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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러나 그는 죽지 않는다
작가 : 에르노
작품등록일 : 2016.10.5

누군가 그를 미친듯이 원한다! 영문도 모른 채 쫒기는 소년, 그는 어째서 납치당하는가?
벗어날수록 옭아매오는 그물, 그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치명적인 음모가 정체를 드러낸다!

강대한 라니냐 제국의 볼모가 되어버린 도림 왕국의 태자, 상냥하고 친절하나 실은 비성숙한 자아에 고통받는 그는 제국을 적대하는 식민지 독립파에 의해 납치당하고 만다. 탈출을 시도하고 흉악한 적들과 추격전을 벌이며 이색적인 해적과 조우한다. 스릴 넘치는 모험과 풋풋한 사랑을 통해 자아의 성장을 일궈나가는 다크판타지.



표지는 핀터레스트 펌입니다.

 
13.도처에 놓인 그물망
작성일 : 16-10-16 16:34     조회 : 702     추천 : 0     분량 : 8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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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럼주를 팔아넘길 놈한테. 이미 돌격대장이 가서 교섭하고 있을 거야. 그 인간, 잘 하고 있을지 모르겠네. 빨리 가자.”

  이도는 일어서며 바지에 붙은 먼지를 털었다.

  “응. 가자.”

 

  이도는 아리아를 따라 다시 항구의 거리를 걸었다.

 

  “너한텐 좀 반가울 지도 모르겠네. 그 럼주 도매상은 동방인이거든. 게다가 도림 출신이야. 몰래 신대륙으로 건너 왔다나봐.”

  도림 출신. 귀화한 게 아니라면 아직 이도의 백성일 수도 있다.

  “오히려 잘 들킬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야겠네.”

  “뭣 하면 다른 데서 기다릴래?”

 

  “아니, 괜찮아. 같이 가자.”

  고향 사람을 못 믿어서야 어찌 되겠는가?

 

  이도와 아리아는 럼주 도매상이 있는 큰 럼주 창고에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가니 안이 온통 럼주통으로 가득했다. 달콤씁스름한 럼주 냄새가 썰물처럼 밀려왔다. 기분이 상쾌해지는 듯하다. 하지만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럼주 도매상과 돌격대장이 서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아니, 무슨 거래가 이따위요? 아니 값을 치룰 거면 당연히 거래를 체결할 당시의 시세로 지불해야지, 왜 갑자기 지금 시세로 지불하겠다는 거요?”

 

  “무슨 소리? 난 그 때 분명히 서로 물건을 넘길 때의 시세로 지불하겠다고 했소.”

  “이런 고얀 자식! 지금 럼주 가격이 많이 떨어졌으니까 일부러 이러는 거지?”

 

  아리아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봐요, 대체 왜 그럽니까? 뭐 문제라도 있나요?”

 

  돌격대장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다.

 

  “아니, 누님. 이 놈이 분명히 거래 체결 당시의 시세로 지불하겠다고 해놓고는, 갑자기 물건 넘길 때의 시세로 지불하겠다고 떼를 쓰잖소!”

  아리아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도매상? 우리 분명히 서류로 계약했잖아요? 서류대로 해야지, 무슨 배짱으로 이러는 겁니까?”

  빼빼마른 체구에 비겁해 보이는 인상의 도매상은 수염을 매만졌다.

 

  “흥, 서류로는 그렇지. 근데 이렇게까지 시세가 떨어질 줄 누가 알았겠소? 게다가 당신들은 명시된 것보다 더 늦게 물건을 가져왔소. 또 지금 보듯이 내 창고는 럼주로 가득하오. 나뿐만이 아니라 식민지 전체에 럼주가 넘쳐나서 가격이 팍팍 떨어지고 있지. 이런 상황에서 나만 비싼 가격 내고 살 이유가 어디 있소?”

 

  “그건 당신 사정이고, 계약대로 합시다. 우리 지금까지 잘 거래해왔지 않습니까? 당신과 나의 신뢰는 끈끈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돼지요.”

  양심에 찔린 듯 도매상은 머리를 긁었다.

  “끄응. 정 그렇다면 거래 체결 당시의 시세와 물건 넘길 때의 시세의 중간 쯤 가격으로 사들이겠소. 그 정도는 도의상 양보해주지.”

  아리아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젠장. 힘의 균형이 독립파 쪽으로 기울어가니, 벌써부터 이렇게 뒤통수를 치는 건가? 필요하다면 협박을 하든가, 정 안 되면 무력행사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랬다간 자신의 입지를 좁힐 뿐이다. 칫. 옛날이었으면 수장인데. 또 이대로 놈의 요구를 들어주면 체면이 안 서는데다가 똑같이 입지를 줄일 위험이 있다. 소문은 빠르니까. 하지만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도매상 뒤에 가만히 서 있던 그의 조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땀범벅이다.

 

  “점장님. 저번에 수송하던 럼주를 도둑한테 강탈당했다가 아리아님께서 찾아주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은혜를 입었는데, 그, 이런 대우를 하는 건 온당하지 않다고, 어, 저는 봅니다.”

  “쯧! 넌 다물고 있어!”

  도매상이 호통 치자 조수를 끙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였다.

 

  이도는 아리아의 고민하는 표정을 보았다.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생각 안 나는 듯하다. 갑자기 이도는 아리아를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었다. 방금 눈물 흘리던 아리아를 감싸주며 동정심을 느낀 탓인지도 모른다.

  이도는 아리아의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단순한 거래의 관계가 아닌 더 깊은 정을 나누는 관계가 되고 싶었다.

  정확히 무어라 할 순 없었지만, 이도는 결심했다.

 

  이도는 말했다.

  “이보시오, 도매상. 당신의 국적은 어디요?”

  “내 국적? 갑자기 그건 왜? 뭐, 도림이다. 일단은 실종된 지 오래라서 사망 처리 되었을지도 모르겠네. 사실 난 여기서 멀쩡히 살고 있지만! 하하하!”

 

  “그럼 당신은 아직 도림국법에 따라 적법하게 도림 왕국에 귀속된 백성이란 말이오?”

  도매상은 수염을 꼬았다.

  “어려운 말을 쓰네. 뭐, 그렇겠지? 근데 그게 뭐가 중요하나?”

 

  이도는 펜던트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리고 도림어로 말했다.

  “네 신분에 대한 정당한 지배권국인 도림 왕국의 태자에 무릎 꿇어라.”

 

  도매상은 입을 떡 벌렸다. 이도는 모자를 약간 들춰 아예 은발까지 보여주었다.

  도매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건 진짜다.

 

  도매상은 쓰러지듯이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

  “몰라 봬서 황송합니다, 태자님.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도림어로 말하는 탓에 다른 사람들은 알아먹질 못했다. 하지만 대강 어떻게 흘러가는지 정도는 파악했다. 특히 조수는 더욱 더 땀을 흘려댔다.

  “고개를 들라.”

 

  도매상은 고개를 들고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네가 계약대로 거래를 이행할 것이라 믿는다.”

 

  “네, 네. 그러하옵니다. 태자님 뜻대로 될 것입니다.”

  도매상은 아리아에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거래를 계약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조수! 돈을 가져와.”

 

  조수를 헐레벌떡 뛰어가서 금방 돈을 가져왔다.

  돌격대장이 받았다.

 

  “믿어도 되겠지?”

  “저는 태자님 앞에서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도는 도매상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어깨가 살짝 떨렸다.

  “고맙다. 이제 일어나도 좋다. 다음부터는 정정당당하게 거래를 하도록.

 ”

  “네, 그리하겠습니다. 태자님이 제국에 잡혀가셨다고 들었는데, 무사하신 모습을 보니 기쁩니다.”

  조수는 아예 땀으로 얼굴이 범벅이 되었다.

  이도는 싱긋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리아, 이제 됐지?”

  아리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네 덕분에 잘 해결됐네. 고마워. 돈을 배분해야 되니까 선술집으로 가자. 놈들이 퍼질러 마시고 자빠져 있으면 안 되는데. 특히 슈리와 루카! 그 놈들 또 난장판을 만들면, 으으.”

 

  이도, 아리아, 돌격대장은 함께 선술집으로 향했다. 도매상과 조수는 그들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드디어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도매상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조수가 뒤따라갔다.

 

  “괜찮으십니까? 점장님.”

  “여기서 태자를 볼 줄이야. 젠장. 소문은 들었지만.”

 

  조수를 침을 꿀꺽 삼켰다. 도매상은 펜촉을 먹물에 담근 뒤 종이 위에 빠르게 글을 써내려갔다. 총 세 장이었다. 도매상을 큰 소리로 잡일꾼을 불렀다. 그리고 편지를 건넸다.

  “점장님, 이건 뭡니까?”

 

  “편지 앞면에 보내야 할 사람이 써져있다. 절대 착오가 있어선 안 돼.”

  잡일꾼은 자리를 떠났다.

  조수는 눈썹을 찌푸렸다.

  “설마 밀고입니까?”

 

  “뭐? 밀고? 난 내 편을 위해 힘쓰는 것뿐이야. 찾는 자가 바로 저기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나.”

  “그런 것 치고는 태자 앞에서 어쩔 줄 모르시던데요.”

  “지금 나 놀리냐? 그런 건 말이야, 끙. 이른바 피지배민의 뼈 깊이 새겨진 습성 같은 거야. 너도 황제 앞에 서면 벌벌 떨 거잖아?”

  “그건 그렇죠.”

 

  조수는 사무실을 빠져나가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젠장!”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리아한테 받은 은혜를 잊을 수가 없었다. 아리아는 럼주만 구해준 게 아니라 조수의 목숨도 구해준 적이 있었다. 그런 사람을 점장은 배신하고 독립파와 내통하려고 한다. 파렴치한 자식. 조수는 더 이상 그 놈 밑에 있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배신자와 한 배를 타다니! 그럴 순 없다.

 

  그는 아리아의 선원들의 단골 선술집을 향해 내달렸다.

 

 

  그 즈음, 이도 일행은 이미 선술집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슈리와 루카는 퍼질러 마시고 캣파이트를 하고 있었다. 선원들은 말릴 생각도 안 하고 분위기만 띄웠다. 돌격대장이 슈리와 루카를 제압했다.

  아리아는 박수를 쳐서 주의를 끌었다.

  “이놈들아, 돈 왔다. 차례대로 배분할 거니까 줄 서.”

 

  그렇게 막 배분이 시작되려는 찰나, 조수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아리아 선장님! 위험해요!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해요!”

  아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라고?”

  “제 점장님이 대자의 존재를 독립파에 밀고하고 있습니다! 저, 저는 도저히 선장님을 배신할 수가 없어서, 서, 선장님이 우리를 도와준 게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그런데, 저도 데려가줄 수 있습니까? 이렇게 된 이상 배를 갈아타는 수밖에 없어서요.”

  아리아는 책상을 콱 쳤다. 치가 떨렸다.

 

  “그 새끼,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젠장, 배는 아직 수리 중이지?

  돌격대장이 말했다.

  “누님, 소니아가 ‘그걸’ 가지고 있지 않나요?”

  “‘그건’ 아직 확실하지 않아. 쓸 수 있을까?”

  “위기 상황에서는 뭐든 써야죠.”

 

  “좋아. 너는 선원들을 대기시켜. 내가 소니아를 데리고 올게.”

  이도는 아리아에게 나직이 사과했다.

 

  “미안. 내가 괜히 널 돕는다고 나서서 일을 키웠어.”

  “걱정 마. 날 도우려고 그런 거니까. 그리고 언젠가는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했어.”

 

 

  이도와 아리아는 바로 옆의 선술집으로 이동했다. 소니아가 아직 아무 데도 안 갔다면 그곳에 있을 터였다. 아리아는 별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맛~있~는~파~르~페~초~코~가~올~려~진~파~르~페~”

 

  소니아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이제 막 파르페에 숟가락을 꽂으려는 참이었다. 어찌나 즐거운지 이상한 노래까지 불러댔다. 그러나 들이닥친 이도와 아리아를 보고는 표정이 확 굳어버렸다. 숟가락을 달달 떨어댔다.

 

  “너, 너, 너희들, 바, 방금 본 거 잊어버려! 아, 아무한테도 말 하지 마! 말 하면 죽어!”

  이도는 멍하니 초코 파르페를 바라봤다. 진해보이는 초코가 파르페에 덕지덕지 발라져있다. 입 안에 넣자마자 단 맛에 혀가 마비될 것 같아 보인다. 회춘하면 입맛도 애처럼 변하는 걸까.

 

  아리아는 손을 펼치며 외쳤다.

  “지금 이럴 때가 아냐! 독립파 놈들이 우릴 추적하려 하고 있어. 빨리 도망쳐야 돼. 다행히 이도가 있으니까 식민지 당국으로 가면 될거야.”

  “이런 망할. 내 직감으로는 대자님이 뭔가 실수하신 것 같은데?”

  이도는 고개를 숙였다. 아, 왜 괜히 나서가지고 일을 키운 걸까.

 

  “죄송합니다.”

 

  소니아는 파르페를 한 입 떠서 입에 넣었다.

  “이미 벌어진 걸 어쩔 순 없지. 모처럼 즐길 시간이었는데. 아리아, 선원 중 한 놈을 시켜 이 항구의 세관장과 제국군 경비 대장한테 보내. 지금까지 뇌물 먹은 게 있으니까 우릴 도와줄 거야. 그래서 도망치는 건 어떻게 하려고?”

 

  “배를 타고 가야하는 데 지금 수리 중이야. 언니 레시피 중에 ‘그거’ 있잖아? 그걸 써보려고.”

  이도가 끼어들었다.

 

  “잠시만. 이 항구는 제국 지배권 아래에 있던 거였어?”

  “일단은 그렇지.”

 

  “그럼 차라리 이 항구 안에서 제국군의 보호 아래 있는 게 더 낮지 않아? 배가 수리될 때까지.”

  아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넌 지금 독립파의 힘과 규모를 모르고 있어. 그들이 괜히 믿는 구석도 없이 제국한테 대드는 게 아냐. 적어도 독립파는 제국 본토의 지원이 없는 식민지 당국과 한판 승부를 벌일 역량은 갖추고 있어. 더 우월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제국군 병력도 부족한 이 항구에서 버티다간 놈들한테 포위당해. 차라리 식민지 당국 쪽으로 빨리 도망치는 게 나아. 당국에 가까워질수록 제국의 경비도 삼엄해지기 때문에 섣불리 깊숙이 추격하지는 못하니까. 게다가 독립파를 그냥 독립파로 보면 안 돼. 그들의 뒤에는 식민지 무역협회가 버티고 있어. 일종의 이중체제라고 보면 돼.”

 

  식민지 무역협회. 사실상 식민지 밀수꾼의 길드. 이도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이 대자 납치를 사주해서 독립파가 실행에 옮긴 걸까? 그 납치를 생각하니 또 분노가 끓어올랐다. 바다 위에서 기적적으로 아리아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도의 삶은 파괴당했을 것이다. 그것도 누군지도 모르는 자의 손에. 그 손은 누구의 손인가? 의문이 피어오르며 분노와 함께 섞여 몸속을 마구 돌아다녔다.

  소니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 재수 없는 날이군.”

  그리고 이도를 삿대질했다.

  “넌 그냥 납치당했어야 했어. 아리아와 만날 일도 없이. 그러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테고.”

  아리아가 즉각 반박했다.

 

  “언니! 아까부터 말하지만 우리의 입지는 내가 이도를 만났든 안 만났든 위험했어. 만약 독립파 놈들이 이도를 협상카드로 써서 식민지 독립을 이루어냈어도 우리는 희생양 신세야.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망하든가 다른 곳으로 떠나든가 했어야 했다고. 대체 몇 번 말해?”

  소니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넌 아까부터 궤변만 늘어놓고 있어. 이 문제의 해결책이 매우 간단하단 걸 넌 알 텐데?”

  “해결책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도를 독립파에 넘겨버리면 돼.”

 

  이도는 숨을 집어 삼켰다.

  아리아는 탁자를 쾅 내리쳤다.

 

  “뭐?”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입지가 축소되기는커녕 더 확고해질 거야. 네가 이도가 납치당한 배를 그냥 상선인 줄 알고 습격했다며? 그리고 나중에 이도를 되찾으러 오니까 무찌르고 불태웠지. 선원들한테 들었어. 비밀로 했을 텐데 다 알고 있더라? 그러면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면 돼. 이도를 수송하던 그 배를 웬 해적이 잡았는데, 네가 그 해적을 무찌르고 이도를 확보해 은혜롭게도 독립파에 넘긴다는 이야기지. 그럼 너는 일등공신이 되는 거야. 우리는 식민지에서 승승장구할테고! 안 그래? 내 말 틀렸어? 사실 귀족보다 더 나은 보상 아니야? 아니, 귀족보다 더 위대해질 수도 있어! 후대에 새롭게 생겨날 식민지를 계승한 국가의 개국공신! 네 이름은 역사에 남을 거야. 후대 사람들은 네 이름을 칭송하겠지.”

  아리아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안 돼! 언니는 미쳤어, 그럴 순 없어! 게다가 난 이미 이도와 약속했고. 게다가 언니가 말하는 그것들, 그것들은 전부 거짓이야! 그런 짓을 하면 나는 악한이야. 개국공신 같은 게 아니라고!”

  “거짓?”

 

  소니아는 비틀린 웃음을 지어보였다.

  “거짓이라고 했어? 그래, 거짓말쟁이가 되기 싫다 그거지? 근데 이걸 어쩌나, 넌 이미 훌륭한 거짓말쟁이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넌 너 자신에게 거짓말 하고 있어. 아아, 어른은 모두 거짓말쟁이라고들 하지. 그런 의미에서 넌 훌륭한 어른이야. 거짓이 순수를 압도하고 말았구나?”

 

  아리아는 악을 썼다.

  “그러니까 대체 무슨 소리냐고!”

  소니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도에게 말했다.

 

  “이도, 잠시 나가 있어 줄래? 우리 대화가 안 들리게 그냥 옆의 선술집에 가 있어.”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이도는 말없이 끄덕이고 나갔다. 그래도 안심하지 않은 소니아는 문을 열어 밖을 확인했다. 이도는 없었다.

  소니아는 문을 닫고 숨을 훅 들이마셨다.

  “너는 저 자식을 사랑하잖아!”

  정적이 흘렀다. 아리아는 눈을 치켜뜨더니 입술을 핥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하하, 또 거짓말 하네. 네가 엄마 젖 먹을 때부터 널 봐왔어. 그것쯤 모를 것 같아? 이도를 좋아하지?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보상이니 계획이니 뭐니 늘어놓으면서 날 속였지. 게다가 또 진실을 드러내는 척하며 네 저속한 욕망을 드러냈어. 하지만 네가 떠나고 나서 의심이 들었어. 정말로? 정말로 그럴까? 아냐. 한 풀 더 벗겨야 했어. 너는 이도를 사랑해. 그래서 옆에 있고 싶고 쟤가 어딜 가든 따라가고 쟤를 도와주고 싶은 거야. 그렇지?”

  아리아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언니가 잘못 생각한 거야.”

  “대체 왜 그렇게 솔직해지지 못하는 거야?”

 

  소니아는 킥 웃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냥 말해버려. 이도가 좋다고, 사랑한다고! 데이트도 하고 싶고, 같이 맛있는 식사도 하고 싶고, 서로 편지도 교환해보고, 너도 그런 거 하고 싶을 거 아냐?”

 

  아리아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정말로 화낼 거야.”

  “아하, 아예 직설적으로 말하면 어때? 키스하고 싶어? 아니면 아예 더 나가서 같이 자고 싶다고 하든가! 어머, 우리 아리아가 이젠 어른이 다 됐구나?”

 

  “제발 그만해!”

  아리아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눈가에 작은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그래! 난 이도가 좋아! 근데, 근데 왜 언니는 자꾸.”

  아리아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왜 자꾸 날 망신주고, 놀리고, 타박을 주는 거야! 왜 내 마음은 조금도 이해해 주질 못해? 언니는 옛날부터 그랬어! 항상 날 놀리고, 짓궂은 장난만 쳐대고! 난 이제 애가 아냐! 근데 왜 자꾸 날 부끄럽게 만드는데?”

  아리아는 흐느꼈다. 소니아는 우는 아리아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리아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키 차이가 상당해서 그냥 걸치는 느낌이었다.

 

  “이러면 된 거야.”

  “뭐가 된 건데?”

 

  아리아는 살짝 신경질 내며 대꾸했다.

 

  “네가 솔직해 졌잖아? 사람은 솔직해야지, 암. 근데 네가 자꾸 거짓말만 지껄이니 내가 화나 나겠어, 안 나겠어? 그냥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솔직히 말하는 게 그렇게 부끄러워? 참 내.”

  소니아는 씨익 웃으며 아리아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그래도 언니는 다 이해해. 저 정도의 미남이라면 어떤 여자든 반하지 않겠어? 아아, 내 몸이 이렇지만 않았으면 한 번 접근해 봤을 텐데.”

  “뭐? 안 돼!”

 

 

  “안 해, 안 해!”

  소니아는 얼굴이 새빨개진 동생을 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귀엽군.

 

 

  그 때 별실의 문을 열어젖히며 한 선원이 나타났다. 아리아는 황급히 눈을 닦고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선장님! 큰일입니다! 제국 경비대가 배신했습니다!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합니다!”

  아리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배신했군. 일단 선원들을 전부 배로 집합시켜. 아직 적이 나타나진 않았지?”

 

  “네, 선장님. 아직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둘러야 해요. 항구의 제국경비대가 우릴 봉쇄하는 걸 넘어 추적할 수도 있으니까요.”

  “좋아, 어서 가자.”

  소니아는 바닥에 놓아둔 큰 배낭을 메고 아리아를 따라 나섰다.

 

  소니아는 뒤따라오는 선원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그 선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어딘가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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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고양이 울음소리 2016 / 10 / 19 647 0 14015   
16 15.루비가 박힌 단검 2016 / 10 / 18 401 0 8352   
15 14.항구를 떠나다 2016 / 10 / 17 403 0 4106   
14 13.도처에 놓인 그물망 2016 / 10 / 16 703 0 8793   
13 12.소니아를 보다 2016 / 10 / 15 594 0 9697   
12 11.그 날 2016 / 10 / 14 831 0 12356   
11 10.루카를 위하여 2016 / 10 / 13 537 0 7296   
10 09.다시 찾아온 2016 / 10 / 12 1260 0 16436   
9 08.선화의 짖궂음 2016 / 10 / 11 520 0 6245   
8 07.선상의 파티 2016 / 10 / 11 612 0 5057   
7 06.가녀린 손 (1) 2016 / 10 / 10 698 1 7374   
6 05.헬라와 욕조 2016 / 10 / 9 538 0 6228   
5 04.선화와 황제의 문답 2016 / 10 / 8 460 1 9336   
4 03.이도의 펜던트 2016 / 10 / 8 686 1 5708   
3 02.납치선에서 (2) 2016 / 10 / 7 611 1 6595   
2 01.고장난 마차바퀴 2016 / 10 / 6 534 1 8418   
1 00.라벤더와 라즈베리 향 2016 / 10 / 6 709 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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