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령이 성현에게 청첩장을 건넸다. 성현이 청첩장을 열었다.
//귀댁에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바쁘신
중에라도 와주셔서 자리를 빛내주시고 축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
다........ 신랑 장원길...... 신부 은미령//
"결혼하기로 했구나......"
"원길씨 그룹에서 새로 오픈하는 멀티플랙스 극장이래..."
"극장에서 결혼식을 한다고?"
"응... 대단한 이벤트가 될 모양이야..."
"기분 좋겠네...."
성현이 우울한 눈빛으로 청첩장을 봉투에 넣었다.
"나 할 말 있어..."
"뭔데?"
"원길씨가 다음 주부터 자기 집에 들어오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어..."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
성현이 냉장고 문을 열어 싱싱한 과일을 골랐다. 한참을 뒤적거리다 복숭
아를 꺼내 한 입 물었다. 아작아작 씹으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미령
이 쓸쓸히 성현을 봤다.
"다음주면... 내일이잖아?"
"응.... 일찍 말하려고 했는데....."
"잘했어... 잘했어..."
복숭아가 싱거운 듯 싱크대에 던져버렸다.
"그럼 마지막으로 밥 한끼 얻어먹을 순 있지?"
"당연하지...."
구수한 된장찌개가 뚝배기에서 끓고 있었다. 미령이 성현을 봤다. 쉽게
수저를 들지 못하고 식탁에 올려져 있는 식단을 하나씩 외우듯 보고 있었
다.
"뭐해.. 먹지 않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우리 말야....."
"그 얘긴 오래 전에 끝난 걸로 아는데... 정리 했다고 했잖아?"
미령이 심통난 얼굴로 째려봤다.
"맞아... 정리했어..."
미령도 말을 아꼈다. 성현이 입맛이 없는 듯 몇 숟가락 먹지 못하고 수저
를 내려놨다. 물로 입을 헹구고 일어섰다.
"그만 잘게...."
미령이 주방을 나가려는 성현의 팔목을 낚아챘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
"그러는 건 나도 싫어."
"키스 할래?"
촉촉하게 올려다 봤다.
성현이 말없이 무릎을 꿇고 미령에게 입맞춤했다. 붉은 입술이 파르르 떨
리더니 눈물이 뺨 위를 타고 떨어졌다. 성현은 두 볼을 잡고 끝모를 키스
를 퍼부었다.
[미령을 놓치고서야 내 무능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둘째 부인 아들로
숨어살아야 했던 난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감이 없었어요. 그냥 시골에서
철물점이나 운영했어야 하는 게 맞는가봐요... 결혼식에 갔지만 떳떳할
수가 없었어요. 난 내 여자를 놓친 병신 같은 놈이었거든요.. 휠체어를
탄 형님보다 지독한 불구자였습니다. 미령이가 그렇게 환한 웃음을 진 적
이 없었어요.... 태어나 가장 행복했던 날이었을 겁니다. 그걸로 난 만족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