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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제17화 <터닝 포인트>
작성일 : 20-04-28 23:28     조회 : 71     추천 : 0     분량 : 7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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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슨 문을 열기 전, 안나는 머릿속으로 몇 가지 시나리오를 짜 놓았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경식의 말과 달리, 건강하게 잘만 살아있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경식은 거짓말에 능숙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부인이 죽었다는 말도 거짓일지도 모른다. 또 모르지. 정정하게 늙은 노모도 같이 있을지.

 안나가 안으로 들어가면 그들은 의아한 눈으로 안나를 바라볼 것이다. 그러면 안나는 먼저 물어 보겠지. “여기가 강경식씨 집인가요?” 낯선 사람이 남편을 찾으면 경계는 할테지만, 굳이 부정하지는 않을 거다. 아니, 부정해도 상관없다. 안나는 안나의 할 만만 하면 되니까. “강경식씨가 지금 살인 전과자가 되어서 무기징역을 받았거든요. 그걸 알려드리려 왔습니다.”

 잠깐은 굳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남편이 무슨 사고를 치고 다니는지도 모르는 부인은 “그 웬수 같은 놈! 아이고, 내가 못 살아 정말!”이라며 주저앉아 울지도 모른다. 늙은 노모는 “그 딴 자식 없수. 딴 데 가서 알아 보시구랴.”라며 애써 현실을 외면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경식의 가족이 쑥대밭이 되면, 안나는 그를 쭈욱 훑어보며 비웃은 뒤, “저는 전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라고 던지고는 유유히 걸어 나오면 된다. 울음소리와 탄식을 뒤로 한 채.

 아, 어쩌면 안나를 붙잡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대체 누구냐며. 그 이후에는 조금 고민이 된다. “나? 당신 남편이 죽인 피해자의 유가족.”이라고 말을 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나? 당신 남편 감방에 쳐넣은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 게 좋을까? 어느 쪽이 저 가정을 더 콩가루로 만들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상황을 보면서 판단해야 할 것 같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이다. 어쩌면 아들이 있는 것도 거짓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 인간의 꼬라지를 보면 그게 제일 맞을 것이다. 한 달 가량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집은 퀴퀴한 냄새가 날 테고, 썰렁한 한기가 맴돌 것이다.

 그럼 안나는 신발을 그대로 신은 채, 집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가 살던 살림살이들을 발로 툭툭 차면서 뒤지고, 초라한 세간들을 보며 비웃어야지. 어쩌면 그의 범죄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뭔가 김빠지고 재미없는 시나리오였다. 어쩌면 비웃음을 당할지도 모른다. 아들이 없다는 거짓말을 간파하지도 못했다고.

 고민하던 안나의 머리에 문득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경식의 면회를 가는 것이다. 가서 특사나 사면, 모범수 등등으로 형을 감면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희망 고문을 하는 거다. 그러면 경식은 어떻게든 일찍 나가야할 당위성을 증명하기 위해 또 있지도 않은 아들 핑계를 대겠지. 그럼 안나는 가짜 아들에 대한 연민을 살짝살짝 보이면서 경식의 설득에 넘어간 것처럼 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내리치는 거다. 네 거짓말을 내가 모를 줄 알았냐며.

 꽤 괜찮은 시나리오다. 이 정도면 나름 재미도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진짜 아들이 있는 것인데... 근데 그 애가 집 안에 있을까? 바보가 아닌 이상, 아빠가 며칠 동안 들어오지 않으면, 집 밖으로 나가서 뭔가 길을 찾겠지.

 

 “잠깐만...”

 

 설마 이미 죽진 않았겠지.

 

 안나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생각을 떨치려 애썼다. 안나가 본 경식은 절대 진심 따위 없는 사기꾼이었다. 그러니 그의 말이 사실일 리 없다.

 그가 체포된 후 취조되던 그 날을 유리창 너머에서 바라봤었다. 그는 그 순간까지도 거짓말을 했다. 그런 인간이 조금이라도 사실을 말할 리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피해자는 나몰라라 해도 가해자 인권은 끔찍이 챙겨주는 나라다. 경식에게 진짜 어린 아들이 있었으면, 절대 무기징역 같은 거 안 줬다. 그리고 경식이 집에 못 오게 되면 아이를 보호시설에라도 위탁하겠지. 맞다. 그런 법이 있었다. 그러니 세 번째 시나리오는 애초에 생각할 가치도 없다.

 

 결론을 내린 안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삐걱거리는 철문을 열어 제꼈다.

 

 그 때였다. 모든 것을 삼킬 것 같았던 아이의 눈동자과 마주친 것은. 그리고 무거운 눈꺼풀이 눈동자를 가리며 아이가 옆으로 스스르 쓰러져 내린 것도.

 안나는 자신도 모르게 달려가 아이를 부축했다.

 

 “누구야?”

 “나? 나... 수연...”

 

 아마도... 안나라는 이름을 숨기고 싶었던 거 같다. 어쨌든 이 아이의 아빠를 감옥에 처넣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안나 말고 다른 이름이 필요했던 거다.

 

 오물거리며 소리없이 수연의 이름을 한 번 되뇌인 아이는 마음이 놓인 듯 한 번 웃고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잠들 듯 정신을 잃었다.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와 함께 쌀이 익는 냄새가 집안으로 퍼졌다. 제대로 된 세간살이도 없는 집이었다. 절구나 믹서는 당연히 없었다. 결국 칼 뒤축으로 쌀을 빻아 미음을 끓이기 시작했는데, 제법 냄새는 그럴싸했다.

 

 서늘한 방에서 아이는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린 것만 같아서 119를 불러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공권력의 힘을 빌리는 순간, 기록이 남을 것이다. 그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얼핏 누군가에게 들은 대로 설탕물을 만들어 아이의 입에 조금씩 흘려 넣었더니, 아이의 숨소리가 조금 편해지며 입술에도 핏기가 조금 돌기 시작했다. 다행이었다.

 

 급한 불을 끄고 나니, 다시 자괴감이 밀려들어왔다. 난 이곳에 뭘 원해서 왔던 걸까?

 

 처음에 원했던 것은 복수의 연장이었다. 밍숭맹숭 끝나버린 복수.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경식의 집을 찾았다. 이곳에 오면 뭐라도 하나 더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랬다. 경식에게 복수할만한 거리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던 것이다.

 

 다시 본연의 목적에 집중하기 위해 안나는 집안을 둘러봤다. 그리 엉망인 꼴은 아니었다. 잘 정돈되었다기 보다는 별다른 세간살이가 없어서 그런 것 같지만. 그 흔한 세탁기도 없었고, 냉장고는 텅텅 비어있었다.

 

 집안 전체에 차가운 냉기가 가득했다. 그래서 마치 지하실과도 같은 냄새가 났다. 살짝살짝 홀아비 냄새가 풍겨지긴 했지만, 아주 희미해서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이 집에 그래도 누군가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오랫동안 씻지 못한 아이가 뿜어내는 어린 아이의 머리 냄새와 땀 냄새뿐이었다.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이 집에는 경식과 이 아이 외에 다른 사람은 없다. 그리고 경식마저 더 이상 이 집의 사람이 아니니, 이제 이 집에 있는 것은 이 아이 혼자였다.

 

 그러다 한쪽 벽에 그려진 동그라미들이 눈에 들어왔다. 꼭 무인도에서 탈출할 날을 기다리며 새긴 날짜처럼.

 아직 손에 힘이 없어 그런지 선은 삐뚤빼뚤했다. 동그라미의 시작과 끝이 안 맞는 것이 부지기수에 애써 맞춰보려고 왔다갔다하다 결국 뭉쳐버린 선, 꾹꾹 눌러 그리다 힘 조절을 잘못했는지 삐죽빼죽 나간 선까지. 서른일곱 개의 크고 작은 동그라미가 정성스럽게도 그려져 있었다.

 

 “아빠를 기다리긴 했나보네.”

 

 그 아빠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건 꿈에도 모르겠지. 하지만 이 아이는 자신에 비하면 양반이다. 최소한 누군가를 기다리면 볼 수 있을 거란 희망은 남아있으니까. 나는 그 희망조차 허락받지 못했었다.

 

 어느 새 미음이 완성됐다. 안나는 미음을 국그릇에 떠 낮은 상 위에 숟가락과 함께 올려놨다. 그러고 나니 또 고민이었다. 저 아이를 깨워서 먹여야 할까, 아니면 이대로 두고 그냥 갈까...

 

 그 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 안나는 혹시나 아이가 깰 세라, 화들짝 놀라며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도현이었다.

 

 “그냥... 밖이에요.”

 [밖?]

 “네. 운동 겸, 산책 겸... 바람도 좀 쐴 겸해서요.”

 [그래. 마음은 좀 정했어?]

 

 안나의 거취에 대한 문제였다.

 애초에 복수만을 위해 만들어진 유사가족이었다. 기한은 복수를 완료할 때까지. 그리고 얼마 전, 경식이무기징역을 받고 교도소에서 보내게 됨으로써 복수는 끝났다. 이제 도현과의 유사가족 관계를 정리해야 할 시점이었다.

 

 지난 7년 동안, 안나는 도현의 전술에 따라 충실하게 움직여왔다. 어쩔 수 없었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지, 자신에겐 어떤 돈도, 능력도, 자격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도현은 달랐다. 그에겐 능력이 있었고, 자본이 있었고, 무엇보다 어른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는 믿을 수 있었다. 자신이 가족을 잃었듯, 도현도 공동의 적에게 동생을 잃었으니까. 그가 수연의 복수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면 그를 의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연의 복수는 그의 복수이기도 했다. 자신과 도현은 최소한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그래서 기꺼이 그의 장기말이 되기로 했다. 도현의 제안에 따라 “이수연”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성안나”라는 이름으로 살기 시작한 것이다.

 

 기자였던 도현은 안나가 된 수연에게 많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수연의 가족을 살해한 범인이 강경식이라는 도박 중독자이자 망나니라는 것. 하지만 증거가 없어 체포할 수 없다는 것. 결국 경찰의 수사가 미궁에 빠졌다는 것까지.

 수연이 어쩔 줄 몰라 울분만 터트리고 있을 때, 도현은 그를 잡을 수 있는 묘책을 하나 제안했다. 경식이 도박 중독에 한 번 빠진 이상 벗어나기 힘들 거라고. 도박을 계속 할수록 빚은 커져갈 것이고, 그는 다른 범죄를 저지를 거라고. 그러니 그가 새로운 범죄를 저지르도록 유도하자고.

 

 그가 새로운 범죄를 저지르게 하기 위해, 도현은 두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범죄조직과 연결된 카지노의 직원이 되어 그가 더 깊은 도박에 빠지도록 유도하거나, 도박중독치료사가 되어 그를 치료하는 척 더욱 악화시키거나. 경식이 하루라도 빨리 체포되기를 바란다면 카지노 직원이 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첨언과 함께.

 할 수만 있었다면 카지노에 직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수연은 손이 매우 둔했고, 숫자에도 약했다. 이 상태로는 딜러는커녕, 경리로도 취직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마 진짜 안나였다면 카드섞기 따위, 눈 감고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만 안나일 뿐인 수연에겐 죽었다 깨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수연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빼앵 돌아가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방향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심리상담가가 되어 도박중독치료센터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경식이 도박중독치료센터에 수연의 환자가 되게 하는 것은 도현의 능력으로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수연은 공부와 말하기에는 어느 정도 소질이 있었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수석을 놓치지 않았고, 교수로부터 해외유학 권유까지 받았다. 그러나 수연은 단칼에 거절했다. 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복수였기 때문에, 그와 관계없는 것들은 애초에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4년에 걸친 대학생활이 끝나가는 그 무렵. 수연이 대학 졸업과 센터 취업을 위해 죽어라 공부만 하던 사이, 경식의 도박 중독은 악화되었고, 그를 위해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또 일가족을 살해했고 불을 질렀다.

 결국 경식은 발뺌할 새도 없이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리고 그 때, 도현은 운 좋게 경식이 수연의 가족을 살해할 때 사용했던 흉기를 찾아냈다. 경식은 새로운 범죄와 더불어 수연의 가족을 살해한 살인범으로 재판을 받았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그 과정에서 수연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써먹을 틈도 없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목격자로 경찰에 출두하며 도현이 찾아낸 흉기를 같이 제출하는 것 뿐이었다. 그를 토대로 경식의 범죄는 검사가 입증했고, 판사가 판결을 내렸으며, 뉴스의 단신으로 실렸다.

 

 그렇게 수연의 복수는 끝이 났다. 밍숭맹숭하고 허무하게. 하지만 끝은 끝이었다.

 

 “정할 게 뭐 있어요. 뭐가 됐든 끝났는데...”

 

 그러나 도현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과연 끝일까?]

 “... 무슨 뜻이에요?”

 [그야... 무기징역이라고 해서 그걸 다 사는 건 아니잖아. 중간에 사면받을 수도 있고, 모범수로 일찍 나올지도 모르지.]

 “그래서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난 그 사람이 다신 정상인으로 생활하지 못하게 좀 더 밟아놓는 게 어떨까 하는데?]

 

 꽤나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그거라면 풀리지 않는 수연의 분한 마음도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요?”

 [방법은 찾아봐야겠지. 그런데 지금 생각으로는... 네가 하는 공부를 계속 해서 교도소에 있는 경식의 담당 카운슬러가 되는 건 어떨까해. 장소는 다르지만, 우리의 당초 계획과는 그래도 비슷하잖아?]

 

 수연, 아니, 안나의 마음속에 경쾌한 에너지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맞는 말이었다. 경식이 체포되어 교도소에 갇힌 것은 복수도 아니었다. 그건 그냥 그 사람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죄의 댓가일 뿐이었다. 진짜 복수는 따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안나의 마음이 전해졌던 것일까?

 

 [너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럼 네가 다시 이수연으로 돌아가는 건, 다시 나중으로 미루자. 괜찮지?]

 “그러죠, 그럼.”

 

 새로운 목표가 생기자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것일까? 안나의 목소리가 경쾌해졌다.

 

 [좋아.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

 “아, 잠시만요.”

 [응?]

 

 머릿속의 안개 하나가 걷히니 다른 것도 또렷해진다. 안나는 도현에게 아무것도 아닌 듯 넌지시 물음을 던졌다.

 

 “혹시 강경식 그 놈이요. 자식이 있었나요?”

 [잠시만...]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이내 답변이 뒤를 이었다.

 

 [아니. 주민등록상에 확인되는 사람은 없어.]

 “그럼... 자식이 없는 건가요?”

 [정확히는 강경식의 아들이나 딸로 출생신고 된 아이가 없다는 거지.]

 “부인이나 다른 가족은요?”

 [부모는 예전에 사망했고, 부인도 몇 년 전에 사망한 걸로 나오는데?]

 “아... 네...”

 [그건 왜?]

 “아... 별 건 아녜요. 전에 강경식이랑 이야기 할 때 자식이 어쩌구 가족이 어쩌구 하면서 동정심을 사려고 들었거든요. 거짓말인 거 알았으니 됐어요.”

 

 

 도현과의 통화가 끝나고, 안나는 자신의 앞에 누워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그 때, 아이가 꼼지락대며 잠에서 깼다. 안나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의 옆에 다가가 앉았다.

 

 “정신이 좀 들어?”

 

 아이는 칭얼대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안나는 옆에 있던 상을 아이 가까이에 끌어왔다.

 

 “그동안 제대로 못 먹어서 배고프지? 일단 이거 먼저 먹자.”

 

 안나는 묽은 미음을 한 숟갈 떠 아이의 입으로 가져갔다. 비몽사몽한 가운데 아이는 안나가 주는 미음을 꼴깍이며 잘도 받아 먹었다.

 

 “너 이름이 뭐야?”

 “유진.”

 “유진? 성은?”

 “... 성이 뭐야?”

 

 하긴, 그 망나니 아버지 밑에서 뭔가를 제대로 배웠을 리가 없지.

 

 “아빠 이름이 뭐야?”

 “아빠 이름...?”

 “응. 아빠 이름.”

 “...... 몰라...”

 

 미음을 받아먹던 유진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존댓말도 모르니 아빠 이름을 모르는 것도 이상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각한데...

 

 “아빠는 어디 갔어?”

 “밖에.”

 “밖에? 언제 다시 오셔?”

 “몰라.”

 “아빠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야?”

 “옛날에.”

 “유진이는 아빠 기다리는 중이야?”

 “... 응...”

 “그런데 유진이는 이렇게 아빠를 기다리는데, 아빠가 진짜 오실까?”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유진의 맑은 눈동자가 안나를 향했다. 안나는 무심코 던졌던 비아냥이 괜히 민망해져서, 결국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도현의 말대로라면 지금 이 아이는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이 세상에 없는 아이란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인 즉, 안나가 이 아이를 어떻게 처리하든 결코 제도권과 공권력에서는 알아낼 방법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안나의 머릿속에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만약 이 아이가... 경식의 아들인 이 아이가... 아버지인 경식보다 경식의 적인 나를 더 믿고 따른다면 어떨까? 그리고 나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인 경식을 완전히 혐오하게 된다면?

 그렇다면 설령 경식이 특사로, 혹은 모범수로 나온다고 해도 유진의 모습을 보는 순간, 엄청난 배신감과 좌절과 허탈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더 믿고 따르는 아이를 보며 절망하겠지. 아마 아주 재미있는 광경이 연출될 수 있을 것이다.

 

 안나는 미소를 지으며 유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가. 너... 누나랑 같이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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