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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입을 다문 아이들
작가 : 흰다람쥐
작품등록일 : 2020.7.31

경찰대를 졸업한 서희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각오로 강력계에 지원했다. 부모님은 형사가 되려는 그녀를 만류했지만, 그녀는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서희는 강력계로 전입을 오자마자 터진 살인사건을 맡게 되지만, 피해자는 얼굴이 난도질당한 채 죽어있고 동거녀의 속옷은 몽땅 사라져있다. 한편 피해자와 함께 살던 쌍둥이들은 현장에서 누군가를 보았다고 증언하는데…

 
1. 당연한 권리
작성일 : 20-07-31 16:17     조회 : 246     추천 : 0     분량 : 7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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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연한 권리

 

 

  서희가 제일 늦게 도착했다. 그녀는 삼촌에게서 물려받은 13년 된 은색 소나타를 몰고서 보고 받은 주소지를 향해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사람들이 두꺼운 패딩을 몸에 걸치고 있는 게 보였다. 금요일 저녁 6시 29분이었고, 따라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몇 번이나 교통체증을 겪었는지 차마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길은 또 어찌나 복잡한지 네비게이션의 안내만 믿고 움직였다가 엉뚱한 장소에 도착해 핸들을 되돌린 것만 두 번이었다. 세 번의 도전 끝에 간신히 도착한 장소였고 서희는 이번만큼은 틀리지 않았기를 바라며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다행히도 경찰제복을 입고 있는 순경 한 명이 그녀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서희는 거리 한쪽에 차를 세운 뒤 재킷을 대충 동여매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날선 추위에 벌써부터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백오십팔 센티미터를 겨우 넘기는 신장에 단발머리를 한 그녀는 차 열쇠를 외투 겉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자신에게 달려오는 순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어느덧 그녀 곁으로 다가온 순경이 난감하다는 듯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저기요, 여기에 차를 세워두시면 안 됩니다.”

  서희는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순경에게 내밀었다.

  날이 어둑해져서 그런지 순경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신분증에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 그녀의 신원을 확인한 그는 황급히 그녀를 향해 경례자세를 취해보였다. 그녀가 인사를 받자, 순경은 팔을 내리며 곤란하다는 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죄송하지만 경위님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골목이 좁다고 자꾸만 민원이 들어와서요. 경감님도 그래서 방금 옮기셨습니다.”

  염병하네. 서희는 민원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튀어나오려던 속마음을 겨우 억눌렀다.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도 그깟 불편함 하나 감수하지 못하고 그새 민원을 제기한 인간이 누구인지 그녀로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어디로 가셨는데.”

  그녀는 한숨을 짧게 내쉰 뒤 순경을 향해 물었다.

  “저쪽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순경이 골목 모퉁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가 지목한 모퉁이를 돌아보자, 때마침 정현석 경감이 코트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내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경감은 백칠십칠 센티미터의 키에 쩍 벌어진 어깨, 어디 하나 도드라진 부위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균형이 잡혀있는 몸매의 소유자였다. 이목구비는 뚜렷하지만 그렇다고 잘 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쩐지 우울해 보였다. 지치고, 조금은 화가 나 있는 것도 같았다.

  정현석 경감은 그녀의 직속상관으로 강력 2반의 팀장이었다. 원래는 오래 전에 과장이 되어야했지만 자신은 현장 일이 더 좋다며 끝끝내 팀에 잔류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보다 한참이나 후배인 박주영 경정이 얼마 전 형사과장으로 승진해 그의 직속상관이 되어버린 웃지 못 할 촌극이 벌어졌다. 하지만 현석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서희는 호주머니를 뒤적여 차 열쇠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순경을 돌아보며 물었다.

  “운전할 줄 알아?”

  “예?”

  “면허 있냐고.”

  “아...예, 그렇긴 한데.”

  “됐네, 그럼.”

  서희는 무작정 열쇠를 던지며 말했다.

  “부탁 좀 할게.”

 

  현장은 평범했다. 부엌 겸 거실 하나에 방 두 개가 딸린 구조로 네 식구가 모여살기에 안성맞춤인 집이었다. 소파 하나가 거실 벽면에 붙어있었고 맞은편에는 텔레비전이 놓여있었다. 작은 베란다에는 세탁기 하나가 보였다. 부엌은 깨진 접시조각들이 바닥을 뒹굴었고, 식탁 위에는 엎어진 소주병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모서리에 걸쳐있었다.

  서희는 거실을 가로질러 가장 먼저 보이는 욕실로 다가갔다. 안쪽을 힐긋 들여다보니 세면대 앞에서 감식반 대원 한 명이 무언가를 채취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래된 집이라서 그런지 화장실 벽면에는 누런색의 묵은 떼가 가득했다. 세면대 거울의 맞은편 벽에 걸린 간이수납장에는 대여섯 장의 수건이 들어있었다. 바닥에는 마른 수건 하나가 떨어져있었고, 수건걸이에도 마찬가지로 수건 한 장이 걸려있었다. 서희는 눈길을 돌려 이번에는 욕실을 마주보고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감식반 대원 두 명이 사진을 찍어가며 증거품들을 수집하고 있는 게 보였고, 그들 뒤로 자그마한 협탁 하나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져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놓여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수면등은 바닥에 떨어져 깨진 상태였다.

  고개를 돌려 반대쪽 벽면을 들여다보았다. 장롱 옆에 놓인 6단짜리 수납장 중에서 맨 위의 세 칸이 모두 열려있었다. 그 옆으로 활짝 열린 미닫이창이 눈에 띄었다. 성인 남자 한 명이 거뜬히 지나다닐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창문이었다. 그때 맞은편 집의 창문에 커튼이 휙 쳐지는 것이 그녀의 눈에 보였다. 그 순간 실루엣이 언뜻 비치긴 했지만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제 서희는 방을 벗어나 거실을 기준으로 반대쪽에 위치한 또 다른 방으로 향했다. 분홍색 매트리스가 깔린 이층침대가 제일 먼저 그녀의 눈에 띄었다.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쿠션과 인형들이 이층침대 위아래로 널브러져 있는 걸로 보아 아마도 신고를 했다던 아이들의 방인 것 같았다. 피해자는 바로 그 이층침대 옆에 쓰러져있었다. 한쪽 뺨을 방바닥에 붙인 채 모로 쓰러진 그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친 것 같았다. 한 손은 피가 가득했고, 다른 손은 마치 죽음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허우적댄 듯 손아귀가 경직된 채 허공을 향해 뻗어있었다. 근처에는 어린아이의 발 크기 정도로 보이는 붉은색 족적이 여러 군데에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 그녀는 황급히 시선을 허공으로 던졌다. 잠시잠깐 본 것뿐이지만 욕지기가 올라오는 듯했다. 시신의 곳곳에 난도질을 당한 흔적 때문이었다. 특히나 얼굴이 가장 심했다. 잠든 사람의 얼굴에 매직으로 낙서를 칠하듯 시신의 얼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선들이 그어져있었다. 다만 영원히 지울 수 없다는 점에서 다를 뿐.

  서희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남자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서희는 문득 궁금했다. 죽음의 순간 남자의 눈동자에 비친 악인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지, 삶이라는 당연한 권리를 빼앗은 괴물의 얼굴은 얼마만큼 섬뜩했을지 그녀는 알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이유가 있어야만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인지 그녀는 그 심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현장을 모조리 훑어본 서희는 이윽고 밖으로 나갔다. 골목 맞은편에 정현석 경감과 그 옆에 서 있는 덩치 큰 누군가가 보였다. 김성태 경사였다. 정현석 경감 밑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하고 있는 형사로, 백팔십이 조금 넘는 신장에 우직하고 투박한 인상의 남자였다. 김 경사는 현석에게 이제까지 알아낸 정보들을 간략하게 브리핑하려고 수첩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서희의 귓가에 들려왔다.

  “피해자의 이름은 박승현, 나이는 마흔넷. 성별은 남자이고, 전과기록은 따로 없습니다. 접촉사고를 일으켜 입건된 기록은 두 건이 있는데, 두 건 모두 합의가 됐고요. 사인은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감식반 애들 말로는 날카로운 무언가가 복부를 관통하면서 일어난 과다출혈이지 않을까 싶답니다. 뭐, 정확한 건 부검을 해봐야 알겠지만요.”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오래된 바둑알처럼 짙으면서도 동시에 탁했다. 그 눈동자가 현장에서 막 빠져나온 서희를 응시하고 있었다.

  서희는 그 눈빛이 현장에 제일 늦게 도착한 자신을 나무라는 것이라고 내심 짐작했다. 그녀는 경찰대를 졸업한지 올해로 3년째에 접어들었지만 강력 2팀에 합류한지는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다. 계급은 비록 경감 바로 아래인 경위에 해당했지만 경력으로는 보잘 것 없는 신출내기에 불과했다. 반면에 현석은 강력계에서만 무려 25년을 넘게 일한 잔뼈 굵은 베테랑 형사 중 한 명이었다. 그녀보다 한 계급 아래인 김 경사만 하더라도 올해로 18년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서희는 쓴소리를 들을 것을 각오하며 엉거주춤 현석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나 현석은 그녀를 바라보며 전혀 뜻밖의 주제를 꺼내들었다.

  “이 사건은 당분간 너희 둘이서만 맡게 될 거야. 위에 얘기해서 인력충원이 더 가능한지는 물어보겠지만, 알다시피 우리 팀도 그렇고 다른 팀도 그렇고 사람이 부족한 건 매한가지라서 어떻게 될 지는 나도 장담 못해. 총괄지휘는 내가 맡겠지만, 사실상 현장지휘는 네 몫이라는 뜻이야.”

  김 경사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서희는 아니었다. 그녀는 아직 강력 2팀에 적응도 하지 못한 상태였고, 무엇보다 살인사건은 처음 맡아보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살인사건 같은 큰 사건을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어찌할 도리도 없어 보였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 옆을 돌아보니 어떻게 냄새를 맡고 왔는지 어느새 노란색 끈으로 경계선을 이룬 폴리스라인 주변으로 카메라맨을 대동한 기자들이 여럿 몰려 있었다. 주민들 중 누군가가 언론사에 제보를 했다든가 아니면 경찰 내부에 정보원이 있다는가 둘 중 하나일 터였다. 기자들이 몰려있는 것을 확인한 현석의 표정이 짜증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어떤 것이든 진행 중인 사건이 언론에 노출되어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신속하게 해결될 수만 있다면야 아무렴 상관없겠지만, 사건해결이 조금만 더뎌지면 질타를 받기 십상이었다. 경찰이 무능하다느니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면서 경찰조직에 대한 신뢰를 있는 대로 깎아먹으려 들기 때문이었다.

  벌레를 씹은 표정을 지은 현석은 이내 기자들로부터 고개를 돌려 바닥으로 시선을 던졌다. 때마침 그의 코트 안주머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이름을 확인한 그의 표정은 더욱 심각하게 구겨졌다. 그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서희에게 지시를 내렸다.

  “최초목격자부터 만나서 어떻게 된 건지 자세하게 알아봐. 나는 서장님 호출이 있어서 먼저 가볼 테니까, 진술확보가 되는대로 정리해서 나한테 보고해.”

  “알겠습니다.”

  서희가 대답했다.

  “진술확보만 끝내면 곧장 퇴근해도 좋아. 탐문수사는 정복 근무조에서 돌아주기로 했고, 어차피 내일부터는 집에 일찍 가고 싶어도 못 갈테니까 말이야.”

  현석은 말을 마친 후 그대로 걸음을 옮겨 자신의 차가 세워져 있는 골목 모퉁이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불과 일 분도 안 걸려 그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서희는 무뚝뚝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김 경사와 눈을 마주쳤다. 둘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제 그녀가 지시를 내려야했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망설여졌다.

  현석의 지시대로 최초목격자를 만나러 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서희는 알지 못했다. 근처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 눈을 굴려 주위를 빠르게 살펴보았지만 후보군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건현장을 기웃거리는 주민들이거나,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먹잇감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기자들이 전부였다.

  서희는 하는 수 없이 멋쩍은 얼굴로 김 경사를 올려다보았다. 이십 센티미터나 넘게 차이가 나는 신장 덕분에 그를 똑바로 마주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힘껏 들어 올려야했다.

  “혹시,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서희가 물었다.

  “뭐가 말이죠?”

  “최초목격자요. 아무리 둘러봐도 이 근방에는 없는 것 같아서요.”

  “찾을 수 없는 게 당연하죠. 아이들은 지금 집 안에 있습니다.”

  “집이요?”

  서희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사건현장을 돌아보았다. 감식반 대원들이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한창이었다. 증거수집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경찰관계자를 제외한 다른 이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그녀로서는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김 경사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거기가 아니라 다른 집입니다. 최초목격자는 이 집에 살던 아이들인데, 최초신고자는 따로 있거든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같은 동네 주민이에요.”

  “아이들이 신고를 한 게 아니었어요? 저는 열네 살짜리 여자애들이라고 보고받았는데요.”

  “핸드폰이 없어서 어쩔 수가 없었답니다. 도움을 구하려고 밖으로 나왔다가 마침 산책 중이던 주민을 만나서 신고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럼 그 주민이랑 같이 있는 거예요?”

  “네. 만일을 대비해서 지구대에서 파견 나온 순경 한 명도 함께 있습니다.”

  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김 경사의 안내를 받아 아이들을 만나러 가면 되었다. 하지만 서희는 그러지 않았다. 먼저 확인해야할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피해자의 이름이 박승현이라고 했죠?”

  “네. 신발장 위에서 발견된 지갑 안에 피해자의 신분증이 들어있었습니다. 입고 있던 바지 주머니에서도 신용카드가 하나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도 똑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고요.”

  “신원이 의심되어서 물어본 건 아니에요. 저는 아이들 이름을 김지혜, 김지연으로 보고받았는데, 그렇게 되면 피해자랑 성 씨가 다르네요. 아빠가 아닌가 보죠?”

  “그것까지는 저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까요?”

  “그럼 애들 엄마는요? 연락이 됐나요?”

  김 경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연락처를 알아내서 곧장 통화를 시도해보았는데, 알고 보니 핸드폰을 두고 갔더라고요. 감식반 대원이 주방 싱크대 밑에서 발견했습니다.”

  서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일을 나간 건가요?”

  “네. 아이들 말로는 새벽 2시나 되어야 들어온다고 합니다. 식당에서 일을 한다고 하는데, 주소나 연락처는 모른다고 하고요.”

  서희는 입을 다물었다. 계좌내역을 조회하거나 소득신고내역을 확인하면 어렵지 않게 직장 주소를 알아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장이 필요했다. 그런 수고를 거치느니 차라리 기다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오늘은 금요일 저녁이었고, 당연히 담당검사는 이미 퇴근했을 것이다. 어찌어찌 그를 설득해 영장을 청구한다한들 법원의 심사도 거쳐야했다. 여러모로 번거로울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서희는 곧장 현석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는 새벽 2시까지 기다려야할 것 같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그러자 현석이 한숨을 내쉬듯이 대답했다.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 내일 오전부터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해야 돼. 동거녀는 내일 오전에 만나도 늦지 않아.”

  “그러다가 범인이면 어떡하게요? 그새 증거를 인멸할 수도 있잖아요.”

  “그럼 새벽 2시까지 기다리면 증거를 가지고 오나? 어차피 네 말대로 그녀가 범인이라면 집에 돌아올 때는 이미 모든 증거를 처리하고 난 이후일 거야. 내일 오전에 만나서 알리바이를 확인하고, 진술에 거짓이 섞여 있다면 그때부터 증거를 차근차근 찾아가면 돼.”

  현석의 말이 맞았다. 그의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설명에 서희는 아무런 반박도 제기할 수 없었다. 그녀가 침묵을 지키자 이윽고 현석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의욕이 앞서는 건 좋지만 무엇이든 과해서 좋을 건 없어. 냉정하게 생각하고 판단해. 살인사건 수사는 장거리 마라톤이랑 똑같아. 처음에 아무리 빨리 달려도 결승점에 도착하지 못하면 결국 실패자가 되는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좋아.”

  현석이 전화를 끊었다. 서희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말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자 잠자코 그녀의 옆에 서 있던 김 경사가 입을 열었다.

  “이제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안내해드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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