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원더 행성의 앨리스
작가 : 애플타운
작품등록일 : 2020.3.5

원더 행성의 앨리스가 만나는 모험 일기

 
티타임 테이블에서의 공원
작성일 : 20-03-07 00:59     조회 : 182     추천 : 0     분량 : 8897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티타임 테이블 공원에서의 오후 7시 30분. 앨리스는 먼저 와서 주문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만가는데 아직 아무도 오지 않고 공원 안에는 앨리스 혼자였다. 품 안에 체셔를 안에 두고 있기는 했지만, 체셔는 미동 없이 조용했다. 희미한 불빛이 깜박이는 가로등 밑에서 앨리스는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의 공기는 차고 맑았다. 숨을 크고 싶게 들이쉬자 신선한 공기가 들어왔다. 어둡지만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홀로 있는 기분은 평화로웠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신 없었는데.

 

 앨리스는 계속 공원에서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렸다. 시간은 어느새 30분이 흘러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체 왜 안 오는 걸까. 퍼스널 스크린을 확인해봤지만 아무런 메시지도 오지 않았다.

 

 ‘이러다가 바람 맞는 건가? 오지 않는 건가?’

 

 멀리서 검은 형상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매우 빠른 발걸음이었다. 아마 저 사람이겠지. 키가 무척이나 컸다. 검은 후드에, 상하로 검은 의복을 입고 있어 마치 검은 유령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사항들은 앨리스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난 돈만 받고 물건만 건네면 그만이야. 빨리 집에 가자.’

 

 검은 후드를 벗더니 금발이 보였다. 어둠속에서 찰랑이는 금발이 보이자 가로등이 켜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많이 늦었네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마카롱, 제가 주문한 사람인데요. 받을 수 있을까요?”

 

 앨리스는 순간 흠칫했다. 프린스 라이언을 닮았는데. 혹시 동일 인물인걸까?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말이지…

 프린스 라이언을 닮은 사람이 내 앞에 있다. 그냥 닮은 사람인걸까? 아니면 그저 어두워서 내가 착각하는 걸까? 좀 더 들여다보면 알겠지.

 긴가민가한 심정으로 앨리스는 곱게 포장된 상자를 건냈다.

 “여기요. 주문하신 분 맞으시죠? 주문자 ID는 ‘용기가 필요한 겁쟁이’ 시구요. 오늘 주문주셨던 바닐라 마카롱 5개, 우유 마카롱 5개, 헤이즐넛 마카롱 5개. 금액은 선입금으로 지급하셨구요.”

 “아, 감사합니다. 이거군요.”

 

 상대방이 상자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마카롱을 하나 꺼내 크게 한 입 꺼내물었다. 동시에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앨리스는 상자에서 바로 마카롱을 꺼내 먹는 걸 보고 흠칫 놀랬다.

 ‘그렇게 안 생겨서 먹는 거 꽤나 좋아하나보네.’

 

 옆에서 마카롱을 씹으면서 주문자가 미소를 짓는 걸 보자 앨리스의 기분도 만족스러워졌다.

 

 “내가 기대하던 그 맛인걸요.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그 맛. 다른 가게들도 여러 군데 찾아봤지만, 맛은 있어도 내가 생각하던 그 맛이 아니었어요. 어쩌면 나는 그 맛을 찾는 게 아니라 추억을 찾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마음에 드셨나봐요. 다행이네요. 오늘 급하게 주문이 들어와서 시간 맞출 수 있을까 해서 걱정했거든요. 맛있게 드시고 행복하세요! 또 생각나시면 재주문 해주시구요. 그럼 안녕히계세요.”

 

 보통은 주문한 디저트만 받고 감사인사로 헤어졌다면, 이 주문자는 위에서 앨리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상대방이 뚫어져라 쳐다 보는 게 느껴졌다. 앨리스가 싫어하는 순간이었다.

 ‘보나마나 또 내 왼쪽 눈을 보는 거겠지.’

 

 아까 작업을 위해 묶었던 머리가 아직까지 포니테일 스타일로 있어 그만 눈을 가리지 못했다.

 

 ‘또 보나마나 괜한 소리 듣게 생겼네. 모자라도 쓰고 올걸.’

 

 앨리스는 속으로 늦은 후회를 하고 있었다. 이제껏 눈을 보여줘서 좋은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점잖은 사람들은 모르는 척 넘어가 주곤 했지만, 어디 오드 아이가 그리 흔하던가. 긍정적인 반응에 대한 기대는 버린 지 오래고, 그냥 놀라는 것으로 넘어가면 좋겠는걸…

 

 “네, 저는 돌연변이랍니다. 거부감이 드시나요?”

 

 앨리스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속은 따가웠다. 뭐 좋은 소리 듣겠어. 하지만 들려오는 목소리는 상냥했다.

 

 “왼쪽 눈에 푸른 바다가 있네요.”

 

 앨리스의 마음이 떨려왔다. 상냥하게 말해주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봤다. 그는 아까 스크린에서 본 사람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아니, 더 아름다웠다.

 

 “아름다워요.”

 

 앨리스는 말문이 막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최소한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해야 할 텐데,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많이 놀랐다. 말을 참 예쁘게 하는구나.

 

 그는 마카롱을 한 입 더 깨물어먹더니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정말 맛있네요. 시간만 된다면 둘이 같이 걸으면 더 좋을텐데. 시간 괜찮아요?”

 

 “좋죠. 시간 많아요.”

 

 둘은 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산책로는 좁았고, 그래서 둘의 거리는 가까워질 수 밖에 없었다. 한산한 공원에는 길을 따라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고, 그 나무들은 마치 둘을 보호하는 듯 무심하면서도 건장하게 서 있었다.

 

 “어릴 때 어머니가 해주시던 맛이 나요. 음, 잠시 7살로 돌아간 것만 같네요.”

 

 “어머니가 해주시던 맛이라면, 사먹는 것보다 어머니에게 해달라고 부탁드리는 게 더 좋지 않나요?”

 

 “그러면 좋겠지만, 지금은 애가 아니라서. 그런 어리광은 더 이상 못부리겠네요.”

 

 “왜냐하면 조금 있으면 원더 행성을 책임지게 될 거니까?”

 

 앨리스가 단도직입적으로 공을 던졌다. 물어봐서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물론 상대방이 순순히 자기가 누구인지 인정할 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 정말 프린스 라이언이라면 신분을 숨기는 게 아무래도 유리할 것이고, 그저 닮은 사람이라면 아니라고 할 테니까.

 

 “그렇죠. 그런 이유에서도 있고. 아무래도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멋진 모습만 보여줘야 하니까.”

 

 하지만 답변은 달랐다. 자신이 누구인지 솔직하게 내보였다. 혹시 이건 거짓말인걸까? 그러기에는 스크린에서 듣던 목소리와 매우 흡사했다.

 

 “정말 프린스 라이언이라면, 이 정도 마카롱을 만들어 줄 사람들은 넘쳤을텐데요. 왜 굳이 이 작은 가게에 급하게 주문을 주신거죠? 게다가 입금까지 과하게 하시고.”

 

 앨리스는 궁금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궁금하면서도 의심이 갔다. 높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바쁠 이 사람이 대체 이 시간에 여기에서 왜 나와 있나. 그리고 왜 내 앞에서 마카롱을 맛보면서 유유자적 걷고 있나.

 

 “물론 그래 줄 사람들이야 많죠. 그런데 ‘3월의 토끼 디저트 페어’에 참가했을 때, 다른 사람들 디저트도 참 좋았지만 ‘달콤한 눈사람’의 마카롱이 뭔가 참 다르더라구요. 그냥 맛있는 게 아니라, 어릴 때 먹었던 느낌?”

 

 “아, 어머니 레시피랑 제 레시피랑 비슷한가봐요. 가게마다 레시피가 조금씩 다르거든요. 쓰는 기기도 달라서 맛이 약간 차이가 나긴 하는데. 그럴 수 있죠. 게다가 진짜 프린스 라이언이라면 어머니가 퀸 하트일텐데, 당연히 바쁘시겠죠.”

 

 “어머니일 때에는 바쁘지 않았어요. 퀸 하트일 때만 바쁜거지. 퀸 하트이기 전에는, 상냥한 어머니였다구요. 결혼 이후 어머니는 변했어요. 더 이상 나를 아들이 아닌 프린스 라이언으로만 본다구요. 내가 무슨 상품인 줄 알아요. 완벽합니다, 이 상품. 제가 직접 기획한 상품입니다. 다들 한 번 보시죠! 흠집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제가 고치겠습니다. 아무렴요, 자고로 프린스 라이언은 완벽해야하니까요!”

 

 그러고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누구에게나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은 일이 한두가지는 있다지만, 이렇게 붙잡힐 줄은 몰랐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내팽개치고 도망갔겠지만, 호감이 있는 프린스 라이언이라 앨리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 좋아하는 마카롱도 마음대로 못 드시고… 퀸 하트이기 전이라면, 왕실에 들어오기 전 말인가요?”

 

 “맞아요. 그 놈의 무도회. 그 놈의 무도회만 아니었어도 어머니는 퀸 하트가 되지 않았을텐데요.”

 

 킹 하트와 퀸 하트의 러브 스토리는 원더 행성에서 유명한 이야기였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지만 이혼당하고 혼자 힘겹게 아들을 키우던 여자가 왕실에서 주최한 무도회에 참석한다. 단아하지만 그 속에 빛나는 아름다움을 알아본 왕자는 여자에게 춤을 신청하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사랑이 피어나 둘은 결혼했다. 자상한 남편인 킹 하트는 아내 퀸 하트의 아들인 라이언을 친 자식처럼 사랑하고 돌봐줬고, 덕분에 프린스 라이언은 반듯하게 자랄 수 있었다, 는 화목한 가정의 이야기. 마치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동화의 주인공은 정작 딴 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 놈의 무도회에 어머니가 안 갔다면? 프린스 라이언이 아니라 마카롱을 주문한 손님…에 불과했을텐데요.”

 

 게다가 당신이 물려 받을 재산은 평생 다 쓰고도 남을 양이잖소… 부럽기만 하구먼. 자상한 새아버지에, 부유함에,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잘생긴 얼굴까지. 외모란 요소에서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면, 아버지의 재혼으로 금수저까지 챙긴 셈이었다.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앨리스는 성질이 나서 길가에 있는 돌멩이를 차버렸다. 프린스 라이언과 자신을 비교하니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해보였다. 젠장. 은수저, 금수저까지는 바라지는 않는다. 수저를 올려놓을 탁자라도 있으면 좋겠다.

 

 “사장님, 그게 아니라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모릅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사장님이라고 하시지 말고 이름 부르셔도 됩니다. 저희 나이 같거든요. 그냥 앨리스라고 불러주세요.”

 

 “네, 앨리스. 아, 갑자기 이렇게 부르려니까 이상하네.”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웃기긴 하죠.”

 

 “그래요, 마카롱 이거 참 맛있네. 쫀득하면서도 달달한 게 입에 계속 들어가네요. 예전에는 단 게 좋지 않았는데. 오히려 단 음식은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큰 일을 앞두고 있으니까 긴장이 되나 봐요. 계속 단 음식, 열량이 높은 음식을 주문하고 있더라구요. 오늘도 그렇고.”

 

 “조금 있으면 그 좋아하지 않는 무도회라서 그런가봐요. 큰 행사이긴 하죠. 결혼이 가능한 모든 여자들이 참석한다고 할 정도고… 어릴 때부터 무도회에 참석하는 걸 소원하는 사람들도 많고. 프린스 라이언 얼굴 보러 가는 사람들도 많고.”

 그랬다. 왕실이 주최하는 무도회는 환상의 나래 그 자체였다. 환상을 채워주는 러브 스토리가 실행되는 때니까.

 

 정작 당사자는 아닌 모양이지만…

 

 “그럼, 당신도 오나요?”

 

 “아니요. 신청도 안 했는데요.”

 

 프린스 라이언이 의아해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잘생겼다. 그는 남은 마카롱이 든 상자를 손에 쥔 상태였다.

 

 “왜죠? 다른 사람들은 못 가서 안달인데. 신청이라도 해 보지 그랬어요?”

 

 “그럴까 생각도 했었지만, 이미 늦었네요.”

 

 앨리스는 어쩔 수 없다는 제스쳐와 함께 입을 내밀었다. 지나간 걸 어쩌겠는가.

 

 라이언은 품 안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을 앨리스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림이 프린트되어 있는 작은빳빳한 종이다.

 

 “이게 뭐죠?”

 

 “영화 티켓이요. 영화 ‘시네마 천국’ 좋아해요?”

 

 “안 봐서 좋아하고 말고 자시고 할 게 없는데요.”

 

 “그럼 꼭 봐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거든요. 방금 내가 준 건 영화 스틸컷이 프린트 된 거예요. 생각날 때 꼭 봐요.”

 

 “그럼 다음에 만날 수 있으면 만나요. 어쩌면 곧 만나게 될 지도 모르겠네.”

 

 그는 성큼성큼 걸어가버렸다. 길고 호리호리한 체형이 금세 멀리 가 있었다. 그의 멀어지는 뒷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앨리스는 라이언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봤다. 그의 말에 계속 머릿가에 맴돌았다. 눈에 푸른 바다가 있다. 내 왼쪽 눈에는 푸른 바다가 있다! 왜 그 동안 이렇게 좋은 말을 자기 자신에게 해 주지 않았을까! 세상사를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은 모두에게 사랑받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권리인 것인가?

 프린스 라이언이 준 영화 티켓을 살펴봤다. 어린 소년이 필름을 살펴보고 있고 그 옆에 있는 노인은 필름이 돌아가는 기계를 앞에 두고 작업을 하고 있다. 평소에 문화 생활과는 거리가 먼 앨리스라 어떤 영화인지는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주머니에 티켓을 구겨넣었다. 어짜피 볼 일이 없어보이는 영화였다.

 체셔가 앨리스의 품 안에서 나와 공원을 네 발로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공원에는 체셔와 앨리스만이 있었고 가로등에는 약하게 불이 들어와 있었다. 희미한 빛을 가진 가로등 밑에 있는 앨리스는 누군가가 크고 빛나는 조명을 자신에게 비춰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체셔, 너도 봤지?”

 그렇게 말하는 앨리스의 목소리는 들떠있었고,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볼은 발그레했다.

 “봤지. 얼굴이 영롱하던데? 목소리도 은은해. 푸른 바다가 있다니, 말도 참 잘해. 분명히 어디서 영업 좀 해봤을 거야. 그런데 이상하다. 사람이란 의례 상대편 주머니에서 나올 게 있어서 친절하기 마련인데, 왜 너한테 그렇게 친절했을까?”

 

 체셔가 산통깨는 소리를 하는 동안 앨리스는 감성에 젖어 있다가 현실로 돌아왔다. 앨리스가 착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마카롱이 맛있었나보지. 기분이 좋으면 뭔 말인들 못하겠어.”

 

 “그런가? 난 마카롱 먹어봤자 별 맛 안나던데. 아무래도 인간들의 미각 시스템은 나와 다른게 분명해.”

 

 “그럴지도. 집에 돌아가자, 체셔.”

 

 앨리스는 힘이 빠진 기분이 들었다. 터벅터벅 걸어갔다. 말도 없이.

 

 체셔와 앨리스가 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들을 반겨주는 가족들은 전부 거실에서 다 누워 있는 상태였다. 소파에 누워있는 상태로 빅 스크린을 켜 놓은 채 각자 퍼스널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풀이 죽은 목소리로 다녀왔다는 인사에 새엄마 스페이스와 새언니 다이아가 고개를 돌렸다. 쨍쨍한 목소리로 새엄마 스페이스가 말을 걸어 왔다.

 

 “얘, 오늘은 얼마나 벌었니? 설마 오늘도 허탕친 건 아니겠지?”

 

 “아닌데요. 저 피곤하니까 그만 올라가서 쉴게요.”

 

 “너 지금 어른 말 무시하는 거야? 여태껏 먹여주고 재워주고 했으면 키운 값을 해야 될 거 아니야! 양심도 없지. 너는 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는 거니?”

 

 “뒤통수로 먹네요.”

 

 거기까지가 짧은 기싸움의 끝이었고, 앨리스는 방에 돌아와 한숨을 내쉬었다. 폭신한 침대에 들어가 몸을 뉘였다. 새엄마와는 지긋지긋하다. 하루 빨리 여기서 나가는 것이 앨리스의 목표였다. 아직은 미성년으로 보호자가 필요하지만, 조금만 있으면 된다. 그럼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나가고 볼 생각은 없다. 현재 개인용 조종선인 스페이스 웨건에 대해 배워오고 있는 상태였다. 새 웨건은 아니고, 중고다. 사실 중고라기도 하기에 애매한, 누군가가 쓰다 남기고 간 물건이다. 체셔의 도움을 받아 여러 가지 데이터를 다운로드 해 모델을 검색해 본 결과, 아주 오래된 모델이었다. 부품을 사서 직접 수리를 하고는 있지만, 과연 잘 작동될까…? 게다가 스페이스 웨건은 어릴 때 잠깐 배워본 게 다였다.

 

 아니지, 어쨌든 간에 스페이스 웨건만이 앨리스의 살 길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돈을 모아 수리를 완성하리라. 그리고 이에 크게 보탬이 된 사람을 오늘 만났지. 아주 갑작스럽게.

 

 주머니에 꾸겨 넣은 티켓을 다시 꺼냈다. 유니버스 와이드 웹에 접속해 영화 제목을 검색해봤다. 스크린을 보니 오래된 영화였다. 사람들이 지금처럼 각자 퍼스널 스크린을 지니지 않던 때 만들어진 영화였다. 영화가 세상의 전부인 소년 ‘토토’와 할아버지 영사 기사인 알프레도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라는 소개에 앨리스는 코웃음을 쳤다. 이런 오래된 영화도 보고, 시간 많나 보네. 팔자 좋아.

 

 프린스 라이언을 직접 만나면 정말 기쁠 줄 알았다. 행복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앨리스가 라이언을 동경하고 사랑하는만큼 속에 있던 질투심과 화가 튀어 올라왔다.

 

 저 사람과 나는 나이도 같고, 같은 행성에 살고 있어. 하지만 너무나도 달라. 나는 집에서 뛰쳐나오기 위해 어릴적부터 전전긍긍하며 살았지만, 정작 라이언은 엄마가 자기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다면서 푸념이나 늘어놓지. 내가 만든 마카롱이나 먹으면서 말이야! 라이언은 아무 것도 몰라. 나 같이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의 인생에 대해서는 조각 케이크 크기만큼도 모를거야.

 

 … 이건 공평하지 않아.

 

 누가 이런 삶을 원했는가? 스크린에서는 젊음의 반짝임과 풋풋함을 예찬하며 인생을 즐기라고 떠들어대고 있지만, 앨리스의 시간에 그런 봄날은 잠깐이었다.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는 아버지가 자신 곁에 있던 행복했던 유년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봄날은 지나갔다. 자신은 봄에 잠시나마 피는 화려한 벚꽃같은 인생도, 묵묵히 자신의 삶을 지켜가며 나이테를 키워가는 거목 같은 타입도 아니었다. 나뭇 가지 정도라면 해당이 될려나.

 

 비교하자보니 한도끝도 없고 자기 자신만 더 비참해졌다. 앨리스는 티켓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쿠구궁!

 

 천둥이 치는 소리가 나더니 밖에는 비가 내렸다. 이런. 스페이스 웨건을 확인해봐야겠는걸. 새 엄마와 언니가 자고 있는 지 확인한 뒤 검은 우산을 들고 창고로 갔다. 어둡고 칙칙하고 습기찬 공간인 창고에 새엄마와 새언니는 절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다들 자기가 여왕인 줄 알고 행동하는 부류니까. 그러니 당분간 들킬 일은 없으리라. 씌워놓은 검은 비닐을 벗겼다. 앨리스는 체셔가 앞발로 비춰주는 전등빛으로 스페이스 웨건을 살펴보고 있었다. 어찌어찌 사정하고 사정해 중고 거래로 부품을 사와 책에서 찾아 본 기술로 완성시킨 스페이스 웨건은 참 볼품 없었다.

 

 “체셔, 이거 움직이기는 할려나? 오늘 보니까 불안불안한데. 볼품없어 보여. 비가 와서 그런가?”

 “내가 점검해 볼게.”

 

 체셔는 스페이스 웨건에 꼬리를 대더니 기기의 상태를 점검했다. 상태 결과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중간 상태였다.

 

 “상태가 나쁜 건 아냐. 먼 곳은 가기 힘들겠는데? 가더라도 죽 쓰면서 가거나 누군가가 도와줘야 할 거야.”

 “아무래도 그렇겠지? 덕지덕지 부품을 갖다 붙였으니 그럴만도 해.”

 

 신형의 스페이스 웨건이 깔끔하고 멋진 모양새를 뽐냈다면, 앨리스의 웨건은 자유분방했다. 웨건의 날개 부분은 위로 솟아있고, 배관은 뒤로 쭉 나와있어 마치 긴 꼬리처럼 보였다. 앞쪽에 조종석은 툭 솟아있어 새의 머리처럼 보였다. 이건 마치… 그리폰 같았다. 독수리의 머리에 사자의 몸과 새의 날개를 가졌다는 상상의 동물, 그리폰의 웨건 버전이었다. 체셔도 동의한다는 듯 눈을 깜박해보였다.

 

 “이제 이 친구 이름은 그리폰이야. 이름 따라 간다는 말이 있지? 그리폰처럼 강해졌으면 좋겠다.”

 

 앨리스는 점검을 끝낸 후 체셔와 돌아와 잠을 청했다.

 

 왜 이리 피곤하지. 한 것도 별로 없는데. 아, 맞아. 내일 클로버 공작 부인의 생일 파티에 케이크를 갖다 주기로 했지. 클로버 공작 부인이 누구더라? 기억난다. 다혈질이고, 오만하고, 성깔 더럽기로 유명하지…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 티타임 테이블에서의 공원 2020 / 3 / 7 183 0 8897   
1 디저트 가게 주인 2020 / 3 / 5 319 0 7755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티그리스 강가에
애플타운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