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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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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36 원초의 파편 (2)
작성일 : 20-02-12 22:58     조회 : 270     추천 : 0     분량 : 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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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름달이 가까워질수록 하늘은 흐려졌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는 감상은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번개와 빗방울이 새지 않는 천둥만이 간간이 울리기만 했다. 세속의 사람들은 언제 폭풍우가 몰아칠지 모른다며 먹고 살 일을 걱정하며 움직였다. 하지만 사제들은 지금 다가오고 있는 것이 단순한 폭풍우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아르티제에 심판의 증표가 내려진 상태였기에, 주변의 지방 성소에서도 온갖 서신이 날아왔다. 서신의 답장은 대체로 일관된, 그들을 안심시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한 사람의 손으로 답장을 다 쓰려면 마디가 붓고 손끝의 감각이 둔감해질 정도였으니. 차기 본당 사제로서 던스턴이 처리한 첫 업무가 캐서린을 도와 서신에 답장을 쓰는 것이었다.

 

  그동안 그렉과 루카스는 성소를 심판의 장으로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캐서린이 찾아낸 옛 의식의 구성을 은밀히 숨겨놓았다. 원초의 파편을 영혼으로부터 떼어내는 작업, 그들은 그 의식이 체칠리아를 구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체칠리아가 그 숨겨진 의식을 알아채지 않았으면 했다. 알아차린다면 그대로 끝이니까.

 

  “이걸로 의식에 필요한 배치는 끝인가.”

  “그런 것 같네요.”

 

  제단의 앞에 놓인 초들이 이루는 배열은 원초의 빛과 아홉 선지자를 상징하는 아홉 각의 별. 두 사제는 이 별 안에서 일어날 일을 떠올려보았다. 조지는 별이 이루는 결계 안에 갇힐 것이고, 체칠리아의 주문에 따라 심판받을 것이다. 만약 심판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체칠리아는 별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영혼을 제물로 바쳐 조지를 소멸시키겠지.

 

  하지만 아르티제의 사제들이 숨겨놓은 의식이 먼저 발동된다. 심판을 위해서는 원초의 파편만이 아니라 아홉 선지자의 힘도 필요하다. 별의 결계를 이루기 위해 그들의 힘이 강림하고, 체칠리아가 자신에게 깃든 원초의 파편을 해방하려는 순간을 노린다. 아홉 선지자의 힘으로 원초의 파편을 억제한다. 아홉 선지자가 원초의 빛을 잠재운 일을 재현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어감이 이상하지. 억제한다. 의식을 기록한 책에 그렇게 적혀 있었어.”

 

  마치 아홉 선지자가 원초의 빛을 강제로 몰아낸 것처럼. 루카스는 뒷말을 조심스럽게 흘리듯 중얼거렸다. 교단의 가르침과는 사뭇 상반된 어휘였던 탓에 루카스는 주변의 의식했다. 영원한 빛들께서 듣고 계시니까.

 

  “원초의 저주와 강제로 떼어놓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요? 계속되는 창세와 멸망의 혼돈을 끝내려면 두 힘의 충돌을 막아야 했으니까요.”

  “그런 거라면 말은 되네.”

 

  루카스는 그렇게 말하며 성소를 둘러보았다. 이 지역의 성인들을 새긴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이 광경을 보고 뭐라고 말했을까. 허락받은 눈을 가진 그였지만 이 지역의 성인들을 마주한 적은 없다. 교단만이 접근할 수 있는 아홉 선지자와 달리 성인들의 힘은 교단과 세속에 두루 쓰이는 힘을 발휘한다. 그 힘이 무분별하게 쓰이지 않도록, 교단에서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스테인드글라스에 새겨진 저들은 그저 아르티제의 성인들, 그리고 영원한 빛으로 뭉뚱그려질 뿐이다.

 

  그래, 그렇기 때문에 심판을 앞당긴 것일지도 모른다. 흡혈귀였으면서 오랜 인내 끝에 영원한 빛으로 승화하고, 오랫동안 뿌리박힌 숲의 저주를 끝냈다. 그렇기에 에어드부르가는 성인이 될 자격이 있지만, 아직 공인되지는 않았다. 그 전에 자신이 이 일을 주도할 심산이겠지.

 

  하지만 그녀의 뜻대로 될까. 루카스는 불안했다. 만약 체칠리아가 중앙 성소로 올라간 김에 그녀를 성인으로 추대해버린다면. 체칠리아는 어디까지 내다봤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영원한 빛을 볼 수 있는 허락받은 눈을 가져도,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는 없는데. 루카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재능이 정말 쓸모없다고 생각했다.

 

  “일단 의식을 위한 준비는 다 끝났으니 창고를 정리하는 게 좋겠죠?”

  “그렇겠네. 의식에 필요한 물품을 꺼내느라 꽤 어질러졌으니까.”

 

  그때 성소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루카스는 성소의 문을 열어 방문객을 맞이했다.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성소의 심부름꾼이었다. 심부름꾼은 서신을 건네주더니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이렇게 먼 곳에서도 아르티제에서 일어날 일을 신경 쓰고 있는 건가. 루카스는 서신의 밀랍 봉인을 뜯어 내용을 확인했다.

 

  “던스턴 사제님께 답장을 준비하라고 할까요?”

 

  루카스는 답하지 않았다. 서신에는 다른 내용도 적혀 있었다.

 

  두 사제는 지하로 내려가 캐서린과 던스턴에게 서신을 보여주었다. 서신에는 아르티제에서 온 사제에 대해 적혀 있었다. 꽤 빠른 속도로 체칠리아가 돌아오고 있었다. 보름까지는 아직 이틀이나 남았는데. 그리고 체칠리아와 함께 성소를 찾아온 또 다른 비적성 사제가 있다고 서신에 적혀 있었다.

 

  “안토니오 사제님이군요.”

 

  캐서린은 그 비적성 사제의 인상착의를 읽고는 확실하다고 말했다. 다른 사제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체칠리아가 원초의 파편을 손에 넣을 때, 안토니오가 도왔을 거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토니오의 역할은 거기서 끝났어야 했다.

 

  “그분도 심판에 개입하려는 것일까요.”

  “지난번의 라뮤로스 건과 비슷할 수 있겠네요.”

  “아니. 만약 심판에 개입하려는 거라면 그 일보다 더 심각해.”

 

  심판에 개입하려면 그만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안토니오 사제는 왜 심판에 개입하려고 하는 것인가. 체칠리아가 안토니오에게 심판을 도와달라고 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녀는 이 일을 아르티제 안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굳게 믿었으니까. 그러니 안토니오가 자발적으로 개입하겠다고 나섰겠지.

 

  “어쩌면 그 역시 원초의 파편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체칠리아가 가진 원초의 파편에 맹세했을 수는 있겠네요.”

  “맹세요?”

 

  안토니오 사제가 가지고 있는 검은 맹세가 있을 때 더 강한 힘을 드러내지. 성 안토니우스도 원래는 기사였으니까. 루카스의 설명에 그렉은 곧바로 이해했다. 사명을 지닌 기사의 검은 그에 맞는 맹세와 함께 주어지는 것이다.

 

  “만약 그가 맹세를 통해 심판에 개입했다면, 체칠리아가 가진 원초의 파편을 떼어내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아요. 성 안토니우스 검에 새겨진 맹세도 종결시켜야 하죠.”

  “루카스, 그 의식도 같이 준비를 할 수 있겠어요?”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초가 충분할지 모르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제 개인 초를 내줄게요. 의식에 쓸 수 있는 초가 꽤 된답니다.”

  “알겠습니다, 캐서린 사제님.”

 

  루카스는 캐서린이 준 열쇠를 들고 집무실에서 그녀의 방으로 갔다. 그녀의 서랍에서 초를 챙겨 의식을 준비하는 동안 캐서린은 남은 두 사제에게 의식을 위한 음악은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물었다.

 

  “심판에 쓰이는 음악은 제가 연주할 겁니다. 그렉이 뒤이어 심판에 개입하는 음악을 진행하여 의식의 흐름을 바꿀 계획입니다.”

  “맹세를 끝내는 의식은 음악이 어려운가요?”

  “어렵지는 않습니다. 제가 악보를 가지고 있으니 그렉이 곡을 연주하는 사이에 준비할 수 있습니다.”

 

  캐서린은 고개를 그렉에게로 돌렸다. 전례가 없는 일에는 그에 따르는 음악도 없다. 심판에 개입해 없던 것으로 하고, 원초의 파편을 떼어내는 일에 걸맞은 음악을 새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 과업을 그렉이 자진해서 맡았다.

 

  “잘 되어가고 있나요?”

  “네. 후반부의 곡조는 캐서린 사제님께서 남겨주신 문헌에서 참고할 수 있었으니까요.”

  “전반부의 곡조가 난제군요.”

  “기본적으로 심판 의식에 쓰이는 음악을 비트는 것으로 진행이 되지만, 거기에 다른 곡조를 넣어 전반부와 후반부를 이어지게 했습니다.”

  “혹시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다면 들려줄 수 있나요?”

  “아직 가사를 붙이지 못했습니다.”

  “괜찮습니다. 가사에 너무 집착하지 않아도 좋은 음악은 소리만으로 감응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렉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꽤 되었으니 저녁을 준비해야겠다며 캐서린은 일어났다. 원래 오늘은 체칠리아가 하는 날인데. 그녀는 씁쓸히 웃었다. 세 사제가 집무실에서 나왔는데 위가 소란스러웠다. 계단을 올라가자 성소의 문이 열려 있었다.

 

  “다른 의식을 섞어둘 생각을 했다니. 하지만 이 정도 도전은 받아들여야겠죠.”

 

  그래서 일찍 올 수 있었던 건가. 캐서린은 원초의 파편이 가진 힘을 간과했을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렸다. 원초의 파편은 적법한 방법으로 손에 넣었다면 제힘을 드러내지 않아도 영원한 빛을 지배할 수 있다. 영원한 빛이 변한 말은 본래의 황금빛 광채가 아닌 백금의 화려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제가 조금 일찍 왔나요?”

  “조금 정도가 아니랍니다.”

  “그건 그러네요.”

 

  체칠리아는 안장에서 내려와 로브를 벗었다. 캐서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잘린 머리카락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가르쳐준 사람으로서,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고 인정하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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