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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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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34 이단의 빛 (4)
작성일 : 20-01-08 23:39     조회 : 297     추천 : 0     분량 : 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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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어드부르가의 등장에도 캐서린은 움직이지 않았다. 실연을 당한 사람처럼 그녀는 제 책상에 엎드려 조용히 흐느낄 뿐이었다. 에어드부르가는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감촉을 느낀 캐서린이 고개를 들어 에어드부르가를 바라보았다. 진심 어린 걱정과 동시에, 질책하는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조심하라고 했는데.”

  “이렇게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제 눈앞에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는 일이 펼쳐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불합리하구나. 비극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사람만이 비극의 고통을 느끼고 있어.”

  “하지만 그 아이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은 조금 탓해도 되련만.”

 

  캐서린은 벌게진 두 눈을 훔치고 허리를 폈다. 그녀의 뜻은 아직 확고했다. 더 큰 비극을 막아야 한다. 에어드부르가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나고 자란,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 사랑스러운 고향이 망가지는 것을 이 이상 볼 수는 없다. 체칠리아가 돌아와 빛의 심판을 내린다면, 그때는 마을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갈 것이다.

 

  “체칠리아가 언제쯤 돌아올까요.”

  “아마 돌아올 보름에는 오겠지.”

  “얼마 남지 않았군요.”

 

  에어드부르가는 이 위험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에어드부르가는 문 너머로 소리쳤다.

 

  “들어와라.”

 

  던스턴과 루카스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일 저녁 기도를 끝으로 보름달이 지나갈 때까지 성소의 문이 닫힐 거라고 사람들에게 알려라.”

  “뭐라고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할까요.”

  “있는 그대로 말해야지. 하지만 마을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해서는 안 되니, 빛의 심판만큼은 숨겨야 해. 그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이단 심문이 있을 예정이라고만 말해도, 사람들은 몸가짐을 조심히 하겠지.”

 

  성소의 문이 잠긴 동안, 사제들은 빛의 심판과 그 심판을 저지하기 위한 두 가지 준비를 동시에 해야 한다. 빛의 심판이 입에 올라간 시점에서 체칠리아가 어느 정도 준비를 해놨을 테지만, 결국 남은 것은 다른 사제들의 몫이다.

 

  “그런데 한 번에 두 의식을 준비해도 괜찮은 것인가요?”

  “빛의 심판과 그것을 저지하는 의식은 근본적으로 같다. 심판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지는 구조라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그 자리를 역으로 지르밟아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구조지. 하지만 사례가 없는 일이긴 하지. 빛의 심판이 제대로 발동해 이단인 빛을 없앤 사례가 둘 뿐이고, 빛의 심판을 저지한다는 발상 자체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원초의 빛을 이길 수 있는 겁니까.”

  “우리가 이겨야 할 것은 원초의 빛이 아니라, 체칠리아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체칠리아에게 무슨 일이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빛의 심판이 성공하면 심판을 주재한 사제의 영혼 역시 소멸한다. 하지만 심판이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가. 캐서린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녀의 죽음을 원하는 것은 아니기에, 가능하면 체칠리아도 살아있기를 바랄 뿐.

 

  “너도 은근히 욕심쟁이로구나, 캐서린.”

  “가능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을 뿐이에요.”

  “그게 욕심이라고 말하는 게야. 빛이 더 강해질수록 세상에 남은 저주도 더 독해지는 법임을 잘 알고 있지 않으냐.”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않나요.”

 

  그럴지도 모르지. 에어드부르가는 순순히 수긍했다. 무언가를 지키기로 했다면, 그 안에 들어가지 않은 것들은 지킬 수 없게 되는 법인 게야. 아르티제의 빛이 된 그녀에게 있어, 아르티제의 평안을 해치려는 자가 있다면, 원래는 지켜야 할 존재라도 지켜서는 안 되는 법이다. 에어드부르가의 말에 캐서린은 무어라 답할 수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일단은 체칠리아의 지시대로 성소를 바꿔나가야지. 하지만 내일 저녁 기도까지는 평소처럼 지내도 좋다.”

 

  사제들은 에어드부르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에어드부르가는 숲으로 돌아가겠다며 모습을 감추었다. 캐서린은 에어드부르가가 사라진 자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던스턴을 올려다보았다.

 

  “던스턴.”

  “여기 있습니다.”

  “당신에게 다음 본당 사제의 자리를 맡기겠어요. 갑작스러운 것은 알겠지만, 제가 달리 번복하지 않는 한 제 뒤를 잇게 될 겁니다.”

  “제가, 본당 사제를….”

  “부탁할게요.”

 

  던스턴은 캐서린과 체칠리아가 그사이에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절대로 바뀌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본당 사제의 자리가 자신에게로 왔단 말인가. 그러나 그녀의 말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부족함이 많으나, 제게 기대를 걸어주신다면 뜻대로 하겠나이다.”

 

  캐서린은 루카스에게 던스턴의 보조를 부탁했다. 루카스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그렉을 깨워 자신의 앞으로 데려오라고 말했다. 던스턴은 그렉이 곤히 자고 있을 방으로 들어갔다.

 

  “…그렉?”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그렉은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푹 꺼진 눈은 초점을 잃은 듯 허망해 보였다. 던스턴은 그렉의 앞에 다가갔다. 그렉은 던스턴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일어나 밖으로 걸어갔다. 어딜 가냐고 붙잡기도 전에 그렉은 캐서린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혼자 들어온 그렉의 모습에 캐서린은 살짝 당황했지만, 한숨을 쉬고는 차를 끓였다. 두 사람은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찻잔의 수면에 비친 자신의 눈동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캐서린 사제님.”

 

  그렉의 목소리에 캐서린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허망한 목소리의 저 깊은 곳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촛불의 심지가 남아 있었다. 그 어떤 좌절에도 꺼지지 않았던 마지막 희망이 그를 살아 숨 쉬게 하고 있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그렉.”

  “이제 지켜지기만 해서는 안 될 때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말씀해주세요. 제가 조지를 지키고, 캐서린 사제님이 체칠리아 사제님을 지킬 방법을. 그 말에 담긴 희망이 캐서린의 심지에 다시 불을 붙였다.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다. 그을리고 깨진 접시도 닦아서 광을 내고, 살을 붙여 다시 구울 수 있다.

 

  캐서린은 차 한 모금을 마셨다. 타오르는 촛불의 열기와 빛의 찬란함이 향기의 끝자락을 감싸 맴돌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장에서 두껍고 오래된 책을 하나 꺼낸 그녀는 그 내용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천천히 살폈다. 아르티제 성소가 세워진 이래, 이 성소에서 거행된 모든 의식을 기록한 역대 본당 사제들의 기록이다.

 

  “아주 오래전에, 비적성 출신의 본당 사제가 계셨던 적이 있답니다.”

 

  그 사제가 직접 주재한 의식 중에는 잘못된 방법으로 저주를 풀려다 원초의 빛이 남긴 파편을 받아들이게 된 사내를 치유한 의식도 있었다. 비적성 출신이 아닌 캐서린이 이 의식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 하지만 제대로 성공할 수 있다면 심판의 대가인 체칠리아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필요한 게 많습니다. 서두르도록 하죠.”

 

  캐서린의 말에 그렉도 일어났다. 아르티제 성소를 둘러싼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덧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거센 비는 아니었지만, 공기를 차갑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멎고 눈이 내리는 계절이 오겠지. 사제는 탁자 위에 놓인 양피지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곧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난로 옆의 부싯돌을 들어 호롱의 양초 위로 불꽃을 튕겼다. 몇 번의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호롱 안이 환해졌다.

 

  문을 두드리는 무거운 소리가 났다. 사제는 호롱을 들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 비에 다 젖은 검붉은 로브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 뒤로는 말의 형상을 띈 영원한 빛이 작게 울음소리를 내더니 빛줄기로 변해 모습을 감추었다. 사제는 조용히 인사를 건네고는 로브를 입은 이를 안으로 들였다.

 

  “로브는 여기 벗어두시면 됩니다. 체칠리아 사제님.”

 

  체칠리아는 젖은 로브를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었다. 마른 수건과 옷을 사제는 챙겨왔다. 머리를 훔친 그녀는 그녀가 입고 온 것과 똑같이 검붉은 색인 옷을 걸치고는 사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사제를 재촉하고 있었다. 사제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차를 마시며 몸을 녹인 다음에 가는 게 좋을 텐데요. 하지만 체칠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내려갈까요.”

  “네, 안내해주세요. 안토니오 사제님.”

 

  두 사제는 호롱불 하나에 의지해 비적성의 탑 지하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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