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너에게 가는 길
작가 : 사파이어
작품등록일 : 2019.11.10

우주에는 ‘넵툰’이라는 청록색의 신비로운 행성이 있다. 그 곳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그의 딸 ‘라미아’가 거대한 왕국을 이루며 살고 있다.
우주에서는 삶이 무한하고, 아름다움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반복되는 삶에 우울증에 빠진 ‘라미아’가 아버지에게 ‘지구’로 보내달라고 간청하는데, 아버지는 심하게 반대를 하다 결국 3년 안에 돌아오라는 약속을 하며 허락한다.
‘라미아’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어떤 범상치 않는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데...

 
6회
작성일 : 19-11-10 23:11     조회 : 199     추천 : 0     분량 : 874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라미아는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삼라바는 생각보다도 더 빈틈이 없었다. 넵툰의 반도 안 되는 작은 행성에서 라미아가 삼라바 없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아무 것도 없었다.

 “라미아, 네가 태어났을 때 이 어두운 넵툰에도 밝게 빛이 났단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볼 수 없었던 밝은 빛이었지. 그러니까 너는 넵툰의 희망의 될 것이다.”

 라미아의 어머니 리비에는 어린 시절부터 버릇처럼 늘 같은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곤 했었다. 그러면 아버지 포세이돈은 옆에서 인자한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시절부터 주목을 받으며 자라서인지 라미아의 형제, 자매들은 쉽게 그녀 곁에 다가오지 않았고, 미워하고 시기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라미아는 넵툰에 살고 있는 바다 동물, 바다 식물들과 더 가까웠고, 유난히 호기심이 많았다.

 라미아는 아버지 포세이돈의 사랑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포세이돈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늘 그녀를 완벽하게 믿지 못한다는 뉘앙스를 풍기곤 했다. 무엇보다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는 라미아를 믿지 못했다. 지구에 오는 것도 수호신과 동행하지 않았다면 끝까지 허락되지 않았을 일이었다.

 라미아는 지구에 온 순간부터 아버지 포세이돈이 오랫동안 자신을 지구에 오지 못하게 한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삼라바와는 또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녀에게 다가오는 모든 존재들을 철저하게 경계했다.

 최근 들어 삼라바의 외출이 잦아진 이유가 자신이 다쳤던 일과 관련이 있는 걸 지도 모른다. 삼라바가 은밀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라미아로서도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넵툰의 후계자였다. 포세이돈의 딸이자 넵툰의 후계자로서 위험인자를 없애고 넵툰을 지키는 일을 남의 손에 맡길 수는 없었다.

 라미아는 아버지의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반드시 증명해내고 싶었다. 이번에도 아버지가 믿지 못한다면 그녀는 언제든, 몇 번이고 그녀의 능력을 확인 시켜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만, 아버지가 그녀에게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적이 반드시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니, 그리고 라미아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방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니, 쉬운 말로 낸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아버지의 말이 과연 무슨 뜻이었을까?

 라미아는 김정기의 얼굴을 떠올렸다. 김정기와 마지막으로 마주쳤던 찰나의 모든 것이 아주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라미아는 편의점에서 마주쳤던 김정기가 한참 동안 그녀 뒤를 따라 오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라미아가 평소보다 훨씬 더 천천히 걷고 있다는 사실을 삼라바도 모를 리 없었다.

 삼라바는 단숨에 차에 올라타 당장이라도 출발할 것처럼 정면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삼라바는 매서운 감각으로 라미아와 남자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라미아 또한 큰 길을 사이에 두고 남자의 동태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지만, 사실은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와 마주하면 어떤 질문을 해야 할 지 딱히 정해놓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든 남자를 직접 만나면 라미아를 괴롭히던 문제의 정답을 예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라미아는 끝내 뒤돌아서 가버리는 남자의 뒷모습을 꽤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어쩐지 슬퍼 보이던 그의 표정과 힘없이 돌아서던 남자의 걸음걸이, 축 처진 어깨가 라미아에게 이상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처음 남자를 만났을 때 보았던 유리 장식이 라미아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라미아는 기억을 더듬어 삼거리의 편의점에 도착했다. 편의점은 이전에 봤을 때와는 다르게 오고 가는 손님들이 제법 많았다. 라미아는 입구 반대편 구석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매장은 그리 크진 않았지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한쪽 편은 파스텔 톤으로 된 서너 개의 테이블이 놓여져 있었고, 다른 한쪽 편은 널찍한 계산대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꽤 많은 손님이 있는데도 직원은 계산대 뒤에 있는 한 명이 전부인 것 같았다.

 계산대 뒤에 있는 남자 직원은 그녀가 찾는 남자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긴 했지만, 그 남자와 전혀 달랐다. 둘이 함께 서 있다면 키도 비슷할 것 같았지만, 지금 그녀 앞에 있는 남자는 자신이 찾는 남자에 비해서나 보통의 남자들보다도 체격이 꽤나 왜소한 편이었다. 테가 없는 두꺼운 안경이나 가르마를 따라 반듯하게 나누어진 그의 머리 스타일이 그를 더 날카로워 보이게 만들었다. 그녀가 찾는 남자는 좀 더 훤칠하고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편안함을 주는 인상이었다.

 라미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편의점 한 쪽 구석에 안이 보이지 않는 공간이 하나 더 있었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사이 재빠르게 근처까지 들어가서 다른 남자 직원이 있는지 샅샅이 살펴 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결국 그냥 돌아섰다. 열린 문 쪽을 한참을 쳐다봐도 안에서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편의점 외부에도 파라솔이 달린 나무 테이블이 두 개 있었는데, 한참 동안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처럼 테이블 주변 바닥까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바로 이 곳에서 청소를 하던 남자와 마주쳤던 당시의 상황이 떠올라 라미아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가롭게 청소를 하고 있는 존재가 갑자기 자신을 공격하고 위협을 줄 거라는 생각이 너무나도 터무니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편의점 바로 옆에는 공사가 한창 중인 것처럼 천막으로 경계를 둘러놓은 건물이 보였는데, 커다란 건물의 공사가 주변에는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듯이 일대가 조용했다. 공사 중인 건물 바로 앞의 인도 바닥 끝까지 하얗게 쓸린 자국이 있었지만, 제법 깨끗하게 정리되어 통행에는 불편이 없었다.

 하지만 라미아는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꼈다. 공사 중인 건물 바로 앞 나무를 무심코 쳐다봤다가 나무에 난 길고 선명한 자국을 발견한 것이었다. 나무에 상처가 생기고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난 듯 희미해지긴 했지만, 마치 번개 모양 같기도 한 그 흔적은 라미아에게 결코 낯선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지금도 라미아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확실해진 순간이었다.

 아버지 포세이돈이 왜 이 곳까지 찾아온 것일까? 혹시 김정기를 어떻게 하기라도 한 것일까?

 라미아는 왔던 길을 급히 돌아가 편의점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편의점에 있던 모든 시선이 순간적으로 그녀에게로 쏠렸다. 계산을 하던 젊은 여성은 라미아가 연 문을 통해 빠르게 밖으로 나가고, 계산대에서 기다리는 손님은 더 이상 없었다. 라미아는 문을 열고 들어가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빤히 쳐다 보고 있는 남자 직원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여기서 일하는 다른 남자 직원 어딨어요?”

 “남자 직원이요? 저희 점장님이요?”

 영 까다로울 거라고 생각했던 남자 직원은 라미아가 느꼈던 첫 인상과는 다르게 라미아에게 무슨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 하는 안달하는 눈치였다.

 “아니, 좀 어린 사람인데.”

 “어린 사람이요? 그럼 정기 형 말하는 건가? 점장님 말고 아르바이트 하던 남자를 찾는 거면 그 형은 얼마 전에 그만 뒀어요.

 그런데 무슨 일인데요?”

 남자 직원은 처음부터 했어야 하는 질문을 이제서야 이야기하고도 그녀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크게 상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라미아를 보고 실실 웃고 있었다.

 “아, 그 때 편의점에 왔었는데…… 그냥 좀 물어볼 게 있어서요.”

 “저한테 물어보세요. 편의점 제품이나 아니, 편의점 전반에 걸친 뭐든 제가 더 잘 알아요. 제가 다 설명해 드릴 수 있어요.”

 “그런 게 아니라…… 혹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나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거나 하는, 아는 거 있어요?”

 “그 형 고향으로 간다고 하던데…… 그럼 만나기 힘들 거에요. 남해라 엄청 멀어요.”

 “남해요?”

 “네, 남해. 그나저나 궁금한 거 저한테 물어……”

 “고마워요.”

 라미아는 단호하게 말하고 편의점을 나섰다. 그와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무래도 별 소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라미아는 다급히 그 곳을 빠져 나갔다. 하지만 편의점 직원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참 동안 라미아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그녀에게서는 빛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입었던 하얀색의 하늘하늘한 블라우스가 계속 눈 앞에 아른거렸다. 떠난 여자의 뒤로 편의점 계산대의 줄은 어느새 다시 길어져 있었지만, 잔뜩 짜증이 난 손님들의 기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 분명했다.

 라미아는 혼자서 차에 올랐다. 남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라미아는 당장 그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해라면 바다가 있는 곳이다. 거기라면 금세 남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 줄기 빛이 서울에서 반짝였다 사라지고 남해에 번쩍하고 다시 불빛이 나타났다. 아무도 알아차릴 틈도 없이 라미아가 탄 차는 순식간에 바다를 가로지르는 노량대교 앞에 서있었다. 노량대교의 몸체는 붉은 색을 띠고 있었지만, 높은 주탑의 존재감 때문인지 다리 전체가 새하얗게 보였다. 검푸른 바다 위에서 햇살에 반사되어 새하얗게 빛나고 있는 다리는 한강에서 보던 풍경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리고 광대한 바다 앞에 서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라미아는 차에서 내려 다리를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보기에도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은 거대한 규모의 다리였다. 라미아는 다리를 받치고 있는 커다란 교각을 바라보며 포세이돈이 늘 앉아 있던 의자를 떠올렸다. 교각 밑에 흐르고 있는 바다는 포세이돈의 길게 늘어뜨린 푸른색 가운을 연상시켰다.

 다리를 이어주는 긴 주탑과 그 사이에 늘어진 두꺼운 케이블은 마치 거대한 새의 형상 같기도 했다. 유선형의 모양은 바람에도 잘 견딜 수 있도록 저항성을 극대화한 것일 것이다. 라미아는 인간들의 기술이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아직 자연의 위대한 속임수를 모르는 것 같다. 자연은 인간의 허무맹랑한 자만심과 이기심을 모두 다 포옹해주고 있는 것 같지만, 언젠가 그들은 광활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 호되게 가르쳐줄 것이다.

 라미아는 곧장 다리 위로 올라가려다 말고 계단 아래 있는 작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홍보관’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이었다. 생각보다 밖에 있었던 시간이 길었던 건지 그 곳에 들어서자 외부의 더운 공기와는 상반된 시원한 바람이 피부 결결이 파고 드는 것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바다와 마주한 라미아는 그녀가 이 곳에 온 목적을 잊어 버린 것처럼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홍보관의 입구는 이중 문으로 되어 있었는데, 바깥 쪽의 두 개의 문이 밖을 향해 활짝 열려 있었다. 라미아는 중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갔다. 홍보관은 널찍한 입구만큼 커다란 복도가 바로 이어지고 있었다. 복도 끝 둥그런 홀 가장자리에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가 네 개 있었고, 바로 뒤 쪽으로 안내데스크 형태의 길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직원인 듯 보이는 두 명이 안내데스크를 지키고 있었지만, 의자에 비해 높이 솟은 테이블에 가려 얼굴조차 잘 보이지 않았고, 그들은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홍보관은 입장료나 별도의 안내 없이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개방되어 있는 장소인 것처럼 보였다.

 라미아는 멀리서부터 분위기를 살피며 넓은 복도를 조심스레 걸어가다가 의자에 앉아 있던 직원들을 발견하고 놀랐지만, 오히려 무심한 그들의 태도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라미아는 안 쪽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전시장 안 쪽으로 한참을 들어가서야 반대편 공간에서 가족처럼 보이는 일행을 겨우 한 팀 발견했을 정도로 홍보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전시 공간의 하얀 벽면이나 여러 모형들을 전시해놓은 깨끗한 유리관만 봐도 건물의 모든 것들이 지은 지 얼마 안 된 새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홍보용 영상과 사진을 별 의미 없이 지나치던 라미아는 갑자기 한 쪽 구석의 벽면 앞에 섰다. 홍보 동영상을 상영하는 전시관으로 향하는 벽면에 입체적으로 튀어 나와 있는 동상이 바로 그 앞을 지키듯이 서있었다. 노량해전으로 잘 알려진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었다.

 ‘오늘 진실로 죽음을 각오하오니 하늘에 바라건대 반드시 적을 섬멸하게 하여 주소서.’

 라미아는 동상 옆에 쓰인 글귀를 소리 내어 읽더니 동상의 머리에 쓴 투구 때문에 그늘져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순진 장군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각오가 그대로 반영된 듯한 강건한 표정과 자세가 동상에 그대로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강인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누군가가 떠올랐다.

 문득 삼라바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라미아가 사라진 사실을 지금쯤은 눈치 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냉철한 표정과 다부진 자세, 이순신 장군이 투영하는 존재는 아마 삼라바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라미아는 투구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에서 깊은 슬픔을 느꼈다. 평면적인 동상이 라미아에게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건지, 그저 상상 속에서 그녀 자신의 감정을 이입한 것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라미아는 느린 걸음으로 홍보관 전체를 한 번 다 둘러보고 나서야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넓은 홀을 지나 아까 들어왔던 입구로 다시 나가는 라미아에게 이번에도 안내 데스크의 사람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잠시 후 라미아의 등 뒤에서 고개를 들어 그녀를 힐끔 쳐다 봤을 뿐이었다.

 밖의 더운 공기를 순간적으로 잊고 있었을 정도로 라미아의 몸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라미아는 밖으로 나가 여전히 햇살을 잔뜩 머금은 채로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봤다. 이제 바다에게 라미아가 찾고 있는 남자를 보내달라고 해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라미아는 거짓말처럼 그녀의 바로 앞에서 그녀가 찾던 남자를 발견했다.

 ‘그 남자다.’

 라미아는 다시 한 번 남자를 자세히 쳐다봤다. 남자는 자전거를 타고 제법 먼 거리에서부터 빠르게 라미아 앞으로 다가왔다. 오히려 남자가 라미아를 먼저 발견한 것 같았다. 그는 빠르게 자전거 페달을 밟아 라미아 쪽으로 달려 와서는 천천히 속도를 줄여 바로 앞에 멈춰 섰다. 남자는 정말 라미아가 찾고 있던 김정기였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 남자가 정말 보통내기가 아닌 것일까? 라미아는 자신이 먼저 그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분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당신은?”

 “백화점에서 만났던 그 분 맞죠? 이제 몸은 괜찮아요?”

 김정기는 진심으로 걱정을 한 듯한 얼굴로 라미아를 위, 아래로 살펴 보더니, 이내 라미아를 바라보며 싱글거리고 있었다. 라미아는 그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여긴 무슨 일이에요? 놀러 온 거에요?”

 김정기는 라미아를 똑바로 쳐다보며 여전히 해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연한 회색 빛이 도는 반팔 티셔츠에 얇은 파란색의 반바지를 입고 있는 그의 차림새가 말하고 있기도 했지만, 서울에서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편안해 보이는 김정기의 표정이 이 곳이 틀림없는 그의 고향임을 알려 주는 것 같았다.

 반면에 라미아의 복장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상당히 불편해 보였다. 하얀색 블라우스는 매우 얇은 재질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깃에 달린 하늘하늘한 프릴이 어쩐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고, 라미아의 무릎 밑까지 내려온 베이지 색의 치마는 지금 같은 더위에는 어울리지 않게 어두운 느낌을 주었다. 라미아가 회사일 때문에 그 곳에 온 거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꽤나 격식을 차린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김정기의 말투에는 어떤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은 느껴지지 않았다. 김정기는 고향에서 만난 라미아가 마냥 반갑다는 표정이었다.

 “당신 정체가 뭐에요?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아, 제 이름은 김정기에요. 여기는 제 집이고요.”

 예상 외로 날카로운 라미아의 대답에 김정기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졌다.

 “김정기?”

 “네, 그 쪽 이름은 뭐예요?”

 “제 정체를 확인하려는 건가요?”

 라미아는 여전히 김정기를 향해 톡 쏘아 붙이는 말투로 말했다.

 “이름 정도는 알려줘도 되지 않아요? 싫으면 묻지 않을게요. 그나저나 이제 정말 괜찮아진 거에요?”

 김정기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라미아를 만지려고 하다가 그만 두었다. 라미아가 싫어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라미아는 다가오는 김정기의 손을 먼저 피할 생각이 없었다. 김정기의 다정한 말투와 순수한 표정에 라미아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김정기가 이해되지 않았다. 어쩌면 삼라바의 말대로 라미아가 결코 꿰뚫어보지 못할 무서운 상대인지도 모른다. 그는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대라면 어째서 지금 이 자리에서 그녀의 이름이나 묻고 있는 걸까?

 “당신에게 경고하러 왔어요. 나나 삼라바, 그리고 우리 넵툰을 위협할 생각하지 말아요. 그리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요.”

 “삼…… 누구? 뭐요? 무슨 말이에요?”

 “당신이 나를 쫓아오고 공격하는 걸 더 이상 보고 있지 않겠다는 거에요.”

 라미아는 얼굴색이 변하는 김정기를 보고 역시 그를 오해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김정기는 비로소 자신과 그녀 사이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이 그녀에게 큰 오해를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느꼈던 그의 감정에도 아주 큰 오해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도 말이다.

 라미아는 길고 풍성한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기고 돌아섰다. 라미아의 얇은 블라우스가 뒤쪽으로 세게 흩날릴 정도로 강하고 단호한 태도였다. 김정기는 떠나려는 그녀를 잡을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를 잡아서도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미아의 뒷모습을 보면서 김정기는 수많은 슬픈 이별 노래 가사들이 떠올랐다. 라미아의 강인한 태도와 상반되는 슬픈 눈빛이 김정기에게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슬픈 눈빛은 이상하게도 그를 향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이 여자가 몹시도 애처로워 보였다.

 ‘오늘 진실로 하늘에 바라건대 반드시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세요.’

 김정기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렇게 헤어지더라도 자신에 대해 오해만큼은 풀고 싶었다.

 “저는 그냥 당신이 궁금해서 그랬어요. 항상 파란색 옷만 입고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눈에 띄어서 그랬다고요.”

 김정기가 돌아서는 라미아를 향해 허탈하게 소리쳤다. 라미아는 그 자리에서 얼어 붙고 말았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4 14회 2019 / 11 / 10 180 0 4548   
13 13회 2019 / 11 / 10 193 0 9289   
12 12회 2019 / 11 / 10 186 0 7214   
11 11회 2019 / 11 / 10 200 0 9677   
10 10회 2019 / 11 / 10 168 0 8765   
9 9회 2019 / 11 / 10 195 0 12411   
8 8회 2019 / 11 / 10 160 0 10186   
7 7회 2019 / 11 / 10 199 0 10940   
6 6회 2019 / 11 / 10 200 0 8744   
5 5회 2019 / 11 / 10 180 0 11961   
4 4회 2019 / 11 / 10 178 0 10204   
3 3회 2019 / 11 / 10 172 0 10052   
2 2회 2019 / 11 / 10 196 0 10243   
1 1회 2019 / 11 / 10 342 0 8911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