 순찰 중이던 을미파소에게 이럴 거면 차라리 다시 궁으로 보내달라 청했다한다.

 

 “너는 천제께서 하사하신 나의 가복이니, 내 있는 곳이 곧 네 집이요, 무덤이다. 다신 다른 소리 말라”

 

 대장군 을미파소는 여인의 청을 보기 좋게 묵살했다.

 실망한 요가 동료들이 있는 군막에 돌아와 속을 털어 놓았다.

 그러자 함께 있던 동료 하나가 요를 꾀었다.

 

 <함께 적진으로 달아나자. 그러나 그냥 가면 여인의 몸인지라, 적장의 노리개로 쓰일 터. 그러지 않기 위해 선물이 필요하니, 다시 장군을 만나거든 독이 든 술을 마시게 만들라> 한 것이다.

 

 요는 그 말을 충실히 따랐다.

 

 다음 날이었다.

 

 “장군, 천제께서 소녀에게 내리신 명은 장군의 잠자리를 뫼시고, 그 씨앗을 잉태하라는 거였소. 한 번이라도 좋으니 장군의 장막에서 나를 따로 봐주오.”

 

 이전 일로 다소 미안했던 을미파소는 그녀와의 동석을 허락했다 변을 당하고 만다.

 

 *

 

 “내 어찌 이런 일을 헤아리지 못 했을꼬!”

 

 환이 크게 한탄했다.

 그러곤 곧 무엇인가 생각이 미쳤는지 목청을 돋우었다.

 

 “당장 풍백을 불러오라! 그리고 을미파소 장군의 시신과 그에게 내렸던 천검도 함께 가져오라! 내 직접 초혼제를 열어 그를 되살릴 진저!”

 

 초혼제라는 말에 신하들이 깜짝 놀랐다.

 단군 대왕검이래 존재만 알았을 뿐 한 번도 행하지 않은 부활의식이었기 때문이다.

 

 “천제시여...그건, 금기의..”

 

 “닥치거라! 이후 짐의 결정에 토 다는 자, 그 자리서 참할 것이야!”

 

 환의 결기에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초혼제.

 즉, 혼령을 불러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의식이다.

 이를 위해 태고 적부터 왕검을 상징해 온 하늘의 칼 ‘천검’, 방울 ‘천령’, 거울 ‘천경’. 3신기가 필요했다.

 3신기는 대대로 풍백, 우사, 운사 집안이 하나씩 보관하여 왔다.

 그러나 노신 우사와 운사가 죽은 뒤, 우사가 지녔던 칼은 을미파소에게, 운사의 방울은 환 자신이, 마지막 거울은 노신 풍백이 지니게 되었다.

 세상에 남은 천손이 그 만큼 밖에 없는 탓이었다.

 

 “저기..천제시여...”

 

 “또 무엇이 걸리는 게야!”

 

 우물거리던 신하에게 환이 벌컥 소리쳤다.

 신하는 덜덜 떨며 나머지 말을 입에 담았다.

 

 “제께서 내리신 검은...요가 가지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보고였다. 환의 눈이 쏟아질 듯 벌어졌다.

 아끼고 아끼던 장수로 모자라, 그에게 내렸던 제국의 보물마저 도난당하다니.

 요망한 계집 하나 때문에.

 제국의 기둥이 뿌리 채 뽑혀나간 느낌이 들었다.

 

 “그런가? 나는... 을미파소, 그를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야만 하는가?”

 

 환은 자기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그 순간, 묵직한 그림자 하나가 그의 머리를 감쌌다.

 

 “노신, 소식 듣고 달려왔소이다.”

 

 풍백이었다.

 하늘님으로터 서자 환인 대왕검을 모시란 명을 받고, 지상에 내려온 후 천 년.

 노인은 하얗게 샌 머리칼과 수염을 흔들며, 젊은 주군을 쏘아보고 있었다.

 

 “아..풍백. 벌써 들으셨소?”

 

 “천경을 통해 연락이 왔소. 왕검께선 이제 승천할 준비를 하오.”

 

 “뭐?”

 

 풍백의 말에 환이 놀라 거듭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오?”

 

 “천년 전, 천손이셨던 환인, 그 적자이신 단군 대왕검께서 이 땅에 쥬신(主神)의 나라를 여신 후, 이제 우리 천손의 역할은 끝났소이다.”

 

 “그게 무슨 말인가? 천손이 끝이라니!”

 

 환이 벌컥 격정을 쏟아 물었다.

 

 “아직도 눈치 채지 못하셨소? 이제 하늘은 우리 천손에게 더 이상 후사를 내지 않소. 때문에 우사와 운사를 후사 없이 먼저 거두시고, 나와 을미파소 장군, 거기에 왕검에게도 아직 후사가 없는 것이오!”

 

 “후사가 없다니? 내게 분명 아들이 있어요!”

 

 “그것이 진정 왕검의 씨라 생각하오? 왕검?”

 

 “뭐야? 이런 발칙한!”

 

 환이 칼을 뽑아 들었다. 그의 손이 분노에 휩싸여 덜덜 떨렸다.

 그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들에 대한 것이다.

 이제 열 살.

 환의 나이 스물 둘. 당시로선 늦은 나이에 얻은 아이였다.

 황후는 아이를 낳은 후 치료할 수 없는 열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환은 어미 없이 크는 게 불쌍하여, 정성껏 돌봐왔으나, 한 번도 자길 닮았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죽은 황후를 닮았겠거니 생각해왔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감기라던가 홍역 등 잔병치레를 해대는 걸보며 탐탁지 않다는 생각을 해왔다.

 

 ‘쯧쯧, 천손이 저리 약해서야.’

 

 어서 다른 후궁 배를 빌어 새로운 세손을 만들어야 겠노라 결심했었다.

 그러나 그가 거느린 수많은 후궁 중 누구 하나 도무지 천손을 생산해내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노신 풍백의 입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고 있던 추잡한 진실이 까발려 지니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더 이상 그 얘긴 꺼내지 마오. 풍백. 난 그런 쓸데없는 소리 들으려 부른 게 아니오.”

 

 환이 가까스로 겨눈 칼을 다잡으며 말했다.

 

 “그 보다 그대의 거울로 검이 어디 있는지 알아봐주시오.”

 

 “검은 이미 세상 끝으로 향했소.”

 

 “그곳이 어디란 말이오?”

 

 “왕검이 결코 살아서 다다를 수 없는 곳.”

 

 “뭐야?”

 

 한 마디 한 마디가 거슬렸다. 그러한 환을 놀리듯 풍백이 빈정거렸다.

 

 “왕검께서 하려는 초혼제는 태고적부터 금지된 일! 죽은 자를 되살리다니, 이런 파행을 하늘이 허할 리 없소. 나또한 마찬가지고.”

 

 “허어! 고집불통이로다. 내 그 늙은 목이라도 썰어야 말을 듣겠는가?”

 

 환이 또 다시 보검을 치켜들었다.

 당장이라도 내리칠 기세였다.

 그 순간.

 

 “천제시여! 전선으로부터 급보요!”

 

 숨이 턱밑까지 찬 전령 하나가 어전으로 뛰어들어 왔다.

 수천리 쉬지 않고 달린 듯 그의 얼굴은 흙먼지로 꽤죄죄 했다.

 

 “천제의 하명을 기다리던 대군이 적의 기습에 걸려, 대장 율치오타, 부장 소익선 등이 목숨을 잃고 나머지 군사를 모은 부장 요추안타가 800리 뒤 요령산까지 후퇴하였습니다!”

 

 “뭐야?”

 

 “그러나 이 또한 적의 기마대에 포위 되어 형세가 위급하옵니다. 속히 원군을 보내주시길 청하옵니다.”

 

 전령의 보고에 환의 가슴이 더욱 무거워졌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풍백을 바라보았다.

 

 “노신, 거울을 가져오시오. 당장! 내 직접 전황을 봐야겠소이다!”

 

 “끝났다니깐. 다!”

 

 “국난에 고집을 부리는 건, 반역이오! 정녕 내 칼에 그 목을 잘릴 셈이오?”

 

 “목? 그래 여기 있다. 이놈아!”

 

 풍백이 손을 내밀어 칼끝을 잡아 당겼다.

 

 “뭐하는 게야!”

 

 환이 반사적으로 칼 잡은 손을 치웠으나, 노신의 악력은 상상이상으로 강했다.

 바위를 찢어 맷돌을 만들던 손이다.

 날카로운 보검의 끝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목 대신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틈사이로 붉은 물이 흘러내렸다.

 

 “크으...왕검...이놈...”

 

 풍백은 고통인지 조롱인지 모를 표정을 담은 채 숨져갔다.

 

 “이, 이게 뭐하는 짓인가? 풍백! 그 손 놓지 못해?”

 

 환이 아무리 당기려 애를 써도 칼끝은 노인의 가슴팍을 슬금슬금 파먹어 들어갔다.

 

 “쿨럭! 불쌍한 놈. 끝까지 순수 천손인줄 아는 모자란 놈....”

 

 풍백의 목소리엔 뜻밖에도 연민이 담겨 있었다.

 

 “뭐라?”

 

 “그대는 쥬신의 종막을 예지하신 선대 왕검께서, 인간과 야합해 만든 자. 그런 것을 왕검으로 세워줬더니, 고작 한 다는 짓이 제국?...쿨럭!”

 

 한 움큼의 핏물이 튀어나왔다.

 환 역시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다.

 당장 베고 싶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그가 가진 거울이 있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기에.

 

 “헛소리 말고, 거울이나 내놔라! 이 놈!”

 

 “거울? 흥! 거울은 네놈이 죽어서도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이미 가져다 놨다.”

 

 “뭐?”

 

 “가련하구나. 그 나마 왕검의 권위를 지켜줄 3신기 중 칼은 살아서 다다를 수 없는 곳에, 거울은 죽어도 다다를 수 없는 곳에...쿨럭! 네 놈의 꿈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게야...”

 

 “이...익! 미친 늙은이... 죽엇!”

 

 지금껏 잡아 빼려던 환의 손이 방향을 바꿔 앞으로 밀어졌다.

 칼끝이 풍백의 등짝을 뚫고 피 묻은 송곳니를 드러냈다.

 

 “크..허억...”

 

 “죽어라. 이 놈..이 배은망덕한 놈.”

 

 환이 이를 깨물었다.

 산 같은 풍채의 노구가 칼날에 꿰인 채 무릎을 꿇었다.

 

 “처...천제시여....!”

 

 주변의 신하들이 하얗게 질렸다.

 신하 중의 신하, 무려 천 년도 넘는 세월 왕검의 곁을 지켜왔던 3사의 마지막 원로 풍백이 주군의 칼에 찔려 숨을 거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노신은 무슨! 이 반역자 놈!”

 

 그 사이, 환이 칼을 빼내 핏물을 바닥에 흩뿌렸다.

 바닥에 빨간 안개꽃이 날카롭게 피었고, 거구의 노신이 대지에 털썩! 진동만 남긴 채 숨을 다했다.

 ‘후우’ 하는 마지막 숨과 함께 그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갔다.

 

 “너흰 가서 풍백의 집을 샅샅이 뒤져라. 반드시 거울을 가져와야 하느니라. 만일 못찾겠거든 풍백의 가솔 모두를 죽여서라도 찾아내라. 알겠느냐?”

 

 “예, 폐하.”

 

 명받은 근위대 장수 하나가 깊이 숙이곤 사라졌다.

 어전엔 진한 핏내음과 불길한 기운이 진하게 배여 있었다.

 

 “풍백, 이놈! 죽음이 끝이라 생각하나? 내겐 방울이 있어.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낼 수 있는 방울이...”

 

 환이 내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작가의 말
 

 힘들고 우울할 땐 화끈한 폭군이 답이죠.

 

 폭군과의 산책,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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