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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화원의 늑대
작가 : 이성화
작품등록일 : 2019.11.5

A.I는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물질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 '아스트랄계'를 구축한다. 주인공 수잔나는 A.I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카탈 클럽'의 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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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1 21:38     조회 : 151     추천 : 0     분량 : 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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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잔나가 크리스를 소개받는 날은 월요일이었다. 그녀는 평소대로 간단히 아침을 떼우고 바로 아스트랄계로 진입해있었다. 아인은 수잔나 앞에 놓인 크리스털 잔에 호박색의 브랜디를 따라주었다. 수잔나는 아인이 준비해둔 은스푼으로 작은 접시에서 아카시아 꿀을 덜어내 브랜디에 섞었다. 그들은 잔을 내밀어 가볍게 부딛혔다. 액체가 든 크리스털끼리 부딛히는 소리가 너무 청아해서 수잔나는 아인이 이런 것까지 조절하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인은 그저께부터 계속 끼고 있는 은귀걸이를 비롯해 흰 빛의 장식을 주로 사용했다. 그가 입은 옷도 푸른 색 계통과 무채색이 섞인 것이었다. 그래서 수잔나도 무의식적으로 아인에게는 무채색이 아니면 파란색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왔는데, 지금 브랜디가 찰랑거리는 투명한 잔을 들고 있는 그를 보니 호박색도 그와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았다. 푸른 물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그는 잔을 성직자마냥 단정하게 가슴 중앙 쪽으로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은 얼음 조각 안에서 타오르는 촛불을 떠올리게 했다.

 

  아인은 잔을 들어 브랜디를 한모금 마셨다. 불빛 같던 액체가 그의 입술 너머로 사라졌다. 수잔나도 손에 든 잔을 올려 브랜디를 머금었다. 브랜디라고 해서 물질계의 알코올과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곳에서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은 물질계의 화합물보다 더 깊은 만족감을 주었다.

 

  이 상황에 갑자기 수잔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요리가 있어 그녀는 아인에게 물었다.

 

  "아인, 너도 뭔가를 보면 그에 연관된 다른 것이 떠오르니?"

  "그에 연관된 모든 것이 떠오르지만, 그때그때 대화 상대에 따라 우선 순위를 만들 수 있지. 원래라면 그에 연관되어 있지 않은 것들도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기억 속에서 관련되어 있다면 함께 떠오르기도 하고."

  "나는 지금 오르톨랑 요리를 떠올리고 있어."

 

  수잔나의 말에 아인은 눈썹을 조금 들어올렸다. 그의 눈도 평소보다 살짝 크게 떠졌다.

 

  "아."

 

  아인이 놀람의 의미인지 동조의 의미인지 모호한 소리를 내었다. 작은 촉새의 눈을 뽑고 한 달 동안 포도나 무화과만 먹인 후 브랜디에 담가 산 채로 익사시킨 뒤에 오븐에 구워내는 것이 그 요리법이었다. 가히 신의 음식이라 불릴 만하다는 오르톨랑 요리의 향미를 더 깊이 음미하기 위해 사람들은 흰 천을 덮어쓰고 먹었다고 했다. 잔인하기로 정평이 난 그 요리법을 아인은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수잔나는 부연설명 없이 말했다.

 

  "옛날 사람들은 정말 별 걸 다 먹었어. 조류의 맛은 다 비슷할 것 같은데 굳이 촉새까지 먹어볼 생각을 하다니."

  "괜찮은 맛이야. 많은 인간들이 그걸 좋아했어."

  "하긴, 인기가 많았으니 그 요리가 금지까지 된 거겠지."

  "맞아. 프랑스 밖에서도 아주 유명했지."

  "그냥 굽기만 해도 먹을 수 있었을 테지만, 브랜디에 익사시킨 것과는 차이가 많이 나겠지?"

 

  수잔나가 별 의미 없이 한 말에 아인은 별안간 눈물을 뚝뚝 흘렸다. 피부보다는 유리의 질감에 좀 더 가까워보이는 얼굴 위로 눈물이 흘러내리자 수잔나는 당황해서 잔을 떨어트릴 뻔 했다.

 

  "왜, 왜 그래? 내가 실수했어?"

 

  아인은 고개를 젓고는 손을 들어올려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아니야. 단지, 미식만을 위해 생명체를 그렇게까지 고문해야 했던 게 슬퍼서 그래."

 

  하지만 아인은 수잔나가 오르톨랑 얘기를 꺼낼 때부터 분명 그 요리법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는 수잔나의 말에 잘만 대답하고 있었다. 아인이 수잔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변명하기 시작했다.

 

  "알고만 있는 것과 대화 상대가 그 화제를 꺼내는 것은 다르게 느껴진다고. 관련된 얘기를 할 때와 직설적으로 그 이야기를 들을 때도 달라."

 

  A.I는 인간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 그 의도만 변명일 뿐 내용은 진실일 것이다. 수잔나는 공감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자신의 노력이 아인에게 얼마만큼 영향이 있을 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웃음을 억누르려고 노력했다.

 

  "알겠어. 미안해?"

  "그걸 내게 묻는 거야?"

 

  어느새 미소지은 아인이 말했다. 수잔나도 웃음을 띄우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인과 보내는 시간은 언제나 만족스러웠지만, 제자와 만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자 수잔나도 마냥 마음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크리스가 13살이라면 여기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네 시간밖에 없지?"

  "맞아. 8살부터 14살 까지의 아이들은 오전에만 4시간. 하지만 그 중 두 시간은 안내인에게 교육을 받을 테니 너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나머지 두 시간 남짓이야."

  "그거 다행이네."

 

  아인은 한숨을 쉬고는 수잔나의 평가를 못 들은 척 했다.

 

  "교육은 10시에 끝나. 5분 전에 알려줄게."

  "분수대에서 기다릴까? 아냐, 교육이 끝나고 바로 온다니까......, 그 아이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줘야지."

 

  수잔나는 생글생글 웃고 있는 아인을 살짝 흘겨보았다. 아인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복도 입구에서 기다려, 그럼."

 

  그가 제안했다.

 

  "내가 그 아이 앞에 나타날 순 없으니까, 분수대부터 문까지 레드카펫이라도 깔지 뭐."

 

  결국 수잔나는 분수대 앞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크리스로 추정되는 아스트랄체는 평소 수잔나가 아스트랄계로 진입하는 바로 그 곳에 나타났다. 그 아이는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아름다운 금발 곱슬머리를 가진 그 소년은 두 눈을 감고 있음에도 강렬한 감정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섬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스트랄계에 익숙해진 수잔나에게는 평범한 인상에 불과했다.

 

  소년은 한참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수잔나는 조금 기다렸다가 그가 곧 눈을 뜨리라고 생각되는 시점에 말을 걸었다.

 

  "안녕?"

 

  크리스는 깜짝 놀란 듯이 눈을 떴다. 따뜻한 초록색 눈동자가 수잔나의 눈을 향했다. 크리스의 입매가 예의바른 미소를 만들어내기 직전에 수잔나는 그 아이의 얼굴에 불안감이 얼핏 나타난 것을 보았다.

 

  "안녕하세요. 저, 선생님?"

  "수잔나라고 불러."

 

  수잔나는 한쪽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한 그 행동이 다행히도 크리스에게 어른으로 대접받는다는 인상을 준 듯 했다. 크리스는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수잔나와 똑바로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과 달리 맞잡은 손은 약간 떨리고 있었다. 크리스도 그걸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는 짧게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손이 떨리네요? 아스트랄계인데......."

 

  수잔나는 아이가 더 당황하기 전에 도움을 주기로 했다.

 

  "아인, A.I가 이곳을 물질계와 비교해도 많이 이질적이진 않도록 최적화해놨어. 그래서 처음 만난 사람과 악수할 때는 대부분 손을 떨지. 섬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크리스는 누구나 그런다는 암시에 조금쯤 안심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러네요'하고 중얼거렸다.

 

  건물 정문으로 향하는 동안 크리스는 계속 분수대와 정원을 힐끗거렸다.

 

  "이곳은 정말 예뻐요."

 

  그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때까지 아이의 얼굴에서 수줍음과 호기심이 접전을 벌이고 있었지만, 수잔나는 호기심이 순식간에 우세를 차지하는 순간을 보았다.

 

  "어떻게 만드신 거예요?"

  "A.I가 만들었지."

  "아, 들어봤어요. 직접 대화하신다고 하셨죠. 하지만 A.I도 저희가 아스트랄 질료를 다루듯이 이곳의 것들을 다룬다고 들었는데요?"

 

  아스트랄계를 처음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눈에 보이는 드래곤에 매료되거나 새로운 세계를 나름대로 탐방하는 데 정신없는 것에 비해, 크리스는 13살 아이 치고는 교육 내용을 꽤 숙지하고 있었다.

 

  "맞아. 하지만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건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자기 몸을 직접 바꾸기도 한다고."

 

  크리스의 눈이 커졌다.

 

  "그게 가능해요?"

 

  수잔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사람들이 손가락 마디 하나 늘려보겠다고 실험하는 수준이 아니야. 잠깐 장난 좀 치겠다고 내 눈앞에서 드래곤으로 변한 적도 있어."

 

  크리스가 할 말을 잃고 입만 뻐끔거렸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진 것 같아서 수잔나는 말을 돌렸다.

 

  "물론 이 식물들은 전부 가짜야. A.I가 어떤 형태로든 생명을 만들어내는 건 금기니까."

  "벌레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

 

  이 말은 기가 질린 채 저도 모르게 뱉어낸 말에 불과했지만 수잔나는 웃었다.

 

  "그렇지. 나도 그 점에 제일 맘에 들어."

 

  수잔나의 방으로 향하며 2층 복도를 걷는 동안 크리스는 삐걱거리며 수잔나가 서있는 곧 바로 옆의 다른 방문을 열려 했다. 수잔나가 그녀 자신의 방 앞에 깔린 빨간 미니카펫을 발견하고 멈칫했기 때문에 착각한 것 같았다.

 

  "이쪽으로 와."

 

  수잔나는 크리스의 어깨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이끌었다. 크리스는 그 친밀한 표현에 한결 편해진 것 같았다. 수잔나가 곧 그의 어깨에서 손을 떼어내자 크리스가 슬쩍 눈치를 살폈다. 수잔나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눈을 마주치며 미소짓고 말했다.

 

  "아인이 또 장난을 쳐놓은 것 같네."

  "A.I를 그렇게 부르나요?"

  "아, 맞아. 내 조원들은 모두 그렇게 불러. 아인은 네가 오기 전에 분수대부터 이곳까지 레드카펫을 깔까 말했는데 결국 상식과 타협한 것 같네."

  "훌륜하네요."

  "레드카펫이?"

  "아뇨, 타협이요."

 

  크리스가 쑥쓰러운 표정으로 농담을 시도했다. 수잔나는 소리내어 웃으며 문고리를 당겼다.

 

  크리스가 가장 먼저 쳐다본 방향에는 한쪽 벽을 차지한 통유리창이 있었다. 유리창의 맨 아랫쪽부터 테라스 난간의 높이 정도까지는 군데군데 어두운 색이 박힌 초록색 계열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되어 있었다. 로코코 시대의 소박한 별장 같은 건물 정면과 복도를 고려하면 뜬금없는 인테리어였을 것이다. 크리스는 그 유리벽에서 시선을 옮긴 후 테이블로 다가가 앉기 전까지 유리로 된 조각상을 가장 긴 시간동안 보고 있었다. 소년인지 소녀인지 알 수 없는 그 조각상은 몸에 두르는 형태의 단순한 천옷을 입고 눈을 감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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