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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세 여자 이야기
작가 : 네로황제
작품등록일 : 2020.6.29

30대 여성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이야기

 
세 여자 이야기 1장
작성일 : 20-06-29 15:07     조회 : 292     추천 : 0     분량 : 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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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여자 이야기

 the tales of three women

 

 1장

 

 “치”

 “펑”

 

 한 밤 내 퍼붓던 비는 아직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고 후덥지근하면서도 습한 기운이 느릿느릿 운행하는 거실을 따라 난 어느 방에서는 물소뼈로 만들어진 마작패가 던져지며 맞부딪히는 소리와 네 명의 여자들이 뿜어대는 신경전으로 뽀얀 안개가 잔뜩 끼어 있다. 방문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1920년대 상하이 향취가 물씬 풍기는 짙은 녹색 바탕의 크고 화려한 꽃무늬 벽지와 나비 문양이 새겨진 앤틱 자개장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 하지만 이 자개장은 산둥 반도에 가득 들어선 저가 공장에서 생산된 흔한 복제품이 아니라 상하이 모간산루 공방에서 한 달을 걸려 손수 제작한 고가의 수공예품이다. 그 위로는 빌리 할리데이(billie holiday) 의 LP 판이 돌아가는 린(linn)사의 턴테이블이 놓여 있다. 그녀는 매킨토시(mcintosh) 진공관 앰프에 연결된 비앤더블유(bowers&wilkins) 스피커 앞에서 ‘너를 원하는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방 한 가운데에 놓인 가리모쿠(karimoku)사의 모카 브라운 색상 정사각 월넛 테이블과 동同 사의 다이닝 체어에 자리잡은 관객들을 향해 연신 구슬피 부르고 있다; 부유층의 부부들은 부부 침실 외에도 개인만을 위한 안실을 꾸미는게 관례다.

 

  미진은 자신의 오른쪽에 앉은 수현이 던진 패를 재빠르게 잡으며 ‘치’ 를 외쳤지만 왼쪽 자리의 희림이 자신의 패를 펼쳐 보이며 ‘펑’ 이라 외치자 맥없이 빈 손을 들여 놓아야 했다. 자신이 패를 가져가려 할 때마다 희림이 ‘펑’ 을 외치는 통에 이번 판에서만 벌써 두 번이나 자신의 순서를 건너 뛴 채 게임이 돌아가고 있는 게 마뜩치 않다. 처음부터 엉망이었던 패들이 여즉 배열을 맞추지 못한 것도 영 운이 나쁘다. 이번에도 이길 수가 없겠구나. 심기가 불편해진 미진은 양 미간을 찌푸리고 숨을 고르기 위해 페퍼민트 차를 한 모금 들이키며,

 

 “희림, 요즘 아이 소식은 없어?”

 

  일전에 백화점 식당가에서 희림이 남편 아닌 다른 남성과 밥을 먹던 걸 떠올린다. 그들은 다정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겐 다정함보다는 익숙함의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부부 관계에는 문제 없는 거지?”

 “설마 이런 잉꼬 부부가”

 “그렇지만서두 고민 있으면 혼자 삭이지 말고 우리에게 털어놓으렴 끙끙 앓느니 낫지”

 

  희림은 희미하게 웃어 보이며,

 

 “언니가 더 잘 아시잖요 이제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아 주말 없이 바쁘기만 해서 얼굴 보기도 힘들어요 어머, 이번 판도 내가 이겼네”

 

  희림이 남은 패를 모두 까보였고 미진은, 다음 판에서 반드시 이기기 위해, 그 남자의 정체를 기필코 알아내야겠다 생각한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듯 질문을 쏟아내어 혼을 빼버려야 해. 실상 마작에서 오고 가는 말은 안부를 주고 받으려는 목적도 있지만 상대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기 위한 필수 덕목이다. 그리고 이는 미진만의 영악함은 아니다. 다시 패가 돌아가자 이번에는 미진의 맞은 편에 앉은 그녀의 사촌 동생인 지은이 물음을 던진다.

 

 “형부는 언제 돌아오는 거야?”

 “월요일 새벽에 들어와”

 “치”

 “얘, 초반부터 너무 빠르다 살살 좀 해”

 

  지은이 패를 던지기가 무섭게 수현이 ‘치’, 패를 가져갔고 모두들 버려진 패와 지은의 밖으로 눕혀진 패를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며 스캔, 그러나 속도감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미진은 금세 다음 패를 가져왔다. 이번에는 패가 잘 짜여졌다. 두 개만 맞추면 이길 수 있으리라. 들어올 때부터 두 개 그리고 세 개의 짝이 갖춰진 패들은 왼쪽으로 몰아 넣고 새롭게 구성하기만 하면 되는 패를 오른쪽으로 정리하자, 다음 순서의 희림이 자신의 패를 가져가며 힐끗, 미진의 손놀림을 추측한다.

 

 “어디로 갔어?”

 “싱가폴. 올 해만 벌써 세 번째야”

 “아, 싱가폴이라니 정말 좋겠다 나는 아직 거기 한 번도 안 가봤어”

 “이제 너도 결혼하면 지척이니 자주 오갈 건데 뭘. 그러나 난 솔직히 싱가폴 지겹다 얘. 어차피 골프만 치다 올 건데 싱가폴인들 제주도인들 무슨 차이가 있을라구 그리고 차라리 제주도가 낫지 싱가폴은 덥기만 한 걸”

 “그래도 해외 여행이잖아요”

 “촌스럽긴, 요즘 세상에 해외 여행이 별 세계 일인가? 유치원생들도 수학여행으로 가는 게 싱가폴이야”

 “이번에는 면세점에서 뭐 산 거 없어?”

 “참, 그래 가방을 하나 샀지 지지난 주에 고소영이 공항에서 멨다는 그 가방 알지?”

 “어머, 그거 언니가 샀어요? 신라 면세점에 하나 들어와 있다는 그거 말하는 거죠?”

 “응 하나 밖에 없다는 말에 애들 아빠가 덜컥 긁어버리네?”

 “그걸 바로 긁었다구요?”

 “와, 멋지다”

 “예쁜 가방만 보면 내게 선물 안하고는 못 배기겠다니 어쩌겠어 말릴 수도 없고”

 “정말 언니는 좋겠어 형부가 그렇게 다정하니 말야 그리고 그거 내가 사려고 했던 건데 역시 언니가 가져갔던 거였네 하루 꼬박 고민하다 갔더니 벌써 없지 뭐겠어?”

 “요즘 연예인이 멨다 하면 바로 품절이라잖아”

 “내 눈에 예쁜 건 남들에게도 예쁘니 결국 있을 때 사버려야 후회도 안 남지”

 “언니, 그거 쓰다가 질리면 우리 집 앞에 버려줘 언니 가방 많잖아? 응?”

 “얘, 여자 나이 늙으면 남는 게 뭔지 아니? 피부빨, 옷빨, 가방빨이야 그래야 어디가도 무시당하지 않고 자기만의 삶을 살 수 있는 거야 아무튼 너 결혼할 때 들고 갈 테니 그때 마음껏 만져 보렴 그나저나 본식 웨딩 드레스는 결정 잘 했어? 사촌 언니가 되가지서두 같이 못 가서 미안했어 피부관리실 예약이 하필 그날이어선”

 

  이에 지은은,

 

 “아직이야 이걸 입어도 저걸 입어도 다 똑같아서 뭐가 뭔지 모르겠어 한 번 입고 말 건데 돈도 아깝고 대충 아무 거나 입을까봐”

 

  입으로는 실쭉이고 있지만 눈으로는 다른 이들과 매한가지로 빠르게 패를 돌려보고 미진은,

 

 “결혼이 한 주 앞인데 아즉이라니 남편도 없이 혼자 준비하려면 손 갈 곳이 한 두 곳도 아니고 안 될 소리지 내가 추천한 웨딩 플래너가 안목이 좋아 센스가 있어 그녀 말을 따르렴 결혼이 어디 보통 일이니”

 

  수현의 손놀림과 희림의 눈빛을 번갈아 주시하며 연이어,

 

 “그리고 한 번 입고 말 결혼식, 평생 간다 사람들 귀신같이 다 알아채 저게 얼마짜리 웨딩 드레스인지 말야 너나 특히 네 신랑될 사람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허투르게 하지 말어 사람들이 욕 해 저런 거 아끼는 짠순이 짠돌이들이라고 그 자리에서는 너가 가장 돋보여야 하고 괜한 일로 구설수에 올라 뭐 좋은 일 있겠니? 있는 사람들은 있는 사람 답게 써야 뒷말이 안 나오는 법이란다 게다가 웨딩 드레스가 후줄그레하면 사진도 안 나온대니 돈 천이 많은 돈도 아니고 궁상맞기는”

 

  한껏 힘주어 말하지만 ‘펑’, 수현이 버린 패에 희림이 또 자신의 순서를 가로채 버리자, 아차 나만 말이 너무 많았구나, 오늘따라 희림과 더욱이 수현까지 참 말이 없다. 정말이지 희림에게 그 사람이 누군지 듣고야 말겠어.

 

 “희림, 애 갖는다고 병원 다닌지 몇 개월인데 아즉 소식이 없는 게야? 누가 문제인 거래니? 두 사람 부지런히 하고 있지? 그치?”

 “언니두 참, 예전에는 애야 조금 늦게 가지면 또 어떻다고 그리 애걸복걸이냐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인생을 즐기라고 권해 놓고선. 애 타령하면 남편과 있던 정도 떨어진다고 말이야”

 

  결혼하면 자신도 희림처럼 애 때문에 몇 년을 전전긍긍할까 두려운 지은이 말을 가로막고 미진은 희림이 말을 조금이라도 더 하게 내어두지 않는 지은이 다소 야속하다. 더하여 희림은,

 

 “언니 말대루 서두르지 않으려구요 아직 젊은데 천천히 생각하죠”

 

  그리고,

 

 “어머 세 번 연속으로 내가 이겼어 내가 또 이겨 버렸네”

 

  미진은 손으로 그녀의 패를 헤집어보더니 괜히 마작할 맛이 나지 않는다. 계집애, 끝까지 말을 안 해.

 

 “판을 갈아야겠어요”

 

  뾰로통한 미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현은 패를 섞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개장 옆의 LP 판들을 뒤적뒤적, 그러더니 넋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비는 언제나 그칠까? 참 비가 많이도 와 태양이 보고 싶어”

 

  한낮인데도 방에는 오렌지 빛깔의 전등이 낮게 켜져 있다.

 

 “그런데 수현, 너는 오늘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어디 아퍼?”

 

  결혼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와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며 개인 접시 위의 마카롱을 잘개 쪼개 감칠맛나게 혀 끝에 올리던 지은이 묻는다. 그러나 빌리 할리데이가 머물던 자리에는 니나 시몽(nina simone) 이 올라섰고 ‘날 떠나지 말아요 날 떠나지 말아요’ 수현은 말 없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장마철 한 밤 내 퍼붓던 비는 아직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고 후덥지근하면서도 습한 기운이 느릿느릿 운행하는 거실을 따라 난 어느 방에서는 물소뼈로 만들어진 마작패가 던져지며 맞부딪히는 소리와 네 명의 여자들이 뿜어대는 신경전으로 뽀얀 안개가 잔뜩 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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