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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낯선 거리
작가 : 봄동
작품등록일 : 2019.12.10

거리는 한 권의 책이다. 낯선 거리의 이방인 백남진, 어느날 마주한 통신사 대리점에서 점장 장하민을 만났다. 커다란 몬스테라 화분의 대리점부터 하나씩 읽어가는 거리의 구석구석과 사람들.

 
5. 잠긴 교실
작성일 : 19-12-17 01:13     조회 : 201     추천 : 0     분량 : 8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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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무섭죠, 남진 씨?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죠?"

 "그쪽이나 지리지 마요."

 

 남진은 팔짱을 끼며 책 읽는 부녀상을 올려다보았다. 무릎에 책을 올려두고 함께 책을 읽는 부녀의 조각상은 다정해보이기는 커녕 섬뜩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폐교,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이끼가 낀 벽. 깨진 창문 사이로 가느다란 바람 소리가 스산하게 울렸다. 무심하게 부녀상을 노려보는 남진의 뒷목으로 식은땀 한 방울이 흘렀다. 하민을 흘금 보니 여유로운 얼굴로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어쩌자고 여기까지 왔을까?

 

 남진은 눈을 질끈 감으며 3시간 전의 자신을 탓했다. 이 또라이랑 밥을 먹는 게 아니었는데. 그 기막힌 카레점만 아니었어도.

 

 

 

 -

 

 

 "내일 철거 들어간다더라, 그 폐교."

 

 시금치 크림 커리를 찍은 버터 갈릭 난을 한가득 우물거리던 남진이 사장을 바라보았다. 9시경, 마감이 임박한 시간대. 손님도 더 없을 거라며 앞치마를 벗은 사장은 맥주잔을 들고 남진과 하민이 앉은 테이블에 합석했다. 맥주잔을 홀짝이던 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남초? 하긴 너무 오래 놔두긴 했죠. 미관상으로도 안 좋고."

 "흉흉한 소문도 있으니까."

 "무응 오믕?"

 

 사장과 하민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남진은 무안한 표정으로 맥주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주희도 뗀 옹알이를 아직도 못 뗐네."

 "무슨, 무슨 소문이요."

 "뭐긴. 오래된 폐교에 하나씩은 있을 법한 소문이지."

 

 무심하게 말하던 사장은 문득 짖궂은 표정으로 하민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짧은 시선이 오가고, 하민이 남진을 흘금거리며 히죽 웃었다.

 

 "그 학교의 책 읽는 부녀 동상은 밤이 되면 움직인다죠?"

 "핸드폰은 자꾸 꺼지고, 그 무거운 미닫이 문이 제멋대로 닫히고."

 "하지만 역시 제일 무서운 건 그거죠. 3학년 2반 교실."

 "아무래도 실화 베이스니까."

 

 말을 끝낸 사장과 하민은 남진을 돌아보았다. 시시껄렁한 괴담인가. 남진이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잔을 홀짝이자, 사장은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나직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 초등학교가 10년 전에 문 닫은 이유가 그거거든. 살인사건 때문에."

 "살인?"

 "진짜야. 거기 경비원 딸이 그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해 부임한 신입 교사한테 살해당했어. 교사가 자기 반 학생, 그것도 초등학생을 살해한거야."

 

 남진은 그제야 이 변두리 지역의 별칭을 기억해냈다. 범죄의 온상, 떠들썩한 연쇄 살인 사건이 몇 차례나 일어난 무법지대.

 

 "교사면서 그렇게 애들이 싫을까. 죽인다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대. 그런데 그 교사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지. 그러니 아빠 속이 어디 남아나겠어?"

 "…그래서요?"

 "그 놈 풀려나고 며칠 뒤에 사건이 하나 더 벌어졌어. 딸이 살해당한 그 교실에서, 경비원이 교사를 죽인거야. 직후에 본인도 자살했어."

 "얼마 안가서 폐교됐죠. 그 교실이 바로 3학년 2반."

 

 잘그락, 얼음이 유리잔 벽을 두들겼다. 남진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사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긴 개발된지 얼마 안됐어. 몇 년 전까진 진짜 시골이었어서, 시에서 폐교를 그냥 내버려뒀지. 거기 들어가서 술마시고 담배 피는 고삐리들도 있고, 담력체험 하겠답시고 찔러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런데 거길 다녀온 사람들이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더래요. 밤에 3학년 2반 교실에 들어가면, 분명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린다는거예요."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러다가 문 앞에서 멈추는 거지. 그 때는 숨소리도 내면 안 돼. 왜냐하면 아주 작은 소리라도 났다간, 문이 벌컥 열리고…"

 

 "내 딸 어디갔어!!!!!!"

 "워어어억!"

 

 하민이 박장대소하며 박수를 쳤다. 괴성을 질렀던 남진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애꿎은 사모사를 젓가락으로 찔러대니 하민과 사장이 숨 넘어갈 듯 깔깔댔다. 남진은 이 자리에 주희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장은 키들거리며 손을 내저었다.

 

 "아구, 남진 씨 무서웠쪄?"

 "놀란거예요. 갑자기 소릴 지르니까 그렇잖아요."

 "어라. 그럼 안 무섭냐?"

 "괴담도 괴담 나름이지, 앞뒤가 안 맞는데요. 범인 죽여놓고 무슨 원한이 더 남았다고. 뻔하고 진부하고 개연성도 떨어져요."

 

 심드렁하게 말하며 맥주를 들이키자 사장은 재밌다는 표정으로 남진을 보다가 턱을 괴었다.

 

 "안 무섭다는거지?"

 "하나도."

 "그럼 다녀와봐. 인증샷 찍어오고."

 "우풉!"

 

 사레 들렸다. 하민이 건넨 티슈로 입을 닦으며 쿨럭대니 사장이 눈썹을 팔자로 휘며 어깨를 으쓱였다.

 

 "하나도 안 무섭다며? 철거는 내일부터니까 오늘 밤에 한 번 다녀오라고."

 "내가 왜-"

 "아하, 혼자는 좀 그래? 그럼 장하민 데려가."

 

 방글거리던 하민이 웃음을 뚝 멈췄다. 두 남자를 궁지로 몰아넣은 사장은 느긋하게 몸을 젖히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가기 싫어? 그럼 둘 다 무서워요, 해봐."

 

 

 

 -

 

 

 "무섭긴 개뿔이…. 근데 사장님도 같이 오셔야하는 거 아니예요?"

 "주희 재우셔야죠, 사장님은."

 

 그리하여 야밤의 폐교에 발을 들이는 멍청한 짓거리를 하게 된 것이다. 만용과 오기, 술기운의 결실이었다. 그냥 아까 무섭다고 말할걸, 열 몇 번째의 후회를 삼키며 남진은 걸음을 떼었다.

 

 부녀상이 세워진 운동장은 금새 가로지를 수 있을만치 아담했다. 3층의 본관은 단촐했고, 유리문엔 자물쇠가 걸려 있었지만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큼지막하게 깨져 있었다. 틈새로 간단히 몸을 숙여 통과하자 시야가 먹처럼 물들었다.

 

 어둠에 잠긴 폐교는 한 치 분간도 힘들었다. 가까스로 들어온 하민이 핸드폰 플래시를 켜서 사방을 비췄다. 얼룩과 낙서들로 지저분한 벽, 바닥에는 깨진 술병과 담배꽁초 따위가 지저분하게 떨어져있었다.

 

 "가출 청소년들이 와서 놀았다는 얘기가 사실인가봐요."

 "술쳐먹고 헛것 봤겠죠."

 "3학년 교실은 아마 2층이나 3층에 있을 거예요."

 

 어두운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오르자 발에 걸리고 채이던 것들이 사라졌다. 그나마 들리던 소음이 사라지고 묵직한 발소리만 돌바닥을 탕, 탕, 울렸다. 멀리서 가느다란 바람 소리가 또 휘유유유 하고 들려왔다.

 

 등줄기로 차가운 것이 오싹 하고 스쳤다. 계단 중턱의 창문을 바라보니 먼지와 성에가 희뿌옇게 뒤엉켜 바깥 풍경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무 말이나 꺼내야겠다는 생각에 남진은 입을 열였다.

 

 "귀신이 진짜로 있을까요?"

 

 주제를 잘못 꺼냈다. 제 말에 놀라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괜한 말을 꺼냈다는 생각에 화제를 돌리려는데, 하민이 먼저 대답했다.

 

 "뭐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만약 있다고 가정한다면, 귀신들은 참 일관성이 없네요."

 "일관성?"

 "나라별로 귀신의 형질이 다르잖아요. 한국에는 원한령이, 일본에는 지박령이, 서구권에는 대부분 악마가 서식하죠. 자기들끼리 타입 맞춘거야 뭐야."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귀찮게만 여겼던 하민의 수다스러움이 새삼 반가웠다. 2층의 복도로 진입하자, 하민이 플래시를 들어올려 각 교실들의 표찰을 비췄다. 3학년 6반, 5반.

 

 "저쪽인 것 같네요. 어쨌든, 그렇다고 그런 존재들을 아예 부정하는 건 아니고."

 "방금까지 일관성 없다고 깠으면서."

 "하지만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건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하민의 걸음이 멈췄다. 어둠 속에서 창백하게 떠오른 빛이 붉게 녹슨 표찰을 밝혔다. 3학년 2반.

 

 "보는 이의 니즈에 따라 다르다는거죠. 원래 사람들은 보고싶은 것만 보니까."

 

 묵직한 나무 미닫이를 밀자 엄청나게 뻑뻑했다. 삐이익, 듣기 싫은 소음이 가느다랗게 귀를 찔렀다. 어둠에 잠긴 교실 내부는 플래시 하나로는 둘러보기 힘들 정도로 깜깜했다. 남진은 제 폰의 플래시를 켜 교실을 비췄다. 두 개의 불빛이 어둠 속을 어지러이 휘저었다.

 

 "많이들 다녀간 모양인데."

 "남진 씨, 저기 봐요."

 

 하민의 플래시가 비춘 바닥을 보니 낡은 나무 바닥 위로 검은 자국이 남아있었다. 주변을 비춰보니 오랜 흔적은 넓고, 좁고, 진했다가, 옅었다. 마치 과거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남긴 것처럼.

 

 "저런 게… 남아있네."

 "좀 이상하네요. 바닥을 안 바꿨나? 하다못해 경찰이 지우기라도 했을텐데."

 "뭐 살인 사건은 두 건이었고, 두 번째 후에 바로 폐교했다고 하니까."

 

 덤덤한 말투와는 다르게 손 끝이 식기 시작했다. 이대로 사진이나 찍고 돌아가자고 말하려는 순간,

 

 "남진 씨?"

 "..."

 

 플래시 불빛이 동시에 꺼졌다. 어둠이 확 내려앉았다. 놀란 남진과 하민이 각각 핸드폰을 들여다보자, 전원이 나간 채였다. 분명 배터리가 넉넉했는데. 어둠 속의 침묵, 곧이어 하민이 웃기 시작했다. 목소리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와- 아쉽게도 인증샷은 못 찍겠어요. 사장님이 안 믿어주시면 어떡하죠?"

 "그러게요. 여기까지 온 거 아쉬운데…."

 

 쾅!

 

 세차게 문이 닫혔다. 굳어있던 둘은 다급하게 문으로 달려가 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은 잠긴 듯 덜걱덜걱, 밀리지 않았다. 꼭 누군가가 반대편에서 붙들고 있는 것처럼.

 

 한참을 문과 씨름하던 남진은 욕지기를 뱉으며 문을 걷어찼다. 쾅! 애초에 자물쇠가 걸려있던 앞문이라면 몰라도, 방금 전 멀쩡하게 열고 들어왔던 뒷문이 느닷없이 잠기다니. 하민은 비틀거리며 사물함을 짚었다.

 

 "어떡하죠, 우리?"

 "X됐네…."

 

 침묵. 남진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플래시 불빛이 비추는 곳만 볼 때에는 몰랐는데, 눈이 점차 어둠에 익음에 따라 음산한 교실 내부의 곳곳이 드러났다. 어지럽게 넘어지고 쌓인 책걸상, 칠판 가득한 지저분한 욕설과 낙서들.

 

 잔뜩 긴장한 남진의 어깨로 무언가가 톡, 닿았다. 소스라치게 놀라 돌아보자 하민이었다.

 

 "뭐예요?"

 "아, 그… 너무 어두워서요. 남진 씨 목소리만 들리니까."

 "그쪽 몇 키로 나가요? 그 어깨로 들이받으면 나갈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내가 무슨 코뿔소예요? 저 두꺼운 문짝을 부수게."

 

 다시 침묵. 정체를 알 수 없는 퀘퀘한 냄새가 가득했다. 운동장과 복도로 각각 낸 창문은 성인 남성이 드나들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었다. 남진은 마른 세수를 하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란히 어깨를 대고 앉은 둘은 사물함에 등을 기댄 채, 사람이 둘이나 죽은 교실의 정경을 바라보았다. 춥고 텁텁한 공기가 눅진하게 들러붙었다.

 

 "그러니까 아까 남진 씨가 깔끔하게 무섭다고 인정했으면 됐잖아요."

 "그쪽도 안 했으면서."

 "아니, 이럴 줄은 몰랐죠. 그냥 귀신이 덩그러니 있는 게 아니라, 폰 꺼지고 문 잠기고 하는데-"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와중에도 헛웃음이 났다. 피식거리던 남진과 하민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손 끝과 목은 차갑게 식는데 이상하게 뱃속이 가려웠다. 웃음과 한숨을 섞어 쉬던 남진은 주머니에 핸드폰을 쑤셔박고는 제 머리를 헝클었다.

 

 "그쪽은 이게 귀신 짓이라고 생각해요?"

 "귀신이든 뭐든, 초자연적인 존재긴 하겠죠."

 "초자연적인 존재. 그런 거 믿어요?"

 

 남진은 제 옆의 컴컴한 실루엣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서있을 땐 엄청나게 커다란데, 앉은 키는 남진과 별로 차이 나지도 않았다. 남진은 그가 어제 건넸던 달력을 떠올렸다. 하민은 무릎을 끌어모으며 팔을 문질렀다.

 

 "글쎄요? 예를 들면 어떤 거?"

 "뭐 그냥,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 그쪽이 어제 보여줬던 만화처럼, 소원 들어주는 전지전능한 존재라거나…."

 

 푸흐흐, 힘 빠진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슬슬 어둠에 익어가는 눈으로 하민을 바라보니, 하민은 큼직한 거구를 웅크린 채 남진을 보며 웃고 있었다. 남진은 도로 고개를 돌렸다.

 

 "됐어요. 비웃을거면 관둬요."

 "비웃는 거 아닌데? 아까도 말했잖아요. 사람들은 보고싶은 것만 본다고."

 "조용히 해요."

 "필요하면 찾게 될거고, 찾다보면 보일거예요. 믿고 말고는 별 상관이 없어요."

 "그만 말하라니까요."

 "그러니까 남진 씨가 원한다면-"

 

 남진은 하민의 입을 거칠게 막았다. 입이 틀어막힌 하민이 눈을 크게 뜨자, 남진은 뒤쪽의 문을 가리켜보였다. 이 소리 안 들려요?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묵직한 발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렸다. 손바닥에 닿은 살갗이 점점 차가워졌다.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커지다가, 멈췄다. 바로 문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침묵.

 

 발소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둔탁한 공음이 서서히 멀어졌다. 숨소리마저 죽인 채 굳어있던 남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찰나, 주머니가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대강 쑤셔박았던 핸드폰이 점점 앞으로 기울었다. 손을 뻗어 잡으려는 순간 나뭇바닥에 떨어졌다. 툭.

 

 탁탁탁탁탁탁탁! 발소리가 도로 문으로 달려왔다. 남진과 하민은 허옇게 질린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덜걱덜걱, 덜걱덜걱덜걱! 문이 미친듯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명이 터져나왔다.

 

 ""으아아아아!""

 

 문이 벌컥 열렸다. 냉기가 쏟아지듯 밀려들었다.

 

 

 

 -

 

 

 "정말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하민과 남진은 고개를 푹 숙였다. 랜턴을 든 경비원은 허리에 손을 얹고 두 청년을 기막힌 표정으로 바라봤다. 운동장으로 끌려나온 남진과 하민은 손을 얌전히 모은 채 (혼나는 기분으로) 땅만 쳐다봤다.

 

 "나 참, 멀쩡하게들 생겨가지고. 그놈의 담력 테스튼가 뭔가 하려고 들어왔죠?"

 "…예."

 "술 마셨어요?"

 "아, 아까 맥주 한 잔 하긴 했는데-" 남진은 하민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취하진 않았어요. 진짜예요."

 "하여튼간 무슨 생각으로!"

 

 경비원은 혀를 차며 궁시렁대다가, 랜턴을 들어 2층의 교실 창문을 비춰보였다.

 

 "저기가 어떤 덴줄 알아요? 사람이 둘이나 죽어나갔다고!"

 "죄송합니다."

 "멀쩡한 길바닥에서도 살인나는 동네인데, 어딜 겁도 없이 저런 델 함부로 들어가고 그래요? 얼른 집에나 들어가!"

 

 경비원은 그리 말하고는 랜턴을 휘휘 내저었다. 불빛이 요란하게 번쩍거렸다. 깨진 유리문 틈으로 들어가는 경비원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남진과 하민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별 일 없어서 다행인가."

 "그래도 다시 들어가고 싶진 않네요."

 "어차피 못 들어가요. 순찰 계속 하시는 것 같은데."

 

 남진은 복도 창문으로 번쩍거리는 불빛을 가리켜보였다. 암묵적인 합의, 남진과 하민은 교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핸드폰 전원 버튼을 눌러보니, 이제야 불이 들어왔다.

 

 "경비 아저씨도 한 번에 못 여신 걸 보니 원래 그 문은 자주 그런가봐요."

 "그러게요. 폰은 갑자기 왜 방전됐는지 모르겠네."

 "그래도 다녀왔다고 말은 해야하니까. 우리 저 앞에서 사진 찍을까요?"

 

 하민은 운동장 한복판의 책 읽는 소녀상을 가리켜보였다. 소녀상 앞에 자리를 잡고 카메라 앱을 켜니 주변이 워낙에 깜깜해 초점이 맞지 않았다. 나이트 모드 켜요, 난 그런 거 모르는데, 옥신각신하다가 가까스로 셔터를 눌렀다. 찰칵! 사진을 확인해보니 소녀상은 고사하고 둘의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교문 밖을 나서니 그제서야 한 숨 놓였다. 여전히 어두컴컴한 밤거리와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 나무 따위는 변두리 지역을 넘어서 시골처럼 보였다. 플래시로 발 앞을 비추며 걷던 남진은 문득 뒤쪽을 돌아보았다. 한 때는 아이들과 웃음소리로 가득했을 학교는 쓸쓸하게 버려져 있었다. 그마저도 내일이면 사라질 폐허였다.

 

 "왜 죽었을까요?"

 

 저도 모르게 말을 꺼내자 하민이 고개를 갸웃하며 내려봤다.

 

 "뭐가요?"

 "그 경비원이요. 딸을 죽인 범인도 죽였는데, 왜 자살했을지."

 "딸이 없는 하늘 아래서 살아가기 힘들었나보죠, 뭐. 감옥 가기 싫었던가."

 

 하민의 말투는 뜻밖에 냉랭했다. 남진은 당황한 표정으로 어둑한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산 것에게 한없이 따뜻하게 굴던 남자는 비통한 죽음 앞에 냉소를 보이고 있었다.

 

 "그래도 불쌍한 사람인데 말이 좀 심하시네."

 "뭐 어때요. 죽었는데."

 "저기요."

 "죽음을 불사했다면 이런 것도 각오해야죠. 그거 알아요? 죽은 친구는 더이상 친구가 아니라 추억이예요."

 

 무성한 풀숲이 도로변의 갓길로 이어졌다. 가로등이 늘어진 한밤의 도로, 역전을 향해 걸으며 하민은 플래시를 껐다.

 

 "산 사람들은 죽은 사람한테 애정과 동정을 보내요. 우습죠, 죽은 사람은 아무 역사도 만들어내지 못하는데."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막았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건 생전의 꾀고 산 사람들의 선택이죠. 죽은 사람이 생각을 해요, 움직이길 해요?"

 "주변에 돌아가신 분이 안 계신가봐요.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있어도요. 추억은 내 몫으로 남겨진 찌꺼기일 뿐이예요."

 

 나트륨등의 노란 빛이 몸에 드리웠다. 불빛 아래로 드러난 하민은 남진을 내려다보며 서늘하게 웃었다.

 

 "아무 가치도 없어요. 죽은 건 원래 그래요."

 

 

 

 -

 

 

 "니네 장난하니?"

 "진짜라니까요!"

 

 다음날 저녁, 카레 전문점에서 남진과 하민의 무용담을 듣던 사장이 피식 웃었다. 방전된 핸드폰, 열리지 않는 문과 발소리. 끝내 출동한 경비원의 이야기까지 말하자 사장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하품을 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거기에 경비가 왜 서?"

 "오늘 철거잖아요. 경비 설 수도 있죠."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그래서 인증샷은?"

 

 남진이 핸드폰을 내밀자 사장은 의뭉스러운 얼굴로 사진을 보다가 어이없다는 듯 파하, 웃었다.

 

 "이게 무슨 인증샷이야? 온통 시꺼매가지고."

 "교실 안에서는 폰이 꺼져서. 책 읽는 소녀상 앞에서 찍은 거예요."

 "책 읽는 소녀상? 이것들이 진짜. 너네 무서우니까 그냥 다녀왔다고 구라치는거지?"

 "아, 사장님! 진짜라니까요!"

 

 하민이 불쑥 끼어들었다. 사장은 팔짱을 꼈다.

 

 "거기 소녀상이 어딨는데?"

 "운동장 한가운데요."

 "그게 무슨 소녀상이야, 부녀상이지. 너 나랑 어제 했던 얘기 기억 안나?"

 

 '그 학교의 책 읽는 부녀 동상은 밤이 되면 움직인다죠?' 남진은 폐교에 첫 발을 딛던 순간을 떠올렸다. 섬뜩하지만 다정한 자세로 함께 책을 읽던 부녀 동상. 죽은 딸의 복수를 한 경비원. 남진과 하민의 눈이 마주쳤다. 둘은 거의 동시에 한 인물을 떠올렸다. 내일이면 철거될 폐교에 세워진 경비원.

 

 사장의 의뭉스런 눈초리 속에서 둘은 희게 질린 얼굴로 웃기 시작했다.

 

 "남진 씨, 오늘 같이 잘래요?"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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