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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세 여자 이야기
작가 : 네로황제
작품등록일 : 2020.6.29

30대 여성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이야기

 
세 여자 이야기 9장 (끝)
작성일 : 20-06-29 15:15     조회 : 174     추천 : 0     분량 : 8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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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여자 이야기

 the tales of three women

 

 9장

 

 

 “사모님 오늘 손님 맞이 저녁으로는 뭘로 준비할까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또 벌써 토요일이 되었다. 그러나 희림과 지은, 수현은 오지 않을 것이다. 영영 오지 못할 것이다.

 

  한동안 모두로부터 연락이 없었다. 희림은 이제 그 남자를 만나지 않겠지? 다른 말이 없는 걸 보니 지은은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나 보다. 수현은 아버지 연금을 담보로 한다는 각서를 쓰고 김 사장으로부터 돈을 빌려갔다. 미진은 자신이 필요로 한 건 그저 소소한 자극일 뿐이었고, 이 정도의 소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짧고도 굵은 진짜 사건은 이제 시작이었다.

 

  목요일이 되도록 너무 연락이 없기에 미진은 희림의 집을 직접 가보기로 마음 먹었다. 향수도 전해줄 겸 서프라이즈라고도 하자. 하지만 한낮인데도 홍제동 아파트 단지는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미진은 지상 주차장은 사람들의 벌건 속살을 드러내는 것 같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태양이 하늘 끝에 걸려 그림자조차 지지 않았다. 한 여름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몇 바퀴를 뱅뱅 돌다 겨우 차를 세울 수 있었고, 엘리베이터에는 미진 또래의 남성이 함께 탔다. 마침 그는 미진과 같은 층이었고 문이 열리자마자 바삐 걸어 나간다. 복도식 아파트인 희림의 집은 회랑에서 왼쪽으로 꺽어 세 번째 집 704호였다. 미진은 엘리베이터서 내려 계단 앞에 걸린 큰 거울에 잠시 머리를 매만진다. 그리고 왼쪽으로 꺽어 복도를 가려는데 미진보다 앞선 남성이 첫째, 둘째 그리고 셋째 바로 셋째 집 앞에서 벨을 누르고 있다. 띵똥띵똥- 띵똥띵동- 문이 열렸고 미진은 재빠르게 몸을 돌렸다. 연이어 문이 닫히는 소리 10분, 20분, 30분. 미진은 이 상황이 낯설지 않다. 낯설지만 익숙한 풍경들.

 

  미진은 두 시간을 미동도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서는 우편함 앞에서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선, 703호의 우편물을 모두 꺼내왔다.

 

 “김 사장님 일전에 제가 말한 사람은 찾았나요? 그래요? 네 그리고 주말에는 제주도에 사람 보내는 거 잊지 않았죠? 네 그렇죠 다른 일 못하게 그래요”

 

  어쩐지 미진의 가슴이 뛰어온다. 분명 미진은 희림에게 말했었다. 누구나 실수를 하지. 미진은 비밀을 지켜주었고 그녀에게 만회의 기회도 주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별 다른 수가 없다. 진작에 들키지를 말았어야한다.

 

  다음 날 미진은 꽃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꽃배달 주문하려구요 저희 부장님 와이프 되시는 분이 오늘 생일이예요 서프라이즈 선물인 거죠 네 그래서 사장님이 꼭 직접 가주셔야겠어요 두 시 괜찮겠죠? 아무에게나 맡기고 싶지는 않아요 물론 그만큼 수고비는 더 드릴거예요 홍제동 ** 아파트 209동 703호요 네 고맙습니다

 

 “김사장님 문자로 번호 하나 보내 드릴테니 다운 시켜 주세요 기록 안 남는 폰으로요 지금 바로요”

 

  외삼촌, 지금 고 팀장 많이 바빠요? 제가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두 사람 애 때문에 고생이잖아요 네 그런데 오늘이 그날이래지 뭐예요 네 말도 못하고 속앓이를 하길래 제가 이렇게 전화 드리는 거예요 네 고 팀장에게만 일 너무 시키지 말고 오늘 서프라이즈 휴가 좀 내주세요 네 오늘 하룬데 그 정도 시간은 괜찮죠? 민망해 할테니 부러 그런 말은 꺼내지 말구요 네 외삼촌 고마워요 네 다음에 또 연락드릴게요

 

  어제 낮만 해도 해가 짱짱하더니 밤부터 후둑후둑 거세게 비바람이 몰아쳤다. 금세 불어난 한강에는 토약질과도 같은 누런 물이 떠다녔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용케도 복도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주차를 할 수 있 있었다. 미진은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이 연주하는 베토벤(beethoven) 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을 들으며 가방에서 쵸컬렛을 하나 꺼내 먹는다. 1시 50분이 되자 그때 그 남성이 아파트로 들어간다. 이제 엘리베이터를 타겠지. 1층, 2층 그리고 7층 문이 열리고 회랑을 통과하여 좌회전 첫 번째 집을 지나 둘째, 셋째 이제 넷째 문이 열리고 40대의 여자가 나온다. 남편의 서프라이즈 선물에 함박 웃음. 그는 뒤를 돌아 엘리베이터를 향하다 말고, 704호 앞을 잠시 서성이다 결국, 벨을 누른다. 서프라이즈. 희림의 핸드폰은 진작에 먹통이 되어 누구와도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10분, 20분, 30분. 미진은 이 상황이 낯설지 않다. 언제부턴가 남편의 향수가 바뀌고 못 보던 타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늘 바이어들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미진은 마작 모임에서 배운 것처럼 핸드폰을 하나 새로 만들어 작은 손가방에 넣어 조수석 아래에 떨어 뜨렸다. 그는 급하게 부산 출장을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핸드폰은 가평을 떠돌고 있었다. 보는 눈이 얼마나 많은데 촌스럽게 가평이누. 미진은 남편의 천박한 안목이 한탄스러웠다. 그리고 다니엘 바렌보임이 비창 3악장을 연주하기 시작할 때 희림의 남편이 도착했다. 가까운 거리라 그는 우산도 펴지 않고 현관으로 달려갔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손수건을 꺼내 머리를 털어 냈다. 그가 7층 복도를 걸어갈 때 음악은 클라이막스에 다다랐고, 비밀번호를 누를 때에 음악은 종료되었다. 우리 모두의 서프라이즈 데이!

 

  문득 미진은 월광 3악장이 듣고 싶어진다. 그래서 클릭클릭클릭, 피아노는 앞서보다 더욱 숨 막히게 빠른 속도로 고점을 향해 오른다. 저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한 번 쯤은 자신도 보고 싶었던, 그러나 격 떨어지게 어째 그런 일을 벌인단 말인가. 때로는 알아도 모른 척 하고 살아가는 게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서 가장 좋은 법이다. 세상 모든 일을 다 알고 살 필요가 어디 있겠누 크게 욕심 부리지 않으면 삶은 안전하다.

 

  그때였다 아파트 건물 사이사이로 삐뽀삐뽀- 자동차 경보음이 요란스럽게 울려대기 시작했고, 희림의 집에서는 동시에 두 남자가 밖으로 뛰어나와 계단으로 향했다. 그러게 지상 주차장은 마음에 안 든대니까 애당초 비밀이라는게 없어.

 

  아직 음악이 끝이 나지 않았는 데도 주요 등장인물들이 사라져 버렸다. 웅성웅성- 사람들의 말소리만이 배경음처럼 들려온다. 속살을 모두 드러낸 존재들에겐 흥미를 잃기 마련이다. 재미없어. 미진은, 쵸컬렛을 하나 더 까먹으며 이럴 때엔 말이지, 그래, 이제는 드뷔시(debussy) 의 달빛이 괜찮겠구나 정말 아름다운 곡이지 어쩜 이런 곡이 다 있을까. 특히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sviatoslav richter) 가 최고란 말이야. 미진은 음악을 바꿔틀었고, 단역들만 남아버린 공연장을 천천히 빠져 나오며 아파트 입구, 앰뷸런스와 바톤 터치를 한다.

 

  외삼촌에게 전해 듣기로 희림은 죽지 않을 만큼만 다쳤다고 한다. 딱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죽지 않을 만큼만. 나머지 일은 그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러게 사람들이 들키지를 말았어야지.

 

  그러나 미진은 뒤늦게 슬픈 감정이 밀려와 자기도 모르게 울음을 토해 내었다. 그런데 이 슬픔이 희림 때문인지 희림의 남편 때문인지 혹은 희림의 그 남자 때문인지는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고 문득 자신이 미친 사람인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어 더 구슬피 울었다.

 

  서프라이즈와도 같은 금요일이 끝나고 토요일이 되자 다시 날이 맑아졌다. 한국도 이제 동남아 모냥 스콜이 잦아선 어쩌누 이런 한국도 견디기 힘든데 어째 홍콩에서 잘 살 수 있을까? 미진을 알아본 지은의 부모님은 이렇게 좋은 혼처를 알아봐줘 고맙다며 두 손을 꼭 쥐고 연신 인사를 건넸다. 아뇨 제가 뭘 한게 있나요 그리고 아시겠지만 전 이 결혼을 썩 내켜하지 않았는 걸요. 할 말은 해야지.

 

  신부 대기실의 지은은 그저 들뜬 표정이었다. 그런데 언니 희림인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요? 수현 마저 갑자기 못 오겠다며 제주도로 가 버리고선. 가장 친한 친구들이 없으니 조금 섭섭해. 나 멀리 떠나는데 말야. 그러게나 말이다. 나이 서른 앞두고 다들 무슨 일이겠니. 결혼식 전날, 미진의 남편은 지은의 남편 될 사람이 요즘 갑자기 여기저기서 돈을 많이 끌어모으고 있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나쁜 거야? 그쪽 일이라는 게 큰 사건만 안 생기면 성공하는 거지 하루 아침에 일확천금을 벌어들일 수도 있지만 바로 다음 날 깡통을 찰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러나 예정대로 결혼식이 치뤄지는 걸 보면 결국 지은은 사인을 했나보다. 그런데 남편이 안 보인다? 응 어제 비가 많이 왔잖아 그래서 아침 비행기 타고 온다고 연락 왔어 아마 곧 올 거야. 그래도 난 말이야 지은아, 그러나 지은에게는 미진이 여전히 자신의 결혼을 마뜩치 않아 하는 표정으로 다가와, 언니 미안한데 나 조금 쉬고 싶어 너무 긴장했나봐 괜찮지? 응 그래. 더 얘기를 하려다, 본인이 싫다는 걸 어쩌겠어 이미 떠나버린 배이다.

 

  호텔에는 지은네 가족과 친지, 친구와 직장 동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신랑 쪽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한국에 신랑 친구가 어디 있겠으랴 시댁도 페루인걸. 그래도 한국에 친척이 전혀 없다는 게 불길하다. 무게가 맞지 않는 결혼이 미진은 여전히 미덥지 못하다. 그렇지만 지은의 사촌 언니라고 하기에는 촌수가 꽤나 멀었기에 미진은, 어쩌면 이곳의 이방인은 다름 자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울적해진다.

 

  12시가 다 되도록 신랑은 도착하지 않았고 정작 지은을 찾아온 것은 경찰들이었다. 김지은씨 되시죠? 네 그런데요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보다시피 제가 곧 식이 시작될 거라서요 유감스럽지만 오늘 식은 치뤄질 수 없을 겁니다 네? 경찰들은 신부 대기실의 사람들을 물렸고 10분 쯤 지나 밖으로 나온 지은의 아버지는 마이크를 붙잡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신랑의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해 결혼식이 연기 되었습니다 축의금은 모두 되돌려드리고 먼 걸음 하셨는데 점심은 제가 대접하는 거니 맛있게 드시고 가시면 됩니다”

 

  풍문처럼, 결혼식장에서 파토가 나는 결혼 얘기를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눈 앞에서 사건이 발생해 버리자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고 다들 겸연 쩍은 인사를 나누고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속사정이야 알 수 없다지만 이런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즐길 배포를 가지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아버지의 요청으로 들어간 신부 대기실의 지은은 거의 탈진 직전이었다. 전말은 이렇다. 지은의 신랑될 사람이 시라큐스 대학을 나오고 홍콩에서 펀드 매니저를 하며 구룡반도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홍콩섬에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한 순간이다. 돈이 돈을 먹는 그 덫에 걸려 버리게 되자 그는 자신이 끌어 모을 수 있는 돈이란 돈을 모두 털어 넣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은에게까지 마수를 뻗친 것이다. 그가 정말로 지은에게 사기를 칠 작정으로 접근을 한 것인지 혹은 부득이하게 사기를 치게 된 것인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밝혀지겠지만 식을 올리기 전부터 덜컥 사인을 한 게 화근이었다. 그 일주일 사이에 지은은 한국도 아닌 홍콩에서 어마어마한 빚더미에 올라 안게 되었고 결혼도 올리지 않은 그러나 이미 법적으로 부부가 되어 버린 남편은 위조 여권으로 홍콩을 떠나버려 어느 하늘 위를 떠다니고 있는지도 가늠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미진이 오늘 만류했더라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지은의 부모님은 침착했다. 일단은 법에 기대어 혼인 무효를 노려봐야지 설마 산 입에 거미질 칠라구 IMF 도 이겨낸 우리지 않어? 괜찮아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잖아 응? 너 탓하지마 괜찮아 우리 딸 괜찮아 우리 딸. 아버지는 낙심한 지은을 꼭 안으며 위로해 주었다. 작은 갈등으로 파탄이 나기도 하지만 위기 속에서 더욱 돈둑해지는 관계도 있기 마련이다.

 

  미진은 이 광경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송글 맺히며 차라리 8년 전, 자신이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리 부모님도 나를 저렇게 꼭 안아 주지 않았을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적어도 그가 옆에 있었더라면 ‘그런’ 표정을 짓지 않으며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미 지나가버린 세월, 한 번 올라탄 관습에서 내려가기란 역부족이다.

 

  김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다음날 저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수현은 결국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다만 지금 당장의 글이 아니어서가 문제였다.

 

 “사모님이 직접 그걸 보셨어야 했어요 이런 말이 저어하긴 하지만 정말 장광이었죠 그런 진풍경을 제 눈으로 직접 보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광염소나타가 재현되더라니까요”

 

  혹시 몰라 붙인 미행이었는데 역시나 수현은 제 손에 돈이 들어오자 제주도의 경마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말릴 사이도 없이 금세 판돈이 커져 버려 결국 김 사장마저 제주도로 내려가게 됐는데 그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수현은 아버지의 연금을 담보로 빌린 돈도 이틀 사이에 모두 날려 버린 채 경마장을 떠돌다 급기야 저도 모르게 불을 내어 버린 것이다. 이틀 전에 비가 내렸다고 하지만 뜨거운 여름 태양으로 바닥은 바짝 말라 버렸고 불은 활활 타올랐다. 한라산을 뒤로 하여 석양 아래 타오르는 불은 황홀하게 아름다웠고 수현은 울음과 웃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그 사이를 뛰어다녔다고 한다.

 

 “직접 보셨어야 했어요 예술이었죠 예술 다들 넋놓고 바라봤대니까요”

 

  몇몇은 수현과 함께 불길로 뛰어들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퀭한 눈매를 가졌다고 한다.

 

 “아마 3년 정도는 들어갔다 와야 될 것 같아요”

 

  3년만 견디면 모든 부채 관계는 소멸된다. 다만 부모님은 한 푼 없이 거리로 내앉아야 한다. 연금의 반은 돌려 주시고 그리고 노량진에 상가 하나 팔아서 목동에서 멀지 않은 곳에 빌라 전세도 하나 얻어 주세요 그럼 사모님이 손해 보는 거잖아요 어차피 저야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그만이지만서두.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않겠어요? 그리고 말이죠 예술에는 후원이 필요한 법이죠 네? 아뇨 그런 게 있어요 미진은 3년이면 소설 열 편도 너끈히 쓸 시간이라 생각한다. 아무렴 예술에는 유무형의 든든한 후원이 필요한 법이다. 가슴 뭉클한 감정에 슬쩍 눈물이 오른다.

 

 “사모님 오늘 손님 맞이 저녁으로는 뭘로 준비할까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또 벌써 토요일이 됐다. 그러나 희림과 지은, 수현은 오지 않을 것이다. 영영 오지 못할 것이다. 이정도의 자극이면 충분했다. 이제 어쩐다? 일단은 다시금 마작을 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미진은 핸드폰을 꺼내 주소록을 한 번 훑어 보더니 희림 덕택에 알게 된 봉사 활동 단체 사람들에 눈길이 머문다.

 

 “안녕하세요 저 미진이예요 오랜만이예요 네, 잘 지내고 있죠 제가 한동안 바쁜 일이 있어서 가보지도 못하고 미안했어요 당연히 다시 나가야죠 봉사 활동, 하루 이틀 하고 말 것도 아니잖아요 네 당연하죠 그나저나 제가 그간 못 나간게 미안해서 그러는데 오늘 저녁 식사엘 초대하고 싶어요 후원금 논의도 하고 네 그렇죠 봉사단체 규모도 키워야지 않겠어요? 건물도 새로 짓고 말이예요 그렇죠 맞아요 뜻 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죠 제가 하는 일이 뭐 있나요 저야 후원금만 조금 낼 뿐인데요 조만간 외삼촌과의 자리도 마련해 드릴게요 팀장님과 간사님 해서 세 분이서 같이 오세요 주소는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이렇게 오신다니 제가 고맙죠 별 말씀을요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런데 갑자기 영문 모를 슬픔이 밀려온다. 비극적 결말이래도 희림은 격정의 사랑을 만끽했다. 지은에겐 든든한 가족이 있었고 수현은 예술 작품을 만들어낼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자신은 태초부터 놓여진 관습 위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고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변명처럼 읊조리듯 미진은, 존재의 이유를 말할 수 있는 자는 신과 나쁜 짓을 벌이려는 인간, 즉 사기꾼 뿐인데 자신이 어찌 사기꾼으로 살아갈 수 있겠냐며 법 없이도 살 사람, 서둘러 이 슬픔을 지우며 기지개를 펴곤,

 

 “아주머니 육수 만들어 놓은 것 있죠? 오늘 저녁으론 평양냉면과 불고기로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찻잔은 보자 소박하게 빌레로이 앤 보흐(villeroy&boch) 의 컨트리 시리즈가 좋겠군요 독일 시골의 서민적인 문양이 도시를 못 떠나 안달인 그분들께 딱이겠어요”

 

  미진이 머물던 거실에는 하늘 높이 걸린 한 여름 태양이 깊게 드리웠다, 서산 그림자를 지며 물러간다. 그리고 거실을 따라 난 어느 방에서는 물소뼈로 만들어진 마작패가 던져지며 맞부딪히는 소리와 세 명의 여자들이 뿜어대는 신경전으로 뽀얀 안개가 잔뜩 끼어 있었다, 있다, 그리고 미진이 그곳에 있는한 영원무궁토록 함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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