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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내 연애의 시작과 끝
작가 : 퍼니바크
작품등록일 : 2016.8.29

회사일에 치여 살던 주인공에게 대학시절 첫사랑이 나타나면서 자신의 대학시절을 회상하며 현재와 그 시절을 오가는 로맨스 소설입니다.

 
Happy Ending
작성일 : 16-10-16 13:31     조회 : 248     추천 : 0     분량 : 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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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뭐라고?’ 난 내가 잘못들었으면 했다.

 

  “ 뭐?”

  “ 민영이 누나라고...”

  “ 에이 설마...아까까지 나랑 문자했는데 과제 있댔어.”

  “ 아닌가...”

 

 아니었으면 했다. 그런데 며칠전일이 생각이나 왠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 어디쪽으로 갔어?”

  “ 저 쪽 안으로.”

  “ 내가 가서 보고 올게.”

 

 라고 말하는 나였지만 만약에 내 눈으로 직접 그녀가 맞다는 걸 확인했을 때 밀려올 감정이 두려웠다. 그러던 중 도현이가 일어서며 말했다.

 

  “ 됐어. 뭐하러 너가 가. 괜히 상황이 민망해질 수 있어.

  나 안 그래도 화장실 갈려고 했으니까 내가 갔다 올게.”

  “ 됐어, 내가 가면 되는데.”

 

 라고 말했지만 도현이가 내심 고마웠다. 잠시 후, 돌아온 도현이의 표정은 알 듯 말 듯 했다.

 

  “ 민영이 누나 맞아?”

  “ 저번에 영화관에서 봤던 사람이긴 한데 그때랑 헤어스

  타일이 다른대?”

  “ 어땠는데?”

 

 마음속으로 ‘단발은 아니어라, 단발은 아니어라...’를 연신 되내이고 있었다.

 

  “ 단발이였어...”

 ‘아...’

 

  “ 민영이 누나 헤어스타일 단발이야?”

  “ 어...”

  “ 그럼 뭐야, 너 몰래 술 마시러 온거야? 남자랑 단둘이?”

  “ 또 거짓말한거야?”

 

 애들이 술을 마셔서 그런지 행동이나 말이 과격해져서 까딱하면 찾아갈 기세였다. 물론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 농담이야, 농담! 민영이 누나 웨이브 넣었어, 어제 만났

  는데 아니였어.”

  “ 진짜야?”

  “ 어.”

  “ 진짜지?”

  “ 그렇다니까! 난 뭐 장난도 못 치냐?”

  “ 놀랬잖아. 조금만 늦게 말했으면 나 저 테이블에 찾아갈

  뻔 했어.”

 

 옆에서 지윤이와 도현이가 거들었다.

 

  “ 나도 그럴려고 했는데.”

  “ 나도!”

 

 이렇게 날 위하는 친구들한테 고맙기도 하고 속여서 미안하기도 했다.

 

  “ 눈물난다, 눈물나. 한 잔 하자.”

 

 서로가 서로의 잔을 채우고 건배를 한 후 원샷을 했다. 그걸 시작으로 잠시 정체 분위기였던 우리 분위기가 달리는 분위기로 발돋음을 했다. 주구장창 술을 마셔댔다. 그렇게 얼마나 마셨을까 화장실을 가려는데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며 그녀를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거기 있었고 같이 술을 마시는 사람은 전에 선화누나가 보여줬던 달링의 전 남자친구였다. 당장 그 테이블에 가 엎고 싶었지만 왠지 그럴 용기가 나질 않았다. 자리에 돌아오니 동기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막 웃어대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도 그 분위기에 빠져든 척 술을 마시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녀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폰을 꺼내 숫자 버튼 ‘1’을 꾹 눌렀다. ‘달링♡’이라는 글자가 뜨며 전화가 걸렸다. 하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질 않았다. 다시 걸었다. 역시나 전화를 받질 않았다.

 

  “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시간은 밤 10시가 조금 넘었었지만 막차 시간이 가장 이른 지윤이의 말로 우리 술자리는 그렇게 마무리가 됐다. 건물에서 나와,

 

  “ 아~ 오늘 오랜만에 기분 좋~게 술 마시고 가네.”

  “ 치~일주일에 네 번은 입에 술을 달고 사는 놈이 입에

  침이나 바르고 그 말 하냐?”

  “ 난 버스 시간 때문에 먼저 간다. 다들 내일 보자~”

  “ 야, 송! 넌 안 가냐?”

  “ 어, 나도 가야지.”

 

 이렇게 말하고 우린 헤어졌다. 하지만 난 바로 집에 갈 수 없었다. 그녀가 나오는 걸 봐야 할 것 같았다. 무작정 기다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통로에서 울려퍼지는 익숙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곧, 또각또각 거리는 그녀의 구두굽소리가 입구 근처에까지 들렸고 난 들키지 않기 위해 몸을 숨겼다.

 

  “ 아~ 잘 마셨다.”

  “ 집에 바로 가?”

  “ 그럼 바로 가야지.”

  “ 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줄까?”

  “ 응~”

 

 버스 정류장에 가는 그들 뒤로 몰래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의 행방이 점점 버스정류장에서 멀어져가는 것 같았다. 왠지 불안불안했다. 그들은 점점 도로와 멀어지더니 주택가에 들어섰다. 설마 설마했다. 마침내 그들이 멈춰 선 곳은 어느 건물 입구였다. 둘이서 무슨 대화를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표정으로 봐서는 그녀는 뭔가 고민하는 듯 했고 그 남자는 설득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ㅡ 난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였다. 그녀가 그랑 그 집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 들어간지 얼마안되 2층 창문으로 방안에 불 켜진게 보였다. 어떻게 해야하지 하는데 폰에 문자가 왔다.

 

  ‘ 어? 자기 전화했었네? 나 과제 끝나고 집 오는 버스 안

  이여서 못 받았나봐ㅠㅠ 자기는 과제 끝났어?ㅋㅋ from 여친님’

 

 그 문자를 보는데 화가 나다 못해 그녀의 뻔뻔함에 어이가 없었다. 뭐라고 해야할지 떠오르질 않았다. 십여분 남짓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켜져있던 2층의 불도 꺼졌다. 만감이 교차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수만가지 생각이 교차해서 들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이 났다. 갓 대학에 들어와 들뜬 내게 동아리 홍보를 하고 있던 그녀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설렘 가득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처음 그녀와 떠났던 통영 여행, 다시 그곳에 동아리사람들과 가서 술자리 도중에 나와 팔짱을 끼던 그녀, 서툴렀던 내 고백을 귀엽다는 듯이 받아줬던 그녀 그리고 그녀와의 첫 키스...어째서 난 연애를, 아니 그녀와 사귀면 이런 좋은 일들만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녀의 전 남친이 나타나고 그 생각은 물거품이 되버렸다. 최근에 그녀가 내게 했던 일들의 여파가 너무 커서 저런 기억들을 몽땅 삼키고도 남았다. 어느덧 난 집 앞에 와 있게 됐고 집에 들어가기 전 마침내 큰 결심을 했다. 어제의 결심 때문인지 잠을 한 숨도 자질 못했다. 의자에서 일어난 나는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 나 할 얘기가 있는데 9시까지 학교 앞에 올래?’

  ‘ 뭔데?ㅋㅋ 오늘 무슨 날이야? from 여친님’

 

 전혀 눈치를 못 채는 것 같았다.

 

  ‘ 만나서 얘기하자.’

  ‘ 응~♡ from 여친님’

 

 9시가 되기 10분전에 미리 도착해 있으려고 했는데 내가 갔을 땐 그녀가 미리 와있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날 발견했는지 그녀가 총총 걸음으로 내게 와 얘기했다.

 

  “ 자기, 안녕? 어제 과제 다 했어? 오늘 왜 이렇게 기분

  안 좋아 보여? 피곤해?”

  “ 아니.”

  “ 그럼 왜?”

  “ 우리 헤어지자.”

  “ 응? 뭐라고?”

  “ 우리 헤어지자고.”

  “ 에이, 장난치지마, 재미없어.”

  “ 재밌자고 하는 소리 아냐...”

  “ 왜 그래...갑자기...”

  “ 갑작스럽겠지만 나 나름대로 되게 많이 생각한 거거든,

  이유는 안 물어봤으면 좋겠어.”

 

 그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가 그것이었다.

 

  “ 그게 무슨 말이야? 일방적으로 이런게 어딨어?!”

  “ 미안해...”

 

 그렇게 말을 하고 뒤를 돌아 앞만 보고 걸었다. 그녀의 어처구니 없는듯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뒤돌아 볼 수 없었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뒤에서 더 이상 그녀가 나를 볼수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 뺨 위로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눈물의 의미는 나도 몰랐다. 그 뒤로 그녀는 내게 문자며 전화며 일방적인 이별통보에 대해 계속 연락을 시도했지만 난 일체 답변을 하지 않았다. 무시해버렸다. 그렇게 내 꿈만 같았던 첫 연애는 그렇게 마무리가 됐다.

 

 현재

 

 그 날이 왔다. 한 때 내 마음을 독차지 한 아니 지금도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여인과 그런 나를 오랫동안 마음에 둔 여인 그리고 나. 10년전에 이렇게 셋이서 보는건 전혀 긴장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알게 모르게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약속 장소에 제일 먼저 도착하려고 약속시간보다 30분 일찍 출발했다. 출발한지 얼마안되 전화가 왔다. 선화누나였다.

 

  “ 출발했어?”

  “ 어, 했지. 누난?”

  “ 난 아직, 일찍 나왔네?”

  “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 민영이는 출발했대?”

  “ 모르겠는데? 늦기야 하겠어?”

  “ 그래, 나중에 보자.”

  “ 그래요~”

 

 전화를 끊고 보니 문자가 한 통 와있었다.

 

  ‘ 어디야? from 그 사람’

  ‘ 나? 어...여기 거의 다 왔어. 신호 받고 있어. 왜 도착

  했어?’

  ‘ 응, 차 막힐 줄 알고 빨리 나왔는데 생각보다 안 막혔

  어ㅋㅋ from 그 사람’

 

 신호가 바뀌고 내가 탄 택시가 약속 장소에 다다랐다. 그 사람이 보였다. 계산을 한뒤 내려 그 사람을 불렀다.

 

  “ 민영이 누나!”

  “ 어? 재민아!”

  “ 왜 나와 있어, 바깥 날씨 쌀쌀한데 안에 들어가자.”

 

 근처 카페에 들어가 창가 자리에 앉아서 선화누나가 오기를 기다렸다.

 

  “ 선화는 오고 있대?”

  “ 출발했겠지? 전화 해봐야겠다.”

  “ 굳이 안 해두...”

  “ 여보세요? 누나 어디야?”

  “ 나 거의 다 왔어, 왜 나만 안 왔어?”

  “ 응, 민영이 누나는 기다리고 있더라.”

  “ 그래? 빨리 갈게.”

  “ 응~”

 

 잠시 후, 선화누나도 도착했다.

 

  “ 선화야!”

  “ 이민영!”

  “ 이게 얼마만이야!”

  “ 거의 10년만이지, 우리 졸업하고 못 봤으니까.”

  “ 잘 지냈어?”

  “ 잘 지냈지.”

  “ 왜 이렇게 예뻐졌어.”

  “ 너야 말로.”

 

 가만히 놔두면 몇시간은 저럴 것 같아서 화제를 바꿨다.

 

  “ 자! 다 모였으니까 자리 옮기자, 내가 이 근처 레스토

  랑 예약했으니까 밥 먹으면서 마저 얘기하자, 응?”

  “ 오~송재민! 센스쟁이 다 됐네!”

  “ 나 원래 그렇거든?”

  “ 어디야?”

  “ 여기 앞에 파리바게트 있지, 거기 맞은 편 건물.”

  “ 거기 예약하기 어려울 텐데...”

  “ 걱정 마. 저기 사장이라 개인적으로 알아서.”

  “ 그래도...”

  “ 가기나 하죠?”

 

 레스토랑에 들어가니 계산대 뒤에 서 있던 남자가 날 발견하고는,

 

  “ 어? 형!”

  “ 도준아, 오랜만이다.”

  “ 도현이 형한테 들었는데 형 오신다고, 뒤에 계신 분들

  이 일행분들이세요?”

  “ 응, 자리 있지?”

  “ 그럼요, 형 오신다고 제가 특별히 마련했죠.”

  “ 고맙다, 다음에 도현이랑 술이나 한 잔 하자.”

  “ 네! 미주 씨! 이 분들 저 창가쪽 VIP석으로 안내해드리

  세요.”

 

 여기 레스토랑은 도현이 동생인 도준이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종업원이 안내해주는 데로 따라가 자리에 가니 바깥 풍경이 한 눈에 보였다. 선화누나, 민영이 누난 연신 탄성을 자아냈다.

 

  “ 와~”

  “ 너 덕분에 이런데도 와보네.”

 

 웨이터가 와서 주문을 하라고 했다.

 

  “ 주문하시겠습니까?”

  “ ‘스폐셜’로 세 개 주세요.”

  “ 네, 알겠습니다.”

 

 웨이터가 가고 선화누나가 물었다.

 

  “ 너, 여기 자주 와봐?”

  “ 아니, 나 처음인데?”

  “ 그런데 어떻게...”

  “ ‘스폐셜’ 이런거를 아냐고?”

  “ 내 친구가 추천해주길래, 그 메뉴는 매일 바뀐대.”

 

 민영이 누나가 잠시 화장실을 간다고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나가 가자 선화누나가 말했다.

 

  “ 너 여기 민영이 때문에 왔지? 난 너가 이런 곳을 아는

  줄도 몰랐네.”

  “ 그런거 아니야, 누나랑 한번 와봐야겠다 생각했는데 못

  온거라고.”

  “ 거짓말하고 있기는!”

 

 하긴 선화누나도 저렇게 섭섭하게 생각할 수 있는게 나랑 10년 가까이를 지냈는데 이런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기회도 없었을뿐더러 왠지 누나랑 거기 가는 기회를 아끼고 싶었다. 민영이 누나가 와서 티격태격하는 우릴 보고는,

 

  “ 둘이 무슨 얘길 그렇게 재밌게 해?”

  “ 아니, 얘가 나랑 밥 먹을 땐 이런데 한번도 안 데리고

  오더니 너랑 먹으니까 여기 오잖아!”

  “ 진짜 그런거야?”

  “ 아냐아냐, 그런거.”

  “ 됐네요.”

 

 그 때, 웨이터가 주문한 음식을 갖고 왔다.

 

  “ 주문하신 ‘오늘의 메뉴’입니다.”

 

 ‘오늘의 메뉴’는 샐러드와 아스파라거스를 올린 연어 스테이크였다. 우리 모두는 그 메뉴의 자태에 감탄하고 있을 때 웨이터가 와인 한 병을 내려놓더니,

 

  “ 사장님께서 일행 분들이랑 드시랍니다.”

  “ 감사합니다.”

 

 도준이게게 문자를 보냈다.

 

  ‘ 잘 마실게.’

 

 모두 같이 와인잔에 와인을 붓고 건배를 한 후 식사를 시작했다. 연어 스테이크의 맛은 기가 막힐 정도였다. 거기다 상큼한 샐러드에 화이트 와인까지, 이보다 맛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식사를 하다가 민영이 누나가 선화누나에게 말을 걸었다.

 

  “ 선화야, 넌 요즘 뭐해?”

  “ 나? 광고 회사 다니고 있지, 넌?”

  “ 난 마케팅 회사, 너 결혼했어?”

 

 순간, 입에 있는 음식을 뿜을 뻔 하다가 참았더니 사래가 걸렸다. 켁켁거리면서 물을 마셨다.

 

  “ 결혼은 무슨, 만나는 사람도 없는데.”

 

 그러다 선화누나와 눈이 마주쳤다. 왠지 모르게 어색했는데 누나가 먼저 눈을 피했다.

 

  “ 만나는 사람도 없어? 왜? 얘 때문이지?”

 

 그 말에 나와 누난 당황해서 서로 손사래치며,

 

  “ 아냐아냐,”

 

 를 반복했다.

 

  “ 둘이 뭐야. 내 말은 너가 선화한테 좋은 사람 소개 안

  시켜줬기 때문이라고 말할려고 했는데.”

 

 머쓱했다. 괜히 죄 지은 사람처럼 당황했었다. 그러더니 선화누나가,

 

  “ 맞아. 얘가 소개를 안 시켜줘.”

 

 ‘치, 예전에 소개시켜준댔는데 나랑 있는게 더 좋다고 했으면서...어?!’ 그러고보니 예전부터 누난 내게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왔었다. 바보같은 난 그걸 못 알아챘었다.

 

  “ 치, 앞으로 소개시켜주면 되잖아 그치?”

  “ 민영이, 넌 결혼했어?”

  “ 나도 아직,”

  “ 만나는 사람은?”

  “ 헤어진지 좀 됐어.”

 

 선화누나가 나를 보더니 ‘민영이 솔로네’라고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말했다. 바보 같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딴사람과 잘되라고 응원하다니, 미련하다.

 

  “ 재민이, 넌?”

  “ 난 안했지.”

  “ 못한 게 아니고?”

  “ 나 만날려고 줄 선 여자가 몇 명인데.”

  “ 너도 안본 사이 많이 뻔뻔해졌다.”

 

 대화를 하면서 먹다보니 어느새 세 사람의 접시가 비어져 있었다.

 

  “ 아, 배불러.”

  “ 재민아, 우리 화장 좀 고치고 올게.”

 

 ‘저렇게 말 안 하고 화장실 간다고 하지. 선화누난 너무 털털해. 귀여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와인을 좀 많이 마셨는지 화장실에 가고팠다. 시~원하게 쏟은 후 손을 씻고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여자화장실에서 누나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재민이, 너 아직 마음에 두는 거 알아?”

  “ 알아, 저번에 만났을 때 알았어, 그리고 난 걔 첫사랑

  이야, 남자들은 첫사랑 못 잊어.”

  “ 넌 예전에 재민이한테 한 짓 안 미안해? 걔가 그것 때

  문에 얼마나 슬퍼하고 괴로워했는데, 걔가 널 얼마나 좋

  아했는데 넌 그걸 그렇게 쉽게 얘기 할 수 있어?”

  “ 지나간 일 가지고 왜 그래, 너 원래 안 이랬잖아. 너 아

  직도 재민이 좋아해?”

 

 ‘아직도...?’

 

  “ 어, 좋아해. 너보다 먼저 좋아했어.”

  “ 그럼 뭐해? 걔는 알기나 해? 알아주지도 않잖아, 걔가

  나한테 고백했을 때 내가 걔한테 했단 말이 너가 걔한테

  고백하려고 준비했던 말인것도 알까?”

  “ 뭐...라고?”

  “ ‘오늘부터 나 지켜줄래?’ 뭐 이런거 그날 어찌나 소름

  돋던지 고백하는 걔가 너무 귀여웠었지.”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선화누나가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내게 한 마디 말을 안 해주다니! 그리고 내게 했던 모든 말이 진심이 아니었다니...혼란스러웠다.

 

  “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하냐...”

  “ 그러니까 이번에라도 고백을 해, 예전, 10년전처럼 나한테

  먼저 고백하기 전에. 이번에 재민이랑 만나면 다신 너한테

  기회 안 갈 거야.”

  “ 몰라도 돼, 안 알아줘도 돼. 걔가 행복하면 그걸로 됐어.”

  “ 10년전이나 그건 똑같네.”

 

 ‘저 바보!’ 아무리 친구라지만 저렇게 무시하는데 바보같이 말하는지...

 

  “ 나가자, 다 했으면.”

 

 그 말에 재빨리 테이블에 가 아무렇지 않게 와인을 다시 들이켰다. 민영이 누나가 말했다.

 

  “ 많이 기다렸지?”

  “ 아니, 별로.”

  “ 얘랑 옛날 얘기 하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네.”

  “ 무슨 얘기?”

  “ 그게...”

 

 선화누나가 민영이누나 입을 막았다.

 

  “ 옛날 얘길 뭐하러해;;”

 

 그 얘길 아는 나로선 그런 말을 하면서 당황해하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 그런가?”

  “ 그럼~”

  “ 일어날까?”

  “ 언제 한번 다시 이런데서 식사할 수 있으려나.”

  “ 만나는 사람 생기면 가자고 해.”

 

 계산을 마치고 레스토랑에서 나오자 안이 너무 따뜻했었던지 밖이 추웠다.

 

  “ 아~ 잘 먹었다.”

  “ 잘 먹었어, 재민아.”

  “ 송재민! 땡큐~”

  “ 2차 가?”

 

 민영이 누나가 말했다.

 

  “ 난 바로 집에 갈래. 다음에 또 봐. 2차 가려면 둘이서

  가.”

  “ 에이~ 세명이 다 가야 의미가 있지. 오늘은 여기서 쫑!”

 

 그렇게 말을 하고 민영이 누나가 가려는 쪽으로 몸으로 돌렸더니 선화누나가 말했다.

 

  “ 재민아, 너희 집 이 쪽 아냐?”

  “ 맞지.”

  “ 그런데 왜?”

  “ 민영이 누나한테 말할게 있어서 누난 바로 집 갈 거야?”

  “ 아마, 혼자 술 마시러 갈 순 없잖아.”

 

 라는데 내 눈에 서운해 하는게 팍팍 느껴졌다.

 

  “ 그럼, 조심히 들어가.”

  “ 잠깐만, 재민아.”

  “ 응, 왜?”

  “ 너 안 가면 안돼?”

  “ 나한테 왜 할 말 있어?”

 

 마음속으로 ‘누나 마음 아니까 말해, 혼자 끙끙대지 말고!’ 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거였다.

 

  “ 혼자 가기 그렇잖아.”

  “ 에이 뭐야.난 간다.”

  “ 어...”

 

 누나의 목소리에서 가지 말라고 하는 듯했지만 난 그 사람에게 할 말이 있었다. 저만치 가고 있는 민영이 누나를 따라잡았다. 뒤에서 뛰어오는 소릴 들었는지 누나가 고개를 돌렸다.

 

  “ 어? 재민아, 너 이리로 가?”

  “ 아니, 누나한테 말할게 있어서.”

  “ 뭐?”

  “ 응, 그게...”

  “ 뭔데?”

 

 갑자기 폰에 진동이 울렸다. 확인해보니 선화누나 전화였다. 전화를 받지 않고 숨을 깊게 들이쉰 뒤 얘기했다.

 

  “ 나 말야, 10년전에 누나한테 헤어지나고 하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 난 누나 사랑했었으니까 그러다가 우연히

  누나랑 만나게 돼서 기뻤어, 다시 만날때는 설레기까지

  했어. 그런데 얼마 전에 선화누나가 날 좋아한다는 걸 알았

  어. 그 전까지 항상 내 옆에 있어줬던 누나 가 그런다는게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기분은 좋았어. 나도 좋아하니까 그게

  여자 박선화를 좋아하는지 사람 박선화를 좋아하는지 모르겠

  지만. 그런데 말야 누나가 내옆에 없다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지금까지도 그랬고, 그런데 선화누나가

  내 옆에 없다는 건 생각, 상상조차 못할 것 같아. 내게 너무

  소중한 존재야 선화누나가.”

 

 마음이 후련했다. 민영이 누난 잠시 생각을 하더니,

 

  “ 너도 알고 있었구나. 선화가 너 좋아하는거, 걔는 꿈에

  도 모를 거야. 결국 선화가 짝사랑만하더니 성공했네. 너

  가 이렇게까지 말하는거 보니까 괜히 섭섭하네 차인 것

  같아서. 대신 선화한테 정말 잘해줘야 돼, 너가 더 좋아하

  고 이때까진 선화가 계속 좋아했잖아, 안 그럼 나한테 죽

  는다.”

 

 라고 얘기를 했다.

 

  “ 그럴게...”

 

 난 대답했다. 누나가 시계를 보더니,

 

  “ 얼른 선화한테 가봐.”

 

 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누나도 대단한 것처럼 느껴졌다.

 

  “ 응, 그럼 나중에 연락할게.”

  “ 어, 파이팅!”

 

 민영이 누나의 응원을 듣고 택시를 잡아타 선화누나네 집 근처로 갔다. 내려서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어, 누나! 아까 전화했던데 왜 했어?”

  “ 아...그냥, 혼자 가기 그래서. 민영이한테 고백은 했어?”

  “ 응, 했어.”

  “ 뭐래?”

  “ 조금 생각해보더니 알았대.”

  “ 아...그래...”

  “ 응, 근데 누난 어디야?”

  “ 나 집 근처, 저기 언덕만 넘으면 집 보이겠다.”

 

 난 바로 그 언덕 너머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언덕 끝에서 누나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 아, 그럼 조심히 들어가고 모레, 아니지 12시 넘었으니

  까 내일 보자. 잘자.”

  “ 그래, 너도.”

 

 저만치서 누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혼자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다.

 

  “ 이제 민영이랑 만나면서 나랑 영화는 왜 본대, 민영이랑

  보러가지.”

 

 누난 내가 민영이 누나한테 사랑고백을 한거라고 오해를 하고 있었다. 점점 모퉁이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짠’하고 누나 앞을 막았다.

 

  “ 엄마! 깜짝이야!”

  “ 놀랬지?”

  “ 재민아, 네가 왜 여기있어?”

  “ 누나한테 말할 게 있어.”

  “ 뭔데?”

 

 그에 대한 대답을 누나 귀에 귓속말로,

 

  “ 누나, 나랑 연애할래?”

 

 라고 얘기했다.

 

  “ 응?”

  “ 왜?”

  “ 너 민영이한테 고백하고 왔다며 그런데 왜 나한테?”

  “ 고백했지. 누나랑 연애하고 싶다고 그러니까 조금 생각

  하더니만 알았다면서 나에 대한 누나 마음 말해줬어. 전부”

  “ 전부?”

  “ 응.”

  “ 그럼 내가 너...”

  “ 예전부터 지금까지 좋아하고 있다는 것도 들었지.”

  “ 아, 쪽팔려...”

  “ 그게 뭐가, 난 그말 듣고 얼마나 미안했는지 알아? 그것

  도 모르고 누나한테 고민상담하고, 그래도 누난 내가 그러

  면 안 해주고 해야지. 왜 해줬어?!”

  “ 네가 행복해야 나도 기분이 좋지.”

 

 그 말을 듣자마자 누나 손을 댕겨 누나 몸이 나 쪽으로 오게 하고 와락 안았다.

 

  “ 으이그! 멍청아! 말을 하지! 이제부터 내가 더 잘해주고

  더 많이 좋아할꺼다, 알았지?”

 

 누난 수줍은 듯이 작게 말했다.

 

  “ 알았어.”

  “ 우리 그럼 연애하는 거지?”

 

 누나가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이 몸으로 느껴졌다. 어느새 누나 손이 내 몸을 감싸 안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내 두 손으로 누나 얼굴을 바치고 내 입술을 누나의 입술에 닿았다. 대학시절때의 그런 설레고 당황스러운 키스는 아니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키스였다. 지금 이 순간 나와 누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게 10년이란 기다림을 끝을 내고 난 내 마지막 연애를 박선화라는 나 밖에 모르는 바보 같은 여자와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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