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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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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33 이단의 빛 (3)
작성일 : 20-01-01 23:27     조회 : 312     추천 : 0     분량 : 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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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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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서린은 원래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사제가 아니었다. 본당 사제의 직을 받게 된 그 혼란한 때에도. 이렇게 돼버린 세태에 분노하고 원망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항상 어딘가에는 빛이 환하게 비춰주는 길이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그녀는 침착하게 다른 길을 찾았고, 그 끝에 에어드부르가를 만나 비극을 완전히 끝낼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다른 사제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게 된 것은 그녀의 결단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겪은 아르티제의 비극은 모두 저주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생겼다. 흡혈귀를 몰아내는 일, 흡혈귀라고 착각했던 조지의 모습을 영원한 빛으로 되돌렸던 사건들 말이다. 그때마다 마을 사람들이나 사제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영원한 빛을 두고 사제들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려고 한다. 캐서린에게 있어 이것만큼 겪고 싶지 않은 비극은 없다. 혼란했던 그 시절, 누가 본당 사제가 되어 성소를 이끌고 파국을 끝낼지를 두고 사제들끼리 갈등이 있었다. 사제들끼리 육을 죽이지 않았을 뿐이지, 그들의 영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처를 입었다.

 

  그 상처는 새살이 돋을 수 없는 상처다. 에어드부르가가 옥좌 위에 앉고, 제 옥좌를 지상으로 끌어내린 직후에 많은 사제가 죽었다. 참회의 피눈물로 그들의 목숨을 내던졌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사람은 캐서린뿐이다. 살아있을 수밖에 없다. 본당 사제였으니까. 이 성소를 다음 세대에 넘겨준다는 과업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들 중에는 그나마 상처를 덜 받았으니까.

 

  그런 비극은 자신의 세대면 충분하다. 사제가 사제에게 상처를 입히는 비극만큼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미 일어났다면 강제로라도 멈춰야 한다. 그 결과로 자신이 상처받게 되더라도. 캐서린은 그래서 전에는 없던 모습을 보였다. 뒷방 늙은이의 추태라고 조롱해도 괜찮았다. 그로 인한 수치보다, 이 성소와 사제들과 마을 사람들의 안위가 더 중요하니까.

 

  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는 그렉을 던스턴과 루카스가 일으켜서 달래는 동안, 캐서린은 미안하다는 말을 중얼거리고는 다시 지하로 돌아갔다. 그녀의 뒤를 따라간 사람은 체칠리아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들어오려 하기 전에, 캐서린은 문을 크게 닫았다. 그녀의 집무실 밖에서 그녀를 부르는 체칠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캐서린 사제님.”

  “지금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군요. 미안해요.”

  “캐서린 사제님,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예요.”

  “여러분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어요.”

  “캐서린 사제님, 제발 제 말을 들어주세요.”

  “체칠리아.”

 

  물기에 젖은 캐서린의 목소리에 체칠리아는 숨을 멈췄다. 집무실의 문이 살짝 떨리며 열렸다. 체칠리아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캐서린은 입을 가린 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캐서린의 고백은 그렇게 시작되어 천천히 이어졌다. 그것은 마치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숨결로 이어지는 병자의 마지막 말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겪은 그 비극의 끝에, 이 성소의 사제들만이 기억하는 다른 비극까지도 끝난 후에, 저는 당신과 던스턴을 만났어요. 기억하고 있나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결심했어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두 사람에게 맡기자. 이 성소와 마을의 미래를 두 사람에게 맡기자. 그래서 당신을 제 다음의 본당 사제로 정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캐서린의 목소리가 떨렸다. 체칠리아는 물에 젖어 차갑게 떨고 있는 목소리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다음에 올 말은 너무나도 명백했다.

 

  “체칠리아, 저는 당신에게, 본당 사제를 맡길 수 없습니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체칠리아는 조용히 캐서린의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그저 굳은 얼굴로 문 옆 벽에 잠시 기대는가 싶더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서랍에서 뭔가를 거칠게 찾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던스턴이 방문을 열고 체칠리아의 열린 방을 바라보았다. 검은색으로 물들인 양피지를 손에 쥔 체칠리아가 나오려 했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던스턴은 직감했다. 그는 그녀의 방문 앞에 셨다. 체칠리아는 큰 결심을 한 굳은 얼굴을 할 뿐이었다. 그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은 채, 그녀는 입을 열었다.

 

  “던스턴 사제님, 비켜주세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

 

  체칠리아의 부름에 던스턴은 멈칫했다. 아버지, 그녀는 그 울림에 기대 던스턴을 밀쳐냈다. 당신은 저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죠.

 

  “우리에게는 악을 미워하기보다, 선을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체칠리아.”

 

  내 딸아, 그렇게 가지 말고 내 말을 들어주렴. 던스턴의 입은 차마 더 떨어지지 못했다. 체칠리아는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저는 알 수 없어요. 이 거대한 위선을 사랑해야 하는지, 미워해야 하는지.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범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이 거대한 기만을 그대로 두고 보아야 하는지.”

 

  만약 이 모든 것이, 원초의 빛께서 남기신 거대한 계획이라면. 온당히 와야 할 심판을 사람의 욕망이 미루고 있는 거라면. 체칠리아는 그제야 던스턴을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에 이제 살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대신 그녀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흘러넘치는 감정에 던스턴은 압도되는 것 같았다. 그 감정이 일으키는 울림이 던스턴의 두 귀를 어지럽게 틀어막았다.

 

  “그러니, 빛에 종속된 몸은 빛께서 예정하신 미래를 위해 써야겠죠. 갈게요, 던스턴 사제님. 안녕.”

 

  밖에서 그렉을 달래고 있던 루카스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무어라 외쳤다. 체칠리아의 귀에는 그것이 어떤 뜻의 외침인지 알 수 없는 짐승의 소리처럼 들렸다. 그저 루카스의 목소리를 듣고 잠깐 뒤를 돌아볼 뿐, 체칠리아는 검은 양피지를 펼치고 그 안에 새겨진 문자를 손으로 쓸면서 기도를 외웠다.

 

  “바라건대, 제가 가야 할 곳으로 인도하시고, 제가 가야 할 곳에 제가 가고 있음을 알려주소서.”

 

  그러자 주변에서 영원한 빛 두 줄기가 솟구치며 양피지를 불태웠다. 빛줄기 하나는 새의 모습으로 변해 먼저 날아가고, 다른 하나는 명마의 모습으로 변해 체칠리아를 등 위에 태웠다. 말은 곧장 새가 날아간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체칠리아!”

 

  달려 나온 던스턴의 외침이 들렸다. 그 뒤로 루카스와 그렉도 보였다. 당신, 그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군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말리려 하는 그 얼굴. 체칠리아는 검붉은 색 로브의 후드를 쓰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사제들의 시선에서 빛나는 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던스턴은 저대로 가게 해서는 안 된다며, 체칠리아의 이름을 계속 부르며 달리려고 했다. 하지만 루카스가 그의 허리를 뒤에서 감싸 잡았다. 자신을 놓아달라는 던스턴의 말에 루카스는 평소와 다르게 확고한 목소리로, 어쩌면 조금 화가 난 것 같은 어조로 말했다.

 

  “던스턴 사제님까지 떠나시면 그렉은 누가 감싸줍니까.”

 

  던스턴은 그렉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더 울 힘도 남아있지 않고, 그저 서서 이 모든 광경을 눈에 담을 뿐이었다. 던스턴은 영원한 빛을 한 줄기 불렀다. 그의 오른손에 빛이 휘감겼다. 아들에게 불러주던 자장가의 멜로디를 얹어 기도문을 올리며 그는 은은히 빛나는 손으로 그렉의 두 눈을 덮었다.

 

  “악몽으로부터 어린 생명을 구하시어, 밤의 평온을 되찾게 하소서.”

 

  그렉은 그대로 잠들었다. 다리를 지탱할 힘이 사라진 그렉의 자세가 무너지기 전에 던스턴은 그를 안아 올렸다. 그렉을 그의 침대 위에 올리고, 난로 위에 올려 따뜻하게 데운 이불을 덮어주었다. 던스턴은 조심스럽게 그의 이마를 쓸어준 뒤, 문을 닫고 나오려 했다.

 

  “아빠.”

  “아버지.”

 

  잠들기 싫어 칭얼대는 친아들의 목소리가, 열병에 걸려 직접 자장가를 불러줬던 어린 체칠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침대 위에는 곤히 자는 그렉만 있을 뿐이었다. 언젠가는 너도 내 곁을 떠나겠지. 던스턴은 자신이 죽을 때에는 아마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거라 직감했다. 어쩌면 그게 올바를지도 모르지. 던스턴은 그렉의 문을 닫았다.

 

  던스턴과 루카스는 아직도 방에서 나오지 않는 캐서린의 문을 두드리려고 했다. 하지만 나지막한 울림이 들려왔다.

 

  “미안하지만, 내가 먼저 들어가도 괜찮겠지.”

 

  문 앞을 가로막으며 모습을 갖춘 에어드부르가의 등장에 두 사제는 고개를 숙였다. 에어드부르가는 들어가기 전에 두 사람에게 말했다.

 

  “너희는 잘하고 있단다. 너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앞으로도 너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단다. 너희가 믿는 대로 해라. 그렇게 하는 것만이 너희를 올바른 미래로 이끌 것이야.”

 

  에어드부르가는 문을 두드린 뒤,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들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다.

 
작가의 말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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