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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러나 그는 죽지 않는다
작가 : 에르노
작품등록일 : 2016.10.5

누군가 그를 미친듯이 원한다! 영문도 모른 채 쫒기는 소년, 그는 어째서 납치당하는가?
벗어날수록 옭아매오는 그물, 그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치명적인 음모가 정체를 드러낸다!

강대한 라니냐 제국의 볼모가 되어버린 도림 왕국의 태자, 상냥하고 친절하나 실은 비성숙한 자아에 고통받는 그는 제국을 적대하는 식민지 독립파에 의해 납치당하고 만다. 탈출을 시도하고 흉악한 적들과 추격전을 벌이며 이색적인 해적과 조우한다. 스릴 넘치는 모험과 풋풋한 사랑을 통해 자아의 성장을 일궈나가는 다크판타지.



표지는 핀터레스트 펌입니다.

 
12.소니아를 보다
작성일 : 16-10-15 21:56     조회 : 594     추천 : 0     분량 : 9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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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야!”

 

  아리아가 이도의 머리를 뒤로 너무 꽉 묶은 탓에 저절로 신음이 나왔다.

 

  “가만히 있어 봐. 이래야 나갈 수 있어.”

 

  그들은 막 렐리아나 항구에 도착했다. 선원들의 행선지는 단골 선술집이었다. 아리아, 이도, 돌격대장의 행선지는 다른 곳이었다.

 

  돌격대장은 아리아 대신 미리 거래인에게 가 있기로 했다. 그리고 아리아는 자신의 언니에게 이도가 누군지 몰래 소개하고 자신의 계획을 설명해야했다. 이도는 배 안에 가만히 있는 게 안전했지만, 어쩔 수 없이 데리고 나가야만 했다.

 

  그래서 아리아는 이도의 머리를 묶은 뒤 모자를 푹 눌러쓰게 했다. 고집부리며 착용한 펜던트를 가리기 위해 웃옷을 두껍고 어두운 색상의 것으로 맞췄다. 이정도면 피부도 하얗고 아무도 동방 사람이라 생각 못 한다. 또 골격도 혼혈다우니 더할 나위 없다.

 

  아리아가 말을 걸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너희 도림 왕족은 왜 서양 사람과 외모가 흡사한 거야?”

 

  “그건 도림의 전신인 한 왕국과 관련이 있어. 그 왕국의 지배층은 토착민이 아닌 바로 서방 이민족이었어. 너도 알다시피 문명의 발생은 서방이 동방보다 빨랐잖아? 그래서 먼 옛날에 서방 이민족이 발전된 기술과 제도를 가지고 동방으로 와 부족을 다스리며 스스로 지배층이 된 거지. 그게 지금 우리 민족, 도림족의 발생이야.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 보면 아무리 서방사람이라도 계속 동방사람과 결혼하면 서방의 특색이 옅어지잖아? 근데 그러면 서방 이민족이라는 지배층의 의의가 퇴색해버리고 그건 정당성에 타격을 주지. 그래서 외모만이라도 차별화가 필요했던 거야. 그래서 세 세대에 한 번 꼴로 일부러 서방사람과 피를 섞어서 서방풍의 외모를 유지한 거지. 이른바 만들어진 혼혈이야”

 

  “헤에.”

 

  아리아는 이도의 머리에 검정 모자를 푹 씌우고 말했다.

  “왕족들도 고생이 많구나. 근데 그럼 넌 제국으로 가며 감회가 남달랐겠네? 너의 원류는 서방이잖아.”

 

  이도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 고향은 오직 도림뿐이야.”

 

  “미안. 내가 실수했네.”

  “괜찮아. 근데 이제 다 됐어?”

 

  “완벽해. 이 정도면 누가 봐도 서방인이야.”

 

  이도는 아리아와 함께 배 위로 나갔다. 선원들이 정말 아무도 없었다. 대신 외부에서 고용한 수리공 몇 명만이 있었다.

 

  이도는 배 난간에 걸터앉아 렐리아나 항구를 둘러보았다. 조개에서 풍기는 듯한 바다의 향취가 물씬 난다. 갈매기는 끼룩대며 이리저리 날아다니거나 이도처럼 어딘가에 걸터앉아 사람들을 갸웃거리며 쳐다봤다.

  이도와 아리아는 설치된 간이 계단을 통해 배에서 내려왔다.

 

  항구도시의 건물들은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서 바닷바람에 여기저기 변색되어있었다. 상점 앞에는 파리가 왱왱 거리며 물고기를 탐냈고 긴장한 표정의 제국 보초병이 두 명끼리 길거리를 순찰했다. 주도권을 쥔 밀수꾼과 해적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칼을 차고 다니며 손에 술병을 들고 자유롭게 길거리를 쏘다녔다.

  둘은 함께 길을 걸었다.

 

  아이들은 마구 뛰어다니며 놀았고 여자들은 대부분 상점 일을 보거나 음식점, 여관 등지에서 일하고 있었다. 개 중에는 옷을 짧게 입고 구석진 장소에서 남자들을 유혹하는 매춘부도 있었다.

 

  항구의 풍경은 퇴폐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생기가 넘쳤다. 도림 왕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생명력이 파도처럼 철썩이고 있었다. 이도는 짠 냄새를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가자.”

 

 

  이도는 아리아와 함께 길을 걸어갔다. 가까이서 보니 사람들의 인종도 제각각이었다. 동방인, 서방인, 남방인, 그리고 정말 드물지만 북방인도 보였다. 북방인을 보자 이도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이게 유전자에 각인된 공포라는 걸까 싶다. 또 걸어 다니는 와중에도 여기저기 그물이 아무렇게나 널려있어 조심해야했다.

  “어때, 도리아? 항구는?”

 

 

  “활기 넘치네. 나쁘지 않아.”

  “그치? 내 마음의 고향이거든, 여기는. 네가 좋아해서 다행이야.”

 

  아리아는 킥킥대며 웃었다. 이도도 미소로 화답했다.

 

  그러나 마음속에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아리아가 말하길 꺼리는 언니란 대체 어떤 사람일까?

 

  부디 정상적인 사람이길.

 

  그들은 얼마 안 가 아리아의 언니가 기다리는 선술집에 다다랐다. 아리아의 선원들이 모여 있는 선술집 바로 옆이었다. 아무래도 거긴 시끄러워서 장소를 바꾼 듯했다. 아리아가 문을 열어 같이 들어갔다. 슬슬 해가 떨어지는 참이긴 했지만 선술집은 상당히 어두웠다. 그리고 사람도 별로 없다. 그렇기에 이야기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안녕, 점장.”

 

  아리아는 선술집 주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내 언니가 기다리는 별실은 어디지?”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들은 점장을 따라 별실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 아리아가 이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디 놀라지 마.”

 

  이도는 마음을 다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좋아, 가자. 이도.

 

  이도는 문제의 그 언니를 봤다.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황당했다.

 

  “아무래도 잘못 들어온 것 같은데?”

  “아냐! 여기가 맞아. 여기 앉은 이 분이 내 언니야.”

  아리아는 언니를 보며 웃었다.

 

  “언니, 잘 지냈어?”

  그 ‘언니’는 살짝 손을 흔들며 미소로 맞아주었다.

 

  이도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 아리아의 언니를 보았다. 언니라고? 아무리 나이를 많이 잡아봤자 11살에서 10살 정도로밖에 안 보였다. 눈썹은 아리아와 달리 짧고 굵었다. 눈은 둥글둥글했고 눈동자는 황금호박색이 감돌았다. 볼은 잡고 놀기 좋게 아담히 튀어나왔다. 입술은 이도가 마음에 안 드는지 비틀려있다. 헤어스타일도 아이 같다. 앞머리는 이마를 반 정도 드러낸 정도의 길이로 일자로 잘랐다. 옆머리는 밑으로 쭉 뻗었고, 뒷머리는 묶어서 포니테일로 짧게 땋아 내렸다.

 

  정말 언니라고? 날 놀리는 건가?

 

  “어, 음. 안녕하십니까, 아리아의 언니 분. 제 이름은.”

 

  이도는 아리아를 돌아보고 본명을 말해도 되냐고 눈빛으로 말했다. 아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을 말해도 된다는 뜻이다.

  “제 이름은 이도입니다. 도림왕국의 태자이며 최근에는 라니냐 제국의 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국 성도로 호송되던 중, 식민지 독립파에게 납치당했다가 언니 분의 동생이신 아리아의 도움으로 구출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배의 수리를 위해 잠시 렐리아나 항구에 정박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언니는 놀라운 말을 듣고도 별 감흥이 안 드는 듯 고개를 까닥거릴 뿐이다.

 

  이도는 악수를 위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언니는 마지못해 손을 내밀고 악수를 받아주었다. 부드럽고 귀여운 손이다.

  언니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소니아야. 줄여서 소냐라고 불러도 돼. 내 동생도 이름을 줄여 아냐라고 불러도 좋고. 너같은 중요인물에게 실례를 범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신분을 증명할 것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군. 겉으로는 티를 안 내도 사실 속으로 많이 놀랐거든. 자신을 왕족이라 소개한 사람은 처음이라서.”

 

  이도는 목의 펜던트를 꺼내 겉과 안까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은발을 보여주었다. 동방풍 얼굴에 하얀 피부, 도림 국기가 새겨진 펜던트면 충분했다. 소니아는 그만하면 됐다는 듯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의 말은 신뢰가 담겨있다.

 

  “좋아. 죽을 때까지 고문당하고 싶어 제국의 대자와 왕국의 태자를 사칭하는 바보는 아닌 것 같군. 흠, 나에 대해 얘기하자면, 내 모습, 뭐, 당황스럽겠지? 우선 난 언니가 맞아. 나이는 22살. 같이 노예 생활을 버텼지. 그러다가 아리아의 주도로 탈출했고. 뭐, 들어서 알겠지? 그렇다면 문제는 내 외모. 이상하지?”

  “아닙니다.”

 

  이도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대답했다. 소니아는 쿡쿡 웃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더 황당할 수 있어. 난 말이지, 일종의 마법 피해자야.”

  “마법 피해자라고요?”

 

  “아냐한테 식민지의 마법 연구에 대해서 들었지? 검은 기름과 마곡의 사용법 등등에 대해서도.”

 

  “네. 하지만 마법 피해자가 뭡니까?”

  “간단해. 나는 밀수 관련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마법 연구도 하고 있어. 재료를 이리저리 배합해서 무엇이든 간에 마법 레시피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마법연구는 생겨난 지 얼마 안 된 분야라 미발견 분야가 엄청 많거든. 그래서 열심히 마법 연구를 하던 도중, 어느 날 갑자기 부작용이 일어나, 기절하고 일어났더니 몸이 이렇게 되었더라, 그 말씀이지.”

 

  이도는 입을 떡 벌렸다.

  “정말이십니까?”

 

  “이거, 이거. 너무하군. 난 너를 믿어줬는데, 너도 날 믿어줘야지? 여하튼 그 날 내 레시피에는 회춘이 추가되었지. 참, 이건 외부에 발설하면 안 돼. 엄청난 경쟁력이거든, 레시피 하나하나가. 뭐 먼 미래에는 대중화 되겠지만 일단은 고급화라고! 근데 아쉬운 건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해. 회춘 정도를 조절할 수가 없어. 잘못하면 정자와 난자로 변할 수도 있지!”

 

  살짝 흥분한 소니아는 기침을 하며 기분을 가라앉혔다.

  “이 주제는 됐고. 그래, 아냐. 이 백마 탄 왕자님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뭘 얻기로 했어? 아니, 역할이 반대니까 백마 탄 해적님인가?”

  아리아는 화들짝 놀랐다.

 

  “뭐? 백마 탄 왕자? 아, 아, 크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귀족작위를 얻기로 했어. 신대륙이 아닌 제국 본토에서. 영지도 얻을 테고. 물론 언니와 선원들도 모두 데려갈 거야. 함께 살지는 못하는 선원에게는 자립할 만큼의 돈도 줄 테고.”

  소니아는 눈을 찌푸리며 손톱으로 관자놀이를 탁탁 쳤다.

  “대자가 그걸 할 수 있어?”

 

  “제국의 대자는 특별한 존재잖아? 게다가 황제가 일단은 자기 아들을 구해준 사람에게 그 정도 보답도 못 해주겠어?”

  “그건 그렇지.”

  “어때, 언니? 좋은 생각 같지 않아?”

 

  소니아는 몸을 뒤로 쭉 뺐다. 표정이 부루퉁하다.

  “글쎄다. 고향을 떠난다고? 별로 안 내키는걸.”

  “그게 뭔 소리야?”

 

  아리아는 몸을 앞으로 뺐다.

 

  “둘도 없는 기회라고! 당연히 가야지! 게다가 언니 마법연구도 대폭 지원받을 수 있을 거야.”

  “그건 좀 구미가 당기는걸.”

 

  그렇게 말하면서도 표정은 심드렁했다. 아리아와 이도는 곤란한 표정을 교환했다.

  “언니, 왜 그렇게 심술 부려? 뭐가 어때서?”

 

  소니아는 아리아를 흘겨보았다. 그러더니 가만히 응시했다.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해. 그 날, 나를 비롯한 많은 노예들을 네가 구해낸 그 날을 말이야. 너는 그 날 이렇게 말했어.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이제 우리는 누구에게도 속박당하지 않고, 누구에게 의지하는 일 없이, 스스로 삶을 일구어내야 한다고. 그리고 우리는 너에게 감명 받아, 네가 제안한 대로 해적 밀수꾼 일에 뛰어들었어.”

 

  소니아는 아리아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난 그때 네게 감동받았어. 내 동생은 참으로 대단한 아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지. 그렇게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자, 그 전까진 없었던 활기가 내게 생겼어. 넌 말이야, 그 날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삶을 주었던 거야. 네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아리아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말은 이제 그만해.”

 

  “그래서 난 화가 나는 거야!”

  소니아는 주먹을 움켜쥐며 아리아를 노려보았다.

 

  “우리에게 새 삶을 준 사람이, 삶을 스스로 일궈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던 사람이, 뭐라고? 왕자님을 구해준 대가로 귀족이 돼? 마치 노예 같다고 생각되지 않아? 주인이 주는 것에 의지하는 노예처럼, 타인이 준 것에 편승하여 귀족이 되어 호위호식한다고? 그건 너답지 않아. 더욱이 네가 해야 할 말도 아니야!”

  소니아는 까드득 입술을 물었다.

 

  “대체 왜 그렇게 나약해진거야? 우리는 서로 노력해서 이 땅에서 명성도 얻고 돈도 얻었어. 웬만한 사람들은 우리를 우습게보지 못해. 이게 전부 너와 나, 네가 그 날 구했던 자들이 합심해서 얻은 거야! 근데 그걸 전부 내팽개치고 떠나겠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대체 왜 그렇게 나약해진거야? 대답해!”

  아리아는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언니가 말한 것들, 전부 타당해. 하지만 내가 아무 생각도 없이, 나약해져서 그런 결정을 내리기로 한 건 아냐. 우선 첫째, 식민지에서 우리의 입지 문제야. 우리는 무역으로 명성을 얻었어. 지금까지는. 하지만 그건 식민지 당국과의 제휴 아래에서 가능했어. 하지만 최근 상황이 격변하고 있어. 독립파가 득세하고, 언제라도 그들 세상이 될 수 있어. 게다가 난 결국 그들이 승리할 거라고 봐. 그럼 우리는 뭐가 되겠어? 그들이 이야기를 새로 짤 테고, 그 새로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적과 내통한 배신자야. 우린 전부 목 매달리는 신세가 되어버리겠지. 둘째, 장사 문제야. 밀수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 머지않아 적법한 방식으로도 큰 수익을 낼 무역을 찾아 떠나야했어. 그래, 사실 이도의 제안이 없었어도 나는 여기를 곧 뜰 생각이었어. 내가 염두에 두었던 무역 루트는 도림과 남방 사이의 중개무역인데, 뭐 그건 이제 됐고. 셋째, 우리의 자식들 문제야. 우리는 능력이 좋으니까 잘 벌어먹고 살지만, 우리의 자식들은 그렇지 않을 수가 있어. 능력이 떨어지면 힘들게 살 수밖에. 하지만 귀족 작위 아래에서라면 달라. 나는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이도의 귀족 작위 제안을 받아들인 거야.”

 

  소니아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이도의 귀족 작위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이봐, 너. 네가 먼저 아리아한테 널 보호해주면 귀족 작위를 주겠다고 제안한 거야? 푸하하하하!”

  소니아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줄 알았어. 대체 얼마나 티가 났으면 그 많고 많은 보답 제안 중에 ‘당신이 원하는 걸 말해보세요’도 아니고, 귀족 작위를 주겠다고! 와, 아냐. 너 진짜 장난 아니게 티냈나 보구나? 네가 귀족이 되고 싶다는 걸?”

  아리아는 말이 안 나오는 듯 입을 뻐끔댔다.

 

  “무슨 진지하게 세 가지 이유를 대고 그래? 그냥 사실을 말해. 네가 귀족이 되고 싶다고!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다른 불필요한 것은 내칠 수 있다고. 넌 말이야, 아직도 노예 생활의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거야. 귀족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깔보고 싶지? 우월감을 느끼고 싶지? 네 저택에서 일하는 하인들을 보거나 막대하면서 열등감을 해소하고 싶은 거 아니야? 그런 거잖아? 진실을 말해봐! 하하하하!”

  소니아는 아리아의 손을 확 잡아챘다.

 

  “이것 좀 봐. 매일매일 세 시간 씩 시간 들여가며 관리를 하는 꼴 좀 보라고. 네가 그러는 모습 볼 때마다 얼마나 속이 뒤집어지고 타들어갔는지 알아? 절대 모르겠지? 어떨 때는 말이야, 그냥 확 불로 지져버리고 싶었어! 그냥 네가 마음을 접어버리게!”

  이도는 소니아의 손을 탁 쳐버렸다.

 

  “아얏!”

 

  “그만 하세요! 대체 왜 그렇게 괴롭히시는 겁니까? 비록 아리아가 자기 욕망을 위해서 귀족이 되고 싶어 할지라도, 아리아는 선원들을 자식처럼 아껴요. 무슨 내친다느니,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그래서 같이 데려간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아리아를 몰아세울 필요가 대체 어디에 있어요?”

  소니아는 음흉한 얼굴로 쿡쿡 웃었다.

 

  “뭐야, 뭐야. 너희들, 벌써부터 이렇게 입을 맞추네? 큭큭큭! 이미 다른 곳도 맞춘 것 아냐? 하하하!”

  아리아가 소리 질렀다.

 

  “이제 됐어! 언니가 날 욕하든 말든 원하는 대로 해. 난 이만 가볼 거야. 내 제안, 잘 생각해봐. 내 개인적 욕망을 위해 귀족 작위를 탐내는 건 사실이야. 부인하진 않을게. 하지만 여기에 계속 있다간 배신자 낙인이 찍혀 개죽음 당하는 것도 사실이야. 언니는 현명하니까, 더 나은 선택지를 뽑으리라 믿어. 그럼 이만. 이도, 가자.”

  이도와 아리아가 나가려 할 때, 소니아가 한 마디 덧붙였다.

 

  “아리아, 난 지금의 네 모습이 맘에 안 들어.”

 

  아리아는 입술을 꽉 물었다.

  “나는 언니 맘에 들려고 사는 게 아냐.”

 

 

 

 

  아리아는 선술집을 나섰다. 이도의 손을 꽉 잡고 어딘가로 갔다. 이도는 아리아의 빠른 걸음걸이에 맞췄다.

 

  “어디 가는 거야?”

 

  아리아는 으슥한 뒷골목에 도착했다. 이도의 손을 놓고 쭈그려 앉아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작게 흐느꼈다. 이도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뭘 해야하나 고민했다. 그러다가 아리아의 등을 살짝 두드려주었다. 진정이 됐는지 아리아는 빨간 눈을 들어 이도를 보며 훌쩍였다.

  “미안해. 나도 모르게 너까지 데려와 버렸네.”

 

  “괜찮아. 근데 진짜 눈물 많네요, 카리스마 넘치는 선장님?”

 

  아리아는 이도의 팔을 팍 쳤다.

 

  “이, 씨! 내가 눈물 많은 거랑 선장이랑 뭔 상관이야! 배만 잘 몰면 그만이지.”

  아리아는 남은 눈물을 마저 닦았다.

 

  “너도 앉아.”

 

  이도는 그녀의 말에 따라 옆에 앉았다. 침묵이 흘렀다. 이도는 벽을 감싼 담쟁이덩굴과 그 위에 올려놓은 그물을 보았다. 구석에는 고양이들이 야옹거린다. 녀석들이 먹다 뱉어버린 생선뼈들도 곳곳에 널려있었다. 생생하고 활기 넘치던 항구의 첫인상과 다르다. 뒷골목은 매우 조용했다.

  “이제 괜찮아?”

 

  아리아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응. 방금은 그만 참을 수가 없었어. 언니가 나한테 이렇게 모질 게 말한 건 처음이거든.”

  “평소엔 친절해?”

 

  아리아는 머리를 꼬았다.

 

  “원래 좀 까칠하지만 방금처럼 사나운 사람은 아냐. 분명 내가 언니를 실망시킨 거지.”

  “넌 잘못 없어.”

  “아냐, 잘못 있어.”

 

  아리아는 쓸쓸한 눈빛을 하고는 턱을 괴었다.

 

  “어떤 정당한 이유를 대더라도, 나는 누나와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계획을 실행하려고 했어. 나도 안이하게 누나가 내 뜻에 따라줄 거라고 믿었고. 하지만 누나가 내게 실망할 줄은 몰랐어. 전혀. 난 이기적인 놈인 걸까?”

  아리아는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녀의 눈 깊은 곳에 아련한 고통이 비쳐 올랐다.

 

  “모르겠어. 사람들은 날 보고 해방자라고 불러. 내가 그 폭동을 일으켜 나를 비롯한 노예들을 구한 게 계기가 되어 식민지에서 본격적으로 노예해방운동이 시작되었거든. 선원들은 이에 더해 날 천재소녀라고 보지. 배를 모는 게 훌륭하니까. 존경도 받고, 명성도 얻었지.”

  아리아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예뻤다.

 

  “하지만 난 해방되지 않았어. 상처, 모욕감, 그리고 나쁜 생각들이 내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치다가, 나를 존경하는 사람들의 눈을 바라 볼 때면, 나는, 마음이 죄여드는 느낌이야, 부서지는 듯해, 그래서 괴로워. 죽을 만큼. 배를 타다가 무한으로 이어지는 듯한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빨려드는 것 같아서, 순간 뛰어내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아리아는 이빨을 까드득 갈았다.

 

  이도는 측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리아를 바라봤다.

  그 순간.

 

  이도는 아리아를 안아주었다. 아리아의 체구는 생각보다 작아 이도의 두 팔 안에 충분히 들어갔다. 이도는 아리아의 오른 어깨에 턱을 걸쳤다.

  “괜찮아, 괴로워하지 않아도 돼.”

  “이, 이도? 자, 잠깐, 갑자기 이렇게 안으면, 그. 그게.”

 

  이도는 당황해하는 아리아의 말을 잘랐다.

  “어머니는 내가 고민하고 슬퍼할 때 항상 이렇게 안아주었어.”

 

  “어, 어, 그게.”

  얼굴이 빨개진 아리아는 횡설수설하다가 이도의 체온을 느끼고는 말을 멈췄다. 따뜻했다. 남자의 품에 이렇게 안겨진 것은 처음이었다. 좋은 느낌이다. 아리아는 이도의 가슴팍에 자신의 머리를 기댔다. 헉?!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자기도 모르게 머리가 그곳으로 갔다. 자석처럼. 하지만 체온이 더 따스하게 느껴져 왔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있었다. 아리아는 눈을 감았다. 편안했다.

 

  이도도 따스함을 느꼈다. 좋았다. 상쾌한 향기도 났다. 그렇게 안고 있자니 이도의 슬픔도 괴로움도 약간은 녹아내리는 듯했다. 더 이상 아리아는 그에게 있어 단순히 그를 구해주고 대가를 받는 사람, 그런 단순한 정의를 넘어버린 듯했다. 알 수 없지만 그 이상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도는 살짝 몸을 뒤척였다가 손가락이 아리아의 가슴에 닿았다. 헉, 어떡하지? 빼야 하나? 근데 그러면 더 의심 받지 않을까? 그렇다고 가만히 대고 있기도 그런데. 근데 부드럽네. 심장이 쿵 하고 두근거렸다.

  아리아가 벌떡 일어섰다. 이도는 가슴을 졸였다. 화난 건가?

 

  “가자.”

 

  “어디로?”

  “럼주를 팔아넘길 놈한테. 이미 돌격대장이 가서 교섭하고 있을 거야. 그 인간, 잘 하고 있을지 모르겠네. 빨리 가자.”

 

  이도는 일어서며 바지에 붙은 먼지를 털었다.

  “응.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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