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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세 여자 이야기
작가 : 네로황제
작품등록일 : 2020.6.29

30대 여성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이야기

 
세 여자 이야기 4장
작성일 : 20-06-29 15:11     조회 : 181     추천 : 0     분량 : 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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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여자 이야기

 the tales of three women

 

 4장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서려는데 생각지도 않게 수현이 돌아왔다. 내내 힘이 없더니 여전히 풀이 죽어 있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평소 같았으면 일 때문이려니 무심히도 넘겼을 법 하지만 막상 자극을 필요로 하게 되자 어떤 동물적 본능이 활화산처럼 피어 오른다. 핸드폰은 아직 서울 이곳저곳을 분주히 옮겨 다니고 있기에 서둘러 쫓아갈 필요는 없으리라.

 

 “어디 나가려던 길이였나봐요”

 “괜찮아 급한 일은 아닌 걸 그나저나 수현 어쩐 일이누 뭘 놓고 간게야?”

 

  미진은 수현을 거실 쇼파에 앉히고,

 

 “차라도 마시면서 이야기하자꾸나 아주머니 아주머니”

 “아니예요 언니 그냥 언니랑 조용히 얘기하고 싶어요”

 “여사님 부르셨어요?”

 “어차피 오늘 내일 여긴 저밖에 없는데 잠시 집에라도 다녀오세요”

 “어휴 지난 주말에도 다녀왔고 오늘은 휴가도 아닌 걸요”

 “특별 휴가라고 생각하세요 쉴 수 있을 때 틈틈히 쉬셔야죠 비도 많이 오니 택시타고 돌아가세요”

 

  지갑에서 5만원짜리 두 장을 꺼내 건넨다.

 

 “언니는 참 인심도 좋아”

 “무얼 네들이 그랬잖아 노동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구 이 큰 집에서 밤낮 없이 다섯 식구 살림 건사하는게 어디 보통 일이겠니?”

 

  이 말에 수현은 맥없이 얼굴이 빨개진다. 총선을 앞둔 동안 이들은 내내 진보 정치의 미래에 대해 설전을 벌였고 집권 여당에 대한 조롱이 거세질수록 마작판의 열기도 뜨겁게 불타 올랐다. 이 열기에 덩달은 미진은 난생 처음으로 외삼촌이 아니라 제 3당에 투표도 해보았다. 남편이 미진의 외삼촌 의원실 캠프 보좌관으로 들어간 희림만 입을 굳게 다물었다. 비록 야당이긴 했어도 평소 그녀가 했던 말과는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현은 치마 자락을 꼭 움켜쥔 채 한참이나 뜸을 들였다. 실크 플레어 스커트엔 땀에 절은 주름 범벅이다. 가끔 드르럭- 핸드폰이 진동을 울려 대었지만 눈길도 주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누 그래”

 

  수현의 퀭한 몰골에 안쓰러움보다도 주마간산 모냥 지난 날이 스치고 지나가며, 어떤 사단이 났어도 단단히 난 게지. 명치 끝이 꿈틀 거려 목을 길게 죽 내어밀며 채근하듯 수현을 바라본다.

 

  처음 수현이 자신의 집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오랜 직장 생활에 피로한 기색은 역력했으나 그래도 여전히 호기심과 순진함이 그득한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다. 마작판 위로 미진이 쏟아내는 정보에 귀를 쫑긋 세울 때는 귀여운 구석도 있었고 자신을 따라 쇼핑이니 주식이니 경매니 그렇게 뒤를 따를 때에도 역시 넌 머리가 좋아 잘도 하는구나, 푼돈과 푼돈을 모아 목돈으로 굴려나가는 게 대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냄새라는 게 있다. 언제부턴가 무언가에 쫓기듯 조급해하는 모습이 더러 보이자, 이를테면 손톱을 물어 뜯는 일이 잦아진다든지 상가 계약을 앞두고는 수익률에 지나치게 연연해 하는 게 조금은 불안하게 여겨졌다. 너무 욕심내며 하지말래두 얘는. 일전에 돈내기 때문에 마작판에서 쫓겨난 아주머니는 결국 귀족계로 떠들썩했던 그곳에서 집 한 채 값을 잃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정도로 잃은 게야? 그러게 너무 돈을 밝히면 못 쓴대니까. 수현은 미진이 건네준 그 정보로 특종을 뽑았고 한 달 뒤, 덜컥 외제차를 몰고 나타났다. 굳이 알려고 한 건 아니지만 수현이 던지는 말들 속에서 미진은 수현의 자산 규모를 대략적으로 가늠하고 있었기에 유지비가 솔찬히 들 텐데 괜찮으려나. 그러나 남의 일에 너무 깊게 개입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미진은 새로운 마작 멤버가 필요하여 수현을 만났고 적당한 선만 유지되면 문제될 게 없다. 그렇지만 집으로 돌아가다 다시 온 걸 보면 사단이 나도 단단히 난 게야.

 

  수현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결국 입을 뗀다

 

 “지난 겨울에 제가 입고 왔던 모피 코트 기억나죠?”

 “이 여름에 뜬금 없기는 기억나지 결이 참 곱고 좋았잖우”

 “그때 언니가 그거 갔고 싶다고 그랬잖아요”

 “그랬지 길이도 짧아서 캐쥬얼하게 괜찮았어”

 “그래서 언니, 그거 언니가 가져요”

 “응?”

 “그거 언니가 가져요 대신 나 돈 좀 빌려줘요”

 “응?”

 “나 돈 좀 빌려줘요 그냥 빌려달라는 게 아니라 모피 코트 언니 줄게요”

 

  수현은 미진을 한 번 바라보다 재차 고개를 떨구고는 여전히 치마 자락을 꼭 쥐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미진은 잠시 쇼파 위로 몸을 깊게 뉘이고 창 밖을 바라본다. 어느덧 비는 그쳐있고 열려 있는 창문 틈으로 습한 바람이 밀려 들어온다. 평소의 미진 같았으면 돈 거래는 단칼에 거절하고도 남았지만 도대체 어디서 빈 구석이 생긴 겔가? 지난 1년 동안 수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적막이 길어지자 수현의 얼굴에서 폐색이 짙어진다. 핸드폰의 진동만이 간간히 이 침묵을 깨트린다.

 

 “역시 안 되겠죠? 미안해요 언니 오늘 얘기는 못들은 걸로 해줘요 내가 염치도 없이 미안해요”

 “아냐 수현 잠깐만 기다려”

 

  미진은 방으로 들어가 수표로 200만원을 챙겨 나왔다.

 

 “우리 사이에 무슨, 코트는 받은 셈 치고 우선 급한대로 이것부터 받아가”

 

  수현의 얼굴에 잠시 화색이 돈다.

 

 “고마워요 언니 나...”

 “아냐 아무 것도 묻지 않을게 사람이 살다보면 급하게 돈 쓸 일이 필요할 때도 있잖아 우리가 하루 이틀 안 사이도 아니고 천천히 갚으렴”

 “언니 정말 고마워요 지금 급하게 가볼 곳이 있어서요 언니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할게요”

 

  수현이 서둘러 집을 나갔다.

 

 “안녕하세요 김 사장님 오랜만이예요 네 뭘 좀 알아볼게 있어서요 문자로 찍어 보내드릴게요 가능한 빨리 부탁드릴게요”

 

  지하 주차장에서 수현은 한참이나 길을 떠나지 못하고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했다가 고개를 숙여 울먹이기도 하다가 20분이 지나서야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이런 수현을 지켜보던 미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그리고 핸드폰의 행방을 알려주는 아이패드는 거치대에 꼽아 놓은 채 천천히 수현의 뒤를 따라간다.

 

  도착한 곳은 과천 경마장이었다. 비가 그치자 하늘은 금세 맑아 있었고 주차장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더러 가족들과 사진을 찍으며 주말 나들이의 기분을 만끽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수현처럼 눈이 퀭하니 하얗게 뜬 얼굴이 유령 같았다. 말의 분뇨보다도 돈의 냄새가 매캐하게 하늘을 찌른다. 수현은 차에서 허둥이며 내리다 가방을 떨어뜨렸는데 소스라치게 놀라 줍고는 가슴 팍에 꼭 안은 채 어딘가로 전화를 하며 달려간다.

 

 “바로 30분 전에 남성 패션 쇼핑몰에서 수표조회를 했더군요 주소지는 양재 오피스텔이구요 그런데 여기가 좀 냄새가 나요 들리는 소문에 불법 사설 경마장이나 카지노 수표 세탁을 하는 곳이라네요 그러니까 수표로 입금 처리하고서는 바로 환불을 하면서 현금으로 돌려주는 거죠 수수료는 배달료까지 해서 15% 를 받는답니다”

 “고마워요 계속 더 알아봐 주세요 그리고 수표는 아시죠?”

 

  저기 멀리 수현이 주변을 돌아보며 초조하게 서 있자 낯선 남자가 다가왔고 그는 수현으로부터 봉투를 건네 받고는 전화기를 손에 쥐이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1분 뒤, 다른 남성이 수현의 등을 치며 지나가는데 수현은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본 후 그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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