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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제5화 <대리인>
작성일 : 20-02-04 14:12     조회 : 76     추천 : 0     분량 : 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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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그 지점입니다. 그 지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극이 현 시대에 의의를 갖는 거라 할 수 있는 거죠.]

 [아~ 그런 시각으로 볼 수도 있었네요~]

 [네. 사실 적지 않은 복수극이 이른바 ‘바람직한 복수’에 집착을 하다 결국 신파로 빠지거든요. 왜, 있잖아요. “용서가 최고의 복수다!” 그런데 솔직히 개소리거든요.]

 [아하하, 성 기자님, 워워~ 이거 방송이예요~]

 [죄송합니다. 아무튼요, 그렇게 바람직한 복수에 집착하다가 결국 얼렁뚱땅 용서하고 끝나는 애매한 결말로 끝나거나, 아니면 같잖은 해탈로 지 혼자 마음의 평화를 얻고 끝나죠. 물론 파격적인 복수를 달성하는 극도 있지만 그 경우는 또 웃기는 게, 주인공을 같이 파멸시켜 버려요. 봐라. 이렇게 복수에 집착하다간 니 인생도 망한다. 꼭 이상한 교훈으로 찝찝함을 남긴다니까요.]

 [아유~ 정말. 오늘 시네마토크, 웃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영화평론가이자 기자인 성도현씨외 함께하고 있는데요, 과연 이게 방송에 나갈 수 있을 진 모르겠습니다. 하하.]

 [에이~ 걱정 마세요. 저희 편집감독님이 어떤 분입니까?]

 

 “파상풍 주사까지 해서 8만 7천원 나왔고요, 1층 약국에서 약 처방 받아 가시면 됩니다.”

 “네. 모바일페이 되죠?”

 

 응급실에서 치료를 끝낸 안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애초에 씻지도 못한 채 숙취에 쩔어 마시다 남은 술병을 분리수거하러 가던 차였다. 그러다보니 잠옷이나 다름없는 트레이닝복에 슬리퍼 바람이었는데, 거기에 유리파편이 튄 탓에 옷은 옷대로 찢어져 누더기가 되었고, 예상보다 큰 출혈량에 피범벅이 되고 말았다. 유진이 준 휴지로 임시변통했지만,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는 피를 커버하기엔 무리였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전쟁통에 겨우 살아 돌아온 사람이라 해도 믿었을 것이다.

 결국 유리가루가 묻은 바짓단은 응급실에서 의사가 처치하며 잘라 버렸고, 피가 배어 빠지질 않는 슬리퍼도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처지가 됐다. 그 결과, 지금 안나의 모습은 각설이처럼 반 잘린 바짓단에 맨발 차림이 되었고, 옷 밖으로 보이는 팔, 다리, 손은 붕대와 반창고에 칭칭 감긴 미라 꼴이었다.

 

 거기다 TV에서 흘러나오는 호적 메이트의 목소리라니... 인간미 없기로 유명한 안나였지만 이래저래 치밀어 오르는 공감성 수치심에 빨리 이 공간을 뜨고 싶을 뿐이었다.

 

 [저희가 같이 이야기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기자님은 참 한 맺힌 사람들의 심리를 아주 잘 아시는 거 같아요. 혹시 뭐 경험담이라도?]

 [뭐, 간접경험도 경험이라면 그럴 수 있죠. 다들 잊으신 것 같지만, 제가 이래 뵈도 기잡니다. 이 들은 풍월을 무시하시면 안 돼요.]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는 거지만 저희는 인간입니다. 경험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선험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추론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란 거죠.]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물론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상상할 수 있는 건 아마 기자님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겠죠? 이 작품이 이렇게까지 잘 짜여진 개연성을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기자님의 역할도 굉장히 크셨다고 들었는데요...]

 

 정말정말 빨리 벗어나고 싶은데... 손가락을 꼼꼼히 감은 반창고 때문에 모바일 페이에 지문 인식이 안된다.

 

 “잠시만요. 반창고 때문에 터치가 잘 안 먹혀서-”

 “여기 이걸로 결제해주세요.”

 

 안나의 뒤에서 불쑥 카드를 내민 사람은 지금 TV에서 우쭐대며 자기 자랑 중인 바로 그 호적메이트였다.

 

 

 

 나뭇가지를 흔들고 온 바람이 안나의 머리를 헝클였다. 살짝 마른 나뭇잎 한 조각이 안나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카페인. 오늘치 충전 안 했지?”

 

 안나의 머리에서 나뭇잎을 떼 주며 도현이 안나에게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내밀었다.

 

 “어떻게 알고 왔어요?”

 “옆집에 굉장히 귀여운 친구가 이사 왔더라고.”

 

 아... 그 어린애.

 

 “애가 막 울상이 되어갖고 안절부절 못해서 이말 저말 하는데, 사실 99%는 못 알아들었어. 누가 제일 가까운 병원 응급실 갔다는 것만 어찌어찌 알아듣고 왔는데, 네가 딱 있네.”

 “누구 얘기인지도 모르고 어린애 말 한 마디에 병원까지 온 거예요?”

 “내가 좀 오지랖이 넓잖아. 기자의 종특이랄까?”

 “오피스텔엔 왜 왔어요? 연락도 없이.”

 “연락했어.”

 

 안나가 의아한 눈으로 도현을 바라봤다. 도현은 씨익 웃으며 고갯짓으로 안나의 휴대폰을 가리켰다. 휴대폰에는 부재 중 전화가 다섯 통도 넘게 와 있었다. 모두 도현에게서 온 전화였다.

 

 “얼마나 서운했는지 알아? 이제는 전화도 안 받나 하고.”

 

 고의로 안 받은 것은 아니었다. 마취주사를 맞고 바늘로 꿰매다보니 주머니 속의 진동이 오는 걸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안나는 변명 대신 휴대폰을 벤치에 탁 덮어놓는 것으로 대답을 끝냈다.

 

 “너무하네. 진짜 나랑도 인연 끊을 거야?”

 “......”

 “니 유일한 가족이자 오빠를?”

 “친한 척 하지 말아요. 어차피 가짜면서.”

 “......”

 “1092호가 죽었어요. 당신과 내 가족계약... 더 이어갈 필요 있어요?”

 

 침묵이 대화를 이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나뭇잎 소리가 빈 대화를 채웠다.

 

 “‘성 안나’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지도 벌써 22년이에요. 이제... 주인에게 돌려줘야죠.”

 “......”

 “늘 그랬듯 난 가만히 있다 지문이나 찍어 줄 테니까... 알아서 따질 거 따지고 밟을 절차 밟아요. 테클, 이의, 없어요.”

 

 손에 들려있던 아직 뜨겁던 커피를 단숨에 꿀꺽 넘겨버린 도현이 컵을 구겨 쓰레기통을 향해 던졌다. ‘톡’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컵이 통 속으로 사라졌다.

 ‘나이스’. 그 모습을 기분 좋게 지켜본 도현은 입고 있던 자켓을 벗어 안나의 어깨를 덮어 주었다.

 

 “차 가져올게, 여기 있어.”

 

 나무울 뒤로 도현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차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뭇잎소리, 바람소리, 낙엽이 불리는 소리, 자동차소리까지, 마치 나른한 음악소리 같았다.

 

 안나는 지루한 표정으로 하품을 하며 툭, 한마디를 내뱉었다.

 

 “애 쓴다.”

 

 

 

 생일이었다.

 내 생일은 아니고... 안나의 생일. 매서운 바람이 칼날처럼 후벼 파며 스며들던 계절이었다.

 

 그날따라 주민센터는 한가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주목하는 것 같은 느낌에 고개를 더 푸욱 숙였었다.

 

 “커피. 아직 안마시나?”

 

 도현이 내미는 자판기 커피를 말없이 받아들었다. 생애 처음으로 마셔본 커피는 쓰면서도 달았다. 낯선 맛에 계속 마셔야 할지, 그만 내려놔야 할지 판단되지 않았다.

 

 [딩동]

 

 알림판에 대기번호가 뜨자, 도현이 창구로 다가갔다. 그게 시작이었다.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주민등록증 발급 받으려고요.”

 “본인이신가요?”

 “아... 여기요.”

 

 도현이 내 팔을 잡아끌어 주민센터 직원 앞에 내놓았다. 직원이 눈이 나를 훑었다. 나는 그저 입을 다문 채 있었다.

 

 “이름이?”

 “성 안나요.”

 “같이 오신 분은 누구시죠?”

 “오빠입니다.”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여기요.”

 

 내 신분은 도현에 의해 증명되었다. 이 세상은 내 정체성이 아닌 도현의 주민등록증에 더 큰 가치를 두었다.

 타다닥 거리는 자판 소리. 지직직 거리며 종이가 출력되는 소리. 팔락 대며 서류가 넘어가는 소리. 하지만 장담컨대, 그 중에 자신를 위한 소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 안나를 위한 소리였다.

 

 “네, 본인 확인 되셨고요. 잠깐 앉아서 기다리고 계시면 지문 찍고 바로 발급해드릴게요.”

 

 도현이 나를 소파로 슬쩍 밀었다. 한 번 발이 움직이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몸은 소파를 향해 다가갔고, ‘콩’, 소파 다리에 발끝이 부딪히자 나도 모르게 소파에 앉아버렸다.

 

 “차 가져와서 앞에 기다리고 있을게. 끝나면 나와.”

 

 손에 들려있던 자판기 종이컵의 커피를 단숨에 꿀꺽 넘겨버린 도현이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을 향해 던졌다. ‘폭’하는 비닐 소리와 함께 컵이 사라졌다.

 ‘나이스’. 컵이 쓰레기통에 고이 들어간 모습을 기분 좋게 지켜본 도현이 주민센터 밖으로 사라졌다. 기분이 좋아보였다. 컵을 골인시켜 기분이 좋은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좋은 건진 모르겠지만...

 

 “증명사진 가져오셨죠? 이리 주시구요, 지문 찍을게요. 열 개 다 찍습니다.”

 

 손가락에 보라색 인주가 찍혔다. 그리고 내 지문이 안나의 주민등록서류에 보라색으로 찍혔다.

 

 어려운 건 아무것도 없었다. 들어오기 전까지 잔뜩 긴장해 얼어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걸리면 큰일 날 것 같은 위협적인 보안도 없었고, 자신의 신분을 확인하는 직원은 너무나도 친절했다. 지문을 찍기 위해 자신의 손등을 감싸 쥔 직원의 손은 따뜻했고, 인주가 잘 마르도록 입김을 후후 부는 모습은 유쾌해보였다.

 

 “저기 혹시요...”

 

 주민센터에 들어와서 처음 입을 열었다.

 

 “네. 궁금한 거 있으세요?”

 “죽은 사람 주민등록번호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죽은 사람 주민등록번호요?”

 

 직원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일단은 말소되죠. 왜요?”

 “그냥 궁금해서요. 인터넷 사이트 가입이나 휴대전화 가입할 때 죽은 사람 주민등록번호 쓰면 어떻게 되나...”

 “에이~ 그건 안 되죠. 사망자 주민등록번호로 사이트 가입이나 휴대폰 개통하면 그거 범죄로 잡혀가요. 그니까 호기심으로라도 하면 안 돼요.”

 

 다시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사이 지문 등록은 모두 끝났다.

 

 “지문 예쁘게 잘 찍혔어요. 주민등록증 나오면 집으로 연락 갈 거니까 그 때 찾으러 와요.”

 

 환히 웃는 직원의 눈에는 어른이 되는 안나에 대한 축하가 가득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 뒤, 주민센터를 나왔다. 주민센터 앞에는 도현의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대신 수령한 축하를 지금쯤 하늘에 있을 안나에게 다시 보내는 것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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