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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벅수지이 - 벅수가 기록한 기이한 이야기
작가 : Arzu
작품등록일 : 2019.11.10

천하대장군 가리아단과 형사 채유진의 악귀 토벌전

 
검은 악귀
작성일 : 19-11-10 20:17     조회 : 200     추천 : 0     분량 : 5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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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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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외곽으로 나온 가리아단은 슬슬 다리가 피로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목적지가 멀지 않았기에 꾹 참고 속도를 냈다.

 

 가로등 불빛을 지표 삼아 도착한 곳은 한적한 도로가에 위치한 주유소였다. 저녁 8시가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주유소 불은 까맣게 꺼져 있었다. 도로 건너편에 있는 철물점과 찐빵집도 어둡고 조용했다. 마치 오래 전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것처럼 그 일대에서 음산한 공기가 떠돌았다.

 

 도로가에 선 가리아단은 품 안에 넣어두었던 검은 물질을 꺼냈다. 그런 것에 대한 분석이 그의 전공은 아니었기에 정체를 알 수 는 없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느껴지는 역한 기운과 검은 물질에서 풍기는 것이 같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역한 기운이 범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주유소가 가까워질수록 피부가 저릿저릿할 정도로 강해졌다. 상대는 약해 빠진 존재가 아니었다.

 

 “후우, 놈의 정체라도 알아보고 왔어야 했나.”

 

 얼음 송곳에 찔린 것처럼 차갑게 아픈 목덜미를 주무르며 가리아단이 중얼거렸다. 까슬까슬한 도포의 감촉이 실크처럼 느껴질 정도로 온 몸에서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흥분에 이빨 하나하나가 울렸다.

 

 의뢰인의 얘기에 따르면 아버지가 실종된 것은 이틀 전이었다. 그 사이 청소를 하지 않았다고 알리듯 주유소 주변은 지저분했다. 일부러 쓰레기를 버리기라도 한 듯 빈 물통과 비닐봉지, 심지어는 담배꽁초도 굴러다녔다.

 

 하지만 주유소의 청결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주유소 건물에서 요망한 기운이 넘쳐 나오고 있었다.

 

 주유소 출입구의 손잡이를 잡는 순간, 가리아단은 상대가 이곳에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웃었다.

 

 허탕이 아니었다.

 

 가리아단의 눈동자는 기민하게 움직였고 두 팔과 다리에는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는 숨을 머금으며 문고리를 돌렸다.

 

 문을 열자 사무실 안에 묶여있던 퀴퀴한 공기가 빠져나왔다. 흐릿한 달빛으로 어두운 사무실 내부를 밝히기는 역부족이었다.

 

 실내는 정돈과 어지러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마치 엊그제 찾아갔던 사무실과 같았다. 출입구 근처는 깨진 형광등 파편과 넘어진 의자, 뒤집혀 있는 책상과 온갖 집기들 등으로 아수라장이었지만 안쪽은 이제 막 인테리어를 마친 것처럼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뭐야. …윽!”

 

 안으로 들어서던 가리아단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행방불명이 된 여성의 아버지인가 싶었지만 쓰러진 사람은 30대 가량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안타깝게도 그는 숨이 끊어져 있었다. 청바지와 체크 남방을 입고 있어 주유소 직원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지만 누구에게 당했는지는 쉬이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남자를 살피던 가리아단의 손에 끈적끈적한 것이 묻어났다. 그가 챙겨온 검은 물질과 같은 것이었다.

 

 “멀리 가지는 않았어.”

 

 가리아단은 빠르게 주변을 살피며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나무 자루를 꺼냈다. 한 뼘 정도 크기의 나무 자루는 그의 손가락 모양에 맞춰진 것처럼 빈 틈 없이 다듬어져 있었다. 한 가운데에 새겨진 槍[창] 글자가 달빛을 받아 붉은 빛을 발했다.

 

 자루를 움켜잡는 순간, 천장에서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 속에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 섞여 있었다.

 

 “젠장!!”

 

 가리아단이 단말마를 질렀고,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암흑 속에서 무언가가 그를 덮쳐왔다.

 

 ***

 

 “저기 있다.”

 

 목적지인 주유소를 발견한 유진이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그녀는 운전대를 잡은 채로 가리아단의 행방부터 찾았지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지는 뻔했다.

 

 “좋아. 할 수 있어.”

 

 심호흡을 한 유진은 품 안의 38구경 권총을 확인 한 뒤 차에서 내려 주유소 건물로 이동했다.

 

 주유소가 가까워지자 진한 기름 냄새가 났다. 짙은 밤의 어둠 아래 숨은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전쟁터의 북처럼 울리며 그녀의 심장을 두드렸다.

 

 “이런 짓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일이 단단히 꼬이고 있었다. 어둠 속에 숨은 주유소 건물이 낭떠러지 너머 미로의 출구처럼 보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부르는 듯 보였다. 이럴 땐 정말이지 상상력이 원망스러웠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차근차근 걸어온 유진이 주유기 앞에 도착했다. 주유소 건물이 가까워질수록 차가워지는 공기에 숨이 막혔다. 발은 이상하게 무거웠고 기름 냄새가 아닌 어떤 악취에 헛구역질마저 올라왔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숨 막히게 덮쳐오는 공포가 유진을 흔들어대는 그 순간, 주유소 건물 안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수 십장의 유리창이 깨지고 벽이 무너지는 것처럼 둔탁한 폭음이 이어졌다.

 

 유진은 재빠르게 권총을 꺼내들었다. 그녀는 온몸을 휘도는 아드레날린에 머리가 쭈뼛하게 섰다. 유진은 호흡을 재촉한 뒤 용감하게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

 

 “경찰이다! 모두…, 꺄악!”

 

 우당탕탕탕!!

 

 문을 열고 들이닥친 유진의 코앞으로 가리아단이 날아와 처박혔다.

 

 “깜짝이야!! 놀랐잖아요!”

 

 놀란 유진이 가리아단에게 총구를 겨눴다. 그녀를 발견한 가리아단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내가 할 소리에요! 이게 무슨 짓이죠?”

 

 두 사람이 말다툼을 벌이는 사이 검은 형체가 이쪽으로 날아왔고 번개같이 일어난 가리아단은 유진을 끌어당기며 다시 데굴데굴 굴렀다.

 

 “꺄아악!”

 

 검은 형체는 문을 부수고 건물 밖으로 튕겨나갔다. 빠르게 몸을 돌린 가리아단이 유진을 일으키며 다그쳤다.

 

 “여긴 어떻게, 아니, 뭐 하러 왔어?!”

 

 우악스런 힘으로 팔뚝을 쥔 가리아단을 뿌리치며 유진이 대답했다.

 

 “제가 묻고 싶네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죠?”

 

 그녀는 문 밖에 덩어리져있는 검은 물체를 보며 몸을 움츠렸다. 모습을 똑바로 확인할 수 는 없었지만 꿈틀대는 실루엣만으로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것처럼 소름이 끼쳤다. 마치 지렁이나 뱀들이 뭉친 것처럼 일렁이는 모양새가 악몽을 꾸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저게 뭐에요?”

 “악귀야. 그것도 엄청나게 위험한 악귀.”

 “악귀요?”

 

 유진의 말에 반응하듯 납작하게 엎드렸던 악귀가 다시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여기 있으면 위험해! 빨리 창문 밖으로 나가!!”

 

 가리아단이 유진을 밀쳐내며 악귀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그의 주먹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고, 오히려 뒤로 돌아온 악귀의 공격을 받았다. 가리아단은 민첩하게 몸을 돌렸지만 날카로운 검은 칼날에 왼쪽 허벅지 바깥 부분이 찢겨나갔다.

 

 “큭! 젠장!!”

 

 악귀는 쉴틈을 주지 않았고 가리아단의 상처가 늘어갔다.

 

 탕!! 탕!

 

 보다 못한 유진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효과는 없었다. 날아간 총알은 악귀를 뚫고 지나가 시멘트 바닥에 꽃혔다.

 

 “이 멍청이! 가만히 있어!!”

 

 악귀의 시선이 유진을 향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일렁이는 검은 형체가 회오리처럼 몸을 꼬았다 스프링처럼 튀어올라 유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위험해!”

 “꺄아아아아악!!”

 

 다이빙을 하듯 온몸을 던진 유진은 가까스로 악귀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어디가 머리인지 꼬리인지 알 수 없는 악귀는 고무공처럼, 혹은 연기처럼 정신없이 이리저리로 움직였다. 그것은 출입구와 창문 근처를 오가며 쉽게 보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유진은 간신히 정신을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악귀라는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생각을 하려 할수록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이 멍청이! 정신 바짝 차려!!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

 

 어느새 다가온 가리아단이 유진의 팔을 낚아챘다. 그는 나무 자루와 악귀를 번갈아보며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아주 잠깐이면 되었지만 악귀는 그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해요? 악귀를. 아니, 당신은.”

 “정신 사나우니까 입 다물어! 내가 신호를 하면 문 밖으로 나가, 알겠어?”

 “하지만….”

 “닥치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더럽고 추악하게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악귀는 가리아단의 경계심이 흐트러진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정신없이 이리저리 뛰던 악귀가 바닥을 쓰며 솟구쳐 왔다. 낚시 바늘처럼 날카롭게 휜 꼬챙이가 가리아단의 턱을 노렸다. 가리아단은 뒤로 뛰며 유진을 밀어냈지만 그것이 그의 실수였다. 악귀는 몸이 날렵한 가리아단을 지나 넘어진 유진으로 노리고 있었고, 거대한 뱀처럼 모습을 바꾼 악귀가 유진의 어깨를 물었다.

 

 “위험해!”

 

 팔을 뻗었지만 짧았다.

 

 “아아아악!!”

 

 유진이 짧고 굵게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몸을 크게 휘청이며 쓰러졌고 그 반도으로 주머니에 들어있던 핸드폰이 떨어졌다. 통통 튀던 핸드폰이 바닥에 누우며 하얀 빛으로 실내를 밝혔다.

 

 그런데 그 작은 빛에 악귀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것은 핸드폰의 빛이 미치지 않는 구석으로 물러나 진동추처럼 몸을 떨었다.

 

 가리아단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힘겹게 쥐고 있던 나무 자루를 두 손으로 잡았다.

 

 그의 손을 중심으로 바람이 휘몰아치더니 자루 양 끝으로 창이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붉고 탄탄한 창 자루와 날카로운 창날이 3D 프린터로 뽑아내듯 모양을 만들어갔다. 동시에 자루를 휘감으며 올라온 붉은 빛이 창날에 天[천] 자 모양의 혈조를 새겼다.

 

 온전한 창이 손에 쥐어지는 그 순간, 핸드폰이 빛을 잃었다. 구석에서 움찔거리던 악귀가 다시 유진을 향해 달려들었고 동시에 가리아단의 창이 뻗으며 뛰어들었다.

 

 “흡!!”

 

 바닥을 구른 가리아단은 핸드폰을 낚아채 화면을 켰다. 쏟아지는 빛이 다시 악귀를 비추었고 검은 안개 같던 악귀의 일부분이 실체를 드러냈다.

 

 “키이잇!”

 

 창백한 피부에 달린 메마른 손가락과 날선 손톱. 쭈글쭈글하게 말라비틀어진 손가락 뼈가 드러난 것보다 흉측했다.

 

 “이 빌어먹을 자식!!”

 

 가리아단은 거침없이 창을 휘둘렀고 매서운 창끝에 악귀의 손가락 끝이 잘려나갔다.

 

 상처입은 악귀는 귀가 찢어지도록 비명을 지르며 깜깜한 구석으로 튕겨나갔다. 가리아단은 곧장 유진에게 달려갔다.

 

 “으으윽…. 으.”

 

 창백해진 유진은 식은땀을 무섭게 쏟아내며 신음했다. 체온은 급격하게 떨어졌고 입술은 회색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이봐! 채유진 형사!”

 “아…, 아파.”

 

 유진의 눈꺼풀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찔린 어깨 주위는 검은 물이 찬 것처럼 시커멓게 변하고 있었다. 유진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가리아단을 잡히는 데로 쥐어뜯었다.

 

 “…상처에, 불이 붙은 것 같아요.”

 “정신 차려! 상처에 손을 대지 마. 일어날 수 있겠어?”

 

 가리아단의 말에 유진이 눈을 떴다. 그녀는 억지로 웃어 보였고 그제야 가리아단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참아. 악귀를 물리치고 치료해 줄 테니까. 나만 믿고 있어.”

 

 유진은 어렵게 미소를 끄집어냈다. 귓구멍마저 부어올라 가리아단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가 전달하고 자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가리아단은 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악귀를 향해 돌아섰다.

 

 “좋아, 이 빌어먹을 자식아. 여기서 끝을 보자고. 시시한 인간 따위 건드리지 말고 우리끼리 화끈하게 놀아보자고.”

 

 창끝을 겨눈 가리아단이 그르렁거렸다. 유진은 내리 누르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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