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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사후노동지옥
작가 : 튜트
작품등록일 : 2016.10.14

죽으면 모든 것이 끝?
그렇지 않다!
죽으면 육신이 사라질 뿐 혼과 업이 남는다.
그리고 혼은 자신의 업을 씻어내야만 한다.
지옥과도 같은 노동과 노력을 통해서!

 
1장 - 사후세계 (3) -
작성일 : 16-10-14 22:31     조회 : 355     추천 : 0     분량 : 5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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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 매뉴얼이었다. 연옥에서의 생활, 장소, 내가 해야 할 일들 같은 것들에 대해 충실히 안내하고 설명하고 있었다. 다만 그 내용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너무 많이 달랐지만 말이다.

 

  “이건......”

 

  “게임 매뉴얼 같지?”

 

  “예. 누가 보면 게임 튜토리얼을 적은 건 줄 알겠네요”

 

  나는 잘 믿기지가 않아 다시 한번 책을 뒤적거렸다. 물론 그런다고 책 내용이 변화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처음엔 내가 잘못 봤거나 이화가 다른 책을 넘겨준 줄 알았는데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이게 잘못된 책은 아니다. 근데 그럼.....도대체 이게 무슨 내용이야? 아니 뭐 내용상으론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연옥이란 말의 무게와 이 내용의 경박함은 도저히 매치가 안 되는데?

 

  “혼란스런 표정이네. 내가 잘못 주거나 네가 잘못 읽은 게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물론 네가 모르는 이중의 의미나 암호가 숨겨져 있는 것도 아니고. 네가 보는 내용 그대로 받아들이면 돼”

 

  아니, 받아들이라고 해도.....이런 걸 어떻게 받아들여?

 

  “네가 연옥에서 해야 할 건 일종의 게임이야. 장르는 네가 하기 나름이겠지만 역시 퀘스트를 해결하고 장비를 모으고, 동료를 만나 모험을 하는 RPG가 가장 가까울 거고”

 

  진짜로? 진짜의 진짜냐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걸 연옥, 속죄시스템으로 만들어 놓은건데?

 

  “왜 그렇게 만들어 놨는지 궁금하지?”

 

  나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이화는 나른한 표정으로 턱을 괴며 설명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어. 하나는 너희에게 이해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시대가 변했으니 시대에 발맞춰 변화하는 거라고 할까? 예전엔 참선이나 명상, 고행 같은 걸로 업을 청산하도록 했지만 이젠 시대가 변했잖아? 그러니 예전과 달리 저런 걸 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저런 행동의 의미를 잘 알지도 못하더라고. 덕분에 연옥에서의 속죄 기간이 무지무지 길어지기 십상이었고 넘쳐나는 죄인들 때매 높으신 분들은 골머리를 앓게 되었지. 엄중한 시스템이니 맘대로 죄를 없애줄 수는 없는데 연옥은 비워질 생각을 안 하니까. 결국 대안을 찾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선택된 대안이 지금 네가 보고 있는 매뉴얼의 내용이야. 현대에 유행하는 게임처럼 업을 닦아내도록 한 것”

 

  이해가 될 거 같으면서도 어려운 내막이네. 나는 멍하니 내 손에 쥔 매뉴얼을 들여다보았다. 이런 온라인 RPG 게임 하나를 베껴놓은 것 같은 걸로 속죄가 가능하다는 건가? 속죄라는게 그렇게 단순한 거라고?

 

  “두 번째는 실용적이라면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야. 그게 뭐냐면 높으신 분들의 오락을 위해서”

 

  응? 뭐라고? 나는 내가 잘못 들은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내 생각을 다 안다는 듯 이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이화의 눈은 아무런 동요를 보이지 않고 진중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내가 말한 두 번째 이유는 높으신 분들의 오락을 위해서야. 너희가 죄를 씻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높으신 분들이 지켜보며 즐기는 거지”

 

  “콜로세움에서 싸우던 검투사들처럼 말인가요?”

 

  “정확해”

 

  하!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이리저리 꼬았다. 그리고 이화를 마주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이화는 방금 전과 똑같은 눈으로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이거 진짜 어이없네. 그러니까.......전부 진실이란 거지? 높으신 분들의 오락을 위해 나와, 다른 연옥의 사람들이 재롱을 피워야 된다는 것도, 그게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한 속죄가 된다는 것도......

 

  “이런....”

 

  “말하고 싶은 바는 알지만 매뉴얼의 내용을 잊지는 마”

 

  이화는 내 말을 끊었다. 만약 이화가 그 외에 어떤 행동을 더 했다면 나는 분명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발했을 거다. 하지만 이화는 내 말을 끊는 것 외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도 충혈된 눈으로 이화를 노려보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매뉴얼에 적힌 내용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거다.

 

  ‘퀘스트를 해결하거나 업적을 쌓아 포인트를 얻어라’

 

  연옥이란 던전도, 도시도, 아이템도, 마법도, 무협지에 나오는 무술도, 그 외 기타 등등의 게임적 요소가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다. 그리고 사자(死子)들 중 나처럼 연옥에 가게 된 사람들은 연옥이란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가 되는 거다. 그리고 거기서 몬스터를 잡거나 던전을 탐험하거나 하는 등의 행동을 통해 얻게 된 포인트는 내가 지은 죄, 카르마에 대한 공물이 된다.

  하지만 내가 행하는 모든 행동이 포인트를 얻게 하는 건 아니다. 이들이 말하는 죄,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은 행동은 포인트를 얻을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마이너스다. 즉, 그저 놀이 같아 보이는 행위들이지만 그 기저에는 분명, 선행을 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하지만 말이야.....

 

  “누구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악취미군요. 도저히 살아있을 적에 지은 죄를 씻어낸다는 경건함을 느낄 수가 없고....”

 

  천박할 정도로 세속적이다.

 

  이를 악 문 내 말에 이화는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부터 그게 목적이라니까. 너 같으면 애들이 명상하고 단식하며 수행하는 거 보는 거와 애들이 필사적으로 투닥투닥 대는 거 보는 것 중 뭐가 재밌겠어? 그리고 죄, 카르마를 씻어낸다는 점은 변함없잖아? 좋게 생각해. 높으신 분들에게 재롱을 떨어 죄를 씻는 게 아니라, 네가 행한 행동이 다른 누구에 행하는 선행일 뿐 아니라 높으신 분들에게 즐거움까지 주는 것이라고”

 

  아니, 그건 그렇지만 말이지....

 

  “분위기란게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거보단 지옥이 더 죄를 씻는다는 이미지에 더 맞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제가 하는 게 선행이자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는 거다? 그렇게 쉽게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라고 보는 겁니까?”

 

  나는 책을 덮었다. 나도 게임이라면 남들 못지않게 했었던 만큼 내용을 이해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다만 이건 이해의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감정적으로 납득할 수가 없다. 내 죄에 대한 처벌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받겠다. 하지만....속죄 한답시고 쇼를 하는 건....받아들일 수가 없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이화를 노려보았다. 이게 문제가 돼서 지옥에 가게 된다고 해도.......후회는 하지 않겠다. 지옥에서 5분 만에 결의를 잊는다 해도 지금은 그게 더 받아들이기 쉬우니까!

 

  이화는 나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지옥은 죄를 씻는 곳이 아니야. 혼이 고통에 절여지고 후회에 갉아져 부서지게 하는 곳이지. 속죄 같은 건 지옥과는 가장 먼 단어라고. 그리고 네가 지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냐. 분명 겉으로 보기엔 연옥이 가볍고, 높으신 분들을 위해 쇼를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네가 연옥에 대해 아는 건 뭔데? 고작 그 책 하나 읽었다고 해서 그게 연옥의 전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그 전에 너는 속죄라는 게 뭔지는 알고 있어? 그저 네가 고통에 몸부림치면 그게 네 죄에 대한 면죄부가 될 거라 생각하는 거야?”

 

  나는 나도 모르게 의자를 뒤로 밀었다. 그 만큼 내게 말을 하는 이화의 눈에 담긴 무언가는 여태까지와 달랐다. 진실의 무거움, 혹독함, 공포와도 다른 무언가. 전혀 이해 할 수도, 표현 할 수도 없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거기에서 도망쳐 버렸다.

 

  “네가 진정으로 네 죄가 깊고, 그것을 속죄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내 말대로 연옥에 가. 그래서 직접 몸으로 느껴보도록 해. 속죄라는 것이 무엇인지, 연옥이 어떤 곳인지, 죄라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네가 말한 대로 연옥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저 유흥에 지나지 않는지도”

 

  “........”

 

  나는 이화와 마주보았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싶었지만......참았다. 대신 나는 무릎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축축하게 젖어오는 무릎의 감촉이 조금이나마 나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제게 거부권 같은 건 없겠죠?”

 

  “물론이지. 여태까지 봐 놓고 무슨 기대를 한 거야?”

 

  “그럼 지금까지 저와 했던 대화는 뭡니까? 그냥 닥치고 가라고 하지”

 

  “흐응? 이 누님의 서비스를 이해 못 했나 보네”

 

  이화는 이죽대며 내게 카드를 건넸다. 붉은색의 아무런 특색이 없는 카드. 실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군.

 

  “이게 제 상태 카드로군요”

 

  이걸 쥐는 순간, 내 앞길은 결정되어 버린다.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다.

  이화가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 박력, 압박, 무거움. 이화의 말에 담긴 것은 거짓은 절대로 지닐 수 없는 것들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이화가 보낸 기나긴 시간에 비해 내가 보낸 시간은 턱없이 짧다. 그런 이화의 거짓을 내가 간파한다고는 자신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나는 그것을 거짓이라 생각할 수 없어’

 

  하지만 과연 이게 내가 저지른 죄를 씻는 길이 될 수 있을까? 혹시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건 감정적인 거부감일까 아니면, 내 자신의 운명이란 게 보내는 신호일까?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의 말. 믿어보겠습니다”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화의 손에 놓인 카드를 넘겨받았다. 카드는 이화의 손에서 떨어져 내 손에 들어오는 순간 사라졌다. 매뉴얼의 내용대로라면........좋아, 제대로 됐군.

 

  내가 시험 삼아 내 상태를 보고 싶다 생각하자 곧장 카드의 내용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름 : 서시후 카르마 : -30,000

  힘 : 10 민첩 : 8 체력 : 9 지능 : 12 의지 : 6

  특기 : 없음 ]

 

  일반적인 평균이 10이라 했으니.....허구헌날 책상에 앉아 있던 책상물림으론 꽤나 준수한 능력치네. 의지를 제외 했을 때의 얘기지만.

 

  “능력치는 그럭저럭 평균은 되네. 의지가 좀 많이 낮은 걸 빼면 시작하는데 있어 불이익은 없다고 봐도 되겠어”

 

  이화의 말을 흘려들으며 의지 수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6이라는 수치는 마이너스 3만이라 적힌 카르마 수치보다 더욱 내 가슴을 무겁게 했다. 내 의지가 일반 사람의 평균인 10정도만 됐다면 그런 일은 하지 않았을 거다.

 

  ‘여기에 올 일도 없었을 테고’

 

  나는 가만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지나간 일이라 그냥 넘길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매달려서도 안 돼. 남보다 부족하기에 더욱 의지를 다져야 한다.

 

  “그럼 이걸로 심사는 끝났어. 카드와 마찬가지로 ‘연옥 매뉴얼’도 네 기억에 각인 될 테니 금방 쓸모없어질 정보라도 잘 참고하도록 해”

 

  어차피 튜토리얼 수준의 지식인데 각인 까지 시킬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어쨌든 도움이 되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잠깐 머릿속에 각인 된 매뉴얼 내용을 흩어보고 이화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어떻게 되는 거죠? 어딘가로 이동해야 하나요?”

 

  포탈 같은 거라도 타게 되려나?

 

  “아니. 네가 눈을 뜨면 연옥일거야”

 

  이화는 일어나 내 곁으로 오더니 손을 뻗어 내 눈을 가렸다. 이화가 가까이 오자 복숭아 향이 물씬 풍겼다.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가슴이 시려지는, 그리운 그런 냄새.

 

  “행운을 빈다고 까진 해주고 싶지 않지만, 건투는 빌어줄게. 달마다의 정산을 소홀히 하지 말고 잘 포인트를 모아. 그래서 네 죄를 꼭 씻도록 해”

 

  “...예. 감사합니다”

 

  눈앞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전달되는 이화의 격려와 온기에 나는 미소 지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이화의 입술 역시 살짝 휜 것처럼 보였다. 멀어지는 정신 속에서 나는 그러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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