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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사랑스러운비서
작가 : 상혁이
작품등록일 : 2020.5.15

[아~ 정말 못살겠어. 이러다 난 정말 미칠거야...아니, 죽고 말거야]
[또 안?거야?]

 
(3)
작성일 : 20-05-15 14:15     조회 : 185     추천 : 0     분량 : 2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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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오...오빠는요... 아! 병원, 병원에 있어요...]

 [어딜 다친 거요?]

 [아..아니요. 어제... 새..새 언니가 출..출산을 하는 바람에...하하... 그래서...병원에 있어요....]

 [그렇소? 그랬군. 그래서 어제 그렇게 말도 없이 간 거였군.]

 그가 어제 레스토랑에서 말도 없이 사라진 그녀를 생각하며 하는 말이었다. 그녀는 그가 그렇게 생각하게끔 얼른 답해주었다.

 [마..맞아요. 어제 언니가 갑자기 진통이 와서 제..제가 오빠한테 연락을 했어요. 너무..너무 무서워서... ]

 그녀는 진짜로 무서웠다는 듯이 몸을 떠는 연기까지 하였다.

 

 [아니...난 그것도 모르고... 오해를 할 뻔했지 뭐요. 그럼 지금은 둘다 병원에 있겠군. 아니지.... 이젠 셋이겠군.....! 그래 아들이오 딸이오...?]

 [네..? 그..그러니까 딸. 그래요...딸 이예요.]

 [하하.. 이거 축하할 일이군...... 그래 당신 오빠는 언제부터 출근 할 수 있다고 하오..?]

 뭐.. 언제부터? 그럼 특별휴가라도 준다는 말인가? 그래 맞아 나에게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 하긴해... 그녀는 일부러 심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 언니가 몸이 안 좋아서요... 며칠은 오빠가 옆에서 돌봐야 할 것 같던데....]

 [이런...! 어디가 잘못된 거요..?]

 진심으로 걱정하는 그의 말에 양심에 가책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아니요. 언니가 워낙 몸이 약하거든요.]

 그녀는 자신이 거짓말의 달인처럼 느껴졌다. 어쩜 이렇게 술술 입에서 잘도 나오는지....하~후... 계속 이렇게 거짓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구나....아냐..이한주 어떤 것도 생각지 말고 지금 현재만 생각해...솔직히 넌 계속 그의 옆에 머물 수 있어 좋잖아....

 [그럼 좋소. 그가 일도 잘하고 상황이 상황인 만큼 내 봐주는 거요. 음 오늘이 마침 토요일이니.... 수요일부턴 출근하라 하시오.]

 그는 후한 인심을 쓰듯 말하며 한주를 이상야릇한 눈빛으로 응시했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체 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정말요...? 어머.. 고맙습니다.]

 어머 겨우 삼일...? 하긴 뭐 그 시간이면 충분하지. 그녀는 자신의 속마음을 숨긴 체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척하고 그에게 미소를 띄우며 답했다.

 [그렇게 고마워 할 필요는 없소....나도 조건이 있으니까!]

 [네..?]

 미소짓던 그녀의 얼굴이 한 순간에 굳어버렸다. 조건? 갑자기 무슨...말야...? 그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되묻지 않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나도 무언가 이득이 있어야 하지 않소...? 뭐 그렇다고 돈을 바라는 건 아니오.]

 한주는 아무말도하지 않고 멀뚱히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단지 나도 당신에게 내가 베푼 만큼 뭔가를 돌려 받고 싶다는 거요.]

 [어떤...?]

 [내가 당신오빠에게 시간을 베풀었으니 당신도 나에게 시간을 베풀어주시오....]

 그녀는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듣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깐 당신이 그 3일을 당신의 오빠대신 나와 같이 보내야 한다는 거요. 어떻소...?]

 [네? 그건 말이 안돼요....]

 [왜 안 된다는 거요... 당신은 그저 나와 저녁 시간만 함께 보내면 되는 거요...그보다 더한 것도, 덜한 것도 바라지 않소...]

 

 한주는 그의 말에 너무 혼란스러웠다. 왜 그가 이런 이상한 제의를 자신에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단지 저녁시간을 함께 보낼 파트너가 없어서 이런다면 그건 더 더욱 말이 안 된다. 지금 그가 거리에 나가기만 해도 그와 한시간이라도 같이 지낼 수만 있다면 목숨걸고 매달리는 여자들이 한 타스는 족히 넘을 것이다. .......혹시... 그가 나에게 매력......아냐.. 그건 더욱, 더욱, 더욱 말이 안돼. 하지만 그의 제안을... 왜 이렇게 받아들이고 싶을까? 그녀는 자신의 그 말도 안되는 생각에 일말의 희망을 품고 대답했다.

 [좋아요... 받아들이죠..]

 [좋소. 그럼 내일 6시에 데리러오겠소.]

 

 현우는 그녀의 집을 나오며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솔직히 그는 그녀가 그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냥 그는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제안한 것이었으나 그녀가 그의 제안을 덥석 물은 것이다. 현우가 그 제안을 한 까닭은 한가지 이유에서였다. 그는 자신이 왜 그렇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녀에게 끌리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야만 다시 예전처럼 다른 여자들도 만나며... 그리고 밤에 그 여자에게 시달리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훗...그 여자 그래도 그렇게 추녀는 아니더군...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그녀의 집 앞에 세워둔 자신의 차를 타고 떠났다.

 

 집으로 오는 길에 진이는 자신의 집에서 왜간 남자가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 후다닥 집으로 뛰어갔다. 문도 잠겨 있지 않아 불안한 마음이 한층 더 했다.

 [한주야. 한주야...]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거실로 들어서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자신이 나갈 때와 별다른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거실 탁자 위에 있는 약상자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헉...! 그녀는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간 남자가 자신의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거실에 약상자가 놓여져 있다. 더 이상 어떤 결론을 내리겠는가...? 한주는 어딨는 거야...? 잠깐...약상자가 나와 있을 정도면... 그리 큰 부상은 아니라는 건데... 왜 불러도 대답이 없는 거지....

 

 [아~~ 바보, 바보...]

 갑자기 한주의 방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진이는 곧장 한주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에서 한주는 자신의 머리를 벼개에 파묻은 체 뭐라고 궁시렁대고 있었다.

 그런 한주를 보며 진이는 안심이 댔지만 한편으로 그 남자는 누구며 한주가 왜 저러고 있는지는 어리둥절했다.

 

 [한주야. 뭐 하는 거야...? 머리 아직도 아파?]

 한주는 자신의 뒤편에서 진이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진이가 자신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어.. 언제 왔어...?]

 [지금. 아직도 아픈 거야?]

 [어? 아니...]

 진짜 두통이 거짓말처럼 싹 가셨다. 아마 아까 너무 긴장한 탓에 아픔도 잊었나 보다......

 [그래.. 그럼 다행이다. 근데 아까.... 혹 집에 누구 왔었니?]

 [어?.....]

 그녀는 맘에 준비도 안 돼있는 상태에서 진이의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어.. 어떻게 알았어...? 사실은.. 사실은 말야.....]

 빨리 대답하지 못하고 뜸을 들이자 진이가 답답했는지 지레짐작 말을 꺼냈다.

 [혹시... 너네....정현우. 그 변호사?]

 그녀는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헉.... 그럼 다 들통난 거야....? 어떻게... 그가 뭐래? 고소하겠데....? 한주야 넌 아무 잘못 없다 그래... ]

 진이가 혼자 횡설수설되자 한주는 자신을 너무 걱정해서 나오는 그녀의 행동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꼈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먼저 나왔다....키킥.......

 

 [어..? 뭐야... 너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웃음이 나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진이는 아무런 이상을 못 느끼자 그녀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하~ 난 정상이야... 그리고 그에게 들키지도 않았고...]

 한주는 진이의 손을 자신의 이마에서 끌어내리며 말했으나 진이는 그녀의 상처난 손을 보고 더욱 놀라는 눈치였다.

 [악! 손은 왜 그래...? 많이 다친거야...? 어디서 그랬어...?]

 

 그 말에 한주는 탈지 솜과 미니붕대로 감긴 자신의 상처난 손가락을 쳐다보았다.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으나 그가 마치 손가락이 부러진 사람처럼 꾸며 놓았었다. 그녀는 갑자기 그가 자신의 손가락을 치료해주고 마지막에 입맞추어 준 생각이 머리를 속에 스치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빨리 자신의 생각을 지워버리고 진이에게 조금 전에 있었던 사실을 말하기 위해 진이를 안심시켰다.

 [괜찮아 조금 베인 것 뿐이야... 그리고 우선 이곳에 앉아봐.... 너에 해줄 말이 있어...]

 

 [뭐어?]

 한주는 진이에게 자신이 침대에서 일어나 그녀의 쪽지를 읽은 순간부터 그가 말한 조건까지 상세히 말해주었다. 그리고 진이는 그가 그녀를 여동생으로 착각한 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하지만 그 마지막 조건은 무슨 의미인지.... 그건 위험한 일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가 잠깐동안은 그녀와 그의 비서를 구별 할 수 없었는진 모르지만 그녀와 같이 지내면 그와 그녀가 동일인물이라는 걸 알아보는 건 시간 문제였다.

 

 [너 정말 그 조건을 받아들인 거야...?]

 [응... 첨엔 나도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근데..근데 진아..... 나 솔직히 그와의 데이트 한번 해보고 싶어... 그가 왜.. 나같이 못생긴 여자에게... 데이트신청을 한 건지... 이해가 되진 않지만 그래도...... 나 해보고 싶어...]

 [한주... 너 설마...그를.....]

 진이는 그 말을 들려주는 한주의 모습을 보며 '혹시 그녀가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꼭 14살 사춘기 소녀의 고백과도 같아 보였다.

 [아니... 잘 모르겠어......난 그저 그를 보면 가슴이 주체 할 수없이 떨리고, 그가... 가까이 다가오면 얼굴을 붉히게돼. 그리고... 다른 여자랑 같이 있는 그의 모습... 나도 모르게 화가나... 이런 감정 뭘까...? 만약.... 이런게 사랑이라면 그런 거겠지.....!]

 

 진이는 한주의 얘기를 듣고 24살이 되도록 데이트 한번 못해본 그녀가 자신의 생소한 감정을 어떤 건지 구별하지 못해 생긴 결과일 뿐. 사랑이라고 믿진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사랑이 아니더라도 처음으로 친구가 갖은 감정을 키워 주고, 그것을 사랑으로 만들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싶었다. 비록 사랑해서 안 될 사람일지라도.....

 [나 네가 느끼는 그 감정에 대해선 다른 말하지 않을게. 네가 데이트 해보고 싶다면 할 수 있어... 난 단지 그 일로 네가 더 힘들어 질까봐...]

 [알아.. 진이 네 마음... 이일로 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아는 사실이니까...그래서 내가 아침에 모든 걸 끝내려했던 거고.... 근데 막상 그를 마주보니 진실을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거야...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의 곁에 계속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안심이 됐어.... ]

 그녀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진이에게 털어놓았다.

 

 [한주야 그럼 다른 생각은 하지말고 네 감정에 충실해져봐. 다른 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 혹시 아니? 나중에 그가 널 진심으로 사랑하게되서 모든 걸 용서해줄지....]

 [하... 말도 안돼. 그가 날...? 나같이 못생길 여잘.....? 진이야 네 말은 고맙지만 그런일은 없어... 그 주위엔 얼마나 예쁜 여자들이 많은데...차라리 그가 날 용서해주는걸 믿지...]

 맞아. 내가 알기론 그에겐 김미희 같이 예쁜 여자 친구도 있어... 근데 그가 나같이 못생긴 여잘... 정말 말도 안돼... 그리고,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 건 단지...항상 예쁜 여자만 만나다가 나 같은 여자를 만나는 건 어떨지 궁금해서 일거라고 단정지었다. 그저 고유층의 사람이 좋은 옷, 좋은 음식들만 먹다가 어느 순간 그것이 답답하고 싫증이나 일탈하고 싶은 맘에 길거리에서 파는 불량식품이나 디자인이 평범한 옷을 입는 것과 같은 경우라고 생각했다.

 

 [아니야... 한주야...넌 못생기지 않았어. 넌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예뻐... 나보다도 훨씬....단지 네가 느끼지 못할 뿐이라고....]

 진이의 말을 믿을수가 없었다... 자신이 진이보다도 예쁘다니.. 말도 안된다. 진이는 고등학교때 학교에서 가장 예쁜 여학생으로 뽑힐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다. 어찌 자신과 비교하겠는가....? 그녀는 진이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해준 말이라고 생각했다.

 [고마워 진아....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냐.....누가 봐도 난 예쁘지 않아....]

 [난 위로하기 위해 한 말이 아냐... 넌 진짜로 예뻐... 나도 첨엔 몰랐지만...... 너 혹시 안경을 벗은 너의 모습 한번이라도 본적 있니....?]

 [응. 중학교 때. 그땐 안경을 끼지 않았거든. 그러다 갑자기 시력이 떨어져서 안경을 꼈고... 그 후론 안경을 벗고 거울을 보면 흐릿하게 보였어... 뭐 자세히 볼 생각도 안 했지만... 그러고 보니 중학교 땔 빼곤 지금 까진 못 봤네..... ]

 

 [잠깐만...]

 진이가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운 체 방으로 들어가 손거울을 가지고 나왔다.

 [그건 왜...?]

 [안경 벗고 이 거울 속에 비친 너를 자세히 들여다 봐바....]

 그녀는 진이가 시키는 대로 해보았다. 거울 속에 한 여자의 얼굴이 처음엔 흐릿하게 보이다 점점 선명해 졌다.... 어떤 아름답고 큰 두 눈이 놀란 눈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것이 정녕 자신인지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까지 살아오면서 한순간도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근데... 지금 이순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정말 예뻐 보였다. 마치 거울이 요술을 부린 것처럼....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진이를 바라보았다.

 

 [정말.... 거울 속에 있는 것이 나야...? 내가 이렇게 생겼어...?]

 그녀는 못 믿겠다는 듯이 진이에게 물었다. 진이는 그저 얼굴 가득 웃음을 띤 체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계속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때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진이에게 물었다.

 [진아... 그도 이런 날..보면 예쁘다는 생각이... 들까....?]

 한주는 모든 외출 준비를 끝내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진이가 흐뭇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의 그녀는 진이의 걸작품이었다. 예전의 촌스럽던 그녀는 찾아 볼 수가 없고 오직 세련되고 여성스러운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일부러 여성스런 면이 더욱 강조되는 검정색 누드라인 원피스를 입었다. 그 원피스는 체인으로 된 어깨 끈에 탑 스타일로 되어 무릎까지 오는 길이로 되어있었다. 원피스가 그녀의 몸에 달라붙어 그녀의 완벽한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이런 옷이 처음인 그녀는 쑥스러울 뿐이었다. 그나마 숄을 걸칠 수 있어 드러난 어깨와 몸을 조금이나마 가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녀는 일반 저녁 식사나 마찬가지인 데이트엔 너무 야한 옷이라고 몇 번이고 진이에게 말했지만 진이는 고위층 사람들은 원래 다 이렇게 입는다며 극구 이 옷을 그녀가 사게끔 만들었다.

 

 한주는 오늘 백화점에서 3벌의 옷을 샀지만 모두 이런 층의 옷이었다. 지금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그나마 검정색이라 점잖은 편에 속했다. 한 벌은 빨간색은 투피스인데 상의는 폴라 나시로 되었고, 치마는 무릎에서 10cm나 올라가는 길이에 몸에 너무 달라붙어 전체적으로 레드색상도 그렇고 바디라인이 너무 겉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짧은 청 반바지에 핑크색 탑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데이트에 정말 안 어울리는 옷이었다. 하지만 진이는 데이트가 아니어도 여름에는 이런 옷은 하나쯤은 있어야 된다며 사게 했다.

 

 그녀가 변한 것은 옷뿐이 아니었다. 자신의 외모를 가리던 그 안경도 벗어 버렸다. 렌즈를 착용한 그녀의 눈은 더욱 청롱한 빛을 띄었고, 변장으로 잘랐던 그녀의 긴 속눈썹은 더욱 길어져 마스카라를 하지 않아도 풍성했다. 그리고 안경으로 가려졌던 얼굴선도 완벽한 계란형으로 드러났고 그녀의 살짝 나온 광대뼈는 그녀의 얼굴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진이는 그녀의 모습이 흡족하지 않았는지 그녀를 화장대에 앉히고 자신이 직접 화장을 해주었다. 짙은 눈썹을 마스카라로 다듬어 더욱 강조했고, 속눈썹은 집게로 집어 자연스럽게 올라간 듯하게 했다. 그녀의 큰 눈을 화이트 펄을 사용해 은은하게 빛나 보이게끔 했으며 결정적으로 크고 도톰한 입술은 핑크빛이 도는 립글로즈로 너무 강조되지 않게 그냥 촉촉하게만 만들었다. 그리고 머리는 하나로 틀어 올려 깔끔하게 처리해 그녀의 예쁜 얼굴이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예쁘게 드러나게끔 했다.

 이렇게 모든 걸 끝내 놓고 보니 그녀는 잡지책에서 금방 튀어나온 모델 같았다.

 

 [어때! 나의 솜씨가.]

 진이가 자랑스럽게 물었다. 말하지 않아도 거울속 자신의 모습이 완벽 그 자체고, 너무나도 아름답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꼭 한주는 신데렐라가 된 것 같았고, 진이는 요술쟁이 같았다. 하지만 한주는 마냥 쑥스럽고 어색해 당장이라도 자신의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자신이 데이트에 너무 신경을 쓴 것은 아닌지...그가 이상하게 여길 것만 같았다.

 [진아 너무 꾸민 건 아닐까..? 그가..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무슨 소리야... 어제 너 내가 한말 잊었어? 그를 유혹하기 위해선 이 정도는 되야 돼. 네 말마따라 그 사람 주위에 얼마나 예쁜 여자들이 많은데... 너 벌써부터 약해지면 안돼.]

 그녀는 거울속 자신의 모습을 체념히 바라보며 어제저녁 진이와 나누던 대화를 되집어 보고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꾸미게 된건 어제 저녁 진이가 가져다준 손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본 다음부터 였다.

 [진아... 그도 이런 날..보면 예쁘다는 생각이... 들까....?]

 [당연히... 같은 여자인 내가 바도 샘이 날 정도로 예쁜데...]

 한주는 진이의 좀 과장된 표현이라는 걸 알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고마웠다. 솔직히 지금 자신이 예뻐 보이긴 하나 진이 만큼은 아니었다. 어찌 천사 같은 진이의 얼굴과 비교하겠는가. 단지 자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진이의 맘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고마워. 나 그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아무리 내가 그를 가까이 할 수 없는 사이라고 해도 나에게 주어진 그 3일 동안은 모든걸 잊고 그에게 예쁜 여자인 모습으로 다가가고 싶어. 나중에 결과가 어떻든 지금 내 감정에 충실해지고 싶어... 이런 내가 한심하지?]

 [아니...누구든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하지 못나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어. 그게 남자든 여자든 똑같애. 누가 그걸 한심하다고 생각하겠니. 이런 너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거야. 그리고 이렇게 결정된 이상 그3일을 평범한 데이트라고 생각하면 안돼!]

 [그게 무슨 말이야.]

 조금 전만 해도 자신이 그 데이트를 모든걸 잊고 즐기고 싶다고 말했을 때 동의하는 듯한 진이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도 알잖아 이 데이트가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이라는 걸. 넌 최대한 예쁘게 보여서 그를 유혹해야돼. 그가 진실을 알고도 널 용서할 수 있도록.]

 [뭐라고?]

 진이가 음흉한 미소를 띄며 뭔가 확신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길 뿐이야. 생각해봐 네가 남자가 아니고 여자라는 걸 그가 알면 그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애. 아~그랬군요. 이한주씨는 여자였군요. 하면서 받아줄 것 같냐고...아냐 그가 어떻게 나올 거라는 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네가 더 잘 알거야.]

 [하지만 진아...]

 진이가 손을 들어 한주의 말을 막았다.

 

 [아니 우선 내 말만 들어.]

 그녀는 아무 말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 진이의 말을 들었다.

 [다른 말은 필요 없어. 넌 그렇게 해야돼. 그렇지 않으면 난 이 데이트 반대야. 차라리 데이트고 비서 일이고 모두 다 그만두는 것이 났지. 나에겐 네가 소중해 네가 그 일로 다치게 되는 건 바라지 않아.]

 진이는 일부러 흔들리는 그녀의 마음을 잡아주고 용기를 주기 위해 강하게 나갔다.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선 그가 널 사랑하게끔 만들어야돼. 그리고 너도 그를 사랑한다며... 그를 붙잡고 싶잖아. 그렇지?]

 진이는 한주의 혼란스러워 하는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얘기를 계속해나갔다.

 

 [데이트 끝나면 너의 태도도 분명해 줘야해. 계속해서 그를 속이고 비서로서 그의 곁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주어진 3일 동안 그를 유혹해서 모든걸 밝히고 여자인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갈 것인가...난 네가 후자를 택하길 바래.]

 한주는 아무말하지 않고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후자를 택하고 싶어...하지만...하지만 그가..날 사랑하지 않게 되면...]

 [아니 그는 널 사랑하게 될 꺼야.]

 

 그녀는 살짝 머리를 흔들어 어제저녁 진이와 대화하던 장면을 지워 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말도 안 된다. 어제 진이는 그녀에게 그를 유혹하라고 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게끔 만들라고 했다...... 아직 자신이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이런 감정을 사랑이라고 믿는 그녀인데....... 그녀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남자와의 데이트도 한번 못해본 그녀에게 진이가 너무 많은걸 바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유혹하기는커녕 데이트를 하면서 그에게 유혹 당해 모든 걸 밝히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진이는 어디서 그런 확신을 얻었는지 그가 그녀를 사랑하게 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

 

 아냐... 쉽게 포기해선 안돼. 이렇게 까지 날 생각해주는 진이를 실망시킬 순 없어...두렵지만 용기를 내봐 이한주... 뭐 남자 유혹 하는게 별거겠어.... 다른 여자들 다 하는데 나라고 못하라는 법은 없지! 무식한 여자는 용감하다고 했던가 난 연애에 대해서 말장 꽝이니 더 잘할지도 모르잖아...! 뭐 그냥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해보는 거야. 그래도 안되면 할 수 없는 거고... 노력이나 해보자....그렇게 마음을 다잡는데도 그녀의 머릿속에선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오고 있었다.

 

 [한주야...한주야...]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몇 번이나 불렀는데.]

 [어..아냐. 왜..?]

 [나보고 한번 매력적으로 웃어봐.]

 한주는 진이의 엉뚱한 제의에 일부러 웃지 않아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면서 그녀의 큰 듯한 매력적인 입술이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가지런한 하얀 치아를 드러냈고 그녀의 예쁜 두 눈이 속눈썹에 싸여 아침해가 동산에 숨어 살짝 얼굴만 비치듯 눈웃음치자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래 완벽해...진이는 감격에 젖어 일부러 쓰러지는 척했다.

 

 [어..어어어...]

 한주는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며 쓰러지는 진이를 당황해하며 붙잡았다.

 [왜 그래... 갑자기 어디 아픈거야...?]

 진이가 한주를 보고 씩~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니. 네 미소가 너무나 눈부셔 뻑~하고 넘어 간 거야.]

 [하~뭐야~?]

 한주는 진이의 장난에 어의가 없었지만 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되던 맘이 한결 나아지는걸 느낄 수 있었다. 5시 50분. 그가 데리러 오겠다고 한 시간까지 이제 10분 남았다. 그녀는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그렇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우는 정확히 6시에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는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과연 자신이 잘하고 있는 것인지 얼마나 많이 생각했는지 모른다. 지금 자신이 이일을 벌린 것은 잘 알지도 못하는 그녀에게서 느끼는 감정에 대해 해답을 얻고자 함이데 그는 괜히 이것이 불안하게만 느껴졌다. 정현우 뭘 겁내는 거지. 평소 모험을 즐기는 너답지 않아.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접고 초인종을 힘있게 눌렀다.

 

 "♬♪♪♬♪♪♬∼∼∼∼∼"

 그가 왔다. 진이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그녀에게 눈으로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한주는 진이가 주는 용기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폭발할 듯이 마구 띄어 크게 쉼 호흡만 하고 있었다진이가 벨소리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며 어서 가보라고 한주를 재촉했다. 한주는 사정없이 띄는 자신의 심장을 진정 시키며 현관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진정해. 진정하자. 이래 같고 어떤 일을 하겠니... 현관문 손잡이를 돌리며 그녀는 용기 내어 활짝 웃으며 그를 맞아주었다.

 

 현우는 문이 열리자 안에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 쳤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여자가 자신을 보고 미소 짖고 있었지만 그는 갑작스런 미모여인의 출현에 멍하니 입만 벌리고 그녀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녀는 검정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녀의 외모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아마도 저 여자만큼 저 옷을 소화해낼 여자는 없을 것 같았다. 미소짓던 그녀의 표정이 누군가를 기다렸는지 자신을 보고 실망스런 눈빛으로 변하자 그는 얼른 자신의 생각을 지우고 그녀에게 사과했다.

 [아..죄송합니다. 제가 집을 잘못 찾아 왔군요.]

 [아 저..]

 

 한주가 말을 하기도 전에 그가 당황해 하며 문을 닫았다. 그가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아무런 말이 없자 그녀는 실망스러웠다. 근데 그가 아예 모르는 사람을 본 듯하고 나가는게 아닌가... 뭐야..! 저 남자 왜 저래..? 또 날 못 알아 본 거야... 저 남자 눈이 의심스럽다. 안경은 내가 아니라 저 남자가 써야겠는걸... 그녀는 그가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서둘러 문을 열었다.

 

 [저..현우씨...]

 현우는 자신을 부르는 소릴 듣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미모의 여성이 자신을 보고 다시 활짝 미소짓고 있었다. 내가 저 여자를 아나...? 그는 그녀의 얼굴을 오목조목 바라보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큰 눈... 그 눈은 풍성하고 예쁘게 말아 올라간 속눈썹에 쌓여 너무나 맑고 청롱한 빛을 내 품고 있었다. 저런 눈을 가진 여자는 그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약간 작은 듯 하면서도 높게 뻗어 있는 콧날....그의 시선이 점점 그녀의 콧날을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그녀의 입술...?! 그는 그녀의 도톰한 핑크빛 입술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였다. 그 못생기고 이상한 안경을 걸쳤던 여자.... 아~ 말도 안돼... 그녀가 이렇게 예뻤나... 현우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의 눈을 혼란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그런 그의 모습이 우수 운지 얼굴에 웃음이 더욱 커지고 있었다.

 

 [맞소..?]

 [네... 저예요...데이트 신청까지 하시고 절 못 알아보시니 실망인걸요.]

 그녀가 장난스럽게 그를 바라보며 정말 실망했단 듯이 말했다.

 [아 미안하오... 난 당신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미처... 아..아니오...내가 이런 미인과 데이트를 하게 되다니 영광이오.]

 현우는 자신이 이 자리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해 느낀 그대로 기나긴 연설을 하기 전에 서둘러 미인이라는 말로 함축시켜 그녀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한주는 미인이라는 말을 처음 듣다 보니 그 한마디가 어떠한 미의 찬송보다도 듣기 좋았고, 어느새 그녀의 얼굴엔 붉은 기운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니요. 도리어 제가 영광이에요.]

 [자..그럼 우리 서로에게 영광스런 이 첫 번째 데이트를 즐기러 갑시다.]

 [네.. 아 잠깐만요.. 먼저 나가 있으시겠어요. 곧 따라 나갈게요.]

 

 그녀가 핸드백을 가지고 집에서 나오자 그가 자신의 차 포르쉐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가 그녀에게 차 문을 열어주었고 그녀는 그 멋진 은색 스포츠카에 흠이나 날까 살포시 앉았다. 그 멋진 포르쉐는 첫 느낌처럼 아주 부드럽게 그리고 조용하게 그녀의 집 앞을 벗어났다.

 

 차안에 둘만이 있자 어색한 감이 들었는지 그가 음악을 틀었다. 이문세의 "기억이란 사랑보다..."의 슬픈 선율이 흘러 나왔다. ' 내가 갑자기 가슴이 아픈건 그대 내 생각하고 계신거죠 흐리던 하늘이 비라도 내리는 날 지나간 시간 거슬러.......'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 선율을 들으며 가사 말을 머릿속으로 되 세기고 있었다. 그도 이런 사랑노래를 듣는구나...후후...그녀는 그래도 그가 그렇게 메마른 감정의 소유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그가 자신을 사랑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현우는 그녀의 변화된 모습에 혼란스러웠다. 이 데이트를 자신이 왜 추진한 것인가... 바로 못생긴 그녀에게 터무니없이 끌리는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그 이유를 찾아...그래 맞아 타당한 이유를 찾고 그녀에게 해방되고자 이런 일을 벌린 것이 아닌가.. 여기서 그녀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해 버렸다면 이건 자신의 계획에 크나큰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어떻게 하루만에 못생긴..? 아니지 솔직히 그렇게 못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도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 근데...지금은... 그는 얼핏 고개를 돌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까지 붉히고 있는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젠장...저 여잔 옆모습도 예쁘군... 이러 단 내가 덧에 걸리겠어...3일 내가 방심하기엔 너무나 긴 시간이다. 그녀에게 경계를 풀어선 안 된다. 그렇게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다짐을 하고 있었다.

 

 [저..음..]

 그녀가 침묵을 깨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로 가는 거죠...]

 [아...내가 너무 설명이 없었군. 미안하오. 회 좋아하시오.]

 [아니..흠! 좋아해요..]

 그녀는 회를 싫어한다. 하지만 벌써 정해놓은 장소를 그녀의 말로 인해 번벅하기 싫어 거짓말을 했다. 아니 그는 내가 싫든 좋든 신경도 안 쓸지 모르지만...

 [다행이군... 어쩔지 몰라 내가 자주 가는 곳으로 정한 것이오...좀 멀리 가야 하는데...]

 [얼마나요..]

 [월미도 쪽이니...아마 1시간은 걸릴 거요...괜찮겠소..]

 [너무 멀리 가는 거 아닌가요.]

 [뭐 싫다면 지금 말하시오.]

 그가 그렇게 그녀의 의견을 묻는 것 같았지만 그녀가 느끼기엔 그녀의 의견은 필요 없다는 투로 말하고 있었다. 얼굴을 잔뜩 찡그린 체...

 

 [아니요... 전 괜찮아요...단지 당신이 운전에 피곤 할까봐...]

 [그거라면 나도 괜찮소.]

 그가 조금 전 만해도 인상쓰던 얼굴을 지우고 그녀를 향해 미소짓고 있었다. 어쩜 저렇게 감정 변화가 심할까... 자기가 원하는 건 다 해야 하는 4 살배기 어린애 같다...하지만 그녀는 그런 그를 향해 자신도 모르게 미소짓고 있었다.

 [당신 웃는 얼굴이 정말 예쁘군.]

 [네..?! 아.. 고마워요.]

 

 한주는 갑작스런 그의 칭찬에 쑥스러워 또다시 얼굴을 붉혔지만 예쁘다는 말은 너무나 듣기 좋은 말이었다. 아마 이래서 아무리 예쁜 여자라도 더욱 예쁘게 보이기 위해 자신을 가꾸는 거겠지...비록 자신은 24년..바로 어제 저녁때까지 이런걸 이해 못했지만.....

 [당신은 칭찬엔 익숙지 않은가 보군... 금새 또 얼굴을 붉히는 걸 보니...]

 그의 말에 그녀의 얼굴은 더욱 붉어져 잘 익은 토마토처럼 되어 버렸다.

 [하하하... 당신은 모든 게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나는군 그래...하하하~~~]

 

 그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까지 자신이 알고 지내온 여자들은 그의 어떤 행동에도 얼굴을 붉히는 여자는 없었다. 그와 관계를 가질 때도 얼굴을 붉히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체위를 밝히면서까지 그에게 육체적으로 더 많은 걸 바라고 더욱 과감한 행동을 해오는 여자들뿐이었다. 그리고 어쩌다 그를 꼬실려고 일부러 수줍은 처녀처럼 행동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여자는 그 여자들과는 다른 분류의 여자같이 보였다. 그녀가 얼굴을 자주 붉히는 것처럼 그만큼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9년 전에 만났던 그 순수하고 예쁜 소녀처럼....

 

 아이~~왜 이렇게 얼굴을 붉히는 거야... 창피하게...이렇게 그가 말을 할 때마다 얼굴을 붉히면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금방 그가 눈치 챌 텐데... 근데... 왜 그는 가벼운 식사로 끝내도 되는 걸... 1시간이나.. 가야하는 곳으로 데이트 장소로 정한 걸까... 갑자기 이런 쓸데없는 의문이 그녀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떠나지 않았다.

 [저기여...뭐하나 물어도 될까요.]

 [뭔데 그러시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 보시오... 아.. 글구 난 저기여 보단 현우씨라고 부리는 것을 좋아하오. 그리고 데이트를 하는 상대라면 그렇게 불러야 하지 않을까. 아..그러고

 보니 난 아직 당신 이름도 모르는군... 난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하오?]

 

 [이한주..헉?! 아니.. 이한진이여..]

 이런 바보 같이...그가 못 들었겠지..! 어떻게 이름에 대해선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단 말인가. 그녀는 실수로 자신이 꾸며낸 오빠라는 사람의 이름을 댈 뻔했다. 이한주...워낙 남성적인 이미지인 이름이라 그녀는 그의 회사에 이력서를 낼 때 특별히 바꿀 필요가 없다고 느꼈었다. 근데 지금 자신은 그 일로 인해 그에게 들통 날 뻔했다. 한심하긴...그녀는 당황스러움에 버릇처럼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그에게 물어 보려 했던 것에 대해선 까맣게 잊어버린 체....

 

 그는 처음에 이한주라고 들은 것 같았다. 이한진...아마 워낙 비슷한 이름이다 보니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일 것이다. 그는 약간 당황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이 이상했지만 그걸 더 이상 화재로 삼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런 생각도 그리 오래 자신을 붙잡진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걸까..저런 행동이 남자를 유혹하는 거란 걸 그녀는 알까... 그녀에게 지금 당장 키스만 할 수 있다면... 그는 너무나 엉뚱한 생각에 다른 건 생각할 수가 없었다. 다만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약간 초조한 눈빛으로 그의 표정만을 살피고 있었다.

 

 [이.한.진. 왠지 당신과 어울리는 이름은 아닌 것 같소.]

 휴~그녀는 속으로 안심하며 그에게 대답했다. 그리고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그에게 엉뚱한 부탁까지 해버렸다.

 [네.. 저도 그렇게 좋아하는 이름은 아니에요. 그럼 현우씨...가 제 닉네임을 하나 지어 주시는게 어때요.]

 [내가...?!말이오?]

 그도 그녀의 제안에 놀라는 눈치였지만 곧 얼굴이 환하게 미소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런 건 특별한 거겠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만 부르는 그들만의 애칭... 한주는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한번 이런걸 해보고 싶었다. 비록 자신은 혼자만의 짝사랑일지라도...그녀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녀에게 애칭을 지어 준다는 것이 좀 어색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뿌듯하고 좋았다. 그녀에겐 어떤 애칭이 어울릴까...? 그녀는 아주 순수하고 예쁘다.. 그렇지만 연약해 보이거나 허술해 보이진 안는다... 어떤 표현이 그녀에게 딱 어울릴까...? 그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봐도 지금은 왠지 이렇다하는 표현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 나중에 더 깊이 생각해 보고 말하자...그는 이상하게 이 일이 아주 자신에게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냥 지금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그녀에게 지어 주고 싶진 않았다.

 

 [아 그건 그렇고... 아까 당신이 물어 보려고 했던 건 뭐요.?]

 [네..? 아... 뭐였더라... 이상하게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요... 나중에 다시 생각나면 물어 볼게요.]

 [아 그럼 나중에 생각나면 꼭 물어보시오. 갑자기 그게 무엇이었는지 너무 궁금하군...]

 그는 뭐가 기분이 좋은지 말장난까지 치며 생글거리고 있었다. 내 기분은 망쳐 놓고... 치... 그깟 애칭하나 짓는게 뭐 그리 힘들다고... 그녀의 잔뜩 부풀어 있던 기대가 고무풍선에 바람 빠지듯 가라앉았다. 그래 그도 어쩌면 이런걸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라.. 그래서 나같이 별 볼일 없는 여자한텐 흘리는 듯한 애칭한마디라도 하기가 싫은 거겠지.... 그녀는 실망한 자신의 마음이 그대로 얼굴에 나타나기 전에 차내 창가로 얼굴을 돌렸다. 근데 어느새 그들이 대화를 나누며 월미도에 도착했는지 그녀의 눈앞에 넓은 바다가 펼쳐지고 있었다.

 

 [와~바다예요...]

 그녀는 그 모습에 조금전의 실망스러움도 잊고 오랜만에 보는 너무나 맑고 푸른 바다의 매력에 흥분되어 환호성을 질렀다.

 [바다 좋아하오.]

 [네. 얼마 만인지 몰라요.]

 그녀가 창문을 열고 바다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들떠하며 고개를 창문 밖으로 내밀고있었다. 저런 모습은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 소녀 같군... 그런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그도 즐거워졌다. 그래서 운전을 하면서도 옆 눈으로 그녀와 바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차내 덮게를 열어줘야 겠군. 그럼 더 좋아하겠지...그렇게 생각하며 버튼으로 손을 옮기고 있었다. 근데 그녀가 위험한지도 모르고 마냥 들떠 자꾸만 바깥쪽으로 몸을 내미는 것이 아니가... 그는 그런 그녀를 보고 기겁을 하며 버튼으로 옮기던 손으로 그녀를 좌석으로 끌어 앉혔다.

 

 [뭐 하는 거요]

 [아~~ 깜짝 놀랐잖아여.]

 [하...당신이 놀랬으면 난 어떻겠소...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요. 아님 죽고 싶어 환장 한 거요.]

 현우가 큰소리로 그녀에게 화를 내자 그녀도 화가 났다.

 [무슨 소리예요. 전 그저..]

 [하. 잘못하면 다른 차와 부딪칠 수도 있소.. 그럼 어떻게 되는 줄 아오... 꽝!! 뭐 머리가 잘려 나가거나 목이 부러지겠지..]

 [그렇게 과장하지 말아요.. 그리고 그땐 차도 안 지나다녔어요. 제가 어린앤 줄 알아요...그런 건 나도 안다고요. 난 그저 바다 내음을 한껏 맡아보고 싶었을 뿐이라고요.]

 

 [그럼 진작 나한테 말하지 그랬소...이 차는 다른 차와 다른 스포츠카요...덮게를 열어 줄 수도 있었소. 몰랐던 거요?]

 현우는 자신이 화내건 생각도 못하고 그저 그녀를 걱정하던 자신에게 그녀가 도리어 화낸다는 생각에 일부러 그녀를 무시하는 투로 말했다.

 [....네. 몰랐네요. 제가 언제 이렇게 비싼 차를 타봤겠어요. 제가 너무 바보 같이 굴었군요... 다음부턴 주의하죠.]

 그녀는 그의 말에 더욱 화가나 비꼬는 투로 대답하고 더 이상 말하기 싫어 창가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분위기가 다시 서먹해 졌다. 현우는 자신이 너무 과민 반응을 보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 그냥 좋은 말로 할 수도 있었는데... 하지만 그녀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자 이성보단 감정이 앞서게 되었다. 휴~ 이러다간 데이트도 다 망치겠군... 그는 속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를 하고 있었다.

 

 아~ 바보 같이 이게 뭐야... 그는 내가 걱정되서 그런 거야... 이제 좀 친해지나 했는데...내가 다 망친 거야.. 휴~이러면서 무슨 그를 유혹하겠단 거야...사소한 것에도 발끈하는 성격에...빨리 분위기 더 안 좋아지기 전에 그에게 사과하자. 그녀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도 후회를 하는 것인지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하며 고개를 돌리고 처음부터 운전에만 신경 썼다는 듯이 행동했다. 키킥...그녀는 그런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녀의 웃음소릴 들었는지 그가 그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어색하게 그들의 시선이 얽혔다. 그리곤 미안하단 사과 한마디 없이 그녀가 웃었고 그도 따라 웃으며 그냥 그렇게 서로 어색한 화해를 했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그가 차를 멈추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주의 환경을 바라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곳은 자신이 생각한 음식점이 아니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작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별장이 자리잡고있었고, 그 주위론 풍성한 나무와 꽃들이 어울러져 있었다. 한주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에 그만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한주는 서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여긴... ]

 [어떻소. 마음에 드오? 여긴 내가 자주 오는 별장이오. 당신도 사람들이 많은 음식점 보단 여기가 편 할거라 생각했는데...]

 [아...네. 너무 아름다워요.]

 현우는 그녀가 마음에 들어하자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그는 그냥 가까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칵테일 바에서 간단하게 한잔할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예약까지 해났었지만 무엇 때문인지 그녀의 집 앞에서 그녀를 기다릴 때 모든 계획을 바꾸게 되었다.

 [들어 갑시다.]

 현우가 한주를 이끌고 별장으로 들어갔다. 겉모습도 아름다웠지만 실내는 더욱 예쁘게 꾸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값비싼 가구와 소품으로 꾸며진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 모르게 가구 하나하나 정성이 들어 보였고 따듯함이 베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누군가 이곳을 돌보고 있는지 여기저기 실내 가득 장미꽃으로 꾸며져 그 향이 너무나 향긋하게 풍겨져 나와 이곳에 도취되는 듯 했다...

 

 [별장이 너무 예뻐요...]

 [고맙소. 이곳은 나의 외조부께서 할머니를 위해 직접 지으셨소. 할머닌 어머니를 낳으신 후 몸이 허약해 지셔서 요양이 필요했다하오. 그래서 어머니가 6살 때 할아버진 모든 걸 정리하시고 이곳을 지어 할머니를 위해 손수 가꾸셨소. 그리곤 남은 여생을 여기서 함께 하시다 떠나셨소...이런 내가 쓸 때 없는 얘길 한 것 같군.]

 

 [어머. 아니에요... 전 그분들의 사랑이 부러운걸요.. 현우씨 할머님 정말 행복 하셨겠어요. 그렇게 자신을 사랑해주시는 분을 평생의 반려자로 만나셨으니...]

 [맞소. 할아버진 평생 할머니 한 분밖에 모르셨소. 어릴 적 이곳에 자주 놀러 왔는데..그때마다 내가 느낀 건 할머니에 대한 할아버지의 아낌없는 사랑이었다오.]

 

 그가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한번은 장미를 좋아하시는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진 몰래 정원을 가꾸셨다오. 그곳엔 오직 장미와 할아버지의 사랑만이 존재하는 듯했소. 그 장미 정원을 완전히 가꾸는 되만 해도 3년이 걸렸는데 완성된 그곳은 너무나 아름다웠다오. 그리고 할아버진 그 아름다운 장미정원을 그 해 결혼기념일 날 할머니께 선물 하셨소. 그때 할머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셨던 것 같소.]

 

 한주는 사랑스런 눈빛으로 자신의 외조부의 사랑얘기를 들려주는 현우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가 평소 사람들에게 차갑게 굴진 모르지만 속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확신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도 자신의 외조부와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와~~ 정말 너무 부럽네요... 저도 그 장미 정원이 꼭 한번보고 싶은데... 장미 정원 아직도 있어요?]

 [그렇소. 이따 식사하고 보여주리다. 그럼 이 얘긴 여기서 그만 합시다. 이렇게 얘기만 하단 둘 다 굶어 죽을 것 같으니...]

 [후훗...네..]

 그녀가 웃으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사실 그녀는 너무 배가 고팠다. 오늘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점심때 진이랑 먹은 햄버거뿐이었다. 그와의 데이트에 이것저것 준비해야 해야 될 것이 많다 보니 시간에 쫓겨 간단한 햄버거로 때워야 했다. 갑자기 먹을 것을 생각하니 더욱 허기가 지는 듯 했다.

 

 [그럼 잠깐 쇼파에 앉아 기다리겠소. 내가 저녁을 준비하리다.]

 [네? 직접 준비 하신다고요?]

 그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응시하며 물었다. 그가 직접 음식을 하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자신도 못하는 음식을 그가 할 줄 안다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그녀였다.

 [그렇소 내가 직접.]

 

 [아..아니요. 그럼 저도 도울게요.]

 그녀는 쇼파에서 일어나며 자신의 눈으로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 그를 따르며 말했지만 그가 그녀를 재지 시켰다.

 [아니... 당신은 손님이오. 난 주인이고. 주인이 손님을 대접하는 건 당연한 거요...그러니 당신은]

 그녀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고 웃으며 말을 했다...

 [큭..저 잔깜만요... 전 현우씨네 집에 초대 된 게 아니라 지금 우린 데이트 중이예요..벌써 잊으신 건 아니겠죠..]

 [아... 그런가... 뭐 그래도 할 수 없소. 당신은 저기 앉아서 기다려야만 하오. 이건 명령이오...]

 

 [하지만..]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 하자 현우는 억지로 인상을 쓰며 그녀가 자신의 말에 따르게끔 했다. 아휴~ 이 여자 무슨 말이 이렇게 많은 거야.. 그냥 하라는 대로하면 되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솔직히 말할걸 그랬나... 사실 그가 주방에서 준비할 건 별로 없었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그의 연락을 받은 장씨 부인이 식탁에 음식을 다 차려 놓았을 것이니까. 그럼 그는 주방으로 들어가 몇 가지를 더 챙기고 그녀에게 자신이 그녀를 위해 준비했다고 하면서 그녀를 감동시키면 끝이다... 근데... 저 여자가 지금 눈치 없이 이 순간에 끼어 들려는 것이다...

 

 [아..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그의 표정 연기가 효과가 있었는지 그녀가 순응하자 현우는 얼른 주방으로 들어가 차려진 음식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고급 와인을 꺼냈다. 그렇게 모든 걸 끝내는데 딱 10분이 걸렸다. 너무 이른가...좀 기다렸다 부를까.. 아니지.. 그렇다고 더 기다리게 만들 순 없지... 거실에서 창문을 열고 바깥 풍경을 구경하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현우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들뜬 마음으로 그녀를 부르러 다가가려다 갑작스런 생각에 흥얼거림도 멈추고 한발자국도 못 가서 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왜 이러지... 뭐가 이렇게 기분을 좋게 만든 거지... 그는 그녀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녀... 계속해서 이런 기분이 들면... 저 여자에게 더 끌릴 뿐이겠군. 정현우 처음에 네가 이 데이트를 제안한 목적을 생각해라... 넌 그녀와 진짜로 데이트를 하는게 아니잖아. 그때 그의 인기척을 들었는지 그녀가 현우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어. 벌써 다 준비한 거예요.]

 그녀가 미소짓고 있었지만 현우는 무뚝뚝하게 말을 내뱉고 돌아서 버렸다.

 [흠..그렇소 들어오시오.]

 현우가 그렇게 말하고 주방으로 들어가 버리자 한주는 그가 좀 이상해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아까 주방에 들어가기 전에 화나척 해도 정말로 화나지 않았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근데 지금의 그는 진짜로 화가난 사람처럼 보였다. 혹.. 음식이 맛없게 됐나..? 아님 다 못 끝낸 건가?! 아.. 맞어 그런 거야..그것 밖에 없잖아 그가 화낼 이윤... 처음에 자신 있게 말했는데 생각처럼 안된나 보지..? 치...저 남자 의외로 귀엽네...

 

 한주는 그렇게 단정지으며 그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간 순간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식탁엔 진수 성찬이 차려져 있었고, 싱크대엔 설거지 걸이 하나 보이지 않았다. 뭐야... 이 많은 걸 언제 다 차린 거야... 요술이라도 부린 거야.. 아!!! 그녀는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으로 장난스럽게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어머 현우씨 어디다 우렁이 각시라도 숨겨 놓은 거예요.]

 하지만 현우는 웃지도 않았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갑작스런 감정에... 그녀를 보면 자꾸만 즐거워지는 감정에 어떻게 처신해야 될지 몰랐다. 현우는 여자를 만나면서 이런 감정이 드는 건 처음 이었다. 그래서 더욱 날을 세워 그녀를 경계하는 그였다.

 

 [솔직히 말해봐요. 이거 현우씨가 직접 만든 거 아니죠? 누구예요?]

 [...]

 [현우씨.. 왜 그래요...? 어디 안 좋아요?]

 [아니오.]

 [하지만 얼굴빛이...]

 [괜찮다고 하지 않소. 식사나 하시오.]

 그는 버럭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곤 그는 놀란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호수 같이 맑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순간 그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제안한 것에 따르는 것뿐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에게 자신이 무작정 끌린다고 해서 그녀에게 화내서는 안 되는데... 하지만 지금 현우의 기분은 엉망 그 자체였으며...그의 행동은 말 그대로 최하였다.

 

 그녀는 그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 의문인 그녀였다.

 갑자기...왜 저래.. 뭐라도 잘못 먹었나...치... 그래 나도 상대도 안 하겠어... 내가 마음에 안 들면 말로 하지 왜 사람을 무시하고 화를 내는 거야....그녀는 눈물이 나올 것 같은걸 입술을 깨물고 꾹~ 참았다. 아무래도 진이야..내가 그를 유혹하는 건 말도 안돼는 생각인 것 같다. 이렇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어떻게 유혹하겠어... 씨도 안 먹힐 소리였나 봐...

 

 그렇게 그들은 서먹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했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먹는지도 모르고 그냥 집히는 대로 먹어댔다. 다른 분위기에서 먹었다면 진짜 맛있었을 음식이 지금은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그건 현우도 마찬 가지였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손이 가는 대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한 체 그냥 음식을 입안으로 쑤셔놓을 뿐이었다. 하지만 한주가 보기에 그는 그녀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아주 맛있게 먹어대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런 그의 모습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먹던 것을 소리나게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따졌다.

 

 [도대체 제가 뭘 잘못 했죠... 갑자기 왜 이러는 거예요. 답답하게 사람 무시하지 말고 말을 해요.]

 현우는 그런 그녀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대해 그녀에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가 계속해서 음식을 먹으며 그녀를 무시하자 한주는 그를 째려보고 무언가 낮게 중얼거리며 의자를 제치고 그곳을 나가버렸다.

 그는 그 말을 똑똑히 들었다.

 ' 바보, 멍청이, 먹보, 돼지 같으니라고....

 ' 바보, 멍청이, 이기주의자, 나쁜놈.....'

 그녀는 별장을 나와 무작정 걸으며 쉴새 없이 입으로 험한 말들을 내뱉고 있었다. 그가 왜 그렇게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조부모 이야기를 들려줄 때를 생각해 보았다... 그럼 내가 느낀 것도 착각이었을까..? 그녀는 머릿속이 너무나 복잡했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왜 이렇게 사랑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한주는 복잡한 생각을 접고 바닷가로 향하고 있었다.

 

 ' 바보 멍청이...... ' 그녀의 마지막 말이 떠나지 않고 그의 머릿속을 맴돌며 그를 조롱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나가자마자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어쩌자고 그렇게 행동했을까... 그렇게 행동해서 나에게 돌아온 건 뭐지... 그녀의 슬픈에 젖은 비난...?! 하지만 자신의 낯선 감정에 혼란스러웠던 현우는 그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그 감정조차 인정하기 두려울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비겁함으로 그녀에게 상처를 줬다고 생각하니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그는 도저히 별장에 앉아서 그녀를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아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한주는 한참을 그렇게 걸어 바닷가에 도착했다. 바다를 보면 위로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도리어 별장과 너무 떨어진 곳으로 와서 나중에 돌아 갈 때가 걱정이 되었다. 늦은 저녁인데도 여름이라 그런지 해가 수평선에 걸려 살짝 얼굴을 드러낸 체 아름다운 자신의 색깔로 바다를 물들이고 있었다. 그것을 구경하던 주위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한주가 보기엔 그 노을진 바다는 온 세상을 밝게 비추던 태양의 장렬했던 모습이 그리움만으로 남아있는 것 같았으며, 바다에 그리움이 물들 듯 그녀의 외로움도 하나의 노을이 되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완전히 태양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것을 바라보다 그 자리에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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