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령이 한 발자국 물러나 병실 문을 열어주었다. 원길이 고개를 빼 문을
향했다. 그러자 남비서가 선한 웃음을 띄고 들어왔다. 원길이 반가움에
함박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말도 안 들으시더니....."
"남 비서 이렇게 와주니 병원에 입원한 게 잘했다 싶네."
미령이 쇼핑봉투를 내려놓고 미니 냉장고에서 캔음료를 꺼냈다.
"미령씨... 책은 안 사왔어요?"
"맞다......."
깜빡잊고 그냥 나온 걸 이제야 기억났다.
"나중에 사다줘요."
"저.. 여사님 자리 좀 비켜주겠습니까?"
남비서가 싸늘하게 쳐다봤다.
"네? 왜... 왜요? "
"회사 일입니다."
"자네 나한테 할 말이 있는 모양이군. 미령씨 자리 좀 비켜줘요. 길지 않
을 거요."
미령이 어색하게 웃고 천천히 나갔다.
병실 문이 닫히고 남 비서가 원길에게 노란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뭔가?"
"저번에 드리라고 부탁했던...."
"아... 내 방에 있는 거 아냐?"
"아직 못 보셨죠?"
원길이 노란봉투를 여는데 남비서가 가로 막았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하지만 하루 빨리 회장님이 알아주시길 바라기
에... 봐달라고 부탁드립니다..."
"대체 뭔데 그런가?"
"조성현...."
"아! 그건가? 푸른 눈을 가진 거머리... 그게 조성현이었더군."
"그보다 회장님...."
"뭐야. 조성현이 뭐 딴짓이라고 저질렀나?"
"혹시 형제가 있습니까?"
"뜬금없이 형제는... 자네도 알다시피 난 외아들야..."
"그럼 작은 어머니라도...."
"이봐!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그래. 어디 속 시원히 털어놓게!!"
남비서가 손을 치우고 노란봉투를 응시했다.
"그 속에 있습니다."
원길이 잔뜩 굳은 얼굴로 노란봉투를 열었다.
두 장의 사진과 이해할 수 없는 서류들....
남비서는 일어나 창가쪽으로 돌아섰다.
이게... 이게...
원길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아들...
아버지의 아들...
아들은 나 하나 뿐이야...
그런데 이 친구... 서류에선 아버지의 아들이라 하잖아...
어린 시절 한옥집...
아버지의 집이라 불렀던 그 시골집...
- 아빠, 아빠는 왜 집이 또 있어?
- 이곳에 오면 슬픔과 한숨이 사라지거든...
- 그럼 엄마랑 사는 집은?
- 그 집도...
- 에이.. 그런게 어딨어?
그리고 어린 시절 그 집에 놀러가면....
툇마루 기둥에 숨어 훔쳐봤던 여자....
영화 필름처럼 흩어졌던 조각들이 영상기를 통해 보여지는 듯 싶었다.
//아버지 정말 사실인가요......
이 모든 게 진실이냐구요.....//
남비서가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쏴아 들어왔다.
촤르르- 바람에 날리듯 사진과 서류들이 날아갔다.
"회장님!!!"
남비서가 돌아봤을땐 원길은 이미 정신을 잃고 쓰러진 후였다.
"회장님!!!"
문밖에 서 있던 미령이 괴성에 놀라 들어왔다.
"원길씨....."
미령의 눈시울이 시뻘게 졌다.
"회장님 잘못 되면 나도 가만 있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