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다.
밝은 소리에 눈을 떴다.
허나, 온몸이 붕대와 깁스 투성이라 움직일 수가 없다.
“어머, 일어났네.”
설화누나가 보였다.
“역시 돌머리라 살아남는구나.”
재성이형이다.
“쯧쯧, 수고했다.”
소장 아저씨다.
옆을 살짝 보니 햇빛이 밝게 드는 곳에 경숙이가 나처럼 온몸이 붕대와 깁스를 한 채로 기분 좋게 자고 있다.
“경숙이는 무사해. 아까 일어났다가 다시 잠들었어.”
설화누나가 말했다.
“꼴통. 수고했다.”
재성이형이 말했다.
“망할 성주놈. 난 네 녀석이 죽기를 바랐다.”
소장 아저씨가 투덜댔다. 아아, 경숙이가 무사하다니 정말 다행이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궁금하지도 않다. 아니, 지금은 너무 피곤하다. 자는 게 먼저다.
“그래, 자빠져 자라. 망할 성주.”
소장 아저씨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선배.”
병원 옥상 공원에서 혼자 간호사 몰래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경숙이가 용케 찾아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야아, 넌 병실에 돌아가 있어. 난 전치 6주지만 너는 10주잖아.”
내가 담배를 멀리 던져 버리고 말했다. 이것 뭐... 한쪽 팔에 통으로 깁스를 하고 있으니 담배피우는 것도 힘들다.
“상관없습니다.”
경숙이가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솔직히 병실에 있기 싫습니다. 선배만 나가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계속 놀립니다.”
경숙이가 투덜대며 말했다. 음? 뭐라고 놀리기에 시베리아 얼음장 같은 경숙이를 부끄럽게 만드는 걸까?
“뭐라고 놀리는데?”
내가 묻자 경숙이가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왼팔에 감겨진 깁스의 붕대를 만지작거린다. 그리고 잠시 후에 입을 연다.
“... 선배의 색시라고...”
경숙이가 말끝을 흐리며 얼굴을 붉혔다. 우와, 경숙이의 저런 모습 정말 처음 본다. 하하핫, 그래서 나름 귀엽다.
“왜? 내 색시면 곤란한가? 난 경숙이 같은 색시라면 섹시해서 좋은데.”
내가 크게 웃으며 말하자 경숙이는 갑자기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뭐 찾아?”
내가 묻자 경숙이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연다.
“단검을 찾고 있습니다.”
하아- 그 단검? 아, 헌데 그 단검은 열차에서 그 녀석에게 담그고 나서 잃어버리지 않았던가?
“장난입니다, 선배.”
“그렇지?”
내가 하핫 하고 웃었다.
“그나저나 너 여기 있느라 대학 입시 원서를 접수하지 못해서 어떻게 하냐?”
내가 깁스 때문에 잘 움직이지 않는 팔을 간신히 움직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논술고사나 면접을 안 보는 근처 대학에 인터넷으로 원서접수를 했습니다. 게다가 그 대학은 소년소녀가장은 장학금을 주고 학비를 면제해 준다고 하기에 미련 없이 넣었지요.”
경숙이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음, 이 근처에 그런 대학이라면 내가 다니는 대학밖에 없는데...
“학과는 무슨 학과 지원했어?”
내가 묻자 경숙이는 방긋 웃으며 대답한다.
“법학과입니다.”
... 그래, 그렇구나.
하하하하하하하, 나중에 만나기 싫어도 계속 만나게 되겠네.
“근데 경숙이 너는 언제까지 나에게 선배에다 경어를 쓸 거야? 난 너를 구한 생명의 은인인데 그 정도밖에 못 해?”
내가 말하자 경숙이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나를 응시한다.
“아니, 그러니까 오빠라고 부르고 뭐 말끝은 습니다 말고 소녀답게 해요 에요 라고 하면 예쁘잖아~.”
내가 깁스 때문에 잘 안 움직이는 팔까지 동원해서 설명을 하는데도 방긋 웃기만 할 뿐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경숙이다.
“그렇게 듣고 싶으십니까?”
“응!”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생각을 하더니 나를 보며 예쁜 미소와 함께 입을 여는 경숙이다.
“그럼, 이제부터라도 잘 부탁해요.”
오오, 그럼 이제 나올 말은...?
“오빠.”
그리고 나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는 3류 연애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