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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너에게 가는 길
작가 : 사파이어
작품등록일 : 2019.11.10

우주에는 ‘넵툰’이라는 청록색의 신비로운 행성이 있다. 그 곳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그의 딸 ‘라미아’가 거대한 왕국을 이루며 살고 있다.
우주에서는 삶이 무한하고, 아름다움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반복되는 삶에 우울증에 빠진 ‘라미아’가 아버지에게 ‘지구’로 보내달라고 간청하는데, 아버지는 심하게 반대를 하다 결국 3년 안에 돌아오라는 약속을 하며 허락한다.
‘라미아’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어떤 범상치 않는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데...

 
10회
작성일 : 19-11-10 23:13     조회 : 168     추천 : 0     분량 : 8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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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이 무섭게 뒤흔들렸다. 마른 하늘에 번쩍하고 거대한 번개가 내리쳤다. 멀리서 번개를 맞은 고목나무가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께가 2미터가 넘는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목나무였다. 또다시 파도가 불안하게 뒤흔들리며 몰아치기 시작했다.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지?”

 “내가 네 능력을 없애면 돼.”

 “뭐라고?”

 “라미아, 너를 자유롭게 만드는 네 능력이라는 것이 사실은 너를 가장 자유롭게 못하게 만들지. 내가 너에게 채워진 족쇄에서 널 자유롭게 만들어줄 수 있어. 너는 더 이상 포세이돈의 지배나 감시를 받지 않아도 되고, 형제, 자매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네 능력을 평가 받지 않아도 돼. 그리고 네가 할 일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살면 돼. 평범하게.”

 “나보고 넵툰을 떠나라는 거야?”

 “물론 평생을 살았던 곳이니까 당장은 힘들다고 느끼겠지.

 하지만 한 번 잘 생각해봐. 계절마다 색깔이 바뀌고 온도가 바뀌고, 만나게 되는 생명체가 바뀌는 지구에 와서야 너는 행복을 알게 되었어. 늘 같은 색깔, 같은 온도, 뻔한 것들의 넵툰이랑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지. 너의 평생의 단조롭고 외로웠던 삶에서 구해줬던 것이 지구이고, 아카마스였잖아.”

 “내 능력이 없어지면 내가 지구에서 살 수 있다는 거야? 아카마스와 영원히?”

 “그래. 지금까지 그 쉬운 길이 있는 걸 모르고 왜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느끼고 있었던 거야?”

 “그러면 나도…… 죽게 돼?”

 “그렇지, 아카마스와 똑같은 인간이 되는 거니까.”

 “내가 인간이 된다고?”

 라미아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정말 저승에 가면 하데스 삼촌을 만나게 되는 것일까? 하데스 삼촌은 아버지보다 몇 배는 더 지독한 저승의 신이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 400년 후에는 환생할 테니까.”

 “모든 인간은 죽으면 환생하는 거야? 하지만 아카마스도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했는데.”

 “뭐, 둘이 같이 죽는다거나 다시 환생한다는 보장도 없기는 하지.”

 “뭐라고?”

 “하지만 너희가 가진 운명이 둘을 언젠가 다시 만나게 해줄 거야.

 운명의 법칙 몰라? 아무리 만나려고 몸부림 쳐도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존재가 있고, 죽어도 만나기 싫은데 가장 끔찍한 순간에 가장 비루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는 존재가 있지.

 정해진 운명을 서로 확인했는데, 두려울 게 무엇인가, 라미아?”

 “라미아.”

 냉정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사실 라미아는 소리가 들리기 전부터 그녀의 뒤쪽으로 다가오는 존재를 느꼈다.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삼라바였다. 삼라바는 긴 외투 자락을 흩날리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레우키포스는 삼라바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라미아에게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절체절명의 순간, 새로운 자의 등장은 레우키포스나 라미아를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레우키포스와는 반대로 라미아는 안도감을 느꼈다.

 사실 레우키포스와 삼라바의 분위기는 얼핏 느끼기에 매우 흡사했다. 그들은 둘 다 섬뜩한 기운을 풍기며, 실제보다 더 거대하고 무서운 존재감으로 상대를 압도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운은 본질적으로 달랐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것은 아주 멀리서부터 느껴졌다.

 “삼라바.”

 “레우키포스, 너는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거냐? 내가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워워 삼라바. 나는 라미아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려고 온 것뿐이야.”

 레우키포스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라미아에게 삼라바 이야기를 좀 해줄까?”

 “닥쳐.”

 “삼라바, 우리는 동질감이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는 영혼이 없지. 그건 이미 죽었으니까.”

 라미아는 레우키포스에게 표정의 변화를 들키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사실 라미아도 삼라바에 대해 궁금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던 것은 삼라바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라미아는 그저 그를 기다려주고 싶었다. 언젠가 그가 덤덤히 하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특히나 지금 이 순간, 라미아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궁금함이나 조급함이 있다는 사실을 레우키포스에게 들키는 것은 비열한 그의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가도록 돕는 일임에 틀림없었었다. 아카마스에 대한 일만 해도 그렇다. 이미 라미아는 너무 많은 패를 상대에게 보여줬다. 하지만 라미아에게 아카마스와 관련된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것은 아직도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레우키포스, 자네가 나를 우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 알겠지만, 더 이상 자네와 나를 비교하지 말게. 나는 매우 언짢아지려고 하고 있거든.”

 “뭐라고? 자네가 나보다 우월하다고? 하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 자네는 죽었다가 살아왔을 때 어린아이처럼 질질 짜지 않았는가? 그 이후로 많은 것을 이룬 나와는 다르지.”

 레우키포스의 말에 라미아의 기억 속에 다시 어렴풋이 어떤 장면이 되살아났다. 삼라바가 포세이돈 앞에서 울고 있던 장면이었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을 것만 같은 삼라바에게 눈물이란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이었을까.

 “허튼 수작 부리지 마라. 넵툰에 죽음의 공포를 만들고 있는 어둠의 존재, 그게 바로 너라는 거 내가 모를 줄 아느냐? 이제 라미아까지 죽이고 넵툰을 차지할 생각인가 본데, 결코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거야.

 넌 포세이돈을 배신하고 우주로 도망쳤다. 그리고 온 우주에 악행이란 악행을 다 저지르고 다녔지. 그걸 포세이돈이 모르고 있을 줄 알았느냐? 네가 라미아를 해치는 순간, 포세이돈이 너를 단죄할 수 있는 실질적인 명분이 생기게 되지. 그럼 넌 당장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말 거야.”

 “내가 다시 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삼라바, 너나 나나 우리는 죽고 싶어도 못 죽는 신세라네. 아, 아니지. 어쩌면 제우스는 다시 너를 찾아내어 죽여 버릴 수도 있지. 그리고 저승에 간다 한들 네가 하데스에게 무사할 것 같으냐?

 그러면 딱한 라미아는 어쩌나? 한낱 인간이라도 라미아 곁에 있어주면 좋잖아. 나는 어떻게 하면 라미아가 아카마스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 지 알려주고 싶을 뿐이야.”

 “레우키포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려는 어리석은 생각하지 마라. 그것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파멸시킨다. 제발 이제 그만둬.”

 “자연의 섭리? 라미아는 이 세상에 당장 사라진다고 해도 좋을걸. 그녀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게 진정한 사랑이니까. 그렇지, 라미아?

 왜 라미아를 그렇게 위하는 척 하면서 라미아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도록 막는 거지?

 그게 너나 포세이돈에게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삼라바,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건가? 자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정말 라미아의 행복이 맞는 거야? 아니면, 자네야말로 다른 속셈이 있는 건가? 포세이돈은 이미 많은 자식들이 있으니 딸 하나쯤 어떻게 되도 별 상관 없을 테니, 자네가 노리는 게 바로 그거 아닌가?”

 “레우키포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자네의 말은 일말의 가치도 없군. 나는 더 이상 자네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마. 그럼 내가 당장 자네를 지옥으로 보내주겠네.”

 “이것 봐, 라미아. 아무래도 삼라바가 의심스러운데 말이야.”

 평점심을 유지하려는 라미아는 혼란스러웠다. 레우키포스가 어느새 그녀의 몸에 아주 가까이 밀착되어 있었다.

 하지만 바닷가의 모래사장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아는 순간, 일시에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모래사장의 끄트머리에 웬 여자가 한 명 서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여자에게로 향했다.

 다행히 여자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갸름한 얼굴을 거의 다 가릴 만큼 긴 머리가 바닷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그녀의 깊은 눈은 여자인 라미아도 홀리게 만들 것만 같은 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짙은 색의 머리카락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보라색의 빛을 내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홍, 홍채현씨.”

 순간 삼라바에게서 당황한 기색이 엿보였다. 라미아는 삼라바가 말했던 친구가 바로 이 여자구나 라고 단번에 알아차렸다. 자신과는 정반대의 스타일이지만, 누구든 반해버릴 만한 미모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저 평범한 인간이라고 하기에 온 몸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겨내고 있었다.

 “삼라바, 일단 집으로 들어가자. 여긴 위험해.”

 라미아가 먼저 나서서 그녀를 챙겼다. 삼라바는 집 근처에서 라미아와 함께 있는 레우키포스를 보자마자 흥분해 홍채현을 미처 챙기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홍채현이 어떻게 바다 깊은 곳까지 걸어 나와 그들을 지켜 보고 있었는지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래, 라미아. 먼저 들어가줘. 레우키포스는……”

 삼라바가 뒤를 돌아봤을 때, 레우키포스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악랄한 레우키포스가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별 일 아닌 듯 홍채현을 데리고 이 곳을 떠나는 것이 시급했다.

 집 앞에는 김정기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서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집 앞에서라면 얼마든지 바닷가에서 있는 모든 일들을 다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라미아와 삼라바는 잠시 머뭇거리다 서둘러 김정기와 라미아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라미아, 괜찮아요? 얼굴이 너무 창백해요. 채지나랑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심각하게 한 거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가 지나 좀 만나고 올게요.”

 “아니요. 그러지 마요. 얼른 같이 들어가요.”

 라미아가 힘을 주어 김정기에게 말했지만 이내 기운 없이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당분간 여기에 같이 있어도 될까요?”

 “그럼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홍채현이라고 합니다.”

 홍채현은 한 쪽 뺨을 만지면서 다소 어색하게 그에게 인사를 했다. 다행히 김정기는 그녀에게서 이상한 점을 전혀 발견하지 못한 눈치였다.

 “피곤할 텐데 얼른 들어가세요. 저도 대문만 닫고 들어갈게요.”

 “네.”

 김정기는 어두워져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까만 바다를 한 번 힐끔 쳐다보았다가 꽤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어쩐지 저 어둠 속에 채지나가 숨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턱 밑까지 드리워진 어둠 속에서 그런 상상을 하니 소름이 끼쳤다.

 김정기는 삼라바가 오기 전 라미아가 채지나와 둘이 있을 때부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 전 채지나가 집에 오던 날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이 아무래도 영 찜찜했다. 그리고 정말로 먼 발치에서 바라본 친구 채지나의 모습은 김정기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친구의 모습이 아니었다. 매우 낯설고 아주 이상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마치 악마와 같은 모습이었다.

 머리카락이 유난히 까맣고. 눈이 움푹 들어간 외모는 누가 봐도 섬뜩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심지어 라마아의 오른쪽 귀에서 날름대는 까맣고 긴 혀가 보이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기분 탓이겠지 하고 아무리 눈을 씻고 몇 번을 다시 쳐다봐도 채지나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김정기는 그렇게 바다를 살펴보다 이내 대문을 단단히 잠그고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정오가 될 무렵 홍채현이 집 밖으로 나왔다. 어젯밤부터 도통 잠도 자지 않고 내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라미아와 삼라바를 피해 김정기가 먼저 사야 할 물건이 있다는 핑계로 집을 나가고, 얼마 후 그녀도 조심스레 집 밖으로 나왔다. 홍채현은 제법 오랜만에 서울을 벗어나 만난 바다가 반가웠다. 맑은 날씨 탓인지 더없이 파란 물결이 넘실거리는 바다를 눈 앞에서 보니 그녀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낯선 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자 문득 남해로 내려 오면서 삼라바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삼라바는 홍채현에게 인간에게는 누구나 본연의 무기가 있다고 했다. 아주 절박한 순간에 자신을 가장 강한 존재로 만들어줄 수 있는 초능력 같은 것이 스스로에게 있다고 말이다.

 “에이, 거짓말.”

 홍채현은 소리 내어 웃었다.

 “그것도 타고 나는 게 있다면 모를까, 말도 안돼요. 아님 사람마다 조건이 다르던가”

 “딱 하나 조건이 있어요.”

 “그게 뭔데요?”

 “자신을 믿는 걸 포기하지만 않으면 돼요.”

 삼라바는 홍채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마치 무슨 일을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삼라바의 깊은 눈을 보면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삼라바는 알까? 홍채현에게 정말로 초능력이란 게 있다면, 가장 먼저 삼라바와 영원히 함께 하는 일에 그 힘을 쓰고 말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홍채현은 모래사장으로 거침없이 내려가다가 뭔가에 걸린 듯 갑자기 멈춰 섰다. 그러더니 신발을 벗었다. 벗어놓은 신발 안에 하얀색 양말을 대충 구겨 넣고는 맨 발로 바다 가까이 걸어갔다. 잔잔한 바람에 파도가 모래 위에 넘실거렸다. 홍채현은 발 걸음마다 파도를 느끼며 해안선을 따라 걸어갔다. 홍채현이 어렸을 때 바다에 올 때면 가장 좋아하던 행동이었다. 바닷물이 그녀의 발바닥을 간질이는 것이 재미있었고, 바다에 온 것이 온 몸으로 실감나던 순간이었다.

 홍채현의 발자국이 모래 위에 새겨졌다 넘실거리는 파도에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사라진 홍채현의 발자국 위로 보이지 않는 새로운 발자국이 그녀를 따라왔다.

 홍채현은 바닷바람을 느끼며 한참을 걷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홍채현 깜짝 놀랐다. 웬 여자가 힘없이 그녀 뒤를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울고 있었다.

 홍채현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 때, 울고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여자는 마치 홍채현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자신 때문에 모르는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은. 그것도 남자가 아닌 여자라니 무슨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자의 눈빛은 진실됐고, 한없이 슬퍼 보였다.

 “괜찮으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자는 급히 눈물을 닦았다. 그녀 스스로도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당황스러운 듯 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그냥 옛날 일이 좀 생각나서요.”

 “바다를 보면 괜히 기분이 이상하죠?”

 “혹시 옛날 일 기억나는 거 있어요?”

 “옛날 일이요?”

 홍채현은 처음 보는 여자가 자신에게 무엇이 알고 싶은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의 질문에 알맹이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여자도 그녀의 대답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에요.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사실 제 친구가 저기 파란 대문 집에 살아서 찾아 왔다가 가는 길이에요.”

 “파란 대문 집이요? 그럼 혹시 김정기씨 친구 분이세요?”

 “김정기를 아세요?”

 “정말 정기씨 친구구나.”

 “네, 채지나라고 해요.”

 그제서야 홍채현은 채지나를 위, 아래로 자세히 쳐다봤다. 홍채현은 그녀에 대해 괜한 오해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녀의 눈물의 의미를 대강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채지나는 애써 친구라고 말하는 김정기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김정기를 찾아왔다가 뜻밖에 다른 여자와 같이 있는 모습을 봤고, 그를 만나지 못하고 혼자 돌아가는 길에 자신을 만난 것이라고 홍채현은 그렇게 짐작했다.

 “정기씨한테 이렇게 예쁜 친구가 있는지 몰랐네요.”

 홍채현은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되는 말을 건넸다. 하지만 채지나의 모습을 하고 있던 레우키포스는 사실 홍채현의 말보다 따뜻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마음이 녹는 것 같았다. 레우키포스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라미아의 얼어 붙었던 심장을 그가 직접 깨부수지 않았더라도 라미아와 아카마스, 그 둘은 결국 방법을 찾아냈을까?

 “같이 걸을까요?”

 “네, 그래요.”

 홍채현은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로 채지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홍채현은 채지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홍채현씨는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을 많이 닮았네요.”

 “그래요? 누군데요?”

 “그냥 제가 좋아하던 친구였어요. 눈이 바다처럼 예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아름다운. 그래서 누가 봐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성격은요?”

 “성격이요?”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성격이 좋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설마 외모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고 싶은 건 아니겠죠? 아니면 그 사람에 대해 잘 모르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정기씨도 외모만 보고 좋아하는 거에요? 그렇다면 마음을 접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사랑이란 게 생각보다 강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닐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외모만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기에 그 힘은 너무 약한 것 같아요. 정기씨한테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

 레우키포스는 김정기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레우키포스가 정말로 궁금한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당신은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이 있나요? 지금 만나는 사람은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홍채현에게 사랑이라는 것은 그리 좋은 기억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너무 쉽게 거짓이 되고, 전부라고 믿었던 것이 너무 쉽게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이 누군가 그녀에게 달콤하다고 속삭이던 사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쩐지 꺼림칙한 이 여자가 눈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그런데 채지나의 질문에 홍채현은 문득 삼라바의 얼굴이 떠올랐다. 홍채현은 그냥 미소만 짓고 앞서 걸어나갔다. 이 상황을 자연스레 넘어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레우키포스도 더 이상은 캐묻지 않았다. 레우키포스는 왜 홍채현이 삼라바와 같이 있는지, 삼라바가 홍채현과 자신의 정체에 대해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그녀에게서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조심스레 말을 꺼냈지만, 그 이상은 묻지 않기로 했다. 레우키포스는 과거 다프네 앞에서보다 훨씬 더 조심스러웠다. 한 번의 경험을 통해서 그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프네가 자신을 의심하여 쉽게 정체가 탄로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했다.

 레우키포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홍채현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레우키포스는 아주 은밀하게 그녀를 죽이는 상상을 했다.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죽였던 그녀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는 것이 수천 년 동안 그가 소원하던 일이었다. 레우키포스는 조심스레 그녀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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